느티나무 199

영통동 느티나무

미끈하게 잘 빠졌다. 우람하면서도 균형 잡힌 멋진 느티나무다. 펜스에 걸어놓은 현수막에는 이 나무가 대한민국 보호수 100선에 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의 보호수는 1만 개가 넘는데, 그중에서도 100위 안에 드는 뛰어난 나무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안내문에 보면 이 느티나무는 전쟁 같은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는 구렁이 울음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신비한 힘을 가진 나무라 하여 신성시하고 정성껏 보살폈다. 그런데 왜 하필 구렁이 울음소리인지, 구렁이 울음소리가 있는지 문득 의문이 생긴다. 약 200년 전 정조가 화성을 쌓을 때 이 느티나무 가지를 잘라 서까래로 썼다는 설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줄기와 가지가 기운차게 뻗어 있다.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어..

천년의나무 2018.06.06

이의동 느티나무

수원시 영통구 광교역사공원 안 넓은 뜰에 있다. 주변은 온통 신도시로 개발되는데 이만한 녹지를 마련한 게 다행이다 싶다. 공원 안에는 세종의 부원군인 심온(沈溫, 1375~1418)의 묘도 있다. 태종과 사돈지간이었지만 권력에 너무 다가가면 화를 입게 되는가 보다. 죽임을 당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분의 나이 44세였다. 느티나무를 보니 전에는 이곳에도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무 한 그루만 덩그마니 남아 있다. 나무 수령은 300여 년이고, 높이는 13m, 줄기 둘레는 4m다.

천년의나무 2018.06.05

목애당 느티나무

태안읍 남문리에 있는 목애당은 옛 태안현의 관아 건물 중 하나다. '목애(牧愛)'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목애당과 마주하며 오래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은 300년 정도 되었고, 나무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4.1m다. 줄기가 휘어져서 몸을 지탱하는 데 힘겨워 보인다. 줄기도 많이 상해서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보형물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잎은 무성하고 싱싱하며 전체적인 생김새도 아담하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단아하게 늙어가시는 할머니 같은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8.06.03

유계리 느티나무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정순왕후 생가 앞에 있다.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는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1759년(영조 35년) 열다섯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이때 영조의 나이는 예순여섯, 무려 쉰한 살이나 차이가 났다. 왕비 간택 테스트를 볼 때 일화 하나. 제일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고 영조가 물으니 그녀의 대답이 이랬단다. "목화꽃입니다. 비록 색과 향기가 최고라고 할 순 없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입혀주니 제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 나이가 300년이 넘는다니 정순왕후는 어쩌면 이 나무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 밑에서 소꿉놀이에 빠져 있는 어린 소녀가 보이는 듯도 하다.

천년의나무 2018.06.03

해미향교 느티나무

해미향교로 오르는 길 좌우로는 오래된 느티나무 10여 그루가 도열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년가량 되었다. 한 장소에 이 정도로 여러 고목이 보존된 경우는 드물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위치한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년)에 세워졌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나무와 달리 건물은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느티나무가 멋진 해미향교다.

천년의나무 2018.06.01

물곡리 느티나무

전형적인 시골 마을 정자나무다. 나무 밑에는 주민이 쉴 수 있는 깔끔한 정자가 앉아 있다. 흠이라면 너무 도로에 연해 있어 차량 소음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전북 진안읍 물곡리에 있다. 이 마을은 뒷산 지형에서 따와서 '궁동(弓洞)마을'로도 불린다.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어 시원하다. 나무 수령은 200년 정도 되는데 마을 역사와 얼추 비슷하다. 나무 앞에는 돌 제단이 있는데 빈 막걸리 통이 놓여 있다. 한여름에 이런 나무 아래서 바둑 한 판 둔다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천년의나무 2018.05.17

월곡리 느티나무

나무를 처음 본 순간 나도 몰래 중얼거렸다. "이 나무 하나로 영암에 온 값을 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게 당연할 만큼 대단한 느티나무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신성시한다는 설명은 차치하고라도 이 나무 앞에서는 누구라도 합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 같다. 울타리 밖에는 촛대 같은 도구가 놓여 있기도 하다. 500년이 넘은 거목이지만 연초록 새잎으로 덮인 나무는 생기발랄해 보인다. 길게 뻗어 구불구불한 가지들이 춤추듯 사방으로 뻗어 있다. 한 가지는 아예 땅에 닿았다. 줄기 일부는 상해 있지만 나무는 싱싱하다. 초봄의 기운 때문인지 모른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나무의 인상은 완연히 다르다. ..

천년의나무 2018.04.19

예장동 은행나무, 느티나무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자락에 두 그루의 고목이 나란히 서 있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다. 이곳은 일제 시대 때 통감 관저가 있던 장소다.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와 이완용이 강제 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두 나무는 우리의 부끄러웠던 그때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었을 터이다. 두 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 되었다. 약 100년 전에 찍은 사진에도 두 나무는 지금과 비슷한 모양으로 나온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도로도 똑 같지만 통감 관저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기억의 터로 조성되어 있다.

천년의나무 2018.02.24

도피안사 느티나무

철원에 있는 도피안사는 '도피안(到彼岸)'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기억되는 절이다.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른다는 의미가 각별하다. 국보인 철제비로자나불이 유명하다. 도피안사에 들어서면 가운데에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겨울이라 앙상해서 그렇지 여름 같았으면 느티나무 초록 그늘이 온 절을 뒤덮을 것만 같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600년으로 되어 있는데 한 그루가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도피안사에서 이 느티나무는 화룡점정이라고 할까, 만약 느티나무가 없었다면 절 분위기가 무척 썰렁할 것 같다. 6.25 때는 이곳이 격전지였다. 절이 완파되는 피해를 입었어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느티나무가 대단하다.

천년의나무 2018.02.02

화성행궁 느티나무

수원 화성행궁 입구에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다. 수령은 350년 정도 되었다. 행궁을 지을 때 궁궐의 조경 제도에 의해 '品'자 형태로 심었다. 영의정을 비롯한 삼정승을 나타내는데, 나라를 위해 올바른 정치를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행궁 앞이지만 힘들게 살아 온 흔적이 보이는 나무다. 행궁 안에 들어가면 더 오래된 나무가 있다. 몸체 대부분은 죽었고 가운데서 돋아난 한 가지만 살아 있다. 9년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진 것 같다.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니 화성 조성 훨씬 이전부터 여기에 있었다.

천년의나무 2017.09.10

대안리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279호로 지정된 느티나무다.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에 있는데, '원성 대안리 느티나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는 걸 보니 전에는 이곳이 원성군이었던 것 같다. 거목이면서 단정한 모양새가 우리나라 느티나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약간 비켜난 산자락에 있다. 느티나무 주변은 축대를 쌓아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했다. 나무 밑에 쉴 수 있는 평상이나 의자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편안한 느낌의 이런 나무를 보면 나무 아래서 잠시나마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 마을 사람들은 여기까지 찾아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나무 높이는 24m, 줄기 둘레는 8.1m, 수관은 동서로 26m, 남북으로 21m다. 나이는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가지는 약 2m 높이에서 둘로 갈라져, 전체적으..

천년의나무 2017.08.24

용소막성당 느티나무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중앙선 열차를 타고 고향을 오갔다. 서울로 갈 때 왼쪽 자리에 앉아 있으면 멀리 이 성당이 보였다. 나무가 있는 풍경이 평화스럽게 보여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까지 오래 바라보곤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대여섯 시간 동안 창밖을 스친 풍경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성당을 둘러싼 나무의 인상이 깊었다. 언젠가는 저 성당에 찾아가 봐야지, 하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만에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느티나무는 옛날의 느낌처럼 아름답고 단정했다. 오래된 성당 건물도 운치 있고 경건했다. 성당과 느티나무가 어울린 풍경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용소막성당은 시잘레 신부가 1915년에 완공하였으니 백 년이 넘었다. 전통적인 성당 건축의 ..

천년의나무 2017.07.20

행구동 느티나무

나무를 처음 봤을 때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올 때가 가끔 있다. 이 나무가 그랬다. 크고 오래된 것은 둘째치고, 모습이 예쁘고 단정하다. 쓰다듬어 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1.000년으로 되어 있다. 정말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나무줄기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무 높이는 22m, 줄기 둘레는 8.5m다. 나무가 자라는 주변 환경도 넓고 여유가 있다. 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두 개 마련되어 있다. 옆에는 어르신을 위한 게이트볼장이 있어서 운동 후 여기서 쉬기에 좋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기운 밝고 환한, 치악산 아래 원주시 행구동 오리골에 있는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7.07.14

주어리 느티나무

여주시 산북면 앵자봉 남쪽 산자락에 주어사지(走魚寺址)가 있다. 아랫동네 이름도 주어리다. 이름이 특이한데 이는 절을 창건한 설화와 관계가 있다. 한 스님이 절터를 찾던 중 잉어를 따라가 보라는 꿈을 꾸고 실제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기를 따라가다가 좋은 터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어사는 17세기 초에 세워진 절인데 천주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앵자봉 너머의 천진암과 이곳 주어사가 초창기 천주교 입문자들이 모였던 곳이다. 그래서 두 사찰 모두 폐사(廢寺)되는 운명을 맞았다. 주어사는 1776년 즈음에 권철신을 중심으로 강학이 이루어졌다. 주어사 아래에 있는 주어리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대략 400년 내외 된 나무들이다. 주어사를 오르내린 선각자들이 아마 이 나무 아래서 다리쉼을 했을 ..

천년의나무 2017.06.23

능내리 느티나무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이다. 이곳도 전에는 광주군에 속했다. 강에서 떨어져 예빈산 쪽으로 들어간 동네에 이 느티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 500년, 나무 높이 16m, 둘레 5m로 되어 있다. 그러나 눈짐작으로는 500년까지는 되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마을은 예쁜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와 있다. 나무는 마을 위쪽에 있는데, 옛날에도 여기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다. 그 흔적이 이제 나무로만 남아 있다.

천년의나무 2017.06.14

검천리 느티나무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 한강변에 있는 느티나무다. 팔당호의 물과 어울려 전망이 시원하다. 1973년에 준공된 팔당댐으로 강변 마을이 여럿 수몰되었다. 아마 이 느티나무도 옛날에 있었던 마을의 흔적일지 모른다. 느티나무의 모습에서 이 나무가 겪어야 했을 풍파가 읽힌다. 지금은 주변이 잘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휴식 공간도 넉넉하다. 고요한 물과 벗하며 이제는 평온한 노년이 되길 기원한다.

천년의나무 2016.12.20

단촌리 느티나무(2)

집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지만 8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보는 나무다. 천연기념물 273호로 고향의 자랑거리인 큰 느티나무다. 수령이 약 700년이고, 줄기 둘레는 10m에 이르는 거목이다. 중심에 서면 지름이 20m가 넘게 가지가 뻗어 있어 하늘을 다 가린다. 탄탄하고 균형 잡힌 외형에 생육 상태도 무척 양호하다. 단촌리의 정자나무로 매년 음력 8월 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 밭에서 몇 사람이 일할 뿐 동네는 조용했다. 700년 전이면 조선이 건국된 시기다. 인생 백 년에도 수많은 풍파를 겪는데 이 나무는 얼마만 한 시련을 견뎌내고 이런 거인이 되었을까. 그러면서 수십 세대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뛰어놀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

천년의나무 2016.07.13

토성 느티나무(2)

집 부근에 두고도 이제야 알아보다니, 등잔 밑이 어두운 게 맞다. 성년기에 접어든 듯한 이 느티나무는 부챗살처럼 펼쳐진 균형 잡힌 외형이 아름답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단아한 모양새다. 이것이 곱게 자란 느티나무의 전형적인 외모일 것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참 곱다!" 하고 감탄한다. 겨울에 볼 때보다 신록의 잎으로 단장한 모습이 더 예쁘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 목록에 추가해야겠다.

천년의나무 2016.04.27

남한산성 남문 느티나무(2)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에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했다. "옛 터를 따라 남한산성을 다시 쌓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시대의 주장성이 있던 곳이라는 게 정설이다. 2년 간의 공사 끝에 광주목이 남한산성으로 이전했고, 행궁도 완성되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 대에 다시 증축 공사를 했다. 길이 약 7.5km의 주 성곽과 외성, 옹성 등으로 되어 있고 네 개의 성문이 있다. 그중에서 한양을 오가는 주 통로가 남문이었다. 지금은 아래로 터널이 뚫렸다. 남문 앞에는 네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 3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나무들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문으로 허둥지둥 도망 오던 광경을 본 나무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

천년의나무 2016.02.27

토성 느티나무

할머니와 엄마 뒤를 따라갔다. 머리에 보따리를 인 하얀 행렬이 마을을 나섰다. 기찻길을 걷고 개울을 건너고, 사과 과수원 사잇길을 한참 걸으면 장터가 나왔다. 사람 북적이고, 온갖 물건과 구경거리가 있는 장날이 아이들은 좋았다. 지나는 길에 토성 마을이 있었다.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었을 것이다. 오고 갈 때 잠시 발쉼을 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50여 년 전 풍경을 잠시 회상해 본다. 공작이 나래를 편 듯한 느티나무가 그 자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6.02.15

대불리 느티나무

대불리(大佛里)는 진안 운장산 자락에 있다. 표지석에는 신기마을로 되어 있다. 아마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 본래 이름이 신기리였을 것이다. 이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다. 키는 17m, 허리둘레는 4.3m다. 수령은 200년 정도인데 생기가 넘친다. 늘씬하고 호쾌하게 생겼다. 나무 주위에는 넓은 공터를 두고 밑에는 반원형의 평상을 깔아놓았다. 도로에 인접한 게 흠이긴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는 그만이다. 나무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천년의나무 2015.10.18

신양리 느티나무

진안군 주천면을 지나다가 만난 느티나무다. 55번 국도변에 있다. 마을은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는데 느티나무 홀로 외롭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집이 있었을 법 하건만 도로 바로 옆이라 뒤로 물러났을지 모른다. 이 나무는 수령이 400년 정도 되었고, 높이는 27m, 줄기 둘레는 2.9m다. 보호수임을 알리는 표지석 위에 사탕과 감, 밤이 놓여 있다. 아마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정성으로 바친 것이리라. 노거목을 대하는 마음이 홍시처럼 곱다.

천년의나무 2015.10.16

호압사 느티나무

서울 금천구 시흥동 삼성산 자락에 있는 호압사(虎壓寺)는 조선 개국과 더불어 세워졌다. 한양에 궁궐을 지을 때 관악산의 불 기운과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위협이었다고 한다.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산의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창건한 절이 호압사다. 절 이름에 그런 의도가 분명이 드러나 있다. 경내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창건할 때 심었다면 수령은 500년이 넘었을 것이다. 안내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나무 줄기는 많이 상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지만 푸른 잎만은 싱싱하게 피워내고 있다. 키는 각각 11m, 7m, 줄기 둘레는 3.6m, 4.2m다.

천년의나무 2015.09.08

서울대공원 고사목

나무는 죽어서도 당당하다. 위엄을 잃지 않는다. 사람의 사체는 부패하면서 악취를 풍기지만, 나무는 향기를 낸다. 죽은 몸통은 온갖 곤충과 미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나무는 위대한 존재다. 서울대공원이 있는 자리는 옛날에는 과천면 막계리라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이 나무 앞에 떡을 해놓고 제사를 지내며 복을 빌었다. 그런데 1984년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떠나고 나무만 남게 되었다. 그마저 2010년 여름에 태풍 곤파스로 쓰러져 결국은 죽고 말았다. 지금은 그 형해만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무엇인가. 나무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영혼은 우주를 감싸며 ..

천년의나무 2015.08.18

부석사 느티나무

서산 부석사(浮石寺)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는 계획적으로 식수한 듯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령도 다양한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나무 절'이라는 인상이 우선 든다. 영주 부석사와 닮은 듯 하면서 다르다. 의상대사와 선묘 이야기 전설은 두 절이 똑 같다. 양쪽 다 부석(浮石)이 있다. 절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시원하다. 그러나 바닷가에 있는 서산 부석사가 전설에는 더 어울린다.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에는 당나라를 마주하던 이곳이 적지였을 것이다. 절 뒤가 도비산(島飛山)이다. 야트막해서 정상까지 1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다. 가는 길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에는 가벼운 산행을 겸해 찾아오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31

남한산성행궁 느티나무(2)

남한산성 행궁 안에 있는 느티나무다. 두 그루가 나란히 있는데 가지가 많이 상해서 늘씬한 키다리가 되었다. 수령은 200년 가까이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미루어 짐작컨대 전에는 더 많은 느티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나무들이 행궁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새로 복원한 남한산성 행궁이 썰렁하게 보이는 이유는 고목의 부재 탓이 아닌가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16

침괘정 느티나무(2)

남한산성 행궁을 비스듬히 내려다 보는 곳에 있는 느티나무다. 옆에는 '침괘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과정(枕戈亭)'이라 했는데 중간에 이름이 달라졌다. 누워서도 창을 들고 있다는 뜻인가, 무기 제작이나 보관과 관련된 곳이다. 산성마을에서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어 사람들이 한 번씩 눈을 주고 가는 나무다. 침괘정을 고쳐 지을 때 주변에 심은 나무가 아니였던가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16

서벽리 느티나무

독립 의병 활동과 관계된 느티나무다. 1908년(순종 2년) 5월 18일, 변학기 외 300 의병은 이곳 30여 그루 느티나무를 은신처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에게 화승총 공격을 가하여 40여 명을 생포하고 나머지는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뒤에 일본 헌병대는 자신들이 참패하였던 쓰라린 경험을 지우기 위해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으나, 성황당에 붙어 있던 한 그루는 신목이라 하여 반쪽만 끊어가고 나머지는 남겨둔 게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서벽초등학교 구내에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