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209

남한산성 남문 느티나무(2)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에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했다. "옛 터를 따라 남한산성을 다시 쌓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시대의 주장성이 있던 곳이라는 게 정설이다. 2년 간의 공사 끝에 광주목이 남한산성으로 이전했고, 행궁도 완성되었다.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 대에 다시 증축 공사를 했다. 길이 약 7.5km의 주 성곽과 외성, 옹성 등으로 되어 있고 네 개의 성문이 있다. 그중에서 한양을 오가는 주 통로가 남문이었다. 지금은 아래로 터널이 뚫렸다. 남문 앞에는 네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 3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나무들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문으로 허둥지둥 도망 오던 광경을 본 나무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

천년의나무 2016.02.27

토성 느티나무

할머니와 엄마 뒤를 따라갔다. 머리에 보따리를 인 하얀 행렬이 마을을 나섰다. 기찻길을 걷고 개울을 건너고, 사과 과수원 사잇길을 한참 걸으면 장터가 나왔다. 사람 북적이고, 온갖 물건과 구경거리가 있는 장날이 아이들은 좋았다. 지나는 길에 토성 마을이 있었다.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었을 것이다. 오고 갈 때 잠시 발쉼을 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50여 년 전 풍경을 잠시 회상해 본다. 공작이 나래를 편 듯한 느티나무가 그 자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6.02.15

대불리 느티나무

대불리(大佛里)는 진안 운장산 자락에 있다. 표지석에는 신기마을로 되어 있다. 아마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 본래 이름이 신기리였을 것이다. 이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다. 키는 17m, 허리둘레는 4.3m다. 수령은 200년 정도인데 생기가 넘친다. 늘씬하고 호쾌하게 생겼다. 나무 주위에는 넓은 공터를 두고 밑에는 반원형의 평상을 깔아놓았다. 도로에 인접한 게 흠이긴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는 그만이다. 나무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천년의나무 2015.10.18

신양리 느티나무

진안군 주천면을 지나다가 만난 느티나무다. 55번 국도변에 있다. 마을은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는데 느티나무 홀로 외롭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집이 있었을 법 하건만 도로 바로 옆이라 뒤로 물러났을지 모른다. 이 나무는 수령이 400년 정도 되었고, 높이는 27m, 줄기 둘레는 2.9m다. 보호수임을 알리는 표지석 위에 사탕과 감, 밤이 놓여 있다. 아마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정성으로 바친 것이리라. 노거목을 대하는 마음이 홍시처럼 곱다.

천년의나무 2015.10.16

호압사 느티나무

서울 금천구 시흥동 삼성산 자락에 있는 호압사(虎壓寺)는 조선 개국과 더불어 세워졌다. 한양에 궁궐을 지을 때 관악산의 불 기운과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위협이었다고 한다.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산의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창건한 절이 호압사다. 절 이름에 그런 의도가 분명이 드러나 있다. 경내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창건할 때 심었다면 수령은 500년이 넘었을 것이다. 안내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나무 줄기는 많이 상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지만 푸른 잎만은 싱싱하게 피워내고 있다. 키는 각각 11m, 7m, 줄기 둘레는 3.6m, 4.2m다.

천년의나무 2015.09.08

서울대공원 고사목

나무는 죽어서도 당당하다. 위엄을 잃지 않는다. 사람의 사체는 부패하면서 악취를 풍기지만, 나무는 향기를 낸다. 죽은 몸통은 온갖 곤충과 미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나무는 위대한 존재다. 서울대공원이 있는 자리는 옛날에는 과천면 막계리라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이 나무 앞에 떡을 해놓고 제사를 지내며 복을 빌었다. 그런데 1984년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떠나고 나무만 남게 되었다. 그마저 2010년 여름에 태풍 곤파스로 쓰러져 결국은 죽고 말았다. 지금은 그 형해만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무엇인가. 나무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영혼은 우주를 감싸며 ..

천년의나무 2015.08.18

부석사 느티나무

서산 부석사(浮石寺)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는 계획적으로 식수한 듯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령도 다양한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나무 절'이라는 인상이 우선 든다. 영주 부석사와 닮은 듯 하면서 다르다. 의상대사와 선묘 이야기 전설은 두 절이 똑 같다. 양쪽 다 부석(浮石)이 있다. 절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시원하다. 그러나 바닷가에 있는 서산 부석사가 전설에는 더 어울린다.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에는 당나라를 마주하던 이곳이 적지였을 것이다. 절 뒤가 도비산(島飛山)이다. 야트막해서 정상까지 1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다. 가는 길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에는 가벼운 산행을 겸해 찾아오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31

남한산성행궁 느티나무(2)

남한산성 행궁 안에 있는 느티나무다. 두 그루가 나란히 있는데 가지가 많이 상해서 늘씬한 키다리가 되었다. 수령은 200년 가까이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미루어 짐작컨대 전에는 더 많은 느티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나무들이 행궁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새로 복원한 남한산성 행궁이 썰렁하게 보이는 이유는 고목의 부재 탓이 아닌가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16

침괘정 느티나무(2)

남한산성 행궁을 비스듬히 내려다 보는 곳에 있는 느티나무다. 옆에는 '침괘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과정(枕戈亭)'이라 했는데 중간에 이름이 달라졌다. 누워서도 창을 들고 있다는 뜻인가, 무기 제작이나 보관과 관련된 곳이다. 산성마을에서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어 사람들이 한 번씩 눈을 주고 가는 나무다. 침괘정을 고쳐 지을 때 주변에 심은 나무가 아니였던가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16

서벽리 느티나무

독립 의병 활동과 관계된 느티나무다. 1908년(순종 2년) 5월 18일, 변학기 외 300 의병은 이곳 30여 그루 느티나무를 은신처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에게 화승총 공격을 가하여 40여 명을 생포하고 나머지는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뒤에 일본 헌병대는 자신들이 참패하였던 쓰라린 경험을 지우기 위해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으나, 성황당에 붙어 있던 한 그루는 신목이라 하여 반쪽만 끊어가고 나머지는 남겨둔 게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서벽초등학교 구내에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7

한수정 느티나무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한수정(寒水亭)이 있다.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권벌(1478~1548)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으로 '한수정'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운곡천과 이웃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수정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되었다. 줄기 아랫부분만 남아 있어 기형적인 모양을 한 괴목이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 묘하게 흙담이 나무를 지나가서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천년의나무 2014.11.25

야탑동 느티나무

서울에 오갈 때면 이용하는 전철역이 야탑역이다. 역 광장에 사람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분당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였을 것이다. 다행히 안내문에 이 나무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원래 이 자리에 큰 전나무가 있었는데 바람에 쓰러져 죽자 당시 오야소 주민들이 인근 심의진 묘에 있던 느티나무를 옮겨 심었고, 이후 재난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정자목으로 삼았다는 사연이다. 현재 야탑동이라는 지명은 일제에 의해 명명된 것이고, 본래 마을 이름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야소(梧野所)였다고 한다. 오동나무가 많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오야소의 '야'자와 부근 탑골의 '탑'자를 따서 야탑동이 되었다. 야탑보다는 오야소라는 이름이 훨씬 멋지게 들린다. 도심 빌딩에 갇혀 답답해 보이기는 하지..

천년의나무 2014.09.09

도곡리 느티나무

제천시 백운면 도곡1리(道谷里, 도장골)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다. 세 그루가 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수령 400년이 된 보호수다. 마치 두 자식과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왠지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느티나무 세 그루 때문이다. 만약 나무가 없었다면 입구가 굉장히 황량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지나며 포근한 모성적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늘 함께 있으니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정자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6.22

동화사 느티나무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대로 절 주변에는 오동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심지대사 오동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큰 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찾지 못하고, 대신 절 입구에서 이 느티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에는 '인악대사(仁嶽大師)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인악대사에 대한 안내문 설명은 이렇다. '법명이 의소(義沼)인 대사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스승인 벽봉(碧峰) 스님으로부터 불교 경전을 배우고 비슬산 등에서 불경을 설파하다가 동화사에 머물렀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용주사를 주관하는데 뽑혔으며, 여러 글을 지어 바치니 정조가 크게 감탄하여 홍제(弘濟)라는 호를 내렸다. 1796년 용연사 명적암에서 세수 51세로 입적하였다.' 대구에서는 고목..

천년의나무 2014.05.17

능원리 느티나무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어서 동네 이름에 '능(陵)'이 붙었다. 용인시 모현면에 있다. 태종 6년(1406)에 선생의 묘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긴 뒤 후손들이 묘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이래로 능원리는 영일 정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이 느티나무 옆에는 선생의 후손 중 한 분의 효자비각이 있다. 주변이 어수선하긴 하지만 느티나무는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로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우뚝 서 있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4m다. 수령은 250년가량 되었다.

천년의나무 2014.05.03

거돈사지 느티나무

천 년의 거목이다.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다.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고 고려 초기에 번창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넓은 절터에는 삼층석탑만이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다. 폐사지 입구 축대 가장자리에 이 느티나무가 있다. 예전에는 절을 찾아오는 순례객을 제일 먼저 맞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이 무너진 지 400년이 넘었다. 수많은 인간의 사연들이 허공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본 느티나무의 심정은 어떠할까. 느티나무 옆에 서 있으면 덧없는 생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흥하고 쇠하는 만물의 이치를 온몸으로 터득한 성자처럼 느티나무는 묵묵히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4.04.15

진관동 느티나무

수령 200년 전후의 느티나무 네 그루가 모여 있다. 주변은 '은평 한옥마을'을 조성하기 위한 넓은 공터다. 진관사 들어가는 입구인데 집터로는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몇 년째 빈터로만 남아 있는 걸 보니 사업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오래된 느티나무로 보아 옛날에는 이곳에 큰 마을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진관사가 흥했던 시절이었다면 사하촌이 있었을 법도 하다. 새 주택단지를 만들겠다고 옛 흔적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쓸쓸한 느티나무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4.03.31

경희궁 느티나무

경희궁공원에 있는 느티나무로 생김새가 흥미롭다. 나무줄기의 가운데는 사라졌고 한쪽 껍질 부분만 남았다. 평면으로 된 2차원 모양이어서 기이하게 느껴진다. 철제 버팀대로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다. 안내문에는 종로구의 아름다운 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아름답다기보다는 안스러운 측면이 강하다. 수령은 400년가량 되었다. 다시 복원되고 있는 경희궁 고난의 세월을 이 나무가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4.03.02

흥국사 느티나무

경기도 고양 노고산 자락에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전에는 흥성암이었는데 영조가 나라를 흥하게 하는 사찰이라며 흥국사로 이름을 고치고 직접 대웅전 현판을 내렸다 한다. 사찰 경내에 수령이 45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줄기가 45도로 기울어져 있는데 버팀대 없이 지탱되고 있는 게 대단하다. 속도 거의 썩어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더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저렇게 삽과 빗자루를 기대 놓듯 무심하게 대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과잉 보호가 도리어 나무의 자연성을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년의나무 2014.01.12

오관리 느티나무

홍성군청 마당에 있다. 이곳은 홍주관아(洪州官衙)가 있던 자리로 홍주성이 둘러싸고 있다. 주위에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산재해 있는데 대표적인 게 이 두 그루의 나무다. 이 나무는 고려 공민왕(1358년) 때에 심었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650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전해오는 전설도 많다. 고을에 액운이 낄 것 같으면 느티나무가 밤을 새워 울었고, 이때마다 관리는 서둘러 예방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역대 목민관들이 홍주에 부임하게 되면 제일 먼저 이 나무 아래에 제물을 차려 놓고 군민의 무고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는데 그 제단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아마 홍성을 대표하는 나무인 것 같다. 나무 높이는 각각 17m, 11m이고, 두 나무가 덮고 있는 길이만도 40m가 된다. 오누이처럼 다정한 모습이 보기..

천년의나무 2013.11.11

둔리 느티나무

수덕사로 가기 위해서는 수덕고개를 지나야 하는데, 고갯마루에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300년 가까이 된 나무들이다. 이곳에 예전에는 주막이 있었음 직한 위치다. 지나던 길손이 이 느티나무 아래서 막걸리를 마시며 다리를 쉬었으리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에 육괴정(六槐亭)이 있다는 안내문도 있다. '괴(槐)'가 원래 회화나무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느티나무의 뜻으로 쓰인 것 같다. 느티나무 옆에는 지금 현대식 2층 상가가 들어서 있지만 차라리 옛날 주막집을 복원해 놓는다면 더 나을 것 같다. 음식점 네온사인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천년의나무 2013.11.04

수덕사 느티나무

수덕사(修德寺) 느티나무에 가을물이 들고 있다. 대웅전 앞 마당 좌우에 두 그루가 있는데 수령이 300년 정도 된 나무들이다. 10여 년 전 수덕사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을 때는 절 분위기가 썰렁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고풍스런 분위기를 되찾았다. 오래된 이 두 그루 느티나무 덕분이기도 하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이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미가 독보적이다. 고려 충렬왕(1308) 때 지은 건물이다. 이 대웅전 기둥도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11.03

명재고택 느티나무

명재고택(明齋古宅)은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의 노성산 남쪽 자락에 있다. 명재 윤증은 가까이 있는 다른 마을에서 살았다고 하나, 말년 쯤인 1700년대 초에는 이곳으로 옮기지 않았나 추정한다. 명재고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한옥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집이다. 명재고택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그중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400년 정도 되었으니 이 집의 역사와 함께 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명재고택이 제일 멋지다. 많은 항아리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겹고 다정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천년의나무 2013.10.29

하련리 느티나무

하련리는 전북 고창군 해리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다. 하련리에서 청용산을 지나 선운사로 연결되는 옛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을 뒤 산자락을 살폈으나 길을 찾지는 못했다. 길 흔적은 보였으나 사람 발길이 끊어진 탓인지 풀만 무성해서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 느티나무는 하련리의 당산나무다. 정월 대보름이면 한 해의 액운을 물리쳐 줍시사고 이 나무에 기도했다고 한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런 전통도 다 사라졌을 것이다. 수령은 300여 년이 되었고, 키는 20m, 줄기 둘레는 3.6m다.

천년의나무 2013.10.21

남한산성행궁 느티나무

작년에 남한산성 행궁이 완전 복원되었다. 병자호란 시 인조가 피난했고, 그 뒤에도 여러 임금이 순행 때 묵어간 곳이다. 전에는 행궁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민가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남한산성 호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궁이 옛 모습을 되찾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행궁 주변에 보호수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각각 300년, 400년 된 느티나무다. 나이로 볼 때 행궁의 역사와 함께하는 나무들이다. 둘 중에서 400년 된 느티나무는 줄기가 통째로 썩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고, 가지는 철제 지지대로 버텨 놓았다. 그래도 여름에 보는 나뭇잎만은 싱싱하다. 최근에 복원된 새 건물의 생뚱함을 이 고목들이 그나마 중화시켜 준다. 이 느티나무 그늘에 앉으니 1636년의 현장이 안타깝게 그려졌..

천년의나무 2013.08.17

남한산성 연무관 느티나무

남한산성 연무관(演武館)은 군사 훈련을 위하여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세워졌다. 옆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 운동장이 훈련하던 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무관 주변에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둘 다 수령이 500년 내외로 안내문에는 적혀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두 나무는 수령 차이가 꽤 나는 것 같다. 첫 번째 느티나무는 흙을 찾아 뻗어나가는 뿌리의 모양이 그로테스크하다. 아무튼 500살이 되었다면 병자호란의 현장도 이들 느티나무는 지켜보았다는 얘기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08.13

세간리 현고수

현고수(懸鼓樹)란 '북을 매단 나무'란 뜻으로 선조 25년(1592) 4월 13일에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41세 유생이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에서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전해 온다. 나무는 북을 매달기 좋게 줄기가 꺾어져 있다. 이런 역사적 의미로 인하여 현고수는 2008년에 천연기념물 493호로 지정되었다. 이 느티나무의 나이는 500여 년으로 추산되며,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8.4m다. 생김새부터가 범상치 않은 느티나무다. 해마다 열리는 의병제전 행사를 위한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한다.

천년의나무 2013.06.10

이사리 느티나무

줄기 속은 텅 비었고 둘레만 남아 있다. 그래도 큰 몸집을 지탱하면서 초록잎을 무성히 피웠다. 나무 아래 서니 수관이 부채살처럼 넓고 환하다. 고목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 느티나무의 키는 13m, 줄기 둘레는 5.6m다. 안내문에는 나이가 220살로 나와 있다. 그런데 특별한 모양 때문인지 훨씬 더 쳐주고 싶은 마음이다. 경북 예천군 개포면 이사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3.05.06

하회마을 느티나무(2)

하회마을에 들를 때면 이 나무는 꼭 보고 간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하회마을의 중심 나무다. 이곳에 삼신당(三神堂)이 있는데 마을에 있는 세 사당 중 하나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다음 날 아침에는 여기서 제를 올린다. 그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우리 민속에서 삼신할미는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조상신이다.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삼신께 비는 모습을 어릴 때 보았다. 하회마을의 삼신당도 그런 기능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외지인이 들락거리는 지금은 나무 둘레에 온갖 소원을 적은 흰 종이가 빼곡하다. 삼심할미가 계신다면 아르바이트생이라도 고용해서 저 민원을 처리해야 할 것 같다. 거대한 나무의 밑동을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천년의나무 2013.05.04

효종왕릉 느티나무

효종왕릉 재실 뜰에는 회양목 외에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 재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관리하시는 분이 말하길 잎이 돋아나면 더 멋있다고 하신다. 특히 첫눈이 내리면 최고로 환상적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효종왕릉 재실(齋室)은 여느 가정집과 비슷하다. 아담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하다. 뜰에 있는 이 느티나무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살린다. 옆에 있는 세종왕릉인 영릉과 달리 이곳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늘 조용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느티나무의 변신을 지켜보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3.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