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18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병원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의학이라는 영역 너머의 것이 있다. 치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제도가 없어서 죽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10년간 허무하게 떠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지은이인 내과 전문의 김현지 의사는 의료 현장에 있으면서 의료 시스템 뒤에 숨겨진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 가난과 건강의 불평등에 주목했다. 그가 '정책하는' 의사로 나선 배경이다.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올바른 의료 제도를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입법 활동을 돕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이라고 한다. 는 지은이가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죽음과 삶을 통해 인지하게 된 우리 사..

읽고본느낌 2024.07.26

어느 하루

치과 진료를 위해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2024년 5월 13일, 비발디의 '사계'가 울려퍼지는 듯한 화창한 봄날이었다. 병원에 예약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여 가까이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요사이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 때문에 서점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중고서적에서 풍기는 냄새가 고향을 찾은 것처럼 아늑했다.  입구에 있는 '당신은 책 중독자인가?'라는 게시문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책 중독'이란 책 수집벽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책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못 배기는 때가 나에게도 있었지.  올초에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 단골 치과에서는 임플란트 대신 브릿지를 권했다. 그래서 옆 이빨 3대를 신경치료 한 뒤 함께 브릿지 시술을 ..

사진속일상 2024.05.14

코마

로빈 쿡의 의학 스릴러 소설이다. 읽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내용인데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라 예전에 접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이 아니라면 영화를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흥미롭게 읽었다. 뇌 기능이 정지돤 혼수상태를 '코마(coma)'라고 한다. 총명한 의대생인 수잔 윌러가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에 연수를 갔다가 코마에 빠진 환자를 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과 동갑인 젊은 처녀가 자궁 이상 출혈로 소파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코마 상태에 빠졌고, 한 청년이 무릎 이상으로 수술을 받다가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병원 자료를 살펴보던 수잔은 이런 사례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을 발견한다. 는 병원측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마지막에는 수잔 자신도 코마의 대상이 되어 수술대..

읽고본느낌 2024.03.10

앓던 이가 빠지다

열 달 전부터 앞니 하나가 시큼거렸다. 신경이 쓰였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한 정도여서 치과에 가지 않고 버티며 지냈다.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도 저절로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한때는 잊어버릴 정도로 상태가 좋아지기도 했다. 이번 설날에 조상님 산소를 찾아 인사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말썽을 부리던 앞니가 끝을 맞은 것이다. 손가락으로 당기니 쑥 하고 빠져나왔다. 저절로 수명을 다하며 자연사한 셈이었다. 이 정도 되기까지 참고 견뎠으니 어지간히 미련하다는 핀잔을 들었다. 진즉에 병원에 갔다면 빠른 조치가 가능하고 고생도 덜 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워낙 게으르고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허나 병원에 간들 뽑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 테니 약..

길위의단상 2024.02.13

병원에 안 가려는 이유

일주일 전부터 오돌토돌한 붉은 반점이 팔에 돋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퍼지더니 사흘째에는 다리에도 나타났다. 원인은 모르지만 두드러기인 것 같다. 우선 보기에 엄청 징그럽다. 다행히 간지러움은 심하지 않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 금방 낫겠지만 그냥 견디기로 한다. 며칠 더 고생하고 병원 신세를 안 지는 쪽을 나는 선택한다. 한 달 전에는 앞니 하나에 이상이 생겼다. 건드리면 아파서 양치질도 피해서 했다. 음식 먹는데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치과에 가는 대신 기다려보기로 했다. 날이 지나니 통증이 가라앉고 많이 진정되었다. 지금도 정상이 아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아마 치과에 갔다면 깔끔하게 임플란트를 하자고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이빨로 가능하면 버틸 수 있는..

참살이의꿈 2023.07.04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

읽고본느낌 2022.11.28

제법 안온한 날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이 책에서 건진 한 문장이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글쓴이는 수많은 죽음과 불행을 지켜보며 인간은 조건이 아무리 척박하더라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러이러하니까 타인이 불행하다고 재단하는 것은 나의 오만일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은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중인 남궁인 님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을 감성적인 필체로 보여주는 책이다.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연들이 많다. 저자는 살벌한 응급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여리고 따스한 분인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곁에서 접하며 그는 삶과 죽음에..

읽고본느낌 2021.07.11

무서운 의학사

인류가 지금과 같은 의학 지식과 의료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해악을 끼친 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현대 의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겠다. 는 '무서운 병', '무서운 사람들', '무서운 의사', '무서운 의료'의 네 파트로 되어 있으며 짧은 에피소드로 소개하는 이재담 작가가 쓴 서양 의학사다. 책에 소개된 몇 개를 골라본다. # 1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1194~1250)는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으로 유명한 왕이었다.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아 주위 사람을 곤란하게 했다. 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왕은 의..

읽고본느낌 2021.06.28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김범석 선생이 쓴 책이다. 암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만난 여러 죽음과 사연을 소개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성찰하게 한다. 부제가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Hodie Mihi, Cras Tibi" - 로마 시대 때 공동묘지 입구에 적혀 있었다는 글귀인데,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갈래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끝은 똑같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이 내일 나의 죽음이 된다. 타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을 대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며, 그래서 너무나 절절이 가슴을 울린다. 여러 사례 중에서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을 맞은 어느 할머니의..

읽고본느낌 2021.06.24

대상포진이어서 다행이다

첫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띵했다. 어제 밖에서 마신 술 탓이라 여겼다. 당구를 치고 기분이 좋아 친구들과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약간의 취기가 있었을 뿐 과하지는 않았다. 제일 먼저 코로나가 걱정되었다. 집에 손주도 와 있었다. 만약 코로나라면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둘째 날 머리 띵한 정도는 더 심해졌다. 얼굴 왼쪽 부분에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했다. 얼굴로 자꾸 손이 갔다. 흔한 감기 몸살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중풍의 전조증상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중풍이 오면 몸의 반쪽이 마비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보지만 집중이 잘 안 됐다. 다행히 손주는 오전에 떠났다. 다시 타이레놀과 쌍화탕을..

길위의단상 2021.04.21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무섭다. 누구나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잠잘 시간에 전화를 걸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밤에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화면을 보니 동생 이름이 떴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내려가서 닷새 동안 병실 지킴이를 했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어서 일주일 정도의 입원으로 퇴원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아흔이 되실 때까지 한 번도 입원해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을 정도로 강건하신 분이다. 퇴원 날짜를 받아 놓고 나는 농담 삼아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입원해 보는 경험도 했으니 감사하세요." 2인실에 있었는데 막바지에 옆 침대에 천하무적 환자가 들어왔다. 80대 할머니였는데 호통을 치면 간호사들이 꼼짝 못 했..

사진속일상 2020.09.26

텅 비었다

하필 이 시국에 이빨이 고장 났다. 진통제로 버티지만 머리까지 욱신거리며 아프다.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려 했으나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 이상이 나타난 건 서너 달 전이었다. 딱딱한 걸 씹으면 통증이 오는 정도였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전에 다른 이빨도 그런 식으로 몇 달 참았더니 증상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병원에 가지 않은 채 나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웬걸, 나흘 전에 갑자기 통증이 찾아왔다. 아프면 어느 부위나 고통을 주지만 치통도 만만치 않다. 심해졌다 약해졌다 주기적으로 괴롭힌다. 죽으로 연명하면서 음식물 온도도 잘 맞춰야 한다. 조금만 뜨겁거나 차가워도 안 된다. 인상 쓰면서 밥을 먹어야 하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단골 치과는 상가 건물 3..

길위의단상 2020.03.10

입원실 유감

메르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어제까지 사망자가 19명, 확진자가 154명이고, 격리자는 5천 명이 넘었다. 첫 환자가 메르스 증상을 보인지 한 달 동안의 피해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하고, 교통사고로 20명씩 죽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하지만 전염병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의학에 무지하던 시절, 한 번 창궐하면 수백만 명씩 죽어 나갔던 전염병은 공포였을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전염성이 강해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병실 문화를 꼽는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고, 입원실은 방문하는 외부인으로 북적인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발생 전이지만 지난달에 열흘간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이 ..

길위의단상 2015.06.17

퇴원

폐렴으로 입원한 지 열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는 밤낮없이 잠만 자고 있다.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집에 오니 마음은 편하다. 병실 생활은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무슨 검사를 그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CT 촬영은 어쩔 수 없다 해도 ,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각각 다섯 번씩이나 받았다. 의사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래 오랜만에 병원 신세를 졌다. 병실은 3인실에 있었다. 독실은 부담이 너무 크고, 다인실은 신경 쓰이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두려웠다. 서로 생활 스타일이 다른..

길위의단상 2015.05.08

입원

폐렴으로 입원 닷새째, 생각지도 않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증세가 나타난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기침이 심해지며 음식을 삼킬 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집 가까이 있는 병원에 왔다가 바로 갇혀 버렸다. 다행히 여기 와서는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라면 나흘 뒤쯤에는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담당 의사가 말한다. 지금은 몸이 아픈 것보다 병실 생활 자체가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려니 참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은 병고에 시달리는 인생의 괴로움이 늪처럼 고여 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5월의 신록이 찬란하다. 그러나 그 품에 안길 수 없다. 당장은 아쉽지만 그래도 넉넉히 참을 만하다. 이 병이 낫고 다시 땅에 설 때 햇빛은 환하고 숲..

길위의단상 2015.05.01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19년 동안 근무했던 지은이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좋은 죽음'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병원 중환자실은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가 격리 치료를 받는 곳이다. 보호자는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가 되고, 의식이 혼미한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의료적 처치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보호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지지만, 환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너무 괴로워 결국은 병원을 떠났다. 책에는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여러 사례가 실려 있다. 중환자실이라는 의료 현장에서 인간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뇌하는 내용이다. 중환자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공호흡기와 기관절개술을 사용한다. 호흡을 쉽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기..

읽고본느낌 2014.02.25

은행과 병원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은행과 병원이다. 은행 출입 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어쩌다 들르게 되면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다. 기계 앞에서 버튼을 누르든, 대기 번호표를 뽑은 뒤 불려나가든 마찬가지다. 은행은 거대한 컴퓨터 같다. 창구 직원도 컴퓨터 단말기의 한 키로 보인다. 컴퓨터가 계산해주는 숫자에 의해 내 생활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다. 무언가에 의해 내 삶이 조종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은행에 있으면 그냥 초라해진다.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은행을 들락거리지 않으려 한다. 현대식 병원도 그렇다. 퇴직을 한 뒤 어쩔 수 없이 D 병원에서 장 내시경 검사를 받게 되었다. 최신 시설을 갖춘 전문병원이었는데 접수에서부터 검사까지 겉으로는 친절하고 완벽했다. 그러나 너무 쓸쓸하고 공..

참살이의꿈 2011.06.27

내시경 검사를 받다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게 이상 신호가 왔다.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고 술과 커피도 못 하니 사는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겸하여 대장까지 체크해 보기로 했다. 소화기관이 자주 탈 나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웠다. 이때껏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은 것은 건강에 대한 자신보다는 큰 병이 드러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혹 악성종양이 있다고 하면 어쩌지? 시한부 삶을 선고받으면? 최악의 상황에 대해 혼자 상상하며 사뭇 심각해지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산골로 잠적해야지, 낭만적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제발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면, 아이들도 다 컸고 아내도 먹고 살 만큼은 되니 남은 가족에게 덜 미안해서 다행..

사진속일상 201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