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10

동주

구효서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제목만 보고 윤동주 시인이 직접적인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겐타로와 요코라는 제삼자를 통해 윤동주를 그린 소설이었다. 윤동주, 겐타로, 요코 셋은 두 세계 사이에 불안하게 서 있는 경계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겐타로는 10대가 되어서야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라진 친구를 찾아다니며 윤동주의 유고를 만나게 되고, 또 다른 주인공인 요코라는 인물을 기록으로 마주하게 된다. 요코는 아이누인이었지만 일본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하다가 역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여자다. 윤동주가 동경에서 하숙을 할 때 요코는 하숙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윤동주를 가까이서 보았다. 요코의 추억을 톻해 윤동주가 어떤 인물인지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읽고본느낌 2023.11.13

굴뚝 / 윤동주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굴뚝 / 윤동주 동생은 새집을 지으며 군불을 때는 방을 만들었다. 한쪽 벽으로 아궁이와 굴뚝이 있다. 어머니를 위해서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해 놓으신 나뭇더미가 있다. 오래된 나무는 한쪽에서 삭아간다. 이젠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취사와 난방을 전부 땔감으로 하던 시절에는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뒷산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았고, 어른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식 주택에서..

시읽는기쁨 2017.06.12

아우의 인상화 /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 아우의 인상화 / 윤동주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동생의 설은 대답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사람 꼴을 하고 있다고 다 사람이 아닐 것이다. 저 시대에도 그랬는데 요즘은 오죽할까. 염치를 모르는 인간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되었다. 영화 '동주'가 개봉되었다. 꼭 보러 가야겠다.

시읽는기쁨 2016.02.29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봄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윤동주는 일본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청년이 제국의 수도..

시읽는기쁨 2015.06.02

시인 동주

안소영 작가가 시인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책이다. 스물여덟에 이국의 감옥에서 숨진 시인의 슬픈 일생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1938년 용정을 떠나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해서부터 일본 유학 중 반체제범으로 2년 형을 살다가 194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대순으로 보여준다. 시대의 희생양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던 윤동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인이 살다간 시대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했다. 나라를 잃고 모국어로 시를 쓰지도 못하는 절망 속에서 시대의 아픔은 곧 시인의 아픔이었다. 시류에 영합했다면 자기 몸을 보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순수한 영혼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항하는 행동파는 아니었다. 어쩌면 관조적 자세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았..

읽고본느낌 2015.05.30

풍경(31)

흰 그림자.... 흑백필름을 현상하면 음영이 거꾸로 되어 나타난다. 거기에 빛을 비추어야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림자가 꼭 검어야 할 당위는 없다. 뒤집힌 세계 역시 하나의 세계다. 필름의 기억이 떠올라 재미삼아 음영을 바꾸어 보았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으로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

사진속일상 2014.03.24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

시읽는기쁨 2008.02.24

팔복 / 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 팔복 / 윤동주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의 슬픔의 무게는 얼마쯤 되었을까? 끝날 것 같지 않은 사무치는 슬픔에 잠겨있었을 시인의 여리고 순수한 심성이 안타까워서내 마음도 막막해진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지만, 슬픔은 뒤에 올 위로로 인하여 복된 것이 아니라, 슬픔 그 자체가 복되다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시류에 편승하고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기쁨과 행복이라면 그것은 저주받은 기쁨이며 행복일 것이다. 이 시가 ..

시읽는기쁨 2005.05.26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 윤동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이 한 구절에는 사람의 영혼을 뒤흔드는 마력이 숨어있다. 그러나 젊었던 날과 달리 지금은 '괴로와했다' '죽어가는 것' '사랑' 같은 말들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부끄럼 없는 삶이 거저 주어지지도 않거니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나이이다. 허나 이런 초월적인 삶을 꿈꾸는 것으로 나는 살고 있다. 내 영혼의 자양분은 거기서 나온다. 맑고 따스한 별빛이 비추인다.

시읽는기쁨 200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