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8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병원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의학이라는 영역 너머의 것이 있다. 치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제도가 없어서 죽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10년간 허무하게 떠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지은이인 내과 전문의 김현지 의사는 의료 현장에 있으면서 의료 시스템 뒤에 숨겨진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 가난과 건강의 불평등에 주목했다. 그가 '정책하는' 의사로 나선 배경이다.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올바른 의료 제도를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입법 활동을 돕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이라고 한다. 는 지은이가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죽음과 삶을 통해 인지하게 된 우리 사..

읽고본느낌 2024.07.26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이 책을 쓴 김선영 박사는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종양내과란 암환자가 찾아오는 곳이라 병원에서도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종양내과를 '암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을 돕는 곳'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부제가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이다. 지은이가 중3 때 아버지가 담낭암에 걸려 1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잃은 딸은 의사가 되었고, 환자의 죽음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은 아버지의 죽음을 복기하면서 지은이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의 사연 및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아버지의 죽음부터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음에도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조차 이해하지 ..

읽고본느낌 2024.06.29

코마

로빈 쿡의 의학 스릴러 소설이다. 읽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내용인데 오래전에 출판된 책이라 예전에 접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이 아니라면 영화를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흥미롭게 읽었다. 뇌 기능이 정지돤 혼수상태를 '코마(coma)'라고 한다. 총명한 의대생인 수잔 윌러가 보스턴 메모리얼 병원에 연수를 갔다가 코마에 빠진 환자를 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과 동갑인 젊은 처녀가 자궁 이상 출혈로 소파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코마 상태에 빠졌고, 한 청년이 무릎 이상으로 수술을 받다가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병원 자료를 살펴보던 수잔은 이런 사례가 수십 명에 이르는 것을 발견한다. 는 병원측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마지막에는 수잔 자신도 코마의 대상이 되어 수술대..

읽고본느낌 2024.03.10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

읽고본느낌 2022.11.28

제법 안온한 날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이 책에서 건진 한 문장이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글쓴이는 수많은 죽음과 불행을 지켜보며 인간은 조건이 아무리 척박하더라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러이러하니까 타인이 불행하다고 재단하는 것은 나의 오만일 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은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중인 남궁인 님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을 감성적인 필체로 보여주는 책이다.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연들이 많다. 저자는 살벌한 응급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여리고 따스한 분인 것 같다. 인간의 고통을 곁에서 접하며 그는 삶과 죽음에..

읽고본느낌 2021.07.11

무서운 의학사

인류가 지금과 같은 의학 지식과 의료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의사들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해악을 끼친 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현대 의학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겠다. 는 '무서운 병', '무서운 사람들', '무서운 의사', '무서운 의료'의 네 파트로 되어 있으며 짧은 에피소드로 소개하는 이재담 작가가 쓴 서양 의학사다. 책에 소개된 몇 개를 골라본다. # 1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1194~1250)는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으로 유명한 왕이었다.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납득하지 않아 주위 사람을 곤란하게 했다. 의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왕은 의..

읽고본느낌 2021.06.28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김범석 선생이 쓴 책이다. 암 환자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만난 여러 죽음과 사연을 소개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성찰하게 한다. 부제가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Hodie Mihi, Cras Tibi" - 로마 시대 때 공동묘지 입구에 적혀 있었다는 글귀인데,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갈래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끝은 똑같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이 내일 나의 죽음이 된다. 타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을 대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며, 그래서 너무나 절절이 가슴을 울린다. 여러 사례 중에서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을 맞은 어느 할머니의..

읽고본느낌 2021.06.24

우리 의사 선생님

청진기로 진찰하던 때가 인간적인 의료 기술의 마지막 시대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은 바로 그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일본의 오지 농촌에서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일하는 '이노'라는 의사가 있다. 이노는 주민들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마음이 통하는 인술을 편다. 주민들에게는 명의에 더해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는 가짜 의사다. 영화에서는 무슨 이유로 의사 노릇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의사 자격증이 없다. 어느날 이노가 사라지면서 그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잔잔하면서 따스한 영화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은 첨단의 의료 테크닉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믿음임을 보여준다. ..

읽고본느낌 2010.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