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3

어른의 일기

'어른이지만, 어른이기에, 어른이어서, 어른이라서' 일기를 써야 한다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책이다. 지은이인 김애리 작가는 스스로를 '일기 장인'이라고 소개한다. 열여덟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20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책 서두에는 이런 말이 실려 있다."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차근차근 기록해나가는 일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요."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일기의 한 형식이라면 내 일기도 20년이 넘었다. 그 전에 노트에 썼던 일기는 많이 사라졌고 일부만 남아 있다. 내 일기의 역사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그러므로 일기를 예찬하는 지은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일기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자신의 감정에 정..

읽고본느낌 2024.08.27

작별 일기

노약한 부모를 실버타운에 모신 뒤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3년(2016~2018)의 기록이다.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가 부제다.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면서 구술생애사 작가면서 딸인 최현숙씨가 썼다. 에는 부모가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일반적이며/특수한 과정이 애틋하면서 또한 담담하게 잘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특이하게 눈에 띄는 점이 작가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그리고 작가를 포함한 남매들의 지극한 효도와 우애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집 남매들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정성은 각별하다. 지은이는 2008년부터 가난한 노인을 돌보는 일을 맡아왔다. 그 경험이 본인 부모를 케어하는 과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

읽고본느낌 2021.11.19

아버지의 일기장

만화가 박재동 선생의 부친이 쓴 일기를 선생이 펴냈다. 선생의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건강 문제로 젊은 나이에 퇴직한 뒤 아내와 함께 만화방, 문방구, 떡볶이 장사를 하며 자식 셋을 길렀다. 전 생애가 매일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의 연속이었다. 부친은 1971년부터 세상을 떠난 1989년까지 매일 일기를 썼는데, 질병의 고통, 아내에 대한 연민, 자식에 대한 부정(父情),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의 회한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선생의 부친은 특별한 것 같지만, 일반적인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겉으로는 엄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가 알았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선..

읽고본느낌 2014.05.28

일기 /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 일기 / 안도현 고맙게도 지인으로부터 안도현 시인이 직접 서명한 시인의 근작 시집 을 선물 받았다. 시인이 서문에서 쓴 대로 '말과 문체를 갱신해 또다른 시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는 시집이다. 시인의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읽기 편하면서 가슴에 쉽게 감동이 닿았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를 이리..

시읽는기쁨 2012.11.11

역사 앞에서

'한 사학자의 6.25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역사학자 김성칠(金聖七) 선생이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인공 치하의 서울에서 지내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일기문이다. 서울대 사학과 조교수로 있었던 선생은 피난을 가지 않고 정릉 집에 머물며 동란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중립적 입장에 섰던 선생은 역사학자답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사료로서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적으신 것 같다.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념의 광기에 희생되는 것은 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이다. 다만 그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희생자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6.25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고,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벌써 62년이 지났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남북간에 적..

읽고본느낌 2012.06.25

착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돌프 페르로엔이 쓴 ‘2백 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14살 마리아의 일기 형식으로 된 작은 책이다. 1시간 안에 읽을 수 있지만 책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마리아의 부모는 마리아가 열네 살이 되자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준다. 마리아는 멋진 선물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제일 놀라운 선물은 어린 노예 소년 꼬꼬와 채찍이다. 꼬꼬는 접시에 담겨져 식탁에 올려진다. 이 책의 시대 배경은 19세기이고, 마리아는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네델란드령 가이아나에서 대규모 커피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의 외동딸이다. 천진난만한 소녀 마리아와 가족들이 노예를 경멸하고 인종적 우월감에 젖어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백인들에게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으..

읽고본느낌 2009.07.03

아미엘의 일기

고독한 철학자 아미엘이 40여 년 동안 쓴 일기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한 개인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세속적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영혼의 평화를 얻고자 했다. 맑은 영혼을 가진 그의 일생은 소박했고 청빈했다.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우울한 측면도 있었는데 그것은 일기의 기본 색조로 나타나서 일기를 읽는 내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미엘에게 있어 일기는스스로 말한 대로고독한 인간의 위안이자 치유자다.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라고도 했다. 그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성찰하고 고뇌하는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밑줄을 치며 읽었던 '아미엘의 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아래에 옮겼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왠지 일본어로 중역된 느낌이 자..

읽고본느낌 2009.06.23

젊은 날의 노트(6)

1978/1/2 오늘은 눈이 나리는데 갖가지 무쌍한 변화가 절로 감탄을 일게 한다. 싸락눈이 간지럽게 내리다가는 바람에 불려 소나기같이 빗기며 쏟아지고, 그러다가 한 닢 두 닢 드문드문 무겁게 떨어지더니 다시 이내 화려한 함박눈이 된다. 도저히 앞을 뚫고 나갈 수 없으리만큼 자욱하게 내린다. 눈 덮인 산야는 처량한 미를 지니고 있다고 느낀다. 오늘이 명절 연휴여서일까. 무엇을 기다리다 지친 그러나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체념, 흰 들판은 그렇게 비치어진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영희에게 회신 쓰다. 약간은 염세적인 내용으로 써내려가다 결국 마지막 줄에선 ‘雪片의 亂舞가 아름답구나’로 맺어진 것은 저 티 없는 순수를 외면할 수 없었음일까. 눈을 맞으며 길을 걸을 때 아다모의 곡도 흥얼거려 보고 어깨에..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5)

1977/9/2 환경을 떠나서 인간이란 생각할 수 없다. 실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인 인간이 이토록 철저히 자연에 지배당해 있다는데 놀라울 뿐이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행복해 하는 노예처럼 인간도 그런 것인가. 두뇌의 활동, 혈액의 순환, 감정, 의지 이 모든 것이 어느 하나 독립적이며 완전한 게 있는가. 다만 우리는 그것을 이상화시켜 추상하고 있을 뿐, 한 조그만 물질이 대자연의 물질에 종속되는 관계- 그런 보이지 않는 연관이 상호 작용되고 있다. 물질이 정신을 창조하고 그것이 인간이 되다. 인간의 운명은 저 모래알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을 긍정하는 건 지극히 괴로운 일이건만 그러나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닐까. 얼마나 기다렸는가, 포상 휴가라는 이름이 나의 것이 되기를.... 오늘 또 2명이 출..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4)

1977/1/2 저녁,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새 석양 아래 반짝이는 피곤함 1977/1/9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은 차라리 내가 그렇게 하고 싶도록 그립다. 1977/1/30 일상의 모든 생활이 가면처럼 보인다. 모든 걸 훌훌 벗어 던지고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 막막한 허허벌판, 거기에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인정에 울고 세상사에 울고 분내던 것, 이 모든 것은 이젠 타버린 재. 석양의 길을 홀로 걸으면 짓눌러오는 세월- 가슴으로 바람이 새 나간다. 유행말로 언제 끝나려나. 사회 공기가 그토록 감미롭게 느껴지지만 어디서나 인간 본연의 모습은 마찬가지겠지. 오늘도 신문엔 화려한 낱말이 사회면을 장식한다. 그 언어의 의미가 왜 사라졌는가. 체험적으로 그걸 느끼려는가. 새로 탄생하려면 옛 것은 버려져야 하..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3)

1973/10/3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은 人生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딴 사람의 각본대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타인의 눈을 살필 필요가 없다. 나의 약점을 감출 필요도 없다. 굳건한 生의 목표를 잡았으면 - 아니 아직 그런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일시적인 행동의 좌표는 있을 것이다 -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속일지라도 나 자신을 배반할 수는 없다. 나는 결국 cynical해져야 한다. heroism을 가져야 한다. 音樂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哲學과 音樂에 미쳐보고 싶구나. 밤새도록 감미로운 音樂에 취해 봤으면.... 나는 英雄도 못되고 졸부도 아닌가? 중간 존재란 얼마나 ..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2)

1973/9/2 목사의 설교에서 극동방송과 권신찬 목사에 대한 비판이 신랄했다. 몇 달 전 권목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선 이 상반된 異見에 적잖이 당혹할 수 밖에 없었다. 비판 요지는 다음과 같다. ‘권목사는 극동방송을 통해서 무교회사상을 제창하고 있다. 그는 구원과 부활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타락했으며 목사는 ××꾼이고 헌금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말로서 신도를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구원과 부활에 대한 강조는 좋다. 그러나 교회로 통하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교회와 목사가 좀 부족하다 하다라도 그 필요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권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는 아무 느낌도 없이 들었는데 그는 그 때 이렇게 강조한 것 같다. ‘현재의 교회는 타락하고 썩어있다. 오직..

길위의단상 2006.08.10

젊은 날의 노트(1)

1973/8/3 (持續의 原則) 모든 現象은 對象 자체로서의 持續的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또 持續的인 것의 規定이며 對象이 存在하는 방식인 可變的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生産의 原則) 生起하는 모든 것은 어떤 것을 前提하며 그것에 뒤쫓아서 하나의 規則에 따라 繼起한다 이것의 認識은 a priori한 表象으로 돌려야겠다. 當爲를 證明한다는 것은 當爲에 맞게 채색하는 論理的 誤謬를 범할 可能性이 恒存하기 때문이다 몽테에뉴錄에서 「賢人이란 정반대의 行動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行動뿐만 아니라 思想까지 포함시킨다면 정곡을 찌른 틀림없는 鐵則이 될 것이라 믿는다. 雜多한 知識만 알고 있는 자가 賢人이 될 수 없고 그 知를 理解, 자기 것으로 消化하여 확고한 자기 思想을 완성한 信念을 가진 자만이..

길위의단상 200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