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11

장자[80]

양자와 묵자는 비로소 홀로 발돋음을 하고는 스스로 뜻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말하는 얻음이 아니다. 얻은 것이 곤궁함인데 그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새장 속에 갇힌 비둘기나 올빼미도 역시 뜻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而楊墨乃始離趾 自以爲得 非吾所爲得也 夫得者困 可以爲得乎 則鳩효之在於籠也 亦可以爲得乎 - 天地 11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고, 봉우리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는 길만이바른 길이고, 자신이 오르는 봉우리만이 최고봉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든 이념이든 그 어떤 깨달음이든 진리독점주의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것도 없다. 그것은 자신이 걷는 길만이 정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

삶의나침반 2009.07.30

장자[79]

길 가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 미혹되었다면 목적지를 갈 수 있을 것이다.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미혹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다. 미혹된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세상이 미혹되었다. 내가 비록 인도하려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슬픈 일이 아닌가? 훌륭한 음악은 속인의 귀엔 들리지 않고 절양과 황화 같은 부화한 속악(俗樂)에는 환호한다. 이처럼 고귀한 담론이 대중의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참된 말은 나타나지 않고 속된 말만 기승을 부린다. 옹기소리와 종소리가 엇갈리니 갈 곳을 모른다.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었으니 내가 비록 향도한다 한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힘쓰는 것은 또 하나의 미혹이다. 그러므로 포기하고 추구하지 않는 것만 못..

삶의나침반 2009.07.18

장자[78]

지극한 다스림이 있었던 고대 원시공산사회에서는 어진 자를 높이거나 능한 자를 부릴 필요도 없었다. 윗사람이란 표준일 뿐이었고 백성은 야생의 사슴이었다. 단정했으나 의(義)를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서로 사랑했으나 인(仁)을 행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실했으나 충(忠)을 행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합당했으나 신의(信義)를 지켰다고 깨닫지 못한다. 준동할때 도우러 갔으나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행적도 자취가 없고 사업도 전해짐이 없다. 至治之世 不尙賢不使能 上如標枝 民如野鹿 端正而不知以爲義 相愛而不知以爲仁 實而不知以爲忠 當而不知以爲信 준動而相使 不以爲賜 是故行而無跡 事而無傳 - 天地 9 기세춘 선생은 장자가 그리는 이상세계를 원시공산사회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인위적인..

삶의나침반 2009.07.07

장자[77]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고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기고 가슴속에 기계의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고 했소. 내가 두레박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 - 天地 8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유세를 마치고 진(晉) 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그는 옹기그릇을 가지고 들고나며 우물에서 물을 퍼내고 있었다. 자공이 농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기계를 쓴다면 하루에 백 두렁의 밭에..

삶의나침반 2009.07.02

장자[76]

위대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림은 민심을 자유롭게 뒤흔들어 그들 스스로 교화를 이루고 습속을 바꾸게 하여 그 도적의 마음을 들춰내어 없애고 모두 자주적 의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오. 마치 민중의 본성이 스스로 하는 것 같아서 민중은 그렇게 된 까닭을 모르오. 大聖之治天下也 搖蕩民心 使之成敎易俗 擧滅其賊心 而皆進其獨志 若性之自爲 而民不知其所由然 - 天地 7 장자에서 말하는 '성인의 다스림'은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닮았다고 지난 회에서 말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최상의 정치제도라고 하지만우매한 민중의 투표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소수의 지배자가 여론을 조작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접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 아닌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를 상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삶의나침반 2009.06.26

장자[75]

무릇 머리와 발은 있어도 마음과 귀가 없는 자들이 많다. 형체 있는 것은 형체도 형상도 없는 것으로 돌아갈 뿐 모든 존재는 다함이 없다. 운동은 그치고, 죽음은 살고, 실패는 흥기한다. 이에 또한 그것을 원망하는 까닭은 다스림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물(物)도 잊고 천(天)도 잊어라. 그것을 일러 자기를 잊은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은 사람을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凡有首有趾 無心無耳者衆 有形者與無形無狀 而皆存者盡無 其動止也 其死生也 其廢起也 此又非其所以也 有治在人 忘乎物 忘乎天 其名爲忘己 忘己之人 是之謂入於天 - 天地 6 예수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새겨들으시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예수가 바로 옆에 있다한들 마음의 귀가 열린 사람만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는다. 마음의 귀는 진리를..

삶의나침반 2009.06.17

장자[74]

태초에는 무(無)도 없었고, 명(名)도 없었다. 여기에서 하나가 생겼으며 하나이므로 아직 형체가 없었다. 이 하나를 얻어 만물이 태어나는데 이것을 덕(德)이라 한다. 이때 형체가 없던 것이 분별이 생기는데 또 그것이 끊임이 없이 이어지니 명(命)이라고 한다. 그 하나가 머물기도 하고 운동하기도 하며 사물을 낳고 사물이 이루어지면 무늬가 생기는데 그것을 형체라 한다. 형체가 정신을 보존하여 각각 형상(이데아)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성품이라 한다. 성품을 닦으면 덕으로 돌아가며 덕이 지극하면 태초와 같아진다. 태초와 대동하면 허(虛)하고, 허하면 크다. 부리가 모여 울면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가 합창하듯 천지와 더불어 합해지면 그 합해진 것은 천지를 아우르는 벼리처럼 끝이 없고 어리석은 듯, 무지한 듯하다...

삶의나침반 2009.06.14

장자[73]

자고가 답했다. "옛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백성들이 상이 없어도 권면했고, 벌이 없어도 공경했소. 지금 그대는 상벌을 시행하나 백성들은 어질지 못하고 그로부터 덕은 쇠해졌고 형벌이 일어났소. 후세의 어지러움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오. 그대는 어찌 돌아가지 않소? 내 일을 방해하지 마시오!" 자고는 열심히 밭을 갈 뿐 돌아보지도 않았다. 子高曰 昔堯治天下 不賞而民勸 不罰而民畏 今子賞罰 而民且不仁 德自此衰 刑自此立 後世之亂 自此始矣 夫子闔行邪 無洛吾事 읍읍乎耕而不顧 - 天地 4 요순이 다스릴 때 백성자고(伯成子高)는 제후로서 임금을 도왔다. 그러나 우(禹)가 임금이 되자 사직을 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부가 되었다. 우임금은 직접 자고를 찾아가 함께 국가를 경영하자고 청했다. 그러나 자고의 대답은 단호..

삶의나침반 2009.06.09

장자[72]

봉인이 말했다. "처음에 저는 당신이 성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알고 보니 군자 정도일 뿐이군요. 하늘이 만민을 낳을 때는 반드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으면 각각 직분이 주어질 터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유해지면 남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대저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거처하고 새 새끼처럼 먹고 새처럼 날아다니니 종적이 없습니다. 천년을 살다가 싫으면 세상을 떠나 선정으로 올라가 저 흰 구름을 타고 하늘고향에 이를 것입니다. 세 가지 걱정도 닥치지 못할 것이며 몸에 재앙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즉 어찌 욕됨이 있겠습니까?" 요임금이 그를 따라가면서 말했다. "청컨대 묻고자 합니다." 봉인이 말했다. "물러가라!" 封人曰 始也 我以女爲聖人邪 今然君子也 天生萬民 必授之職 多男子而授之職..

삶의나침반 2009.05.28

장자[71]

황제 훤원씨가 적수의 북쪽을 노닐며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관망하고 돌아오다가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지혜를 시켜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눈 밝은 이주에게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했다. 소리에 밝은 끽후도 찾지 못했다. 이에 상(象)을 잊어버린 상망에게 시켰더니 그는 진주를 찾았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다. 형상을 잊은 그가 진주를 찾아낼 수 있다니!" 黃帝游乎 赤化之北 登乎崑崙之丘 而南望還歸 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朱索之而不得 使喫후索之而不得 乃使象罔 象罔得之 黃帝曰 異哉 象罔乃可以得之乎 - 天地 2 선불교와 도가는 닮은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들어온 불교가 도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선불교라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만들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뜻하는..

삶의나침반 2009.05.22

장자[70]

그러한 자는 금을 산에 감추고 구슬을 못에 감춘 것 같고 재화를 이(利)로 취하지 않고, 부귀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장수를 즐기지 않고 요절을 슬퍼하지 않는다. 또 그러한 자는 영달을 영화롭다 하지 않고 궁핍을 추하다 하지 않으며 일세의 이익을 가로채 자기가 사사롭게 얻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천하를 다스려도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여기지 않고 혹높은 자리에 있으면 밝기만 하다. 그에게는 만물이 한 몸이요, 사생이 같은 모습이다. 若然者 藏金於山 藏珠於淵 不利貨載 不近貴富 不樂壽 不哀夭 不榮通 不醜窮 不拘一世之利 以爲己私分 不以王天下爲己處顯 顯則明 萬物一府 死生同狀 - 天地 1 여기서는 군자(君子)의 성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편에 나오는 군자라는 용어나, 인(仁)과 치(治)를 긍정하는 내용 등이 ..

삶의나침반 2009.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