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26

바람의 집 /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 바람의 집 / 이종형 어제가 제주 4.3 사건 76주년이었다. TV로 추념식을 보며 이념 갈등으로 벌어진 우리 현대사의 ..

시읽는기쁨 2024.04.04

딸년을 안고 / 김사인

한 살배기 딸년을 꼭 안아보면 술이 번쩍 깬다 그 가벼운 몸이 우주의 무게인 듯 엄숙하고 슬퍼진다 이 목숨 하나 건지자고 하늘이 날 세상에 냈나 싶다. 사지육신 주시고 밥도 벌게 하는가 싶다. 사람의 애비 된 자 어느 누구 안 그러리. 그런데 소문에는 단추 하나로 이 목숨들 단숨에 녹게 돼 있다고도 하고 미친 세월 끝없을 거라고도 하고 하여, 한 가지 부탁한다 칼 쥔 자들아. 오늘 하루 일찍 돌아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잠든 너희 새끼들 그 바알간 귓밥 한번 들여다보아라. 귀 뒤로 어리는 황홀한 실핏줄들 한 번만 들여다보아라. 부탁한다. - 딸년을 안고 / 김사인 선거철이라고 온갖 장밋빛 공약이 넘쳐난다. 국회의원 후보는 그렇다치고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발 약속을 하면서 돈을 퍼주겠다고 난..

시읽는기쁨 2024.03.17

평화로운 백조의 호수

지난 한파에 경안천이 얼었다. 다행히 일부 얼지 않은 데가 있어 고니와 기러기가 모여 노니는 운동장이 되었다. 백조(고니)의 호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한다. 경안천의 새들은 백과 흑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고니는 고니대로, 기러기는 기러기대로, 함께 있되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내 땅이니 나가라고 폭력을 쓰지도 않는다. 낮 동안에는 대부분이 쉬거나 유유히 헤엄 치며 보낸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인간도 새처럼 가볍게 살 수는 없는지, 잠깐만이라도 너희와 동류가 되어 덕지덕지 쌓인 인간의 때를 벗어버리고 싶구나.

사진속일상 2023.12.27

마르코복음[45]

요한이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것을 보고 저희가 막았습니다.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예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시오.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곧 나를 욕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서 그대들에게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사람은, 진실히 말하거니와, 보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 마르코 9,38-41 이 당시에 갈릴래아 지방에서는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예수의 명성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제자 요한이 그들을 비난하자 예수는 다른 말씀을 하신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입..

삶의나침반 2022.05.06

평화를 빕니다

처음 가톨릭 미사에 참예하였을 때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죄를 회개하면서 "내 탓이오"라고 오른손으로 왼편 가슴을 세 번 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미사 끝 부분에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신자들끼리 나누는 인사였다. 요사이는 성당 미사에 가뭄에 콩 나듯 나가면서 마지못해 앉아 있지만, 이 두 장면에서만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종교의 알짬이 이 둘 속에 스며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심(宗敎心)이란 내면적으로는 '내 탓'이라는 자기 반성이 핵심이다. 자기 성찰 없는 믿음은 위선이며 기만일 뿐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예수한테서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그들의 믿음에 자기 성찰이 빠지고 오만과 독단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선을 안으로 수렴하고 겸손해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참살이의꿈 2021.06.15

받들어 꽃 /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사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

시읽는기쁨 2019.10.03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게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청결한 눈짓만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무디었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현기증이 났다 나는 이국의 음악을 마음껏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

시읽는기쁨 2018.11.19

외톨이로 당당하게 살기

한겨레신문에서 박홍규 선생의 근황을 들었다. 선생의 삶과 글은 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한 바 있다. 생태주의 실천가라 할까, 비슷하게는 윤규병, 황대권 선생 같은 분들이 떠오른다. 선생은 올해 영남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경산의 시골집으로 이주한 것은 1999년이었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텃밭을 가꾸며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머리는 집에서 깎고, 수염도 한 달에 한 번 가위로 자른다. 목욕도 자주 하지 않고 비누만 쓴다. 부인도 평생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이 정한 땅의 소유 한계는 300평이다. 우리 국토에서 경작 가능한 땅을 7천만 인구로 나눴을 때 한 사람에게 300평 정도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집과 텃밭이 부인 몫을 합해 600평이다...

참살이의꿈 2018.08.28

4월 27일

하루 종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침 식사를 단식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자는 본당 신부님의 부탁이 있었다며 아내는 아침을 걸렀다. 나도 덩달아 따라 했다. 4월 27일 오늘,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로 나아가는 선언을 했다. 전에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보다 이번 판문점에서의 만남이 훨씬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생중계의 효과인지 몰라도 군사분계선에서 둘이 악수하고 북쪽으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퍼포먼스부터 도보다리에서의 밀담 등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몇 달 전까지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평창올림픽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통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자. 이번 '판문점 선언'에 밝힌 대로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다. 지금까..

길위의단상 2018.04.27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대략 의미만 파악하기 위해 훑어보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굳이 정독할 필요까지는 없다. 책의 많은 부분이 다양한 통계와 그래프로 되어 있다. 전체의 요지만 이해하면 족하다. 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인류와 역사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내면에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다. 초기의 야만과 폭력의 세계로부터 인류는 점차 개명되어 천사의 힘이 악마를 누르는 데까지 발전했다. 전 세계적인 폭력과 전쟁의 감소 현상을 통계로 보여주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자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문명이 등장하기 전의 인류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상한다. 그것..

읽고본느낌 2016.06.06

오므린 것들 / 유홍준

배추밭에는 배추가 배춧잎을 오므리고 있다 산비알에는 나뭇잎이 나뭇잎을 오므리고 있다 웅덩이에는 오리가 오리를 오므리고 있다 오므린 것들은 안타깝고 애처로워 나는 나를 오므린다 나는 나를 오므린다 오므릴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내가 내 가슴을 오므릴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내가 내 입을 오므릴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담벼락 밑에는 노인들이 오므라져 있다 담벼락 밑에는 신발들이 오므라져 있다 오므린 것들은 죄를 짓지 않는다 숟가락은 제 몸을 오므려 밥을 뜨고 밥그릇은 제 몸을 오므려 밥을 받는다 오래 전 손가락이 오므라져 나는 죄 짓지 않은 적 있다 - 오므린 것들 / 유홍준 이 시를 읽으며 맨 처음 연상된 것이 고향 마을이었다. 집들이 산자락에 앉은 모양새가 바로 오므린 것이었구나. 오므린 것은 단순한 형상만 ..

시읽는기쁨 2014.11.18

이 땅의 주인

나 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이해 안 되는 게 있다. 나라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다른 나라에 주어놓고는 되찾아올 줄을 모른다. 도리어 사정을 하면서 우리 군대를 지휘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2020년대 후반까지 환수를 연기해 놓았다. 그걸 자랑이라고 협상을 잘했다고 한다. 전쟁이 났을 때 자기 군대 통솔도 못하는 나라가 주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비상시에는 미국 장군인 한미연합사령관이 우리의 주인이 된다.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 예를 들어, 옛날 삼국시대 신라에 당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당나라 장수가 신라군을 지휘하며 전쟁을 치른다면 우리는 신라를 어떤 나라로 평가할 것인가. 생존의 위기에 몰렸을 때는 외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자립할 수준..

길위의단상 2014.11.06

교황의 메시지

평화, 화해, 용서,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끝났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따스한 관심은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4박5일 동안 머물며 한국 사회에 전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준 사랑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교황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지더라도 그분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계속 간직해야 한다. 특별히 천주교 수도자, 신자,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슴에 새겨 둘 내용이 있었다. 교회 지도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안주하는 현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

참살이의꿈 2014.08.19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김연아 선수가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존 레논의 '이매진'을 배경 음악으로 한 갈라쇼였다. '이매진'은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가진 ..

시읽는기쁨 2014.03.06

춤추는 평화

가톨릭 미사중에 신자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순서가 있다. 이때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며 전후좌우 사람과 인사한다. 참 아름다운 인사다. 미사가 지루하더라도 이때가 되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당신에게 내재된 신성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라는 네팔의 "나마스떼!" 인삿말과도 비교된다. 미사의 중심인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도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이다. 가톨릭 언론기관 명칭도 '평화방송', '평화신문'이다. 천주교의 중심에는 평화가 있다. 평화는 개인의 심적인 혹은 영적인 평온함을 가리킬 뿐 아니라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구현되는 평화도 당연히 포함된다. 보통은 전자가 강조되어 신자들이 사회적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건 유감이다. '평화(平和)'를 파자해 보면 '고를 평'..

읽고본느낌 2013.08.11

함석헌 읽기(12) - 평화운동을 일으키자

이 책은 평화를 주제로 한 글과 강연집이다. 함석헌 선생이 평생 꿈 꾼 것이 평화의 세계였다. 한반도의 평화에서 세계의 평화, 그리고 내적으로는 마음의 평화까지 선생이 일관되게 싸운 것은 평화를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평화를 방해하는 제일 원인이 국가주의라고 본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 분열시키고 싸움을 붙인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원수다, 의(義)다, 악(惡)이다 하고 서로 시비한다. 그들의 철학으로 하면 전쟁이 없어서는 아니 되고 상벌도 없어서는 아니 되고 차별도 없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세상에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한 번 평화가 없어지면 그것이 본성인 양 잘못 생각하여 점점 더 악해진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의 줄거리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

읽고본느낌 2013.05.10

전쟁광 보호구역 / 반칠환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소총으로 쏘아 진흙 밭에 빠뜨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꽃 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매설한 콩깍지 지뢰들이 퍽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이 콩알을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이 백기들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네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 전쟁광 보호구역 / 반칠환 남북한이 ..

시읽는기쁨 2013.03.13

함석헌 읽기(3) - 새 나라 꿈틀거림

함석헌 선생 사상은 비폭력 평화주의다. 선생의 글을 읽어보면 간디와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걸 알 수 있다. 비폭력 평화가 뜻은 좋지만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군대와 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잘못되면 국가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생은 비폭력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국가가 망하더라도 뜻은 남는다고 한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살 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이북에서 침입하는 경우에도 아무 무력의 대항 없이 태연히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하면 죽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평화적인 태도로 맞으면 이북군이 아무리 흉악하더라도 절대로 그 흉악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도 사람이요 한국 민족이기 때..

읽고본느낌 2013.01.18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은 현경 선생(유니언 신학대학 교수)이 이슬람 국가 17개국을 일 년 동안 다니며 무슬림을 만나 대화를 나눈 순례기다. 2001년의 9. 11 사건에 충격을 받은 지은이는 이슬람의 이해와 종교간 평화를 위해서 이슬람 국가를 찾는다. 서구의 시각이 아닌 아랍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9. 11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퍼부었다. 종교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던 현경은 이런 사태를 관망만 할 수는 없었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서방세계 사이에 평화를 다리를 높고 싶었던 선생은 두 가지의 질문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이슬람이 원하는 평화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이슬람 여성들이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선생은 12..

읽고본느낌 2012.05.21

평화의 섬을 평화롭게 하라

어제 정부에서는 주민과 시민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제적, 전략적으로 꼭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침 이번 주 가톨릭 주보에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에서 배부한 유인물이 들어 있었다. 4쪽으로 된 만화인데 해군기지 건설의 실상과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내용을 옮긴다. 제주 강정마을 "떠나요~ 둘이서~ 제주도 푸른 밤 아래~"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며, 가슴 설레일 만큼 아름다운 제주 "그 중에서 이곳 강정마을은 더욱 아름다워요." 길이 1.2km, 너비 150m에 달하는 통바위인 구럼비 바위가 있고, 대규모 역사 유물과 멸종 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 맹꽁이가 살만큼 깨끗하고, 바다에서는 돌고래가 자맥질하며 뛰놀고..

길위의단상 2012.03.01

사람들이 없는 자리에서 사람이 되려고 애써라

거실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이 환하다. 집안은 고요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여기가 절간인지 수도원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리고 나는 아무 할 일이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자식들이 다 자라서 자기 일에 바쁠 나이가 되면자연 홀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밖으로만 나돌았던 시선이 이젠 안으로 항하게 된다. 퇴직을 경계로 인생의 2 막이 열린다. 스스로 충만해지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나가야겠다. 공허함 때문에 여전히 예전의 수다스러움이나 어울림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유혹도 받는다. 그것이 일시적인 즐거움은 되겠지만 어쩌면 삶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직시하면서 내부로 침잠함이 필요한 때다. "사람들이 없는 자리에서 사람이 되려고 ..

사진속일상 2010.02.04

아바타

재미있다. 집에서 놀다보니 심심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인데 의외로 괜찮았다. 헐리우드의 내용 없는 블록버스터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문명과 자연의 대립 구도로 짜여졌지만 은근히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강하다. 영화를 보면서 과거에 백인이 아메리칸 인디언을 정복한 역사가 오버랩 되었다. 행성 판도라에 사는 나비족은 사고나 생활 방식이 인디언을 많이 닮았다. 행성 판도라의 묘사가 아주 흥미롭다. 처음 보는 식물과 동물의 모습이 외계 생명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행성에는 인간을 닮은 원시 부족들이 사는데 나비족도 그중 하나다. 행성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큰 나무들이다. 지구의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나비족의 근거지는 판도라에서 가장 큰 나무다. 나무들은 뿌리가 서로 연..

읽고본느낌 2010.01.07

야생 피조물의 평화 / 웬델 베리

세상에 대한 절망이 마음속에 자라날 때 나와 우리 아이들의 삶이 어찌될까 두려워 한밤중 아주 작은 소리에도 눈을 뜨게 될 때 나는 걸어가 몸을 누이네, 야생오리가 물 위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려놓은 그곳에, 큰왜가리가 사는 그곳에 나는 야생 피조물들의 평화 속으로 들어가네 그들은 슬픔을 앞질러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괴롭히지 않는다네 나는 고요한 물의 존재에게로 가네 그리고 느낀다네. 내 머리 위로 낮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이제 반짝이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잠시 세상의 은총 속에 쉬고 나면 나는 자유로워지네 - 야생 피조물의 평화 / 웬델 베리 웬델 베리(Wendell Berry)라는 이름은 환경서적 등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접했지만 그분의 저서를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분이 소설가며 시인으로 많은..

시읽는기쁨 2007.04.02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도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시읽는기쁨 2006.06.15

평화, 그 먼 길 간다

가수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평화를 기원하는 거리 공연이 매주 화요일 저녁에 광화문 교보빌딩 옆에서 열리고 있다. 어제 친구와 만나서 이 공연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저녁 식사 후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쓸데없는 종교 논쟁을 하는 바람에 늦어져서 공연이 끝날 때쯤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평화, 그 먼 길 간다'라고 적힌 무대는 생각보다 간소했고, 사람들은 보도에 앉거나 서서 두 분의 뜻에 동참하며 열띤 호응을 보냈다. 두 분은 이 땅과 생명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환경과 반전, 소외계층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계시지만, 이번 거리 공연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직접 시민들과 만나며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정태춘 음악과의 인연은 10여 년 전 독일 연수를 갔을 때 맺어졌다. 우리..

사진속일상 2005.09.28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

참살이의꿈 200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