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 31

바쁜 10월

이번 10월만큼 바쁜 달도 없다. 내 특기인 아무 일 없이 집에서 논 날이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특히 후반부에는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느라 분주했다. 18일 ~ 21일 전주와 고창 방문 22일 ~ 24일 가평으로 가족여행 25일 휴식 26일 ~ 27일 경떠회 여행 28일 ~ 29일 전주 상가 조문 30일 서울에서 바둑 31일 ~ 11월 1일 홍성 지역 여행 예정 전반부에도 3박4일과 1박2일의 여행이 두 번 있었다. 역마살이 낀 달이다. 이러니 피로를 풀 시간도 없이 다음 피로가 몰려온다. 약속된 것이니 일정을 취소하기도 어렵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으니 그나마 버틸만하다. 몸살기가 나타나더라도 잠을 잘 자니 바로 회복된다. 나에게는 잠이야말로 보약이다.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

길위의단상 2013.10.31

판쇠의 쓸개 / 정양

천생원네 머슴 하판쇠 덫에 걸린 멧돼지 배를 가르다가 주인영감 잡수실 쓸개를 제 입에 꿀꺽 집어삼키고 경상도 상주 어디서 새경도 못 받고 쫓겨온 노총각 나락섬을 머리 위로 훌쩍훌쩍 내던질 만큼 진창에 빠진 구루마도 혼자 덜컥덜컥 들어올릴 만큼 힘은 세지만 씨름판에서는 마구잡이로 밀어만 붙이다가 번번이 제풀에 나뒹구는 바봅니다 멧돼지 쓸개를 따먹어서 판쇠는 쓸개 빠진 짓만 골라서 합니다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팽이 치다가 남의 논밭에서 일해주다가 주막에서 남의 술값이나 물어주다가 천생원에게 멱살 잡혀 끌려가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새경 받고 솜리 장에 가서 제일 먼저 까만 금테 라이방을 샀다는데 동네 아낙들이 멋쟁이라고 추켜준 뒤로는 밤에도 그걸 걸치고만 다닙니다 천생원이 만경 사는 형님에게 생일선물 보내려..

시읽는기쁨 2013.10.30

명재고택 느티나무

명재고택(明齋古宅)은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의 노성산 남쪽 자락에 있다. 명재 윤증은 가까이 있는 다른 마을에서 살았다고 하나, 말년 쯤인 1700년대 초에는 이곳으로 옮기지 않았나 추정한다. 명재고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한옥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집이다. 명재고택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그중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400년 정도 되었으니 이 집의 역사와 함께 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명재고택이 제일 멋지다. 많은 항아리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겹고 다정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천년의나무 2013.10.29

논어[54]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간은 의리에 훤하고, 되잖은 인간은 잇속에 훤하지."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 里仁 14 '되잖은 인간'[小人]은 유불리를 따져 행동한다.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다. 반면에 '참된 인간'[君子]는 의(義)의 길을 간다. 그것이 고난과 형극의 길일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상적인 것과 의로움은 충돌하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예수가 간 길이 그러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선생처럼 고명하신 분이 천리 길을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 나라에 이익[利]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에 대해서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국가의 공리(公利)마저 거부한 게 유교다. 유교를 진정 국가의 통치 철학..

삶의나침반 2013.10.29

임리정 팽나무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임리정(臨履亭)에 있는 팽나무다.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금강을 바라보는 얕은 언덕에 있다. 시경에 나오는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는 구절에서 임리정이라 하였다. 항상 몸가짐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선인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이 나무는 수령이 300여 년이 되었는데 훤히 트인 금강의 조망을 살짝 가려준다. 비슷한 크기의 나무가 임리정 뒷쪽에도 있다.

천년의나무 2013.10.28

송시열의 자취를 찾아서

작년 이맘 때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자취를 찾아 화양구곡을 중심으로 한 괴산 지역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송시열의 출생지인 대전과 논산 지역으로 선생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이곳은 송시열과 윤증(尹拯, 1629~1714)이 대립한 회니시비(懷尼是非)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떠회 회원 3명과 함께 했다. 윤증의 부친인 윤선거(1610~1669)와 송시열은 윤휴의 경전 해석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다. 윤선거와 윤증 부자가 같은 서인인 송시열에 동조하지 않고 남인인 윤휴를 감싼 것이다. 윤선거는 주자 해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데서 벗어나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와 사상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 바람에 스승과 제자는 원수로 갈라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시키는 요인이 됐다. 단풍철 주말이라 고속..

사진속일상 2013.10.28

산국(2)

빈 들판에 노란 산국(山菊)이 핀다. 너도나도 잎을 떨구거나 누렇게 시들 때 늦게서야 꽃을 피우는 게 산국이다. 인고의 꽃이고, 인내의 꽃이다. 어떤 효험이 있음을 믿어서일까, 사람들은 노란 꽃을 꺾어 말려서 국화차를 마시거나, 베갯속에 넣어 긴 밤의 동반자로 삼고자 한다. 가을이 짙어가면 산들에는 산국 향기 그윽해진다. 시인이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라고 영탄한 바로 그 꽃이다. 들녘 비탈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칠은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

꽃들의향기 2013.10.25

난설헌

너무 영민하고 너무 감성적이어서 시대와 불화했던 여인 허초희(許楚姬, 1563~1589), 스스로 지은 난설헌(蘭雪軒)이라는 호 그대로 그녀는 눈 속에 핀 한 송이 난초였다. 부모와 형제의 사랑을 받으며 자유로운 가풍에서 성장한 그녀는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웠고, 여덟 살 때 '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일찍이 천재성을 보였다. 그러나 열다섯 살 때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혼인하면서 시어머니와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로 삶이 삐걱댔다. 더구나 제 손으로 키워보지도 못한 어린 두 자식을 일찍 여의고 나서는 생의 의욕마저 상실했다. 문학에의 열정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고,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불행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여인이 되었다. 은 최문희 작가가 쓴 허난설헌의 일대기로 혼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난..

읽고본느낌 2013.10.25

명지산에 오르다

명지산(明智山, 1,267m)에 올랐다. 가족과 2박3일 가평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나만 하루 짬을 내어 명지산을 찾았다. 꽤 높은 산이어서인지 그동안 명지산은 올 기회가 없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올라보랴 싶었다. 가평군에 있는 명지산은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과 가평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화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 명지산이다. 이 지역은 경기도에서 제일 가는 심산유곡 지대로 마치 강원도 깊은 산골에 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천 미터급 산을 오르니 수년 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던 생각이 났다. 익근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계곡길 대신 사향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을 택했다. 덕분에 정상에 오르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호젓한 산행..

사진속일상 2013.10.24

구절초(4)

늦게서야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에 있는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을 찾았다. 축제가 지난 뒤라 썰렁했지만 번잡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꽃은 많이 시들었지만 워낙 규모가 커서 구절초가 자아내는 가을 분위기를 느끼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이곳은 산 전체에 구절초를 심어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들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몇 송이 구절초가 아니다. 멀리서 보면 메밀꽃밭을 보는 것 같다. 맑고 청순한 구절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꽃밭에서는 풍성함에 비례하여 허전함도 커진다. 마치 지금과 같은 풍요의 시대에 찾아오는 정신의 허기 같은 것이다.

꽃들의향기 2013.10.21

하련리 느티나무

하련리는 전북 고창군 해리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다. 하련리에서 청용산을 지나 선운사로 연결되는 옛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을 뒤 산자락을 살폈으나 길을 찾지는 못했다. 길 흔적은 보였으나 사람 발길이 끊어진 탓인지 풀만 무성해서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 느티나무는 하련리의 당산나무다. 정월 대보름이면 한 해의 액운을 물리쳐 줍시사고 이 나무에 기도했다고 한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런 전통도 다 사라졌을 것이다. 수령은 300여 년이 되었고, 키는 20m, 줄기 둘레는 3.6m다.

천년의나무 2013.10.21

병아리 던지기 / 김순일

누우떼가 아프리카 대륙이 꺼지게 달려간다 건기를 맞은 수천 마리 누우떼가 싱싱한 풀밭을 찾아 먼지 자욱한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간다 도룡농 도마뱀 물고기 따위나 잡아먹으며 늘 배가 안차서 걸근거리던 악어들이 때를 만나 강목을 지키고 있다가 모처럼 포식을 하고 비단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인데 뒤따라 강을 건너던 누우란 놈 겁도 없이 악어의 등때기며 머리통을 밟고 건너가는구나 요녀석 봐라 선잠을 깬 악어가 누우의 허벅지를 물고 짓이겨 댔는데 이거 어쩐 일인가 요단강 건너는 줄 알았던 누우의 허벅지엔 이빨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구나 오금아 날 살려라 혼 나간 누우란 놈 허둥지둥 강을 건너갈 때 악어녀석 벙긋벙긋 꽃잠 속으로 드는구나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갓깬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층 아파트 창..

시읽는기쁨 2013.10.17

논어[53]

선생님 말씀하시다. "삼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었지." 증자가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나가신 후 제자들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심으로 미루어 생각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 里仁 13 공자 사상의 핵심을 전하고 있다. 증자가 볼 때 공자의 가르침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원리는 '서(恕)'다.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된 글자인데,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여기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태도다. 이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라면 타자와 공감하게 되고 세상은 훨씬 더 부드럽게 돌아갈 것이다. 공자가 꿈꾼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

삶의나침반 2013.10.16

야고

억새 뿌리에 기생하는 야고(野孤)다. 남쪽 금오도에서 만났다. 기생식물로는 겨우살이, 수정난풀, 야고 등이 있다. 야고는 노란색 줄기에 보라색 종 모양의 꽃이 핀다. 꽃이 옛날 할아버지들이 피우시던 담뱃대를 닮아 담배더부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억새와 야고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가을에 피는 꽃은 억새 무리 속에 있어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야고는 주로 남쪽 지방에서 자란다고 하지만, 앞으로 억새밭을 만나면 보라색 꽃이 숨어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게 될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13.10.15

삶은 단순하고 내 몸은 튼튼하니까

이름난 현사(賢士)의 수사학적 명언보다 평범한 사람의 보통 말에 감동할 때가 있다.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잡이하며 살아가는 어부가 자신의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삶은 단순하고 내 몸은 튼튼하니까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여행 프로그램에서였다. 인류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건 고작 100여 년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대부분 기간은 농경을 중심으로 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삶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이웃과의 관계는 따스했다. 서로 도우며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게 많았을지라도 현대적 의미의 가난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풍족해도 과잉 욕망과 상대적 결핍이 빈곤을 생산한다. 필리핀 어부가 한 말 속에 ..

참살이의꿈 2013.10.15

직포리 곰솔

금오도에 있는 직포리는 비렁길 2코스와 3코스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해송과 집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그중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00년의 이 곰솔이 형태상으로는 제일 아름답다. 마을에는 이 곰솔 외에도 여러 그루가 직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심은지 오래된 큰 나무들이다. 마을을 바람과 파도로부터 지키기 위해 심었을 것이다. 이렇듯 해송은 바다와 부딪치며 서 있어야 당당하고 멋있다. 매운 바닷바람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강인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으리라. 200년 동안 몰아친 태풍만 해도 얼마나 많았으리. 그러면서도 단단하면서 깔끔한 그 자태가 대견하다.

천년의나무 2013.10.14

함석헌 읽기(15) - 퀘이커 300년

이 책은 함석헌 선생의 번역서다. 퀘이커 운동이 시작된지 300돌을 맞으면서 퀘이커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하워드 브린턴(Howard Brinton)이 쓴 가 원저다. 퀘이커 신앙은 독특한 데가 있다. 개신교의 일파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톨릭에 더 가깝다. 챙이 넓은 모자에 수수한 검은 옷을 입고 문명을 거부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퀘이커는 예수의 복음에 가장 근접한 삶을 살지 않나 싶다.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다. 선생도 해방 후에 퀘이커를 접하고 모임에 나가면서 친우회원이 되었다. 퀘이커를 알기 위해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하기도 했다. 퀘이커가 매력적인 건 '침묵의 예배'다. 고정된 전례나 목회자가 없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임하심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묵상 중에 떠오른 영감을 나눈다...

읽고본느낌 2013.10.14

금목서

금목서의 특징은 향기다. 꽃이 피면 나무 주위로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간다. 그 향기가 감미로우면서 달콤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목서의 말린 꽃잎을 최음제로 썼다고 한다. 목서(木犀)는 물푸레나무과인데 '나무 무소'라는 뜻이다. 나무 껍질이 무소 피부와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황금색 꽃이 피는 게 금목서이고, 흰색 꽃이 피는 건 은목서다.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앙증맞다. 정원수로 기르기 좋은 나무다.

꽃들의향기 2013.10.13

서하리에서 칠사산을 넘다

오늘은 본당에서 천진암으로 도보 성지 순례를 하는 날이다. 약 500명의 신자들이 구역별로 모여 아침 9시에 성당에서 출발했다. 나도 대열에 끼여 힘차게 따라 나섰으나 중간에 여의치 못한 일이 생겨 유턴하게 되었다. 두 시간 정도만 함께 걸었다. 본당에서 천진암까지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도가 없는 찻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여섯 시간 정도가 걸리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경안천을 끼고 걷는 이 길이 제일 호젓하고 양호하다. 광주시 경안동과 무갑리를 이어주던 옛 도로였다는데 천 건너편으로 새 도로가 생기면서 잊혀진 길이 되었다. 이런 길을 개발하여 트레킹 코스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무갑리까지 같이 걷고는 되돌아서 칠사산으로 들어갔다. 혼자 걷는 산길이 편안했다. 생각지도 않게 서하리에..

사진속일상 2013.10.13

층꽃풀

금오도를 걸으면서 이 층꽃풀을 자주 만났다. 산이나 바닷가에 무척 많이 피어 있었는데,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보랏빛 꽃이 가을과 잘 어울렸다. 층꽃풀은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꽃이다. 꽃이 층층으로 피니까 층꽃풀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층꽃나무라고도 하는데 겨울에도 줄기가 죽지 않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나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른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걸 보니 생명력도 무척 강한 것 같다. 남도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꽃들의향기 2013.10.12

식사법 /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것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 식사법 / 김경미 "밥 먹을 때는 말 하는 게 아니다." "음식 넘기는 소리도 내지 마라." 어릴 때 받았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때는 열 명이나 되는 식..

시읽는기쁨 2013.10.12

논어[52]

선생님 말씀하시다. "지위 없는 것쯤 괜찮아. 중심이 없는 것이 걱정이야. 남이 몰라주는 것쯤 괜찮아. 알아주도록 노력해야 해."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 里仁 12 공자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인간됨'으로 귀착된다. 내 인격이 성숙해져서 바로 서는 게 우선이지, 벼슬자리 같은 건 차후의 문제다.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실력을 기르고 노력하는 게 먼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인 것이다. 유교에서 제일 강조하는 게 이 수신(修身)의 덕목이다. 공자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세웠고, 서른에 이립(而立)했다고 고백했다. 인간됨의 출발점이 립(立)이다. 그러나 우리는 립(立)보다는 위(位)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외화(外華)의 세..

삶의나침반 2013.10.11

10월에 찾아온 태풍

올해는 태풍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10월에 들어서야 늦손님이 찾아왔다. 24호 태풍 다나스(DANAS)였다. 23호 피토(FITOW)와 비슷한 때에 발생하여 다나스는 북쪽으로 올라왔고, 피토는 중국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다나스도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문간에서 안부만 여쭈며 동해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가 10월에 태풍 영향을 받은 건 15년 만이라고 한다. 지금도 서태평양에는 새로운 태풍 두 개가 만들어져 있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적도의 고수온 해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늦은 태풍의 방문을 받을 확률은 점점 높아질 것 같다. 10월 6일 15:00 10월 7일 15:00 10월 8일 15:00

길위의단상 2013.10.10

금오도 비렁길을 걷다(2)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6시 30분에 민박집을 나섰다. 오후 4시에 출항하는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심포마을에서 시작하여 4, 3, 2, 1코스를 걸어 함구미마을까지 간다. 거리로는 15km다. 아침 바다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어서 감탄이 절로 났다. 길은 해안을 따라서 이어졌다. 대부분 흙길이고 경사가 심한 곳은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3코스 매봉전망대. 3코스 사다리통전망대. 직포마을에서 3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된다. 직포마을은 해송이 볼 만했다. 직포마을 부근 바다 풍경. 마을을 지나는 트레커. 집을 둘러싼 돌담이 지붕을 가릴 정도로 높았다. 세찬 바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밭에는 주로 방풍(防風)을 심어 놓았다..

사진속일상 2013.10.09

장지리 팽나무

여수 금오도 장지리에 있는 팽나무다. 장지리는 금오도 비렁길 마지막 구간인 5코스의 종점 마을이다. 동네 가운데에 있는 이 당산나무는 바다를 굽어 보며 당당히 서 있다. 나무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2.4m, 수령은 200년이 되었다. 이렇듯 팽나무는 남쪽 지방에 내려와야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나무로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다음으로 팽나무다. 예전에는 보릿고개를 넘길 때 곡식에 팽나무 잎을 섞어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민중의 삶과 밀접했던 나무가 팽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10.09

심포리 곰솔

여수 금오도 심포마을에 있는 곰솔이다. 남쪽 섬에 오니 해안가에서 해송을 자주 만난다. 그중에서도 나란히 자라고 있는 이 두 나무는 키가 18m나 되는 늘씬한 미송(美松)이다. 수령은 150년 정도 되었다. 곰솔, 해송, 흑송은 다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육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육송, 바닷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해송, 곰솔이라 부른다. 또는 나무 껍질 색깔에 따라 육송은 적송(赤松), 해송은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껍질이 하얀 백송(白松)도 있다. 백송은 잎이 셋으로 갈라진 게 다른 소나무와 다르다.

천년의나무 2013.10.08

금오도 비렁길을 걷다(1)

트레커 여덟 명이 금오도 매봉산길과 비렁길을 걸었다. 금오도(金鰲島)는 섬 모양이 자라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남 여수에 있다.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우리는 여수에 있는 회원 별장에서 일박을 하고 7시 45분에 출발하는 첫 배를 탔다. 5코스까지 있는 금오도 비렁길은 총 길이 18.5km에, 쉬지 않고 걸었을 때 7시간 정도가 걸린다. 배가 다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다 걸을 수는 없다. 우리는 섬에서 묵으며 이틀에 걸쳐 매봉산을 종주하고 비렁길 전 구간을 걸었다. 섬을 한 바퀴 일주한 셈이다. '비렁'은 이곳 사투리로 '벼랑'이라는 뜻이다. 비렁길 안내 팸플릿에 보면 금오도는 '명성황후가 사랑한 섬'이었다고 나와 있다. 고종이 명성황후가 살던 명례궁..

사진속일상 2013.10.08

고구마꽃

고구마밭은 어디나 있지만, 고구마꽃은 보기 어렵다. 워낙 희귀해서 그런지 고구마꽃은 백 년에 한 번씩 핀다는 말도 있다. 나도 이번에 처음으로 고구마꽃과 만났다. 넓은 고구마밭에서 이상하게 한 고랑에만 몇 송이의 고구마꽃이 모여서 피어 있었다. 메꽃과에 속하는 고구마꽃은 꼭 메꽃을 닮았다. 얼핏 보면 고구마밭에 메꽃 덩굴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진보라와 흰색의 색깔 대비가 선연한 아주 인상적인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3.10.07

토평 코스모스

30대까지는 제일 좋아하는 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항상 코스모스라고 대답했다. 어렸던 시절, 고향 마을 앞 신작로는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 꽃길이 되었다. 코스모스 꽃으로 동무의 옷에 꽃도장도 찍고, 다리 위에서 날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꽃장난을 치면서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를 그립게 하는 꽃으로 나에게는 코스모스만 한 게 없다. 이맘때가 되면 토평 한강변으로 코스모스 구경을 나간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넓은 꽃밭이라 시골길에서 한들거리는 코스모의 정취와는 거리가 있지만, 집에서 가까우면서 이만큼 코스모스의 갈증을 풀어주는 곳도 없다.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고향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100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짧은 시기에 이젠 우리나라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다.

꽃들의향기 2013.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