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 31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1983)가 누구인지 그분의 생애가 궁금해서 읽은 책이다. 27개의 짧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자서전이다. 호퍼는 '길 위의 철학자'라는 별명대로 평생을 떠돌이 노동자로 지내면서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독특한 철학을 완성했다. 책상머리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라 사회 밑바닥의 땀과 눈물이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특별한 데가 있다. 그는 제도권에 들어가 학문을 하며 명예를 얻고 안주할 기회가 많았으나 모든 걸 거부하고 '길 위에서' 살았다. 에릭 호퍼는 용기와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큰 봉우리다. 호퍼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었다. 그것은 다섯 살 때 어머니와 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사고..

읽고본느낌 2014.08.31

초망한 소원 / 이경학

울 엄니 한 번 업어봤으면.... 출세해서 이층집 짓는 욕심은 예전에 부질없는 것인 줄 깨달았고 통일되어 아버지 모시고 고향가는 꿈은 엊그제 신문에서 미적미적 멀어졌으나 이 새벽 닥친 추위에 이불자락 끌어당기며 끝까지 놓치지 않은 하나 남은 소원은, 울 엄니 한 번 업어드려 봤으면.... 휠체어 박차고 일어나 두 발로 떳떳이 서서 울 엄니 따스한 배를 내 등허리에 얹어봤으면.... 저 작은 여인네 손주 안아보시겠다고 연세 많이 드셔서도 끝내 균형을 잃지 않고 계시니, 천성이 명랑한 아낙네 아들 사람 되는 꼴 보시겠다고 그 모진 세월에도 걸음걸이 빠르고 반듯하시니.... 달랑 업고 동네 한 바퀴 돌아봤으면.... 오래 사시겠다고 다짐하시는 뜻이 나 일어설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니 그 의지를 믿고..

시읽는기쁨 2014.08.30

억울한 빌라도

빌라도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다. 기독교인들은 예배나 미사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라며 신앙 고백을 한다. 전 세계 기독교인 숫자가 23억이니 주일날이면 적어도 수억 명이 예수의 고난이 빌라도 탓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이 빌라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를 구해주려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당시 유대교 성직자들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명목으로 예수를 붙잡아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의 사형 판결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무력 투쟁이나 봉기를 하지 않은 예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예수는 로마 식민 통치의 위험인물이 아니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 것을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했..

길위의단상 2014.08.29

논어[99]

선생님 말씀하시다."옮기기만 했지 창작하지는 않았고, 옛 것을 그대로 믿고 좋아함은 은근히 우리 노팽님에게나 비교해 볼까 한다."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 老彭 - 述而 1 언젠가 그림을 그리는 분에게, 머리로 상상하는 경치를 그리면 더 멋진 그림이 나올 텐데 굳이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 있다. 그렇게 되면 현실성이 떨어지고 상상력도 한계가 있다는 답변을 들은 것 같다. 그림이든 문학이든 모든 분야의 창작 활동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하나도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 공자님, 옛것을 너무 좋아하신다. 호고(好古), 온고(溫故)가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사라져 간 옛 법도의 부활을 공자는 늘 꿈꾸고 ..

삶의나침반 2014.08.28

인포그래픽 세계사

흥미로운 책이다. 138억 년 전의 빅뱅부터 현재까지 우주와 인간 역사에서 중요한 내용을 100개의 인포그래픽으로 아름답게 담아냈다. 기존의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재치가 돋보인다. 는 지금과 같은 영상의 시대에 알맞은 책이다. 인포그래픽(Inforgraphic)은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그래픽(Graphic)이 결합한 말이다. 그림과 도표를 이용해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알기 쉽게 보여준다. 그림만으로도 솔찮게 재미있다. 인포그래픽에는 디자인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데 기발한 착상이 무척 신선하다. 인포그래픽의 장점은 사실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세계사는 인류 등장 이전, 문명 등장 이전, 1900년 이전, 현대 세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

읽고본느낌 2014.08.26

산길에서 / 이성부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발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 산길에서 / 이성부 산을 사랑하는 시인이다. 이성..

시읽는기쁨 2014.08.25

동물의 왕국

옆자리 동료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아이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말을 자주 했다. 수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런 우스갯소리로 푼 것이다. 동료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들으면 식상하는 법인데, 한번은 이렇게 대꾸해 준 적이 있었다. "세상이 동물로 우글거리니 아이들도 동물이 되는 거야." 아이들의 심성이 고약해져가는 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세상이 썩었는데 아이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정의 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가정이 병들면 아이의 마음도 병들게 된다. 교사라면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

참살이의꿈 2014.08.24

논어[98]

자공이 말했다.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구제할 수만 있다면 어떻습니까? 사람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어찌 사람 구실만 한다고 할까! 그야 성인(聖人)이지! 요순 같은 분들도 그 일로 애를 태웠다. 대체로 사람 구실 하는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고, 제 앞을 트고 싶으면 남의 앞길을 터준다. 제 앞장부터 잘 처리할 수 있는 그것이 사람 구실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게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 雍也 24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고, 제 앞을 트고 싶으면 남의 앞길을 터준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에서 내가 좋아하..

삶의나침반 2014.08.23

꽃의 어원

'꽃'의 어원을 알고 싶어 국어 샘에게 물어보았더니 꽃의 고어는 '곶'이었다고 한다. '곶'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된소리로 변해 '꽃'으로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용비어천가에서 '곶 됴코 여름 하나니'라는 구절을 공부한 게 기억났다. 그리고 '곶'의 의미는 바다 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땅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꽃이 '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국어 샘과의 대화였다. 사전을 찾아보니 곶의 뜻이 딱 하나밖에 없다. 한자로는 '串'이라고 쓰는,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나온 땅이다. 식물에서 꽃은 가지에서 솟아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곶'의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에 꽃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된 건 아닐까, 억지로 추측해 본다. 아니면 한자의 '串'이 꽃의 모양을 닮아서 ..

길위의단상 2014.08.22

인간의 조건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책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포리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세상에 대한 짧은 경구로 가득하다. 사물을 보는 예리한 관찰과 깊은 성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에릭 호퍼가 궁금했지만 책에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다만 그의 친필 한 문장이 이렇게 씌여 있다. "If anybody asks me what I have accomplished, I will say all I have accomplished is that I have written a few good sentence." - Eric Hoffer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제가지 무엇을 했는가 묻는다면, 내가 한 일은 그저 좋은 글 몇 문장 쓴 것이라 말하련다." - 에릭 호퍼 을 읽을 때 지은이에 대한 정보는 필요치..

읽고본느낌 2014.08.21

독배 / 나태주

아빠는 왜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러는 거예요? 혼자만 고집부리고 그러는 거예요? 의사들이 다들 안 된다 그러고, 자료를 봐도 아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확실한데 왜 아빠 혼자만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매달리고 울고불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면 날더러 그냥 죽으란 말이냐! 그런 건 아니구요, 아빠가 하도 포기하기 못하고 매달리고 그러니까 애달파서 하는 말이에요. 아니, 어떤 딸이 그렇게 애비한테 매정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이냐! 아빠, 생각해보세요.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죽은 아이도 있고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어요. 그걸 좀 생각해보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말을 바꾸어도 그것은 죽으라는 말밖에 다른 말이 아니지 않느냐! 어떤 딸이 ..

시읽는기쁨 2014.08.20

교황의 메시지

평화, 화해, 용서,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끝났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따스한 관심은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4박5일 동안 머물며 한국 사회에 전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준 사랑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교황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지더라도 그분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계속 간직해야 한다. 특별히 천주교 수도자, 신자,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슴에 새겨 둘 내용이 있었다. 교회 지도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안주하는 현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

참살이의꿈 2014.08.19

논어[97]

선생님 말씀하시다. "중용의 올바른 실천이란 지극한 것인가 보다! 사람들은 오래 오래 실천하지 못하거든."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 雍也 23 고등학생일 때 윤리 선생님에게서 들은 비유가 생각난다. 중국에는 한쪽을 두껍게 만든 병이 있는데 물을 적게 넣으면 쓰러지고 많이 넣어도 쓰러진다. 적당히 물이 들어가야 바로 서는 병이다. 중용의 비유로 이 병을 말했는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가 중용이라는 뜻이다. 명쾌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간 지대가 중용은 아닐 것이다. 공자는 중용의 덕이 지극하며 오래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심지어는 공자 자신도 중용을 실천하는 게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천하 국가를 고르게 다스리고, 높은 벼슬을 사양하고, 하얀 칼날을..

삶의나침반 2014.08.18

버섯 산행

은고개에서 남한산성을 지나 샘재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걸었다. 광주에서 서울을 향해 북쪽으로 난 길이다. 길이가 12km 정도 되니 산길로는 꽤 길다. 몸 상태가 좋을 때도 완주하면 노곤해진다. 축축한 여름 숲에는 다양하게 생긴 버섯이 많았다. 버섯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깊 옆에서 눈에 띈 버섯이 이 정도인데 산속에는 다른 종류의 버섯도 많을 것 같다. 무식하게도 망태버섯 외에는 이름을 아는 게 없다. 이 버섯들은 식용이 아니므로 이렇게 살아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망태버섯을 맛있게 먹는 벌레가 있다. 작지만 무섭게 생겼다. 숲은 지금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서 투두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머리에 맞을까 봐 걱정될 정도다. 도토리 줍는 사람도 많다...

사진속일상 2014.08.17

곤지암 향나무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리의 행정 지명에 나오는 곤지암(昆池岩)에는 조선 선조 때 장군 신립(申砬, 1546~1592)에 얽힌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가 신립 장군은 병사를 이끌고 충주 탄금대에서 싸우다 패하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병사들이 장군의 시체를 이곳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누구든 이 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밥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선비의 말도 바위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선비는 말에서 내려 바위를 향해 "장군의 원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행인들을 불편하게 함은 온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이 쳐..

천년의나무 2014.08.16

오래된 연장통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전중환 교수가 쓴 책이다. 지은이가 인간의 뇌를 정의하는 한 마디가 바로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은 텅 빈 백지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인간의 뇌는 우리 조상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번식하게끔 해 주었던 행동지침들로 가득하다. 즉,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망치, 대패, 톱 같은 도구가 들어 있는 연장통과 같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의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된 수많은 심리 기재들의 집합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연장통'이 인간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인간의 뇌는 현대의 복잡한 사회생활이나 정보화 시대에 맞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백만 년이 넘는 오랜 살았던 아프리카 초원 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선택된 해결책들이 지금도 우리..

읽고본느낌 2014.08.15

나무수국

주변에서 보는 수국 종류에는 수국, 산수국, 나무수국 등이 있다. 그중에서 나무수국꽃은 화사한 흰색이 특징이다. 마치 신부의 면사포를 보는 것 같다. 모양도 수국이나 산수국처럼 옆으로 퍼지지 않고 길쭉하게 생겼다. 엄청나게 많은 꽃이 모여 있어 무척 탐스럽다. 꽃이 차례로 피는 걸 저속 촬영한다면 팝콘이 터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무수국은 여름 정원을 환하게 장식해 주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4.08.14

퉁 / 송수권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고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이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 맛 한 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 - 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랑.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

시읽는기쁨 2014.08.13

논어[96]

선생님이 남자 부인을 만난즉 자로가 언짢아했다. 선생님은 맹세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만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거야. 하늘이 나를 버릴 거야."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 雍也 22 남자(南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위나라 영공의 부인인데 바람기가 있어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영공의 총애를 받아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런 남자를 공자가 만나겠다고 하니 자로가 언짢아했다. 공자는 그래도 꼭 만나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자신을 버릴 거라고까지 했다. 당시 상황을 모르고서는 이 내용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공자가 왜 굳이 반대를 무릅쓰고 만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것이 공자와 남자의 첫 번째 만남은 ..

삶의나침반 2014.08.12

좀비비추

이름 그대로 비비추 종류 가운데 크기가 제일 작다. 아담하고 귀여워서 관상용으로는 최고다. 더구나 잎 가장자리를 따라 흰 줄이 나 있어 보기가 좋다. 비비추는 서양에서 인기 있는 꽃이라는데 줄기를 따라 꽃망울부터 활짝 편 꽃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단이 있는 집이라면 한 켠에 좀비비추 무리를 가꾸어 보면 여름이 더 환해질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14.08.11

[펌] 공광규 시인의 시 창작 이야기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예술입니다. 공자는 역대의 시를 모은 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중국의 옛 사람 원매는 시를 읽으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 겁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꼭 맞는 대답은 없습니다. 시는 뭐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를 쓰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시인이 시를 써오며 공감하고 동의해온 몇 가지 공통점과 시인 개인이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작업방식: 괴테는 64년간 ‘파우스트’에 매달림/ 발자크는 매일 밤 수도사 옷을 입고 촛불을 켜놓고 여섯 시간 이상 작업을 시작해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60잔의 커피를 마시며 글..

길위의단상 2014.08.11

헛똑똑이의 시 읽기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오탁번 시인의 시론이다. 내용이 딱딱하지 않고 쉬우면서 재미있게 읽힌다. 좋은 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여러 시를 예로 제시하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인은 시어의 선택을 굉장히 중시한다. 시인이 되려면 정확한 우리말 쓰기와 함께 심상에 맞는 어휘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시는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로 시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오 시인은 미당 서정주를 아주 높게 평가하는데 시는 시 자체로만 봐야지 시인의 인간됨이나 행적은 시 감상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시인을 몰라야 시가 바로 읽힌다. 글쎄, 이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기가 힘들다. 시 작품과 시인을 과연 별개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시인의 삶과 괴리된 시가 좋은..

읽고본느낌 2014.08.10

마음의 상처

"그땐 니가 어찌나 골을 내든지...." 지나가며 하는 어머니의 말이 아프다. 그 옛날 부모님은 억척스레 일을 하셨다. 자식 다섯을 모두 서울로 보내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에 고향집에 도착하면 집은 늘 캄캄한 채 텅 비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집에서 맞아주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그때 심통을 부렸던 것 같다. 뭔 일을 밤낮없이 하느냐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부모님은 묵묵히 듣기만 했음에 틀림 없다. 그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아 40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레 꺼내보이는 게 아닐까. 그때 철이 들고 속이 깊었다면 논으로 나가 부모님의 일을 도..

참살이의꿈 2014.08.09

연장통 / 마경덕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엄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 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매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

시읽는기쁨 2014.08.08

논어[95]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널리 글공부를 하며, 예법으로 몸단속을 할 것이니, 그러므로 엇나가는 일이 좀처럼 없을 것이 아니냐!"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 雍也 21 문(文)과 예(禮)는 군자됨의 두 축이다. 문이 지(知)라면, 예는 행(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앎과 실천의 조화를 말한 것으로 이해한다. 늘 강조되는 것이지만 우선 사람되는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 공부에는 한 분야만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통섭의 인문학적 정신이 요구된다. 세상의 이치와 사람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궁구하는 것이 공부다. 그 뒤에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공자가 약례(約禮)를 말한 건 참된 인물로 살아가는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것이 예이기 때문이다. 공부와 삶이 나란히 박자를 맞추고 나아갈 ..

삶의나침반 2014.08.07

용마산에 오르다

1년 반만에 다시 만나서 용마산 산행을 했다. K는 아일랜드에서 귀국한 지가 7개월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얼굴을 보게 되었다. 내 무신경 탓이었다. 선배는 걸음이 자꾸 뒤처졌다. 내 짐만 무거운 줄 알았는데, 고민이나 아픔 없는 인생은 없다. 태풍이 지나가고 남겨 놓은 수증기 탓에 대기는 뿌옇게 흐렸다. 산길에서 만난 바위. 돼지코바위와 칼바위라고 이름붙여 본다. 아차산 정상에 있는 고구려군 4보루. 이곳은 고구려가 장수왕 63년(475년)에 이곳에 진출한 후 551년에 물러날 때까지 고구려군의 전진 기지였다. 산 능선을 따라 20여 개의 보루가 설치되었다. 광나루역에서 만나 아차산을 거쳐 용마산에 오른 후 중곡동으로 내려갔다. 3시간 30분이 걸렸다. 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

사진속일상 2014.08.06

불당리에서 검단산에 오르다

하남과 광주에 검단산이라는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검단(黔丹)'이라는 말이 '신성한'이라는 해석도 있는 만큼 같은 이름을 쓴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는 것 같다. 다만 둘 다 외견으로는 평범한 산이다. 이번에 트레커에서 불당리를 기점으로 해서 광주 검단산에 올랐다. 광주 검단산은 아직 정상이 개방되지 않고 있다. 뙤약볕이 따가웠으나 한반도로 다가오는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면서 땀을 식혀 주었다. 5백 미터급의 적당한 산 높이에 산길도 좋아서 산행에 무리는 없었다. 가볍게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열네 명이나 되는 회원이 참가해서 시끌벅적했다.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서 트레커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단체가 되면 애초에 조용한 산행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일행과 떨어져..

사진속일상 2014.08.03

트랜센던스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가능해진 미래를 다룬 SF 영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때를 '특이점', 또는 이 영화의 제목처럼 '트랜센던스'라 한다. 얼마 전에 를 읽었는데 책의 내용과 연관지어 보니 영화의 내용이 더 현실감이 났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언젠가는 우리를 이 공상 같은 세계로 이끌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초지능이 만드는 세상이 어떤지에 관심을 가지고 봤다. 중심이 되는 건 역시 나노봇이었는데 이들은 마술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낸다. 파괴된 것은 금방 복구되고 손상된 인체도 완벽하게 복구한다. 질병 없는 영생이 가능한 것이다. 윌은 여러 가지 육체를 입고 등장하는데, 다른 사람의 뇌에도 들어가 하이브리드 인간을 만들어 마음대로 조종한다. 마술 같은 상황이..

읽고본느낌 2014.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