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68

천황사 남암 전나무

천황사에서 작은 개울을 건너 포장된 산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남암(南庵)에 이른다. 이름은 암자지만 허름한 가정집처럼 생겼다. 이 암자 앞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전나무가 있다. 우뚝 솟은 모양이 다른 나무를 압도한다. 천황사 주위에는 오래된 전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절 앞에는 줄기가 부러졌지만 수령이 800년이 되었다는 나무도 있다. 그러나 줄기의 굵기로 볼 때 남암 전나무와 비슷해 보인다. 천황사는 숙종(1674~1720) 때 중건하면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아마 그 시기에 심었던 전나무들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수령은 약 4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남암 전나무는 크면서 곧고도 당당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줄기 끝이 살짝 구부려졌다. 그게 오히려 파격미로 보인다. 나무 높이는..

천년의나무 2015.10.24

용덕리 소나무

가지 몇 개가 잘려나갔지만 이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소나무다. 처음 본 순간 조지훈의 승무가 떠올랐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그런데 나무는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을 달리 한다. 원래 이곳은 용두초등학교 자리였는데 폐교되고 자연학습원이 들어섰다. 학교와 함께 마을의 보물이었던 소나무다. 나무의 키는 11m이고, 줄기 둘레는 2.8m다.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5.10.22

대불리 느티나무

대불리(大佛里)는 진안 운장산 자락에 있다. 표지석에는 신기마을로 되어 있다. 아마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 본래 이름이 신기리였을 것이다. 이 마을 입구에 큰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다. 키는 17m, 허리둘레는 4.3m다. 수령은 200년 정도인데 생기가 넘친다. 늘씬하고 호쾌하게 생겼다. 나무 주위에는 넓은 공터를 두고 밑에는 반원형의 평상을 깔아놓았다. 도로에 인접한 게 흠이긴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는 그만이다. 나무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천년의나무 2015.10.18

신양리 느티나무

진안군 주천면을 지나다가 만난 느티나무다. 55번 국도변에 있다. 마을은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는데 느티나무 홀로 외롭다. 예전에는 이곳에도 집이 있었을 법 하건만 도로 바로 옆이라 뒤로 물러났을지 모른다. 이 나무는 수령이 400년 정도 되었고, 높이는 27m, 줄기 둘레는 2.9m다. 보호수임을 알리는 표지석 위에 사탕과 감, 밤이 놓여 있다. 아마 마을 주민 중 누군가가 정성으로 바친 것이리라. 노거목을 대하는 마음이 홍시처럼 곱다.

천년의나무 2015.10.16

금천리 잣나무

금천리는 태백산 남쪽 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약 300년 전 처음 마을을 개척할 때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서 상록수인 잣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태백산에서 채취한 12그루 묘목이 오늘에는 마을을 상징하는 거목이 되었다. 해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고 한다. 잣나무 높이는 25m, 둘레는 2.5m 정도다. 관리를 잘 한 탓인지 나무는 원기왕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5.09.22

태백산 주목

얼마나 단단하게 제 속을 다지고 살았으면 '죽어 천 년'이라는 말이 있을까. 살아 있는 주목보다 오히려 죽은 형해의 주목이 더 당당하고 아름답다. 죽어서도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생명이 나무 말고 무엇이 있을까. 특히 주목은 그런 면에서 나무의 왕이다. 고산지대의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용트림하듯 제 모양을 키웠다.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태백산 천제단에서 문수봉으로 가며 만난 주목들이다. 주목 군락지는 반대 방향의 유일사 가는 길에 있다는데 그곳은 겨울에 찾아가기로 예약해야겠다. 하얀 눈옷을 입은 주목은 더욱 기대된다.

천년의나무 2015.09.16

호압사 느티나무

서울 금천구 시흥동 삼성산 자락에 있는 호압사(虎壓寺)는 조선 개국과 더불어 세워졌다. 한양에 궁궐을 지을 때 관악산의 불 기운과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위협이었다고 한다.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산의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창건한 절이 호압사다. 절 이름에 그런 의도가 분명이 드러나 있다. 경내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창건할 때 심었다면 수령은 500년이 넘었을 것이다. 안내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나무 줄기는 많이 상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지만 푸른 잎만은 싱싱하게 피워내고 있다. 키는 각각 11m, 7m, 줄기 둘레는 3.6m, 4.2m다.

천년의나무 2015.09.08

서울대공원 고사목

나무는 죽어서도 당당하다. 위엄을 잃지 않는다. 사람의 사체는 부패하면서 악취를 풍기지만, 나무는 향기를 낸다. 죽은 몸통은 온갖 곤충과 미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 된다. 나무는 위대한 존재다. 서울대공원이 있는 자리는 옛날에는 과천면 막계리라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추수가 끝나면 이 나무 앞에 떡을 해놓고 제사를 지내며 복을 빌었다. 그런데 1984년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떠나고 나무만 남게 되었다. 그마저 2010년 여름에 태풍 곤파스로 쓰러져 결국은 죽고 말았다. 지금은 그 형해만 남아 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무엇인가. 나무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영혼은 우주를 감싸며 ..

천년의나무 2015.08.18

조몬스기

조몬스기를 알게 된 건 7년 전쯤 야마오 산세이 선생의 책을 통해서였다. 일본의 남쪽 섬 야쿠시마에 수령 7,200년의 삼나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을 산 나무가 보고 싶어진 건 당연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트레커에서 야쿠시마 트레킹이 있어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조몬스기 순례 여정이었다. 해발 1,300m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왕복 21km, 10시간이 걸린 힘든 길이었다. 한 달에 35일이나 비가 온다는 야쿠시마에서 이날은 쨍쨍하게 맑았다. 날씨 덕을 톡톡히 보았다. 조몬스기 할아버지는 사진으로 보던 그대로 말없이 기다리고 계셨다. 바로 전까지는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막상 대면했을 때는 담담했다. 맑고 투명한 느낌이랄까, 올라오면서 만난 다른 삼나무 고목들과는 확연히 달..

천년의나무 2015.08.09

센간엔 일본오엽송

가고시마 센간엔(仙巖園)에 있는 일본오엽송이다. 어디를 가든 나무부터 살피게 되는 건 습관이 되었다. 센간엔에서는 이 나무가 제일 오래 되고 커 보였다. 오엽송(五葉松)은 잎이 다섯 개로 되어 있다. 잣나무 종류다. 안내문에 보니 이 나무는 수령이 350년이라고 한다. 키는 21m, 줄기 둘레는 5.4m다. 태풍 때문에 나무가 기울어졌다고 적혀 있다.

천년의나무 2015.08.08

나카마 가쥬마루

가쥬마루는 야마오 산세이가 쓴 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래서 이번에 야쿠시마에 갈 때 꼭 보고 싶었던 나무였다. 다행히 버스 투어 때 나카마[中間]에 있는 가쥬마루를 볼 수 있었다. 가쥬마루는 곧게 자라지 않고 옆으로 가지를 펼쳐 가며 싸목싸목 거목이 되는 특수한 나무다. 옆으로 퍼져 가는 가지에서 아래로 털뿌리가 자란다. 여러 해에 걸쳐서 땅에 닿고, 닿은 뒤에는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줄기의 하나가 된다. 한 그루지만 줄기가 여러 개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작은 숲처럼 우거지는 것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가쥬마루 위에 판자를 깔고 작은 오두막을 지어서 하늘을 보며 쉬었다고 썼다. 나무 위가 평평하고 단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나카마의 가쥬마루는 워낙 거목이어서 내가 상상하던 그런 나무는 아니었다..

천년의나무 2015.08.07

경포호 소나무숲

강릉에는 멋진 소나무가 많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소나무숲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저곳에 여럿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강릉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솔향 강릉'이다. 많은 지자체가 영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말로 지은 이름이어서 더 예쁘다. 예를 들면, 평택은 'Super Pyeongtaek', 익산은 ' Amazing Iksan', 고양은 'Let's Goyang', 내 사는 동네는 'Clean Gwangju'다. 외국어를 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경포호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이 소나무숲을 만났다. 금강송으로 미끈하게 뻗은 미인 소나무들이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소나무숲이 훨씬 더 넓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름다운 소나무숲은 강릉의 귀한 자산이다. 이젠 강릉하면 소나무가 떠오르게 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5.03.17

부석사 느티나무

서산 부석사(浮石寺)에는 느티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는 계획적으로 식수한 듯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수령도 다양한 느티나무가 많아 '느티나무 절'이라는 인상이 우선 든다. 영주 부석사와 닮은 듯 하면서 다르다. 의상대사와 선묘 이야기 전설은 두 절이 똑 같다. 양쪽 다 부석(浮石)이 있다. 절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시원하다. 그러나 바닷가에 있는 서산 부석사가 전설에는 더 어울린다.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에는 당나라를 마주하던 이곳이 적지였을 것이다. 절 뒤가 도비산(島飛山)이다. 야트막해서 정상까지 1시간 이내로 다녀올 수 있다. 가는 길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에는 가벼운 산행을 겸해 찾아오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31

은행동 은행나무

옛날 성남에 살 때 은행동에는 은행나무가 있을까 꽤 궁금했다. 지금은 클릭 몇 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성남을 떠나고 20년이 훨씬 넘어서야 그 은행나무를 찾아보게 되었다. '은행동(銀杏洞)'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나무다. 1960년대까지는 이곳도 광주군 중부면이었다. 성남으로 분리되면서 은행동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언덕 비탈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당시는 어디에서나 보였을 것이다. 마을 정자나무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은행정(銀杏亭)'이라고 불렸다 한다. 옆에는 마을 사람이 이용하던 우물도 있었다. 지금은 은행나무보다 더 높은 고층 아파트에 가려 나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높이 30m, 줄기 둘레 1.7m이고, 수령은 300년 정도 되었다. 여섯 개의 줄기가 모여 ..

천년의나무 2015.01.20

남한산성행궁 느티나무(2)

남한산성 행궁 안에 있는 느티나무다. 두 그루가 나란히 있는데 가지가 많이 상해서 늘씬한 키다리가 되었다. 수령은 200년 가까이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미루어 짐작컨대 전에는 더 많은 느티나무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나무들이 행궁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새로 복원한 남한산성 행궁이 썰렁하게 보이는 이유는 고목의 부재 탓이 아닌가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16

침괘정 느티나무(2)

남한산성 행궁을 비스듬히 내려다 보는 곳에 있는 느티나무다. 옆에는 '침괘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과정(枕戈亭)'이라 했는데 중간에 이름이 달라졌다. 누워서도 창을 들고 있다는 뜻인가, 무기 제작이나 보관과 관련된 곳이다. 산성마을에서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길가에 있어 사람들이 한 번씩 눈을 주고 가는 나무다. 침괘정을 고쳐 지을 때 주변에 심은 나무가 아니였던가 싶다.

천년의나무 2015.01.16

북지리 소나무

왕버들과 함께 북지리의 자랑인 소나무다. 수령이 350년 된 나무로 우람한 체형이 당당하다. 그러나 마을 쪽으로 뻗은 가지가 여럿 잘려나가서 균형이 안 맞는다. 마을에 이런 소나무가 있으면 이 터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누가 심었고, 어떤 자리였는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4.12.06

계서당 소나무

봉화 물야에 있는 계서당(溪西堂)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인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선생이 살던 집으로 광해군 5년(1613)에 지어졌다. 선생은 인조 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치면서 4차례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진주목사 등 5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근검 청빈한 생활로 이름이 높았던 분이다. 성이성 선생이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라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남원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10대 중반에는 남원에서 살기도 했다. 계서당 뒤에 옆으로 기울어진 소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500년이고 성이성 선생이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그만큼 연륜이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쓰러질 듯 계서당 쪽으로 누워서 지지대에 의지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천년의나무 2014.11.30

서벽리 느티나무

독립 의병 활동과 관계된 느티나무다. 1908년(순종 2년) 5월 18일, 변학기 외 300 의병은 이곳 30여 그루 느티나무를 은신처로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에게 화승총 공격을 가하여 40여 명을 생포하고 나머지는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뒤에 일본 헌병대는 자신들이 참패하였던 쓰라린 경험을 지우기 위해 느티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으나, 성황당에 붙어 있던 한 그루는 신목이라 하여 반쪽만 끊어가고 나머지는 남겨둔 게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서벽초등학교 구내에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7

석현리 소나무

수령이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수형이 무척 단정한 나무다.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3m다. 춘양면 석현리 마을을 굽어보는 산자락에 있다. 개인 소유지만 오래전부터 마을 당나무로 지정되어 주민들이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나무 위치가 마을 전체에 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나무 둘레에는 벤치가 여럿 놓여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도 이용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6

한수정 느티나무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한수정(寒水亭)이 있다.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권벌(1478~1548)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는 뜻으로 '한수정'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운곡천과 이웃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수정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되었다. 줄기 아랫부분만 남아 있어 기형적인 모양을 한 괴목이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 묘하게 흙담이 나무를 지나가서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천년의나무 2014.11.25

북한동 향나무

북한산 보리사 앞에 있는 향나무다. 주 등산로가 바로 옆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나무다. 수령은 350년이고, 높이는 7m, 줄기 둘레는 2.3m다. 다른 향나무에 비해 키가 높이 자란 게 특징이다. 지금은 정비되어서 음식촌이 사라졌지만, 전에는 이곳에 마을도 있었던 것 같다. 지명은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이다. 나무에 상처를 입히면 마을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젠 덩그마니 나무만 남았다.

천년의나무 2014.10.30

야탑동 느티나무

서울에 오갈 때면 이용하는 전철역이 야탑역이다. 역 광장에 사람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분당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였을 것이다. 다행히 안내문에 이 나무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원래 이 자리에 큰 전나무가 있었는데 바람에 쓰러져 죽자 당시 오야소 주민들이 인근 심의진 묘에 있던 느티나무를 옮겨 심었고, 이후 재난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정자목으로 삼았다는 사연이다. 현재 야탑동이라는 지명은 일제에 의해 명명된 것이고, 본래 마을 이름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야소(梧野所)였다고 한다. 오동나무가 많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오야소의 '야'자와 부근 탑골의 '탑'자를 따서 야탑동이 되었다. 야탑보다는 오야소라는 이름이 훨씬 멋지게 들린다. 도심 빌딩에 갇혀 답답해 보이기는 하지..

천년의나무 2014.09.09

곤지암 향나무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리의 행정 지명에 나오는 곤지암(昆池岩)에는 조선 선조 때 장군 신립(申砬, 1546~1592)에 얽힌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가 신립 장군은 병사를 이끌고 충주 탄금대에서 싸우다 패하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병사들이 장군의 시체를 이곳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누구든 이 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밥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선비의 말도 바위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선비는 말에서 내려 바위를 향해 "장군의 원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행인들을 불편하게 함은 온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이 쳐..

천년의나무 2014.08.16

학림사 소나무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남쪽에 위치한 학림사(鶴林寺)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주변 산세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포지란(鶴抱之卵)의 형국이라고 해서 학림사라 명명되었다 한다. 서울에 가까이 있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절이다. 학림사 대웅전 옆에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절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기품이 대단한 소나무다. 소나무 옆 돌의자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안내문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수령이 삼사백 년은 넉넉히 돼 보인다. 학림사의 보물 같은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7.30

도곡리 느티나무

제천시 백운면 도곡1리(道谷里, 도장골)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다. 세 그루가 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수령 400년이 된 보호수다. 마치 두 자식과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왠지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느티나무 세 그루 때문이다. 만약 나무가 없었다면 입구가 굉장히 황량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지나며 포근한 모성적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늘 함께 있으니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정자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6.22

산천단 곰솔

예로부터 제주도에 목사가 부임하면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천제(天祭)를 지냈는데,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쁘면 이곳 산천단(山川壇)에서 대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천단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여덟 그루가 있다. 500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이 드신 곰솔이다. 키도 20m 내외에 이를 정도로 크다. 곰솔이 내뿜은 기상이 대단하다. 나무 아래 초가집 한 채 있다면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4.06.18

동화사 느티나무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대로 절 주변에는 오동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심지대사 오동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큰 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찾지 못하고, 대신 절 입구에서 이 느티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에는 '인악대사(仁嶽大師)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인악대사에 대한 안내문 설명은 이렇다. '법명이 의소(義沼)인 대사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스승인 벽봉(碧峰) 스님으로부터 불교 경전을 배우고 비슬산 등에서 불경을 설파하다가 동화사에 머물렀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용주사를 주관하는데 뽑혔으며, 여러 글을 지어 바치니 정조가 크게 감탄하여 홍제(弘濟)라는 호를 내렸다. 1796년 용연사 명적암에서 세수 51세로 입적하였다.' 대구에서는 고목..

천년의나무 201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