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75

심포리 곰솔

여수 금오도 심포마을에 있는 곰솔이다. 남쪽 섬에 오니 해안가에서 해송을 자주 만난다. 그중에서도 나란히 자라고 있는 이 두 나무는 키가 18m나 되는 늘씬한 미송(美松)이다. 수령은 150년 정도 되었다. 곰솔, 해송, 흑송은 다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육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육송, 바닷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해송, 곰솔이라 부른다. 또는 나무 껍질 색깔에 따라 육송은 적송(赤松), 해송은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껍질이 하얀 백송(白松)도 있다. 백송은 잎이 셋으로 갈라진 게 다른 소나무와 다르다.

천년의나무 2013.10.08

약수리 느릅나무

수령이 46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느릅나무가 아닌가 싶다. 키도 크고 풍채도 우람하다. 안내문에는 키가 25m, 줄기 둘레가 5.5m로 적혀 있다. 평창을 지나는 국도 31호선 가에 있다. 옆으로는 평창강이 흐른다. 나무는 강과 도로 사이에 끼여 옹색한 게 아쉽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 이름이 '느티나무집'이다. 아마 이 나무를 느티나무로 착각한 것 같다. 느티나무도 느릅나뭇과니 둘은 비슷한 데가 많다. 느릅나무를 한자로는 '유(楡)'라고 쓰는데, 예부터 목재로서의 가치가 아주 높았다. 나무 재질이 그만큼 단단하다. 또 느릅나무 껍질은 소나무 껍질처럼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다. 어렸을 적 기억인데 이웃집에서 느릅나무 잎과 가지를 삶아 약으로 드시는 것도 보았다. 느릅나무가 지금은 생소하지만 ..

천년의나무 2013.09.14

남한산성행궁 느티나무

작년에 남한산성 행궁이 완전 복원되었다. 병자호란 시 인조가 피난했고, 그 뒤에도 여러 임금이 순행 때 묵어간 곳이다. 전에는 행궁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민가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남한산성 호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궁이 옛 모습을 되찾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행궁 주변에 보호수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각각 300년, 400년 된 느티나무다. 나이로 볼 때 행궁의 역사와 함께하는 나무들이다. 둘 중에서 400년 된 느티나무는 줄기가 통째로 썩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고, 가지는 철제 지지대로 버텨 놓았다. 그래도 여름에 보는 나뭇잎만은 싱싱하다. 최근에 복원된 새 건물의 생뚱함을 이 고목들이 그나마 중화시켜 준다. 이 느티나무 그늘에 앉으니 1636년의 현장이 안타깝게 그려졌..

천년의나무 2013.08.17

남한산성 연무관 느티나무

남한산성 연무관(演武館)은 군사 훈련을 위하여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세워졌다. 옆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 운동장이 훈련하던 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무관 주변에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둘 다 수령이 500년 내외로 안내문에는 적혀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두 나무는 수령 차이가 꽤 나는 것 같다. 첫 번째 느티나무는 흙을 찾아 뻗어나가는 뿌리의 모양이 그로테스크하다. 아무튼 500살이 되었다면 병자호란의 현장도 이들 느티나무는 지켜보았다는 얘기다.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08.13

올림픽공원 은행나무(2)

넓은 잔디밭과 하늘을 배경으로 덩그마니 자리 잡고 있는 나무다. 도심에서 만나는 색다른 풍경이다. 예전에는 여기에 마을이 있고, 다른 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말끔하게 공원으로 단장되었고, 이 은행나무만 살아남았다. 500년의 연륜을 존중해준 탓일까? 평범하지 않은 풍경에는 자꾸 눈이 가게 된다. 극진한 보호를 받는 이 은행나무는 사람들의 주목을 즐거워할까, 아니면 외로움을 느낄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보호구역의 인디언이 떠오른다. 모뉴먼트밸리에서 지프를 몰던 주름살 굵게 패인 그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천년의나무 2013.06.30

솔고개 소나무

미송대회(美松大會)가 있다면 메달감으로 충분한 나무다. 심사기준이 자태만이 아니라 배경도 중요하다면, 이 소나무는 뒤로는 단풍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서 있어 더욱 가산점을 받을 것 같다.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의 솔고개에 있다. 행정지명으로는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2리다. 이곳은 송현동(松峴洞), 또는 산솔마을이라고도 불리는가 보다. 모두가 소나무와 연계된 이름이다. 그만큼 소나무가 많았다는 뜻이리라. 이 나무에 얽힌 전설도 있다.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솔고개를 넘어갈 때 이 소나무가 눈물을 흘리며 배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령은 270년 정도로 추산되니 아마 이 소나무의 할아버지 적 얘기였나 보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가..

천년의나무 2013.06.15

세간리 은행나무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의 곽재우 의병장 생가 옆에 있는 우람한 은행나무다. 아마 곽 장군도 이 은행나무 밑에서 뛰놀며 자랐을 것이다.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1m, 줄기 둘레는 10.3m나 된다. 천연기념물 302호다. 생가 안내문에는 장군의 일생이 이렇게 나와 있다. 곽재우(郭再祐) 의병장은 1552년 8월 28일 이곳 세간리에서 태어나 1585년 별시과거에 급제했으나 글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파방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책과 붓을 던지고 가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유격전과 기습공격에 능했던 장군은 연전연승하며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란이 끝나고는 성주목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나 극심한 당쟁에 실망..

천년의나무 2013.06.10

세간리 현고수

현고수(懸鼓樹)란 '북을 매단 나무'란 뜻으로 선조 25년(1592) 4월 13일에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41세 유생이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에서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전해 온다. 나무는 북을 매달기 좋게 줄기가 꺾어져 있다. 이런 역사적 의미로 인하여 현고수는 2008년에 천연기념물 493호로 지정되었다. 이 느티나무의 나이는 500여 년으로 추산되며,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8.4m다. 생김새부터가 범상치 않은 느티나무다. 해마다 열리는 의병제전 행사를 위한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한다.

천년의나무 2013.06.10

오도리 이팝나무

운 좋게 꽃이 활짝 핀 상태의 오도리 이팝나무를 만났다. 마침 황매산으로 철쭉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경남 합천군 가회면 오도리에 있다. 나무 앞에 있는 마을 표지석은 '황골마을'로 되어 있다.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에 걸맞게 엄청나게 큰 이팝나무다. 안내문에는 높이 15m, 줄기 둘레 2.8m로 되어 있는데 줄기 둘레는 그보다 훨씬 더 돼 보인다. 지나가던 어느 팀에서 나무를 두 팔로 에워쌌는데 여섯 사람이 맞잡아야 했다. 마을에서는 당연히 당산나무로 소중히 모신다. 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나무의 꽃 피는 모양을 보고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한다.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들고, 꽃이 시름시름 피면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천년의나무 2013.06.05

백곡리 감나무

일반적으로 과실나무의 수명은 짧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백 년이 넘는 과실나무를 보기가 어렵다. 그 까닭은 과실을 영글게 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탓이 아닌가 싶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에 있는 이 감나무는 연세가 450살이나 되셨다. 과연 감나무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하긴 상주에는 750살이나 되신 감나무도 있다. 그러나 크기로는 백곡리 감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긴 세월을 버티어 낸 기상과 위엄이 느껴진다. 감나무 줄기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아이들이 들어가 놀아도 될 만한 공간이다. 줄기에서는 세 개의 큰 가지가 위로 뻗어 있다. 높이가 28m나 되니 키다리다. 지금도 감이 열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곡리가 자랑할 만한 대단한 감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06.03

성황리 소나무(2)

의령을 지나던 길에 이 나무의 안내판을 도로에서 우연히 보았다. 5년 만의 재회였다. 나무는 그때와 다름 없이 마을 뒷산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달라진 건 소나무 앞으로 '역사문화 부자길'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 생가부터 이곳까지 만들어진 길이다. 그래도 '부자길'이라는 이름은 좀 그렇다. 성황리 소나무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나무다. 드러난 뿌리나 가지의 생김새가 굉장히 힘차다. 그러나 걱정되는 점도 있다. 줄기에서 옆으로 펼쳐진 가지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버팀목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앞으로도 거센 태풍을 잘 이기고 명목으로서의 자리를 잘 지켜가길 빌 뿐이다.

천년의나무 2013.05.31

신전리 이팝나무

이팝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여름이 시작될 시기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고 하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덮여서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 경남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이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이 350년이나 되고, 키 12m, 줄기 둘레 4.2m에 달한다. 그러나 많이 노쇠한 모습이다. 줄기는 썩어 가운데가 비어 있고. 한 편은 가지도 잘려 나갔다. 이런 상태에서나마 꽃을 피우고 있는 게 대단하다. 이팝나무 옆에는 비슷한 수령의 팽나무가 있다. 둘은 마치 부부처럼 나란히 서 있는데, 두 나무가 만드는 풍경이 아름답..

천년의나무 2013.05.27

좌수영지 푸조나무

부산 좌수영지(左水營址)에는 곰솔 외에 또 다른 천연기념물 나무가 있다. 푸조나무다. 푸조나무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어원을 살펴보면 푸조나무를 한자로 조엽수라고 하는데 '거칠 조'자를 쓴다. 우리말 '푸'와 한자의 '조'가 합쳐져서 '푸조'라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푸'는 '풀'을 의미하거나 '가꾸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푸조라는 이름에는 거칠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잎이나 나무의 모양새가 전체적으로 거칠다. 푸조나무는 주로 남쪽 지방 해안가에서 자란다. 곰솔과 팽나무처럼 소금기를 잘 견디는 나무다. 우리나라에는 세 그루의 천연기념물 푸조나무가 있는데 이 좌수영지 푸조나무가 그중 하나다. 이 나무에는 서낭당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마을의 안녕을 지켜준다고 ..

천년의나무 2013.05.25

좌수영지 곰솔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는 조선시대 때 좌수영이 주둔한 곳이다. 무관 정3품인 수군절도사가 근무했던 좌수영은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경상도 동쪽 해안 방어를 맡고 있었다. 성 둘레는 약 2.8km, 성벽 높이는 4m였다. 지금은 관리 소홀로 대부분 유실되었다. 이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이 있다. 좌수영이 있을 당시 이 나무에 신이 들어있다고 믿어 군선을 보호하고 무사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신성시했던 나무였다. 나이는 400살이 넘었고, 키 22m, 줄기 둘레 4.1m나 되는 큰 나무다. 군사 시설에 있는 나무답게 우람하고 용맹하게 생겼다. 주변에 나무들이 많아 한 눈에 들어오게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옆에는 200년이 넘은 소나무도 나란히 자라고 있다. 좌수영 옛 시설..

천년의나무 2013.05.25

구량리 은행나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조선 초기에 이지대(李之帶) 선생이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선생은 1394년(태조 3년)에 경상도 수군만호로 있으면서 왜구가 탄 배를 붙잡은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았고, 그 후 벼슬이 높아져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1452년에는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죽이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키는 등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 이때 한양에서 가지고 와 연못가에 심었던 것이 이 은행나무라고 전한다. 이 전설이 맞는다면 나무의 나이는 560년이 넘는다. 현재 나무 높이는 22m, 줄기 둘레는 12m에 이른다. 천연기념물 64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를 찾아가는 길이 옹색하여 차를 몇 번이나 되돌려야 했다. 동네 할아..

천년의나무 2013.05.23

범어사 등나무 군락

부산 범어사(梵魚寺) 옆 계곡에는 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군락지가 있다. 6.5ha 면적에 6,500여 그루가 자라는 엄청난 규모다. 그래서 이 계곡의 다른 이름이 등운곡(藤雲谷)이다. 전에는 베어 쓰기를 반복한 탓에 제일 오래된 등나무라도 나이가 100년 남짓 된다고 한다. 큰 것은 줄기 둘레가 140cm, 길이가 15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등나무는 혼자 곧바로 서지 못하고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굽히지 않고 꿋꿋한 지조를 지켜온 옛 선비들은 등나무의 이런 특성을 싫어하여 집안에는 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름에 등나무 그늘이 만드는 시원함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평상에 누워 기묘하게 비틀어진 등나무 줄기를 감상하는 맛도 좋다. 지금이 등나..

천년의나무 2013.05.22

삼천동 곰솔

곰솔은 바닷가에서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 껍질 색깔이 검다 하여 흑송(黑松)이라고도 불린다.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 있는 이 곰솔은 특이하게 내륙 지방에 있다. 원래 이곳은 인동 장씨의 선산이었는데, 곰솔은 선산을 지키는 나무였다. '장씨산송대(張氏山松臺)'라는 표지석이 아직 남아 있다. 전에는 열여섯 개의 가지가 펼쳐진 모양이 아름다워 학송(鶴松)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그런데 나무가 지금처럼 처참하게 변한 건 2001년이었다. 당시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이 뛰었다. 그러자 나무가 죽으면 보호구역에서 해제될 것을 노린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이 주입되었다. 나무 밑동에 공구로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약을 넣은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죽어 갔다. 곰솔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결..

천년의나무 2013.05.12

이사리 느티나무

줄기 속은 텅 비었고 둘레만 남아 있다. 그래도 큰 몸집을 지탱하면서 초록잎을 무성히 피웠다. 나무 아래 서니 수관이 부채살처럼 넓고 환하다. 고목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 느티나무의 키는 13m, 줄기 둘레는 5.6m다. 안내문에는 나이가 220살로 나와 있다. 그런데 특별한 모양 때문인지 훨씬 더 쳐주고 싶은 마음이다. 경북 예천군 개포면 이사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3.05.06

하회마을 느티나무(2)

하회마을에 들를 때면 이 나무는 꼭 보고 간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하회마을의 중심 나무다. 이곳에 삼신당(三神堂)이 있는데 마을에 있는 세 사당 중 하나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다음 날 아침에는 여기서 제를 올린다. 그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우리 민속에서 삼신할미는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조상신이다.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삼신께 비는 모습을 어릴 때 보았다. 하회마을의 삼신당도 그런 기능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외지인이 들락거리는 지금은 나무 둘레에 온갖 소원을 적은 흰 종이가 빼곡하다. 삼심할미가 계신다면 아르바이트생이라도 고용해서 저 민원을 처리해야 할 것 같다. 거대한 나무의 밑동을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천년의나무 2013.05.04

국립현충원 수양벚나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경내만큼 수양벚나무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보지 못했다. 대개 벚나무들 사이에 한둘씩 끼어 있지만 여기서는 대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나무가 제일 크다. 얼마나 큰지 카메라를 최대 광각으로 해도 잘 잡히지 않는다. 다른 수양벚나무는 어느 정도 높이로 자란 뒤에는 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데 이 나무는 위로 힘차게 뻗어 올랐다. 수양벚나무에도 여러 품종이 있는 것 같다. 수양벚나무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이 나무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나무 옆에 있다 보면 지나는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야, 희한하게 생겼다. 꼭 수양버들 같애." 수양벚나무라는 이름도 그 모양에 어울리게 잘 지은 것 같다. 수양벚꽃이 달린 늘어진 가지가 봄바람에 하느작거리는 ..

천년의나무 2013.04.26

호암미술관 반송

오래된 소나무는 아니지만 수형이 아주 예뻐 이곳에 올린다. 첫눈에 단아한 고려청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조형미가 빼어나다. 동서남북 어디에서 봐도 똑같다. 귀족적 고상함이라고 할까, 호암미술관 분위기가 나는 반송이다. 미술관 마당에는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공작새가 한 마리 있다. 사람 모인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 가끔 울기도 하는데 공작새 소리는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반송이야말로 소나무의 공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의나무 2013.04.25

효종왕릉 느티나무

효종왕릉 재실 뜰에는 회양목 외에 느티나무도 한 그루 있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나무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 재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관리하시는 분이 말하길 잎이 돋아나면 더 멋있다고 하신다. 특히 첫눈이 내리면 최고로 환상적이라고 덧붙이신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효종왕릉 재실(齋室)은 여느 가정집과 비슷하다. 아담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하다. 뜰에 있는 이 느티나무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살린다. 옆에 있는 세종왕릉인 영릉과 달리 이곳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늘 조용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느티나무의 변신을 지켜보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3.04.21

효종왕릉 회양목

세종왕릉인 영릉(英陵) 옆에는 효종왕릉인 영릉(寧陵)도 있다. 두 능이 한글 이름은 같다. 효종왕릉 재실(齋室) 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양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양목이라고 한다. 여기에 재실이 조성된 게 1763년이라니 수령은 약 300년 정도로 짐작한다. 키는 4.7m고, 줄기 둘레는 21cm다. 워낙 더디게 자라는 나무라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에 최고령이었던 용주사 회양목이 고사하고 난 뒤에 효종왕릉 회양목이 천연기념물 자리를 물려받았다. 2005년의 일이었다. 이 회양목은 수형이 예쁘다. 무척 곱게 자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 회양목에는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었다. 먹이도 먹지 않았는지 삐쩍 마른 모습이 애처로웠다. 동물이 자식을 키워내는 정성은 갸륵..

천년의나무 2013.04.21

영릉 소나무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다. 왕릉은 어디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영릉의 소나무는 특별히 더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팔등신의 미끈한 미인들을 보는 것 같다. 그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게 수복방(守僕房) 앞에 있는 반송이다. 다섯 개로 갈라진 가지가 균형있게 잘 자랐다. 반송치고는 키도 상당히 크다. 수복방은 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인 수릉관(守陵官)이나 청소 등의 허드렛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인 수복(守僕)이 거처하던 곳이다. 영릉을 둘러싼 소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솔바람을 맞아보면 눈과 마음이 절로 시원해진다.

천년의나무 2013.04.20

금촌동 은행나무

파주에 간 길에 잠시 만나고 온 은행나무다. 파주시 보호수로 수령이 500년 정도 되었다.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5m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한 나무로 믿어서 경사스러운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두 개의 줄기가 V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지금은 많이 노쇠해 보인다. 마을 공동체의 쇠락과 함께 나무도 생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3.04.12

식영정 소나무

담양에 있는 식영정(息影亭)은 조선 명종 15년(1560)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고, 송강 정철이 자주 찾아온 곳이다. 송강이 이곳을 무대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다.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신 성산사(星山祠)가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식영정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적송 한 그루가 있다. 식영정에서 성산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는데, 우람한 자태며 쭉 뻗은 기상이 대단한 소나무다. 마치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보는 것 같다. '선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구체적으로 선비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 사전을 찾아보니,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재물을 탐내지..

천년의나무 2013.01.13

창평리 느티나무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마을이다. 삼지내마을이라고도 하는데 1900년대 초에 세워진 한옥들이 모여 있는 동네다. 주변에는 명옥헌 등 문화유산도 많다. 역사가 깊은 마을인 만큼 고목이 없을 리 없다. 면사무소가 위치한 길을 따라 오래된 느티나무 일곱 그루가 늘어서 있다. 예전에도 이곳이 관청로가 아니었나 싶다. 수령은 200년쯤 되었는데 이미 수명을 다한 듯 노쇠한 모습이다. 주변에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 슬로시티로서 마을이나 고목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더 세심한 관리 및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3.01.12

무등산 느티나무

무등산을 오르다 보면 증심사(證心寺)를 지나 중머리재로 가는 길에서 큰 느티나무를 만난다. 등산로 한복판에 있어서 경사로를 오르다가 고개를 들면 시야 가득 느티나무가 반긴다. 이런 높이에서 이만한 느티나무를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느티나무 주변은 등산객이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랑 넓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한쪽에는 송풍정(松風亭)이라는 정자도 있다. 얼마나 오래된 정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느티나무로 보아 옛날에 이곳은 분명 사람의 활동과 관련된 장소였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450년이고, 높이는 28m, 줄기 둘레는 4.8m다. 마치 무등산을 호위하는 지킴이처럼 우뚝하니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3.01.11

석파정 소나무

서울시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는 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金興根)의 소유였으나 집이 욕심난 대원군이 반강제로 빼앗았다. 집을 빌려 고종을 머물게 한 뒤 주인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왕이 머문 집은 신하된 도리로 들어갈 수 없는 게 당시의 관례였다고 한다. 이러니 권력을 쥐려고 그렇게도 야단을 치는가 보다. 석파정 마당에 멋지게 생긴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곳에 처음 별장을 만든 사람이 심은 나무일 것이다. 수령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300년은 되어 보인다. 대원군을 비롯한 여러 선비들이 이 나무를 완상하며 그늘에서 쉬기도 했을 것이다. 새롭게 단장된 석파정에서 그나마 가장 눈길을 끄는 명품 반송이다.

천년의나무 2012.12.20

심곡서원 느티나무

용인에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은 조광조 선생을 기리기 위해 1650년에 건립되었다. 이 느티나무는 서원이 세워질 때 같이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4m다. 옆에 있는 향나무와 V자를 만들며 서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선생 당시의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 같아 보여서 재미있다. 서원 뒤편에는 또 다른 느티나무가 있다. 역시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수령이다. 더 뒤편에는 오래된 은행나무도 보이는데 서원 땅이 아닌지 담장 밖에 있다. 심곡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훼손되지 않고 존속되었다고 한다. 사방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고 있는 속에서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세월의 무상함을 전하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2.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