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75

태산 오대부송

중국 태산(泰山)을 올라가다 보면 오대부송을 만난다. 계단길 옆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고 안내문이 있다. 한문과 영어로 된 안내문 내용은 대략 이렇다. '기원전 219년에 진시황이 태산을 오르던 중에 갑자기 비를 만났고,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 황제는 고마움의 표시로 이 나무에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지금 보는 나무는 청대인 1730년 경에 심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이품송과 비슷한 일화를 가졌다. 큰 나라 작은 나라를 불문하고 옛날 제왕들은 벼슬 내리기를 즐겨했는가 보다. 한 번 이런 명칭이 붙으면 사람들이 극진히 보살필 것이다. 비 오는 때에 하필 진시황이 이 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는 우연이 나무의 운명을 바꾸었다. 우리들 인생사처럼 재미있는 일이다.

천년의나무 2012.08.01

단암리 느티나무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丹岩里) 남한강변에 네 그루의 느티나무가 사이좋게 자라고 있다. 나무가 별로 없는 강변에서 한 눈에 띄는 나무다. 느티나무가 있다는 건 옛날에 이곳은 마을이 있는 나루터였음을 말해준다.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한 그대로다. 옛 마을 이름은 의암마을이었고, 마을 앞에 버렁말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그 당시 마을 입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나루터와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이 쉬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무 옆에는 주막 하나쯤 있었을 것도 같다. 이제 사람들은 다 떠나고 나루터도 사라졌지만 나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더 크고 싱싱하게자라면서, 변해도 변하지 있는 게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그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다. 강 건너편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로 개..

천년의나무 2012.06.03

송광사 전나무

완주 송광사(松廣寺) 대웅전 앞에 키다리 전나무가 있다. 경내에서는 첫눈에 들어오는 나무다. 가끔 절에서 전나무를 보게 되는데 불교와 전나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전나무도절의 중심 자리에 일부러 심고 가꾼 것이리라. 어느 학승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 조주선사가 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柏樹'를 측백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잣나무든 측백나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조주선사의 이 유명한 선문답을 상기하는 것이라면 절에서 이런 나무를 만날들 이상할 게 없다.전나무도 외견상 잣이나 측백나무와 비슷하다. 전나무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곧게 뻗어 자란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이런 곧게 자라..

천년의나무 2012.05.25

독립공원 미루나무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독립공원은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다. 형무소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한쪽 구석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사형장도 있다. 사형장 입구에는 사형장을 만들 때 심었다는 미루나무가 있어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린다.일본 강점기 때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생의 마지막으로 이 나무 아래를 지나며 피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사형이 집행되었던 슬픔의 장소다. 안내문에는 미루나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의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恨)을 눈물로써 토해낼 때 붙들고 통곡했던 것으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또한 사형장 안에 있는 또 한 ..

천년의나무 2012.05.19

노림리 느티나무

원주시 부론면 노림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노림(魯林)은 이름으로 볼 때 숲과 관계된 지명으로 보인다.그래선지 오래된 나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현재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하나는 도로 옆에, 다른 하나는 도로 가운데에 있다. 나무를 가운데 두고 양 방향의 도로가 지나간다. 둘 다 수령은 200년 가량 되었다. 옛날에는 꽤 큰 마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남한강과 그 지류인 섬강을 옆에 끼고 있다.강둑을 따라 자전거 길이 휑하니 뚫려 있다. 최근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만들었다.넓은 공원에도 사람을 보기 어렵다. 나무라도 많이 심는다면 썰렁한 풍경이 좀 가려지기나 할까?

천년의나무 2012.05.12

법천사지 느티나무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법천사지가 있다. 법천사(法泉寺)는 고려 중기 법상종(法相宗)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무신정권 이전까지는 지방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번창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지금까지 폐사로 남아 있다. 폐사지를 느티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지키고 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괴목이다. 특히 줄기가 특이한데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런데도 잎을 보면 수세가 왕성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던 촌로께서 잎이 이렇게 무성하니 풍년이 들 모양이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수령이 얼마쯤 되었느냐니까 잘 모르겠단다. 500년은 넘어 보인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 정도의 나무라면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만한데 나무에 대한 설명이 없어 ..

천년의나무 2012.05.09

휴천동 느티나무

영주에 있는 옛 중학교 모교를 찾아갔다. 졸업한 지 40년도 더 지났는데 다시 찾은 지도 30년은 되는 것 같다. 학교나 주변이나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때는 낮은 집들이 듬성듬성 있어 멀리서도 학교 건물이 보였는데 지금은 온통 아파트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코앞까지 갔어도 학교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학교도 완전히 변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은 어디에고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으며 멀거니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때 반가운 이 나무를 보았다. 어렴풋이 옛 생각이 떠올랐다. 이 느티나무는 학교 밖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이 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입구에있었다. 등하교할 때몇몇 친구는이 느티나무 옆을 지나 집과 학교를 오갔다. 그중에 가까웠던 친구 N도 있었다. 종례를 마치면 티격태격 장난치면서 운..

천년의나무 2012.05.08

현저동 위성류

위성류를 아시나요? 나무에 별 관심이 없으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만나기 어려운 나무다. 나도 용주사에선가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그런 위성류가 서울에 있다. 위성류(渭城柳)는 한자 이름을 풀면 '위성의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이별을 노래한 왕유(王維)의 시에 위성의 버드나무가 나온다. 渭城朝雨읍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위성의 아침비는 가볍게 먼지를 적시고 여관의 버드나무는 더욱더 푸르고 싱싱하네 권하노니 다시 한 잔을 다 드시게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구가 없으리니 위성(渭城)은 중국 장안의 북쪽 교외에 있던 도시였다.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멀리 여행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던 곳이다. 길 떠나는 사람에게 버드나무를 건네주는 것은, 버드나무 류..

천년의나무 2012.04.30

해미읍성 회화나무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의 상흔이 남아 있다.이 회화나무도 그중 하나다.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철삿줄로 머리채를 감고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하고 죽였다. 1790~1880년대에 일어난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적어도 1천 명은 될 거로 추정한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붙잡혀온 신자 수가 너무 많아그냥 구덩이에 밀어 넣고 생매장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수령 300년 정도인 이 회화나무는 자신의 몸에 매달린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또한 얼마나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을 들었을 것인가. 그래선지 나무는 기력이 많이 상해 있다. 나무도 속울음을 슬피 울었으리라. 가톨릭에서는 이 나무를 순교목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해미성지 안에 있는 기념관..

천년의나무 2012.04.27

해미읍성 느티나무

해미읍성(海美邑城)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종 22년(1491)에 축조된 성이다. 이순신 장군도 초급 장교 시절에 이곳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성 안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동헌 앞에 있는 이 느티나무다. 마치 찾아오는 손님을 맞듯 허리를 구부리고 서 있다. 수령이 400년으로, 높이 16m, 줄기 둘레 4.7m다. 전에 왔을 때보다 성 안은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어수선했던 가옥들도 모두 철거 되었다. 느티나무 주위 풍경도 시원하다.

천년의나무 2012.04.27

안림동 느티나무

충주시 안림동(安林洞)은 시내에서 충주댐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예전의 안심리(安心里)와 어림리(御林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동네다. 특히 어림(御林)은 백제 문주왕(文周王, 재위 475-477) 때 가행궁이 있던 솔밭이었다고 한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옛 마을의 흔적은 사라지는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지나온 세월의 깊이를 전해준다. 수령이 300년가량 된 나무다. 넓은 도로변에 있어 눈에는 잘 띄는데 왠지 초라하고 쓸쓸해 보인다. 작은 보호수 표석 하나가 옆을 지키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2.04.20

강원감영 느티나무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강원감영터는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강원도 일대를 다스렸던 감영이 있던 곳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원주군청이 있다가 이전하고 지금은 감영 건물의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강원도 관찰사의 집무실이었던 선화당(宣化堂) 뒤에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윗부분이 많이 상했고 점점 노쇠해져가는 게 안타깝지만 V자 형의 줄기는 아직 당당하다. 나무 키는 25m, 줄기 둘레는 6m다. 이 나무는 줄기에있는 송이버섯 모양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직접 보니 남자의 거시기와 민망할 정도로 닮았다. 크기도 만만찮다. 옛날에는 자녀를 못 낳은 여인네들이 이 나무 앞에서 몰래 치성을 드렸다 한다. 하여튼 재미있게 생긴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4.08

율동 느티나무

성남시 분당구 율동공원 앞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350년이 되었는데몸이 많이 상했다. 둘로 갈라진 줄기 모두 중간에서 잘려 있다. 하체보다 상체가 너무 빈약하다.줄기 둘레는 5m, 높이는 13m다. 이곳 지명이 율동(栗洞)인 것은 밤나무가 많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작고 한적한 농촌 마을이 분당 개발 바람을 타면서 도시로 변했다. 다행히 이곳은 분당 외곽에 있어 그런대로 전원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에 이 주위는 전부 논이었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였고, 단옷날에는 그네를 매고 마을 사람들이 즐겼다고 전한다. 그러나 몇십 년 사이에많은 것이 사라졌고, 나무도 수족을 잃었다. 300살이 넘은 이 나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철없는 아이들이 뛰놀고, 일에 지친 사람들이 ..

천년의나무 2012.03.26

중앙동 느티나무

재미있게 생긴 느티나무다. 두 줄기가 하나로 붙은 연리목 모양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연리목은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연결된 것이므로 이건 연리목은 아니다.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200년은 넘어 보인다. 줄기가 붙은 모양으로 볼 때 같이 붙어 산 지도 한참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이런 형태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고 크지 않을까 싶다. 과천시 중앙동주민센터 구내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2.03.13

중앙동 은행나무

건강하고 잘 생긴 은행나무다. 과천시 중앙동 구세군회관 운동장 끝에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은 과천외고다. 이곳 중앙동 일대는 옛날에 관아와 향교 등이 있던 곳으로 보인다. 곳곳에 오래된 나무들이 있다. 이 은행나무도 그중의 하나다. 이 나무의 수령은 400년이 넘었다. 높이는 21m, 줄기 둘레는 4.3m다.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모습이 무척 예쁠 것 같은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3.13

과천동 향나무

이 옆으로 수도 없이 다녔지만, 골목길에숨어 있어서 있는 줄 몰랐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에 있는 향나무다.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 기둥 줄기가 많이 상했어도 나무 상태는 건강하다. 아담하면서 예쁘게 생긴 나무다. 특히 줄기의 라인이 예술이다. 옛날에 이 나무는 마을 입구에 있었다 한다. 옆에는 우물도 있었을 것이다. 시골 풍경 하나가 그려진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와 현대식 건물에 둘러싸여 무척 답답하게 보인다. 아마 개인 사유지에 속해 있는 것 같다. 이 땅 주인은 누구도 소유 못 한 보물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나무의 높이는 8m, 줄기 둘레 3m다.

천년의나무 2012.03.10

탄벌동 참나무

경기도 광주시 탄벌동(炭筏洞)은 옛날에 숯을 굽던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숯가마골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그래선지 뒷산에는 참나무가 많다. 숯가마골 입구에 오래된 참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거의 300년 가까이 된 나무다. 참나무가 수백 년을 산다는 건 드문 일이다.그래서 이 나무는 오래전부터 마을의 당산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유지에 속해 있는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어렵다. 이 나무가 참나무 중에서 어떤 종류인지는 확인을 못했다. 짐작건대 갈참나무가 아닌가 싶다. 내 고향에는 600년 된 갈참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로 독야청청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나무도 대단하다. 다만 주변 나무들 때문에 생장에 제한을 받는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03.06

건봉사 팽나무

고성에 있는 금강산 건봉사(乾鳳寺)는 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아도(阿道) 화상이 창건한 고찰이다. 조선 시대 때는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규모가 컸으며,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 도량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전쟁 중 남북 간 치열했던 공방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 복원이 시작되고 있다.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옆에 500년 된 팽나무가 있다. 끔찍했던 병화(兵火)를 이기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전쟁 전 766칸에 달했다는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는데 유일하게 불이문과 이 팽나무만 살아남았다. 수백 년을 살아가는 고목을 보면 뭔가 신령한 기운이 도와주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수없는 천재지변에 견뎌내지 못한다. 이 나무도 마찬가지다...

천년의나무 2012.02.27

드름산 소나무

춘천 드름산에는 멋진 소나무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전망대 옆에 서있는 이 소나무가 제일이다. 나무 모양으로 봐서는 반송인데 천인절벽 바위틈에서 너무나 곱게 자랐다. 마치 어느 집 정원수를 옮겨 심은 것 같다. 이 나무는 의암호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서 있다. 많은 나무가 척박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상하거나 모양이 비틀어지는데 이 소나무는 다르다.자연 상태에서 이만큼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나무도 드물 것이다. 춘천 드름산의 제일송(第一松)이다.

천년의나무 2012.02.23

경기전 참죽나무

전주에 있는경기전(慶基殿)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는 북쪽 담 밖에 있는 참죽나무다. 수령이 350년이라고 나와 있는데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참죽나무일 것이다. 중국이 원산인 참죽나무는 한자 이름이 '椿'인데 에 아주 오래 사는 나무로 나온다. 팔천 년을 봄으로 삼고, 팔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뒤마가 쓴'춘희(椿姬)'는 원이름대로 하면 '참죽나무 아가씨'다.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를 '椿'으로 쓰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경기전 참죽나무는 큰 줄기가 부러진 상태로 나무가 여러 군데 잘려 있다. 생육 환경도 옹색하고 좋지 못하다. 담 밖에 있어서 그런지 왠지 소홀히 대접받는 느낌이다. 줄기 둘레는 4m, 나무 높이는 20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12.02.21

보경사 반송

포항에 있는 보경사(寶鏡寺)는 주변의 소나무가 아름답다. 솔숲에 둘러싸인 절집이 아늑하고 고풍스럽다. 절 안에 들어서면가운데에 있는 반송 한 그루가 우선 눈에 든다. 단아한 모습이 절집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러나 줄기를 보면 보통의 반송과 달리 구불구불 용트림 모양을 하고 있다. 수령이 적어도 200년은 넘어 보인다. 원래 보경사에는 800년 된 회화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해인가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지면서 죽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있었던 자리를 가리켜 준다. 보경사에는 오래된 탱자나무도 있지만 역시 태풍 피해를 당해 온전치 못하다. 지금으로서는 이 반송이 보경사를 대표하는 나무로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2.02.13

보경사 탱자나무

포항 보경사(寶鏡寺)의 탱자나무를 보러 갔다가 너무나 왜소한 모습에 당황했다. 수령이 400년 된 나무로는 어울리지 않는 크기였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6m, 밑부분 둘레 97cm, 가슴 높이 둘레 60cm로서, 나무 모양은 원형이고 수세는 매우 왕성하다. 경기도 강화군 갑관리와 사기리에 각각 1그루씩(천연기념물 78, 79호)이 더 있으나 이 나무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키나 나무 모양은 현재의 나무와는 딴판이다. 수세가 왕성한 게 아니라 무척 상해 있다. 원래 보경사에는 두 그루의 탱자나무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수년 전태풍으로 하나는 줄기가 부러져 죽었고, 남은 나무도 많이 다쳤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초라해..

천년의나무 2012.02.12

영월암 은행나무

경기도 이천 설봉산에 있는 영월암(映月庵)은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고려 때 나옹선사가 중건한 아담한 절이다. 절 앞에는 나옹선사가 중건 기념으로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두 개의 줄기가 나란히 붙어 자라는데 같은 뿌리에서 나온 한 나무다. 전설대로라면 수령은 700년 가까이 된다. 나무 높이는 37m로 상당히 큰 편이다. 줄기 둘레는 5m다. 그런데 나무가 위치한 곳이 어수선하고 불안해 보인다. 이 은행나무는 영월암을 상징하는 나무가 아닌가. 주변 정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천년의나무 2012.01.11

남촌동 은행나무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남촌동성당 안에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성계가 조선조를 세우자 고려 왕족 중 한 사람이 이 마을로 피난해 왔는데, 후에 이분의 묘를 쓰면서 심은 나무가 바로 이 은행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600년쯤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나무는 줄기가 둘로 갈라져서 높이 솟아 있다. 10년 전 태풍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성당 지붕이 파손된 일이 있다고 한다. 노쇠한 듯 보이지만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들이 많이 돋아나고 있다. 나무 높이는 31m, 줄기 둘레는 7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12.01.04

구월동 회화나무

이 나무가 있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낮은 지역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약 500년 전 이곳을 왕래하던 배에서 흘러들어온 씨앗이 자라 지금의 회화나무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바다에서 왔다고 '해(海)나무'로 부른다. 회화나무는 작은 언덕에 있다. 전설대로라면 옛날에는 바다를 굽어보며 있었을 것이다.지금은 밭이지만 그때는 나무 주위에 동네가 있지 않았을까. 500년이라는 세월이 이곳을 어촌에서 농촌으로, 그리고 도시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수령이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회화나무는 높이가 30m, 줄기 둘레가 6m 정도 되는 크기다.

천년의나무 2011.12.26

간석동 향나무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이 향나무는 500년 전 어떤 장사가 우물에서 물을 떠먹고 말채찍을 꽂아 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해진다. 드문 말채찍 전설이다. 장사가 심어서 그런지 나무는 크고 당당하다. 전체적인 맵시도 균형이 잡혀 있다. 키는 17.5m, 줄기 둘레는 3,5m이다. 이 향나무는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최립(崔笠, 1539-1612)의 집 마당에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비 온 뒤'라는 시가 있다. 朝來風急雨몽몽 錦繡千林一半空 已作漫山秋色了 殘紅與泛碧溪中 - 雨後 / 崔笠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수놓은 비단 같던 수풀 절반을 비웠네 이미 온 산은 가을빛을 거두고서 남은 붉은 잎을 푸른 물에 띄우네

천년의나무 2011.12.21

장수동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다. 인천시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최고령일 것이다. 생김새도 범상치 않다. 다섯 개의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져 나온 모습이 털북숭이 큰 짐승이 웅크려 있는 것 같다. 겨울이라서 나무의 진면목이 다 드러난다. 그러나 잎이 달린 계절이라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나무 높이는 30m, 줄기 둘레는 8.6m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을 이곳은 지금은 옆으로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고가차도가 지나가고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등산객들도 많이 지나다녀 북적인다. 나무 보호를 위해 이중으로 울타리를 세웠다. 그러나 나무줄기를 둘러싼 금속 울타리는 아쉽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이 음력 7월과 10월에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고, 집안에 액운이 생기거나 돌림병이 돌면 이 나..

천년의나무 2011.12.17

장수동 느티나무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長壽洞)은 옛날에는 장자골, 무네미, 만의골의 세 마을이 있던 곳이다.그중에서 장자골은 마을을 지켰다는 여덟 명의 장사 전설로 생긴 이름이다. 임진왜란 이후 도둑이 날뛰었는데, 여덟 장사가 마을을 지켜 장자골은 안전했다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에 잡은 도둑을 묶어두고 징벌을 가했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9m, 줄기 둘레는 3.4m이다. 몇 군데 가지가 잘려나가 나무는 온전한 모양이 아니다. 나무 주위는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천년의나무 2011.12.17

순흥면사무소 느티나무

영주시에 있는 순흥면사무소는 옛 순흥도호부가 있던 자리다. 사무소 주변의 왕버들, 느티나무 고목들이 옛날의 자취를 말해준다. 봉도각(逢島閣)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정원은 도호부 청사의 뒤뜰이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갈 때 순흥을 지나면서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이 느티나무는 도호부 옛터에 있는 여러 고목 중 하나다. 수령이 400년인데 줄기에 공동이 생겨 밑바닥까지 깊이 패 있다. 아이들이 들어가 놀 수 있을 만한 넓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모양새는 무척 단아하다. 마치 옛 선비의 정갈한 마음 자세를 보는 듯하다.

천년의나무 2011.12.08

보라동 느티나무

지난달 가을이 짙어갈 때 이 느티나무를 만났다.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다. 기묘사화 때 조광보(趙光輔)가 심었다고 하니 수령은 500년이 되었다. 안내문에는 400년으로 나와 있는데, 조광보가 심었던 후손 느티나무쯤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옛날에 이 자리는 양반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던 정자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 본다. 나무 주변에는 공원을 아담하게 꾸며 놓았다.의자와운동기구도 있어 나무와 함께 하는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나무의 생육 상태도 좋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또 다른 느티나무가 있다. 이 나무에는 더 오랜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이 건국할 때 마을에 돌림병이 돌았는데 이태조의 부마 양경공의 꿈에 한 고승이 나타나 마을을 지킬 수호목을 찾아 심으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천년의나무 2011.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