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75

망해사 팽나무

전북 김제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담한 절이 있다. 망해사(望海寺)다. 망해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겨버렸고, 선조 22년(1589)에 진묵선사(震默禪師)가 낙서전(樂西殿)을 지으면서 재건시켰다고 한다. 지금 낙서전 앞에 있는 팽나무 두 그루는 건물의 준공 기념으로 진묵선사가 직접 심은 것이다. 400년이 넘은 나무다. 망해사는 소박하면서 정갈한 절이다. 절이 앉아 있는 산도 작고 집도 작다. 한옥을 닮은 작은 집 네 채가 겸손하게 앉아 있다. 부처를 따르는 마음이 이래야 한다는 듯 절 자체가 말 없는 설법이다. 망해사에 들면 마음이 따스하고 편안해진다.낙서전(樂西殿), 청조헌(聽潮軒)같은 이름도 정겹다..

천년의나무 2010.10.12

여의도공원 소나무

박정희 시대 때 여의도에 '5.16광장'이 만들어졌다. 12만 평의 넓이였는데 국가적 대형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내 기억에 5.16광장은 1974년에 열렸던'엑스플로'라는 개신교 행사로 남아 있다. 8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설교와 강의를 들으며 며칠동안 고행을 했다. 저녁에는 그룹별로 성경공부를 하고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잤다. 일부는 광장에서 텐트 생활도 했다. 이 행사가 끝나던 날,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고 8.15 경축식장의 사건도 일어났다. '5.16광장'은 '여의도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아스팔트 광장이 숲으로 변신했다. 물도 흐르고 호수도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여기가 옛날의 그 아스팔트 광장이었던가 싶다. 공원의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소나무..

천년의나무 2010.10.07

중앙고 은행나무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정문에 수령이 500 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 이 나무는 마을의수호신으로 숭앙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이면 오곡백과를 차려 놓고 한 해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소원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2008 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은 중앙고등학교는 민족 사학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3.1 운동의 시작도 이곳 중앙고등학교에서였다. 당시에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이 교장으로 있었는데 교장 사택에서의 모임이 3.1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마 이 은행나무 아래서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걱정하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은행나무는 중앙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나무의 생육 환경이 너무 나쁘다. 수위실과 인근 주택에 갇혀 ..

천년의나무 2010.09.30

재동 백송(2)

백송을 보러 갔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데 2004년에 처음 만난 이래 이번이 네번 째다. 백송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오래 되었다. 나이가 600살이고 키는 15 m다. 또한 제일 아름답다. V자 모양으로 뻗은 줄기는 멀리서 보면 눈부실 듯 하얗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들어와 있지만 옛날에 이곳은 풍양 조씨 집안이 대대로 살던 터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풍양 조씨는 판서를 아홉 명이나 배출한 명문이었다. 영조 때는 조상경 판서가 살았던 집이었다. 풍양 조씨가 득세할 때는백송의 껍질이 유난히 희게 보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에 안동 김씨가 세력을 얻으면서 백송은 흰빛을 잃어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물론 풍양 조씨 쪽에서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뒤에 이 ..

천년의나무 2010.09.17

중앙공원 압각수

청주시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다. 수령은 900년 정도 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의 한 고사와 관계되어 유명하다. 고려 공왕양 2년(1390)에 목은 이색(李穡) 등이 ‘이초의 난’에 연루되어 청주옥에 갇혔을 때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이색과 권근이 모두 체포되어 청주옥에 구금되었는데, 국문이 매우 혹독하여 일이 어찌될 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루는 새벽부터 비가 쏟아져 한낮이 못되어 산이 무너지고 물이 솟아 넘쳐서 성문이 허물어져 물이 넘쳐 성안으로 들어오니, 가옥이 모두 물에 잠겼다. 문사관(問事官)이 물에 빠져 떠내려가다가 압각수(鴨脚樹)를 붙잡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는데,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석방하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색과 권근이..

천년의나무 2010.08.27

공림사 느티나무

고목 중에서 느티나무가 가장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천 년 이상된 느티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 대략 스무 그루 정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기 공림사의 느티나무도 그중의 하나로 천 년의 나무다. 공림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끝에천 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말이 천 년이지 천 년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 나무가 자리한 곳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둘은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나무에게 바위는 또 아득한 존재일지 모른다. 줄기는 천 년의 연륜이 새겨진 듯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말 그대로 괴목이다. 그러나 상체는 줄기에 비해 허약하다. 나무는 긴 세월을 지나면서 많은 수족을 잃었을 것이다. 줄기 둘레는 ..

천년의나무 2010.08.19

박세당고택 은행나무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자락에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선생 고택이 있다. 선생은 쟁론만을 일삼는 조정의 벼슬자리를 버리고 불혹의 나이가 되어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실학 사상을 다듬었다. 이곳의 옛 이름은 석천동(石泉洞)이었다. 고택에서부터 수락산 계곡을 따라가며 선생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문화유적 안내사의 설명을 통해 서계 선생의 면모를 일부나마 알게 되었다.특히 스스로 적삼에 땀을 적시며 채전을 가꾸는 실학 사상가의 모습이라던가, 틀에 박힌 주자학을 신봉하던 당시의 학풍에 반기를 들고 사서삼경을 재해석한 을 저술했다는 데서 비주류로서의 선생의 올곧은 성품을 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선생은 사문난적이란 올가미가 씌워졌지만 한양으로 압송되어 문초..

천년의나무 2010.08.13

관아공원 느티나무

충주시 성내동에 있는 관아공원(官衙公園)은 조선시대 때 충청감영이 있던 터다. 선조 때 감영이 공주로 옮겨간 뒤에는 충주목(忠州牧)의 관아로 사용되었다.지금은 청녕헌(淸寧軒) 등 옛 건물 일부가 남아 있는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관아공원 안에 수령이 500여 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다. 옛날에 관찰사가 근무할 때도 살아있었던 오래된 느티나무다.큰 줄기 두 개가V자형으로 갈라졌지만작은 줄기들이 많이 잘려서 나무는 크기에 비해 왜소해 보인다. 안내원의 설명으로는벼락을 맞아서 상한 탓이라고 한다. 사실 많은 나무들이 벼락이나 화재로 인하여 도중에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또 인간의 손길을 피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수 백년 간 무사히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이 나무는 높..

천년의나무 2010.08.11

단호사 소나무

충주 시내에 있는 단호사(丹湖寺)는 고려 시대에 제작한 철불이 모셔져 있는 작은 절이다. 충주에서 수안보로 가는 대로변에 있어 찾기가 쉽다. 그러나 전에 고향을 오갈 때도 이 길을 자주 이용했는데 절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단호사 대웅전 앞에 멋진소나무가 있다. 멀리서 보면잘 가꾸어 놓은 한 그루 분재 같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구불구불한 줄기가 마치 용트림 하듯 기운차게 뻗어나간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동양화에 나오는 멋진 소나무 모양 그대로다. 이 소나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조선 초기 강원도에서 약방을 경영하던 문씨라는 사람이 재산은 많아도 슬하게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날 한 노인으로부터 단호사에서 불공을 ..

천년의나무 2010.08.05

원흥리 왕버들

어린 시절 여름밤을 으시시하게 만들던 도깨비불의 정체는 지금은 다 안다. 고목의 인 성분이 바람에 날리며 내는 빛이 바로 도깨비불이다. 나무 중에서도 인이 가장 많이 나오는 종류가 왕버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왕버들을 도깨비나무, 한자로는 귀류(鬼柳)라고 부른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에 있는 원흥리는 왕버들 마을이다. 평지 한가운데 있는 마을인데 여러 그루의 왕버들 고목들이 산재해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 옆에 있는데 수령이 200년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훨씬 더 오래돼 보인다. 또 마을 입구에는 고사목 왕버들도 그대로 남아 있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서도 왕버들이 자라고 있다. 이름 그대로 버드나무 중에서도 크게 자라는 편인 왕버들은 마을의 정자나무로..

천년의나무 2010.08.02

연원동 느티나무

상주는 조선시대 때 경상감영이 위치하기도 했던 전통의 고을이다. 그래선지 상주에서는 정자나무나 당산나무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길을 가다가 큰 나무가 있으면 차를 세우고 둘러보는데 상주에서는 너무 자주 나타나 어지간한 나무는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그래도 연원동에 있는 이 나무가 끌어당기는 자력에는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전형적인 당산나무인데 우선 크기에 압도된다. 그리고 나무 앞에 서면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 생김새 때문인지 왠지 왜소해지고 위축되는 것 같다. 나무의 카리스마가 상당하다. 나무를 처음 만날 때 가장 궁금한 것이 나무의 나이다. 그러나 나무의 나이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가장 정확한 방법이 나이테..

천년의나무 2010.07.31

소은리 감나무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에 있는 이 감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다. 무려 750살이나 되었다. 상주는 곶감으로 유명한데 역시 최고령 감나무도 상주에 있다. 이 나무는 지금은 보호수지만 천연기념물로 신청이 되어 있는 상태다. 워낙 오래되어서인지 나무 줄기는 가운데가 썩어 없어지고 둘로 나누어졌다. 그런데도 감나무는 더없이 싱싱하다. 지금도 한 해에 3천 개 이상의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고 한다. 나무 줄기의 둘레는 약 3 m에 이르지만 나무 자체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 아마 느티나무였다면 엄청난 크기로 자랐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집에도 감나무가 있었다.그 감나무에 올라가 놀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감나무 가지가 잘 부러진다고 늘 주의를 주곤 했다. 그 감나무 밑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

천년의나무 2010.07.27

두곡리 뽕나무

마을 입구에 큰 은행나무가 있는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안쪽으로 골목길을 따라 더 들어가면 오래된 뽕나무 한 그루를또 만날 수 있다. 이렇게 큰 뽕나무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어렸을 때 봄이면 누에치기로 바빴는데 그때 뽕나무밭의 뽕나무들은 가지를 쳐내는 통에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다. 그런 경험 탓인지 뽕나무도 이렇게 느티나무처럼 거목으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이 항상 신기하게 느껴진다.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 한다. 쌀, 곶감, 누에고치가 그러하다. 그런 양잠의 고장답게 이렇게 크게 자란 뽕나무가 남아 있다. 이런 거목으로서의 뽕나무는 세 번째 보게 된다. 강원도 정선 봉양리에 있는 뽕나무와 서울 창덕궁에 있는 뽕나무도 이런 거목이었다. 그런데 이곳 두곡리 뽕나무는 안내문에 수령이 ..

천년의나무 2010.07.24

두곡리 은행나무(2)

겨울에 보는 나무와 여름에 보는 나무가 이렇게 다른 줄 몰랐다. 3년 전 겨울에 이 나무를 보았을 땐 안스러울 정도였는데여름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처음에는 사실 같은 나무인지도 몰랐다.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동구에 있는 이 나무는 동네쪽에서 바라보면 논의 초록 물결과 어우러져 더 예쁘다. 한 켠으로 약간 기울어진 모습이 동네를 찾아오는 사람을 환영하는 모습같기도 하다. 이 은행나무가 있는 두곡2리는 일명 띄실마을이라고 하는데약 500년 전에 진주 유씨가 마을 뒷산에 부모님의 묘소를 모시고 묘소 옆에 띄집을 짓고 시묘살이을 하여 '띄실'이라 불렸다 한다. 당시에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난 이 은행나무는 마을과 연륜을 같이 하고 있으며 마을의 상징이 되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0.07.24

임천관아터 소나무

부여군에 있는 임천면(林川面)은 지금은 비록 작은 시골 면이지만 옛날에는 번성한 고을이었다. 백제 때는 가림군(嘉林郡)으로 불리웠고, 고려 때는 자사(刺史)가 파견될 정도로 중심지였다. 또 조선 초기에는 부(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옛날 관아가 있던 터는 지금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로 변해 있다. 그 관아터에 소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 옛 흔적을 지키고 있다. 수령은 300 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 맵시가 참 예쁘다.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막 내려앉는 모습 같다. 관아 중에서도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참한 소나무를 앉혀두고 일을 보았다면 분명 선정을 베풀지 않았을까. 요사이 지자체에서 호화 청사를 짓는다고 난리들인데 건물보다는 차라리 이런 나무 기를 욕심을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천년의나무 2010.07.14

성흥산성 느티나무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성흥산성(聖興山城)은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축조된 성이다. 옛 이름은 가림성(加林城)이었다. 부여 남쪽에 있는데 사비로 천도하기 37년 전에 만들어졌으니 아마 남쪽에서 웅진으로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방어진지였을 것이다. 이 성흥산성 남문터에 멋진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된 고목인데 잘 생겼고 늠름하다. 정자나무로서의 느티나무는 대개 마을 입구나 한가운데에 있는데 250 m나 되는 산 정상부에 이렇게 크고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주위에 다른 높은 산이 없다보니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이 나무만이 독야청청하다. 때를 잘 맞춘다면 멋진 사진작품을 만들 수 있는 나무라고 생각된다. 백제 산성이라는 이미지라면 늦가을이나 겨울이 적당하지 않을까. 그..

천년의나무 2010.07.09

낙화암 천년송

낙화암에 서서 서기 660년의 현장을 상상해 본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부소산 뒤쪽으로 쫓기다가 절벽과 마주친다. 더 이상 도망갈 길도 없다. 여인들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꽃이 되어 떨어진다. 한순간에 이곳은 눈물과 한숨, 통곡과 비명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백마강은 붉은 피와 서러운 꽃잎으로 가득 덮였으리라. 그때로부터 1350년이 흘렀고, 사람들은 대를 이어 나고 죽었으며, 강물도 쉼 없이 흘렀다. 부소산의 나무들도 나고 죽고를 거듭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후세 사람들이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 위에 백화정(百花亭)을 지었다. 전설대로라면 천화정, 만화정이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소박한 이름이 백제인의 마음을 닮은듯하여 반갑..

천년의나무 2010.07.01

전주향교 은행나무

전주향교에는 유난히 은행나무가 많다. 그중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것만도 다섯 그루나 된다. 수령이 대부분 400년이 넘었다. 향교에 은행나무을 심은 이유는 공자가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행'(杏)은 본래 살구나무를 뜻하는 한자다. 살구나무가 맞는지 은행나무가 맞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은행나무로 해석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전주향교는 여느 향교와 달리 생동감이 있어 보였다. 찾는 사람도 많고 관리도 잘 되고 있었다. 분위기도 고즈넉한 게 아주 좋았다. 안쪽에서는 몇 사람이 모여 창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향교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다섯 그루의 은행나무는 제각기 특색이 있었다. 대체로 단정하고 얌전한 모양새였다. 그중에서 하나만 모양이 특..

천년의나무 2010.06.29

사당4동 은행나무

집에서 가까운 사당4동에 동작구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이 있다. 은행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한 그루인데, 모두다 수령이 300년 내외가 된 나무들이다. 그 가운데 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다정하게 서로 이웃하고 있다. 윗가지는 서로 겹쳐져 나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좁은 골목길에서 옹색하고 자라고 있지만 예전에는 한양 외곽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동구쯤에 있었을 것 같다. 백 년 전에 찍은 동작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로 변했다. 낮은 야산을 등지고 드문드문 서 있는 초가집이 백 년 전의 한양 외곽 풍경이었다. 당시에 이 나무들은 마을의 일원으로써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정경이 눈에 잡히는 듯하다. 도시에서 인간들에게 삶의 터전을 ..

천년의나무 2010.06.03

봉남동 느티나무

큰 나무를 보기 위해 안성향교를 찾아갔다. 퇴락해가는 향교 건물 주위에 몇 그루의 고목이 있었으나 크게 주목할 나무는 아니었다. 향교를 지키고계시던 분에게 오래된 나무를 물으니이 느티나무를 가르쳐주셨다. 향교에서 가까운 봉남동의 대로변에 있었다. 그래도 이 느티나무는 주변 공간이 넉넉해서 온전한 수형을 갖추고 있었다. 한 바퀴 돌면서 보았는데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균형 잡힌 몸매가 아름다웠다. 나무 높이는 12 m, 줄기 둘레는 6.8 m이고, 나이는 350 살이다. 안성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도시에 있는 여느 나무들이 그러하듯 이 나무 역시 도시화로 인한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다. 350 년 전으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수십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시 외곽의 한적한 마을이었을 것이다.나무 주변에남..

천년의나무 2010.05.11

구포동 느티나무

안성시내에 있는 안성향교 부근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많다. 지금은 안성초등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과 교육청이 자리잡고 있지만예전에는 이곳이 관공서가 아니었나 싶다. 옛 자취는 사라지고 오래된 나무들만 이곳저곳에 산재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교육청 옆에 있다.거의 700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데 줄기의 굵기가 굉장하다. 그러나 줄기에 비해 나뭇가지는 빈약한 편으로 가지가 많이 잘려나가서 기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또 바로 옆으로 도로가 지나가고 나무는 보도 위에 있는데 생육 환경이 열악한 점이 아쉽다. 안성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이 나무를 실제보호할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나무 높이는 15 m, 줄기 둘레는 7 m이다. 수령이 700 년인 느티나무라면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도..

천년의나무 2010.05.04

구포동성당 소나무

나무를 보러 안성에 갔다가 아름다운 성당을 만났다. 안성시 구포동에 있는 구포동성당이다. 1900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인 공안국(孔安國, R. A. Combert) 신부가 창설했다니 역사가 110년에 이른다. 성당 건물은 1922년에 건립했는데 정면은 서양식이지만 본체는 한옥 모양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그러니 이 건물만도 9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한옥성당 중 하나라고 한다. 성당 부지 안의 조경이 멋진 소나무들로 되어 있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나무들은 신구 건물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비록 그리 오래된 나무는 아니지만 그 모양과 어울림이 멋져서 여기에 올린다. 구포동성당은 내가 본 성당 중 나무 배치가 가장 멋지고 주변과 잘 ..

천년의나무 2010.05.02

칠장사 나옹송

경기도 안성에 있는 칠장사(七長寺)에 나옹송이라 부르는 소나무가 있다. 고려말의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바로 옆에는 나한전이 있는데 이곳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머물다가 꿈에 과거시험 문제를 계시 받아 장원급제 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그래서 지금도 수험생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고 한다. 소나무는 모양이 특이하다. 힘차게 자란 줄기가 중간에서 멈춘 뒤 옆으로 퍼져 있다. 산 쪽에서 보면 완전한 T자형이다.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도 보인다. 나무 높이는 8 m, 줄기 둘레는 2.1 m이다. 나옹선사가 이 소나무를 심은 게 맞다면 600 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무 크기로는 그렇게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다. 설화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겠다. 박문수..

천년의나무 2010.04.30

무장읍성 팽나무

전북 고창에 있는 무장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조한 성이다. 왜구 침략에 대비하여 세운 성인데 둘레가 약 1.4 km에 이른다. 현재 객사를 비롯한 옛 건물이 몇 채 남아있는데 지금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이곳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농민군이 맨 처음 입성한 현장이라고 한다. 읍성 안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 이 팽나무다. 줄기 모양으로 보았을 때 족히 500년은 되어 보인다. 마침 이 팽나무 옆에는 옛날 관리들의 송덕비가 길게 늘어서 있어 세월과 인간사의 무상함을 더욱 실감나게 해준다. 인간은 죽어서도 무언가 흔적을 남기려 하지만 채 백년이 지나지 않아 오든 게 잊혀질 뿐이다. 더구나 그것이 부끄러운 기념물이 될 줄 그 누가 ..

천년의나무 2010.04.09

청평사 주목

춘천에 있는 청평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주목이다. 극락보전 옆에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수령이 800 년이고, 다른 하나는 500 년이다. 그래도 키는 10 m 밖에 안 된다. 워낙 느리고 단단하게 자라는 나무다 보니 일년에 1 cm 정도씩밖에 못 자란 셈이다. 나이가 800 살이면 다른 나무 같으면 엄청 큰 고목이 되었을 텐데 이 주목에서는 그런느낌이 전혀 없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대로 고산지대에서만나는 고사목 정도 되어야 세월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령 나무는 정선 두위봉에 있는 1,400 년 된 주목이라고 한다. 올해는 만나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청평사에는 시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도 있다. 키 17 m, 줄기 둘레 2.9 m이고,수령은 250 년 정..

천년의나무 2010.03.15

강원도립화목원 버즘나무

도시인들과 가장 친한 나무는 아마 버즘나무일 것이다. 아무리 나무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플라타너스라고 하면 어떤 나무인지 다 알아차린다. 버즘나무가 바로 플라타너스다. 나무 줄기가 흰색이나 회색 등의 조각으로 얼룩진 것이 마치 얼굴에 핀 버짐을 닮아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그런데 얼굴에 생긴 얼룩은 '버짐'이라고 하지만 나무 이름은 '버즘나무'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강원도립화목원에 큰 버즘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100 년가까이 되었다. 버즘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1900 년대 초반이라니까 아마 우리나라에있는 버즘나무 중 최고령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키는 30 m, 줄기 둘레는 5.4 m에 이른다. 특징은 다른 나무에 비해 전체적으로 흰색을 많이 띄고 있다는 점이다. 버즘나무는 척박한..

천년의나무 2010.03.09

대한다원 삼나무숲

보성차밭 하면 대한다원(大韓茶園)이 대표적이다. 차밭 중에서 가장 일찍 관광농원으로 지정되었고 규모도 제일 크다. 1950년대에 조성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170여 만 평의 면적에 580여 만 그루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차나무 외에도 삼나무나 편백나무 등의 관상수도 많이 심어져 있다. 늦은 2월의 어느 날 아침, 대한다원을 찾았을 때는 인적이 끊긴 채 조용했다. 우리 일행 외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호젓하게 차밭을 산책할 수 있었지만 파릇파릇한 초록색 찻잎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유감이었다.늦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사진으로 보던 차밭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대신에 쭉쭉 뻗은 삼나무 숲길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많은 삼나무를 한꺼번에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다. 삼나무는 일본이 ..

천년의나무 2010.03.04

노적봉 여자나무

목포시 유달산에 있는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짚으로 바위 봉우리를 둘러막아 군량미로 보이게 위장함으로써 왜군이 겁을 먹고 도망가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 노적봉에 여자의 몸을 닮은 나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안내판에는 다산목(多産木)으로 나와 있는데 사람들은 보통 여자나무[女人木]로 부른다. 누운 여자를 닮은 나무가너무 적나라해서 동행에 따라서는 민망해질 수도 있는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이 나무는 주민들 사이에서 아이를 많이 낳게 해 준다는 믿음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 나무를 쳐다보며 기원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여근목인 셈이다. 10년 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는데 나무는 큰길 바로 옆에 있어 짖궂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건드린 흠집도 보인다. 이 나무의 수..

천년의나무 2010.02.27

금남리 황목근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에 있는 이 나무는 너른 들판에 홀로 서 있다. 그 자태가 당당하면서도 아름답다. 느릎나무과의 일종인 팽나무인데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5월에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황(黃)씨 성을,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목근(木根)이라고 불려진다. 이 나무는 자신의 이름으로 3천 평이 넘는 땅을 소유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공동 재산을 이 나무 앞으로 등기해 놓은 것이다. 마을 회의록을 통해 전해지는 이런 사실이 1900년대 초의 일이라고 하니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뜻이 더해져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의 나이는 500 살 가량 되었고, 크기는 15 m, 줄기 둘레는 3.2 m이다. 당연히 마을이 동신목(洞神木)으로 보호 받고 있..

천년의나무 2010.02.20

삼강주막 회화나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삼강주막(三江酒幕)은 옛 삼강나루 자리에 있다. 이곳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수상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강을 건너야 했다. 아마 보부상들이나 과객들로 북적거렸던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강에 둑이 놓이고 강을 가로지는 삼강교가 생겨 옛 나루터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우리 시대 마지막 주막이라는 삼강주막만이 남아 있다. 이 주막을 지키는 400여 년이 된 회화나무가 있다. 그나마 이 나무가 있어서 주막은 외롭지 않다.회화나무의 상징성으로 볼 때 이 나무는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이곳에 들린 어느 선비가 심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무와 작은 주막이 아주 잘 어울린다. 만약 나무가 없다면 주막은 한없이 ..

천년의나무 201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