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69

추사고택 백송

추사 김정희 선생은 25세 되는 때인 1809년에 사신단의 일행으로 중국 연경에 다녀온다. 이때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중국 문인들과 교류를 한다.그의 삶에서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돌아올 때 선생은 붓대에 백송 종자를 가져와 고조부인 김흥경(金興慶, 1677-1750)의 묘 앞에 심는다. 현재 천연기념물 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일명 '예산 백송'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송은 무척 귀하다. 그만큼 우리 토양에서는 자라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고관대작들이 주로 중국에서 들여와 심었는데 그중 일부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고택 인근에 있는 이 백송도 그래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추사고택옆에는 백송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많은 백송들이 심어져 있다. 아직 어려선지 줄기..

천년의나무 2011.03.31

구괴정 느티나무

아산시 배방면 맹사성고택 옆에 구괴정(九槐亭)이 있다.조선 세종 때 맹사성(孟思誠) 정승이 황희(黃喜), 권진(權軫) 정승과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었다고 해서 명명한 정자다. 세 정승은 이곳에서 시문을 지어 읊으며 망중한을 즐기고 국정을 논의하는 한편 일하는 농민을 불러 위로하고 민정도 살폈다고 한다. '九槐亭'이라는 현판은 신축한 정자 안쪽에있고, 겉에는 '三相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세 정승이 국사를 논의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느티나무보다는 정승이 들어간 이름을 내거는 게 더 자랑거리가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때로부터 6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세 분이 심었다는 느티나무들은 늙어 대부분 수명을 다했고, 지금은 두 그루만이 남아 있다. 그것도 철제 지지대에 의지해 노쇠한 몸..

천년의나무 2011.03.29

맹사성고택 은행나무

아산시 배방면에 있는 맹사성고택은 조선 초의 명정승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이 살았던 옛집이다. 맹사성은 세종 때에 영의정과 좌의정을 지내며 문민정치의 기틀을 다진 명재상이자 청백리였다. 고려말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이기도 하다. 원래 이 집은 최영 장군 집안의 소유였는데 한 왕조의 몰락 탓인지 사위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맹사성고택 마당에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1380년 경에 맹사성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한다. 전설대로라면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 당시 고불은 나무 보호를 위해 단을 쌓고 축대를 만들었으며 뜻이 맞은 사람들과 훗날 나무 아래서공부를 했는데 공자를 본떠서인지 사람들은 행단(杏壇)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나무 높이는 35 m, 줄기 둘레는 ..

천년의나무 2011.03.28

광덕사 느티나무

광덕사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난다. 왼편 길 옆에 있는데 우람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이는 20 m, 줄기 둘레는 5.5 m이고 수령은 400여 년으로 추정된다. 다른 보통의 느티나무와 달리 키가 상당히 큰 편이다. 또 다른 느티나무는 대웅전 뒤 산비탈에 있다. 워낙 경사가 가팔라서 가까이 가기는 어렵다. 저런 지형에 고목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동안 산불의 피해도 여러 번 겪었을 텐데 400년의 세월을 생존해 왔다는 게 대단하다. 일주문 쪽에 있는 느티나무와 달리 이 나무는 상처가 많이 보인다. 그만큼 더 안스럽게 여겨지는 나무다. 두 나무는 절의 앞과 뒤에서 비슷한 세월을 살며 고찰을 지키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1.03.25

광덕사 호두나무

호두를 한자로 쓰면 호도(胡桃)다. ‘오랑캐의 복숭아’라는 뜻인데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고려 충렬왕 16년(1290)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류청신(柳淸臣)이 호두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묘목을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신의 고향집(광덕면 매당리) 뜰에 심었다고 한다. 광덕사에 심었다는 호두나무 묘목이 바로 우리나라 호두나무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지금도 천안 지역이 호두의 대표적 명물인 것을 보면 그 연원은 거의 800년 전으로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가 천안 광덕사에 있다. 높이가 18.2 m에 이르는 거목으로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아마 류청신이 심었다는 호두나무의 몇 대 후손 쯤..

천년의나무 2011.03.25

청와대 반송

청와대 앞을 지날 때마다 반송(盤松)이 제일 눈에 들어온다. 정문 진입로 양편으로 20여 그루의 반송들이 도열해 있다. 뒤의 북악산, 청와대 건물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 집의 주인은 들고날 때마다 아름다운 반송의 환영을 받는 셈이다. 반송은 소나무의 품종 중 하나로 원줄기 없이 여러 개의 줄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그래서 만지송(萬枝松)이라는 별칭이 있다. 재미있는 건 반송 종자를 발아시키면 15% 정도만 반송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유전적인 형질은 아닌가 보다. 청와대 반송은 모양도 아름답고 건강하다. 수령은50년에서 100년 사이 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볼 수는 없다. 정치도 이 나무들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년의나무 2011.02.26

경운궁터 회화나무

서울시 중구 정동 도심 한복판에 넓은 공터가 있다. 옛 경운궁(慶運宮)이 있던 자리다.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하면서 궁역이 축소되고 이 자리에 경기여고가 들어섰다. 1988년에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빈 터로 되었는데 지나다닐 때마다 늘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미국 대사관이 이곳으로 옮긴다는 말이 있었다. 빈 터 한복판에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들어가보고 싶지만 문이 닫혀 있고, 미국 땅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어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지나갈 때는 문이 열려 있어 몇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나무는 45도 정도 기울어진 채 지지대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 몇 년 전에 방화로 큰 손상을 입었다는데 끝내 회복되지..

천년의나무 2011.02.23

십리포 소사나무숲(2)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인천시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에 있는 소사나무숲을 보면서 시의 그 구절이 떠올랐다.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비틀리고 굽고 한 쪽으로 누운 나무들을 키운 건 팔할 이상이 바람이었다. 대부도에 간 길에 일부러 영흥도까지 나가 보았다. 십리포에 있는 소사나무숲을 보기 위해서였다. 5년 만이었다.그러나 이번에는 겨울 칼바람에 잠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겨우 사진 몇 장 찍고 뒤돌아나왔다. 척박한 모래밭에서 이런 매운 해풍을 맞으며 100년 이상의 삶을 살아온 이 나무들의 생명력은 도대체 얼마만큼 질긴 것일까? 섬사람들은 해풍을 막기 위해 바닷가를 따라 소사나무를 심었다. 다른 나무도 심었지만 다 죽고 결국 소사나무만 살아 남았다. 130년 전 일이었..

천년의나무 2011.01.29

신전리 느티나무

고향에 있는 신전리(新田里) 마을 앞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함께 했던 나무다. 그러나 우리가 다니던 길에서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이 나무에 얽힌 추억은 거의 없다. 어쩌다 나무 옆을 지나게 될 때 올라가 놀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 느티나무는 신전리 당산나무였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전 날에 동네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 동제(洞祭)을 지냈다고 한다. 먼저 연초가 되면 제사를 주관할 유사(有司)를 네 사람 뽑았다. 유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아무 흉사가 없었던 집에서 골라야 했다. 그리고 영주 우시장에서 가서 제물로 바칠 소를 사 가지고 오는데 소에게는 존칭을 썼다. 보통 "이랴!"라고 하지만 이 소에게는 마치 사람에게 하듯 "가시더"라고..

천년의나무 2011.01.22

금전 배롱나무

중국 곤명에 오삼계(吳三桂)가 1600년대에 세운 금전(金殿)이 있다. 200 톤이 넘는구리를 써서 건물을 온통 청동만으로 만들었다. 지붕도 기와도 모두 청동인 것이 특이하다. 이 금전 앞에 오래된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오삼계가 사랑하는 연인 진원원(陳圓圓)을위해 심었다고 한다.그렇다면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 나무 모양만 보아도 그만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굵은 줄기는 대부분 썩어 없어졌고 거죽만 남았다. 크기는 작지만 괴목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나무에는 '명수명목(名樹名木)'이라는 표찰이 달려 있다. 나무를 뜻하는 한자에는 목(木)과 수(樹)가 있다. 일반적으로 목(木)을 많이 쓰지만 수(樹)를 쓰기도 한다. 나무의 나이를 가리킬 때는 목령(木齡)이라 하지 않고 수령..

천년의나무 2011.01.12

해경공원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Eucalyptus)는 호주가 원산이면서 호주를 대표하는 나무다. 지금도 호주 전체 삼림의 75%는 이 유칼립투스라고 한다. 유칼립투스는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들 중 하나다. 그리고 코알라가 이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나무는 호주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중국에는 운남성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중국 운남성 곤명(昆明)의 해경공원에오래된 유칼립투스 수십 그루가 있다. 중국에 도입된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수령은 100년 정도 되었다. 큰 나무는 줄기가 5 m에 이를 정도로 굵다. 표석에는 'The First Eucalyptus of China'라고 적혀 있다. 해경공원은 곤명호 옆에 있는데 바다 같이 넓은 호수를 따라 유칼립투스가 도열해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천년의나무 2011.01.11

귀신사 느티나무

절 이름이 귀신사? 처음 들으면 고개가 갸웃할 것이다. 그러나 한자로는 '돌아올 귀'[歸]에 '믿을 신'[信]을 쓴다. 믿음으로 돌아오는 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름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전북 김제에 있다. 귀신사를 처음 찾았던 것은 10여 년 전이었다. 그때 절 뒤 언덕에 있는 느티나무 삼형제가 인상적이었다. 그 느티나무를 보러 이번에 다시 들렀다. 귀신사로 들어가는길은 전에 비해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경내도 훨씬 더 단정해졌다. 그러나 느티나무만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나무는 수령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눈대중으로 볼 때 100년 남짓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곳이 귀신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3층석탑과 느..

천년의나무 2011.01.04

금산사 산사나무

전북 김제에 있는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앞에 오래된 산사나무가 있다. 둘로 갈라진 줄기가 대부분은 썩어 없어졌고 일부 껍질만 남았다. 겉모양으로만 보면 살아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봄이면 하얀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붉은 열매를 맺는다.그런 모습을 보며 꺼지지 않는 생명력에 사람들은 신기해 한다. 산사(山査)나무는 한자 이름을 풀이하면 '산 속의 아침[旦] 나무[木]'라는 뜻이다. 붉은 열매가 달린 것이 나무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열매를 산사자(山査子)라 하는데 한약재로 쓰인다. 이 열매로 담근 술이 산사춘이다. 나무에는 가시가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

천년의나무 2010.12.30

용복동 왕버들

이 나무를 첫 대면한지는 20년도 넘었다. 전주에서 모악산을 갈 때면 늘 이 나무 옆을 지나갔다. 그러나 차로 흘깃 스쳐 지나가며 참 오래된 나무구나, 하고 눈길만 주었을 뿐이었다. 사실 무슨 나무인지도 정확히는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부러 찾아갔다. 전주시 완산구 용복동에 있는 왕버들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표지석에는 망월마을이라 적혀 있다. 마을에서는 모악산 전경이 시원하게 보인다. 왕버들은 마을과 논의 경계에 있다. 인근에도 오래된 왕버들이 산재하고 있는 걸 보아 옛날에는 이곳이 냇가가 아니었나 싶다. 이 왕버들은 키가 20 m, 줄기 둘레가 7.6 m에 이르는 거목이다. 수령은 300 년이다. 나무 밑에 평상이 놓여있는 걸로 보아 여름에는 마을 주민들의 시원한 쉼터가 될 것이다. 이만한 나무라..

천년의나무 2010.12.25

남한산성 향나무

남한산성 수어장대 옆에 청량당(淸凉堂)이라는 작은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때 장군 이회(李晦)와 그 부인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다.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게 된다. 이때 이회는 성 남동쪽의 가장 험한 구간을 맡았는데 기일 안에 완공을 하지 못하고 공사비도 과다하게 들어갔다. 이회는 감독을 부실하게 하고 공사비를 착복했다는 모함을 받고 서장대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서장대(西將臺)는 지금의 수어장대다. 공사비를 마련하러 나갔던 부인도 이 소식을 듣고는 한강을 건너오다가 투신 자살했다. 그러나 뒤에 이회의 죄없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부부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고자 서장대 옆에 청량당이라는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이 청량당 앞에 수령이 400 년 가까이 된 향나무가 있다. 시기로 보아서 ..

천년의나무 2010.12.16

용주사 회양목

경기도 화성에 있는 용주사 대웅보전 옆에 오래된 회양목이 있다. 너무 오래 산 탓인지 나무 줄기가 반밖에 남아있지 않고 지주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다. 나무 안은 더 이상 썩는 걸 방지하기 위해 흰색의 보형재가 발라져 있다. 회양목이 아주 느리게 자라는 걸 고려하면 수령이 200 년은 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윗부분의 잎은 싱싱하다. 키가 2 m가 넘는 큰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정원수나 생울타리로 자주 심는다.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해 도장을 만드는 데 쓴다. 어릴 때 고향에서는 도장나무라고 불렀다. 옛날 호패도 이 회양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용주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회양목이 있었다. 정조가 사도세자능을 화성으로 옮기면서 용주사를 지을 때 심은 나무라고 한다. 그때가 1790년이니 수령이 ..

천년의나무 2010.12.15

마실길 느티나무

그저께 걸었던 북한산 둘레길 중 마실길에서 만났던 느티나무다. 진관사를 중심으로 한 주변 둘레길에는 일이백 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길 옆에 있던 이 느티나무도 그중 하나다. 수령은 150년 정도 되었고, 키는 13 m, 줄기 둘레는 3.8 m 가량이다. 산자락에서 자라고 있어선지 나무는 건강하고 모양도 아름답다. 은평구 진관외동에 있다. 지금은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여름이면 이 나무 그늘 아래서 많은 트래커들이 땀을 식히며 쉬고갈 것이다. 주변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휴식 시설도 잘 되어 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나무들을 만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천년의나무 2010.12.10

과천관아터 회화나무

현재 과천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과천시 중앙동 일대가 조선시대 때 관아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남아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복원한 '온온사'도 자료가 없어 다른 곳의 객사를 모델로 하여 새로 지었다. 다만 군데군데 고목이 산재해 있어 이곳이 옛 관공서 터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과천초등학교 옆에 있는이 회화나무는 아파트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도 분명히 옛 관아터였을 것이다. 아무 데나 회화나무를 심을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수령이 5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키가 크고 늘씬하다. 500년 이상된 회화나무가 흔하지 않을 걸 고려하면 역사적이나 생태적으로 가치가 상당해 보인다. 아파트에서는 이 나무를 중심으로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아파트의 자랑이면서 동시에 과천의 자랑이 되는 멋..

천년의나무 2010.12.03

온온사 은행나무

과천시 관문동에 온온사(穩穩舍)가 있다. 절이 아니라 조선시대 과천현의 객사다. 벼슬아치들이 과천에 들렀을 때 묵었던 숙소로 쓰였다. 정조 14년(1790)에 왕이 수원에 있는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곳에 머무르면서 '온온사'라 이름짓고 친히 편액을 썼다고 한다. '온온(穩穩)'은 경관이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온온사 옆에 수령이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조선 개국 당시에 과천 관아터를 이곳에 잡은 뒤 심은 것이라는 얘기가 전한다. 키가 25 m, 줄기 둘레는 6.5 m 되는 고목으로, 비록 한양과는 떨어져 있었지만 조선의 흥망성쇠를 다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무 옆에는 옛 과천현감들의 선정비가 있어살아있는 은행나무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0.12.02

천황사 전나무

전북 진안군 구봉산 아래에 천황사(天皇寺)가 있다. 천황사는 신라 헌강왕 1년(875)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했다. 지난 번에 구봉산을 올랐는데 하산할 때 천황사로 내려왔다. 천황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나무가 있다는데 마침 기회가 잘 만들어졌다. 절 앞에는 오래된 전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특별히 눈에 띄었다. 도 지정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800년으로 되어 있다. 사실이라면 굉장한 전나무 고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나무는 금대암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나무 수령이 600년이니 이건 좀 과장된 듯 하다. 나무 높이는 35 m, 줄기 둘레는 5.1 m다. 그런데 줄기 윗부분이 잘려나가서 뭉툭하다. 너무 키가 커서벼락을 맞은 탓이 아..

천년의나무 2010.11.22

꿈의숲 느티나무

서울 강북구 번동에 있는 '북서울 꿈의숲' 입구에 있다.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우선 이 나무와 눈맞춤을 하고 들어가게 된다. 안내문에 보면 1968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데 수령이 갓 200년을 넘은 느티나무치고는 일찍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무의 키는 13 m, 줄기 둘레는 2.7 m인데 아직 젊은 기개가 씩씩하다. 꿈의숲공원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친지 결혼식에 간 길에 옆에 있는 이 공원에 들렀다. 안개 자욱한 날이었다. 전에이곳은 드림랜드라 불린 놀이공원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탈 기구들이 많았다. 그때 왔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꿈의숲이라는 공원으로 새로 조성하고 개장한지 이제 1년이 되었다. ..

천년의나무 2010.11.12

연풍초 느티나무

첫인상은 단정한 단발머리 소녀 같았다. 시골 초등학교에 잘 어울리는 느티나무였다. 충북 괴산에 있는 연풍초등학교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한 그루은 정문 옆에 있고, 한 그루는 교사 앞 놀이터에 있다. 놀이터에 있는 느티나무는 아이들의 동무 역할을 하고 있다. 옆으로 뻗어나간 줄기가 아이들이 올라가 놀기 좋게 생겼다. 이곳은 예전에 연풍 관아가 있던 터 같다. 운동장에 동헌 건물이 남아 있다. 지금은 수리중이라 어수선하다. 인근에도 오래된 관청으로 쓰인 듯한 한옥 건물들이 몇 채 보인다. 그러므로 이 느티나무들은 옛날 관청의 조경수로 심어졌을 것이다. 연풍초등학교도 역사가 오래 되었다. 1908년에 문을 열었다니 100년이 넘었다. 운동장에는개교 10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두 느티나무..

천년의나무 2010.11.04

각연사 피나무

충북 괴산에 있는 각연사(覺淵寺) 비로전 앞에 피나무가 한 그루 있다. 대개 보리수나무라 부르는데 절에서 잘 심는 나무다. 불교에서 보리수(菩提樹)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부처님이 오랜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도 지방에서 자라는 보리수는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보리수와 닮은 피나무를 대용으로 절에 심는 것이다. 이 피나무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피나무 껍질은 굉장히 질겨서 옛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했다. 지게나 미투리, 망태 등 피나무 껍질로 많은 것을 만들어 썼다. 그래서 피나무의 ‘피’는 껍질[皮]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리수나무라고 하면 헛갈리기 쉽다. 석가모니의 보리수는 핍팔라(Pippala)라 불리는 인도보리수다. 우리나라에서 보리수로..

천년의나무 2010.10.29

수타사 주목

홍천 공작산 자락에 수타사(壽陀寺)라는 아담한 절이 있다.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처음에는 우적산(牛跡山)에 있었고, 이름은 일월사(日月寺)였다. 조선조 세조 3년(1457)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수타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약 50년 전에 사천왕상 안에서 초간본이 발견되었다. 이 책을 보관하기 위한 박물관도있다. 주변에 수타사 계곡이 유명하고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500여년 전 수타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을 때 절의 큰스님이 법장(法杖)으로 샘물을 찾고그 자리에 지팡이를꽂았다고 한다. 그 지팡이가 자라서 주목이 되었는데 정목(定木)으로 불렸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 주목을 볼 수 없다. 이미 고사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천년을 ..

천년의나무 2010.10.23

망해사 팽나무

전북 김제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담한 절이 있다. 망해사(望海寺)다. 망해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겨버렸고, 선조 22년(1589)에 진묵선사(震默禪師)가 낙서전(樂西殿)을 지으면서 재건시켰다고 한다. 지금 낙서전 앞에 있는 팽나무 두 그루는 건물의 준공 기념으로 진묵선사가 직접 심은 것이다. 400년이 넘은 나무다. 망해사는 소박하면서 정갈한 절이다. 절이 앉아 있는 산도 작고 집도 작다. 한옥을 닮은 작은 집 네 채가 겸손하게 앉아 있다. 부처를 따르는 마음이 이래야 한다는 듯 절 자체가 말 없는 설법이다. 망해사에 들면 마음이 따스하고 편안해진다.낙서전(樂西殿), 청조헌(聽潮軒)같은 이름도 정겹다..

천년의나무 2010.10.12

여의도공원 소나무

박정희 시대 때 여의도에 '5.16광장'이 만들어졌다. 12만 평의 넓이였는데 국가적 대형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내 기억에 5.16광장은 1974년에 열렸던'엑스플로'라는 개신교 행사로 남아 있다. 8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설교와 강의를 들으며 며칠동안 고행을 했다. 저녁에는 그룹별로 성경공부를 하고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잤다. 일부는 광장에서 텐트 생활도 했다. 이 행사가 끝나던 날,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고 8.15 경축식장의 사건도 일어났다. '5.16광장'은 '여의도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아스팔트 광장이 숲으로 변신했다. 물도 흐르고 호수도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여기가 옛날의 그 아스팔트 광장이었던가 싶다. 공원의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소나무..

천년의나무 2010.10.07

중앙고 은행나무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정문에 수령이 500 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 이 나무는 마을의수호신으로 숭앙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가을이면 오곡백과를 차려 놓고 한 해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소원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2008 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은 중앙고등학교는 민족 사학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3.1 운동의 시작도 이곳 중앙고등학교에서였다. 당시에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이 교장으로 있었는데 교장 사택에서의 모임이 3.1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마 이 은행나무 아래서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걱정하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은행나무는 중앙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나무의 생육 환경이 너무 나쁘다. 수위실과 인근 주택에 갇혀 ..

천년의나무 2010.09.30

재동 백송(2)

백송을 보러 갔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데 2004년에 처음 만난 이래 이번이 네번 째다. 백송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오래 되었다. 나이가 600살이고 키는 15 m다. 또한 제일 아름답다. V자 모양으로 뻗은 줄기는 멀리서 보면 눈부실 듯 하얗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들어와 있지만 옛날에 이곳은 풍양 조씨 집안이 대대로 살던 터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풍양 조씨는 판서를 아홉 명이나 배출한 명문이었다. 영조 때는 조상경 판서가 살았던 집이었다. 풍양 조씨가 득세할 때는백송의 껍질이 유난히 희게 보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에 안동 김씨가 세력을 얻으면서 백송은 흰빛을 잃어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물론 풍양 조씨 쪽에서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뒤에 이 ..

천년의나무 2010.09.17

중앙공원 압각수

청주시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다. 수령은 900년 정도 되었다. 이 은행나무는 고려말의 한 고사와 관계되어 유명하다. 고려 공왕양 2년(1390)에 목은 이색(李穡) 등이 ‘이초의 난’에 연루되어 청주옥에 갇혔을 때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이색과 권근이 모두 체포되어 청주옥에 구금되었는데, 국문이 매우 혹독하여 일이 어찌될 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하루는 새벽부터 비가 쏟아져 한낮이 못되어 산이 무너지고 물이 솟아 넘쳐서 성문이 허물어져 물이 넘쳐 성안으로 들어오니, 가옥이 모두 물에 잠겼다. 문사관(問事官)이 물에 빠져 떠내려가다가 압각수(鴨脚樹)를 붙잡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는데,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석방하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색과 권근이..

천년의나무 2010.08.27

공림사 느티나무

고목 중에서 느티나무가 가장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천 년 이상된 느티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 대략 스무 그루 정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기 공림사의 느티나무도 그중의 하나로 천 년의 나무다. 공림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끝에천 년의 느티나무가 있다. 말이 천 년이지 천 년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 나무가 자리한 곳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둘은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나무에게 바위는 또 아득한 존재일지 모른다. 줄기는 천 년의 연륜이 새겨진 듯 울퉁불퉁하게 생겼다. 말 그대로 괴목이다. 그러나 상체는 줄기에 비해 허약하다. 나무는 긴 세월을 지나면서 많은 수족을 잃었을 것이다. 줄기 둘레는 ..

천년의나무 201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