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68

육괴정 느티나무

이천시 백사면에 있는 육괴정(六槐亭)은 남당(南塘) 엄용순(嚴用順)이 세운 정자다.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하자 남당도 난을 피해 이곳으로 낙향했다. 이곳에는 엄용순, 김안국을 비롯한 여섯 선비가 모여 시회와 학문을 논하였다. 그들이 우의를 기르는 뜻으로 각각 한 그루씩 모두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데서 육괴정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지금은 세 그루가 남아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15m, 줄기 둘레가 4.3m에 이른다. 수령은 500년으로 몸에는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년의나무 2012.10.14

영원사 은행나무

이천에 있는 원적산 남쪽 자락에 영원사(靈源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해호(海浩) 선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절 앞에 고운 자태의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비구니 사찰에 어울리게 단아한 여성적 외모다. 나무 역시 은행알이 열린 암나무다. 안내문에 보면 수령이 800년이라고 나와 있는데 첫인상은 그렇게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키는 25m, 줄기 둘레는 4.5m다.

천년의나무 2012.10.13

신륵사 은행나무

훤칠하게 잘 생긴 은행나무다. 신륵사에는 600년 된 나무 세 그루가 있다. 향나무, 참나무, 그리고 이 은행나무다. 어쩌면 나이가 다 비슷한지, 아마 신륵사가 중창된 나옹선사 시대 쯤으로 추정해서 나무의 나이를 정하지 않았나 싶다. 이 은행나무는 두 개의 줄기가 거의 나란하게 뻗어 올랐다. 키는 22m이고, 줄기 둘레는 각각 3.1m와 2.7m다. 한창 장년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2.10.07

신륵사 향나무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고려 말에 나옹선사가 머물면서부터 유명해졌다. 선사가 입적하면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고, 그뒤에 여러 건물들을 신축했다고 전한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지공, 나옹, 무학, 세 분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이다. 이 조사당 앞에 수령이 6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나옹선사의 제자였던 무학대사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 높이는 5m, 줄기 둘레는 1.3m인데 줄기가 많이 상해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잎을 보면 나무는 아직도 원기왕성하다. 다만 조경수처럼 너무 예쁘게 다듬어놓은 게 도리어 거슬린다. 드러나지 않을 듯 적당히 손질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10.07

용문사 은행나무(2)

천 년의 나무를 보러 용문사에 간다. 마음이 소란해질 때면 문득 당신을 만나고 싶어진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시대 때 태어난 당신, 천 년을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한 마음으로 살고 계신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당신의 기상은 여전히 대단하다. 천 년이 하찮은 듯 잎은 더욱 빛나고, 열매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당신 옆에 서면 내 좁은 소견이 부끄러워진다. 속마음을 들켰으니 그저 합장만 할 뿐이다. 새로 만든 안내판에는 전에 보지 못하던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

천년의나무 2012.09.27

설악동 소나무

외설악의 설악산탐방안내소 앞 삼거리에 있다. 천연기념물 351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품 소나무다. 높이 17m, 줄기 둘레 4.1m로 훤칠하게 잘 생겼다. 그러나 하체에 비해서는 상체가 빈약하다. 원래는 큰 줄기가 3개 있었으나, 2개는 죽었고 가운데 줄기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부러진 줄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는 5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설악동 마을의 서낭당 나무였으나 관광지구로 개발되면서 마을은 사라지고 나무만 덩그마니 남았다. 소나무 앞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놓아 만들어진 큰 돌무더기가 있었다는데 도로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옛 모습은 잃었으나 나무는 보호를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설악동을 상징하는 대표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9.14

권금성 소나무

설악산 권금성의 암봉에서 자라는 쌍둥이 소나무다. 풀도 자리지 못하는 곳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이만큼 싱싱하게 살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싹을 내고 이렇게 클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여름에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의 열기와 겨울의 냉기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등산을 하다 보면 이렇듯 바위와 어울려 사는 소나무를 자주 본다. 그들은 고행하는 수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이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고 푸르게 살아내는 모습에 머리가 숙여진다. 더구나 권금성의 소나무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 성자(聖者)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소나무는 왜 바위를 좋아할까 바위의 세계에서 다른 나무가 사는 걸 보았느냐 깎아지른 가파른 바위가 한 치의 틈을 주지 않아도 비집고 들어가..

천년의나무 2012.09.12

안락암 무학송

설악산 권금성 가까이에 안락암(安樂庵)이 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권금성과 달리 안락암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하다. 나도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굳이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락암 앞 바위 절벽에 소나무 거목이 날렵하게 서 있다. 춤추는 학 모양이라 하여 무학송(舞鶴松)이라 부른다. 수령이 800년이나 되었다. 강풍으로 가지가 한 쪽으로만 자라고 있다. 바위 틈에서 이만큼 성장한 생명력이 놀랍다. 이곳에서 보이는 설악산은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풍경 같다. 맞은편에는 토왕성폭포의 긴 물줄기가 보인다. 바위, 소나무, 폭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서, 그 자신도 하나의 멋진 풍경이 되고 있는 무학송이다.

천년의나무 2012.09.12

의상대 소나무

2005년의 산불로 낙산사가 불탔을 때 이곳 의상대(義湘臺) 소나무도 피해를 보았다. 의상대를 둘러싸고 있던 노송들이 사라진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몇 그루는 살아남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에는 소나무 줄기 사이로 겨우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젠 휑하니 시야가 트였다. 그러나 상실감으로 아픈 풍경이었다. 이곳 의상대 앞바다는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깃든 장소다. 아버지를 따라와서 바다를 처음 본 곳도 여기였다. 그 뒤로도 동해안 여행을 하면 이곳이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산불 이후로 의상대는 많이 변했다. 내 기억에 간직된 의상대는 사라졌다. 뭔가가 허전하고 쓸쓸해서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천년의나무 2012.09.10

하조대 소나무

양양에 있는 하조대(河趙臺)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이곳에서 잠시 은거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로 된 빼어난 경치를 바라보는 제일 높은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하조대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바위 절벽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독야청청 자라고 있다. 수령은 약 200년이 되었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돌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난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바위 위에 앉은 한 마리 학이 연상되는 날렵한 자태가 멋진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9.09

원정리 느티나무

들판 한가운데 있어서 분위기가 색다른 느티나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드라마 '로드 넘버원'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더 유명해졌다. 찍은 사진을 보면 가을에 황금 들판을 배경으로 서 있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함께 찍어보면 멋있을 것 같다.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에 있다. 키는 15m, 줄기 둘레는 4m로 단아하게 생겼다. 수령은 500년이다.

천년의나무 2012.08.30

오가리 느티나무(2)

4년 만에 다시 이 느티나무를 만났다.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에 있다. 오가리(五佳里)는 산, 물, 땅, 곡식, 인심이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오가리 우령마을 역사도 800년이나 되었다. 처음 이 느티나무를 만났을 때 800여 년이라는 나이뿐만 아니라 굵은 줄기와 우람한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그 뒤로 느티나무 하면 바로 이 오가리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괴산을 지나다가 우연히 다시 들리게 되었다. 그때는 앞 도로가 공사중이었는데, 지금은 넓게 뚫려 있다. 공원 안에는 두 그루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아래에 있다고 하여 하괴목(下槐木)이라고 한다. 품새가 단정해서 곱게 늙으신 할아버지 같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성황제를 지내는 곳도 이 나무 앞이다. 상괴목이다. 하괴목에 비해 키는 더..

천년의나무 2012.08.26

금굴리 송림

보은 금굴리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마을 앞 길과 논에 난 둑을 따라 소나무 87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200 ~ 300년 사이의 나무들이다. 누가 이 소나무 숲을 조성했는지 자료가 없지만 지금은 명품 숲이 되었다. 이웃에 있는 임한리 송림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비해, 여기 소나무들은 길을 따라 서 있다.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둑으로는 나무 데크를 설치했다. 여기 있는 나무 전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은 '은사뜰'이다. 한자로는 은사평(隱士坪)이라고 쓰는데 숨어 지낸 선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나무 숲이 마을의 품격을 올려 놓았다. 처음 소나무를 심었던 사람의 혜안이 돋보인다. 소나무 길에는 비슷한 나이의 왕버들 5그루도..

천년의나무 2012.08.24

임한리 송림

보은군 탄부면 임한리(林閑里)는 구병산 아래 너른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이름에 '수풀 림[林]'자가 들어있는 걸 보아 나무가 많았던 마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수령이 200년 내외 된 소나무 100여 그루가 숲을 이루며 남아 있다. 충북의 명품 자연환경 100선에 들어 있을 정도로 풍광이 좋다. 여름철이어선지 송림 안은 잡초가 우거져 다닐 수가 없었다. 바깥 울타리를 따라 한 바퀴 돌며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잘 단장해 놓으면 경주 왕릉에 있는 솔숲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멋진 소나무들이 많았다. 가을에 벼가 노랗게 익을 때면 훨씬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08.24

덕동리 은행나무

보은군 탄부면 덕동리에 있는 은행나무다. 수령은 600년 가까이 되었고, 나무 높이는 25m, 줄기 둘레는 6.6m나 되는 거목이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어 더욱 위풍당당하고 웅장하게 보인다. 완전히 노출된 지대여서 바람이 심할 텐데 나무는 긴 세월을 잘 견뎌왔다. 그동안 천 개가 넘는 태풍을 만났을 것이다. 이제 노쇠한 몸이 센 바람을 막아내기에는 점점 불가항력이 될 것 같다. 다행히 충북 지역은 일반적인 태풍의 진로에서 어긋나 있어 자연재해가 적은 편이다. 암나무여서 은행이 주렁주렁 많이 열려 있다.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마을을 굽어보며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2.08.23

사직리 팽나무

보은군 탄부면 사직리 마을 어귀에 있는 팽나무다. 보호수이면서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잘 관리되고 있다. 나무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3.3m에 이른다. 마침 나무 아래서 쉬고 계시는 마을 어르신 한 분을 뵈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120년으로 나와 있는데 더 되어 보인다 했더니 200년도 넘었을 거라고 하신다. 본인이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 70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크기였다며 나무 자랑에 여념이 없으시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고사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바닥의 시멘트를 걷어내니 다시 살아나더라고 설명하신다. 어르신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곳 주산물이 고구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구마꽃을 보신 적이 있냐니까, 잘 피지 않는데 금년에는 보인다면서 산 쪽 밭으로 안내를 자청하신..

천년의나무 2012.08.23

풍림정사 은행나무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에 있는 풍림정사(楓林精舍)는 박문호(朴文鎬, 1846~1918)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강당이다. 선생은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로 개화기의 혼란 속에서 과거를 단념하고 초야에 묻혀 오로지 학문의 정진과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특히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을 지어 깨인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 은행나무는 아담한 정사의 건물과 잘 어울린다. 야트막한 뒷산과 정사, 은행나무, 앞 들판이 고향에 온 듯 포근하다. 은행나무는 수령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100년에서 200년 사이 쯤으로 보이는데, 아마 선생이 정사를 세우면서 심었을 것이다. 정사에 어울리는 나무이면서 주변 풍경과도 잘 조화를 이루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8.23

서원리 소나무

서원리 소나무는 정이품송과 7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정이품송의 부인송이라 부른다. 실제로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꽃가루를 받아 이 나무에 수정하기도 했다니 부인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생김새도 정이품송과 달리 줄기가 둘로 갈라져서 자라고 있다. 곧게 자란 모양보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모양새로 어울린다. 수형은 약간 헝클어져 있긴 하지만 우산을 펼친 모양이다.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웅장해 보인다. 가지 끝이 땅에 닿을락 말락 펼쳐져 있어 포근하게도 느껴진다. 나무는 높이 15m, 줄기 둘레는 각각 3.3m, 2.9m다.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352호다.

천년의나무 2012.08.22

정이품송

1980년대만 해도 원뿔형의 균형 잡힌 몸매를 자랑하던 정이품송이었는데, 1993년 강풍과 2004년의 폭설로 나무 한 쪽이 거의 사라졌다. 아름답던 옛 모습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나마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게 다행이다. 워낙 높으신 지체라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덕분이리라. 이 나무에 전해오는 얘기를 안내문을 통해 다시 읽어본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과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세조는 "올 때..

천년의나무 2012.08.22

두물머리 느티나무(2)

두물머리는 옛 지도에 양수리(兩水里), 또는 이수두(二水頭)로 나온다. 이중 '이수두'는 두물머리를 억지로 한자로 쓴 듯하여 어색하다. 어찌 됐든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풍광 좋은 곳이다. 옛날에는 수륙 교통의 요충지였을 것이다. 머리에 해당되는 맨 끝에 400년 된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다. 아마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강물 경계가 훨씬 아래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강물 바로 옆에서 자라고 있다. 댐의 물이 이 나무를 덮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댐이 건설되면서 두물머리의 나루터 역할도 사라졌다. 이곳은 4대강 사업으로 말미암은 갈등의 지역이 되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 정리를 하면서 이곳에 있는 유기농 단지를 없애려 하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는 2년 넘게 현장에서 매일 미사를 드..

천년의나무 2012.08.17

행단 은행나무

행단(杏壇)에 있는 유일한 은행나무다. 행단이라고 하면 우선 은행나무가 연상되는데, 실제 현지에서는 측백나무만 있어 어리둥절해진다. 이 은행나무로나마 위안을 삼는다. 나무는 두 그루인데 하나는 고사했다. 살아있는 나무에는 '宋銀杏(Ginko of the Song Dynasty)'라는 명찰이 붙어 있다. 송대에 심은 은행나무라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수령이 1천 년 정도는 되었다. 잠깐 스쳐갔지만 무척 반가웠던 은행나무였다.

천년의나무 2012.08.03

행단 측백나무

중국 곡부에 있는 행단(杏壇)은 '행(杏)'이라는 나무가 있는 공자 학당을 뜻한다. 이 '행(杏)'을 학자에 따라 은행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고, 살구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나무가 맞는지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현재 행단은 측백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수백 년 된 측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 나무 구경에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측백나무는 예로부터 군자의 상징으로 절이나 문묘에 많이 심어왔다. 왕족의 묘지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 행단 주위에 측백나무를 심은 것은 이해가 된다. 군데군데 향나무도 섞여 있다. 이 측백나무 숲을 보면 '행(杏)'이 은행나무냐, 살구나무냐는 논쟁이 무색해진다.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공자가 직접 심었다는 나무도 있다. '선사수식회(先..

천년의나무 2012.08.03

태산 망인송

1박2일의 태산 등정은 안개에 싸여 산세나 나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잠깐이지만 날이 개였을 때 눈에 들어온 나무 중에서 이 소나무가 제일 멋졌다. 망인송(望人松)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이 나무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절벽에 홀로 우뚝 선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이 나무에도 어떤 전설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은 외국인이 나무에 얽힌 전설까지 알아내는 것은 무리다. 힘든 계단길을 땀 흘리며 올라갈 때 망인송은 그 모습만으로도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천년의나무 2012.08.01

태산 오대부송

중국 태산(泰山)을 올라가다 보면 오대부송을 만난다. 계단길 옆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고 안내문이 있다. 한문과 영어로 된 안내문 내용은 대략 이렇다. '기원전 219년에 진시황이 태산을 오르던 중에 갑자기 비를 만났고,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 황제는 고마움의 표시로 이 나무에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지금 보는 나무는 청대인 1730년 경에 심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이품송과 비슷한 일화를 가졌다. 큰 나라 작은 나라를 불문하고 옛날 제왕들은 벼슬 내리기를 즐겨했는가 보다. 한 번 이런 명칭이 붙으면 사람들이 극진히 보살필 것이다. 비 오는 때에 하필 진시황이 이 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는 우연이 나무의 운명을 바꾸었다. 우리들 인생사처럼 재미있는 일이다.

천년의나무 2012.08.01

단암리 느티나무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丹岩里) 남한강변에 네 그루의 느티나무가 사이좋게 자라고 있다. 나무가 별로 없는 강변에서 한 눈에 띄는 나무다. 느티나무가 있다는 건 옛날에 이곳은 마을이 있는 나루터였음을 말해준다.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한 그대로다. 옛 마을 이름은 의암마을이었고, 마을 앞에 버렁말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그 당시 마을 입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나루터와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이 쉬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무 옆에는 주막 하나쯤 있었을 것도 같다. 이제 사람들은 다 떠나고 나루터도 사라졌지만 나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더 크고 싱싱하게자라면서, 변해도 변하지 있는 게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그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다. 강 건너편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로 개..

천년의나무 2012.06.03

송광사 전나무

완주 송광사(松廣寺) 대웅전 앞에 키다리 전나무가 있다. 경내에서는 첫눈에 들어오는 나무다. 가끔 절에서 전나무를 보게 되는데 불교와 전나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전나무도절의 중심 자리에 일부러 심고 가꾼 것이리라. 어느 학승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祖師西來意] 조주선사가 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柏樹'를 측백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잣나무든 측백나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조주선사의 이 유명한 선문답을 상기하는 것이라면 절에서 이런 나무를 만날들 이상할 게 없다.전나무도 외견상 잣이나 측백나무와 비슷하다. 전나무는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곧게 뻗어 자란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이런 곧게 자라..

천년의나무 2012.05.25

독립공원 미루나무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독립공원은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다. 형무소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한쪽 구석에는 담으로 둘러싸인 사형장도 있다. 사형장 입구에는 사형장을 만들 때 심었다는 미루나무가 있어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린다.일본 강점기 때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생의 마지막으로 이 나무 아래를 지나며 피눈물을 뿌렸을 것이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사형이 집행되었던 슬픔의 장소다. 안내문에는 미루나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의 미루나무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恨)을 눈물로써 토해낼 때 붙들고 통곡했던 것으로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 또한 사형장 안에 있는 또 한 ..

천년의나무 2012.05.19

노림리 느티나무

원주시 부론면 노림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노림(魯林)은 이름으로 볼 때 숲과 관계된 지명으로 보인다.그래선지 오래된 나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현재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하나는 도로 옆에, 다른 하나는 도로 가운데에 있다. 나무를 가운데 두고 양 방향의 도로가 지나간다. 둘 다 수령은 200년 가량 되었다. 옛날에는 꽤 큰 마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남한강과 그 지류인 섬강을 옆에 끼고 있다.강둑을 따라 자전거 길이 휑하니 뚫려 있다. 최근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만들었다.넓은 공원에도 사람을 보기 어렵다. 나무라도 많이 심는다면 썰렁한 풍경이 좀 가려지기나 할까?

천년의나무 2012.05.12

법천사지 느티나무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법천사지가 있다. 법천사(法泉寺)는 고려 중기 법상종(法相宗)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무신정권 이전까지는 지방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번창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지금까지 폐사로 남아 있다. 폐사지를 느티나무 한 그루가 묵묵히 지키고 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괴목이다. 특히 줄기가 특이한데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런데도 잎을 보면 수세가 왕성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던 촌로께서 잎이 이렇게 무성하니 풍년이 들 모양이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수령이 얼마쯤 되었느냐니까 잘 모르겠단다. 500년은 넘어 보인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 정도의 나무라면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만한데 나무에 대한 설명이 없어 ..

천년의나무 2012.05.09

휴천동 느티나무

영주에 있는 옛 중학교 모교를 찾아갔다. 졸업한 지 40년도 더 지났는데 다시 찾은 지도 30년은 되는 것 같다. 학교나 주변이나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때는 낮은 집들이 듬성듬성 있어 멀리서도 학교 건물이 보였는데 지금은 온통 아파트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코앞까지 갔어도 학교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학교도 완전히 변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은 어디에고 없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으며 멀거니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때 반가운 이 나무를 보았다. 어렴풋이 옛 생각이 떠올랐다. 이 느티나무는 학교 밖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이 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입구에있었다. 등하교할 때몇몇 친구는이 느티나무 옆을 지나 집과 학교를 오갔다. 그중에 가까웠던 친구 N도 있었다. 종례를 마치면 티격태격 장난치면서 운..

천년의나무 2012.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