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73

곤지암 향나무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리의 행정 지명에 나오는 곤지암(昆池岩)에는 조선 선조 때 장군 신립(申砬, 1546~1592)에 얽힌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가 신립 장군은 병사를 이끌고 충주 탄금대에서 싸우다 패하고 강물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병사들이 장군의 시체를 이곳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누구든 이 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밥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선비의 말도 바위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선비는 말에서 내려 바위를 향해 "장군의 원통함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행인들을 불편하게 함은 온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이 쳐..

천년의나무 2014.08.16

학림사 소나무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남쪽에 위치한 학림사(鶴林寺)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주변 산세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포지란(鶴抱之卵)의 형국이라고 해서 학림사라 명명되었다 한다. 서울에 가까이 있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절이다. 학림사 대웅전 옆에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절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기품이 대단한 소나무다. 소나무 옆 돌의자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안내문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수령이 삼사백 년은 넉넉히 돼 보인다. 학림사의 보물 같은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7.30

도곡리 느티나무

제천시 백운면 도곡1리(道谷里, 도장골) 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다. 세 그루가 있는데 그중 한 그루가 수령 400년이 된 보호수다. 마치 두 자식과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왠지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진다. 느티나무 세 그루 때문이다. 만약 나무가 없었다면 입구가 굉장히 황량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지나며 포근한 모성적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늘 함께 있으니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정자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6.22

산천단 곰솔

예로부터 제주도에 목사가 부임하면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천제(天祭)를 지냈는데,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쁘면 이곳 산천단(山川壇)에서 대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천단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여덟 그루가 있다. 500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이 드신 곰솔이다. 키도 20m 내외에 이를 정도로 크다. 곰솔이 내뿜은 기상이 대단하다. 나무 아래 초가집 한 채 있다면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4.06.18

동화사 느티나무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대로 절 주변에는 오동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심지대사 오동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큰 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찾지 못하고, 대신 절 입구에서 이 느티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에는 '인악대사(仁嶽大師)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인악대사에 대한 안내문 설명은 이렇다. '법명이 의소(義沼)인 대사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스승인 벽봉(碧峰) 스님으로부터 불교 경전을 배우고 비슬산 등에서 불경을 설파하다가 동화사에 머물렀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용주사를 주관하는데 뽑혔으며, 여러 글을 지어 바치니 정조가 크게 감탄하여 홍제(弘濟)라는 호를 내렸다. 1796년 용연사 명적암에서 세수 51세로 입적하였다.' 대구에서는 고목..

천년의나무 2014.05.17

능원리 느티나무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가 있어서 동네 이름에 '능(陵)'이 붙었다. 용인시 모현면에 있다. 태종 6년(1406)에 선생의 묘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긴 뒤 후손들이 묘막을 짓고 살기 시작한 이래로 능원리는 영일 정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이 느티나무 옆에는 선생의 후손 중 한 분의 효자비각이 있다. 주변이 어수선하긴 하지만 느티나무는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로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우뚝 서 있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4m다. 수령은 250년가량 되었다.

천년의나무 2014.05.03

거돈사지 느티나무

천 년의 거목이다.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다.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고 고려 초기에 번창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넓은 절터에는 삼층석탑만이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다. 폐사지 입구 축대 가장자리에 이 느티나무가 있다. 예전에는 절을 찾아오는 순례객을 제일 먼저 맞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이 무너진 지 400년이 넘었다. 수많은 인간의 사연들이 허공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본 느티나무의 심정은 어떠할까. 느티나무 옆에 서 있으면 덧없는 생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흥하고 쇠하는 만물의 이치를 온몸으로 터득한 성자처럼 느티나무는 묵묵히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4.04.15

진관동 느티나무

수령 200년 전후의 느티나무 네 그루가 모여 있다. 주변은 '은평 한옥마을'을 조성하기 위한 넓은 공터다. 진관사 들어가는 입구인데 집터로는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몇 년째 빈터로만 남아 있는 걸 보니 사업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오래된 느티나무로 보아 옛날에는 이곳에 큰 마을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진관사가 흥했던 시절이었다면 사하촌이 있었을 법도 하다. 새 주택단지를 만들겠다고 옛 흔적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쓸쓸한 느티나무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4.03.31

경희궁 느티나무

경희궁공원에 있는 느티나무로 생김새가 흥미롭다. 나무줄기의 가운데는 사라졌고 한쪽 껍질 부분만 남았다. 평면으로 된 2차원 모양이어서 기이하게 느껴진다. 철제 버팀대로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다. 안내문에는 종로구의 아름다운 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아름답다기보다는 안스러운 측면이 강하다. 수령은 400년가량 되었다. 다시 복원되고 있는 경희궁 고난의 세월을 이 나무가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4.03.02

수종사 은행나무(2)

기운차고 늠름하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대장군의 모습이다. 운길산 중턱 해발 400m쯤 되는 곳, 수종사 입구에 서 있다. 아래로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수종사 중창의 주역은 세조였다. 이 은행나무도 세조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진다. 1459년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555년 전이다. 이만한 세월에도 세조의 기세는 여전히 나무에 살아있다. 이 나무를 바라보면 왠지 불끈 힘이 솟는 느낌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거인이 된 한 생명체가 있다. 낙담하고 의기소침해졌을 때 이 나무 옆에 서 보라. 가슴을 열고 나무가 주는 기운을 받으라. 당당히 고개 들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당신은 얻을 것이다.

천년의나무 2014.02.23

송촌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가 있는 곳은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 선생의 별서터다. 선생은 45세 되던 1605년에 부친을 모시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집과 정자 두 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정자 하나만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400년 세월을 지나 말없이 서 있다. 하마석으로 쓰인 노둣돌도 남아 있다. 옆에는 친절하게 말 조각상을 세워 놓았으나 어딘지 생뚱맞아 보인다. 나무는 상당히 노쇠하다. 겨울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가 보다. 선생은 두 나무를 심으면서 한 그루는 오성, 다른 그루는 한음이라고 여기면서 다시 만나길 간절히 기원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는 역사 야사로 재미있게 읽었다. 별서는 찾아볼 길 없는데 은행나무와 노둣돌이 그때의..

천년의나무 2014.02.18

흥국사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참나무속의 6형제 중 하나다. 고양 흥국사에서 노고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이 상수리 고목이 있다. 수령이 250년,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3.3m다. 사찰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이렇게 오래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숲에서 보는 보통의 상수리나무와 달리 수형도 아름답다. 길게 뻗어 늘어진 가지가 상수리나무로 보이지 않는다. 나무 뒤에 서서 흥국사와 멀리 북한산을 바라보는 경치가 좋다. 당당하고 멋진 상수리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1.12

흥국사 느티나무

경기도 고양 노고산 자락에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전에는 흥성암이었는데 영조가 나라를 흥하게 하는 사찰이라며 흥국사로 이름을 고치고 직접 대웅전 현판을 내렸다 한다. 사찰 경내에 수령이 45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줄기가 45도로 기울어져 있는데 버팀대 없이 지탱되고 있는 게 대단하다. 속도 거의 썩어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더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저렇게 삽과 빗자루를 기대 놓듯 무심하게 대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과잉 보호가 도리어 나무의 자연성을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년의나무 2014.01.12

성내리 은행나무

우리나라에 '성내리'라는 지명은 많다. 성이 있는 큰 고을이었다면, 성을 경계로 성 안 마을과 성 밖 마을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풍기도 조선 시대에는 풍기군이었으니 성내리라는 지명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다. 성터의 흔적도 있다는데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풍기군 옛 관아터에 수령이 7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는 무척 노쇠한 모습이다. 전체 조선 시대와 함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옛 건물은 전혀 찾을 길 없고, 오직 이 은행나무만이 세월의 무상을 증언하고 있다. 나무 옆에는 풍기초등학교가 있다. 국민학교 3학년쯤에 여기로 전학 와서 1년 정도 다닌 적이 있는 학교다. 아마 1961년 경이었을 것이다. 촌놈에게는 전기가 들어왔던 풍기는 휘황한 도회지였다. 아버지가 정미소 사업을 하면서 풍기 생활..

천년의나무 2014.01.02

수산리 곰솔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수산저수지 옆에 서 있는 천연기념물 곰솔이다. 제주도에는 나무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내비에 주소를 찍어도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 천연기념물이라면 도로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안내판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무를 처음 본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천연기념물 정도 되면 그 나무만의 독특한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수산리 곰솔을 옆에서 보면 마치 부채춤을 추는 모양이다. 균형이 맞지 않는 게 도리어 멋진 자태를 만들었다. 겨울에 눈을 이고 있으면 백곰이 저수지 물을 먹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상이 된다고 한다. 곰과 곰솔은 언어적으로도 잘 어울린다. 이 나무는 400여 년 전 수산리가 생길 때 어느 집 ..

천년의나무 2013.12.18

교래리 팽나무

제주도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건 나무 종류가 육지와 다른 때문일 것이다. 야자수 가로수라도 만나면 더할 나위도 없다. 길을 걷다가 보면 나무 이름이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현지 주민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 나무도 육지 같았으면 십중팔구 느티나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느티나무가 육지만큼 흔하지 않다. 중부 지방에서 느티나무의 위치를 이곳에서는 팽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18번 도로변에 있는 이 팽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 되었다. 높이는 16m, 줄기 둘레는 4.5m다. 팽나무를 제주도 사람들은 '퐁낭'이라고 부른다.

천년의나무 2013.12.17

정방동 후박나무

후박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 반면에 남쪽 지방에서는 오래된 후박나무가 많다. 후박나무 껍질은 말려서 한약재로 쓴다. 울릉도 호박엿이라는 건 원래 후박나무 껍질을 넣어 만든 후박엿이었다고 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호박을 넣어서 만드니 호박엿이 맞지만, 원조는 후박이라는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기상대 구내에 있는 이 후박나무는 수령이 450년이 되었다. 나무줄기에서 그 연륜이 느껴진다. 키는 10.5m, 줄기 둘레는 4.6m다. 원래는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 나무는 태풍 피해를 입어 베어졌다고 한다.

천년의나무 2013.12.16

서귀동 팽나무

화가 이중섭은 1951년 한국전쟁 때 제주도 서귀포에서 1년가량 머물렀다. 네 가족이 좁은 방 하나에서 살았지만 그에게는 제일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화가가 살았던 집에는 당시 집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지금도 살고 계신다. 주변은 이중섭 미술관을 비롯해 문화의 거리로 변모했다. 집 앞에 있는 이 두 그루의 팽나무는 화가가 제주도 생활을 할 때 쉼터 역할을 했던 나무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소재가 된 나무다. 수령은 200년 정도 되었다. 근처에 있는 아래 향나무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작품 구상을 위해 이 향나무 아래서 자주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이중섭의 체취가 묻어 있는 나무들이다.

천년의나무 2013.12.15

오관리 왕버들

옛 홍주관아에는 30동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동헌으로 쓰인 안회당(安懷堂) 등 넷밖에 안 된다. 그중의 하나가 여기 보이는 여하정(余何亭)이라는 정자다. 안회당 뒤뜰에 있는 연못 가운데 세운 것으로 관리들이 업무를 보다가 휴식을 취한 곳이다. 여하(余何)란 '나는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할까?'라는 뜻이다. 여하정 옆에는 오래된 왕버드나무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1896년에 홍주목사 이승우가 이곳을 정비하고 여하정을 세웠다고 하니 만약 그때 심었던 나무라면 수령이 100년은 넘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 정도가 되어 보인다. 최근에 다시 복원한 정자는 옛 맛이 없어 아쉬우나, 연못과 정자, 왕버들이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풍경을 이룬다.

천년의나무 2013.11.11

오관리 느티나무

홍성군청 마당에 있다. 이곳은 홍주관아(洪州官衙)가 있던 자리로 홍주성이 둘러싸고 있다. 주위에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산재해 있는데 대표적인 게 이 두 그루의 나무다. 이 나무는 고려 공민왕(1358년) 때에 심었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650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전해오는 전설도 많다. 고을에 액운이 낄 것 같으면 느티나무가 밤을 새워 울었고, 이때마다 관리는 서둘러 예방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역대 목민관들이 홍주에 부임하게 되면 제일 먼저 이 나무 아래에 제물을 차려 놓고 군민의 무고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는데 그 제단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아마 홍성을 대표하는 나무인 것 같다. 나무 높이는 각각 17m, 11m이고, 두 나무가 덮고 있는 길이만도 40m가 된다. 오누이처럼 다정한 모습이 보기..

천년의나무 2013.11.11

아침고요수목원 천년향

아침고요수목원을 대표하는 나무다. 원래는 안동에 있는 한 마을의 당산목이었으나, 마을이 수몰되면서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옮겨졌다. 향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이식 후에도 새 토양에 대한 적응이 빠르고 고사의 위험성이 적다고 한다. 수령이 1,000년 정도로 추정되어서 천년향이라고 이름 붙었다. 줄기는 노쇠했지만 전체적인 풍모는 단아하고 아름답다. 잘 가꾼 인공미이긴 하지만 사람도 저렇게 곱게 늙어가고 싶다.

천년의나무 2013.11.05

둔리 느티나무

수덕사로 가기 위해서는 수덕고개를 지나야 하는데, 고갯마루에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300년 가까이 된 나무들이다. 이곳에 예전에는 주막이 있었음 직한 위치다. 지나던 길손이 이 느티나무 아래서 막걸리를 마시며 다리를 쉬었으리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에 육괴정(六槐亭)이 있다는 안내문도 있다. '괴(槐)'가 원래 회화나무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느티나무의 뜻으로 쓰인 것 같다. 느티나무 옆에는 지금 현대식 2층 상가가 들어서 있지만 차라리 옛날 주막집을 복원해 놓는다면 더 나을 것 같다. 음식점 네온사인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천년의나무 2013.11.04

수덕사 느티나무

수덕사(修德寺) 느티나무에 가을물이 들고 있다. 대웅전 앞 마당 좌우에 두 그루가 있는데 수령이 300년 정도 된 나무들이다. 10여 년 전 수덕사가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을 때는 절 분위기가 썰렁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고풍스런 분위기를 되찾았다. 오래된 이 두 그루 느티나무 덕분이기도 하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이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미가 독보적이다. 고려 충렬왕(1308) 때 지은 건물이다. 이 대웅전 기둥도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11.03

명재고택 느티나무

명재고택(明齋古宅)은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의 노성산 남쪽 자락에 있다. 명재 윤증은 가까이 있는 다른 마을에서 살았다고 하나, 말년 쯤인 1700년대 초에는 이곳으로 옮기지 않았나 추정한다. 명재고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한옥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집이다. 명재고택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그중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는 400년 정도 되었으니 이 집의 역사와 함께 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명재고택이 제일 멋지다. 많은 항아리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겹고 다정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천년의나무 2013.10.29

임리정 팽나무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임리정(臨履亭)에 있는 팽나무다.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금강을 바라보는 얕은 언덕에 있다. 시경에 나오는 '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는 구절에서 임리정이라 하였다. 항상 몸가짐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라는 선인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이 나무는 수령이 300여 년이 되었는데 훤히 트인 금강의 조망을 살짝 가려준다. 비슷한 크기의 나무가 임리정 뒷쪽에도 있다.

천년의나무 2013.10.28

하련리 느티나무

하련리는 전북 고창군 해리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다. 하련리에서 청용산을 지나 선운사로 연결되는 옛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을 뒤 산자락을 살폈으나 길을 찾지는 못했다. 길 흔적은 보였으나 사람 발길이 끊어진 탓인지 풀만 무성해서 들어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 느티나무는 하련리의 당산나무다. 정월 대보름이면 한 해의 액운을 물리쳐 줍시사고 이 나무에 기도했다고 한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런 전통도 다 사라졌을 것이다. 수령은 300여 년이 되었고, 키는 20m, 줄기 둘레는 3.6m다.

천년의나무 2013.10.21

직포리 곰솔

금오도에 있는 직포리는 비렁길 2코스와 3코스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해송과 집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그중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00년의 이 곰솔이 형태상으로는 제일 아름답다. 마을에는 이 곰솔 외에도 여러 그루가 직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심은지 오래된 큰 나무들이다. 마을을 바람과 파도로부터 지키기 위해 심었을 것이다. 이렇듯 해송은 바다와 부딪치며 서 있어야 당당하고 멋있다. 매운 바닷바람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강인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으리라. 200년 동안 몰아친 태풍만 해도 얼마나 많았으리. 그러면서도 단단하면서 깔끔한 그 자태가 대견하다.

천년의나무 2013.10.14

장지리 팽나무

여수 금오도 장지리에 있는 팽나무다. 장지리는 금오도 비렁길 마지막 구간인 5코스의 종점 마을이다. 동네 가운데에 있는 이 당산나무는 바다를 굽어 보며 당당히 서 있다. 나무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2.4m, 수령은 200년이 되었다. 이렇듯 팽나무는 남쪽 지방에 내려와야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나무로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다음으로 팽나무다. 예전에는 보릿고개를 넘길 때 곡식에 팽나무 잎을 섞어 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민중의 삶과 밀접했던 나무가 팽나무다.

천년의나무 2013.10.09

심포리 곰솔

여수 금오도 심포마을에 있는 곰솔이다. 남쪽 섬에 오니 해안가에서 해송을 자주 만난다. 그중에서도 나란히 자라고 있는 이 두 나무는 키가 18m나 되는 늘씬한 미송(美松)이다. 수령은 150년 정도 되었다. 곰솔, 해송, 흑송은 다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육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육송, 바닷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해송, 곰솔이라 부른다. 또는 나무 껍질 색깔에 따라 육송은 적송(赤松), 해송은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껍질이 하얀 백송(白松)도 있다. 백송은 잎이 셋으로 갈라진 게 다른 소나무와 다르다.

천년의나무 2013.10.08

약수리 느릅나무

수령이 460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느릅나무가 아닌가 싶다. 키도 크고 풍채도 우람하다. 안내문에는 키가 25m, 줄기 둘레가 5.5m로 적혀 있다. 평창을 지나는 국도 31호선 가에 있다. 옆으로는 평창강이 흐른다. 나무는 강과 도로 사이에 끼여 옹색한 게 아쉽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 이름이 '느티나무집'이다. 아마 이 나무를 느티나무로 착각한 것 같다. 느티나무도 느릅나뭇과니 둘은 비슷한 데가 많다. 느릅나무를 한자로는 '유(楡)'라고 쓰는데, 예부터 목재로서의 가치가 아주 높았다. 나무 재질이 그만큼 단단하다. 또 느릅나무 껍질은 소나무 껍질처럼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다. 어렸을 적 기억인데 이웃집에서 느릅나무 잎과 가지를 삶아 약으로 드시는 것도 보았다. 느릅나무가 지금은 생소하지만 ..

천년의나무 2013.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