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68

내현리 느티나무

충남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는 '거북이마을'로 알려져 있다. 구항(龜項)에도 '거북 구' 자가 들어있는데 이 고장 지형이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한다. 내현리는 약천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선생은 당시 서인의 중심 인물이었고 문장과 시화에 뛰어났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 시조가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말년에 이곳에서 집필 활동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역사성 있는 내현리는 여러 문화 사업을 하는 것 같다. 여는 농촌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 마을에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연륜이 오래되었음을 나무 밑둥이 말해준다. 찾아간 날은 주변이 공사중이라 어수선했다. 마을에서 아..

천년의나무 2018.06.14

궁리 소나무(2)

안면도에 가는 길에 다시 본 궁리 소나무다. 12년 전에 처음 본 모습 그대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에게는 호들갑스러운 말이다. 묵묵히 변치 않음이 천 년 나무의 특징이다. 마치 큰 바위 같다. 멋진 구름이 있을 때 하늘을 배경으로 찍으면 나무의 생김새가 더욱 살아날 것 같다. 붉게 노을 든 하늘이라면 더욱 좋겠다. 한 마리 단정학이 내려앉아 있는 듯한 궁리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8.06.13

향소리 느티나무

양평군 단월면 향소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도로변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특이한 모양의 나무다. 느티나무 두 그루와 음나무가 한데 붙어 있는 연리목이다. 세 그루가 합체된 경우는 처음 본다. 그런데 아쉽게도 음나무는 줄기가 베어졌다. 안내문이 아직 남아 있는 거로 봐서 근래 죽은 것으로 보인다. 느티나무와 음나무 수령이 500년으로 적혀 있다. 무슨 사연으로 음나무가 죽음을 맞았는지 주변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옆에는 좀 더 어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제단이 차려져 있다. '소망'이라는 제목의 표석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장소인 것 같다. 총 다섯 그루가 있었는데 음나무는 사라지고 지금은 느티나무 네 그루만 남았다. 몇 년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살아 있는 음나무를..

천년의나무 2018.06.08

창의리 느티나무(2)

10년 전에 만난 나무인데 처음인 듯하다. 그때는 겨울이어서 나무의 느낌이 전혀 달랐을지 싶다. 확실히 여름 나무는 생명력이 넘친다. 가평군 설악면 창의리에 있는데 지인의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무 둘레로 목재 데크와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10년 전에는 없던 시설이다. 너무 인간 위주의 생각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무 수령은 500년, 높이는 28m, 줄기 둘레는 7.1m다.

천년의나무 2018.06.07

영통동 느티나무

미끈하게 잘 빠졌다. 우람하면서도 균형 잡힌 멋진 느티나무다. 펜스에 걸어놓은 현수막에는 이 나무가 대한민국 보호수 100선에 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의 보호수는 1만 개가 넘는데, 그중에서도 100위 안에 드는 뛰어난 나무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안내문에 보면 이 느티나무는 전쟁 같은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는 구렁이 울음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신비한 힘을 가진 나무라 하여 신성시하고 정성껏 보살폈다. 그런데 왜 하필 구렁이 울음소리인지, 구렁이 울음소리가 있는지 문득 의문이 생긴다. 약 200년 전 정조가 화성을 쌓을 때 이 느티나무 가지를 잘라 서까래로 썼다는 설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줄기와 가지가 기운차게 뻗어 있다.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어..

천년의나무 2018.06.06

봉녕사 향나무

수원시 우만동에 위치한 봉녕사(奉寧寺)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창건한 사찰이다. 비구니 사찰답게 단정하면서 청정한 기운이 감돈다. 시내 한복판이지만 부지도 넓어 시원하다. 봉녕사 대적광전 앞에 오래된 향나무가 있다. 수령이 800년으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봉녕사와 역사를 같이 하는 나무다. 고목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향나무는 더하다. 그냥 사찰의 창건 시기와 맞추었는지 모르겠다. 단단한 향나무지만 줄기는 많이 상했다. 밑의 가지는 마치 춤추는 무용수의 팔처럼 리드미컬하게 휘어져 있다. 나무 높이는 9.4m, 줄기 둘레는 2.8m다.

천년의나무 2018.06.05

이의동 느티나무

수원시 영통구 광교역사공원 안 넓은 뜰에 있다. 주변은 온통 신도시로 개발되는데 이만한 녹지를 마련한 게 다행이다 싶다. 공원 안에는 세종의 부원군인 심온(沈溫, 1375~1418)의 묘도 있다. 태종과 사돈지간이었지만 권력에 너무 다가가면 화를 입게 되는가 보다. 죽임을 당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분의 나이 44세였다. 느티나무를 보니 전에는 이곳에도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무 한 그루만 덩그마니 남아 있다. 나무 수령은 300여 년이고, 높이는 13m, 줄기 둘레는 4m다.

천년의나무 2018.06.05

목애당 느티나무

태안읍 남문리에 있는 목애당은 옛 태안현의 관아 건물 중 하나다. '목애(牧愛)'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목애당과 마주하며 오래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은 300년 정도 되었고, 나무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4.1m다. 줄기가 휘어져서 몸을 지탱하는 데 힘겨워 보인다. 줄기도 많이 상해서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보형물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잎은 무성하고 싱싱하며 전체적인 생김새도 아담하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단아하게 늙어가시는 할머니 같은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8.06.03

유계리 느티나무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정순왕후 생가 앞에 있다.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는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1759년(영조 35년) 열다섯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이때 영조의 나이는 예순여섯, 무려 쉰한 살이나 차이가 났다. 왕비 간택 테스트를 볼 때 일화 하나. 제일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고 영조가 물으니 그녀의 대답이 이랬단다. "목화꽃입니다. 비록 색과 향기가 최고라고 할 순 없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입혀주니 제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 나이가 300년이 넘는다니 정순왕후는 어쩌면 이 나무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 밑에서 소꿉놀이에 빠져 있는 어린 소녀가 보이는 듯도 하다.

천년의나무 2018.06.03

해미향교 느티나무

해미향교로 오르는 길 좌우로는 오래된 느티나무 10여 그루가 도열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년가량 되었다. 한 장소에 이 정도로 여러 고목이 보존된 경우는 드물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위치한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년)에 세워졌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나무와 달리 건물은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느티나무가 멋진 해미향교다.

천년의나무 2018.06.01

여미리 비자나무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비자나무다. 비자나무는 제주도나 남해안 지역에서 많이 자란다. 이렇게 중부 지방에서 자라는 비자나무 고목은 드물다. 추정 수령은 330년이고, 높이 20m, 줄기 둘레 2.5m다. 이 비자나무는 여미리에 살던 전주 이씨 가문의 한 분이 1600년대 후반에 제주도에서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기후나 풍토가 맞지 않을 텐데 잘 자라고 있다. 수형도 아름답다. 비자나무 밑에 유기방 가옥이 있다. 봄에 수선화가 유명하다고 친구가 소개해 준 곳이다.

천년의나무 2018.05.30

물곡리 느티나무

전형적인 시골 마을 정자나무다. 나무 밑에는 주민이 쉴 수 있는 깔끔한 정자가 앉아 있다. 흠이라면 너무 도로에 연해 있어 차량 소음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전북 진안읍 물곡리에 있다. 이 마을은 뒷산 지형에서 따와서 '궁동(弓洞)마을'로도 불린다.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어 시원하다. 나무 수령은 200년 정도 되는데 마을 역사와 얼추 비슷하다. 나무 앞에는 돌 제단이 있는데 빈 막걸리 통이 놓여 있다. 한여름에 이런 나무 아래서 바둑 한 판 둔다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천년의나무 2018.05.17

평지리 이팝나무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이팝나무군은 나무 자체보다는 민속적 의미가 커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 같다. 옛날에 이곳은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었다고 한다. 죽어서라도 이밥을 많이 먹으라고 사람들은 무덤 주위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그만큼 배 고팠던 시절이었다. 옛 무덤 자리에는 지금 마령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몇 그루의 이팝나무가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이팝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 되었다. 그러나 나무의 생육 상태는 좋지 못하다. 줄기도 상하고 잎도 온전히 피우지 못한다. 꽃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슬픈 넋을 위로하느라 나무도 시름시름 앓는지 모른다. 모두 교실 수업을 하는지 운동장에는 아이 하나 없이 고요한 평지리의 봄날이었다.

천년의나무 2018.05.11

월곡리 느티나무

나무를 처음 본 순간 나도 몰래 중얼거렸다. "이 나무 하나로 영암에 온 값을 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게 당연할 만큼 대단한 느티나무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신성시한다는 설명은 차치하고라도 이 나무 앞에서는 누구라도 합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 같다. 울타리 밖에는 촛대 같은 도구가 놓여 있기도 하다. 500년이 넘은 거목이지만 연초록 새잎으로 덮인 나무는 생기발랄해 보인다. 길게 뻗어 구불구불한 가지들이 춤추듯 사방으로 뻗어 있다. 한 가지는 아예 땅에 닿았다. 줄기 일부는 상해 있지만 나무는 싱싱하다. 초봄의 기운 때문인지 모른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나무의 인상은 완연히 다르다. ..

천년의나무 2018.04.19

이탈리아 우산소나무

이탈리아 풍경에서 제일 눈에 띈 것이 우산소나무다. 시골이나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키 크고 날씬한 멋쟁이 소나무다. 학처럼 맑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긴다. 곧은 줄기가 위로 자라서는 몇 갈래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 소나무로는 반송과 닮았다. 버스를 타고 갈 때 보니 옛 로마가도에도 가로수로 우산소나무가 심겨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사랑하는 나무인 것 같다. 우산소나무의 원산지는 지중해로, 남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자란다. 외양이 무척 아름다운데 우리나라에 심으면 어떨까 싶다. 관상수로는 최고가 될 것 같다. 우산소나무와 함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나무가 사이프러스다. 측백나무과로 나무 모양은 길쭉한 삼각형이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건물과 사이프러스는 특히 잘 어울린다. 한..

천년의나무 2018.03.22

천곡리 이팝나무

신천리 이팝나무와 함께 김해를 대표하는 나무다. 이 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되고, 나무 높이는 17m, 줄기 둘레는 6.9m다.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에 있다. 천곡리 이팝나무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인공물이 없이 널찍하고 여유가 있다. 신천리 이팝나무와 대비가 된다. 그래선지 나무의 위엄이 훨씬 돋보인다. 이 정도면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할 만하다. 꽃이 필 시기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낸다고 한다.

천년의나무 2018.02.28

신천리 이팝나무

천연기념물 185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팝나무다. 수령이 650년으로 추정되며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에 있다. 엄청난 고목인데도 아직도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나무가 마을 우물을 보호한다고 믿어서 마을 사람들은 음력 섣달 그믐에 용왕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고, 시원찮으면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는 여느 이팝나무와 마찬가지다. 신천리 이팝나무는 줄기 곳곳에 돌기가 많이 나 있다. 마을 가옥 가까이 있어 자리가 매우 비좁다. 겨울이 아니라 하얀 꽃이 피는 계절에 본다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때를 맞추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년의나무 2018.02.27

예장동 은행나무, 느티나무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자락에 두 그루의 고목이 나란히 서 있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다. 이곳은 일제 시대 때 통감 관저가 있던 장소다.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 데라우치와 이완용이 강제 병합 조약을 조인한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두 나무는 우리의 부끄러웠던 그때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었을 터이다. 두 나무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 되었다. 약 100년 전에 찍은 사진에도 두 나무는 지금과 비슷한 모양으로 나온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도로도 똑 같지만 통감 관저는 사라지고 그 자리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기억의 터로 조성되어 있다.

천년의나무 2018.02.24

이현궁터 은행나무

서울 종로구 인의동에 있었던 이현궁(梨峴宮)은 광해군이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궁이다. 지금은 작은 표석만 있을 뿐 빌딩 숲으로 변해 궁의 어떤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원래 1만 평 정도의 넓이였다니 상당한 크기였던 것 같다. 인조 이후에는 행궁이나 왕족의 집, 군영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이현궁터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되었다. 1500년대 후반에 광해군이 살았으니 그 즈음에 심어진 나무로 보인다. 나무 높이는 17m다. 길의 반 이상을 나무에게 내어주고 있지만, 은행나무는 높은 건물 사이에 끼어 옹색해 보인다. 나무는 남아 있어도 500년 전 이현궁의 모습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천년의나무 2018.02.14

도피안사 느티나무

철원에 있는 도피안사는 '도피안(到彼岸)'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기억되는 절이다.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른다는 의미가 각별하다. 국보인 철제비로자나불이 유명하다. 도피안사에 들어서면 가운데에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겨울이라 앙상해서 그렇지 여름 같았으면 느티나무 초록 그늘이 온 절을 뒤덮을 것만 같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600년으로 되어 있는데 한 그루가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도피안사에서 이 느티나무는 화룡점정이라고 할까, 만약 느티나무가 없었다면 절 분위기가 무척 썰렁할 것 같다. 6.25 때는 이곳이 격전지였다. 절이 완파되는 피해를 입었어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느티나무가 대단하다.

천년의나무 2018.02.02

궐리사 은행나무

궐리사(闕里祠)는 절이 아니라 공자님을 모신 사당이다. 오산에 있는 궐리사는 공서린(孔瑞麟, 1483~1541) 선생이 후학 교육을 위해 만들었으나, 정조 17년(1792)에 사당을 세우고 궐리사라 붙였다. '궐리'란 공자가 살던 노나라의 마을 이름이다. 오산 궐리사에 500년 가량 된 은행나무가 있다. 화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는데 마침 노랗게 물이 들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궐리사보다는 은행나무 곁에서 더 오래 머문다. 이 은행나무는 중종 시절 공서린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은행잎이 유난히 작다. 5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다. 뒤에서 바라보는 궐리사와 은행나무가 잘 어울린다. 이 은행나무가 없다면 궐리사는 많이 쓸쓸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7.11.14

반계리 은행나무(3)

이 나무와는 13년 전에 처음 대면했다. 노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강렬함에 넋을 뺏긴 기억이 난다. 10여 년이 흘렀어도 마찬가지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은행나무 중 제일 선연한 노란 색깔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도 아름답다. 800년 된 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때에 비해 주변은 잘 정리되었다. 마을 가운데 있지만 공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다. 혼자였다면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지는 석양을 받을 은행잎은 더욱 환상적일 것이라고 상상을 해 본다. 가을이 되면 꼭 찾아보고 싶은 나무 중 하나다.

천년의나무 2017.11.10

용문사 은행나무(4)

이번에는 때가 늦었다. 노란 은행잎이 많이 떨어지고 허전했다. 10월 말에 찾았던 재작년에는 초록 잎새가 남아 있을 정도로 빨랐고, 이번에는 지각을 했다. 절정의 순간을 맞추기가 그만큼 힘들다. 떨어진 은행잎을 쓸어내었는지 나무 아래도 휑해서 아쉬웠다. 이번 길에는 처제와 동서가 동행했다. 입시를 코앞에 둔 자식이 있어서 마음이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 년 고목을 보면서 좀 더 넓게 세상을 보았으면 한다. 그때는 사소한 일에 왜 그렇게 노심초사했을까, 지나고 봐야 깨닫는다. 인생의 일이란 대부분 그렇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천년의나무 2017.11.10

명륜당 은행나무(2)

아직 초록색이 남아 있다. 때를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 산에는 단풍이 질 때지만 도시는 이제야 시작이다. 나무에 관심이 없는 친구도 감탄할 정도로 이 나무의 위용과 아름다움은 대단하다. 두 그루 중 왼쪽에 있는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중종 때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던 윤탁이 심었다고 전해지니 500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던 조선 시대 유생들과 일상을 함께 했던 은행나무로 역사성이 깊다. 나무도 분위기를 닮는지 선비의 기품이 느껴지는 나무다. 이 나무 앞에서는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완전히 노랗게 물든 모습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천년의나무 2017.11.09

도동 향나무

울릉도에는 화산암 바위 틈에서 자라는 향나무가 많다. 통구미와 대풍감에 있는 향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항을 둘러싼 산비탈에도 오래된 향나무들이 보인다. 무려 2천 살이 넘는 향나무도 있다고 한다. 당연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다. 그런데 어느 나무인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다.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나무를 찍어 보았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경사진 비탈에서 위태롭게 자라고 있다. 키를 낮추어야 할 것 같은데 홀로 우뚝하다. 고고장향(孤孤長香)으로 불러도 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7.11.06

건봉사 소나무

건봉사를 내려다보는 산등성이에 우뚝 서 있는 멋진 소나무다. 건봉사는 유난히 산불과 전란의 피해가 컸다. 그래서 사찰 건물은 여러 번 소실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했다. 나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나무들이 화마를 당해 죽었지만 이 나무는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나무 바로 밑에 있는 전각들이 불에 탈 때도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여느 나무보다 훨씬 더 당당하다. 수령은 300년쯤 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옆에 서면 고난을 이겨낸 생명체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봉사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7.09.25

와타즈미신사 소나무

대마도를 대표하는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는 해신인 용왕을 모신 곳이다. 용왕이 오가는 길을 따라 도리이가 바다를 향해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이드는 그 방향이 우리나라 김해를 향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일본 신사 도리이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곳은 서쪽을 향한다. 아마 가야에서 건너온 우리 조상과 연관된 신사는 아닌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신사에 기이한 모양의 뿌리를 가진 소나무가 있다. 뿌리가 나무 키보다도 더 길게 직선으로 뻗어 있다. 건물도 뿌리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가이드 말로는 천년송이라는데 그 정도로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지상에서부터 꿈틀대며 하늘로 치솟는다. 대마도에서는 소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와타즈미신사에서 만난 특이한 ..

천년의나무 2017.09.15

화성행궁 느티나무

수원 화성행궁 입구에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다. 수령은 350년 정도 되었다. 행궁을 지을 때 궁궐의 조경 제도에 의해 '品'자 형태로 심었다. 영의정을 비롯한 삼정승을 나타내는데, 나라를 위해 올바른 정치를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행궁 앞이지만 힘들게 살아 온 흔적이 보이는 나무다. 행궁 안에 들어가면 더 오래된 나무가 있다. 몸체 대부분은 죽었고 가운데서 돋아난 한 가지만 살아 있다. 9년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진 것 같다.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니 화성 조성 훨씬 이전부터 여기에 있었다.

천년의나무 2017.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