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73

하회마을 느티나무

하회마을에 있는 많은 나무들 중에서 이 느티나무가 가장 오래 되었으면서 또한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다. 풍산 류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는 600살 쯤 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도 이 나무는 마을의 혈(穴)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는데,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洞祭)를 올린다고 한다. 이 나무는 삼신당(三神堂) 신목(神木)으로 불린다. 삼신할머니는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우리 전통의 신앙 대상이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인네들의 애달픈 비손을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이 지켜보았을 것인가. 지금도 나무 둘레에는 관광객의 소원을 적은 흰 종이가 빼곡히 매달려 있다. 그래선지 나무의 생김새도 삼신할매 마냥 푸근하고 넉넉하다. 밑에서부터 왕관 모양..

천년의나무 2010.01.28

만송정 솔숲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쪽 강변을 따라있는 소나무숲이 만송정 솔숲이다. 조선 선조 때 겸암(謙菴) 류운용(柳雲龍) 선생이 부용대의 기를 누르고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만송정(萬松亭)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솔숲에 정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숲은 400 년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보는 소나무들은수령이 백년 내외가 된다. 따라서 후대에 다시 조성한 소나무일 것이다. 하회16경(河回十六景) 중에 송림제설(松林霽雪)이 있는데 이는 눈 덮인 만송정의 솔숲을 가리키는 말이다. 꼭 겨울이 아니더라도 이 솔숲은 하회마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솔숲이 없다면 마을이 얼마나 썰렁할지는 부용대에 올라 바라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더..

천년의나무 2010.01.22

달성공원 참느릅나무

느릅나무 종류 중에서 제일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팽나무일 것이다. 그에 비해 참느릅나무 고목은 자주 만나지 못한다. 느릅나무과에 해당하는 나무들은 목재가 단단하고 물에 썩지 않아 옛날부터 선박이나 교량을 만드는데 많이 쓰였다고 한다. 또 나무껍질이나 뿌리는 약용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대구 달성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가 이 참느릅나무 고목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잔디밭에 있다. 생김새가 무척 오래돼 보이는데 안내문에는 수령이 130년으로 적혀 있다. 예상보다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괴목으로 그만큼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뜻인지 모른다. 실제로 나무의 주 줄기는 잘라진 상태다.키는 약 10 m이고, 줄기 둘레는 2,3 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10.01.19

달성공원 회화나무

대구 달성공원에 있는 이 회화나무에는 '서침나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서침(徐沈)은 조선 세종 때 문신으로 달성 서씨의 거주지였던 달성이 대구관아 부지로 정해지자 기꺼이 땅을 국가에 헌납했다고 한다. 세종은 뜻을 가상히 여겨 상을 내리려 했지만 서침은 개인적인 포상 대신 대구부민의 환곡 이자를 감해줄 것을 건의해서 성사시켰다는 얘기가 전한다. 북구 산격동에는 그를 기리는 구암서원(龜巖書院)이 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부민의 생활을 먼저 걱정한 뜻을 기려 달성공원에 있는 이 나무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이 회화나무는 높이가 16 m에 줄기 둘레는 2.8 m 정도다. 수령은 약 30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달성공원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0.01.16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시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있다. 서구 신현동에 있는데 나이는 500살이 넘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어 집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지만 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고 관리도 잘 되고 있는 편이다.도시에 있는 대개의 나무들처럼 옹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는 생육 상태가 좋아보이며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키는 22 m, 줄기 둘레는 5.6 m에 이른다. 잎이 떨어진 회화나무는 가지의 실루엣이 멋있다. 마치 파마를 한 듯 고불고불하게 굽은 잔가지들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미인이 옷을 벗으면 더 아름답듯 나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겨울나무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이 나무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나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나무를 그리는 최적의 앵..

천년의나무 2009.12.23

계산동 은행나무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부평초등학교는 옛 부평도호부 자리에 있다. 정조가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던 흔적으로 욕은지(浴恩池)와 어사대(御射臺)가 남아 있다. 부평초등학교는 역사가 100년이 넘는 학교인데 운동장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나무들은 태종 18년(1418)에 부평도호부 청사를 지었을 때 풍치목으로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나이는 대략 600년 쯤 되었을 것이다. 겨울에 봐서인지 나무는 많이 상해 보였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교문에서 멀리 있는 은행나무가 줄기도 굵고 키도 컸다. 이 나무는 새총처럼 줄기에서 두 가지가 갈라져 나왔는데 줄기의 많은 부분이 보형재로 채워져 있었다. 키는 약 25 m, 줄기 둘레는 6 m 정도 된다. 나무의 위치..

천년의나무 2009.12.19

바오밥나무

‘그런데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나무 씨앗 투성이었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애버릴 수가 없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이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나고 마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는 별을 파괴하는 무서운 나무다. 다 큰 바오밥나무 세 그루만 있으면 별은 나무로 뒤덮인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일찍부터 바오밥나무의 싹을 뽑아주어야 했다. 어렸을 때 ‘어린 왕자’를 읽으며 바오밥나무란 어떻게 생겼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때는 바오밥나무가 실재하는 나무인지도 몰랐다. 지난번 한택식물원에 갔을 때 이 바오밥나무를 만난 것은 행..

천년의나무 2009.12.08

전등사 느티나무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절에 가도 부처님보다는 오래된 나무만 살피게 된다. 우리나라 절은 보통 고목 한두 그루쯤은 있는 법이니 그런 나무 구경하는 재미가 나에게는 가장 좋다. 처음 만나게 되는 나무라면 더욱 반갑겠지만 여러 번 보더라도 또 그대로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나무가 가장 은혜로운 설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앞뜰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안내문이 없어 정확치는 않지만 내 눈에는 나이가 삼사백 살 쯤 되어 보이는 나무다.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인 나무다. 마치 절을 지키는 정갈한 수도승 같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절을 찾아오는 손님을 허리 굽혀 공손히 맞이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만약 이 느티나무가 없다면 전등사의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

천년의나무 2009.12.02

전등사 단풍나무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 앞에 대조루(對潮樓)라는 누각이 있다. '바닷물을 마주본다'는 뜻일 텐데 실제는 산과 나무에 가려 바다는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없다. 이 대조루 옆에 굉장히 큰 단풍나무가 있다.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라고 한다. 줄기 둘레만 거의 두 아름이 된다. 그러나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가 합쳐져 있어 그 가치가 반감된 모양이다. 나무는 축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옹색하기가 그지 없다. 지나는 사람들도 나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 달 전쯤에 찾아갔을 때는 막 단풍색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단풍나무들은 절정이 지났을 때였는데 이 나무는 덩치만큼이나 동작이 느렸다. 아마 지금에야 붉은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내년에는 느지막하게..

천년의나무 2009.11.24

양평동교회 둥근잎느티나무

1885년 4월 5일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감리교회의 아펜젤러 부부가 인천항에 첫발을 디딤으로써 한국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언더우드는 교육과 복지사업을 병행하며 여러 군데 교회를 세우는데 영등포에 있는 양평동교회는 그가 한국에 들어온지 22년째 되는 1907년에 설립한 교회다. 102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양평동교회에 언더우드가 교회 설립을 기념하며 심었다고 전해지는 둥근잎느티나무가 있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둥근잎느티나무는 영국이 원산으로 원명은 울무스(Ulmus)이며, 미국 남부 지방에는 오래된 둥근잎느티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일반 느티나무에 비해 잎이 넓고 나무 껍질도 우둘투둘하다. 교회를 세울 당시 이곳은 한양..

천년의나무 2009.10.16

남산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남산하면 소나무가 연상되는 것은 이런 애국가의 가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남산에는 철갑을 두른 듯한 울창한 소나무 숲은 없다. 그래도 남쪽 기슭을 중심으로 일부가 남아있는데, 남산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은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 때 남벌한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남산의 소나무 숲 자체가 인공적으로 조림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때에 장정 수천 명을 동원해 남산을 중심으로 20일 동안 100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궁궐 건축 등을 위한 목재 수요의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소나무의 벌채를 금하면서 남산은 숲이 울창해져 산적이 출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소나무가 지금은 전체의 20..

천년의나무 2009.10.07

서산향교 은행나무

지난 여름에 서산향교의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위치가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아 가는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이러저리 좁은 길을 따라간 끝에 추레한 향교가 있었다. 서산향교는 조선 태종 6년(1406)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향교의 명륜당 앞 마당에 이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유주가 특징이다. 크고작은 유주가 스무개가 넘는다. 큰 것은 길이가 어린 아이 키만큼이나 되는데 고드름처럼 생겼다. 이 은행나무에만 왜 이렇게 많은 유주가 발달해 있는지 궁금하다. 나무의 수령은 500 년 정도 되었고,높이는 33 m에 이른다. 이 향교에 갈 때는 사나운 개를 조심해야 한다. 향교 안에는 살림을 하는 집이 있는데 입구에서 키우는 개가 무척 사납다. 주인이 나와서 진정을 시킨 다음..

천년의나무 2009.09.30

흥주사 은행나무

충남 태안군 백화산에 있는 흥주사에는 이런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먼 길을 가던 노승이 백화산 기슭에서 잠시 쉬던 중 산신령이 나타나 노승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가리키며 이곳은 부처님이 계실 자리니 지팡이로 표시를 해 두라는 말을 듣고 깨어보니 꿈이었다. 기이한 일이라 생각한 노승은 산신령이 가리킨 곳에 지팡이를 꽂아두고 불철주야 기도를 하니 신비하게 지팡이에서 은행나무 잎이 피기 시작했다. 노승 앞에 다시 나타난 산신령은 자식이 없는 자가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고, 태어난 자식들이 부귀하게 되어 부처님을 모실 것이라며 사라졌다. 몇십 년 후 불사가 이루어져 절이 세워졌고, 부처님의 손길이 자손만대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승은 흥주사(興住寺)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흥주사 은행나무는 그러므로 흥주사..

천년의나무 2009.08.20

송곡사 향나무

충남 서산시 인지면에 서산 정씨의 시조인 정신보(鄭臣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곡사(松谷祠)가 있다. 정신보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13세기 중엽에 나라가 망하자 고려에 망명하여 이곳에 정착했다. 조선조에 그의 후손들은 송곡사라는 사원을 건립하고 정신보와 이 지역 출신 선비들을 배향했다. 송곡사 앞에 큰 향나무 한 쌍이 있는데 어린 시절에 이곳에서 학문을 배우던 유윤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유윤은 세종 2년(1420)에 사마시에 급제했으나 단종의 폐위를 보고 낙향했는데 나무의 수령은 약 550 년 정도 되었다. 이 정도 향나무라면 크기나 생김새에서 나라의 여느 향나무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송곡사라는 이름에서 보듯 이곳에는 예부터 소나무가 많았던 것 같다. 뒷산뿐만 아니라 사원 앞의 소나무 숲도 ..

천년의나무 2009.08.16

면천 은행나무

당진군 면천면 면천초등학교 구내에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면소재지인 이곳 성상리는 옛 성벽이 남아 있고 관아 터도 있어 한눈에 오래된 고을임을 알 수 있다. 면천초등학교 역시 개교 백년이 넘은 학교다. 그래서 은행나무 고목은 마을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이 은행나무에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과 관련된 얘기가 전한다. 복지겸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일등공신으로 면천 복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은행나무가 있는 면천초등학교 자리는 원래 복지겸의 집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복지겸이 병을 얻어 누워 있었는데 딸 영랑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렸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두견주를 빚어 아버지께 드리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알려 주어서 ..

천년의나무 2009.08.12

송산면 회화나무

당진군 송산면 삼월리에 있는 이 나무는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 1478-1534)이 이곳에 정착하며 심은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새로 집을 지으며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회화나무를 학자수라고 부르듯 이 나무를 심으면 집안에 선비들이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이 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뻗은 균형 잡힌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화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찾아갔을 때는 여러 개의 가지가 잘려나간 상태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싱싱한 상태였으나 일부 가지는 말라죽는 것 같았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계신 한 아주머니로부터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크고 당당한 모습만은 변함 없었다. 이 나무의 키는 2..

천년의나무 2009.07.30

필경사 향나무

필경사(筆耕舍)는 심훈(1901-1936)이 말년에 기거하며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다. 본인 스스로 설계해서 이 집을 짓고 수 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1932년에는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내려온다. '필경(筆耕)'이라는 이름 그대로, 밭 갈고 농사 지으며 글을 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집은 원형 그대로보존되어 있는데 안에 들어가 보면 구조가 특이하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에 있다. 필경사 마당 한 켠에 심훈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다. 수령은 80 살 내외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향나무를 심은것은사철 푸르른 나무처럼변함 없이 민족정신을 지켜나가리라는 다짐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그날이 오면'이란 열정적인 시에는 조국 해방을 염원하는 그의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천년의나무 2009.07.25

호원동 회화나무

1호선 전철 회룡역에서 사패산을 오르는 길목에 이 회화나무가 있다. 행정지명으로는 의정부시 호원동이다. 의정부나 회룡이라는 지명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른 이방원과 함께 할 수 없다며 이성계는 한양을 떠난다. 함흥으로 갔던 이성계는 마음이 풀어졌는지 태종 2년(1402)에 한양 가까운 곳으로 오는데 조정대신들이 정무를 논의하기 위해 자주 들렀다 해서의정부(議政府)라고 했다는 것이다. 회룡(回龍)도 마찬가지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니 회룡이라는 지명도 분명 이성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호원동 바로 위쪽에는 회룡사(回龍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도 이성계에 관계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회룡사 입구에 있는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약 400여 년이 되었다. 높이는 ..

천년의나무 2009.07.10

동패리 회화나무

궁궐이나 향교 또는 한양의 양반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회화나무 고목을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설마 회화나무일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옛부터 회화나무는 선비[士]를 상징하는 나무다. 과거시험에 합격한 집에서는 기념으로회화나무를 심기도 했다. 회화나무가 왜 선비를 상징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나무의 생김새가 단정하고 가지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학자의 자유로운 기상을 나타내기에 적당해서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 생긴 나무도 많으니 외모만 가지고 설명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파주를 지나다가 교하읍 동패3리에 있는 이 나무를 우연히 만났다. 나무는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무 높이는20 m이고 줄기둘레는4 m이며, 수령은 2..

천년의나무 2009.06.18

가금리 느티나무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는 애기봉(愛妓峯)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몇 호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나무의 연륜으로 보아서는 예전에 이곳에는 꽤 큰 마을이 있지 않았나 추정된다. 수령은 500년 가까이 되는 고목으로 이미 80년대에 보후수로 지정되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웅장함에 사뭇 압도 당한다. 지금도 싱싱하게 자라는 두 그루가 마치 다정한 부부처럼 정겹게 마주 보며 서 있다. 인간은 백년해로를 말하지만 이 나무들은 아마 천년해로를 약속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나무의 관리가 소홀하다는 것이다. 보호수라고 철책을 둘러 놓았을 뿐 주변은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엉망이다. 마을의 정자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대하며 정성들여 ..

천년의나무 2009.06.14

남한산성 이승만기념식수 전나무

전나무는 젓나무로도 불린다. 줄기에 상처가 나면 흰 즙액이 나오는데 이걸 '젓'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래는 '젖'이었을 텐데 뒤에 '젓'과 '전'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마당 귀퉁이에 눈길을 끄는 전나무가 있다. '리대통령 각하 행차 기념식수'라 적힌 표지석이 있는 나무다. 뒷면에는 '단기 四二八六년 九월 六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1953년 9월 6일에 리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기념식수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나무의 나이는 60 살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세월에 비하면 나무는 별로 크지 않아 보인다. 전나무하면 광릉수목원 들어가는 길과 오대산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 양편으로 늘어선 크고 멋진 나무들이 연상된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일 정도로 균형 잡힌 ..

천년의나무 2009.06.12

남한산성 남문 느티나무

남한산성 남문은 성남 쪽에서 올라가는 주출입문이다. 성곽 바깥쪽에 보호수로 지정된 네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아쉽게도 이미 한계수명에 이른 나무도 있다. 다행히도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고 느티나무의 생육 조건도 좋아졌다. 남한산성 성곽은 인조 4년(1626)에 준공되었는데, 느티나무는 당시 성곽 사면의 토양 유실을 방지하면서 차폐의 목적으로 심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느티나무들의 수명도 400 년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안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렇게 성곽 바깥쪽에 있는 것은 남문이 유일하다. 아마 예전에도 가장 중요한 남한산성의 관문이었던 것 같다. 1636 년 겨울, 인조는 40여 일을 버티다가 결국은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한다. 변변한 군사나 무기도..

천년의나무 2009.06.08

배재학당 향나무

서울 종로구 정동에는 옛 배재학당 터가 있다. 감리교 소속이었던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선교사가 1886 년에 세운 학교다.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중등교육기관이다. 이듬해에는 배재와 이화학당 학생들을 위한 정동교회를 설립한다. 그래서 이곳은 신학문과 개신교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1984 년에 강동구로이사를 갔는데 터에는 지금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옛 동관 건물만이 남아 있다. 이 건물 앞에 수령 500 년이 넘은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가 16 m에 이르는데 특이한 것은 아랫 부분에는 가지가 없이 위로만 쭉 뻗어 있다. 나무 줄기도 많이 상해서 대부분이 보형물로 채워져 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말을 매어둔 나무..

천년의나무 2009.05.10

고달사지 느티나무

폐사지에 서 있는 한 그루 고목만큼 흥망성쇠의 허무함을 말해 주는 것도 없다. 성(盛)하면 쇠(衰)하고 차면 기우는 진리에서 나무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폐허로 변한 유적지에 우뚝 서 있는 고목은 인간사의 무상함을 말없는 말로 전해준다. 여주 고달사지 입구에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이가 400 년이 되었다니까 고달사가 폐사된 경위를 이 나무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전에는 이 주위에 마을이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사하촌의 당산나무였을 수도 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복구를 끝낸 허허벌판 절터에서 이 느티나무는 단연 돋보인다. 고달사지 느티나무는 곱고 단아하게 생겼다. 가까이서보다는 멀리서 볼 때 더욱 그렇다. 곱게 늙어가는 참한 여인네가 연상된다. 이 느티나무의 높이는 18 m이고, 줄기 둘레는 4...

천년의나무 2009.05.07

도솔암 마애석불 소나무

고창 선운산 도솔암에 있는 마애석불 앞에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반송의 한 종류로 미끈하게 큰 키가 눈길을 끄는데 자세히 보면 나무가 많이 상해 있다. 줄기 두 개는 중간에서 꺾여졌고 나무 크기에 비해 솔잎도 초라하다. 나무의 생육조건이 좋을 법하건만 왠일인지 상채기 투성이다. 그 사연을 모르는 나그네로서는 마애석불에 얽힌 옛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마애석불의배꼽에는 검단(黔丹) 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런데 동학농민전쟁 당시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기다리는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결을 꺼내가는 사..

천년의나무 2009.04.29

삼인리 장사송

고창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 소나무가 있다. 바로 옆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眞興窟)이 있는데, 장사송(長沙松)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 지명이 장사현(長沙縣)이어서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보고 다시 만난 장사송은 역시 그 모습이 빼어났다. 단아하고 고고한 품격이 마치 한 마리 학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이 이 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또는 고려청자의 날렵하면서도 은은한 고전적 미라고 할까, 아무리 바라보아도 절로 찬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나무였다. 나무 앞 정자에 앉아 있으려니 지나는 사람마다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천연기념물 354 호인 장사송은 반송의 일종으로 수령은 600 년 정도로 추산한다.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소나무 중에..

천년의나무 2009.04.24

스와얌부나트 인도보리수

카트만두에 있는 스와얌부나트사원을 찾아갔을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입구에 있던 이 나무였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무와 같은 종류로 보통 보리수나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름은 인도보리수이다. 현지에서는 피팔라(Pipala), 또는 보(Bo)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도보리수는 기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기원전 588 년, 출가한지 6 년째 되던 해의 어느날 새벽별이 뜰 때 나이란자나 강변의 인도보리수나무 아래서고(苦)를 끊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불교권 국가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시한다. 인도나 네팔의 불교 사원에서는 인도보리수를 흔히 볼 수 있다. 스와얌부나트사원 앞에 있는 이 나무도 상당한 고목이고 가까이 갈수록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느껴졌다. 나무 주위에..

천년의나무 2009.04.14

염불사 보리자나무

나무를 설명하는 안내문에 보리수나무라 되어 있지만 이 나무의 정확한 이름은 보리자나무다. 보리수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 년간의 정진 끝에 께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菩提樹)나무는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또 다른 나무다. 인도보리수라 불리는 이 나무는 키가 30 m 가까이나 자라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후 때문에인도보리수나무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열매를 염주로 만드는 피나무 종류를 절에서 심으면서 그냥 보리수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 나무에는 피나무, 찰피나무, 염주나무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보리자나무도 그 중 하나이다. 삼성산 염불사(念佛寺) 뜰에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된 보리자나무가 있다. 나무 높이는 12 m, 줄기 둘레는 1.2 m이고, 나이는 약 60..

천년의나무 2009.04.08

초지진 소나무

강화도에 있는 초지진(草芝鎭)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였다. 해안을 따라 10 리에 하나씩진(鎭)을 뒀고, 그 사이에 보(堡)를 세워 해안을 방어했다. 이곳은 외세가 몰려오던 19 세기 중반의 격변기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옛 아픈 상처의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초지진에는 멋드러진 모양의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우산 모양을 한 처진소나무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동양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맵시다.그러나 줄기에는 그 당시의 포탄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나이는 추측컨대 300 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에는 아마 이런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나무들이 전투 ..

천년의나무 2009.04.02

직두리 부부송

경기도 포천 직두리에는 최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부부송이라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부부송(夫婦松)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크고작은 두 나무가 마치 금술 좋은 부부처럼 서로 뒤엉켜 어우러져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 나무의 굵은 가지가 길게 뻗어서 아내 나무를 포근히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아내 나무가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참 재미있게 생긴 나무다. 남편 나무는 높이 6.9 m, 줄기 둘레 3.3 m, 긴 폭이 23.7 m이고,아내 나무는 높이 6.9 m, 줄기 둘레 1.7 m, 긴 폭이 11.7 m이다.전형적인 처진소나무로 높이에 비해 우산 모양으로 옆으로 퍼지며 자란다. 수령은 약 300 년 정도 되었다. 그런데 옆으로 퍼진 긴 가지들은 수십 개의 ..

천년의나무 200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