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초 12

장자[162]

벌을 받아 발꿈치가 잘린 현자는 수놓은 옷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비난이나 기림을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형수가 높은 곳에 올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죽고 사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두루 허물없는 사이여서 대접하지 않는 것은 남이란 생각을 잊었기 때문이다. 남을 잊고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자연인이라 할 것이다. 介者치畵 外非譽也 胥靡登高而不懼 遺死生也 夫復습不饋 而忘人 忘人因以爲天人矣 - 庚桑楚 12 공자는 나이 70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렀다고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자가 생각대로 행동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행동해도 순리에 맞는 사람이 자연인이다. 남을 잊는다고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남의 평가나 세..

삶의나침반 2011.04.16

장자[161]

활의 명수 예는 작은 것을 맞히는 데는 기술자였지만 남들로 하여금 자기를 기리지 않게 하는 데는 졸렬했다. 반면 무위자연의 성인은 자연에는 기술자지만 인위에는 졸렬하다. 자연에 기술자이며 사람에게도 선량한 것은 온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오직 벌레만이 벌레다울 수 있고 벌레만이 자연다울 수 있다. 예工乎中微 而拙於使人無己譽 聖人工乎天 而拙乎人 夫工乎天而량乎人者 唯全人能之 唯蟲能蟲 唯蟲能天 - 庚桑楚 11 '오직 벌레만이 자연다울 수 있다'는 데서 극단적 자연주의자로서의 장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주의는 인간의 개입 없이 일어난 일들이 이성으로 오염된 것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는 인위와 대척을 이루는 반문명주의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4대강 삽질로 깔끔하게 단장된 것보다 뛰어나다..

삶의나침반 2011.04.05

장자[160]

의식의 어지러움을 무찌르고 마음의 올가미를 풀어라. 덕의 얽매임을 벗고 도의 막힘을 뚫어라. 부와 귀, 출세와 위엄, 명성과 이익 이 여섯 가지는 의식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요, 용모와 행동거지, 색과 무늬, 기식氣息과 정의情意 이 여섯 가지는 마음을 묶는 것이다. 미움과 욕심,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이 여섯 가지는 덕성을 얽는 것이다. 물러남과 나아감, 거두어들임과 베풂, 지식과 재능 이 여섯 가지는 도를 막히게 하는 것이다. 이 네 종류의 여섯 가지가 흉중을 동요시키지 않으면 바르게 될 것이다. 바르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밝으며 밝으면 비고, 비면 인위가 없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徹志之勃 解心之繆 去德之累 達道之塞 富貴顯嚴名利 六者勃志也 容動色理氣意 六者繆心也 惡欲喜怒哀樂 六者累德也 去就取與..

삶의나침반 2011.03.28

장자[159]

거리에서 발을 밟았을 때 남이면 경솔함을 사과하고 형이면 좋은 낯빛으로 보고 어버이는 그냥 서 있다. 그러므로 지극한 예는 남이 없고 지극한 의는 사물이 따로 없고 지극한 지혜는 꾀가 없고 지극한 인은 친척이 없고 지극한 신의는 보증금이 없다고 말한다. 전市人之足 則辭以放오 兄則以구 大親則已矣 故曰 至禮有不人 至義不物 至知不謀 至仁無親 至信벽金 - 庚桑楚 9 지진과 쓰나미의 대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 사람들의 차분한 태도가 화제다. 가족과 전재산을 잃은 비극 가운데서도 우리와 같은 발작적인 통곡과 오열은 보기 어렵다. 아무리 자연재해에 익숙하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인 이상 속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이웃의 고통을 먼저 염려해주는 태도는 일본정신 또는 일본문화의 특..

삶의나침반 2011.03.20

장자[158]

시비를 일으켜 서로 이기려 하고 결과에서 명과 실이 일치하는가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에 자기를 위주로 삼고 남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이 절의라 생각한다. 이에 죽음으로써 절의를 지켜 보상하려 한다. 이런 자들은 채용되는 것을 지혜롭다 하고 채용되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며 위에 통하는 것을명예라 하고 막히고 궁색한 것을 치욕이라 한다. 이시(移是)는 요즘 사람들이니 이는 대붕을 비웃은 메까치나 비둘기처럼 동(同)에서 동을 구하는 자들이다. 因以乘是非 果有名實 因以己爲質 使人以己爲節 因以死償節 若然者 以用爲知 以不用爲愚 以徹爲名 以窮爲辱 移是 今之人也 是조與學鳩 同於同也 - 庚桑楚 8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장자의 특기다. 여기 나오는 '이시(移是)'는 솥 밑에 생긴 검댕이를 말한다. 이시는 열전도..

삶의나침반 2011.03.12

장자[157]

실체이지만 처한 곳이 없는 곳을 공간[宇]이라 하며 오래이지만 그 근본을 표시할 수 없는 것을 시간[宙]이라 한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나게도 하며 들게도 하지만 그 들고남이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것을 이른바 '하늘 문'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문(天門)은 '무유(無有)'이며 만물은 이 무유에서 나온다. 유는 유를 창조할 수 없으니 유는 반드시 무유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무유는 유일자인 무유다. 성인은 이 유일자인 무유를 간직한다. 有實而無乎處者 宇也 有長而無本剽者 宙也 有乎生 有乎死 有乎出 有乎入 入出而無見其形 是謂天門 天門者無有也 萬物出乎無有 有不能以有爲 有必出乎無有 而無有一無有 聖人藏乎是 - 庚桑楚 7 뜻은 잘 모르지만 장자의 우주론으로 들린다.물론 서양과학의 우주론과는 접근 방법이..

삶의나침반 2011.03.06

장자[156]

안을 분명하게 한 자는 무명의 도를 행하고, 밖을 분명하게 한 자는 재용의 절도 있는 소비를 지향한다. 券內者 行乎無名 券外者 志乎期費 - 庚桑楚 6 '무명(無名)'이란 무위자연의 도를 말한다. 도덕경 32장에 '道常無名'이라는 말이 나온다. 드러내거나 과시하는 등의 인위가 아닌, 있는 그대로 존재함이다. 예(禮)나 의(義)같은 명분을 중시하는 유가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짙다. '재용의 절도 있는 소비'는 역시 도덕경 67장에 나오는 삼보(三寶)를 떠올린다. 노자는 자(慈), 검(儉),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을 세 가지 보물로 들었다. 자비, 검소, 겸손함이다. 노장철학에서는 검소하고 소박한 삶이 강조된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남과 세상을 함께 값지게 한다. 도를 행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그리 살 ..

삶의나침반 2011.02.25

장자[155]

물질을 재용으로 삼음으로써 몸을 기르고 사적소유를 걱정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살리며 안을 공경함으로써 밖을 통달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고도 온갖 악이 이른 것은 모두 천명일 뿐 인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이룸을 윤택하게 하기에 부족하고 영혼의 집을 윤택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備物以將形 藏不虞以生心 敬中以達彼 若是而萬惡至者 皆天也而非人也 不足以滑成 不可內於靈臺 - 庚桑楚 5 얼마 전에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던 한 시나리오 작가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이런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놓은지 며칠 뒤였다. 독거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은 자주 접하지만 이번의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의 죽음은 우리를 더 슬프고 안타깝게 한다. 사회안전망이 되어 있더라면, 얼마간의 기본소득..

삶의나침반 2011.02.17

장자[154]

지인이란 땅에서는 서로 먹여주고 하늘에서는 서로 즐겁게 하는 것이다. 至人者 相與交食乎地 而交樂乎天 - 庚桑楚 4 장자에서 지인(至人)은 절대자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도(道)와 한 몸이 되어 자유자재로 노니는 사람이다. 신인(神人), 성인(聖人)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다. 얼핏 오해하면 장자의 지인은 산 속에 은둔한 도인의 이미지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구절을 보자. '지인이란 땅에서는 서로 먹여주고, 하늘에서는 서로 즐겁게 하는 것이다.' 지인이 결코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자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땅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서로 먹여준다는 것은 나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애쓴다는 말이다. 개인의 수행도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세상을 살리기 위한 바로섬이 되..

삶의나침반 2011.02.07

장자[153]

위생의 도란 능히 태일을 품고 잃지 않는 것이며, 능히 점을 치지 않고도 길흉을 아는 것이요, 능히 머무를 수 있고 능히 그칠 수 있으며, 능히 남들을 사면하고 자기에게서 구하며, 능히 융통 자재하고 바보처럼 진실하여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다. 아이는 종일 울어도 목구멍이 쉬지 않는다. 화평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땅기지 않는다. 그 덕이 공손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종일 보아도 눈을 깜작이지 않는다. 외물에 편향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되 갈 곳을 모르고 머물되 처할 곳을 모르며 만물과 더불어 따라가며 그 물결에 함께하는 것이니 이것을 위생의 도라 한다. 衛生之經 能抱一乎 能勿失乎 能無卜筮而知吉凶乎 能止乎 能已乎 能舍諸人 而求諸己乎 能소然乎 能동然乎 能兒子乎 兒子終日..

삶의나침반 2011.01.30

장자[152]

어진 사람을 등용함으로써 백성들끼리 서로 알력이 생기게 했고, 지혜 있는 자를 임용함으로써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을 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사물을 셈하는 자는 백성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자기 이익을 위해 너무 힘쓰게 함으로써 급기야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군주를 죽이고 한낮에 도둑질을 하고 남의 담장을 뚫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러한 큰 혼란의 뿌리는 분명히 요순시대에 생긴 것이다. 그 폐해는 천대까지 남을 것이니 천년 후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擧賢 則民相軋 任知 則民相盜 之數物者 不足以厚民 民之於利甚勤 子有殺父 臣有殺君 正晝爲盜 日中穴배 吾語汝 大亂之本 必生於堯舜之間 其末存乎千世之後 千歲之後 其必有人與人相食者也 - 庚桑楚..

삶의나침반 2011.01.23

장자[151]

노담의 제자 중에 경상초(庚桑楚)라는 자가 있었는데 노담의 도를 조금 아는 자로서 북쪽으로 외루산에서 살았다. 그는 신하가 되려고 지자(知者)인 척하는 자들을 물리쳤고 첩이 되려고 인자(仁者)인 척하는 자들을 멀리했다. 추인들과 더불어 살고 일꾼들과 일하며 따랐다. 삼 년이 지나자 외루 지방은 풍족해졌다. 老聃之役有庚桑楚者 偏得老聃之道 以北居外壘之山 其臣之晝然知者去之 其妾之설然仁者遠之 옹腫之與居 앙掌之爲使 去三年外壘大壤 - 庚桑楚 1 노자의 제자로 경상초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노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다. 그가 지자(知者)와 인자(仁者)를 물리쳤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멀리했다는 것을 뜻한다. 지혜로운 자와 어진 자는 세상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노자가 지(知)보다도 무지(無知)를 강조하는 ..

삶의나침반 201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