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45

당구와 바둑

노년에 들어서 취미는 당구와 바둑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요사이는 당구에 열중이다. 전에는 술 한 잔 걸치고 심심풀이로 하는 당구였다면 이제는 맨정신으로 제대로 쳐보려 한다. 금주가 준 효과다. 쓰리 쿠션 시스템은 어느 정도 머리에 입력시켰는데 문제는 스트로크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당구 역시 기본 자세가 중요함을 절감한다. 고수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려 해도 손놀림은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교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G는 당구와 바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둘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기원과 당구장을 왕래하며 논다. 실력이 서로 비등하니 재미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G가 한 뼘 정도 앞서 있다. 승률은 대체로 G가 나은 편이다. 이제 당구에서는 G를 추월하기..

사진속일상 2023.07.03

인공지능 치팅

요사이 바둑계가 인공지능 치팅으로 시끌시끌하다. 발단은 지난 21일 춘란배 세계바둑대회 4강전에서 중국의 리쉬안하오 8단이 세계 1위인 우리나라의 신진서 9단을 압도적으로 이기자 중국의 양딩신 9단이 인공지능 치팅을 했다고 주장하면서였다. 양딩신도 8강전에서 리쉬안하오에게 완패를 했다. 양딩신은 SNS를 통해 리쉬안하오의 인공지능 치팅 의혹을 제기하며 "리쉬안하오와 20번기를 하고 싶다. 모든 신호가 차단된 대국장에서 화장실을 가지도 말고 대국을 하고 기보로 평가를 받자. 만약 내가 리쉬안하오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라면 바둑계에서 은퇴하겠다"라고 썼다. 중세 식의 결투 신청이다. 그러나 리쉬안하오가 어떤 방법으로 치팅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리쉬안하오는 전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리쉬안하오는..

길위의단상 2022.12.26

기원 바둑

일주일 전 한탄강 트레킹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바깥 외출을 했다. 관성은 물리 세계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에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나한테는 움직이기 싫고 사람을 만나기 마땅치 않아하는 관성이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두면 어디로 계속 굴러갈지 모르겠다. 집을 나서니 단풍의 막바지가 반긴다. 눈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양재의 한 기원에서 바둑 친구와 만났다. 가끔은 이렇게 바둑돌을 만지면서 돌이 바둑판과 부딪치는 쨍쨍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멋이 없는 인터넷 바둑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바둑은 생각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 바둑은 수읽기가 생략되고 감각적이다. 장고파인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 기원 바둑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한다. 기원 풍경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금연..

사진속일상 2022.11.18

바둑과 당구로 놀다

서울에 나가 오후 시간을 바둑과 당구로 놀았다. 기원 바둑은 3년 만, 당구는 5개월 만이었다. 길게 뜸했던 것은 코로나가 주원인이지만 다른 사연도 있었다. '勝固欣然 敗亦可喜' - 바둑 친구를 기다리면서 기원 벽에 걸린 글씨를 오래 바라보았다. 소동파의 '관기(觀棋)'라는 시에 나오는 문구인데 '이기면 응당 즐겁지만 져도 또한 기쁜 일이다'라는 뜻이겠다. 인생은 한 판의 바둑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바둑을 대하는 태도는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한탄하거나 서러워할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오랜만의 바둑과 당구였지만 즐거운 줄은 모르겠다. 집에서 혼자서 노는 버릇이 되어선지 사람 북적이는 곳에 있는 게 피곤하다. 별 영양가치 없는 말을 들어줘야 하고 또 그런 말을 만들어내야..

사진속일상 2022.07.08

답답하면 바둑을 둬요

한 달 넘게 대상포진으로 시달리다 보니 심신이 지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멀리 있는 사람한테서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위마저 말썽을 부리고 있네요. 이래저래 힘든 5월입니다. 바깥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니 답답한 처지를 잊기 위해서는 바둑이 제일입니다. 바둑을 두면 저절로 몰입이 되고 그동안은 만사를 잊습니다. 내 바둑 상대는 컴퓨터 안에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입니다. 사람 대국자는 피곤해서 사람과의 온라인 대국은 기피하지요. 얼굴이 안 보인다고 그러는지 바둑 예절이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또한 너무 승부에 집착하게 되는 것도 싫고요. 여러 AI 바둑 프로그램 중에서 요사이 내 파트너는 인간 기보로 학습한 릴라제로입니다. 다른 프로그램보다 수준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내가 두세 점은 깔아야 해요. 바둑..

길위의단상 2021.05.24

생각하는 재미

바둑만큼 생각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놀이도 없다. 내가 바둑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생각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수칙은 바둑에도 예외가 아니다. 어려운 장면을 만나서 장고를 하면 빨리 두라고 채근하거나, 심하면 짜증을 낸다. 같이 느긋하게 바둑을 둘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 어렵다. 요사이는 거리에서 기원을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인터넷 바둑이 대세다. 인터넷 바둑의 특징은 속전속결이다. 대부분 제한시간이 5분, 아니면 10분이다. 이 정도면 금방 제한시간이 지나가고 바로 10초 초읽기에 들어간다. 10초에 한 수씩 두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에 쫓기며 허둥대다 끝난다. 속기 바둑은 실력보다는 순발력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길위의단상 2020.08.09

릴라 아가씨와 바둑 두기

컴퓨터에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깔았다. 여러 인공지능 엔진이 들어 있는 통합팩이 있어 비교적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이제 나도 집에서 손쉽게 인공지능 바둑과 놀 수 있게 되었다. AI가 인간 바둑에 도전한 것이 2016년이었다. 알파고가 당시 세계 최고수였던 이세돌 프로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라 할지라도 바둑에서 인간의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따라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대부분이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날은 먼 미래라고 믿었고, 이세돌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세돌은 다섯 판 중에서 어쩌다 겨우 한 판을 건졌을 뿐이었다. 그 뒤로 더욱 진화한 인공지능은 인간 기보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학습해서 이제는 넘사벽의 경지에 이르렀다. 프로 최고수가 두..

길위의단상 2020.03.01

타이젬 4단

기원에서 모여 바둑 두는 모임이 해체되고 난 뒤 심심해졌다. 바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인데 1년 넘게 바둑 둘 기회가 안 생겼다. 아는 사람 중에 바둑을 즐길 수담 친구는 없다. 있다면 불원천리하고 찾아갈 것이다. 요사이는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 바둑은 편리하면서 상대가 많아서 좋다. 컴퓨터만 있으면 중국이나 일본 사람과도 대국할 수 있다. 전에 인터넷 바둑을 둬 봤지만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 곧 접었다. 인터넷 바둑은 속기로 너무 호흡이 빠르다. 장고파인 나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두 번째는 바둑 두는 맛이 나지 않는다. 바둑판 위에 돌을 놓을 때의 감각과 소리가 없다. 인터넷에도 전자음 효과가 있지만, 실제 나무 바둑판 위에 돌이 접촉하는 맑고 경쾌한 소리를 따라올 수..

길위의단상 2020.01.20

신의 한 수 : 귀수편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라서 관심이 컸다. 전작인 '신의 한 수 : 사활편'은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서 실망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개선되길 바랐다. 그런데 같은 스타일의 복수혈전이다. 바둑을 들러리로 세운 액션 활극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화끈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대로 볼 만할지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바둑만큼 정적인 게임은 없다. 그러나 바둑 두는 사람의 심리 상태는 천변만화하며 요동친다. 평상심을 잃지말라고 하지만 승부가 걸리면 지키기 힘들다. 목숨이 걸린 내기바둑이라면 어떻겠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에게 바둑은 복수를 위한 도구다. 최고수가 되어 돌아온 귀수(권상우 분)는 상대를 하나하나 꺾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누나를 성폭행하고 자살하게 만든 옛 바둑도장의 스승까지 정복하고 자살하게 만든..

읽고본느낌 2020.01.10

동문 바둑대회

동문의 날 행사가 고등학교 모교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학교 구경을 할 겸 나가 보았다. 바둑 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신청이 늦는 바람에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옛날 교사와 건물은 거의 다 없어지고 교정은 새로 싹 변했다. 50년이 흘렀으니 달라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까까머리 동기생도 이제는 중노인이 되어 바둑판 앞에 앉아 있다. 현관에 옛날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 있다. 1970년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다. 저 사진 어딘가에 나도 서 있을 것이다. 옛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이 반갑다. 그때는 강당이었는데 지금은 체육관으로 쓰고 있다. 정문을 지나 학교로 들어가던 오르막 길 흔적이 남아 있다. 등하교하던 유일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학생들 통로가 바뀌었다. 이 길은 차량 출입로로 쓰..

사진속일상 2019.10.09

김씨 / 정희성

돌을 던진다 막소주 냄새를 풍기며 김씨가 찾아와 바둑을 두면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나를 노엽게 한다 한 칸을 뛰어봐도 벌려봐도 그렇다 오늘따라 이렇게 판은 넓어 뛰어도 뛰어도 닿을 곳은 없고 어디 일자리가 없느냐고 찾아온 김씨를 붙들고 바둑을 두는 날은 한 집을 가지고 다투다가 말없이 서로가 눈시울만 붉히다가 돌을 던진다 취해서 돌아가는 김씨의 실한 잔등을 보면 괜시리 괜시리 노여워진다 - 김씨 / 정희성 어제 양재기원에서 고씨와 만나 근 2년 만에 바둑을 두었다. 바둑팀이 해체된 뒤로는 바둑 둘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지인 중에는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터넷으로는 바둑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바둑이 노년의 좋은 취미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맞는 수담(手談) 상대를 만나기가 어렵다. 삶이 ..

시읽는기쁨 2019.07.11

선택과 과보

한 판의 바둑은 인생과 닮았다. 포석 단계는 청소년기와 비슷하다. 처음 둘 때 정석이 등장하듯, 인생 초반도 정해진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시기다. 중반전이 되면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치열함은 삶의 현장과 닮았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바둑에서 어떤 수를 둘까 선택을 해야 하듯 인생도 그렇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수를 택하느냐에 따라 바둑은 천변만화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라는 사소한 선택에서 결혼 같은 중차대한 선택도 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 어떤 선택은 인생 행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바둑의 경우에는 잘못된 한..

길위의단상 2018.07.05

후회

세계 정상을 정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사람에게도 후회가 있을까? 어느 신문에서 조치훈 9단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올해로 입단 50주년을 맞은 조치훈 9단에게 감회를 묻자 첫마디가 "후회가 많아요"였다. "술 먹는 시간 줄이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더 잘했을 텐데, 하고 후회해요. 더 많은 승리나 타이틀을 놓쳐서만은 아니예요. 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바둑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잖아요.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공부했다면 스스로 만족하는 바둑을 두었을 테고,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었겠지요."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하는 인생을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후회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아쉬움이라고 해도 좋다. 과거를 돌아보며 슬퍼지는 것은 인생의 매듭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

참살이의꿈 2018.06.02

이세돌의 일주일

5,000년 바둑 역사에서 제일 충격적인 사건이 재작년에 있었던 인간과 알파고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인간 대표로 나선 이세돌 구단이 1:4로 졌다. 일부 컴퓨터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상 못한 쇼킹한 사건이었다. 바둑은 직관과 창의력이 중요하다. 컴퓨터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누구나 믿었다. 컴퓨터가 아무리 빠른 계산력을 갖추어도 인간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 이유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인간을 뛰어넘는 감각적인 수에서도 컴퓨터가 앞섰다. 바둑은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석이나 포석, 반면 운영에서 고정관념이 깨지고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요사이 프로기사 대국을 보면 알파고의 수를 흉내 내기 바쁘다. 작년에는 더 진화한 알파고가 세계 1위..

읽고본느낌 2018.02.11

심야 바둑

윗집에서는 밤 12시 전후 두세 시간 동안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때는 잠도 못 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고작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동이 잦아지길 기다릴 뿐이다. 직접 고충을 전하고, 관리사무소에 중재도 요청했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적응해 살자면 내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예 새벽 1시 이후로 늦추어졌다. 자다가 깨게 되면 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윗집이 잠잠해져야 나도 침대에 들어간다. 요사이 내가 쓰는 방법은 바둑 두기다. 소음 스트레스를 잊는데 바둑이 최고라는 걸 발견했다. 바둑에 집중하다 보면 웬만한 소음은 비껴간다.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마인드 컨트롤은 내 인격으로는 감당이..

길위의단상 2018.02.08

잘 지는 법

이기고 지는 것은 기자지상사(棋者之常事)다. 이기면 좋지만 늘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진다. 바둑을 두면서 요사이 깨달은 점은 질 때 잘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패한 바둑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 바둑이 수세로 몰리면 마음이 흔들린다. "졌습니다" 하고 깔끔하게 돌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도 별 위로가 안 된다. 이럴 때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졌을 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 지더라도 상큼하게 지자고 다짐하며 바둑판 앞에 앉는다. 자꾸 연습하다 보면 습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기고 지는 데서도 벗어나고 싶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잘 지는 훈..

참살이의꿈 2017.12.09

바둑 놀이

화성에서 2박 3일 동안 바둑을 두었다. 회원이 줄어 세 명밖에 안 남았지만 집중도는 마찬가지다. 집에 들어가면 사흘 동안 외출 한 번 없이 밥 먹고 바둑 두고를 반복하는 게 일이다. 바둑에 반쯤 미쳤다. 노름에 미친 사람이 사흘 낮밤을 잠도 안 자고 화투판을 지키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별나다고 할 것 같다. 재미난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둑은 재미난 놀이다. 바둑도 승부가 걸리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생긴다. 탁구 모임에서는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다. 깔깔거리며 즐겁게 논다. 바둑은 지고 나면 좀 부아가 난다. 특히 내 실수로 졌을 때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내용이 좋다면 지더라도 만족한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이..

사진속일상 2017.11.14

알파고 제로

'알파고 제로' 버전이 새로 나왔다.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연구해서 바둑 실력을 키웠다는 점이 기존의 알파고와 다르다. 이세돌과 커제와 대결했던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바탕으로 실력을 연마했다. 그런데 알파고 제로는 기존 지식을 완전히 배제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다. 알고리즘 설계 때 입력된 바둑의 기초 규칙 외에는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자가 강화학습을 통해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알파고 제로가 이전 알파고들을 모두 물리쳤다는 사실이다. 알파고 제로가 인간 기사를 넘어서는 데는 불과 70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알파고 제로는 현존 최고 레벨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제는 인간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해졌다. AI의 능력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무서워지는..

길위의단상 2017.10.20

무한 묘수

두 권으로 된 강철수의 바둑 만화다. 강철수 하면 발바리가 떠오른다. 발바리는 옛날에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끈 캐릭터다. 그 발바리 스타일이 이 만화에도 등장한다.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백수 김달호는 미미라는 여자애를 만난다. 미미는 다섯 살인데 굉장한 바둑 고수다. 는 이 둘이 합작하여 내기 바둑을 두며 돈을 따먹는 이야기다. 달호가 철딱서니 없는 청년이라면 다섯 살 미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 같다. "멋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자신이 멋있는 사람이 되라!" 이것이 유치원 다닐 아이가 할 소린가 말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두 캐릭터에 강철수의 가벼운 유머가 입혀져 만화는 경쾌하고 흥미롭다. 특히 바둑의 진행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긴장감으로 아슬아슬하다. 바둑을 어느 정도 둘 ..

읽고본느낌 2017.07.10

진화하는 AI

알파고가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작년에 이세돌 프로를 눌러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강화 학습을 통해 실력이 몇 단계 더 향상된 2.0 버전이 되었다. 중국에서 세계 1위인 커제와 대결 중인데 기보를 보니 인간은 이제 상대가 안 된다. 작년까지는 알파고가 프로들 기보를 보면서 공부했는데, 이제는 자기 스스로 학습한다고 한다. 바둑에 관한 한 거의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전해도 창의성에서는 인간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전에는 생각했다. 바둑에서도 그랬다. 바둑에서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원자 숫자보다 많다면서 컴퓨터는 도저히 그 모두를 계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선입견이 작년에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때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더 ..

길위의단상 2017.05.25

바둑과 놀다

바닷가에 있는 동료의 세컨드 하우스에서 바둑으로 놀았다. 점심 먹으러 잠시 외출한 걸 빼고는 2박3일 동안 바둑만 두었다. 어지간히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아직도 자존심이 남아 있어 바둑을 지면 속이 부글거린다. 라이벌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더구나 상대가 약을 올리면 싫은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인격 수양의 미숙을 자주 자책한다. 바둑의 매력 중 하나는 대국 중에 말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그만큼 예의가 필요한 게임이다. 교유의 폭이 좁지만 그나마 만나면 바둑 친구가 제일 반갑다. 그러나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다. 고 형은 내년이면 70이 된다. 언제까지 함께 바둑을 둘 수 있을지, 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사진속일상 2017.04.20

내가 왜 이러지

며칠 전 기원에서 바둑을 둘 때 어리둥절한 장면과 맞닥뜨렸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한 노인이 세면대에 소변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황당해서 고추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확인을 했다. 그 노인은 옆에서 바둑을 두던 노신사라고 불러도 될 멀쩡한 사람이었다. 모르고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상황이 전혀 분간되지 않았다. 그래도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여긴 세면댄데요, 라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러자 노인은, "어, 내가 왜 이러지?"라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바지를 추스르고 세면대를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늙으면 어쩔 수 없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당사자는 얼마나 민망할까를 생각하니 차차 그 노인에게 연민이 생겨났다.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

길위의단상 2016.10.21

기본수법사전

최근에 본 바둑책이다. 일본의 후지사와 슈코 기성이 썼는데 두 권으로 되어 있고 총 1천 페이지에 달한다. 다 보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상권은 공격과 수비의 급소를 다루고 있고, 하권은 포석, 공격, 사활, 종반의 수법을 담고 있다. 원저의 내용이 상당히 좋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바둑 모양에서 급소가 어디인지 아는 능력을 키우는 데 알맞은 책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급소를 무시한다면 '바둑의 진(眞)에서 눈을 돌리고, 바둑의 선(善)에 등을 대고, 바둑의 미(美)를 더럽히는 것이 된다'고까지 말한다. (오성출판사)의 단점은 번역이 엉망인 점이다. 바둑의 기초 용어도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것 같다. 아니면 자동번역기를 돌리고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출판한 것 같다. 우리나라 바둑계 현실이 이렇다...

읽고본느낌 2016.10.19

화성 바둑 2박3일

바둑회원 중 J씨가 화성에 별장을 마련했다. 전원주택 단지에 있는 집으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생활하기에 적당한 집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게 로망이지만 전에 "앗 뜨거!"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게 첫째 이유일 것이다. 이 집에서 2박3일간 머물며 바둑을 두었다. 이틀 동안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주구장창 바둑만 두었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짓을 하면 지치지도 않는다. 개인당 열두 판씩 뒀는데 마지막 결과는 7승5패, 6승6패, 5승7패가 나왔다. 한 게임씩만 차이가 날 정도로 실력은 서로 박빙이다. 돌아오는 날 들린 화성방조제 앞 바다 풍경. 궁포항에서. 날이 흐리다는 핑계로 회 대신 바지락칼국수..

사진속일상 2016.09.28

공부하면 는다

지지옥션배 바둑대회는 남자 기사와 여자 기사의 단체 대항전이다. 각 12명씩 연승 방식으로 대전한다. 남자와 여자의 기력 차이가 있으니 남자는 40세가 넘어야 참가할 수 있다. 지금 10회 지지옥션배가 진행되고 있는데 1장으로 나온 서봉수 9단이 9연승을 했다. 어제 오유진 2단에게 져서 10연승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9연승도 대단한 기록이다. 바둑에도 전성기가 있다. 타이틀 홀더는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다. 30대가 되면 힘을 못 쓴다. 머리로 하는 싸움인데도 바둑 역시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대 바둑의 짧은 제한시간에 있다. 대전 방식의 문제가 크다. 나이가 들면 집중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다. 특히 초읽기에 들어가면 두뇌 회전이 젊은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

길위의단상 2016.08.10

부채

친구한테서 부채를 선물 받았다. 서예가 취미인 친구라 손수 붓글씨를 적었다. 좋아하는 글귀가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아무 거나 괜찮다 했더니 공자님 말씀을 넣어 주었다. 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하는 데는 이롭다. 요즘은 이런 부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지만 나한테는 딱 맞는 용도가 있다. 바둑 둘 때다. 한 손으로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며 멋스레 바둑을 두고 싶다. 바둑 한 판이 주는 교훈이 이 구절의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속일상 2016.07.26

평상심

중국 바둑 기사 중에 스웨(時越) 9단이 있다. 1991년 생으로 나이는 이십 대 중반이다. 지금은 랭킹이 좀 떨어졌지만, 전에는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국 기사 킬러로 유명하다. 삼성화재배였던가 큰 번기 승부를 할 때 스웨 9단에게 기자가 물었다. 대국 사이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스웨 9단은 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기사가 스웨 9단이다. 스웨 9단이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 바둑의 본질은 무엇인가? "의 논리가 바둑과 비슷하다. '변화'가 의 초점이자 바둑의 핵심이다." - 마음에 남는 다른 책은? "와 이다." - 스스로를 '싸움꾼'으로 묘사한 적이 있..

참살이의꿈 2016.07.19

4:1

전혀 예상 못했다. 과연 컴퓨터가 얼마나 인간 수준에 육박했을까, 궁금한 정도였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4:1로 이긴 것이다. 체스는 몰라도 바둑은 안 된다고 누구나 말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무서웠고, 이세돌이 고전 끝에 첫 판을 항복했을 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저녁 야탑의 먹자골목에서 소주를 들이킨 건 바둑의 영역마저 기계에 내준 허전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기계의 계산 능력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인간의 창의성을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기보를 입력해서 학습한 알파고가 변칙수에 정확히 대응할 수 없으리라고 누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프로기사도 예상 못한 멋진 수를 두었고 결국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가장 확률이 높은 수..

길위의단상 2016.03.21

알파고

지난주에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있었다. 구글에서 개발한 바둑 대국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 Go)가 유럽 챔피언인 중국인 프로기사 2단을 5:0으로 이겼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이세돌 9단과 대결한다. 컴퓨터가 이렇게 빨리 인간의 능력에 도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온 바둑 프로그램은 아마 3, 4단 수준 정도다. 어느 정도 바둑을 두는 사람은 컴퓨터와 게임을 하는 게 싱겁다. 그런데 알파고는 몇 단계를 뛰어넘어 프로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자기 스스로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면 앞으로 인공지능의 능력은 어떻게 발전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체스에서는 오래전에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 그러나 바둑..

길위의단상 2016.02.04

프로 기사와 다면기

서울시의 차 없는 날 행사의 하나로 광화문에서 프로 기사와 일반인과의 다면기가 있었다. 프로 기사 100명이 나와서 시민 1,000명과 지도 대국을 가졌다. 프로 기사 한 사람이 열 명을 상대로 두는 것이다. 광화문 보도에 네 줄로 천 개의 바둑판이 놓여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두 주 전에 행사 소식을 듣고 나도 신청을 해서 참석했다. 우리 조에서 수고한 기사는 이동휘 초단이었다. 재작년에 입단한 젊은 기사인데 진지하게 바둑을 둬주어서 좋았다. 다섯 점을 놓고 시작했다. 프로 기사와는 처음 대국하기 때문에 무척 설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바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배우기 위해서 두기 때문에 승부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마를 죽이지 말자, 쌈지 뜨지 말고 중앙으로 나가자, 이 두 가지를 염..

사진속일상 2015.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