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골 71

반가운 손님

빈 터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작년에 흙을 들여와깔아놓은 터에 봄이 되니 하나 둘씩 풀들이 나기 시작한다. 흙 속에 들어있던 씨들이었는가,아니면 바람을 타고 날아왔는가, 맨 땅이 초록 옷을 입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잡초라고 부른다. 사실 이름을 모르는 풀들도 많다. 그러나 그 중에는낯 익은 꽃을 피우고 미소짓는 것들도 있다. 대부분은 꽃이 아주 작아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다. 척박한 땅에 터를 잡고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저것들이 귀엽고 반갑다.

참살이의꿈 2004.05.16

새 식구

터에 새 식구가 많이 늘어났다. 4월 들어서 주말마다 터에 내려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심은 나무는 다음과 같다. 배롱나무 1, 살구나무 1, 라일락 1, 산수유 1, 사철나무 40 모과나무 1, 자작나무 10, 회양목 50 벚나무 1, 단풍나무 2, 오가피 10, 회양목 10, 연산홍 30 그런데 나무를 고르는 데서부터 어설프게 보였는가 보다. 나무를 배달해 온 분이 나무 모양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찬다. 수목전시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심어놓고 보니 몇 주는 수형이 마음에 안 든다. 특히 배롱나무가 심하다. 원줄기에서 갈라진 가지가 완전히 불균형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선택했어야 할 나무라는 생각이 드니 우리 마당에서나마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

참살이의꿈 2004.04.20

춘색(春色)

터에 다녀오는 길은 봄으로 가득했다. 사계절이 모두 나름대로의 특징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일년 중 지금 이 때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취하게 하는 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터의 집 앞에 앉아서, 또는 오고가는 길에서 봄의 향기에 취하고 또 취했다. 몇 장의 사진을 남겼지만 마음의 감흥을 어찌 다 옮길 수 있을까? 세상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무척 아름답다.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즘의 섶, 밤,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

사진속일상 2004.04.18

나무를 심다

산림조합에서 직영하는 나무 전시장에 다시 들러 보았다. 3월 중순에갔을 때보다구경나온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무 심기를 마친 것 같았다. 그리고 작은 읍내의 길거리에서 임시로 열렸던 나무 시장도 벌써 사라졌다. 오늘이 식목일이건만 실제 나무 심는 시기는더 빨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벌써 대부분의 묘목이나 나무들이 잎과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당자 말로는 4월 중순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늦어질수록 나무의 몸살은 더 커질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당에 심을 나무의 구체적인 밑그림도 없이 갔기에 이 나무 저 나무 구경하다가 눈에 띄는 것으로 몇 그루를 구입했다. 울타리 대용으로 쓸 사철나무 40주. 베롱나무, 살구나무, 라일락, 산수유 각 1주. 울타리로는 쥐똥나무를 예상했었지만 막상 가서..

참살이의꿈 2004.04.05

3년 전

만약 운명이 있다면 그는 무척 짓궂은 장난꾸러기일 것 같다. 神은 밋밋한 인생을 재미없다고 본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하는 식으로 우리 인생길에다 이곳 저곳 지뢰를 묻어 두었다. 춤추며 가던 인생길에서 지뢰를 밟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상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 롤러 코스터를 탄것 마냥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또끝없는 아찔한 추락을 경험한다. 인생은 시소타기다.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탓에 이번에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새로 옮긴 직장의 여건이 내가 기대한 조건과는 많이 어긋난다. 여유있는 삶, 느릿 느릿 걸어가고 싶은 삶을 추구하면 할 수록 그에 비례하여 내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장난꾸러기의 훼방에 속이 탄다. 세월이 흐..

참살이의꿈 2004.02.29

춥고 쓸쓸한 마가리

현관문을 여니 싸늘한 냉기가 밀려온다. 집안 공기가 바깥보다 더 차다. 발바닥이 시러워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 스위치를 올리니 보일러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수도물도 정상으로 나온다. 이번 추위에 바깥 수도펌프가 얼었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인지 안에서는 아직도 새 집 냄새가 난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커튼과 창문을 모두 연다. 겨울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리창을 거친 햇살은 따스하다. 뒷 집 개가 마당까지 쫓아와서는 컹컹대며 짖는다. 여기가 자기네 집인지 아는가 보다. 웃기는 놈이다. 손짓으로 쫓아보지만 꿈쩍도 안한다. 오디오 전원을 넣는다. Secret Garden의 `Awakening`이 흘러 나온다. 애잔한 선율로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두 번째 곡은 `You rais..

참살이의꿈 2003.12.22

쓸쓸한 그곳

터에 다녀오다. 늦가을이어선지 더욱 쓸쓸했다. 월동 준비를 한답시고 펌프에도 헌 옷가지를 둘러씌우고 바깥 수도꼭지도 물을 뺀 다음 폐쇄시켰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었다. 다만 담안 사람들과 잠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도시의 소외가 싫었는데 지금까지는 시골 마을에서도 아직 이방인이다. 적응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지난 사건의 여파가 나에게는 아직 크다. 첫 눈에 정이 들기는 쉽다. 그러나 한 번 소원해진 뒤에 다시 정을 붙이기는 어렵다. 이건 사람이나 물건이나 땅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깊은 정이란 것은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상대의 결점이나 단점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그러고도 느끼는 동질감이야말로 세월이 쌓인 깊은 정이라고..

참살이의꿈 2003.11.17

우리 배추

9월 초에 읍내에 나가 배추 모종을 샀다. 거름 한 포와 섞어서 뜰에다 심어 놓았다. 비가 내리던 그 날, 대충 대충 엉성하게 옮겨 놓기만 했다. 그 뒤 일이 생겨서 내려가 보지도 못한 채 한 달여가 지났다. 물을 주지도 김을 매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산흙을 퍼다 만든 마당의 척박한 땅에서 저 혼자 이만큼 자라 주었다. 농민들이 키운 배추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준 배추가 고맙기만 하다. 사이 사이 솎아와서 이웃에도 나누어 주다. 그런데 잎이 억세서 냄비에 푹 끓여 먹어야 겠다.

참살이의꿈 2003.10.19

한 달 만에 다녀오다

한 달 만에 내 터에 다녀왔다. 내려갈 때는 마지못해서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이러할까 싶었다. 그러나 올라올 때는 몇 가지 심각했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 내려가던 길에 한 집에 들렀다. 이분들은 벌써 10여년 전에 귀농하신 분들이다. 기반을 닦은 모습이부러운데 자신들도 초창기에는 무척 고생 많이 했다고 과거 얘기 들려주며 힘 내라고 하신다. 안스러워 걱정해 주는 마음이 표정에 서려 있다. 동네에서는 두 쪽 갈등 사이에 끼여 처신하는데 무척 괴롭다. 시시비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나에게 요구하는 사항을 어느 쪽도 받아들여주지 못했다. 잘못하면 이쪽 저쪽에서 동시에 욕을 얻어 먹어야 되는 처지다. 묘하게도 일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잘 되면 부드럽게 ..

참살이의꿈 2003.10.05

이젠 止雨祭라도....

오늘도 야속한 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농민들의 원성이 들리지 않는지, 태풍 `매미`로 불의의 재난을 당한 이웃들의 울음이 들리지 않는지 하늘은 무심하기만 하다. 그분들의 고통이 어찌 나와 무관하겠는가? 나에게 피해가 없다고 안도할 수 만은 없다.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을 그분들이 대신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태풍의 각도가 조금만 어긋났더라도 지금 눈물을 흘릴 사람은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난다. 수용소 안의 유대인들을 향하여 겨누어진 총구, 누구가 선택되는가는 그저 우연일 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의 불행이기 이전에 이웃의 고통을 대속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 조차 절대로 지금의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우리는..

참살이의꿈 200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