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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다운타운

영어의 '다운타운(downtown)'은 시내의 중심 지역을 뜻한다. '다운(down)'으로 연상되는 의미와는 다르다. 영어를 배우고 나서 나는 다운타운을 오랫동안 헷갈렸다. 다운타운을 생활 수준이 한 수 아래인 달동네로 착각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잘못된 해석으로 오답을 적은 적도 있었다. 점수를 잃고나서야 제대로 개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시내에 나가자면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말 그대로 '다운(down)' 타운이다. 미국에서도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거 지역이 대체로 고도가 높다 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는 걸 여기에 와서야 실감한다. 우리 동네 다운타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스카이라인이 계속 바뀌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규제를 받다가 해제된 탓인지 고층 아..

사진속일상 2022.12.03

작은 집을 권하다

나에게 남은 바람이 있다면 조용한 터에 자그마한 집 하나 갖고 싶은 것이다.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피신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마음이 답답한 때는 그곳에 찾아가 며칠 푹 쉬었다 오고 싶다. 책을 한 보따리 들고 가서 오직 글자 속에 묻혀 지내고도 싶다. 다카무라 토모야 씨가 쓴 는 아주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생각 같은 세컨드 하우스 개념이 아니라 실제 거주하는 집이다. 집 크기는 대체로 세 평 안팎이다. 극단적으로 작은 집이다. 작은 집은 작고 소박한 라이프 스티일을 지향한다. 세 평 짜리 집에 산다는 건 종교적인 신념에 가까운 의지가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스몰 하우스 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대부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

읽고본느낌 2016.11.10

내가 꿈꾸는 집

나는 양지바른 산자락 아래에 있는 작고 조용한 집을 꿈꾼다. 터는 100평 정도면 넉넉하겠다. 거기에 10평대의 작은 집을 앉히고 싶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집이다. 마당과 텃밭이 있고, 화단도 있다. 집 둘레에는 나무를 심겠다. 귀퉁이에는 항아리 몇 개가 얌전하게 앉은 장독대도 놓을 것이다. 다른 건 양보할 수 있으나 소음은 안 된다. 이런 꿈을 꾸는 건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싫어하는 첫째 이유가 층간 소음 때문이다. 아파트는 외부 소음은 잘 차단하지만 내부 소음에는 속수무책이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 와서는 더 싫어하게 되었다. 전에 여주 밤골에서 살 때는 이웃집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젠 제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

참살이의꿈 2012.04.18

백가기행

내 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내 먹을거리는 내 노동으로 기르며 사는 걸 이상으로 생각했다. 7년 전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다시 한 번 나에게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이젠 무척 두렵고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쓴 맛은 좋은 인생 경험이 되었다. (百家紀行)은 조용헌 씨가 쓴 집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전국을 돌아보며 만난 명가(名家)들이 소개되어 있다.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수 백 평 부자의 집까지 스물한 채의 집이 나온다. 한옥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지하에 지은 집도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저자의 말로는 집의 존재 의미는 ‘가내구원’(家內救援)에 있다. 구원은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집은 사람에게 위로와 평화를 주는 공간이다. 또한 사는 사람의 인생철학이 담겨있어야 한다. 넓은 평..

읽고본느낌 2010.10.18

2 년 뒤

2 년 뒤에 입주할 광주의 터에 가보았다. 아내와 함께 친지의 문병길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겨우 아파트 분양을 받았더니 집값은 떨어지고, 또 시공회사가 워크아웃 대상이어서 제대로 짓기나 할런지 마음이 뒤숭숭하던 차였다. 현장은 이제 기초 공사가 끝나가는 단계였다.사무소의 직원에게 현 상황을 묻고 싶어도 돌아오는 대답이 뻔해 보여 상담을 하지도 못했다. 모델하우스는 일부가 변형되어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아직 허공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내 집이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에 아내는 들떠 보였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사진속일상 2009.02.05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

시읽는기쁨 2008.08.08

그녀네 집이 멀어서 / 신경림

그녀네 집이 멀어서 북적대는 시게전을 지나야 한다 골목을 벗어나면 언덕이 있고 싸리울 하얀 꽃 속에 그녀는 산다 방은 늘 비어 있어 어른대는 살구꽃에 취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꽃 그림자가 방문을 덮는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물 머금은 보름달을 등에 지고 내려오는 길은 더욱 멀다 골목을 벗어나고 시게전을 지나서 외진 모퉁이 들여다보면 꼬치집에도 그녀는 없다 기다리며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나는 잊는다 그녀의 얼굴을 체취를 잊고 이름을 잊는다 그녀네 집이 멀어서 시게전을 잊고 유행가가 자욱한 골목을 잊고 싸리울 하얀 빈 방을 잊고 비릿한 이불자락을 잊고 달빛을 가리는 살구꽃과 과묵한 꼬치집 주인을 잊고.... 당초부터 이 세상에 없는지도 모를 그녀네 집이 멀어서 너무 멀어서 - 그녀네 집이 멀어..

시읽는기쁨 2008.07.14

집 장만 작전에 들어가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제일 큰 갈등은 집 문제로 인한 의견 차이다. 아내는 우리 소유의 집이 없으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세상을 좀 거슬러 살아보자는 주장이다. 이왕 버린 몸, 떳떳하고 당당하게라도 살아가자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점점 집값은 뛰는데 이러다가는내 집을 가져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아이들은 출가할 때가 되었는데 사돈댁에 집도 없는 처지로 보이는 것은 싫다는 말도 한다. 아내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고 살아온 신념 때문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서울 같은 도시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도덕하게 느낀 적도 있었다. 반면에 아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수 년간 팽..

사진속일상 2008.01.30

집이 뭐길래

집 없는 설움보다 큰 설움은 없다는 말이 있다. 특히 한국 사람이 땅이나 집에 집착하는 이유도 돈이 된다는 것과 함께 없을 때의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체 세대의 40%가 무주택가구라는데, 땅 투기와 아파트 투기로 인해 그들이 받는 상처는 집 있는 사람들은 종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도 셋방살이를 전전한지 어느덧 7년 째가 되어간다. 그동안에 서울의 집값은 서너 배씩 뛰어올라 가만히 앉아서 재산가치가 반의 반 토막으로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 집 한 채 장만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그런 상실감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것은 아내다. 최근의 부부갈등의 원인도 거기서 출발하고 있다. 집이 있든 없든살림에 무관심한 남편이 밉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참살이의꿈 2007.08.24

집 / 맹문재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같은 집을 지은 거미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거미한테 원망 듣는 것은 무섭고 마누라한테 원망 듣는 것은 안 무섭느냐고 아내가 따졌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는 아내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넘어 잡을 수가 없네요 - 집 / 맹문재 한국인의 유별난 가족주의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진단할때 늘 감초처럼 끼어든다. 가족 사이의 끈끈한 정, 정서적 교류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밖에 모르는 가족 이기주의는 ..

시읽는기쁨 2007.08.03

창문을 열고 사는 기쁨

도시에서는 내 창문도 마음대로 열고 살 수 없다. 내가 이때껏 산 지역이 고약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소음과 매연 때문에 창문을 열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선지 최근의 도심에 있는 고급 아파트들은 완전 밀폐형이라고 한다. 아예 통유리로 창문에는 손을 댈 수 없고 중앙에서 공기 정화와 순환을 시키는 방식이다. 도시의 소음 공해와 더러운 먼지를 인공적으로 완전히 차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시에서는 자연과 멀어지고 인공의 손을 빌릴 수록비싸고 좋은 집이 된다. 그런 집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건강에 좋을 것 같지도 않고 독가스로 덮인 속에서 홀로 좋은 공기 마시며 사는 기분이 별로 편안할 것 같지도 않다. 창문을 열면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꽃향기를 날라다주는 그런 집이 사람 사는 집이 아니겠는가. ..

길위의단상 2007.05.06

남한강에서

새 터를 보러 다니다가 잠시 남한강변의 카페에서 휴식하며 차를 마시다. 건너편 강변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마치 유럽의 호반 풍경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전에는 저런 삶을 백안시했지만 한 바탕 홍역을 치른 뒤로 지금은 시각이 많이 변했다. 요사이는 단지로 조성된 마을이 차라리 나에게 더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도시 생활에 젖은 사람의 공통된 한계일지 모른다. 이젠 사명적인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좀더 편안하고 가볍게 살고 싶다. 종교적이며 자연주의적 삶은 뒤로 유보해야겠다. 값 비싼 경험을 했기에 새 터를 찾는 작업도 조심스럽고 신중해졌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터를 발견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빼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런 전갈을 받으면 왠지 슬..

사진속일상 2007.01.24

부동산 광풍 가운데서

송년회에 나가는 A의 발걸음은 무겁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대화가 술 몇 잔 들어가면 으레 아파트 얘기, 돈 얘기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종부세를 천만 원이나 내었다고 조금은 계면쩍어 하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친구에서부터 “너 어디 살지?” “거기도 많이 올랐지?”라는 질문은 인사가 되었고, 그런 부동산에 관한 말이 나올 때마다 괜히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면 A는 서울에 살면서도 현재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그래서 요즈음처럼 부동산 광풍 속에서 집 가진 친구의 재산 가치가 자꾸 높아지는 것을 보면 솔직히 배가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유전자 조작이라도 해서 인간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A가 원래 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6년..

길위의단상 2006.12.20

처제의 집들이

처제가 결혼 10년이 넘어 32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어제 저녁에는 장모님을 비롯하여 처가쪽 여러 가족이 모여서 집들이를 하며 같이 축하했다. 한국 사회에서 내가 살 보금자리를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집 한 채를 갖는다는 의미 이상이 있다. 결혼해서 힘든 전세살이를 전전할 때 대부분 가정의 목표는 내집 마련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집을 가지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더구나 그것이 본인들이 마련한 첫집이라면 그 기쁨은 더할 것이다. 그래선지 처제 부부의 표정은 유난히 밝아 보였다. 묘하게도 같이 모인 처가쪽 네 가족은 아직 모두들 집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사업을 하는 처남은 나이가 50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계속 남의 집살이를 하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

사진속일상 2006.12.03

[펌] 우리들의 아파트

요즘 도심의 초고층 유리건물은 오피스 빌딩이 아닌 아파트로 넘어간 지 꽤 오래되었다. 공실률(空室率)이 늘어나면서 오피스 빌딩 공사는 침체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기업 활동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반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이 200조니 300조니 하다 보니 이들의 주머니를 노린 새로운 건물 유형이 등장하게 되었다. 초고층 아파트이다. 형식은 오피스텔이다 주상복합이다 해서 구실을 갖추었지만 실상은 아파트 투기를 대규모화해서 판돈을 키운 것뿐이다. 오피스텔처럼 오피스 기능을 함께 집어넣든지 주상복합처럼 저층부를 상업시설로 하면 주거전용 제한을 안 받기 때문에 아파트 건물을 높이, 심지어 60층까지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안 고치고도, 뇌물을 먹이지 않고서도 합법적으로 60층짜리 아파트를 지..

길위의단상 2006.03.03

건축일지

경기도 여주에 땅을 마련한 것이 1999년 7월이었다. 농촌 마을 가운데 있는 대지와 전으로 된 470평의 직사각형 땅인데, 아내나 나나 처음 보는 순간에 반해 버려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사버렸다. 결국 나중에는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제대로 땅을 볼 눈이 없었다고 해야겠다. 그 뒤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주말마다 다니는 생활을 하다가 2002년부터 집 지을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는 직장을 여주로 옮긴 뒤에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학교를 옮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한 것이다. 얼마간 망설임의 시간을 겪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주에서의 생활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의 생활 기반이 되는 집이 필요했다. 그러자니 우선 어떤 ..

참살이의꿈 2005.08.04

집에 대하여 / 안도현

손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집을 갖는다는 것은 저 제비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볏짚 한 오라기 엮어 얹지 않고 진흙 한 톨 물어다 바르지 않고 너나 없이 창문 큰 집을 원하는 것은 세상에 그만큼 훔치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인가 허구한 날 공중에 떠서 살아가다 보면 내 손으로 땅 위에 집을 한 채 초가삼간이라도 지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혹시 바람에 찢기도 무너진다 해도 훗날 내 자식새끼들이 자라면 꽁지깃을 펴고 실패하지 않는 집을 다시 지을 테니까 - 집에 대하여 / 안도현 남은 내 꿈의 중의 하나는 내손으로직접 내 집을 지어 보는 것이다. 언젠가 넥타이를 벗어 던지게 되는 날이 오면 그 꿈은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믿고 있다. 흙을 올리고, 나무를 세우며, 1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작은 집 한..

시읽는기쁨 2005.06.10

슬프게 하는 것들

일전에 테헤란로를 지나게 되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가보지 않은 거리가 많다. 테헤란로를 지상으로 지나가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길 양편으로 솟은 빌딩들, 깔끔한 거리 모습이 선진국의 도시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왠지 주눅도 들었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설명을 해 주었다. 저건 무슨 빌딩이고, 저게 그 유명한 ○○○이라고 했다. 이때 같이 있던 한 사람이 무심결에 "에라, 확 무너졌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다들 에이 하면서 핀잔을 주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마음 속에도 그런 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웠다. 그만큼 빈부격차의 문제는 심각하다. 전체적 평균은 나아지고 있을지라도 이런 상대적 소외감이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하고 있다. ..

길위의단상 200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