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13

장자[107]

장자와 혜자가 냇물의 징검다리 위에서 놀았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헤엄치는 걸 보니 물고기가 즐거운 모양이오." 혜자가 말했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 마음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했다. "그렇소.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당신을 모르오. 마찬가지로 당신은 물고기가 아니니까 정말 당신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해야 논리상 옳지 않겠소?" 장자가 말했다.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그대가 처음 나에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말한 것은 이미 그대는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서 나에게 반문한 것이오. 내가 물 위에서 지각한 것은 물속의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이었소." 莊子與惠子 遊於..

삶의나침반 2010.02.18

장자[106]

남방에 원추라는 봉황새가 있소. 그대도 잘 알 것이오. 그 원추는 남해에서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오. 이때 마침 올빼미가 썩은 쥐를 얻었는데 원추가 그 곁을 지나갔소. 올빼미는 원추를 올려다보고 썩은 쥐를 빼앗길까 놀라 "꽥! 꽥!" 소리쳤소. 지금 그대는 그대의 재상 자리 욕심에 나를 보고 "꽥! 꽥!"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南方有鳥 其名爲원추 子知之乎 夫원추發於南海 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치得腐鼠 원추過之 仰而視之曰 혁 今子欲以子之梁國 而혁我邪 - 秋水 12 혜자(惠子)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찾아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장자가 찾아온 것은 재상 자리를 빼앗기 위해서라고 혜자..

삶의나침반 2010.02.07

장자[105]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는데 초나라 위왕이 대부 두 사람을 먼저 보내 전했다. "삼가 우리나라에 모시기를 원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가 듣건대 그대 초나라에는 죽은 지 삼천 년이 지난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왕께서 수건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 위에 모셔두었다더군요. 생각건대 이 거북이는 죽어 해골을 남겨 귀하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대부가 말했다. "그야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끄는 것이 낫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돌아가시오! 나는 장차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거북이가 되려 하오." 莊子釣於복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 曰 願以竟內累矣 莊子持竿不顧 曰 吾聞 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筐 而藏之廟堂之上..

삶의나침반 2010.02.02

장자[104]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연나라 수릉의 소년이 걸음걸이를 배우러 조나라의 서울 한단에 갔는데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다는 것을! 且子獨不聞 壽陵餘子之 學行於한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 秋水 10 여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닮고 싶은 당니귀가 있었다. 살펴보니 여치는 항상 아침 이슬만 먹으며 사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당나귀는 이슬에서 맑은 소리가 나오는 줄 알고 자신도 이슬을 먹으며 여치를 닮고자 했다. 결국 당나귀는 뼈만 앙상해지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자의 세계는온갖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장이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며 작은 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여치는 여치대로, 당나귀는..

삶의나침반 2010.01.27

장자[103]

그대는 우물 안 개구리 얘기를 듣지 못했단 말인가? 그 개구리는 동해의 자라에게 이렇게 말했다는군! "나는 즐겁다네! 한번 뛰어올랐다 하면 우물 난간에 오르기도 하고 우물 벽돌이 빠진 구멍에 들어가 쉬기도 하며 물에 뛰어들면 겨드랑이를 붙이고 턱을 들 수도 있다네. 진흙에 엎어지면 발이 빠지고 발등이 묻히기도 하지만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를 둘러보아도 내 능력을 따라올 자 없지. 또한 한 구덩이의 물을 제 맘대로 하고 우물의 쾌락을 독차지한다네. 그대는 어찌 때때로 와서 관람하지 않는가?" 이에 동해의 자라는 우물에 왼발을 밀어 넣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끼어버렸다. 이에 뒷걸음쳐 물러나와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 주었다. 子獨不聞 夫坎井之蛙乎 謂東海之오 曰 吾樂與 出跳梁乎井幹之上 入休乎缺추持崖 赴水..

삶의나침반 2010.01.17

장자[102]

교룡을 꺼리지 않고 물길을 가는 것은 어부의 용기이며, 맹수를 꺼리지 않고 산길을 가는 것은 사냥꾼의 용기이며, 흰 칼날이 번뜩이는 앞에서 죽음을 삶처럼 보는 것은 열사의 용기이며, 곤궁함은 운명임을 알고 형통함은 시세임을 알아 큰 난관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다. 유(由)는 안심하라! 내 운명은 하늘이 결정할 것이다. 夫水行 不避蛟龍者 漁父之勇也 陸行 不避시虎者 獵夫之勇也 白刃交於前 視死若生者 烈士之勇也 知窮之有命 知通之有時 臨大難而不懼者 聖人之勇也 由處矣 吾命有所制矣 - 秋水 8 요사이 라는 무척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거기에 동양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공자는 한 페이지 정도, 노자는 반 페이지 정도 할애하고 있는데 장자는 딱 한 줄이다. 노자를 신비주의자라고 설명하고 나서는 장자를..

삶의나침반 2010.01.07

장자[101]

외발 짐승인 기는 발이 많은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한다. 기가 노래기에게 말했다. "나는 외발이라 깡충깡충 걸어야 한다. 나는 너만 못하다. 너는 수많은 발을 부리는데 나만 이게 무슨 꼴인가?" 기燐현 현燐蛇 蛇燐風 風燐目 目燐心 기謂현曰 吾以一足 참초而行 예无如矣 今子之使萬足 獨奈何 - 秋水 7 상대와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는 것은 인간 공통의 병인 것 같다. 열등의식은 시기와 질투로 이어지는데 그 배경에는 끝없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도 발 가진 것은 발이 많은 것을 부러워하고, 발이 많은 것은 발이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발이 없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을 부러워한다. 하늘은지렁..

삶의나침반 2010.01.02

장자[100]

우마는 각각 네 발을 가졌다. 이것은 자연이다. 말에 굴레를 씌우고 소에 꼬뚜레를 뚫는 것은 인위다. 옛말에 이르기를 인위로 자연을 죽이지 말고 기술로 천품을 죽이지 말며 덕으로 명예를 좇지 말라고 했다. 삼가 자연을 잘 지켜 잃지 않으면 이를 참된 나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穿牛鼻 是謂人 故曰 無以人滅天 無以故滅命 無以得殉名 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眞 - 秋水 6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다. 말과 소는 네 발을 가졌고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이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존재의 본성이 제한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연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인다. 카오스의 영역이다. 생물들은 각자의 본성대로 경쟁하고 싸우지만의도된 작위나 욕심이 없다. 어느 생물도 생존에 필요한 영역 ..

삶의나침반 2009.12.29

장자[99]

지난 세월은 잡을 수 없고, 시간은 그치지 않는다. 소멸되면 살아나고 차면 비우고 끝나면 시작이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대의의 방도를 말하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다. 만물의 삶이란 달리는 말이 문틈으로 지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때에 따라 옮기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다스리고 무엇을 다스리지 않을 것인가? 본래 사물은 스스로 조화할 뿐이다. 年不可擧 時不可止 消息盈虛 終則有始 是所以語大義之方 論萬物之理也 物之生也 若驟若馳 無動而不變 無時而不移 何爲乎 何不爲乎 夫固將自化 - 秋水 5 장자를 읽다 보면 장자의 세계는 거대한 용광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광로 속에서는 돌맹이든 쇠붙이든 다 하나로 녹아버린다.장자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영(榮)과 욕(辱), 성(聖)과 속(俗),..

삶의나침반 2009.12.25

장자[98]

도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다. 물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귀하고 상대는 천하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귀천은 능력 차이 때문이 아니다. 차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조금 크니까 큰 것이라면 만물은 크지 않은 것이 없고 조금 작으니까 작은 것이라면 만물은 작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쌀 한 톨이라 할 수도 있음을 알고 터럭 한 올을 큰 산이라 할 수도 있음을 안다면 차별의 이치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以差觀之 因其所大 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 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爲제米也 知毫末之爲丘山也 則差數覩矣 - 秋水 4 우리 인식의 상대성에 대한 변주가 계속 울리고 있다. 유무(有無), 시비(是非), 대소(大小), 고저(高低..

삶의나침반 2009.12.18

장자[97]

그러므로 대인의 행동은 드러나지 않지만 남을 해치지도 않고 인의와 은혜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행동은 이익을 앞세우지 않으나 이익을 찾는 노예를 천시하지도 않는다. 재화를 다투지 않지만 사양한 것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손수 일을 하며 남의 노동을 빌리지도 않지만 노동으로 먹고사는 것을 찬양하지도 않으며 탐하고 땀 흘리는 것을 천시하지도 않는다. 행동이 세속과는 다르지만 괴이한 것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다스림은 민중을 따르는 데 달려 있으니 영합하고 아첨하는 자를 천시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작록도 그를 권면할수 없고 죽음과 부끄러움도 그를 욕되게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시비를 분별할 수 없고 대소는 나눌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是故大人之行 不出乎害人 不多仁恩 動不爲利 不賤門隸 貨財不爭 不多辭讓 事焉不借人 ..

삶의나침반 2009.12.10

장자[96]

헤아려보면 사람이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고 살아 있는 시간은 살아 있지 못한 시간보다 못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으로 지극히 큰 영역을 궁구하려 하므로 혼미하고 어지러워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여러 가지로 비추어본다면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털끝이 반드시 지극히 미세한 것의 끝이라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천지가 반드시 지극히 큰 것의 궁극적인 경지라고. 計人之所知 不若其所不知 其生之時 不若未生之時 以其至小 求窮其至大之域 是故迷亂 而不能自得也 由此觀之 又何以知 毫末之足以定至細之倪 又何以知 天地之足以窮至大之域 - 秋水 2 하백(河伯)과 북해약(北海若)의 긴 대화 중 일부분이다. 둘의 대화에서는장자 철학의 주요한 논점이 말하여지고 있다. 그 철학적 내용에 대하여는 내가 설명할 ..

삶의나침반 2009.11.29

장자[95]

우물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장소에 구애되기 때문이요, 매미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때에 굳어 있기 때문이요, 편벽된 선비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가 강 언덕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부끄러움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더불어 큰 이치를 말할 수 있겠구나!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於出於崖矣 觀於大海 乃知爾醜 爾將可與魚大理矣 - 秋水 1 강의 신인 하백(河伯)이 바다를 보고 나서 하는 탄식이 앞 부분에 나온다. "옛말에 백 가지 도를 들어도 내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었구나!" 하백은 넓은 바다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고 부끄..

삶의나침반 2009.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