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8

우울한 한국

미국의 인기 작가이자 유튜버인 마크 맨슨이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가 '우울한 한국'이라는 주제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되어서 찾아보았다. 마크 맨슨이 내린 진단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짜깁기해 놓은 느낌이 들었다. 영상 제목이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I Traveled to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로 자극적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자살률인데 한국은 10만 명당 25명이 자살하여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 특히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낮은 출생률 또한 우울한 한국을 드러내주는 징표다. 마크 맨슨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며..

참살이의꿈 2024.02.06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B 고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교실 붕괴 등의 용어가 등장하며 현장이 시끄러울 때였다. 학생들 통제가 안 되고 수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대놓고 교사에게 달려드는 아이도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자발적인 교사회의가 열렸다. 현실을 폭로하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들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뾰족한 답이 나올 수 없었다. 두어 시간의 난상토론이 끝나고 고작 내린 결론이 교사끼리의 정보 공유나 벌점제 등 사소한 것이었다. 다들 교사들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흩어지며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이 이런 걸 어떡하냐고!" 20년 전 일이었다. 며칠 전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경력 2년차..

길위의단상 2023.07.23

위기의 한국 교육

일전에 지인으로부터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인의 딸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학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모양이다. 교실 붕괴라는 말은 내가 현장에 있을 때부터 쓰였지만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차마 교육이란 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우선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된다. 수업 중에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제어할 수단이 없다. 요사이는 벌을 준다고 교실 뒤나 복도에 세워놓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항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이의 다리를 아프게 하고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수긍하지 않을뿐더러 심하면 아동 학대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내 아이만 귀한 줄 아는 학부모의 행태는 보도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단체여행을 가는 아이 뒤를 따라와 제 아이의 잠..

길위의단상 2023.06.20

이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이문재

입학식이 따로 없고 자기 생일 아침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여덟 살짜리와 열두 살 짜기가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나라, 교과서가 없는 나라가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돌려달라며, 등교를 거부하는 여학생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할머니와 직장인과 미혼모 여학생이 한집에 사는 나라 등록금을 나라에서 다 대주는 나라 달리기 시합 때 아이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골인하는 나라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앞세우는 나라 연간 입국 관광객 수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나라 군대 없는 나라 또한 한둘이 아닙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키우지도 않고 수입하지도 않는 나라 에너지를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는 나라 식량 자급을 위해 농업, 농촌, 농민을 존중하는 나라 새..

시읽는기쁨 2023.04.06

남들처럼

"은주야, 이제 너 좋아하는 배구장 가서 공놀이도 실컷 하고, 바다로 산으로 가서 맑은 공기 시원하게 마셔. 다음 생애엔 언니랑 남들처럼 4500원짜리 커피 마시면서 산책도 하고, 길거리에서 떡볶이랑 튀김도 사 먹자. 남들처럼 손 잡고 여행도 떠나고, 너 좋아하는 노래방도 가자. 남들처럼, 남들처럼." 지난 3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였던 안은주씨가 사망했을 때 언니가 오열하며 한 말이다. 안은주씨는 2011년에 발병하여 12년간 투병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했다. 배구 선수 출신이었던 안은주씨는 누구보다 건강했다고 한다. 안은주씨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1774번째 사망자였다.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부 기업의 처벌이 이루어졌지만 다른 가해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길위의단상 2022.05.30

파주에게 / 공광규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 군대 간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새떼들은 파주에서 일산도 와보고 개성도 가보겠지 거기만 가겠어 전라도 경상도를 거쳐 일본과 지나반도까지 가겠지 거기만 가겠어 황해도 평안도를 거쳐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도 가겠지 그러면서 비웃겠지 놀리겠지 저 한심한 바보들 자기 국토에 수십 년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는 바보들 얼마나 아픈지 자기 허리에 가시 철책을 두르고 있어 보라지 이러면서 새떼들은 세계만방에 소문내겠지 한반도에는 바보 정말 바보들이 모여 산다고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철책선 주변 들판에 철새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시읽는기쁨 2022.01.12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주를 택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의 6년의 과정이 한국과 호주 생활을 대비하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이렇게 항변하는 주인공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한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동물이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가 있는데 자신이 꼭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

읽고본느낌 2021.10.09

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며칠 전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이런 서울대가 부끄럽다 / 송현숙 논설위원 모멸감.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지난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쫓는 내내 떼어낼 수 없었던 감정은 이 세 글자였다.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의 죽음을 한사코 모른 체하려는 그 조직의 모습에, 고인이 생전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59세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퇴근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동료들은 당시 힘들고 멍한 고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사망 열흘 만이었다. 가족..

참살이의꿈 2021.07.25

부동산 약탈 국가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화도 났다. 자극적인 책 제목대로 이 책의 지은이인 강준만 선생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규정한다. 집 없는 사람 처지에서는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더 악랄한 약탈이다. 부제가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다. 집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약탈이 '코리안 드림'이 된 나라에서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계급 분리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말했다. "우리 현 사회체제 속에 내재한 낭비 중에서도 가장 엄청난 낭비는 바로 정신적 능력의 낭비다." 불..

읽고본느낌 2020.12.30

걱정 많은 한국인

지난 9월에 한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에서 세계 주요 14개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9개 항목(기후변화, 감염병, 테러리즘, 사이버 공격, 핵무기 확산, 경제 불안, 세계 빈곤, 국가 간 갈등, 난민)이 국가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조사했다. 이중 5개 항목에서 한국의 걱정 정도가 1위를 차지했다. 예를 들면, 한국은 감염병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다. 감염병 확산이 국가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한국은 89%나 되었다. 반면에 독일 55%를 비롯해 서구 각국의 평균은 60%대였다. 세계 경제에 대한 걱정도 한국이 제일 높았다. 세계 경제 현황이 국가에 위협이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83%로 1위였다. 2위가 스페인으로 76%이고, 전체 평균은 50%대였다. 핵무기 확산을..

참살이의꿈 2020.11.06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책이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나라만 들어갈 수 있다는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에 들어간 일곱 번째 나라가 되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성취와 정치적 민주화에서는 세계에서 독보적인 나라다. 반면에 '헬조선'이라는 말처럼 불명예의 기록도 다수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고,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아이들이 가장 우울하고, 아이들을 가장 적게 낳고, 제일 서로를 불신하는 나라다. 이 정도면 지옥이라 할 만하다. 어느 외국 학자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

읽고본느낌 2020.11.03

친일과 대한민국

친구가 카톡으로 긴 글을 보내 주었다. 글쓴이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최진석 선생이다. 전에 EBS를 통해 선생의 노자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던 적이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념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해방 직후의 좌우 대립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한 번은 견뎌내야 할 통과의례인지 모른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언젠가는 발목을 잡는다. 친일과 반일에 관련된 논란도 그중 하나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독단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지만 선생의 견해 역시 경청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가을호에 실린 따끈따끈한 글이다. 친일과 대한민국 / 최진석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꿈꾸는 나는 작년 7월에 발표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

길위의단상 2020.09.01

불만 많은 나라

이달 초에 OECD에서 '2020년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 in 2020)'를 발표했다. 소득과 부, 주택, 일과 직업, 삶의 균형, 건강, 지식과 기술, 환경, 주관적 만족도, 안전, 사회적 관계, 시민 참여 등 11개 분야를 조사해서 각국의 삶의 질을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과거보다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반면에 소득 격차나 불평등 문제는 개선이 되지 않았다. 또한, 서로 간에 관계의 단절이 심해졌다. 사람들이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는 데 쓰는 시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국가별로는 북유럽과 뉴질랜드, 스위스 국민이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주관적 삶의 만족도에서 10점 만점에 6.1점으로 33개국 중 32위를 기록했다. 올해부터 ..

참살이의꿈 2020.03.25

힘없는 자는 / 박노해

힘없는 자는 용서할 자유마저 없나니 그것은 비굴함이기에 힘없는 자는 화해할 자유마저 없나니 그것은 도피이기에 힘없는 자는 침묵할 자유마저 없나니 그것은 불의의 승인이기에 힘을 기르자 저 강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저 사나운 폭력을 끝끝내 품어 안을 끈질긴 힘, 사랑의 힘을 - 힘없는 자는 / 박노해 지난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인용한 시가 김기림의 '새나라송頌'이다. 이 시에는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라는 구절이 나온다. 대통령 메시지의 핵심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그 의미가 엄중하게 다가온다. 박노해 시인의 이 시 역시 ..

시읽는기쁨 2019.08.17

대한민국人 / 주영헌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원주민이라는 주민등록증도 있습니다. 봄철이면 중국발 황사를 다 함께 호흡합니다. 우리는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월드컵에는 붉은 옷을 입고 함께 큰 함성을 질렀습니다. 올림픽에는 "영미!"라고 같이 외쳤습니다. 당신과 나는 한국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안녕'이라는 말까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까'라는 말도 이해하겠습니다. 주어와 동사와 단어, 그 낱낱의 의미는 이해하겠는데,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목청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하는 모습을 보니 감정의 격함은 알겠는데,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

시읽는기쁨 2019.07.16

자살률 1위

2018년도 OECD 보건 통계가 나왔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다. 여전한 자살률 1위와 건강 만족도 최하위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8명으로 압도적 1위다. OECD 35개국 평균이 11.6명인데 그 두 배가 넘는다. 자살률이 제일 낮은 터키에 비하면 무려 23배에 달한다. 2위와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자살률은 지금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수치다.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1만 명이 훨씬 넘는다. 경제 수준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먹고 살만큼은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삶이 고달픈 사람이 많을까?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유달리 높다. 그만큼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얘기다. 청소년은 성적 스트레스와 가족과의 갈등이 ..

길위의단상 2018.07.13

무릎 꿇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사진 한 장이 가슴을 울린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사진이다. 어제 서울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주민들의 항의로 무산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지적장애인 140명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 설립을 4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이런 소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수학교가 들어선다 하면 주민 반대 데모가 벌어진다. 이 때문에 서울 지역에서는 지난 15년간 공립 특수학교가 한 군데도 생기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서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1만 명이 넘는다. 이중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4천여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통학하는데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다...

참살이의꿈 2017.09.09

잠꼬대 아닌 잠꼬대 /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산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시읽는기쁨 2017.07.08

밖에서 본 한국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술된 역사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후대의 올바른 역사 해석은 편향된 거품을 얼마나 잘 걷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새 정권 들어 국정 역사교과서 사태가 해결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김기협 선생의 는 우리 역사를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다. 안에서 쓴 한국사는 민족의 역사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미화하려 한다. 이것이 지나치면 국수주의가 된다. 자신을 똑바로 성찰하지 못하면 정신의 절름발이가 된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마찬가지다. ..

읽고본느낌 2017.07.03

망국선언문

연초 경향신문에 손아람 작가의 '망국선언문'이 실렸다. '망국(亡國)'이 아닌 '망국(望國)'이다. 어둠이 짙어야 별이 더욱 빛나듯, 절망은 희망을 싹트게 하는 배경이다. 탄식이 깊어야 세상은 바뀐다. 늦게나마 글을 옮긴다. 망국(望國)선언문 어려운 한 해 보내셨습니다.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올해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곳을 지옥으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미래의 몫으로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는 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종말을 확신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상상력은 최악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등 뒤로 멀어지는 모든 시점을 우리는 그나마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과거와 작별하고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우리는 조만간 이 순간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연초마다 마음을 들뜨게 하던 나긋하..

길위의단상 2016.01.28

나의 한국현대사

제주도에서 저녁 시간에 틈틈이 읽은 책이다. 유시민 작가가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의 한국 현대사를 본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를 접할 수 있다. 같은 1950년대에 태어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유 작가의 유려한 문장 덕분인 건 물론이다. 책은 다음과 같은 여섯 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 역사의 지층을 가로지르다: 1959년과 2014년의 대한민국 제2장 4.19와 5.16: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제3장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제4장 한국형 민주화: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혁명 제5장 사회문화의 급진적 변화: 단색의 병영에서 다양성의 광장으로 제6장 남북관계 70..

읽고본느낌 2016.01.17

대한민국은 왜?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는 집단은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 쪽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을 부각해 자기부정적 관점을 심어주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독재자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리고 진실은 늘 불편한 법이다. 김동춘 선생이 쓴 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찾아본 책이다. 집권 세력이 볼 때는 매우 마땅찮아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는 강자는 무한대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반면, 약자는 비인적인 삶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나 알 권리보다 권력자의 체면이, 국민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이 중요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된다.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라고 지은이는 묻는다. 8.1..

읽고본느낌 2016.01.03

사람도 다 썩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어느 사진작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이 분은 서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국화빵 장사를 하며 지내고 있다. 기자에게 한 말 중 뼈 아팠던 게, "한국은 나라만 썩은 게 아니라 사람도 다 썩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었다. 이 분은 일본에서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받은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고 한다. 주변에서 한국으로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20년 만에 귀국했다. 그러나 실제 마주친 한국은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었다. 일본은 가지지 못한 자의 설움이 한국보다 훨씬 덜하다고 한다. 월세 산다고 서럽지 않다. 주인에게 비굴할 일도 없다. "모두가 썩었다"는 표현이 충격적으로 들렸다. 썩은 물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썩은 줄을 모르는 법이다...

참살이의꿈 2015.12.26

헬조선인 이유

올해의 유행어에 '헬조선'도 후보에 오를 만하다. 한국에서 살기가 지옥 같다는 데서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말이다. 어릴 때는 입시 경쟁에, 대학에서는 스펙 쌓기 바쁘고, 졸업해도 취직하기 어렵고, 그나마 직장인이 되어도 야근이 다반사다. 집 하나 장만하는 데 평생을 보내고, 돈 버느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는 현실을 '헬조선'이라는 말이 담고 있다. 돈 없고 빽 없는 보통의 청년이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갑갑한 나라다.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우리나라가 헬조선인 이유 60가지를 TV 뉴스 화면을 캡처해서 정리했다. 자막을 정리하면 이렇다. - 한국, GDP 대비 복지 비율 OECD 최하위 - 아이들 '삶의 질' 꼴찌 - 직장인 유급휴가 한국이 '꼴찌' - 한국 아동복지 지출 OECD 최하..

길위의단상 2015.12.15

남자의 탄생

한 개인의 성장사를 통해 한국 남자의 의식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의 유소년기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인성 형성 과정이 펼쳐진다. 부제가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다. 요사이 젊은 남자는 그렇지 않지만 전통적 한국 남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똑같이 닮으면서 그 과정이 반복된다. 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역할도 더해져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된다. 지은이는 한국 남자의 특징을 '동굴 속 황제'라 부른다. 한국의 가정에는 아버지 공간과 어머니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과 하의 위계질서로 구분된 공간은 아이의 무의식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어머니의 배타적인 사랑..

읽고본느낌 2015.11.11

함석헌 읽기(11) - 세계의 한길 위에서

11권은 함석헌 선생이 외국 여행을 하는 중에 쓴 글들이다. 선생은 세 번 외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마지막이 1979년이었으니 연세가 여든이었을 때였다. 수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교민을 만나고 강연을 했으니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혁명을 꿈꾸고, 지구의 미래를 사색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선생은 여든이라는 나이지만 정신은 청춘이었다. 외국에서 쓴 글에는 도리어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적다. 그것은 선생의 여행 목적이 주로 퀘이커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하는 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에 서구와 비교하여 편협한 우리 국민성을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의 가장 나쁜 버릇이 당파 싸움이요, 가장 결점이 생각이 좁은 것이라는 걸 외..

읽고본느낌 2013.04.28

한국인의 마음

유엔 인종차별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내용이 보도 되었다. 단일민족의 강조가 이주노동자와 주로 동남아에서 온 결혼여성 등에 대한 인권 침해의 요인이된다는 것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한 사회의 구성원을 결집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유연성을 잃고 이데올로기화 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민족주의는 히틀러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민족 의식이 배타성을 띄기 시작할 때 위험해진다. 인간 유전자 안에는 편을 가르는 본능이 숨어있는지 지금은 종파주의가 이곳저곳에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한 동네가 되어 가는 흐름에서 이제 민족주의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유엔이 우리나라의 단일민족 의식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

길위의단상 2007.08.21

대한민국은 공사중

대한민국은 공사중이다. 도시나 농촌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땅을 파고 산을 뚫고 시멘트 구조물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젠 깊은 산 속 골짜기까지도 굴삭기가 들어가 길을 내고 터를 닦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경치가 좋은 곳이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공사가 목적이 아니라 마치 건설 장비를 놀리지 않기 위하여 일을 꾸미고 있는 느낌마저 있다. 최근에 읽은 신문에서는 나라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제일 효과가 있다면서 대규모 공사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설 공사라는 것이 자연을 망치고 아름다움을 깨뜨리게 되니 문제가 있다. 애꿎은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들판이 시멘트로 덮혀진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자동..

참살이의꿈 200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