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 31

생명이 자본이다

'생명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생명'과 '자본주의'라는 두 단어가 어떻게 연결될까? 지난 정권에서 만든 '녹색성장'이라는 이상한 용어와 닮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는 이어령 선생의 최근작이다. 선생은 자본주의의 황혼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제하에 생명 중심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제창한다. 생명자본주의 사상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생명애(biophilia), 장소애(topophilia), 창조애(neophilia)의 세 가지 사랑을 중심 테마로 삼고 생명자본주의를 인문학적 입장에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선생은 일본의 사례를 든다. 일본에서 태풍이 불었을 때 과수원의 사과가 90퍼센트 가량 떨어졌다. 일 년 농사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떨..

읽고본느낌 2014.04.29

생때같다

사고를 보도하는 TV 화면 자막에 '생떼같은 자식'이라는 글자가 뜬 걸 보았다. '생떼'는 잘못된 표기로 '생때'로 써야 한다. '생때같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이) 몸이 건강하고 튼튼하여 병이 없다'로 적혀 있다. 사전에는 '생때'가 구체적으로 뭔지 설명이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제일 그럴듯한 해석이 '생때'를 '살아있는 대나무'로 보는 것이다. '생[生]'은 '살아있다'로 의미가 분명하고, '때'는 '대[竹]'가 된소리로 변한 것이다. 옛날 조선어사전에는 '생대같다'는 단어도 수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생대'가 '생때'로 경음화 되었다. 대나무는 성장이 빨라 하루에 수십 cm씩 자란다. 쑥쑥 성장하는 건강한 자식을 대나무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그러므로 '생때같은 자식'은 싱싱..

길위의단상 2014.04.28

논어[80]

선생님 말씀하시다. "잘났구나! 회야말로. 한 그릇 밥, 한 종지 물로 움막살이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련만, 회는 즐거운 모습에 변함이 없으니, 잘났구나! 회야말로."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 雍也 6 보통 사람에게 가난이 닥치면 괴로움[憂]에 힘들어하지만, 안회는 즐거움[樂]을 변치 않았다. 물질적인 부(富)와 빈(貧)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다. 도가(道家)식으로 말하면 안회는 무위(無爲)의 삶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에서는 마음공부를 공자와 안회의 대화를 통해 설명한다. 장자의 핵심 사상이 유가의 대표적인 두 인물을 등장시켜 설명하는 게 흥미로운데, 허자심재(虛者心齋), 비우는 ..

삶의나침반 2014.04.27

화학 선생님 / 정양

중간고사 화학 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O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 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 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혀 그 점수가 영 믿기지 않았지만 백발 성성한 지금도 이 세상에는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다는 걸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 화학 선생님 / 정양 큰 비극 가운데서도 중고등학교는 지금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 시를 보니 중학생이었을 때 농..

시읽는기쁨 2014.04.25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이다.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낮은 이성의 시간이고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시간이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잃어버린 밤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임을 믿기에 이런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곧 인문 정신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는 한겨레신문에 실었던 칼럼을 중심으로 선생이 쓴 글을 모았다. 진보적 지식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시사성 짙은 글들이 많은데 현실에 비판적이지만 과하지 않고 따스하다. 좀 더 나은 세상,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그리움이 담겨 있다.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개발 시대에 들기 전의 농어촌은 인간다운 삶의 원형으로 ..

읽고본느낌 2014.04.24

타인의 고통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다. 남의 심장에 대못 박힌 것보다 내 손톱 밑에 든 가시가 더 아프다. 만약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낀다면 비탄과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극적 참상이 반복될 리가 없다. 인간의 고통은 철저히 개별적이고 실존적이다.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함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겉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할 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할 수 있는 건 신(神)의 영역이다.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한 것에서 예수의 신성이 빛난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없다. 당신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당신 심정을 안다고 하는 건 오만이다.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건 값싼 눈물이 아..

참살이의꿈 2014.04.23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방귀 뀐 놈이 오히려 성내는구나. 저 울그락불그락 화내는 꼴 좀 보소. 죄 없는 공중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란 말인가. 제 평생 한 짓이 그러한 줄 알겠구나. 네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티를 책잡아 오두방정을 떠는구나. 네 이놈, 그러면 못쓰느니라. 놀부를 닮아서 너도 오장칠부더냐. 아무리 제 발이 저려도 그렇지 참 꼴불견이라, 생트집 잡는 네 꼬락서니를 보거라. 그런다고 네 허물이 덮어질 줄 아느냐.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 아서라, 이젠 나잇값을 할 만도 하렷다.

길위의단상 2014.04.22

논어[79]

계강자가 묻기를 "중유에게는 정사를 맡겨도 좋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는 배짱이 있으니 정사를 맡겨도 문제가 없습니다." "사에게 정사를 맡겨도 좋을까요?" "사는 사리에 통달하니 정사를 맡겨도 문제가 없습니다." "구에게 정사를 맡겨도 좋을까요?" "구는 재주가 뛰어나니 정사를 맡겨도 문제가 없습니다." 季康子問 仲由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果 於從政乎何有 曰 賜也可使從政也與 曰 賜也達 於從政乎何有 曰 求也可使從政也與 曰 求也藝 於從政乎何有 - 雍也 5 여기에 등장하는 중유[자로], 사[자공], 구[염유]는 공자 문하생 중에서도 수제자에 속한다. 권력자인 계강자의 질문에 공자는 모두가 자질이 뛰어나니 정사를 맡겨도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공자의 말에는 각 제자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자로는..

삶의나침반 2014.04.21

허난설헌 묘

허난설헌 묘가 경기도 광주에 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난설헌을 떠올리면 늘 애잔하다. 시대와 맞지 못했던 인간의 슬픈 삶을 그는 보여준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라고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수많은 난설헌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다. 행복하고 자유로웠던 초희의 어린 시절은 열다섯에 시집을 가면서 180도로 변했다. 똑똑하고 자부심 강한 여성에게 가부장적 인습의 굴레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시집 입장에서는 반대로 까칠한 며느리와 아내가 탐탁치 않았을지 모른다. 20세기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난설헌이 16세기 조선의 답답한 분위기를 견디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묘 앞 안내문에는 그녀의 일생이 이렇게 적혀 있다. "조선 시대 선조 때의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

사진속일상 2014.04.20

사람의 몸값 / 임보

금이나 은은 兩으로 따지고 돼지나 소는 斤으로 따진다 사람의 몸값은 일하는 능력으로 따지는데 日給 몇 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年俸 몇 천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한푼의 동전에 고개를 숙이는 거지도 있고 몇 억의 광고료에 얼굴을 파는 배우도 있다 그대의 몸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은가? 그대가 만일 몇백의 돈에 움직였다면 몇백 미만이오 몇억의 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몇억 이상이다 세상에는 동장의 자리 하나에도 급급해하는 자가 있고 재상의 자리로도 움직일 수 없는 이도 있다 사람의 몸값은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가 결정한다 - 사람의 몸값 / 임보 얼마 전에 모 그룹 회장이 일당 5억짜리 노역 판결을 받았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벌금 254억 원을 내지 못할 경우 노역형에..

시읽는기쁨 2014.04.19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한밤중에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머리가 복잡해졌다. 요사이는 '산다는 게 뭔지'를 중얼거리는 일이 잦았다. 머리맡에 놓인 책을 들어 깜깜한 시간을 때웠다. 에 나오는 글로 위안되는 바가 컸다. "역경에 부딪쳤을 때 '내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는가?' 하고 의기소침할 일은 아니다. 그런 때일수록 '이제야 성숙할 기회를 맞았구나' 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가 곧 자기의 미래를 좌우한다. 결정권은 바로 지금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기에 자기를 돌아보라 하는 것이니 현실의 고(苦)나 인과(因果) 등은 그대로 수련 과정인 셈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치면 오히려 나쁜 공기와 먼지 그리고 불결한 것들을 다 청소시켜주니, 현실의 고..

참살이의꿈 2014.04.18

안나와디의 아이들

책을 읽는 내내 슬프고 우울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떠나지 않았다. 안나와디는 인도 뭄바이 공항 옆에 있는 빈민촌이다. 저자인 캐서린 부(Katherine Boo)는 4년 동안 안나와디 주민들과 함께하며 가난한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허구가 아닌 실제 일어난 사건을 생생하게 그렸다. 글에 나오는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공항과 호텔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주워서 연명한다. 그마저도 경쟁이 되어서 살아가자면 도둑질을 해야 한다. 고물을 훔치던 칼루는 불량배들에게 맞아 길거리에서 죽는다. 수닐은 먹지 못해 키가 크지 않는다. 미나는 부모와 오빠들에게 맞다가 자살한다. 압둘은 쓰레기를 분류해서 그나마 안정된 삶을 살지만 파티마 분신 사건에 연루되어 가정이 풍비박산 된다. 소송 과..

읽고본느낌 2014.04.16

거돈사지 민들레

거돈사지 텅 빈 절터에 드문드문 민들레가 피어 있다. 적막하고 쓸쓸한 풍경에 샛노란 민들레 색깔이 선명하다. 아마 이곳은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 틈바구니를 뚫고 태어난 생명이다. 키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급하게 꽃부터 피어올린 것 같다. 폐사지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상한 자리지만 생명에게는 의당 꽃 피워야 할 자리일 뿐이다. 큰 느티나무를 보러 갔다가 키 작은 민들레에도 마음을 앗겼다.

꽃들의향기 2014.04.15

거돈사지 느티나무

천 년의 거목이다.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다.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고 고려 초기에 번창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넓은 절터에는 삼층석탑만이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다. 폐사지 입구 축대 가장자리에 이 느티나무가 있다. 예전에는 절을 찾아오는 순례객을 제일 먼저 맞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이 무너진 지 400년이 넘었다. 수많은 인간의 사연들이 허공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본 느티나무의 심정은 어떠할까. 느티나무 옆에 서 있으면 덧없는 생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흥하고 쇠하는 만물의 이치를 온몸으로 터득한 성자처럼 느티나무는 묵묵히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4.04.15

고향집 봄 화단

고향 집 화단에 봄꽃이 곱게 피었다. 꽃을 가꾸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하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 어머니는 동물은 별로인데 식물 기르기는 무척 좋아하신다. 시골 생활이 적적하다고 강아지를 갖다 드려도 몇 달 못 키우고 남에게 줘 버리신다. 대신 농사짓기나 화단 가꾸기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장롱에 버려져 있던 9년 전에 산 카메라 니콘 D70을 가지고 이 꽃사진을 찍어 보았다. D70은 옛날 기계식 필름카메라처럼 셔터를 누르면 미러가 움직이는 소리가 '철커덕'하는 게 일품이다.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사진 찍는 맛만은 그만이다. 앞으로 자주 사용해야겠다. 명자꽃 할미꽃 민들레 꽃잔디 튜울립과 앵초

꽃들의향기 2014.04.14

정도전 생가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출생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주시 구학공원에 있는 삼판서고택은 생가로 추정되는 곳이다.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세 분의 판서가 연이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첫 주인은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 1305~1366)으로 정도전의 부친이다. 정운경은 사위인 공조판서 황유정(黃有定, 1343~?)에게, 황유정은 다시 사위인 김소량에게 이 고택을 물려주었는데, 김소량의 아들 김담(金淡, 1416~1464)이 이조판서에 올랐다. 삼판서고택은 원래 영주동 431번지에 있었으나 1961년 대홍수로 훼손되어 철거되었다가 2008년에 서천을 내려다보는 이곳에 복원되었다. 정면 6칸, 측면 7칸의 팔작지붕 및 맞배지붕의 ㅁ자 ..

사진속일상 2014.04.12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 고재종

고들빼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 뿌리고 도라지는 잔설 있을 때 심거야 썩지 않는다네 진안장 귀퉁이 주재순 할매의 씨앗가게 콩씨 상추씨 아주까리씨며 참깨씨랑 요모조모 다 있는 씨오쟁이마다 쌔근거리는 씨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어야 싹이 튼다네 흙이 보슬보슬해져야 간지럼도 태우고 보슬비도 와서 촉촉해져야 쑥쑥 자란다네 세상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다 씨가 있어야 나온다는 할매 말에 금세 수숫잎이 일렁이고 해바라기가 돌고 배추가 깍짓동만 해지고 참깨가 은종을 울리는 장터, 이제 스스로는 무얼 더 생산할 수도 없이 유복자가 해준 틀니에 등은 온통 굽었는데 나는 작은 게 좋아요, 씨앗들이 다 작잖아, 요것 한 줌이면 식구들 배불리 먹인다는 할매는 길 걸을 때면 발길 닿은 데마다 씨오쟁이를 열어..

시읽는기쁨 2014.04.12

논어[78]

선생님 말씀하시다. "회는 석 달을 두고도 사람다운 마음씨를 변함이 없건만, 다른 사람들이야 겨우 하루 동안 또는 한달 동안 될까 말까지." 子曰 回也其心 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 雍也 4 공자의 안회 사랑은 각별하다. 다른 제자들이 시기할 만도 하건만 그런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안회는 그만큼 특별한 제자였다. 석 달 동안 '사람다운' 언행을 지켰다는 것은 이미 인(仁)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억지로 지켜보려고 여러 날 애쓰는 다른 제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늘로부터 성인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안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공자도 자신의 학문과 도(道)를 계승할 제자로 안회를 마음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회는 안타깝게도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스승의 슬픔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삶의나침반 2014.04.11

안산 꽃길

안산 자락길이 꽃길이 되었다. 예년보다 열흘 넘게 빨리 개화하면서 서울 벚꽃은 절정을 지나고 있다. 여의도를 비롯한 벚꽃 축제도 앞당겨 치렀다. 일찍 찾아온 봄이니 쉬이 갈 것이다. 생명이 있기에 유한하고, 유한한 것은 덧없다. 그중에서도 아름다움은 한 순간이다. 봄 꽃길을 걸으며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루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꽃들의향기 2014.04.08

9단의 자살골

지난 4월 3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9기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보기 힘든 돌발사건이 일어났다. 박지은 9단[흑]과 김채영 초단[백]이 1:1이 된 가운데 벌어진 마지막 세 번째 대국이었다. 바둑은 박지은 9단의 승리로 굳어진 가운데 몇 군데만 메우면 종국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박지은 9단이 무심결에 우상귀의 흑돌을 이은 것이다. 바둑 초보도 알 수 있는, 놓아서는 안 되는 자충수였다. 김채영 초단은 공짜로 들어온 흑돌을 들어냈고 바둑은 역전되었다. 뒤늦게 착각을 알아차린 박지은 9단은 망연자실했다. 큰 시합에서 9단이 저지른 충격의 자살골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마추어처럼 온정에 기대거나 물릴 수 없다. 바둑 한 수의 치열함을 조치훈 9단의 '목숨을 걸고 둔다..

길위의단상 2014.04.08

생각이 나서

쓸쓸하지만 따뜻한 글이다. 늦가을 창가에 외로이 앉아 달콤한 커피향을 음미하는 느낌이 난다. 지은이 특유의 감성이 반짝인다. 그래도 생을 긍정하는 마음이 곱다. 황경신의 에서 눈길 멈춘 곳을 옮겨 본다. 흑백사진 흑백사진을 찍으려면 흑백필름을 넣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사진을 찍은 후에, 음, 이 사진은 컬러보다 흑백쪽이 좋겠어, 하고 수정을 가하여 흑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름을 끼울 때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끼운 필름을 중간에 교체하기는 어려우니 그때부터 카메랑 담기는 모든 풍경과 인물은 흑백이 된다. 가끔 이런 장면은 컬러로 찍어야만 그 맛이 사는데, 싶기도 하지만 과감하게 남은 필름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은 사진이 ..

읽고본느낌 2014.04.07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한 갑자가 돌아가도록 살아보니 세상일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겠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는 젊은 시절의 호기였을 뿐이었다. 긍정보다는 체념의 철학이 세상살이에는 더 어울린다. 단추 하나 채우거나 옷 한 벌 입기도 힘든데 인생살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잘못 채운 단..

시읽는기쁨 2014.04.04

논어[77]

원사가 사무장이 되어 받는 봉급이 900이라 사양한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럴 것 없지. 네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되지 않나!"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母 以與爾隣里鄕黨乎 - 雍也 3 원사(原思)는 공자 제자인 원헌(原憲)으로 자가 자사(子思)다. 안회와 더불어 청빈을 실천한 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원사가 관직을 얻고 봉급을 받았는데 이마저도 사양했다. 공자는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말한다. 정당한 보수는 받은 뒤에 네 이웃을 위해 쓰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봉급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씨는 갸륵하다. 그러나 임의로 나라의 정해진 규정을 따르지 않는 건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행위다. 공자를 보수주의자로 본다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자는 아무리 좋은 선행이라도 드러나..

삶의나침반 2014.04.04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

얼마 전에 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리포터가 마이크를 갖다 대며 이렇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그런데 갑자기 행복에 대해 물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방송용 카메라가 노려보고 있으니 더 그랬는지 모른다. 결국 머뭇거리다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행복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행복에 관해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난감했다. 인터뷰 자리를 떠나서도,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명확한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이 한 행복 이야기는 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과거에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 또는 불행하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행..

참살이의꿈 2014.04.03

운길산 봄꽃

운길산 세정사(世淨寺) 계곡으로 봄꽃을 보러 갔다. 넓고 밀도 높은 꽃밭이 펼쳐졌고, 다양한 꽃이 피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꿩의바람꽃이 제일 많았다. 계곡 위쪽으로는 얼레지 군락이 있었다. 개체 수는 많았지만 아쉽게도 볼품은 10% 부족했다. 계곡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게 어려웠다. 얼레지 꿩의바람꽃 괭이눈 큰괭이밥 산괴불주머니 현호색 ? 피나물 중의무릇

꽃들의향기 2014.04.02

아리랑

님 웨일즈가 쓴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1905~1938, 본명 張志樂)의 일대기다.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김산은 삼일운동의 영향을 받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 상하이에서 항일 급진주의 그룹과 접촉하며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 1921년경에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장 독립 투쟁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1927년의 광동 봉기에 참여하는 등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두 차례나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김산은 1938년에 트로츠키 분파주의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김산의 생애는 1937년에 옌안에 잠입해서 김산과 면담을 한 님 웨일즈에 의해 알려졌다. 이 책을 읽으며 일제 강점기 때 조국 해방을 위해..

읽고본느낌 2014.04.02

올괴불나무꽃

생강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꽃이 핀다. 그러하므로 아마도 숲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올괴불나무꽃은 특이하게 생겼다. 진홍빛 수술은 가녀린 여인네가 진한 립스틱을 바른 것 같다. 어찌 보면 팔랑거리는 나비가 매달려 있는 것도 같다. 올괴불나무꽃을 처음 본 건 3년 전 단임골에서였다. 그 뒤에도 이른 봄 숲길을 걷다 보면 가끔 만났다.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데 눈에 들어오면, 아 꽃이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꽃이 지면 빨간 열매가 두 개 달린다. 봄 산에서 보물찾기하는 것처럼 두리번거리게 되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