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 30

동네 공원 벚꽃과 옛 친구

양재에 나갔다 오는 길에 동네 공원에 들러보았다. 어느새 벚꽃이 활짝 폈다. 올해는 봄꽃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빠르다더니 벚꽃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남도에 상륙한 봄기운이 고속열차를 타고 북상했다. 지구의 호흡이 가빠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저녁에는 56년 만에 연락이 된 옛 친구 J와 통화를 했다. J와는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였다. 중학생 때는 같은 반이 아니어서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지만 하굣길이 같아서 가끔 동행했다. 걷는 길이 한 시간 넘게 걸렸으니 그 사이에 장난도 치고 많은 얘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J는 그때부터 기독교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하는 얘기를 신기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J가 무척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 뒤에 J는 목사가 되었고 국내에서 목회를 하다가 그리..

사진속일상 2023.03.31

경주, 천년의 여운

지난달 손주를 데리고 경주에 갔을 때 경주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발견하고 나 스스로 놀랐다. 손주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마주하고도 한 마디 해 주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은 역사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임찬웅 선생이 경주에 대해서 쓴 책이다. 경주에 대한 상식 수준의 지식이라고 얻고자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와 의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의 역사와 경주에 존재하는 고분, 사찰 등 유적지를 설명한다. 다시 경주에 간다면 손주에게 조금은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망록 겸해서 몇 가지 사실을 간추리면, - '천년 왕국'이라 불리는 신라는 정확히는 992년(BC 57 ~ AD 935)이다. - 거서간,..

읽고본느낌 2023.03.30

봄꽃과 동무하며 예빈산에 오르다

어느 산에 갈까 망설였는데 문득 예봉산 계곡이 떠올랐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산행을 하면서 꽃도 보면 좋을 것 아닌가. 자세히 살핀 것은 아니지만 예봉산과 예빈산 사이에 있는 계곡에는 산에서 피는 봄꽃이 많다. 작년에는 노루귀도 만났다. 예빈산의 명물은 이 소나무다. 예빈산에는 능선을 따라 자라는 멋진 적송들이 볼 만하다. 예빈산 정상은 수도권에서 전망이 제일 빼어난 산이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여기서 찍은 일출과 일몰 광경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비슷한 높이의 직녀봉과 견우봉이 나란히 있다. 이날은 시야가 흐려서 조망이 별로였다. 북쪽으로는 예봉산이 보인다. 꼭대기에 강우 레이더를 갖춘 기상관측소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곱 군데(임진강, 예봉산, 가리산, 소백산, 비슬산, 서대산, 모후산)의 강우 ..

사진속일상 2023.03.29

아버지의 팔자 / 김나영

'아들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다'던 아버지 그 좋은 팔자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놓고 사돈에 육촌 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큰 홀 빌려서 사흘 밤낮 잔치를 베푸시네 배포 큰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새 옷도 한 벌씩 척척 사주고 아버지도 백만 원이 넘는 비싼 옷으로 쫘-악 빼 입으시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리무진까지 타시고 온 식구들 대절버스에 줄줄이 태우고 수원 찍고 이천으로 꽃구경까지 시켜 주시네 간도 크셔라 우리 아버지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을 삼 일 만에 펑펑 다 써 버리고 우리들 볼 낯이 없었던지 돌아오시질 않네 잔치는 끝났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 팔자 다시 고쳤나 보네 -..

시읽는기쁨 2023.03.27

마르코복음[75]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제관의 하녀 하나가 오더니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유심히 살피며 "당신도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하였다. 그는 부인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못 알아듣겠소." 그리고 바깥 뜰로 나가는데, 그때 닭이 울었다. 하녀가 그를 보고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저 사람은 그들과 한패입니다" 하고 다시 말하자 베드로는 다시 부인했다. 잠시 뒤, 곁에 있던 이들이 또 베드로를 보고 "정말 한패로구려.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요" 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모르오" 하였다. 바로 그때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그대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하신 말씀..

삶의나침반 2023.03.26

봄 물드는 탄천

분당 토요 모임에 가는 길에 탄천에 들렀다. 개나리와 목련은 활짝 폈고, 벚꽃도 피기 시작했는데 만개한 벚나무도 있었다. 봄소식이 고속 KTX를 타고 북상하고 있는 듯하다. '소곤소곤 산책길'에는 미국제비꽃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의 벚꽃도 오늘 개화를 했다. 예년에 비해 열흘 가량 빠른 것 같다. 지구온난화 탓이 아닌가 싶어 꽃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하지는 않다. 그만큼 3월 기온이 높았다. 다음 주면 수도권에서도 벚꽃이 만개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야외에서는 반팔 차림을 한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씩씩한 새인 직박구리는 벚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가지 저 가지로 힘차게 날아다니면서 벚꽃을 쪼아먹는다. 언제 죽게 될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늦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S가 말했다...

사진속일상 2023.03.25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최근 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각국 정부에 보내는 보고서를 채택했는데 내용이 사뭇 심각하다. 앞으로 10년 안에 전 세계가 적극적으로 기후 행동에 나서 않으면 기후 위기 임계점을 넘어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촌은 양동이에 물이 가득 차 한 방울의 물만 떨어져도 기후 위기라는 물이 넘쳐버리는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현재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은 10년 전보다 12% 증가했고, 이런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지구 기온이 1.5℃ 상승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과거 100년 동안 1.1℃ 상승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이미 해수면 상승이나 극지의 빙상 붕괴, 생물 다양성의 손실 등 일부 변화는 불가피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는 기후..

읽고본느낌 2023.03.24

위기의 민주주의

2019년에 제작된 브라질 정치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넷플릭스에 올려져 있다. 2002년에 룰라가 군사 독재를 물아내고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때로부터,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미가 탄핵되고 부패 스캔들로 룰라가 구속된 2018년의 상황까지를 다룬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겹쳐보이면서 먼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다. 브라질은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세 번째로 당선되었지만 극우인 보우소나루와는 1.8% 차이였다. 보우소나루의 극력 지지층에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최근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식이면 룰라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파 기득권층이 다시 어떤 음모를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 구조상 안정을 찾기는 쉽지..

읽고본느낌 2023.03.23

양평 청계산에 오르다

'로쿠스 솔루스(Locus Solus)'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인데 우리말로 풀면 '외딴곳' '은밀한 장소' 쯤 된다. 사람들에게서 떨어진 나만의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뒷산에 오를 때면 앉아서 쉬는 장소가 있는데, 나에게는 그곳이 '로쿠스 솔루스'다. 더 넓게 해석하면 산 자체가 '로쿠스 솔루스'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양평에 있는 청계산을 찾았다. 국수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지다가 형제봉에 오를 때에 거친 숨을 쉬어야 한다. 형제봉은 청계산에 오르는 중간 지점에 있다. 형제봉에서는 아래로 남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새로 건설되는 도로는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다. 미세먼지가 있어 시야가 좋지 못했다. 소나무 위에 플라스틱 동물 모형을 올려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산에 오는 손주..

사진속일상 2023.03.22

가슴에 박힌 가시들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가 일부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복수극에 통쾌해하는 것 같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60년대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거의 없었다. 힘깨나 쓰는 치들은 저희들끼리 놀았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학폭이나 왕따라는 못된 문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학폭과 함께 교폭(교사 폭력)에 대한 비난 글도 많이 올라온다. 그 시절에 교사한테서 억울한 체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중에는 교사 실명을 공개하며 적의를 드러내는 글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당시의 교사들은 상당수가 처벌 대상이 되고 감옥에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매가 아닌 교사의 감정을 못 이긴 채 어린..

참살이의꿈 2023.03.21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지난 주말에 손주가 다녀갔다. 손주가 지하철을 탔는데 한 할아버지가 귀엽다면서 이것저것 말을 시키고 용돈까지 만 원을 주더라고 자랑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이 공부 열심히 해서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더란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하면서 같이 웃었다. 구세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1등주의의 세뇌를 받으며 살아왔다. 다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지만 화석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삶에서..

시읽는기쁨 2023.03.20

사람들은 왜 사이비에 빠질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인 '나는 신이다'가 연일 화제다. 종교를 내세운 집단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동시에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사악한 교주나 교리에 끌려 신도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자연스레 들게 된다. 먼저 이단과 사이비는 구별해야 한다. 이단은 경전을 정통 교단의 가르침과 다르게 해석하는 집단이다. 지금의 기독도교 초창기에는 이단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초기 기독교회는 유대교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스데반은 유대인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였다. 개신교가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가톨릭계로부터 이단시되었다. 그러므로 이단이라는 표현보다는 비주류라고 불러야 ..

길위의단상 2023.03.19

괭이눈 핀 뒷산

뒷산에서 가장 일찍 피는 풀꽃은 괭이눈(흰털괭이눈)이다. 올해는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는 빠른 것 같다. 3월 중순인데 벌써 앙증맞은 노란 꽃이 피었다. 낮 기온은 15도까지 올라서 완연한 봄날씨다. 오전에 뒷산을 올라갔다 왔다. 봄기운이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는 이미 제비꽃, 꽃다지, 냉이꽃, 개불알풀꽃 등이 피어났다. 조금 더 있으면 봄맞이꽃도 보일 것이다. 내 곁에 성큼 다가온 봄에 어리둥절하다. 뒷산에는 생강나무가 많다. 진달래는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어치를 자주 만났다. 지저귀는 소리가 특이해서 귀여겨들었다. 건너편 산자락을 따라 서울-세종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자꾸 연기되더니 내년 중반이 되어야 개통할 수 있다고 한다. 길이 열리면 북쪽으로는 포..

사진속일상 2023.03.18

마르코복음[74]

그들은 예수를 대제관에게 끌고 갔는데, 모든 대제관과 원로와 율사들이 모여 왔다. 베드로는 멀찍이서 뒤따라와 대제관 저택 안뜰에까지 들어가서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대제관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분께 불리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불리한 거짓 증언을 했지만,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몇 사람이 일어나 불리한 증언을 했다. "우리가 들었는데, 이자가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어버리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말합디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 역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대제관이 한가운데 일어나 물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이 사람들이 얼마나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소?" 그러나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시며 아무 대답도 하..

삶의나침반 2023.03.17

새와 사람

지은이인 최종수 선생은 생태사진가로 새 사진 촬영만 아니라 새와 사람이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분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 이야기와 새들과 친해지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고 있다. 새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새들의 정원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실제로 지은이가 만든 정원에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한 기록이 책에 실려 있다. 넓을 필요가 없이 작은 버드 피딩이라도 괜찮다. 특히 겨울철에는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새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 만약 내가 정원이 있는 집에 산다면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버드 피딩이다. 선생은 전문 사진작가이니만치 에는 멋진 새 사진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500여 종의 새를 관찰할 수 있다는데 내가 직접 눈..

읽고본느낌 2023.03.16

2023년 첫 등산(검단산)

올 들어 첫 등산을 했다. 윗배알미에서 검단산에 오르는 코스였다. 얼음 풀린 산 계곡에서 명랑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좋았다. 이 코스는 계곡과 능선길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어 산행의 첫 번째 선택지다. 오르막 경사도 급하지 않다. 검단산은 수도권의 인기 산행지이지만 윗배알미는 외진 곳이라 평일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붓한 것도 장점이다. 몇 달만의 등산이라 몸이 어떨까 싶었는데 가뿐하게 다녀왔다. 아직 이 정도 산행은 감당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좀 더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적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산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잘 지켜질지는 자신이 없지만. 정상에서는 청년이나 중장년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전과 달라진 변화다. 모든 세대가 산과..

사진속일상 2023.03.15

봉은사 홍매

봉은사 홍매는 서울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피었다. 지금이 만개 상태인데 색깔은 예상보다 선명하지 못했다. 지난 1월의 강추위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봉은사에는 꽃 구경하며 산책하며 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홍매 외에도 백매, 산수유도 활짝 폈고 제비꽃도 눈에 띄었다. 봄한테서 기습 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참새들이 홍매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놀고 있었고, 옆의 나무 높은 곳에서는 흰꼬리수리(?)가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을 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골 학교 운동회의 만국기를 보는 것처럼 설레었다. 사월 초파일 부근에 다시 한번 찾아와봐야겠다. 20여 년 전 봉은사 옆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는 점심을 먹고 나면 봉은사 숲길..

꽃들의향기 2023.03.14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길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

시읽는기쁨 2023.03.13

나는 신이다

MBC가 만들어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총 8부작으로 JMS를 비롯해 네 집단을 다루고 있다. - JMS, 신의 신부들 - 오대양, 32구의 변사체와 신 - 아가동산, 낙원을 찾아서 - 만민중앙교회, 만민의 신이 된 남자 이미 공개되었던 내용들이라 새로운 것은 없지만 공중파에서 담지 못한 수위가 높은 장면 때문에 사람들에게 준 충격이 큰 것 같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한 효과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아한 것은 범죄를 저지른 교주들이 처벌을 받았거나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도들이 따르고 떵떵거리며 산다는 점이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에 비해 뒤처리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단이냐 아니냐는 기존의 정통 교리..

읽고본느낌 2023.03.12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손주가 오면 집안에 하하 호호 웃음꽃이 핀다. 보통 때는 웃을 일이 거의 없다. 한 번도 웃지 않고 지내는 날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파안대소를 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다. 늙어갈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얼굴 표정은 굳어진다. 어른과 어린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한다. 호기심이 가득하니 뭐든지 재미있는 거리를 만들어낸다. 노인이 되면 매사에 심드렁해진다. 마치 딱딱하게 말라가는 고목 등걸 같다. 그래도 자주 웃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아내는 깔깔거리며 소리 내어 웃는다. 예능 프로인 것 같은데 뭐 그런 걸 보느냐고 나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내는 웃을 일이 없는데 이런 거라도 보면서 웃어야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맨날 책을 본들..

길위의단상 2023.03.11

노년의 갈림길

노년이 시작되는 공식적인 나이는 65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65세에 노인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경로 우대증을 받기는 했지만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는 말속에는 노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배어 있는 게 아닐까. 실제 노년이 시작되는 나이는 몇 세 쯤일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일흔을 넘어서니 노년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어봐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인간은 세월 따라 서서히 늙어가겠지만 노인이 되었다고 정서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한순간에 찾아온다. 인생의 과정은 단계가 있고 점프하듯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불연속적인 ..

참살이의꿈 2023.03.10

작은 영장산을 걷다

성남에는 영장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둘 있다. 하나는 복정동에 있는 높이 193m의 작은 영장산이고, 다른 하나는 이매동에 있는 413m의 큰 영장산이다. 오늘은 용두회에서 작은 영장산을 걸었다. 성남 누비길 1코스가 작은 영장산을 지나간다. 우리는 복정역에서 출발하여 영장산을 지나 산성역까지만 걸었다. 길이로는 약 4km가 되고, 쉬엄쉬엄 걷다 보니 두 시간이 약간 더 걸렸다. 봄이 오는 산길은 폭신하고 좋았다. 산기슭에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예년보다 봄꽃 개화 시기가 빠른 것 같다. 산 중턱의 생강나무도 꽃을 피웠고, 매화도 만개 직전이다. 기습 공격하듯 봄이 쳐들어온 느낌이다. 이제 직박구리도 바빠지는 철이 되었다. 쉼터에는 누군가가 나무뿌리로 바람막을 만들어 놓았다. 걷는 중에 이슬비가 살..

사진속일상 2023.03.09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지은이인 정규웅 작가는 1970년대에 중앙일보 문학 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많은 문인들을 취재하고 교유를 가졌다. 이 책은 그 시절 문인들에 얽힌 일화를 전해주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삶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1970년대는 정치적으로 혹독한 계절이었다. 그 시대는 1970년의 '정인숙 피살 사건'과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으로 시작되어 1979년 박정희 피살로 끝을 맺었다. 문학계도 민중문학,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반체제문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시대 현실을 외면하고 정권에 아부하거나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부류도 있었다. 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내 기억에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차지하려고 김동리와 조연현 간에 벌어진 볼썽사나운 싸움도 그중 하나다. 당시에는..

읽고본느낌 2023.03.08

사진기로 상상을 그리다

이젠 AI가 사진까지 창작하는 시대가 되었다. AI가 만든 사진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고, 인간이 찍은 것과 구별이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뛰어나다면 사진가의 영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AI의 사진 기술은 상상할 수 없는 경지까지 발전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인공지능이 상상을 찍을 미래가 바로 코 앞에 닥쳐왔음을 예감한다. 책 내용은 AI나 미래와는 관계가 없다. 는 김석은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가가 된 과정과 본인의 사진관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김 작가는 우리 고장에 거주하고 있어서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다. 작가는 미술을 전공한 후 애니메이션 회사를 경영하다가 늦게 사진가의 길에 들어섰다. 미술에 대한 기본 소양과 재능이 있어선지 사진 분야에서도 금방 두각을 드러낸..

읽고본느낌 2023.03.07

봄이 오는 소리

바둑과 당구로 놀기 위해 분당에 나갔다가 여수천 길가에서 활짝 핀 홍매를 봤다. 봄이 이미 이렇게 가까이 왔구나, 하고 화들짝 놀랐다. 오늘 낮 기온은 20도 가까이 올라서 두껍지 않은 점퍼인데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제 곧 생명의 합창이 봇물 터지듯 뿜어져 나올 것이다. 새들도 짝을 찾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일 때다. 홍매 곁에 있던 이 새 이름은 뭘까? 밀화부리? 집에서 분당을 오갈 때는 버스를 이용하는데 작년부터 전기버스가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내연기관 엔진에 비해 진동이나 소음이 적고 좌석도 넓어서 쾌적하다. 우리 동네 길섶에서는 개불알풀꽃과 냉이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저께 살필 때는 없었는데 어제 오늘 사이에 핀 꽃이다. 나로서는 동네에서 작은 풀꽃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봄의 시작이..

사진속일상 2023.03.06

마르코복음[73]

미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니인 유다가 찾아왔다. 또 그와 함께, 대제관과 율사와 원로들이 보낸 군중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그분을 넘겨줄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붙잡아 단단히 끌고 가시오" 하고 미리 암호를 일러두었다. 그들이 손을 내밀어 예수를 붙잡았다. 이때 거기 있던 이 가운데 하나가 칼을 뽑아 대제관의 종을 쳐서 귓바퀴를 잘라 버렸다. 예수께서 나서서 말씀하셨다. "강도라도 잡으려는 듯이 나를 잡으러 칼과 몽둥이를 들고들 나왔단 말이오? 내가 날마다 당신네 가까이 성전에서 가르쳤으나 나를 붙잡지들 않더니만, 결국 성서 말씀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어느 젊은이는 알몸에 삼베를 두른 채 예수를 따라가..

삶의나침반 2023.03.05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빛 공해를 다룬 책이다. 빛 공해란 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져서 생명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건물의 과도한 조명, 낮보다 더 환한 쇼윈도, 자동차 전조등, 마당과 골목 구석구석을 밝힌 전등으로 도시를 말할 나위도 없고 농촌에서도 어둠을 몰아냈다. 문명은 환한 밤을 만들었다. 환한 밤은 동식물의 생태 변화로 나타났다. 철새들은 본래의 경로에서 이탈했고, 곤충 수십억 마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식물들은 계절 감각을 잃어버렸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빛은 전통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찰과 계몽, 순수의 표상이다. 반면에 어둠은 공포, 범죄, 무지와 연결된다. 하지만 빛의 과잉은 여러 문제점을 낳는다. 이웃간의 분쟁의 소지도 된다. 내가 편리하기 위해 밝힌 빛이 다른..

읽고본느낌 2023.03.04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나그네 / 박목월 이 시가 써진 1940년대 초는 일제의 수탈이 극성을 부릴 시기였다. 감옥에 갇힌 애국지사들도 많았고, 피를 토하듯 나라의 광복을 염원하는 시를 지은 시인들도 있었다. 이육사의 '광야'도 이 시기에 나왔다. 박목월의 '나그네'는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고 너무 낭만주의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밀밭 길' '술 익은 마을' 등 풍요를 상징하는 어구는 당시 민중의 삶을 배반한 느낌마저 든다. 이 시는 학창 시절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한때 나의 애송시였지만 시대 상황과 연관시켜 보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박목월은 1970년대..

카테고리 없음 2023.03.03

봄의 초입에 뒷산 한 바퀴

어느덧 3월이 시작되었다. 남쪽에서 꽃소식이 들려오니 여기도 봄이 멀지 않았다. 뻣뻣해진 몸을 풀 겸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구름이 잔뜩 낀 꾸무룩한 날씨였다. 올라갈 때는 작은 경사에도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이제 산과 가까워지기 위해 기지개를 켤 때가 된 것 같다. 눈으로 보이는 산 풍경은 봄이 아직 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낙엽 사이로 괭이눈 초록잎이 벌써 이만큼 자라 있다. 대지는 이미 생명의 약동으로 꿈틀대고 있다. 나무를 쪼고 있는 오색딱따구리도 만났다. 톡 톡, 하는 경쾌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 역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의 신호다. 지금은 황량하지만 뒷산의 진달래길은 곧 연분홍 꽃으로 장식되리라. 뒷산을 한 바퀴 도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오늘만큼 몸이 무거웠던 적이 없었..

사진속일상 2023.03.02

경안천 원앙

경안천에서 원앙이 사는 곳은 따로 있다.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진 산 아래 응달진 곳이다. 맨눈으로는 원앙인지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다른 오리류가 없는 한적한 곳이다. 원앙은 저희 가족들끼리 독립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것 같다. 원앙 암수가 나란히 노니는 모습을 보면 무척 다정해 보인다.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조류로 삼을 만하다. 모든 생물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원앙 수컷의 화려한 깃털을 보면 자연계에서 선택받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인간의 눈도 호사를 한다. 흰죽지는 옆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일 분주한 것은 청둥오리다. 흰뺨검둥오리와 함께 사람이 옆에 있어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경안천은 아직까지는 사람의 손길이 닿..

사진속일상 202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