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 26

내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그런데 꿈이 영 마뜩잖다. 열에 아홉은 사람들과 다투고 마찰을 겪는 내용이다. 악몽까지는 아니어도 괴롭고 답답한 꿈이다. 잠을 깨고 반추해 보면서 늘 기분이 씁쓸하다. 오늘 새벽 꿈도 그랬다. 옛 직장 동료들과 무슨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누어준 프린트 자료가 있었는데 집에다 두고 나왔다. 내 발표는 두 번째였다. 뒤에 발표하게 되어 있는 동료에게 자료를 빌려달라 했는데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끼던 물건(큰 수정 구슬인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음)은 마당에서 뒹굴고, 대드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며 손찌검까지 했다.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 잠이 깼다. 싸우고 지지고볶고 꾸는 꿈마다 패턴이 비슷하다. 인간관계의..

참살이의꿈 2023.02.28

성지(36) - 살티공소

성지 51. 살티공소(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1866년 병인박해로 뿔뿔이 흩어진 신자들이 인가에서 멀리 떨어지고 산림이 울창했던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정착한 곳이다. 가까운 석남사까지 관원들이 찾아왔으나 이곳은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가서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뜻에서 '살터'라고도 불리웠다 한다. 부산교구에서 가장 오래된 공소다. 살티공소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이곳 출신 순교자인 김영제 베드로와 여동생인 김 아가타의 묘가 있지만 가 보지는 못했다. 공소 앞에 '천주교당(天主敎堂)'이란 쓰인 글씨가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개신교라면 '예배당', 가톨릭이라면 '교당'이라는 명칭이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사진속일상 2023.02.27

양동마을 향나무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 마당에 있는 향나무다. 세조 5년(1459)에 집을 지을 때 함께 심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무는 500년이 넘었다. 우람한 줄기로 봐서는 그 정도의 연륜이 되어 보인다. 나무이 수세도 엄청 싱싱하고 멋지다. 이 종택에는 '서백당(書百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참을 인(忍)자를 매일 백 번씩 쓰며 살겠다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가풍이 장수하고 있는 향나무의 기품과도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나오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명품 향나무다. 경북 기념물 제8호이며 높이가 7m, 동서 폭은 12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23.02.26

손주와 2박3일 여행(2)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의 십리대숲길을 걷고 난 뒤 출렁다리를 보기 위해 대왕암공원으로 갔다. 이번에는 출렁다리가 목적이었으므로 대왕암으로 가는 주 산책로 대신 왼쪽 방향의 출렁다리길로 향했다. 대왕암공원 출렁다리는 길이가 300m 정도로 2021년에 만들어졌다. 전국에 출렁다리 건설 붐이 한창일 시기였다. 출렁다리 부근의 해송 숲도 좋았다. 산책로에서 동백꽃도 만났다. 해안을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대왕암을 경유해서 걷는 길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경주로 돌아오면서 읍천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 들렀으나 주차장에서 거리가 멀어 포기했다. 어제 스페이스 워크를 걸은 뒤 손주는 다리가 아프다 하고, 바닷가 날씨도 바람이 세고 차가웠다. 동해안을 따라 올아오면서 감포에도 들렀다. 손주는 보는 경치보다 조개껍질을..

사진속일상 2023.02.26

손주와 2박3일 여행(1)

어렵게 시간이 났다. 손주가 방학중이어도 함께 여행을 갈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2박 동안 숙소는 경주에 정해두고 포항, 울산 등을 겸하여 돌아보기로 했다. 출발 전에 손주에게 뭘 제일 먹고 싶으냐니까 대뜸 대게를 말한다. 경주로 가는 길에 일차로 영덕에 들렀다. 음식점에서 대게 코스를 시켰는데 세 마리(홍게 포함)에 30만 원이었다. 대게 요리 전후에 회와 탕이 나왔지만 금액에 비해서는 가성비가 떨어졌다. 그래도 손주가 맛나게 먹는 것을 보니 흐뭇했다.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다'는 옛말 그대로였다. 더구나 자식보다 더 귀여운 손주가 아닌가. 영덕 삼사공원 해상산책로에는 살짝 실망하고, 바다를 끼고 내려가다가 장사 해안을 잠깐 산책했다. 바람이 심하게..

사진속일상 2023.02.25

통도사 자장매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있는 홍매다. 1600년대에 통도사의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고 해서 자장매(慈藏梅)라고도 불리운다. 그렇다면 300년이 넘은 매화나무다. 지난 22일에 찾아보았는데 막 만개한 상태였다. 그런데 붉은 색깔이 바랜 듯 선명하지 못해 살짝 아쉬웠다. 부근에 있는 다른 홍매와 차이가 두드러졌다. 어쨌든 딱 알맞은 때에 통도사 자장매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다른 일정에 쫓겨 통도사 홍매만 만나고 돌아선 날이었다.

꽃들의향기 2023.02.24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영화를 먼저 보고 감동을 받아 소설을 찾아 읽었다. 동물행동학을 전공한 델리아 오언스(Delia Owens)가 일흔 살에 쓴 첫 소설로 30주 넘게 아마존 1위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이다. 작가 자신의 야생 동물을 벗 삼아 평생을 보낸 경험이 녹아 있는 소설로, 습지 소녀 카야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안가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습지 지역이다. 카야는 가정폭력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습지에서 고립되어 혼자 살아간다. 고작 일곱 살인 소녀가 살기에는 거친 환경이지만 카야는 자연의 품 안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가정폭력..

읽고본느낌 2023.02.20

마르코복음[72]

그들은 게쎄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으시오" 하시고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려가서 떨고 번민하기 시작하며 말씀하셨다. "내 영혼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입니다. 그대들은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시오." 그러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할 수만 있다면 수난 시간이 비켜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예수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자고 있습니까?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겠습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시오. 영은 간절히 원하..

삶의나침반 2023.02.20

다읽(17) - 동물농장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물들의 삽화가 들어간 책이었다. 완전한 번역본이었다기보다 다이제스트 판이었는지 모른다.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지 않았나 싶다. 50여 년이 넘어 다시 읽어보니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냉소적인 정치 풍자 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반골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사회주의자로서 러시아 혁명에 기대를 걸었으나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 저지른 만행에 환멸을 느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필연으로 예견한 노동자와 인민의 낙원은 한 사람의 권력 야욕 앞에서 무참하게 스러졌다. 그는 부패하는 혁명의 과정을 똑바로 목격했다. 을 통해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혁명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필..

읽고본느낌 2023.02.19

금주 200일

술을 끊거나 줄이는 뜻을 가진 낱말에 단주, 금주, 절주가 있다. 사전에는 단주나 금주 모두 술을 끊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내가 볼 때 둘 사이에는 느낌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단주(斷酒)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술을 끊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몸에 병이 생겨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경우다. 본인의 생각과 관계없이 무조건 술을 끊어야 한다. 금주(禁酒)는 외부적인 압력보다 본인의 의지로 술을 끊는 경우다. 어감상 단주보다 부드럽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시 마시게 될 수도 있다. 절주(節酒)는 술을 절제한다는 뜻이다. 절주만 된다면 굳이 술을 원수 보듯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술을 끊은지 200일이 되었다. 나에게는 단주와 금주 중 금주라는 명칭이 적당할 것..

길위의단상 2023.02.18

늦게 오는 사람 / 이잠

오 촉짜리 전구 같은 사람을 만나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사랑을 하고 싶다 말없이 마주앉아 쪽파를 다듬다 허리 펴고 일어나 절여 놓은 배추 뒤집으러 갔다 오는 사랑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순한 사람을 만나 모양도 뿌리도 없이 물드는 사랑을 하고 싶다 어디 있다 이제 왔냐고 손목 잡아끌어 부평초 흐르는 몸 주저앉히는 이별 없는 사랑 어리숙한 사람끼리 어깨 기대어 졸다 깨다 가물가물 밤새 켜도 닳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 내가 누군지도 까먹고 삶과 죽음도 잊고 처음도 끝도 없어 더는 부족함이 없는 사랑 오 촉짜리 전구 같은 사람을 만나 뜨거워서 데일 일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 살아온 날들 하도 추워서 눈물로 쏟으려 할 때 더듬더듬 온기로 뎁혀 주는 사랑 - 늦게 오는 사람 / 이잠 "가서 30촉짜리 다마 하나..

시읽는기쁨 2023.02.17

염세 철학자의 유쾌한 삶

쇼펜하우어를 염세 철학자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세상의 근본을 고통이라 봤지만 반면에 지혜를 통해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것은 동양 불교의 선(禪)이나 도가 사상과 닮은 데가 있다. 20대 초반에 읽었던 를 통해 그가 생을 부정하는 철학자가 아님을 확인했었다. 제목이 도발적인 은 그의 저작 중에서 유쾌하기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뽑아서 소개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을 통해 지혜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고독해야 한다. 고독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통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고독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그중에서 고슴도치 비유는 유명하다. "고슴도치 무리는 추운 겨울이 오면 얼어 죽지 않도록 서로 온기를 나누려고..

읽고본느낌 2023.02.16

재미를 버릴 때 찾아오는 재미

교직에 있을 때 나를 괴롭힌 건 선생 노릇에 대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교사는 -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부모의 욕망에 충실히 복무할수록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았다.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만큼 불행한 것도 없다. 30여 년의 교직 생활 동안 보람을 느끼거나 재미있게 지낸 적이 없었다. 그저 버텨냈을 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삶이 재미없었던 제일 큰 이유는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는 동물이다. 무슨 일을 하건 의미/명분이 있어야 열정이 생기고 재미도 느낀다. 아니면 삶이 무미건조해지고 무기력에 빠진다. 오락이나 쾌락이 위안을 주지만 일시적 도피일 뿐이다. 근원적인 해결 없..

참살이의꿈 2023.02.15

뒷산 자작나무

동네 걷기를 하다가 산 능선을 넘어 이웃 동네로 가는 길을 택했다. 처음 가 보는 길이었는데 내려가는 산길에서 자작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약 300평 정도 되는 면적에 자작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줄기가 굵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자면 10년은 족히 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해서 밤골 집 뒤에 울타리 겸 해서 10여 그루를 심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면 벌써 20년도 더 되었으니 상당한 크기로 자랐을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심었던 그 나무만은 다시 만나보고 싶다. 어쨌든 뒷산에서 뜻밖에 만난 자작나무가 무척 반가웠다. 처음 걷는 길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녔을 길 위에 나도 발을 포개며 동참한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다져지는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3.02.14

마르코복음[7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모두 걸려넘어질 것입니다. 성서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로다'라고 씌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부활한 다음 그대들에 앞서 갈릴래아로 갈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모두 걸려넘어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그대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더 힘주어 말했다. "함께 죽어야 하더라도 결코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또한 모두 그렇게 말했다. - 마르코 14,27-31 최후의 만찬 자리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죽음을 예고하는 스승 앞에서 말로는 함께 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그들은 내심 떨리고 두려웠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전혀..

삶의나침반 2023.02.13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 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 에밀리 디킨슨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no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 That Love is all there is / Emily Dickinson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에서 첫 번째 수록된 시다. 평생을 은둔하며 고독 속에서 살아간 에밀리에게 단 한 번 이성을 사랑한 때가 있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쯤 되었을 때 기혼남인 목사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영화 '조용한 열정'에는 목사 부부와..

시읽는기쁨 2023.02.12

경떠회의 경안천 탐조

경안천의 고니를 보러 경떠회에서 광주에 찾아왔다. 오랜만에 회원 일곱 명이 다 모인 날이었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가, 고니는 다른 날에 비해 숫자가 적었다. 탐조는 오로지 운빨인 걸 어떡하겠는가. 다행히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고니 몇 마리가 있었다. 큰부리큰기러기는 가까이 다가가니 잔뜩 경계하더니 후두둑 날아갔다. 딱다구리는 열심히 나무줄기를 쪼고 있었다. 등이 보이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쇠오색딱다구리로 보인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 둑방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탐조와 겸해 인근의 신익희 생가와, 허난설헌 묘에도 들렀다. 두 어린 자녀의 무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진다. 마무리는 팔당호에 인접한 카페에서 했다. 백로 한 마리가 얼어..

사진속일상 2023.02.11

조용한 열정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전기 영화다. 에밀리가 불가사의한 은둔 시인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에밀리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았지만 내면에는 활화산 같은 열정과 갈등이 있었다. 영화는 소녀 시절 에밀리가 다니던 기독교 계통 기숙학교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관습이나 종교적 가르침에 순응하던 다른 소녀들과 달랐다. 독립적이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중심 가치관을 거부하고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 뒤로 에밀리는 죽을 때까지 집에서 벗어나지 않고 시를 쓰며 은둔해서 살았다. 피상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에밀리는 주관이 강하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는 ..

읽고본느낌 2023.02.09

7000

블로그의 글 수가 7,000개를 기록했다. 블로그를 처음 개설한 날이 2003년 9월 12일이니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다. 날수로는 정확히 7,090일째다. 남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천 단위의 소중한 기념일이다. 20년 전에 나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밤골 생활이 여의치 못해서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세상은 등을 돌린 채 나를 외면했고, 진심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게 블로그였다. 온라인 공간에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위로해 나갔다. 누구에게 드러내거나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블로그는 상상한 이상으로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

길위의단상 2023.02.08

빨치산의 딸

정지아 작가가 25세 때인 1990년에 쓴 두 권으로 된 실록 장편소설이다.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쓴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책으로 나오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출판사 사장은 구속되기까지 했다. 작년에 작가가 쓴 가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출판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은 프롤로그, 1부, 2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는 빨치산의 딸로 자라난 작가의 성장기다. 빨갱이의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느낀 좌절과 분노,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반항심 등이 아프게 다가온다. 1부는 아버지, 2부는 어머니의 빨치산 활동이 독립적으로 그려져 있다. 해방이 되고 육이오 전쟁을 거친 1945년에서 1955년까지의 10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격동..

읽고본느낌 2023.02.07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다

ChatGPT가 화제다. ChatGPT는 Open AI라서 회사에서 두 달 전에 공개한 인공지능 대화형 챗봇이다. 단순한 검색 기능을 넘어서서 인간과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이다. 놀라운 점은 ChatGPT가 시나 에세이, 논문까지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ChatGPT에 연결하여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 보았다. 인간의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방대한 데이터에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남을 볼 수 있었다. 가끔 부정확한 자료가 뜨기도 한다. 그러나 금방 나온 초기 버전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ChatGPT에게 시를 하나 쓰게 해 보았다. 요청은 이렇게 했다. "일몰을 소재로 시를 하나 쓰고 싶어. 석양, 바다, 구름..

길위의단상 2023.02.06

마르코복음[70]

저녁이 되어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거기로 가셨다. 그들이 자리잡고 먹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그대들 가운데 하나, 나와 함께 먹는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입니다." 제자들이 근심하여 차례로 예수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둘 가운데 하나, 나와 함께 대접에 빵을 담그는 사람입니다. 인자는 자신에 관해 씌여 있는 대로 떠나갑니다. 그러나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위해서는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고 있을 때 예수께서 빵을 들고 축복하신 다음 떼어주며 말씀하셨다. "받으시오. 내 몸입니다." 또 잔을 들고 사례하신 다음 주시니 모두 돌려 마셨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을..

삶의나침반 2023.02.05

허깨비 상자 / 김창완

TV를 보는데 뉴스가 나왔다 전쟁이 나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도망가고 애들이 울고 연기가 하늘같이 올라가는데 탱크가 달려오고 난리 난리가 났다 금세 장면이 바뀌고 광고가 나왔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깔깔거리고 웃고 춤추며 걸어갔다 저래도 되나 싶었다 - 허깨비 상자 / 김창완 TV만 아니라 이 세상도 허깨비 놀음이겠지. 쯧쯧 몇 번 혀를 차주고는 금방 고개를 돌리고 희희덕거린다. 세상만사에 대해서 그렇다. 하긴 타자의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여긴다면 몸성히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말씀이 아닌가. 예수님도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자리에서 지인이 그랬다. 자신은 사람들과 투명한 벽을 쌓고 살아간다고. 상대의 온기나 사정을 알려고 하..

시읽는기쁨 2023.02.04

경안천의 고니와 기러기

서울에서 벗이 내려와 경안천에서 같이 고니와 기러기를 보았다. 아직 얼음이 얼은 채로 있어 고니가 많이 있지는 않았다. 내일 입춘이 지나고 날씨가 더 풀어지면 떠날 채비를 하는 고니와 기러기가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 큰고니 ▽ 큰부리큰기러기 ▽ 청둥오리 고니나 오리 종류는 얼음이 녹아 있는 곳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반면에 기러기는 얼음 위에서 무리를 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경계하는 몸짓이 완연했다. 이제 한 달 뒤면 얘들은 북쪽 땅을 찾아 떠나갈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3.02.03

마스크를 벗고 당구와 놀다

시원하게 마스크를 벗고 당구를 쳤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래로 근 3년 만이다. 사흘 전부터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습관이 된 건지 조심하는 건지 셋 중 둘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야외에서도 아직 태반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별 이상한 일도 아니다. 서양 사람들은 쓰라고 해도 안 써서 소동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는 쓰지 말라고 해도 각자 알아서들 잘 쓴다. 오늘 뉴욕타임스에서 이 현상을 다룬 기사가 났다. 전 세계가 마스크를 벗고 있지만 한국은 민낯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면 화장을 하거나 웃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있으며, 마스크를 벗으면 다시 '꾸밈 노동'에 대한 ..

사진속일상 2023.02.02

상처로 숨 쉬는 법

아도르노 철학을 풀이한 책이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이 아도르노의 를 강독하는 형식으로 설명한다. 아도르노(T. W. Adorno, 1903~1969)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연구 활동을 한 분이다. 아도르노는 사회,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인간 소외 및 물상화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부정의 변증법'이나 '계몽의 변증법' 등이 문명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기조로 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아도르노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관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아직 살 만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 사회에 잘못된 점도 있지만 나름대로 편안한 점도 있어, 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읽고본느낌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