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28

겨울 두물머리

겨울 두물머리에 가 보았다. 두물머리에도 고니가 있을까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곳은 한겨울에 고니가 지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팔당댐에 갇힌 물이 얼어서 빙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새가 놀지 않는 겨울 호수가 썰렁했지만, 계절이 주는 색다른 풍경도 즐길 만했다. 호숫가를 따라 난 산책로를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얼음 위에서 쉬고 있는 고니 여섯 마리가 있었다. 한 가족이 아닌가 싶다. 인기척에 신경이 쓰였는지 몇 마리가 경계하는 몸짓을 하더니 이내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산책길에서 딱새 한 마리가 잠시 동행을 하며 모델이 되어 주었다. 팔당댐 하류 쪽은 물이 얼지 않았다. 많은 수의 고니가 먹이를 찾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흰죽지도 고니와 어울려 있다. 항상 만나는 친구들 - 흰뺨검..

사진속일상 2023.01.31

어른 김장하

MBC TV에서 방송된 2부작 다큐멘터리인 '어른 김장하'를 봤다.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하며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여러 지역사회 운동을 지원한 김장하 선생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선생은 제목에 나오는대로 우리 시대의 '어른'이신 분이다. 선생이 세상에 드러나는 걸 고사하셔서 직접 인터뷰는 하지 못하고 선생과 관련된 분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경남도민일보 기자였던 김주완 씨가 채현국 선생에 이어 다시 훌륭한 분을 소개해주어 고맙다. 언론이나 TV의 역할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44년생인 선생은 19세인 1963년에 한약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사천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박리다매 전략으로 돈을 많이 번다. 10년 뒤 진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은 번 돈을 쌓아두지 않고 지역사..

참살이의꿈 2023.01.30

절멸의 인류사

사헬란티로푸스 차덴시스, 오로린 투게넨시스,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오스타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에티오피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 약 700만 년 전에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조상에서 한 갈래가 나오고, 4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250만 년 전 호모속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렀다. 그동안 인류라 칭할 수 있는 25개가 넘는 종이 존재했지만 단 하나만 살아 남았다. 는 인류 진화의 긴 여정을 다..

읽고본느낌 2023.01.29

단촌리 느티나무(5)

동네를 지나며 느티나무 주위를 어슬렁대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요사이 시골 풍경이다. 특히 겨울에는 전부 집에서 테레비만 벗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아무리 추워도 동네 골목과 얼음이 언 논에는 뛰노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지금은 적막강산이 되어 버렸다. 이 마을에서나 저 마을에서나 몰락의 징후를 읽지만 이 또한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진통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단촌리 느티나무는 고향에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다. 700년의 세월 동안 인간의 흥망성쇄를 지켜보고 있다. 이 거목 앞에서는 모든 것이 부질없어진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다. 인간의 얄팍한 헤아림부터 벗어놓아야 할 일이 아닌가.

천년의나무 2023.01.28

고향의 저녁

지난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설을 쇠고 다시 고향에 모셔다 드렸다. 어머니가 목감기가 걸리신 데다 날씨가 추워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온전히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여드레였다. 노쇠한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의 진폭이 컸다. 불효에 대한 죄스러움과 함께 해가 다르게 달라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안타까움이 겹쳤다. 누구나 살고, 늙고, 병들고, 죽지만 내 부모가 되면 그런 과정이 당연하거나 무심할 수 없다. 무자비한 세월이 주는 인생의 쓸쓸함과 허무가 너무나 짙었다. 파스칼은 말했다. "세월 앞에서 인간사라는 것은 생의 본질적 비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동시에 피붙이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곁들어 따라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다행히 이틀 동안은 손주가 있어서 시름을 잊고 웃을 수..

사진속일상 2023.01.28

떡국 한 그릇 / 박남준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 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 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

시읽는기쁨 2023.01.24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집 바로 앞 소나무에 까치 부부가 찾아와서 둥지를 만들고 있다. 까치집을 짓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넘었다. 아침에 잠을 깨면 까치가 우짖는 소리가 제일 먼저 반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 여기고 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바로 집 앞에 -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 까치가 찾아왔으니 올해는 길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2023년 계묘(癸卯)년 설날이다. 이번 설은 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지내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 고향에 내려가서 모시고 올라왔다. 어머니는 목감기가 드셔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다. 이래저래 설날 같지 않은 설날이다. 어릴 적 추억 속 설날은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설날 전인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른..

사진속일상 2023.01.22

마르코복음[69]

무교절 첫날, 곧 해방절 양을 잡는 날, 제자들이 예수께 여쭈었다. "저희가 물러가서 당신이 해방절 음식을 드시도록 준비하려는데 어디가 좋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이르셨다. "성 안으로 가시오. 어떤 사람이 물 항아리를 지고 마주 올 터이니 따라가시오.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해방절 음식을 드실 방이 어디냐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시오. 그러면 자리를 깔아 준비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상을 차리시오." 제자들이 성 안으로 가서 보니 과연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해방절을 준비했다. - 마르코 14,12-16 유대인은 해방절/유월절 저녁에 함께 모여 희생양으로 잡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함께 양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그..

삶의나침반 2023.01.21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씨가 쓴 진보 비판서다. 문재인 정권 때 한국일보에 연재된 칼럼을 묶었다고 한다. 진중권 씨는 한때 진보 논객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극우 논객'(?)으로 돌변해서 당황했었었고 지금도 의아한 건 마찬가지다.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들어볼 만한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되었다. 책을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서인지 논리적인 짜임새는 좀 엉성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상황을 다룬 내용도 상당 부분 나온다. 어쨌든 문재인 정권과 진보 진영의 비판이 중심이다. 진중권 씨가 집중적으로 까는 것은 진보가 집권하면서 등장한 팬덤 정치다. 팬덤(fandom)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다. 팬덤은 배타적인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하기에 정치에서는 진..

읽고본느낌 2023.01.20

강릉 대도호부관아 매화

대관령으로 눈을 보러 가다가 강릉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월 중순에 강릉에서 매화를 볼 수 있다니,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였다. 강릉 시내에 있는 대도호부관아에 들어서니 멀리서도 하얗게 핀 매화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담장을 따라 심어진 매화나무 대여섯 그루에서 매화가 활짝 피었다. 가슴 설레면서 매화나무 아래를 거닐었다. 강릉 대도호부(大都護府)관아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올 때 머물던 건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만들어졌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다는데 매화에 홀리는 바람에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외 여러 건물들이 잘 복원되어 있었다.

꽃들의향기 2023.01.19

강원도에서 꽃과 눈을 보다

지난 주말에 전국적으로 눈이 내렸는데 특히 강원도에 많이 쏟아졌다. 이번 눈은 물기를 머금은 습설(濕雪)이어서 가뭄 해소와 산불 예방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복설(福雪)이라고 부르는 고마운 눈이다. 눈을 보러 아내와 함께 강원도로 갔다. 마침 강릉 대도호부관아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서 일차 목적지는 그곳으로 잡았다. 놀랍게도 담장을 따라 있는 대여섯 그루의 매화나무에 매화꽃이 활짝 펴 있었다. 설악산의 설경을 멀리서 보기 위해 경포호에 갔다. 눈 내린 다음날 사진은 산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많이 녹은 것 같다. 산 정상부만 백설의 모자를 쓰고 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눈에 띄는 건 새들이다. 사진을 찍으며 새 이름을 맞추어 보다. ▽ 청둥오리 ▽ 물닭..

사진속일상 2023.01.19

눈 내린 뒤 경안천이 만든 백조의 호수

눈 내린 다음 날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그동안 날이 풀어져서 경안천의 얼음이 많이 녹았다. 호수 같은 수면에 고니가 노니는 모습이 북쪽 지방에서 볼 법한 '백조의 호수'를 만들었다. 고니는 한자로 '곡(鵠)'이고, 백조(白鳥)로도 불린다. 우아한 이름과 달리 성격이 거칠고 몸집도 크다. "꿔억 꿔억" 하는 요란한 울음소리도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러나 무리에서 떠나 한둘씩 물 위를 유유히 헤엄 치는 광경은 평화롭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니는 고니, 큰고니, 혹고니 정도다. 대부분이 큰고니이고 고니나 혹고니는 드물다. 고니와 큰고니의 차이는 덩치가 아니라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다. 노란색이 넓게 콧구멍 앞까지 나와 있으면 큰고니다. 사진의 고니는 큰고니다. 고니가 모여 있는 곳은 시끄럽다. 아마 짝을..

사진속일상 2023.01.17

오누이 / 김사인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 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 오누이 / ..

시읽는기쁨 2023.01.16

섀도우랜드

C. S. 루이스(1898~1963)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여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보았다. 루이스는 유명한 기독교 변증론자로 옥스퍼드대학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독신으로 지내다가 50대가 지나서 미국 시인 조이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s))는 둘의 만남과 사랑, 결혼과 조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전에 루이스의 를 읽었지만 솔직히 책의 명성만큼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서양인들의 논리적 사고가 우리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책이었다. 아무튼 루이스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결론을 이끄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루이스의 논리에 매료되어 그의 전 작품을 읽고 심취한 후배가 있는데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책으로 만나는 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루이스..

읽고본느낌 2023.01.15

겨울비 내리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자다 깨다를 여러 차례 했다. 한겨울 새벽인데도 눈이 아닌 비가 내릴 정도로 날이 눅었다. 비는 낮까지 이어져 오다 그치다를 계속했다. 예보로는 앞으로 이틀 더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다가 따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 겸 하남에 있는 수제비집을 찾아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오랜만에 맛집의 맛을 보고 싶었다. 옛날 자주 찾아갔던 안국동의 수제비 맛이 떠올라서였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제대로 된 수제비를 맛보지 못했다. 잔뜩 흐린 채 안개비가 보얗게 낀 날씨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먼저 팔당 한강변에 나가 보았다. 고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니는 70마리 정도가 있었는데 두 무리로 나누어 모래톱에서 쉬고 있었다...

사진속일상 2023.01.14

마르코복음[68]

그런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가리옷이 대제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주기로 했다. 그들이 듣고 기뻐하며 은전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 하면 스승을 넘겨줄 수 있을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마르코 14,10-11 다른 복음서에는 '은전 30냥'이라고 나온다. 30냥의 값어치는 그리 큰 액수는 아니라고 한다. 과연 유다 이스가리옷이 돈 때문에 예수를 팔아넘겼을까? 그렇더라도 예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앞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의 수장을 배신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유다 이스가리옷 역시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중심으로 유대 왕국의 부활을 꿈꾼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스가리옷'이 유대 지역에 있는 지명이라면 갈릴래아 촌놈들인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

삶의나침반 2023.01.13

산 대로 죽는다

"엄마의 죽음의 과정은 삶의 과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즉 엄마가 평생 살아온 과정과 방식이 죽어가는 과정과 방식을 결정했다.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평생 늘 해오신 말들을 했고 늘 해오신 걱정들을 했으며 늘상 눈을 주곤 했던 대상들에 눈을 주셨다. 엄마 평생의 사랑의 방식은 죽어가는 과정에도 관철되었다. 나는 이 점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 박희병 선생이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을 옆에서 간병하며 지켜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의 에필로그에 적혀 있다. 선생의 어머니는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장애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태도가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로병사는 생명체의 숙명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살아 있을 때부터 인식한다. 다른 동물은 현재만 살뿐 ..

참살이의꿈 2023.01.12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이 책을 쓴 와카타케 치사코는 1954년생으로 55세부터 소설 강좌를 들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8년 후 이 작품을 집필했고, 2018년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는 74세인 모모코의 일상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노년의 내면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모모코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면서 두 자식과도 관계가 소원하다. 이웃과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외로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모모코는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고독을 즐긴다. 친구와 모임이 없어도 충분히 자족하며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모코의 행복은 과거의 따스했던 추억에서 나오지만, 현실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모모코는 진지하게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이 점이 그..

읽고본느낌 2023.01.11

성남 희망대공원

성남 단대동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인근에 있는 희망대공원을 찾았다. 희망대(希望臺)공원은 1970년대에 성남시에서 만든 최초의 공원이라고 한다. 지하철 단대오거리역에서 가깝다. 희망대공원은 성남 제1공단근린공원과 붙어 있다. 이름으로 봐서 옛날에 이곳에는 공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살지 않았으니 옛 모습과 비교는 어렵지만 면모가 일신된 것은 확실하다. 두 공원이 맞붙은 곳에 이 원형 육교가 있다. '공단'과 '희망'을 연결해 주는 다리다. 원형 육교에서 바라본 공원 아래쪽 모습이다. 배롱나무는 하얀 겨울 외투를 입고 있다. 희망대공원은 얕은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산을 끼고 도는 산책로다. 산 꼭대기에는 공원 표지석과 팔각정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성남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의..

사진속일상 2023.01.10

술이 고픈 날

답답하고 짜증이 이는 날이 있다. 이런 때는 밖에 나가 걸음을 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걷는다는 단조로운 몸의 움직임이 얽힌 마음을 풀어준다. 어제도 그랬다. 방에 가만있다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미세먼지가 빨간색으로 경고를 했지만 밖으로 나섰다. 걸으면서 서로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말한다. 뭐 그런 칠칠치 못한 놈들이 있냐구. 넌 참 운도 없구나. 네가 화낼만하다니까. 다른 하나는 말한다. 잘 봐, 그런 게 아니잖아. 화가 어디에서 온 거니.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답이 없다고. 둘이서 실컷 싸우게 놔둔다. 얼마 지나면 자연스레 한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또한 내 안의 어린아이도 보인다. 내 의식의 심층부에는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있어 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길위의단상 2023.01.09

선한 능력으로 / 본회퍼

선한 힘들에 신실하고 조용히 둘러싸여 놀랍게 보호받고 위로받으며 나는 이날을 그대들과 더불어 살기를 위하고 그대들과 더불어 새로운 해를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 지나간 해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악한 날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아, 주님, 우리의 놀란 영혼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구원을 주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가득찬 쓰디쓴 고난의 무거운 잔을 주신다면 당신의 선하고 사랑스런 손으로부터 그것을 두려움 없이 감사히 받겠나이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한 기쁨과 그 태양의 찬란한 빛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과거의 것을 기념하고자 하며 그때 우리의 삶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둠 속으로 가져다준 양초들이 오늘 따뜻하게 밝게 타도록 하소서. 가능하면..

시읽는기쁨 2023.01.08

물빛공원을 걷고 달콤짜장을 먹다

날이 많이 풀어졌다. 오전 10시가 되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물빛공원에 나가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포근한 날씨가 사람의 마음도 따스하게 만든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천천히 산책하려 하지만 누가 앞에서 끄는 듯 자꾸 속도가 붙는다. 저수지는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덮여 있다. 머지않아 남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고요한 이곳도 생명의 활기로 가득해지리라. 저수지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입구에는 물닭들이 모여 있다.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딱따구리를 이렇게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우리 동네에 서식하는 새들을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저수지를 배경으로 아내와 한 컷을 남겼다. 며칠 전에 산..

사진속일상 2023.01.07

엄마의 마지막 말들

지은이의 어머니는 아흔 즈음에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생의 끝을 보내셨다. 이 책은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보며 쓴 간병 기록이다.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박희병 선생이다.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시간도 귀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생은 어머니만 아니라 여러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족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그리고 적절한 의료체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인 것 같다. 아들은 직장을 휴직하면서 어머니를 지켰다. 이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

읽고본느낌 2023.01.06

TV를 바꾸다

TV를 10년 넘게 사용하니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화면에 안개가 끼면서 흔들리는 증상이 한 달 전부터 나타났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서 보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3년 전에도 생겨서 30여만 원을 주고 부품을 교체한 적이 있었다. 또 고쳤다가는 새로 TV를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도 먹통이 될 때까지 버텨보자고 했는데 아이들이 이왕이면 빨리 큰 것으로 바꾸라면서 새 TV를 사서 보내주었다. 전에는 49인치였는데 이번 것은 65인치다. 화면이 넓으니 시원하면서 눈이 피곤하지 않아서 좋다. TV를 설치하고 제일 먼저 PBA 당구 경기를 봤다. TV를 멀리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보는 맛이 생겼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때 사용한 TV 화면 크기는 나이와 연동하는 것 같다. 내 나이가 20..

사진속일상 2023.01.05

뒷산에서 겨울바람을 맞다

날이 풀어졌지만 새벽 기온은 -10도를 오르내린다. 낮기온 역시 영상으로 치고오르기는 벅차 보인다. 춥지는 않지만 싸늘하다. 겨울 냉기를 맞기 위해 뒷산에 올랐다. 응달진 산길에는 눈이 녹지 못하고 사람들 발에 밟혀 얼어 있다. 뒷산은 경사가 급한 곳 없이 온순해 걷기에는 지장이 없다. 일흔 줄에 들어서니 새해를 맞는 심사가 심드렁하다. 또한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슬픔이 짙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말했다. "How sad it makes one feel to sit down quietly and think of the flight of the old year, and the unceremonious obtrusion oh the new year upon our notice! How many thing..

사진속일상 2023.01.04

마르코복음[67]

예수께서 베다니아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묵으시던 때였다. 음식상을 받고 계신데, 한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져와 깨뜨려서 향유를 그분 머리에 부었다. 그러자 몇 사람이 언짢아하며 서로 말했다. "왜 이렇게 향유를 낭비하는가? 이 향유라면 삼백 데나리온도 넘는 값을 받고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리고 그에게 화를 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냥 두시오. 왜 괴롭힙니까? 그는 나에게 좋은 일을 했습니다. 가난한 이는 주변에 늘 있게 마련이니 원한다면 잘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대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할 만한 일을 했습니다. 내 장례를 위해 몸에 향유 바르는 일을 앞당겨 했습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온 세상 ..

삶의나침반 2023.01.03

어느 독일인의 삶

이 책의 주인공은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은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하다가 독일 제국의 멸망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녀의 프로필이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범죄자들 중 하나인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일했다. 나치 선전부의 속기사였던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폼젤은 자신이 나치 가담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비정치적이었고 그 당시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직장, 의무감, 소속감에 대한 욕구였다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다. 나치 만해의 규모와 잔학성은 종전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폼젤은 그저 평범한..

읽고본느낌 2023.01.02

새해 첫날 경안천을 걷다

2023년이 열렸다. 새해 첫날 창밖에서 우짖는 까치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왠지 좋은 일이 여럿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2023년이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경안천에 나갔다. 자글거리는 겨울 햇살이 따스했다. 산책로의 눈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고, 경안천의 얼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효과다. 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경안천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즐겼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것만 보면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산 능선과 높이를 맞추며 가지런히 자라는 나무를 보라. 나 혼자 튀어나가지 않고 옆 나무와 보조를 맞추며 사이좋게 나란히 자란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우리 지역을 통과하는 이 길은 일본과 미주로 오가는 비행기 노선이..

사진속일상 202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