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24

아내와 경안천을 걷다

아내와 오포 쪽 경안천을 걸었다. 이쪽에는 혹시 고니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금년 2월에는 희한하게도 경안천에서 고니를 볼 수 없다. 무슨 연유로 경안천을 외면하는지 모르지만 아예 마음을 닫은 건 아닌지 걱정이다. 고니도 이제 북쪽으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연말이 되어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고니 없는 겨울 경안천은 썰렁했다. 경안천의 터줏대감인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는 걷는 동안 그나마 심심찮게 만난다. 항시 볼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너희들도 귀한 존재들이 아니냐. 경제적이나 심리적으로 우리가 평가하는 사물의 가치는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은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까닭에 이제는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있는 둥 없는 둥이다. 만약 일 년에 단 하루만 꽃을 피..

사진속일상 2024.02.29

북극곰의 불안한 휴식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작은 해빙(海氷) 위에서 북극곰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쪽잠을 자고 있다. 런던자연사박물관에서 주관하는 사진전에서 '올해의 야생 사진상'을 받은 작품으로 제목은 '얼음 침대(Ice Bed)'다. 영국의 아마추어 사진가인 니마 사리카니가 찍었다. 사리카니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3일간의 기다림 끝에 얼음덩이를 팔로 긁어내 기댈 곳을 마련한 뒤 잠이 든 북극곰을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면서 북극곰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바다 얼음 위에서 생활하며 바다표범 같은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북극곰에게 해빙이 줄어든다는 것은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것과..

길위의단상 2024.02.28

사기[14-1]

맹자는 추나라 사람이다. 그는 자사(子思)의 제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맹자는 학문의 이치를 깨우친 뒤 제나라 선왕을 섬기려고 했지만, 선왕이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지 않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나라 혜왕도 맹자의 주장을 입으로만 찬성하고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의 주장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실제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진나라는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화했으며,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싸움에서 이겨 적국을 약화시켰다. 제나라 위왕과 선왕이 손자(孫子)와 전기(田忌) 같은 인물을 기용해서 세력을 넓혔으므로 제후들은 동쪽으로 제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

삶의나침반 2024.02.27

그곳에 빛이 있었다

부제가 '과학자의 눈으로 본 죽음 너머의 세계'지만 '천주교인'의 눈으로 본 사후세계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지은이인 파트릭 델리에가 의사이긴 하지만 가톨릭의 기적 검증국에서 상주 의사로 일하는 독실한 신자이기 때문에 철저히 신앙의 관점에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는 아내의 책상 위에 있던 책으로 호기심에 잠깐 훔쳐봤다.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와 임사체험은 UFO와 함께 늘 관심을 끄는 주제다. 1980년대였던 것 같은데 무디 박사가 쓴 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 생생하다. 이 책은 임사체험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 임사체험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는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해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사례를 중심으로 임..

읽고본느낌 2024.02.26

내가 그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 휘트먼

내가 그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증거와 숫자들이 내 앞에 줄지어 나열되었을 때 더하고, 나누고, 계량할 도표와 도형들이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 그 천문학자가 강당에서 큰 박수를 받으며 강의하는 걸 앉아 들었을 때 나는 알 수 없게도, 금방, 따분하고 지루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온 뒤, 나 홀로 거닐면서 촉촉히 젖은 신비로운 밤공기 속에서, 이따금 말없이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 내가 그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 월트 휘트먼 When I heard the learn'd astronomer; When the proofs, the figures, were ranged in columns before me; When I was shown the charts and the..

시읽는기쁨 2024.02.25

눈 내린 탄천

밤 사이에 많은 눈이 내렸다. 당구 모임이 있는 날이라 오전에 분당으로 나가면서 탄천에 잠깐 들러보았다. 나무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옷을 무겁게 걸치고 있었다. 하늘은 다시 눈이 쏟아질 듯 찌뿌둥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도시의 드문 설경을 찍느라 분주했다. 셋이 모인 당구 모임은 단출했다. 모임 내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던 터라 분위기가 무거웠다. 당분간 내가 연락책을 맡기로 했다. 오후가 되니 눈은 많이 녹고 오전의 설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여정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짧은 여행객들이다. 따스한 날에 내린 눈처럼 우리 또한 소리소문 없이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원망할 일도, 안달할 일도 없어라. 그때가 되면 다 부질없었다고 할 게 아닌가. 세파의 잔물결에 마음이 요동쳐서는 안 ..

사진속일상 2024.02.23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

이근후 선생의 5년 전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기사 제목에 나온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선생은 1935년생이니 지금은 90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선생은 건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 쓰고 인터뷰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계시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가련한 존재들이다. 인생은 고달프고 행복은 신기루다. 쉽게 사는 사람은 없다. 겉모습은 화려할지라도 속내는 누구나 쓰라리다. 다만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으며 살아갈 뿐이다. 원한이나 분노, 불안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작은 재미로 덮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슬픔을 잊고 가능한 한 재미있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신조다. 평생을 인간의 아픔과 마주한 정신과 의사로서 당연한 귀결일..

참살이의꿈 2024.02.21

쇳밥일지

노동 현장의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우리끼리 만나 얘기할 때는 요즘 젊은이들이 문제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힘든 일 하기 싫어하고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 그러면서 역사의식이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부족하다 등으로 비판했다. 노력만 하면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아니냐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봤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약자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며칠 전에 지인이 를 빌려 주었다. 이 책이 2년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지은이인 천현우 씨는 실업고와 전문대를 거쳐 노동 현장에서 10여 년간 계신 분이다. 전기 계통을 공부했지만 중간에 용접을 배운 뒤로 주된 직업은..

읽고본느낌 2024.02.20

경안버들과 고니

경안버들 부근에 고니와 오리들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경안버들 주변은 산책로가 가까이 있어 새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드문 곳이다. 이때만큼은 경안버들도 적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소리에 민감한 고니는 이내 경계 태세를 갖췄다. 보초병은 고개를 곧추 세우고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나는 살그머니 되돌아나왔다. 이날 이후로 경안천에서 고니를 만나지 못했다. 경안버들도 나만큼 서운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24.02.19

사기[13-2]

왕전은 병사 60만 명을 이끄는 장수가 되었다. 시황제는 몸소 파수 가까이 나와 왕전을 전송했다. 완전은 가는 도중에 훌륭한 논밭과 택지와 정원과 연못을 내려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자 시황제가 말했다. "장군은 빨리 떠나시오. 어찌 가난 따위를 걱정하시오?" 왕전이 말했다. "왕의 장군이 되어 공이 있어도 끝내 후(侯)로 봉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관심이 신에게 쏠려 있을 때를 빌려 신도 정원과 연못을 부탁드려 자손들의 재산을 만들어 두려는 것뿐입니다." 시황제는 크게 웃고 말았다. - 사기(史記) 13-2,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 왕전( 王翦)은 전국시대 말기에 진시황을 섬기며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장군이다. 왕전은 조, 한, 위나라를 멸망시켰고 초나라에게까지..

삶의나침반 2024.02.18

겨울밤 /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 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겨울밤 / 박용래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다. 단 네 줄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애절하게 담아냈다. 고향을 떠나온 지 긴 세월이 흘렀고,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자주 찾아오는 나이가 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년의 고향 집 겨울은 따스하다. 시인의 시대로부터 그리 많은 세월이 흐른 것도 아니다. 이제 그런 고향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찾아가지 못하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찾아가더라도 이미 사라진 고향이 되었다. 기억 속 고향과 현실의 고향은 괴리가 너무 깊다. 그런 불협화음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건 아닐까. 고향을..

시읽는기쁨 2024.02.17

물안개공원 산책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 나갔으나 고니를 보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제일 많은 고니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달 초에 마실 나간 고니가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텅 빈 경안천이 쓸쓸했다. 발길을 물안개공원으로 돌려 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어제 비와 눈이 내린 덕분인지 대기와 하늘은 더없이 맑고 청명했다. 영상의 기온으로 땅에는 눈의 흔적이 없지만 산에 내린 눈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마저도 하루이틀이 지나면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연밭이 있는 곳에서는 오리들이 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정물화 가운데서 오리들의 기운찬 동작이 돋보였다. 산책하며 나눈 대화 중에 '시절인연'이란 말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저 오리의 날갯짓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다. 생명붙이를 비롯한 모든 만남에..

사진속일상 2024.02.16

넉 달만에 뒷산을 걷다

어제는 갑자기 봄이 찾아온 듯 날씨가 따뜻했다. 전국의 낮 기온이 20도에 이르렀고, 곳곳이 2월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길거리에는 반바지 차림의 젊은이도 있었다. 밖은 완연한 봄기운이었다. 따스한 기운에 이끌려 뒷산을 걸었다. 얼마나 겨울잠이 깊었는지 넉 달만이었다. 적당한 눈비가 찾아준 올 겨울이어서 물기 촉축한 산길은 폭신했다. 맨발 걷기를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아직 산의 나무들은 겨울 모습이었지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봄소식이 날 이토록 설레게 하다니... 쯔쯧, 박새가 나뭇가지를 옮겨가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정겨웠고 양지바른 곳에 봄꽃이 피지 않았을까, 자꾸 두리번거렸다. 지지난주에는 홍릉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인간 세상이 하 수상해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다.

사진속일상 2024.02.15

새로운 가난이 온다

철학자인 김만권 선생이 쓴 책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선생은 제2 기계 시대로 부른다. 이전 시대의 증기나 전기 에너지에 의한 산업혁명을 하나로 묶어 제1 기계 시대라 하고, 디지털과 AI에 의한 혁명을 제2 기계 시대라 명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만큼 제1 기계시대와 구분되는 근본적이면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불안을 야기한다. 제2 기계 시대를 맞는 우리의 불안은 대체로 셋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둘째, 기계가 마침내 우리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셋째,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가져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선생은 다가오는 시대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헤쳐나가자고 한다. 첫..

읽고본느낌 2024.02.14

앓던 이가 빠지다

열 달 전부터 앞니 하나가 시큼거렸다. 신경이 쓰였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한 정도여서 치과에 가지 않고 버티며 지냈다.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도 저절로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한때는 잊어버릴 정도로 상태가 좋아지기도 했다. 이번 설날에 조상님 산소를 찾아 인사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말썽을 부리던 앞니가 끝을 맞은 것이다. 손가락으로 당기니 쑥 하고 빠져나왔다. 저절로 수명을 다하며 자연사한 셈이었다. 이 정도 되기까지 참고 견뎠으니 어지간히 미련하다는 핀잔을 들었다. 진즉에 병원에 갔다면 빠른 조치가 가능하고 고생도 덜 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워낙 게으르고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다. 허나 병원에 간들 뽑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 테니 약..

길위의단상 2024.02.13

2024 설날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단출하게 보냈다. 도로 정체가 풀린 뒤인 까치 설날 저녁에 내려갔더니 막힘 없이 갈 수 있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이랄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성묘 가는 길... 어머니는 과거를 추억하며 많이 서운해 하셨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 동네 골목에는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집에는 연신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설날이 되어도 적막강산이다. 마을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다. 새해 인사도 다니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 친척도 적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어울리다 간다. 우리 동네만 아니라 작금의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어쨌든 한 시대가 저무..

사진속일상 2024.02.12

사기[13-1]

진나라 왕은 사람을 시켜 백기를 함양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게 했다. 백기가 길을 나서 함양의 서문에서 10리 거리에 있는 두우에 이르렀을 무렵, 진나라 소왕은 응후와 다른 신하들과 상의한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기는 사는 곳을 옮겨 가면서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고 뼈 있는 말을 했소." 진나라 왕은 곧 사자를 보내 백기에게 칼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백기는 칼을 받아 들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삶의나침반 2024.02.09

성난 사람들

지난달에 미국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에미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10부작으로 된 이 드라마는 한국계 배우가 다수 참여했고, 전체적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양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였다. 호기심이 생긴 차에 넷플릭스에서 이틀에 걸쳐 몰아봤다. 미국 문화가 낯설어선지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다.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주로 성공한 교포의 삶이 소개되지만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은 주목하지 않는다. '성난 사람들'은 약자로서의 동양인의 심리에 내재한 불만과 트라우마를 잘 드러냈다고 본다. '성이 났다'는 것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틀 안에서 생기는 심리적 원인이 있다..

읽고본느낌 2024.02.08

사랑의 끝판 / 한용운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에그 등불을 켜라다가 초를 거꾸로 꽂었습니다그려 저를 어쩌나 저 사람들이 숭보겄네 님이여 나는 이렇게 바쁩니다 님은 나를 게으르다고 꾸짖습니다 에그 저것 좀 보아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하시네 내가 님의 꾸지람을 듣기로 무엇이 싫겠습니까 다만 님의 거문고 줄이 완급緩急을 읽을까 저어합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릅나무 그늘을 지워버리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 사랑의 끝판 / 한용운 만해 한용운의 시집 을 읽었다. 88편의 시가 실린 시집은 '님의 침묵'으로 시작하여 '사랑의 끝판'으로 끝난다. 만해는 1925년에 백담사에 기거하며 이 시들을 썼다. 시집 전체..

시읽는기쁨 2024.02.07

우울한 한국

미국의 인기 작가이자 유튜버인 마크 맨슨이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가 '우울한 한국'이라는 주제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되어서 찾아보았다. 마크 맨슨이 내린 진단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짜깁기해 놓은 느낌이 들었다. 영상 제목이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I Traveled to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로 자극적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자살률인데 한국은 10만 명당 25명이 자살하여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 특히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낮은 출생률 또한 우울한 한국을 드러내주는 징표다. 마크 맨슨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며..

참살이의꿈 2024.02.06

고니 없는 경안천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이런 경우이리라. 서울에서 옛 동료 두 분이 고니를 보러 내려왔는데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저께만 해도 볼 만했는데 하루 사이에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어제 큰 소음이 나는 작업을 한 탓에 고니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두 분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니 없는 경안천 풍경이 쓸쓸했다. 대신 물에 잠긴 관목 뒤에서 노는 원앙 가족을 봤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원앙을 본 건 처음이었다. 손 형이 찍어준 사진 - 내 뒷모습은 그런대로 날씬하지 않은가. 초록색 조끼를 입은 여인들은 공원을 순찰하며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다. 공원 안의 생태에 대해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전에 이분들 덕분에 공원에서 서식하는 황금개구리를 보기도 했다. 고니를 ..

사진속일상 2024.02.05

고니를 보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착한 날이었다. 경안천으로 고니를 보러 나갔다. 얼음이 녹고 있는 경안천은 봄이 오는 듯 포근했고, 유유히 떠 있는 하얀 고니들이 강 풍경을 화룡점정으로 꾸미고 있었다. 기우뚱거리며 얼음 위를 걷는 고니의 몸짓도 재미있었다.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지만 나가지를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로 왕복 네댓 시간이 걸리는 이동 시간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 나이 탓일 게다. 반면에 고니는 룰룰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간다. 겨울 고니는 나에게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별자리 중에 백조자리가 있다. 바람기 많은 제우스 신은 인간 여인을 유혹할 때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변신한 것이 백조(고니)였다. 그들 둘 사이에서 난 자식이 쌍둥이자리의 카스..

사진속일상 2024.02.03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젊었을 때는 의지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면 웬만한 일은 전부 이뤄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 알겠다.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원래부터 많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을 당해 내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가운데 발견하는 사소한 기쁨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세월로 인한 무상감과 비애감을 달래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삶이 가벼워졌다. 미래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일에도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이유 없이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고, 함부로 서운해하지도 않게 되었다...

읽고본느낌 2024.02.02

나의 올드 오크

영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에 시리아 난민인 여러 가족이 이주해 온다. 폐광촌으로 시들어가는 마을이라 안 그래도 불만이 가득한데 무슬림 이주민이 온다니 주민들은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올드 오크(Old Oak)'라는 펍을 운영하는 TJ는 달랐다. 그는 이주민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사진작가가 꿈인 난민 소녀 야라와 국적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다.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성 짙은 소재를 영화로 다루는 켄 로치 감독의 최근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빈민과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감독의 세계관이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번에는 국제적 이슈인 난민 문제와 원주민과의 갈등을 다루었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이 사회적 약자들은 연대하지 못하고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원주민이 난민을..

읽고본느낌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