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13

위기의 민주주의

2019년에 제작된 브라질 정치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넷플릭스에 올려져 있다. 2002년에 룰라가 군사 독재를 물아내고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때로부터,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미가 탄핵되고 부패 스캔들로 룰라가 구속된 2018년의 상황까지를 다룬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겹쳐보이면서 먼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다. 브라질은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세 번째로 당선되었지만 극우인 보우소나루와는 1.8% 차이였다. 보우소나루의 극력 지지층에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최근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식이면 룰라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파 기득권층이 다시 어떤 음모를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 구조상 안정을 찾기는 쉽지..

읽고본느낌 2023.03.23

민중은 개돼지

교육부의 한 고위직 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했다가 공분을 샀고, 결국은 파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실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민중은 개돼지로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 "신분제는 공고화되어야 한다." 기자와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인 말이었다. 내가 이번 사건을 두려워하는 건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이런 정서가 보편적이지 않을까, 라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는 문제의 근본에는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1%의 엘리트가 99%의 민중을 먹여 살린다는 개념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99%의 민중은 어리석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이미 계급사회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개돼지' 발언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

길위의단상 2016.07.17

헐렁한 게 좋아

몇 주 전에 아내가 겨울 티셔츠를 사 왔다. 색깔이나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즈가 95라고 포장지 비닐에 적혀 있어 더 확인하지 않은 채 라벨을 떼어버리고 옷장에 걸어두었다. 95나 100이면 내 몸에 잘 맞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옷을 꺼내 입으니 헐렁한 게 너무 컸다. 그제서야 옷에 붙은 사이즈를 보니 105였다. 포장지 표시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미 교환할 수도 없게 된 상태라 그냥 입기로 했다. 목에는 주먹 하나가 들락거리고 허리 부분은 몇 겹이나 주름이 졌다. 다행히 겨울 티셔츠라 겉옷 안에 숨어서 볼품을 따지지 않아도 되었다. 전에는 꽉 조이는 옷을 즐겨 입었다. 이 옷은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은 없지만 굉장히 편안하다. 한복을 왜 편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마 ..

참살이의꿈 2016.02.16

세월호를 기록하다

낡은 배가 도입되도록 선령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더라면 청해진해운이 무리한 증개축을 하지 않았다면 화물 적재 기준에 따라 화물을 실었다면 위험한 출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선원들에게 발언권이 있었다면 운항 관리자가 규정대로 출항을 통제했더라면 평형수가 좀 더 채워지고 화물이 단단히 고박되었다면 조타수가 대각도 조타를 하지 않았다면 배가 쓰러진 뒤 선원들이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비상시 선내 방송 매뉴얼이 갖춰져 있었다면 진도VTS가 퇴선 결정의 책임을 세월호에 맡길 게 아니라 직접 지시했더라면 구조 세력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면 출동한 123정 해경이 더 적극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났더라면 뒤돌아보면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니다. 300명이 넘는 생때같은 목숨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읽고본느낌 2015.05.20

변호인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즈음에 이 영화를 보았다. 가슴 찡한 감동이었다. 신인 감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송강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1981년에 일어났던 대표적 용공조작인 부림 사건을 모델로 했다. 노무현 역인 송우석 변호사를 송강호가 맡았다. 그러나 특정인을 넘어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영화였다. 돈만 좇던 송우석 변호사는 국가 폭력의 실상을 접하고 억울한 피고인들을 위한 변론에 온몸을 던진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 그를 통해 드러난다. 이 영화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한다.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서슴지 않고 용공죄를 만들고 고문을 하는 경찰이 있다. 그는 살인 정권..

읽고본느낌 2014.01.18

우리 시대

아일랜드에 가 있는 친구가 한국이 왜 이리 어수선하냐며 메일을 보내왔다. 차라리 인터넷이 없었으면 싶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봤을 때는 거의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나 보다. 신부가 강론 중에 한 시국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잡아들이려 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종북'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 JTBC '뉴스9'에서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 비난을 듣게 된다."

길위의단상 2013.11.28

[펌] 광주의 정신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

길위의단상 2012.05.18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 마광수

노예들을 방석 대신으로 깔고 앉는 옛 모로코의 왕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노예들의 불쌍한 모습에 동정이 가다가도 사람을 깔고 앉는다는 야릇한 쾌감으로 나는 흥분이 되었다. 내겐 유일한 자유, 징그러운 자유인 죽음 같은 성욕이 나를 짓눌렀다. 노예들이 겪어야 하는 원인모를 고통에 분노하는 척 해보다가도 은근히 왕이 되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역시 내 눈 앞에는 왕의 화려한 하렘과 교태부리는 요염한 시녀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 얄미운 욕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온갖 비참한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쾡한 눈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 할머니, 그런데도 통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왕의 게슴츠레한 눈과 피둥피둥 살찐 쾌락들이 머..

시읽는기쁨 2010.08.02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오늘 사퇴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을 집행하는 분야에서 물갈이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인권이나 방송, 예술은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정권과는 독립된 기관이어야 하고 정부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KBS 사장을 교체하고, 지난 5월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 사퇴시키더니 이번에는 인권위원장까지 물러나게 만들고 있다. 겨우 꽃을 피우는가 싶던 민주와 인권이 이 정권들어 다시 1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고, 답답하고 슬픈 현실이다. 안 위원장은 이임사에서 개인적인 비애와 모멸감을 밝혔다. 그리고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고 일갈했다. 다음은 이임사 전문이다. --------------------..

길위의단상 2009.07.08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얼마 전에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는 다큐 필름을 보았다. 거기에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고통 받는 가난한 집안의 젊은이들 모습이 많이 나왔다. 등록금 때문에 밤 새워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휴학을 하거나 입대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떤 학생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제약의 성능 시험에 참여해서 하루에 열두 번씩이나 피를 뽑기도 했다. 그래도 돈을 벌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니까좋다며 씁쓰레하게 웃는 표정에 마음이 아팠다. 예전부터 대학은 우골탑으로 불리며 자식을 대학에 보내자면 기둥 뿌리 하나는 빠져나가야 했다. 공부 시킬 돈을 장만하기 위한 학부모의 고통 역시 당사자인 학생에 못잖다. 지금은 대학 등록금이 년 1천만 원에 가까워졌다. 부유한 집은 걱정이 없을지 몰라..

참살이의꿈 2008.12.05

높은 분들 위해 비워놓은 자리

난감했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들은 공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시립 국악관현악단 정기 연주회였다. 여수 같은 소도시에선 자주 접할 수 없는 공연이고 더구나 우리 마을 아이들 중엔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덕양리에 사는 나는 어버이날 마을잔치 때 함께 사물놀이 공연을 했던 마을 아이들과 뒤풀이로 공연 관람을 약속했다. 드디어 공연이 있는 지난 14일, 거북공원에 도착한 우리들은 연주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는 맨 앞줄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7시 공연이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과 나는 5시부터 교대로 김밥이며 떡볶이를 먹으며 공연 리허설까지 지켜보았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오니 행사 관계자인 듯한 분이 오셔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단다. 난 단호히 거절했다. 올지도 안 ..

길위의단상 2008.01.28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프레시안이 공동 주관한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라는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첫 회는 정치 분야로 어제 역사박물관에서 ‘민주화 20년의 경험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나?’라는 주제로 열렸다. 주제발표는 고대 최장집 교수, 토론자는 한림대 최태욱 교수,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부국장이었고,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사회를 보았다. 평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강연과 토론을 들으면서 더욱 참담한 기분에 빠졌다. 6.10 항쟁 이후로 20년이 지났고,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도 10년이 되었건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개혁에 대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으니 어찌 보면 배반당한 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를 외쳤던 그들은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민중을 외..

사진속일상 2007.06.28

5와 82

우리나라 상위 5% 계층이 전체 토지의 82%를 소유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토지의 편중 현상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결국 우리의 현실은 95%의 사람들이 남은 18%의땅을 가지고 싸우는 형세에 다름 아니다. 요사이 사회 문제로 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도 결코 이런 토지의 편중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어제 보도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 계수, 5% 소득비등 여러 지표들이 그렇게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세계 경제로의 편입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고, 세상은 점점 살벌하게 변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 세대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경험해야 될 것 같다. 토지 편중 현상의 문제점 중 또..

길위의단상 2007.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