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22

당남리섬을 산책하고 천서리 막국수를 맛보다

아침에 처가 쪽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내와 같이 외출을 했다.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여주 당남리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고 천서리 막국수로 점심을 했다. 기온이 33℃까지 올라간 땡볕 속이었다. 당남리섬은 청보리는 때가 지나 모두 베어졌고, 수레국화 꽃밭도 대부분 꽃이 지고 씨를 맺고 있었다. 개망초, 금계국, 메밀꽃이 그나마 한창이었다. 멀리 남한강 이포보가 보인다. 볕이 따가워 쉼터에서 자주 쉬어야 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은 운명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데 공감을 했다.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돼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 년의 수를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는 악인도 있다. 세상은 선악의 결과가 공평하게 구현되는 곳이 아니다. 천도(天..

사진속일상 2023.06.19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텃밭이 차려준 점심 식탁

태풍 송다가 올라오면서 오후부터 비를 뿌린다기에 오전에 텃밭에 나가 배추와 무를 심을 이랑 정리를 했다. 거름을 듬뿍 주고 흙과 고르게 섞어 주었다. 짙은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뿌렸지만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은 고돼도 기분은 상쾌했다. 아내는 상추, 아욱, 고추, 가지, 부추, 옥수수, 호박잎, 깻잎, 토마토 등 땅이 주는 선물을 거두었다. 덕분에 점심 식탁이 풍성해졌다. 돼기고기와 막걸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우리 텃밭에서 나온 재료들이다. 어설픈 농사 흉내에 작물은 시원찮아도 밭에서 금방 따 온 싱싱함이 주는 맛은 역시 다르다. 땅을 빌려준 이웃에도 감사하고, 이런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신 자연에도 감사한다. 어제는 넷플릭스로 영화 '모리의 정원'을 봤다. 30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

사진속일상 2022.07.31

텃밭이 주는 선물

아침 식탁은 텃밭이 주는 선물로 가득하다. 일찍 일어난 아내가 - 그래도 7시가 넘어서지만 - 텃밭에 나가 푸성귀를 거둬 온다. 오늘은 고추, 가지, 호박, 호박잎, 토마토를 따 왔다. 미리 캔 감자와 아욱으로 끓인 국도 있다. 100% 텃밭에서 난 반찬이다. 바로 뜯어온 야채의 싱싱함이란 시장에서 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입맛이 저절로 돋는다. 식탁에 올린 것은 싹 다 비운다. 남은 토마토와 감자는 오가면서 하나씩 집어먹으면 된다. 이런 게 소확행일 거다. 표현은 못 하지만 매일 한두 번씩은 꼭 텃밭에 들리는 아내에게 고맙다. 가꾸고 수확하는 재미를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텃밭 일을 도와달라고 할 때 더는 투덜대지 말아야겠다.

사진속일상 2022.07.11

홍어 / 정일근

먹고사는 일에 힘들어질 때 푹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값비싼 흑산 홍어가 아니면 어떠리 그냥 잘 삭힌 홍어를 먹고 싶다 신김치에 홍어 한 점 싸서 먹으면 지린 내음에 입안이 얼얼해지고 콧구멍 뻥뻥 뚫리는 즐거움을 나 혼자서라도 즐기고 싶다 그렇지, 막걸리도 한 잔 마셔야지 입안의 즐거움이 온몸으로 퍼지도록 한 사발 벌컥벌컥 마셔야지 썩어서야 제맛 내는 홍어처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 한 세월 썩어가다 보면 맛을 내는 시간이 찾아올 거야 내가 나를 위로하며 술잔을 권하면 다시 내가 나에게 답잔을 권하며 사이좋게 홍어 안주를 나눠 먹고 싶다 그러다 취하면 또 어떠리 만만한 게 홍어라고 내가 나를 향해 고함을 치면서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크게 한번 취하고 싶다 - 홍어 / 정일근 삭힌 홍어 맛을 본 것..

시읽는기쁨 2021.08.17

보신탕 한 그릇

염제(炎帝)의 위력이 대단하다. 매일 에어컨 신세를 지는 게 어느덧 두 주째다. 무더위 속에서 무리할 일은 없지만 활동량이 적으니 몸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하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아내와 보신탕 집을 찾았다. 근년에는 보신탕 먹을 기회가 한 해에 한두 번밖에 안 된다. 전에 비해 확 줄었다. 대신 추어탕을 주로 한다. 그래도 한여름이 되면 가끔 보신탕에 구미가 당긴다. 아내가 뇌 수술을 받은 뒤에 조리를 하면서 보신탕을 참 많이 먹었다. 의사도 기력 회복과 상처가 빨리 아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거의 한 달은 상식을 했을 것이다. 나는 퇴근하면서 보신탕을 사 가지고 가는 게 일과였다. 아내가 회복하는 데 보신탕의 도움이 컸다고 확신한다. 어느 신부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 신학교에 다닐..

사진속일상 2021.07.30

쇠비름 비빔밥 / 조성순

입에 녹는 안심살, 감칠맛 돌가자미, 세상의 별난 음식 먹어봐도 몇 번이면 물리고 말지. 고구마밭 지심맬 제 이랑 고랑 지천으로 자라 뽑아도 뽑아도 질긴 생명력으로 힘들게 하던 쇠비름, 다른 놈들은 뽑아서 흙만 털어놓으면 햇볕에 말라 거름이 되는데 이놈은 말라죽기는커녕 몇 주 후라도 비가 오면 어느새 뿌리를 박고 살아나지. 하는 수 없이 밭고랑 벗어난 길에 던져놓아 보지만 오가는 발길에 수없이 밟혀 형체도 분간 못할 지경이 되고서도 비만 오면 징그럽게 살아나는, 시난고난 앓고 난 뒤, 먹고 싶었다. 푹 삶은 쇠비름, 된장 고추장 고소한 참기름으로 비빈 - 쇠비름 비빔밥 / 조성순 쇠비름을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중학생 시절 읍에서 외할머니와 둘이 살 때, 여름 별미는 된장으로 무친 쇠비름이었다. 보..

시읽는기쁨 2021.06.29

소래포구

육젓을 사러 아내와 함께 소래포구에 갔다. 아내는 처음으로 새우젓을 담가보고 싶다고 했다. 소래에 간다니까 이웃집에서도 부탁을 해서 초보자가 심부름까지 했다. 소래는 지금이 새우철이다. 서해안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새우 종류에 오젓, 육젓, 추젓이 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새우가 잡히는 때에 따라 구분하는데, 육젓은 음력 유월에 나오는 새우로 살이 통통하고 단맛이 많아 반찬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소래포구는 새우를 사러 온 사람으로 북적였다. 우리만 빈손이었지 다들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 통을 가지고 왔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가게에서 사람들 틈에 묻어서 샀다. 좁은 포구에서도 잘 되는 가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가게가 있다. 우리도 거기에 일조를 한 셈이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

사진속일상 2020.06.24

아귀들 / 정현종

계곡마다 식당이 들어차고 물가마다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이 나라 산천 가는 데마다 식당이요 카페요 레스토랑뿐이다. 굶어 죽은 귀신들이 환생을 해서 저렇게 됐을 것이다. 또 다른 아귀들은 몰려들어 아귀아귀 먹는다. (다 아는 얘기지만 대학가도 도시의 골목도 식당과 술집으로 미어진다!) 한 아귀인 나는 토종닭을 시켜 먹으며 이 천박한 나라를 개탄하고 개탄한다. 이 나라 이 국민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이 땅의 계곡들아 대답해다오. 바다야 강물들아 대답해다오. 아귀들 대답해다오. - 아귀들 / 정현종 "진지 드셨니껴?" 어릴 때 동네 골목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의레 하던 인사말이었다. 제 때 끼니를 차려 먹기 어렵던 시절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던 말이다. 아마 우리 나이대가 보릿고개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일 것..

시읽는기쁨 2020.01.23

60.4kg

몸무게가 지금 같이 떨어진 것은 기억에 닿는 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오늘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60.4kg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 66kg이 넘었으니 6kg이나 빠진 셈이다. 겨울에는 활동량이 줄어드니 보통 몸무게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반대다. 속병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다. 소화가 안 되니 소식을 해야 하고, 기름진 음식은 먹지 못한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먹는 양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빠져야 하는 게 맞다. 소화불량과 부글거림 증상이 이렇게 오래 가는 건 처음이다. 늙은이는 한 번 탈이 나면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몸이 가벼워서 경쾌하다. 65kg이 넘으면 둔하다. 느낌으로는 내 적정 체중이 61kg 내외인 것 같다. 나..

길위의단상 2019.02.15

밥 / 정진규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 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숫가락질이 젓가락질이 서투르실 것..

시읽는기쁨 2017.10.25

끼니 / 고영민

1 병실에 누운 채 곡기를 끊으신 아버지가 그날 아침엔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너무 반가워 나는 뛰어가 미음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냥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아버지는 밥을 드셨다 그리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2 우리는 원래와 달리 난폭해진다 때로는 치사해진다 하찮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겨울,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한 노숙자가 자고 있던 동료를 흔들어 깨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먹어둬! 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 - 끼니 / 고영민 얼마 전 모임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았다는 이가 여럿 있었다. 정신력이 강하면서 존경을 받던 분이..

시읽는기쁨 2017.09.30

잡초 비빔밥 / 고진하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고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 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

시읽는기쁨 2017.07.21

라면을 끓이며

김훈의 산문집이다. 새로 쓴 글도 있고, 예전에 발표되었던 글도 들어 있다. 밥, 돈, 몸, 길, 글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글이 묶여 있다. 작가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읽을 수 있으나 잡화점에 들어간 듯 산만한 감도 있다. 글은 역시 김훈 만의 색깔이 드러난다. 문체만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눈길이 특이하다. 작가의 안테나는 세상살이의 스산함에 주파수가 맞춰 있는 것 같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모든 문장에 들어 있다. 작가는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이 글을 쓰게 한다고 말한다. 또한 김훈의 글에서는 삶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묻어난다. 글 쓰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런 진지함이 느낌의 깊이를 아득하게 한다. 사소해 보이는 존재나 현상에서도 의미를 찾아낸다. ..

읽고본느낌 2015.12.22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마음을 확 당기는 시가 있다. 시를 만나는 건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내 마음을 끄는 사람이 있듯이 시도 그렇다. 이럴 때는 서로의 주파수가 맞았다고 말한다. 시와 내 정서의 파장이 공명을 일으키는 게 시가 주는 ..

시읽는기쁨 2014.10.03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스며드는 것 / 안도현 낚시꾼들이 손맛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건 물고기가 고통을 모를 것이라는 가정을 하기 때문이다. 바늘에 입이 꿰인 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물고기의 비명을 듣는다면 차마 낚시를 취미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물은 말할 나위가 없고 식물도 감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은 우리의 지식이 일천할 뿐,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

시읽는기쁨 2014.06.30

짬뽕과 순대국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때가 지나면 시장기가 든다. 배는 고프고 집까지 가는 길도 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 그때 내가 선택하는 건 짬뽕 아니면 순대국이다. 뭘 먹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속을 시원하게 하고 싶을 때는 짬뽕, 고기 생각이 날 때는 순대국을 먹는다. 짬뽕과 순대국은 꼭 가는 집이 있다. '홍콩반점'은 짬뽕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음식점이다.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지만 그보다도 실내가 깔끔해서 좋다. 종업원도 여느 중국집과 달리 젊은이들이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으면 카페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집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는다. 왜 그러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선해서 재미있다. 어떤 날은 매운 짬뽕을 먹고 싶을..

길위의단상 2014.02.24

예천 태평추 / 안도현

어릴 적 예천 외갓집에서 겨울에만 먹던 태평추라는 음식이 있었다 객지를 떠돌면서 나는 태평추를 잊지 않았으나 때로 식당에서 메밀묵무침 같은 게 나오면 머리로 떠올려보기는 했으나 삼십 년이 넘도록 입에 대보지 못하였다 태평추는 채로 썬 묵에다 뜨끈한 멸치국물 육수를 붓고 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와 김가루와 깨소금을 얹어 숟가락으로 훌훌 떠먹는 음식인데 눈 많이 오는 추운 날 점심 때쯤 먹으면 더할 수 없이 맛이 좋았다 입가에 묻은 김가루를 혀끝으로 떼어먹으며 한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며 갯내를 혼자 상상해본 것도 그 수더분하고 매끄러운 음식을 먹을 때였다 저 쌀쌀맞던 80년대에, 눈이 내리면, 저 눈발은 누구를 묶으려고 땅에 저리 오랏줄을 내리는가? 하고 붉은 적의의 눈으로 겨울을 보내던 때에, 나는 태평추가..

시읽는기쁨 2013.08.04

보신탕

식성이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그러나 위장이 약한 탓에 약간은 조심해야 하는 음식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 않다면 먹는 것에 대해 까다롭지는 않다. 그런데 한때 보신탕을 멀리 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개와 연관된 껄끄러운 사건이 벌어지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겨울에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마당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를 혼낸다고 신발을 던졌는데 개다리에 정통으로 맞으면서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뜻하지 않은 변고에 무척 마음이 아픈 터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묘하게도 외할머니가 밖에 나가셨다가 자전거에 부딪쳐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셨다. 아흔이 넘으셨던 외할머니는 그 사건 때문에 엄청 고생하셨다. 두 사건은 ..

길위의단상 2010.03.01

끼니 / 고운기

멀쩡한 제집 두고 때 되어도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은 다반사(茶飯事) 도대체 집은 뭐하러 있는 거야? 아침은 얻어먹고 사냐는 멍청한 질문도 굳이 마누라 타박할 문법은 아니지 차라리 못 살았다는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새벽밥 해먹고 들일 나가 날라 오는 새참이며 점심 바구니 끼니마다 집에서 만든 밥 먹던 생각 차라리 그것이 힘의 원천 저녁이면 큰 상 작은 상 각기 제 몫의 상에 앉아 제 밥그릇 찾아먹는 것이 좋았다는 생각 무슨 벼슬한다고 이 식당 저 식당 돌아다니며 제 그릇 하나 찾아먹지 못하고 사노 먹는 게 아니라 때우면서 만주벌판 독립운동이라도 하나 멀쩡한 제집 두고 밖으로만 나다니면서 - 끼니 / 고운기 전 직장의 동료 P는 술자리에서 늘 호기있게 말하며 우리를 웃겼다. 그중에 이런 말도 있었다. ..

시읽는기쁨 2010.02.19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즘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마눌님 눈치 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건 자연의 필연 ..

시읽는기쁨 2009.03.18

우리들의 호들갑

중국산 납 김치에 이어 이번에는 기생충 김치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약국의 구충제가 다 동이 났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양식 어류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또 한 바탕 소동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어류건 가축이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위험 수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로보는 세상에서 갈수록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공기와 물과 음식, 인간의 몸으로 출입하며 우리 몸을 구성하는이런 것들이 오염된다는 것은 인간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을 얻더라도 이것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늘 이런 문제가 터지고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흥분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진지하게 대..

참살이의꿈 200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