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48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작은 섬에 들어가 사시는 분을 화면에서 봤다. 이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덕목을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로 표현했다. 교수로 살면서 덧씌워진 명성과 과대포장된 삶을 벗고 본연의 나를 찾고픈 바람이 간절해 보였다. 하지만 속 마음이야 어떻든 섬에서 살아가는 삶은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교수인 삶을 살았던 조건(정신적, 경제적)을 떨쳐버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명성을 버린다 하면서 명성을 이용한다. 소유의 맛을 즐기면서 겉으로는 무소유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숨겨진 민낯이 드러나 비난을 받는 유명인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차라리 무소유를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상적/대안적 삶이 가진 자에 의해서 소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소유라든가 '..

참살이의꿈 2023.08.10

풍경을 빌리다 / 공광규

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그냥 살던 집 벽을 헐고 창을 내어 풍경을 빌려 살기로 했다 오래된 시멘트 벽이었다 쇠망치로 벽을 치자 손목과 팔이 저려왔다 한번 더 힘껏 치자 어깨와 가슴까지 저려왔다 쇠망치를 튕겨내는 벽 반항하는 벽 대신에 서까래와 대들보만 울었다 "벽은 안에서 밖으로 치는 것이여!" 지나가던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런가? 상처 난 벽을 잠깐 쳐다보다가 돌아보는 사이 노인은 자취가 없다 헛것을 본 것인가 동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노인이라는 생각을 하며 방 안에 들어가 밖으로 벽을 치자 망치 두세방에 벽이 뻥 뚫렸다 하늘이 방 안으로 무너지고 햇살이 쏟아졌다 터진 벽에 창틀을 끼우고 유리를 붙이자 창문으로 감나무와 버즘나무와 잣나무와 숲이 선착순으로 들어오고 잣나무숲 뒤로..

시읽는기쁨 2022.07.10

횡성에 다녀오다

H가 소개해 준 집을 보기 위해 아내와 횡성에 다녀오다. 전원의 삶에 대한 꿈은 내면에 잠복하고 있다가 계기가 되면 활활 불타 오른다. 사그라지다가 바람을 만나서 살아나는 불꽃과 같다. 식겁을 한 쓰라린 경험이 있건만 전원에 대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터는 괜찮은데 주택은 미비한 점이 있었다. 전세를 얻어 주말 전원주택 개념으로 쓸 수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는 집이었다. 횡성을 오가면서 이젠 큰 판을 벌이기에는 내 나이도 한계에 이른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양평에서 새 집을 짓고 있는 지인에게 들렀다. 시골길에서는 멋진 전원주택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저런 집을 갖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람살이의 행불행이 단지 집으로 결정되는 것은 ..

사진속일상 2022.07.04

후배 집에 오가는 길

도시에 본 집을 두고 교외에 세컨드 하우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 부럽다. 후배 H가 그런 사람이다. 본인이 하는 일에 딱 맞는 전원주택을 양평에 갖고 있다. 약속 시간이 어긋나는 바람에 오가는 길에 시간 여유가 많이 생겼다. 집에서는 성당 반 모임이 있어서 일찍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덕분에 팔당호를 따라 난 342번 도로를 돌며 장맛비 속 드라이브를 즐겼다. 수청(水靑)나루터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팔당댐이 생겨 수몰되기 전 강 건너편은 넓은 백사장과 갈대밭이 있었고, 수청나루터 부근은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경치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갈수기 때는 강을 걸어서 건너기도 했다니, 물이 가득 차서 호수가 된 지금은 옛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기 힘들다. 안내문에는 수청리에 있는 예쁜 지명들이 ..

사진속일상 2022.06.30

남원 가는 길 / 양애경

임실을 지나 남원 가는 길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조그만 동네에도 있을 건 다 있지 여기 살 수 있을 것 같지 북부농협에서 예금을 찾고 농협 상점에서 식료품을 사고 오수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며 당장 오늘부터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지 나는 넝쿨장미인지도 몰라 철사로 엮은 길가 담장에서 이제 막 무더기 무더기 피어나기 시작하는, 붉은 꽃 한 송이 송이로는 보이지 않고 초록으로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에 중간 크기 붓으로 몇 군데 문질러 놓은 것 같은 사실 꽃 피어도 그다지 보는 사람은 없는 넝쿨장미로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논두렁 옆 둑길 하나로 걸어들어가서 방 한 칸 얻고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농협에 구좌를 트고 그리고 농협 상점에서 쌀 한 봉지 비름나물 한 묶음 ..

시읽는기쁨 2022.06.26

살아나는 꿈

아내는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 몇 차례 텃밭을 한 적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몰두하는 것은 처음 본다. 수확해서 먹는 것은 둘째고, 작물을 심고 기르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 같다. 텃밭과 채소 얘기를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돈다. 텃밭과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번에 얻은 텃밭은 집 옆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나간 것이다. 돌아올 때는 큰 비닐봉지에 뭔가가 한가득 들어 있다. 아내의 얼굴 표정도 밝고 환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얼굴이 부은 채 방에서 나왔을 터였다. 아내의 건강에도 텃밭이 일조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계속 텃밭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텃밭을 포함한 주변 땅에 아파트 공사가 예정되..

참살이의꿈 2021.08.18

매아미 맵다 울고 / 이정신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 매아미 맵다 울고 / 이정신 매미가 맵다고 울든 쓰르라미가 쓰다고 울든 왜 내가 속을 끓여야 하지? 매미나 쓰르라미가 아니라 아직도 거기에 매여 있는 내 마음 탓인 것을. 열 받고 단톡방을 뛰쳐나왔던 내 속 좁음을 반성한다. 이 시조를 지은 이정신(李廷藎) 선생은 현감을 지낸 조선 영조 때 분이라고 한다. 호는 백회재(百悔齋)다. 백 번을 뉘우쳐야 맵고 쓴 바를 잊는 경지에 이른다고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시읽는기쁨 2021.01.11

개구리와 소년

연못가에서 놀던 소년들이 물속에 많은 개구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많은 개구리가 돌에 맞아 죽은 뒤, 용감한 개구리 한 마리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며 소년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그 잔인한 장난은 그만둬라! 너희는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우린 돌에 맞아 죽는단 말이야!" 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지불식간에 하는 행동이 타자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사이 이 이야기가 실감나게 들린다. 내가 개구리의 심정이 된 것 같아서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는 내 생활과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무려 10년 가까이 된다. 심할 때는 뭔가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좀 덜해지면 참고 지내보자고 하며 살아왔다.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제삼자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당부해도 별 소..

참살이의꿈 2020.07.09

바닷가 늙은 집 / 손세실리아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 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 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 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도 저렇듯 담담하고 의연히 쇠락하길 바라며 덜컥 입도(入島)를 결심하고 말았던 것인데요 이런 속내를 알아챈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우르르 덤으로 딸려왔습니다 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은 세금 한 푼 물지 않는 - 바닷가 늙은 집 / 손세실리아 작년 봄, 제주도에 갔을 때 '시인의 집'을 찾아갔었다. 검은 현무암이 양떼처럼 흩어져 있는 조천 바닷가에 시인의 집은 낮고 겸손하게 앉아 있었다. 덜컥 새집을 짓는 게 아니라 백 년 ..

시읽는기쁨 2020.02.24

종남별업 / 왕유

중년 이후에는 도를 더욱 좋아하여 만년에 종남산 기슭에 별장을 마련했네 흥이나면 홀로 그곳으로 찾아가나니 얼마나 좋은지는 오로지 나만이 알 뿐이라 걷고 또 걸어 물길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 가만히 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본다 우연히 산속에서 산골 노인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돌아가는 길 잊었다네 中歲頗好道 晩家南山수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치林수 談笑無還期 - 終南別業 / 王維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701~761)의 전원 예찬이다. 왕유는 종남산 기슭에 터를 마련하고 관료 노릇을 하는 틈틈이 은둔 생활의 정취를 즐겼다. 말년에는 별장을 짓고 속세에서 떠나 불교에 심취하며 초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시는 그 시절에 지은 것 같다. 세상사를 잊은 유유자적이 부럽다. 오두막일..

시읽는기쁨 2019.06.22

양평과 소나기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좃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양평에 '황순원 문학관'이 있는 것은 '소나기' 속의 이 구절 때문이란다. 그래서 서종면 수능리에는 문학관과 함께 소나기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소나기'에 나오는 장면을 형상화해서 문학공원으로 만들었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소나기를 재현한 것이다. "수숫단 속은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

사진속일상 2018.09.18

외톨이로 당당하게 살기

한겨레신문에서 박홍규 선생의 근황을 들었다. 선생의 삶과 글은 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한 바 있다. 생태주의 실천가라 할까, 비슷하게는 윤규병, 황대권 선생 같은 분들이 떠오른다. 선생은 올해 영남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경산의 시골집으로 이주한 것은 1999년이었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텃밭을 가꾸며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머리는 집에서 깎고, 수염도 한 달에 한 번 가위로 자른다. 목욕도 자주 하지 않고 비누만 쓴다. 부인도 평생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이 정한 땅의 소유 한계는 300평이다. 우리 국토에서 경작 가능한 땅을 7천만 인구로 나눴을 때 한 사람에게 300평 정도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집과 텃밭이 부인 몫을 합해 600평이다...

참살이의꿈 2018.08.28

전원락(田園樂) / 왕유

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花落家童未掃 鶯啼山客猶眠 붉은 복사꽃은 간밤 비 머금어 더 곱고 버들은 새벽 안개 속에 더욱 푸르나니 꽃잎 떨어지는데 아이는 쓸 생각을 않고 꾀꼬리 우는데도 손님은 그저 잠만 자네 - 전원에 사는 즐거움 / 왕유(王維) 김홍도의 '낮잠' 그림 중 하나를 본다. 나무 아래에 누워 낮잠을 자는 노인의 모습이 유유자적이다. 이 그림에 적힌 시가 왕유(王維, 701~761)의 '전원락(田園樂)' 연작시 7수 중 여섯 번째 작품이다. 시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면 앞의 나무는 버드나무, 뒤는 복사꽃이리라. 그림 속 노인이 부럽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시동 하나 데리고 자연에 묻혀 속세를 잊고 살아가는 모습이 선경이 따로 없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현대인의 로망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다. 나는 ..

시읽는기쁨 2018.06.16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안성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장석주 작가의 행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소박한 삶을 살자는 흐름은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소비 중심의 현대 문명에 대한 반감이자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작고 단순함에서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명이 주는 안락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며 불편하더라고 적게 소비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사는 것, 그게 내 방식의 삶이다. 하루의 보람은 사과 한 알 먹는 거, 세 시간 이상 햇볕을 쬐며 걷는 거, 8시간 정도 읽고 쓰는 거, 심심함 속에 머무는 거 따위다. 그리고 이타적 생각을 하며 살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 되기를 실천해야 삶이 온전해진다." 작가는 시골에 살며 그런 삶을 실천한..

읽고본느낌 2018.05.16

리틀 포레스트

맑고 따뜻한 영화다.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이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치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혜원은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뒤 고향의 빈집에 내려온다. 아르바이트로 버티던 서울 생활은 삭막했고, 남자 친구와는 삐걱거렸다. 시골집은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와 살았지만, 엄마는 혜원이 대학에 들어가자 본인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고향 마을에는 옛 친구들이 있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이 있다. 혜원은 눈동냥 했던 엄마의 요리를 따라 하며 엄마와의 추억과 함께하면서 행복을 찾는다. 이런 자연주의 삶을 뜬구름 잡는다거나 도피적이라는 등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신주의에 투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자연주의 삶이다. 재벌의 갑질을 비난하지만 내일이면 대한항공을..

읽고본느낌 2018.04.23

충북선 / 정용기

다음 생에는 충북선 기찻길 가까운 산골짜기에 볕바른 집을 마련해야지. 3, 8일에 서는 제천 장날이면 조치원 오송 충주를 지나오는 기차를 타고 터키석 반지를 낀 고운 여자랑 제천 역전시장을 가야지. 무쇠 솥에서 끓여내는 국밥을 사 먹고 돌아다니다가 또 출출해지면 수수부꾸미를 사 먹어야지. 태백산맥을 넘어온 가자미를 살까 어떤 할미의 깐 도라지를 살까 기웃거리다가 꽃봉오리 맺힌 야래향 화분 하나 사고 귀가 쫑긋한 강아지도 한 마리 사서 안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야지. 손잡고 창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다가 삼탄역이나 달천역쯤에 내려서 집으로 와야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산그늘로 숨어들어야지. 소쩍새 소리 아련한 밤이면 둘이 나란히 엎드려 시집을 읽을까,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을까. 어쨌거나 다음 생에..

시읽는기쁨 2018.04.22

빈집

고령사회가 되면서 일본의 빈집이 800만 채가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체 주택 수 대비 비율로는 13.5%에 해당한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2030년에는 전체의 1/3이 빈집으로 변한다고 예상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인구 감소로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이미 수두룩하다.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젊은 사람이 농촌에서 살 리가 없다. 수입, 자녀교육, 문화생활 등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귀농 지원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농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었다. 도시인은 전원생활을 그리워한다.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2촌'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삶은 도시인의 로망이다. 그러나 누구나 세..

참살이의꿈 2017.06.17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옛날 여름 저녁 풍경이 담박하게 펼쳐진다. 평안도 토속어가 감칠 맛 나는 백석 시다. 이때 도시라면 창문 닫아걸고 에어컨을 켤 것이다. 어찌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당 멍석자리에 누워 모깃불 연기 맡으며 하늘의 별을 쳐다보던 그때가 아련하다. 할머니의 부채 바람이 낯을 간지렸고. 어른들의 알 듯 모를 듯한 세상..

시읽는기쁨 2016.07.18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다

여주행을 결단하기 전에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사람의 말은 무시했지만 책은 달랐을까? 그래도 번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때는 이미 콩깍지가 끼어서 무엇으로도 마음을 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자들은 퇴직 즈음이 되면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살아보기를 꿈꾼다. '인생 2막'이니 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도록 부추김도 받는다. 대중매체에는 전원에서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넘쳐난다. 그런 전원생활 예찬론 속에서 는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찬물을 끼얹는다. 시골의 겉과 속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은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다. 본인도 시골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니 체험적 충고인 셈이다. 너무 한쪽 면으로만 쏠리는 데 대한 경고 메시지다. 균형적 시각을 가지는 데 분명 도움..

읽고본느낌 2015.09.29

퇴곡리 반딧불이

유소림 씨 글은 정기구독하고 있는 을 통해 접하고 있다. 읽을 때마다 글을 무척 잘 쓰시는구나, 감탄하게 된다. 여러 해 전에는 퇴곡리에서 농사짓는 얘기였는데 요사이는 불교적 깨달음에 대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는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지은이는 2005년에 부모가 지내던 퇴곡리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책 내용 대부분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단순한 전원 찬가가 아니라 자연에서 얻은 깨달음과 통찰을 담고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존중이 체화된 분인 것 같다. 뱀은 누구나 징그럽게 생각하는데 지은이는 마당에 사는 뱀과도 동무가 되는 길을 말한다. 꽃과 새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뱀과 거미도 마찬가지인 경지는 보통이 아니다. 밤골 생활을 할 ..

읽고본느낌 2014.12.15

어제를 향해 걷다

가고 싶은 해외여행지 일순위가 일본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屋久島]라는 섬이다. 수천 년 된 나무들이 자라는 미야노우라 산에는 수령이 7,200년이나 되는 조몬 삼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찾아뵙고 경배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조몬 삼나무를 찾아가는 다큐영화 '시간의 숲'이 2년 전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리고 야쿠시마는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2]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마침 선생이 쓴 산문집 를 읽었다. 표지에는 선생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적혀 있다. "시인이자 농부였고 철학자이기도 했던 야마오 산세이는 졸업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며 와세다 대학 3학년 때 학업을 접고, 1960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대안 문화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읽고본느낌 2014.06.02

한정록

빗소리를 들으며 을 읽는다. 은 허균(許筠)이 42세 때, 중국의 고서들에서 선비들의 한적한 삶을 그린 글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당시는 어렵게 진출했던 공직에서 쫓겨나는 등 허균으로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아마 그 자신 은둔의 삶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서(序)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 찬찬하지 못하였고, 또 부형父兄이나 스승 또는 훈장이 없어서 예법 있는 행동이 없었다. 또 조그마한 기예技藝는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하지도 못하면서도 스물한 살에 상투를 싸매고 과거를 보아 조정에 나갔다. 그러나 경박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에 당세 권세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나는 마침내 노장老莊이나 불교 같은 데로 도피하여, 형해形骸를 벗어나고 득실得失을 ..

읽고본느낌 2012.09.13

더 바랄 게 없는 삶

책장에서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1)의 책 한 권을 꺼내 다시 읽어 본다. 야마오 산세이 하면 그분이 살았던 야쿠 섬과 7,200살의 조몬삼나무가 떠오른다. 에 이 나무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나무를 만나러 야쿠 섬에 가리라고 다짐했던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은 선생이 야쿠 섬에 살면서 쓴 에세이집이다. 선생은 1960년대부터 대안문화공동체 운동을 하다가 1977년에 가족과 함께 섬에 들어와 살았다.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고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시와 글을 발표했다. 삼라만상 온갖 것이 모두 신성한 존재임을 깨닫고 지구의 미래와 희망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이었다. 을 통해 그런 선생의 생각과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가미미에 군이 배에서 일을 하다가 실수로 식칼을 바다에 떨구고..

읽고본느낌 2012.09.04

공상 / 구중서

고향 마을 외진 터에 빈집 하나 있을까 종중 땅에 있던 집 맡아서 들어가 헌 데를 황토로 발라 누울 방을 마련할까 흙 마당 울 밑에 아욱이랑 호박 심고 여기저기 나는 잡초 자라게 버려두고 봉당 위 마루에 앉아 내다보면 좋겠네 뒷산의 어느 골짝 샘솟는데 있으련만 물길을 끌어대면 곡수연 터 되려나 도회의 친우가 오면 술잔을 띄워볼까 - 공상 / 구중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을 산책하다가 만난 시다. 요사이 내 공상과 닮아 반가웠다.어디 외진 터에 낡은 집이라도 있지 않을까 열심히 두리번거리지만 마음을 당기는 데는 아직 없다.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는 내 앞에 나타나리라. 인적 끊긴 산속에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의 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할까? 제발 그래 보고 싶다.

시읽는기쁨 2012.06.20

소백산 친구 집

단양군 대강면 소백산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친구네 집을 삼삼회 회원들과 찾아갔다. 수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준비하더니 작년 퇴직 후에는 가족과 떨어져 거의 상주하며 살고 있다. 좁은 비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 산골은 생각보다 깊었다. 휴대폰도 연결되지 않는 오지였다. 깊은 산중이어선지 터의 경사가 급한 게 흠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산세도 험했다. 어느 건축가의 얘기를 들으니 사람들이 고르는 터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차분한 사람은 차분한 터를 고르더라는 것이다.이 터가 친구에게는 잘 맞을 것도 같다. 소형 이동식 주택은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전기 패널로 난방을 하고 화장실은 밖에 따로 있었다. 취사는 소형 가스통을 충전해 쓰고, 동네와 왕래할 때는 작..

사진속일상 2012.06.10

내가 꿈꾸는 집

나는 양지바른 산자락 아래에 있는 작고 조용한 집을 꿈꾼다. 터는 100평 정도면 넉넉하겠다. 거기에 10평대의 작은 집을 앉히고 싶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집이다. 마당과 텃밭이 있고, 화단도 있다. 집 둘레에는 나무를 심겠다. 귀퉁이에는 항아리 몇 개가 얌전하게 앉은 장독대도 놓을 것이다. 다른 건 양보할 수 있으나 소음은 안 된다. 이런 꿈을 꾸는 건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싫어하는 첫째 이유가 층간 소음 때문이다. 아파트는 외부 소음은 잘 차단하지만 내부 소음에는 속수무책이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 와서는 더 싫어하게 되었다. 전에 여주 밤골에서 살 때는 이웃집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젠 제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

참살이의꿈 2012.04.18

다시 꿈꾸기

여기로 이사 오면서사오년 정도는 살 예정이었다. 도시와 산골의 중간 단계에 필요한 휴식 시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자꾸 탈출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전원병(田園病)이 도진 것이다.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전원과 시골살이에 관련된 사이트가 수십 개 등록되어 있다. 아내는 전에 뜨거운 맛을 봤으면 됐지 또 혼나려고 하느냐며 걱정이 크다. 내 앞에는 네 갈래의 길이 있다. 첫째, 조용한 시골 마을에 터를 구해 조그만 흙집을 직접 짓는다. 터는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 넓이는 200평 내외면 좋겠다. 위치는 이곳에서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충청북도쯤이 적당할 것 같다. 가까울수록 좋지만 경기도는 땅값이 너무 비싸다. 집은 10평 정도면 된다. 방은 반드시 온돌이어야 한다. 이미 ..

참살이의꿈 2012.03.21

핸드메이드 라이프

며칠 전에 마트에서 산 물건이 한 보따리 배달되었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좋은 세상이다!" 방에 앉아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을 하면 약속된 시간에 집에까지 갖다 준다. 너무 편하다. 그러나 아내의 '좋은 세상'이라는 말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말 좋은 세상일까?'라는 의문과,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두려움이 '좋은 세상'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가능하면 대형 마트를 이용 안 하려 하지만 가격과 편리함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도시에 살게 되면 머리와 몸이 따로따로 놀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살기 좋아지고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전보다 더 공허해졌다. 뭔가 근본에서 멀어진 것 같고,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때에 ..

읽고본느낌 2012.03.18

[펌] 전원생활 선배의 충고

첫째, 전원주택을투기의 대상으로 삼지마라! 전원생활이란?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윤기를 나게 하는 생활,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생활, 나와 나의 가족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 곧 요즘 유행하고 있는 웰빙이다. 웰빙이란 ? 건강하고, 안락하고, 만족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란다. 행복, 안녕, 복지 등의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로서,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보다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것이다. 이 용어는 어쩌면 전원생활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용어다. 그래서 나와 나의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또 유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행복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참살이의꿈 20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