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36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내 삶의 에너지는 걸을 때 나온다. 길은 호젓한 산길이 좋다. 그리고 동행 없이 홀로여야 한다. 이 세 가지 박자가 맞으면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듯 분출한다.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산길에는 사람 대신 풀과 나무 친구가 있다. 또한 꽃 친구도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는 말 없어도 말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조용한 산책을 위해서는 산은 낮으며 부드럽고, 길은 익숙해야 좋다. 그래서 집 뒷산이야말로 제격이다.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길이다. 그동안에 한두 사람을..

참살이의꿈 2013.05.10

임류의 자족

따뜻한 봄날에 백살이 다 된 임류라는 노인이 겨울에 입던 갖옷을 그대로 걸치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이삭을 밭이랑에서 주우며 노래를 부르다 걸어가다 하였다. 이것을 위나라로 가다가 벌판을 바라보던 공자가 보고는 뒤따라 오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노인은 말을 걸어 볼 만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가서 말을 해 보겠느냐?" 말 잘 하는 자공이 자청하여 밭 언덕을 가로질러 노인에게 가서 측은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렇게 이삭을 주우며 노래를 부르시는데, 선생께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전혀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임류는 들은 척도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불렀다. 자공 또한 노인이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말하였다 "내게 후회..

참살이의꿈 2013.04.29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 "돈만 있으면 일 안 하고 놀 텐데." 농담하듯 흔히 내뱉는 이런 말들이 빈말이라는 건 퇴직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아무래도 현역에서 떠난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이 마땅한 일거리에 관한 것이다. 먹고 사는 것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일을 찾는다. 여기서 일이란 어딘가에 소속되고 규칙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사람들은 일을 안 할까? 그래도 대부분은 규칙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역시 여유가 생긴다면 일없는 공허를 견디지 못 할 것이다. 평소에 열심히 일 한 사람들이 일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렵다. 노는..

참살이의꿈 2013.04.22

나는 누구인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독백이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신분 세탁을 하고 시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데서 장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고백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모든 것을 잃는다. 숨기면 시장직을 유지하며 잘 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양심의 갈등으로 번민할 때 그가 스스로 묻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 인식에 눈뜰 때 던지는 질문이다. 사춘기 열병의 원인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화두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으로 주..

참살이의꿈 2013.04.09

희망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하자 아키바는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져 버려 그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자야만 했다. 그날 밤 여우가 와서 그의 개를 죽여 버렸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갖고 혼자서 터벅터벅 출발했다. 어떤 마을 근처에 다다랐는데,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밤 도둑이 습격하여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램프가 바람에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도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또 개가 살아 있었더..

참살이의꿈 2013.04.03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서울 성동구에 응봉산이 있다.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산이다. 산 위에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개나리가 만개하면 장관이다. 응봉산에는 개나리만 산다. 저절로 그리되었을 리는 없고, 인위적으로 가꾼 탓이다. 색다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자꾸 보면 뭔가 어색하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자라고 동물이 뛰놀아야 숲이다.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숲에는 토끼도 살지만 늑대도 산다. 그래야 숲이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고, 어떤 것은 배척하려 한다. 늑대는 인간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동물이다. 밤에는 인가에 내려와 가축도 죽인다. 차라리 늑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늑대가 사라지면..

참살이의꿈 2013.03.20

멘토와 힐링의 시대

전에 현직에 있었을 때 신임 교사의 멘토가 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했더니 그냥 형식상 보고만 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경력 교사가 신임 교사와 멘토-멘티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교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라는 발상 같았다.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굳이 멘토라는 말을 써가며 드러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던 게 사실이다. 멘토와 힐링이 유행인 시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선배로서의 스승이 필요하고, 상처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어느 시대인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요사이 들어 멘토와 힐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멘토와 힐링의 대상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아프고 방황하고 있다는 증좌인지 모른다. 제대..

참살이의꿈 2013.03.14

용서할 수 없는 습관에서 떠나라

1년 가까이 목욕탕엘 안 가고 있다. 귀 안에 있는 염증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이비인후과를 들락거렸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낫는 것 같다가도 이내 재발한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아주 상극이다. 그래서 병원 치료보다는 내가 고쳐보자, 하고 목욕탕 출입을 끊었다. 병원에서 쓰는 적외선 온열기도 샀다. 집에서 샤워도 드물게 하지만, 하고 나면 적외선으로 귀를 말린다. 덕분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목욕탕에 가질 않으니 때를 밀 일이 없다. 처음에는 몸에 뭐가 기어다니는듯 스물거렸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도리어 때를 미는 게 이상해 보인다. 이태리 타올을 사용하는 게 기분은 개운하지만 피부에는 좋을 것 같지 않다. 도살장의 털 뽑힌 돼지처럼 때밀이 앞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되니 좋은 점이 더 많다. 반대로 ..

참살이의꿈 2013.02.18

경쟁에서 벗어나기

이 세상을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경쟁이라는 늪으로부터 한 발을 뺀다면 탐욕으로 작동되는 이 세상의 시스템은 저절로 무너지지 않을까? 경쟁에 관한 강수돌 님의 글을 요약하다. ----------------------------------------------------- 경쟁은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고 있다. 여러가지 폐해가 있지만 발전을 위해 경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경쟁 상황에 빠지면 결코 행복하게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스트레스를 높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면, 경쟁의 필연성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진 결과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

참살이의꿈 2013.02.06

교육과 경쟁

- 학교 다니면서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나요? "네. 체육시간, 특히 100m 달리기 할 때요. 그 외에는 들은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영어를 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죠? 궁금하네요." - 시험(test)을 쳐서 성적(grade)을 매겨 등수(ranking)를 내어 경쟁의 우위를 선별하지요. 핀란드에서는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습니다. 등수라고 하셨나요? 등수가 뭔가요?" - 네? 등수 모르세요? 시험 성적에 따라 1등, 2등, 3등, 꼴찌를 가리는 것 말입니다. "학교가 시험을 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등수는 왜 가리나요? 시험을 치는 이유는 학생이 해당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예를 들어,..

참살이의꿈 2013.01.27

감탄과 감동

감탄;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 감동;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 감탄과 감동은 사전적으로 비슷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는데 차이가 있다. 깊이 느끼는 게 감탄이라면 더 나아가 마음마저 움직이는 게 감동이다. 감탄은 감탄사가 나오지만, 감동은 아무 소리가 없다. 예를 들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며 감탄한다. 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규모 블록버스터보다는 사소한 일상을 다룬 저예산 영화에서 오히려 감동을 할 때가 더 많다. 멋지고 웅장한 풍경 앞에서는 감탄을 한다. 반면에 산길을 걷다가 발견한 작은 꽃 하나에는 감동을 받는다. 물론 이 둘이 꼭 구분되는 건 아니다. 감탄과 감동은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

참살이의꿈 2013.01.20

개구리 세 마리

필리핀 민중교육의 역사와 내용을 다룬 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이야기를 만났다. 개구리 세 마리가 나오는 이 우화는 '쌍방향의 상호작용 이야기'로 민중교육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 및 타인과의 관계, 깨달음에 대해서 숙고하게 하는 내용이다. '개구리 세 마리'는 진리를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우물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와 같다. 각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게 전부라 믿는다. 누가 옳을까? 세 마리 개구리는 결국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용기로 우물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좁은 고정관념을 벗어났다. 민중교육의 역할은 사람들이 자신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볼 수 있도록 하고, 개인 또는 집단의 패러다임 전환을 돕는 일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사람..

참살이의꿈 2013.01.05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새해에는 우리가 모두 선한 마음 짓기를 소망한다. 사람이 낼 수 있는 마음 중에 제일 아름다운 건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경쟁과 시기, 질투만이 인간의 본성은 아니다. 워낙 생존경쟁 시스템에 물들어 있다 보니 한쪽 측면만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복을 짓고 싶다면 우선 마음을 잘 써야 한다. 숨어 있는 선한 본성을 살려내자.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듯 남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지도자나 제도나 법이 좋은 세상을 가져다줄까? 아니다. 사람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 복보다 남의 복을 먼저 빌어준다면 하느님의 나라, 부처님의 나라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맹자의 사단(四端) 중 사양지심(辭讓之心)에 가까울 것 같다. 현대 ..

참살이의꿈 2013.01.01

대동사회

(禮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옛날 공자께서 신농씨 제사에 참석하시고 나서 성문 위에서 쉬다가 서글프게 탄식하셨다. 자유가 곁에 있다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탄식하십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도(大道)가 행해졌을 때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었고 어질고 능력 있는 자를 뽑아서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을 닦게 하니 사람들은 그 부모만을 홀로 부모라 여기지 않았고, 그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게 했으며, 젊은이는 다 할 일이 있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었으며, 과부 홀아비 병든 자를 불쌍히 여겨서 다 봉양했다. 남자는 직업이 있고 여자는 시집갈 자리가 있었으며,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몸소 일하지 않..

참살이의꿈 2012.12.25

미친 나라

어느 중견 회사에 다니는 조카로부터 회사 얘기를 가끔 듣는다. 조카를 보면 우리나라의 회사원 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실감한다. 거의 매일 야근이어서 밤 10시 전에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고, 심지어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휴일에도 출근한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살인적인 근무 환경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 본인도 말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회사 동료들도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랬다가는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듣는 범위에서 이 회사 사원들은 거의 현대판 노예에 가깝다. 법에 규정된 근로 조건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특수한 몇몇 회사를 제외하곤 우리나라 대부분의 근무 여건이 비슷할 것이..

참살이의꿈 2012.12.18

아로파

최근에 SBS TV에서 꽤 괜찮은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제목이 '최후의 제국'[The Last Capitalism]인데 병든 자본주의를 고발하면서 대안을 찾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번 주에 방송된 4부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 있는 '아누타'라는 작은 섬을 소개했다. 아누타는 24가구 300명의 원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낙원 같은 섬이다. 300년 전에는 이 섬에서도 권력 투쟁이 일어나 고작 4명만이 생존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이들은 협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로파'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아로파'는 사랑, 배려, 돌봄, 나눔 등의 뜻을 가진 단어다. 아로파가 최고의 가치가 된 후 섬은 평화의 섬이 되었다. 물질이 아닌 사람 우선의 공동체다. 농작물이나 수산물은 골고루 공평하게 나눈..

참살이의꿈 2012.12.14

노년에 필요한 것

노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자와 남자에게 물어보았단다. 여자; 돈, 건강, 친구, 딸 남자; 아내, 배우자, 집사람, 처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지만 요즈음 세태를 드러내 주는 말이다. 남자로서는 씁쓰름하다. 한 모임에서 이런 걸 소재로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여자분이 "도대체 남자의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을 해서 당혹했던 적도 있었다. 대체로 보면 나이가 들수록 여자는 활발하고 독립적이 된다. 적극적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다. 그러나 남자는 늙은 수컷 사자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일이 모든 것을 덮어 주었다. 일과 돈을 매개로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이라는 보호막이 벗겨지면 발가벗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게 불안하니까 끝없이 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대우받았던 자신의 ..

참살이의꿈 2012.12.09

각비(覺非)

각비(覺非)란 직역하면 '그릇됨을 깨닫다'는 뜻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온다. 각비(覺非)는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깨달았노라[覺今是而昨非]'에서 첫 자와 마지막 자를 딴 것이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추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基未遠 覺今是而昨非.... 돌아가야지 논밭이 묵어 가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 이제껏 마음은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는가 지난날은 뉘우쳐봐야 바뀔 게 없고 이제 앞으로나 그르치는 일 없으리 길은 어긋났지만 그리 멀어진 것은 아니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깨달았노라.... 도연명은 호구지책으로 나이 마흔에 지방의 말단 관직을 하나 얻었다. 그러나 관리 노릇은 천성에 맞지..

참살이의꿈 2012.11.29

밤 한 톨을 다투는 세상

저녁 무렵에 숲속을 거닐다가 우연히 어떤 어린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숨이 넘어가듯 울어대며 참새처럼 수없이 팔짝팔짝 뛰고 있어서 마치 여러 개의 송곳으로 뼛속을 찌르는 듯 방망이로 심장을 마구 두들기는 듯 비참하고 절박했다. 어린애는 잠깐 사이에 목숨이 끊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나무 아래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아아! 세상에 이 아이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저 벼슬을 잃고 권세를 잃은 사람들, 재화를 손해본 사람들과 자손을 잃고 거의 죽게 된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달관한 경지에서 본다면, 다 밤 한 톨에 울고 웃는 것과 같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릴 적에는 목숨보다 더..

참살이의꿈 2012.11.24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맞을 때 등교하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컴퓨터를 열고 밤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적을 때 "아, 잘 잤다!"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릴 때 베란다에 새가 찾아와 노래할 때 달콤한 커피향이 코 끝을 간지릴 때 밥을 먹으며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 들 때 설거지를 하고 나서 깨끗해진 부엌을 바라볼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젊은이 앞에 서지 않을 때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거실에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 고독한 은자의 삶에 대한 글을 읽을 때 홀로 산길을 걸을 때 전화기 화면에 다정한 친구 이름이 찍혀 있을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미소가 떠오를 때 주변 소음이 사라지고 사방이 고요해질 때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바라볼 때 윗집 아이들의 뛰는 소리에 "크는..

참살이의꿈 2012.11.16

나무늘보

지금도 사람들은 말한다. 하는 일 없이 심심해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러면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 빈둥거리는 게 일이라고 변명한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세상에서 말하는 일이 없이도 나는 충분히 재미나다. 사람들은 각자 닮은 동물의 속성이 있다. 나는 동물 중에서도 나무늘보에 가깝다. 나무늘보는 게으름의 대명사다. 하루에 18시간을 잔다고 한다. 나도 하루 10시간을 자니 사람 나무늘보과가 맞다. 나무늘보가 나뭇가지 하나면 만족하듯 나도 작은 방과 책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무늘보 선생의 유유자적을 닮자면 아직 멀었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나무늘보에 더 가까워진다. 얼마나 답답한지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앞 동네에 00 있재? 대구에 살고 있는데 가끔 고향에 오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더라. ..

참살이의꿈 2012.11.13

유배지의 여덟 취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를 읽고 있다. 7세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해 74세 되던 해에 아내와의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시가 마지막이었다니 선생의 일생은 시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의 시를 통해 내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고상한 인품도 느껴볼 수 있어서 좋다. 유배지에서 쓴 시 중에 '유배지의 여덟 취미'라는 게 눈에 띈다.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선생만큼 아름답게 승화시킨 분도 없을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외에 선생은 유배지에서 어떤 취미를 가지고 살았을까? '유배지에서의 여덟 취미' - 바람에 읊조리기, 달구경, 구름 보기, 비 바라기, 산에 오르기, 물가에 가기, 꽃구경, 버드나무 완상하기 - 를 보며 선생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읽는다. 바람에 읊조리기 서풍은 집을 지나오고 동..

참살이의꿈 2012.11.01

저녁이 있는 삶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한 후보의 구호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구호로만 치면 단연 대통령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저녁이 있는 삶'만큼 우리의 고달픈 현실을 위무해 줄 말이 있을까 싶다. 회사에 다니는 자식을 보면 이게 사람이 사는 삶인가 싶어진다. 거의 매일 야근에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이다. 부부가 맞벌이하는데 둘 다 사정이 비슷하다. 즐거운 일이라도 밤낮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짜증이 안 생길 리 없다. 얘기를 들어보면 받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평일에 가정생활이 불가능한 건 물론 어떤 때는 주말도 없다. 도대체 뭘 위해서 일을 시키고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한은 총재가 '야근도 축복'이라는 말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변명은 했..

참살이의꿈 2012.10.19

우리는 무엇으로 깊이를 얻을 것인가

얼마전 KBS TV '아침마당'에 소설가 이철환 님이 출연하여 '우리는 무엇으로 깊이를 얻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님의 모습이나 말에서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뒤의 맑고 깊은 향기가 느껴졌다. 연약한 나무 뿌리가 어두운 땅속으로 깊고 넓게 뻗어갈 때 땅 위의 나무는 키가 크고 무성해진다. 무성한 잎사귀와 열매를 위해서는 어둠과 아픔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님은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깊이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감명을 받았던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첫째, 때로는 나의 기준을 버린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자기 견해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 생각과 기준에 매여 있는 사람은 마치 끈으로 묶여 있는 강아지와 같다. 좁은 말뚝 주위가 강아지의 세계다. 고정관념이란..

참살이의꿈 2012.10.08

긴 싸움이 끝나다

국세청과 벌인 긴 송사가 끝났다. 재작년 여름에 세무서에서 밤골 생활에 대해 중과세를 한다는 통고가 왔으니, 그때로부터 2년이 넘게 걸린 다툼이었다. 세무서에 과세적부심 심사를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했고, 이어서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역시 기각당했다.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이겼으나 피고가 항소를 해서 2심까지 갔다. 고등법원에서도 이겨서 끝나는가 했더니 끈질긴 국세청은 대법원에까지 상고를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을 줄은 예상을 못 했다. 그런데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중에 부과한 세금을 반환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빼앗겼던 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졌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국세심판원과 행정법원, 고등법원을 거치며 여러 번 법정에 출석했..

참살이의꿈 2012.09.25

핵발전 없는 세상을 위한 우리의 실천

천주교 창조보존연대에서 '창조 질서 거스르는 핵발전소, 이제 그만'이라는 제목으로 핵발전을 반대하는 팸플릿을 냈다. 만화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는데 내용이 알차다. 마침 강론에서는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독일에 유학 중인 어느 신부님이 독일 교수로부터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장 배경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80, 90년대에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당시는 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던 시기였다. 가톨릭 교회는 국민의 열망에 호응하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런 가톨릭의 입장이 국민의 호감을 샀고, 많은 사람이 천주교에 입교한 이유였다는 게 신부님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독일 교수는 그게 정답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정답이 ..

참살이의꿈 2012.09.24

행복 감성

행복을 누릴 줄 아는 것도 개인의 능력이다. 비슷한 환경인데도 어떤 사람은 감사하고 행복해하는데 어떤 사람은 힘들고 불행하다며 징징댄다. 행복이 객관적 상황에 좌우되기보다는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많은 연구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행복을 발견하고 향유할 줄 아는 능력을 '행복 감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행복 감성이 발달한 사람은 밝고 풍요로운 인생을 산다. 선천적으로 행복 감성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런 역할을 하는 행복 유전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행복할 뿐만 아니라 옆 사람에게도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별다르게 노력하지 않아도 주위를 밝고 환하게 변화시킨다. 반면에 행복 감성이 부족한 사람은 본인이 피곤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도 짜증 나게 한다. 사람들이 누구를 ..

참살이의꿈 2012.09.03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매우 슬펐다. 공자가 하인에게 말했다. "이 곡소리는 슬프기는 하지만 누군가 죽어 상을 당한 슬픔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나아가니 어떤 사람이 낫과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제 이름은 구오자(丘吾子)입니다." "당신은 지금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슬프게 곡을 하고 있소?" 공자의 질문에 구오자가 대답했다. "제게는 살아감에 있어 세 가지의 실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오늘에야 뒤늦게 깨달았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를 슬퍼하여 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다시 곡을 시작하는 구오자를 향해 물었다. "세 가지의 실책이라니요. 내게 숨김없이 말해주시기..

참살이의꿈 2012.08.30

이순

공자님은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말 그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어떤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칭찬이나 비난이 똑같이 들린다.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말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공자는 천하를 유랑하며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었다. 숱한 곤경을 당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60대는 그분이 한창 주유천하 하던 시기다. 68세 때 고향 곡부에 돌아와 교육 사업에 전념한다.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귀가 순해졌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공자님의 이순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다. 내 나이도 예순이다. 그러나 나는 귀가 순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예민해지니 어찌 된 일인가. 천..

참살이의꿈 2012.08.20

중산층의 조건

우리나라와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을 비교한 걸 보았다. 중산층이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상, 중, 하를 가르는 것은 경제적 능력이다. 그러나 선진국은 정신적인 부분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더 강조한다. 국민 의식이 다르다. 언제까지 경제 타령만 할 것인가, 아직도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 한국의 중산층 기준(직장인 대상 설문 결과)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cc 이상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몇 차례 이상 다닐 것 *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퐁피두 대통령이 '카르테 드비'로 정한 기준)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를 할 수 있을..

참살이의꿈 201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