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36

늙어가는 징조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베란다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드문드문 사람이 오가고, 가끔 차들이 지나갈 뿐인 길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로 분주해진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니 바깥의 소리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생활 소음을 들으며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구경거리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제일 조건은 절간처럼 조용해야 했다. 에어컨을 들여놓은 것도 더위보다는 소음 차단이 주목적이었다. 산과 마주한 옆 동에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다. 너무 조용한 것이 싫다고, 밤이 되어 깜깜한 숲을 보는 게 무섭다고 한 그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적막을 좋아했고 작은 소음에도 노이로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두 달 가까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경험을 ..

참살이의꿈 2015.06.16

즉문즉설

한 달 가까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다. 그동안의 조건이 이런 내용과 가까이하는데 알맞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에 같이 아파하기도 하고, 스님의 기상천외한 답변에 인식의 전환이 생기는 경험도 했다. 팟캐스트에 저장되어 있는 법문을 600회 정도 들었으니 바깥나들이를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준 고마운 선물이었다. 스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떤 조건이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주어진 과보를 인정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남을 변화시키려 하는 데서 번민이 생긴다. 우선 내가 변해야 한다. 미워했던 상대에 대한 참회에서 치유가 시작..

참살이의꿈 2015.06.08

인생의 주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렴에 걸렸다. 고열에 기침이 계속 이어졌다. 위의 형을 잃은 뒤라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낫지 않자 어머니는 병원 가까운 곳에 방을 하나 얻어 치료에 매달렸다.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작은 읍이었다. 병실이 없으니 매일 병원으로 왕래해야 했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도시로 나갈 형편도 못 되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서울에 사는 친척이 소식을 듣고 페니실린을 구해서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페니실린은 내 목숨을 살린 기적의 약이 되었다. 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페니실린 주사를 맞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열이 내렸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이 나에게도 구세주가 된 셈이다. 무슨 ..

참살이의꿈 2015.05.24

낯설다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이 낯설어진다. 기간이 길고 혼자 떠난 여행일수록 그렇다. 익숙한 사물과 사람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고리타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신선한 바람이 필요하다. 좋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책을 읽는가? 독서는 관습과 타성에 젖은 뇌를 깨어나게 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의미에서 독서는 여행과 닮았다.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키워드를 둘은 내장하고 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면의 보물찾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폐렴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질병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걸 발견했다. 아픈 경험 역시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병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독서나 여..

참살이의꿈 2015.05.10

일은 언제까지 필요할까

퇴직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다가 갑자기 손을 놓게 되었을 때 대부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버거워한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주어진 일을 해야 편안하게 느끼는 게 습관이 되었다. 설사 일을 구하지 않더라도 규칙적인 일과를 가져야 제대로 사는 거라고 착각을 한다. 일없이 빈둥거린다는 건 뭔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여긴다. 정시에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게 체질화가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퇴직 후 자유 시간이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바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취미 활동도 거의 전투 수준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거다. 이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생기는 슬픈 자화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저 성..

참살이의꿈 2015.04.15

사람 꼴

늙어가니 마음이 더 옹졸해진다. 나이를 먹으면 원숙해지고 관대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나를 돌아보면 증명이 된다. 마음 꼬라지 하고는, 라며 혀를 찰 일이 잦다. 그중의 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일도 눈을 찌푸리게 된다. 사람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라는 그물망이 더 촘촘해졌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휴대폰으로 통화하거나 소음을 내는 사람이 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런 소음이 들리면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한마디 한다. 최근에 그런 경우가 두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적을 하고는 바로 후회를 한다. 떨떠..

참살이의꿈 2015.03.29

종교 단상

신앙에서 속물성은 초월성이 강조될수록 두드러진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가 진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근본주의일수록 속물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절대 권력이 부패하듯 절대 진리에 대한 맹신은 인간을 속물화하고 타락시킨다. 집단화되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기독교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IS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극단은 극단과 통한다. 종교에서도 아예 세상을 버리거나, 아니면 세상에 더 집착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우상이 된다. 맘몬 숭배가 종교의식을 빌려 성행하는 세상이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계를 하게 된다. 대단히 속물화되어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은 자신의 속물성에 면죄부를 주는 도구다. 한국 교회는 경제 성장과 쌍두..

참살이의꿈 2015.03.15

우리가 남이가

우리 민족은 정이 많다고 한다. 따스한 인정은 조상이 물려준 훌륭한 유산이다. 내 어릴 때만 보아도 집에 찾아온 객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식사할 때라면 밥을 함께 나누어 먹었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곡식 한 줌이라도 꼭 주어서 보냈다. 가난했지만 나누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물이 들면서 이런 공동체 의식은 폐쇄적으로 변했다.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만 주고받기로 바뀌었다. 울타리 밖은 남이며 경쟁 대상으로 배척된다. 패거리 문화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끼리끼리 똘똘 뭉치고 집단의 목표에 개인은 매몰된다. 이런 집단은 가족을 내세우는 게 특징이다. "우리가 남이가"도 같은 부류다. 직장에 다니던 어느 해 옆 반의 급훈이 '우리는..

참살이의꿈 2015.03.09

아름다운 가난

"올해 초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아들과 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아야 한다는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물 위에 산다는 수상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수상촌에 가기 위한 배를 타기 전, 여행가이드는 그곳 마을 아이들에게 나줘 주기 위해서 일행들에게 과자를 몇 박스 사도록 했다. 우리는 당연히 마을의 학교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 과자를 기부하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배가 수상촌 초입에 들어갈 즈음 그 가이드는 일행에게 과자 박스를 뜯어서 한 봉지씩 던지도록 했다. 아이들은 줄지어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참살이의꿈 2015.02.26

힘 빼기

어느 운동이나 배울 때는 몸의 힘을 빼라는 주의를 제일 많이 듣는다. 대개 초보자일수록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뻣뻣하다. 그래서는 공의 궤적이 잘 나올 리 없다. 요사이는 가끔 당구를 치는데 고수로부터 어깨에 힘을 주지 말라는 나무람을 자주 듣는다. 쉬운 것 같아도 잘 안 된다. 그게 수월하게 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뜻이리라. 머리를 깎기 위해 가는 미용실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누워 머리를 감을 때마다 목에 힘을 빼라는 부탁을 듣는다. 이발소에서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지만 미용실에서는 반대다. 해 왔던 것과 다르니 무의식적으로 목에 힘을 주는 것 같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긴장되거나 상황이 불편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마음..

참살이의꿈 2015.02.20

고요한 밤

하루 중 제일 귀한 시간이 한밤중에 침대에 들 때다. 자정이 지나 위층 집이 잠이 들면 주변은 완벽히 조용해진다.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는 소리는 없다. 마치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듯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 같다. 이 시간이야말로 일상에서의 해방감으로 충만해지는 때다. 존재의 근원에 닿은 느낌 같기도 하다. 아, 나는 행복하구나, 라는 말이 절로 속삭여진다. 잡념도 사라지고 하루의 반성도 필요 없다. 그저 있는 자체로 기쁨이다. 그렇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나에게는 하루의 소란을 잠재워 줄 이 절대 고요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요 속에서 낮의 어지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마음이 맑고 편안해진다. 내면의 침묵을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가 이때다. 바깥 핑계를 대지만 ..

참살이의꿈 2015.02.09

정신의 유연성

나이 들수록 경계해야 할 일이 생각이 굳어지는 것이다. 늙으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과신하게 되고 그것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자주 한 "그거 내가 해 본 건데"라는 식의 건방진 발언도 나온다. 다 생각이 굳어진 결과다. 반면에 젊다는 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다른 걸 배척하지 않는다. 아직 나와 외부를 가르는 벽이 완성되기 전이다. 사고방식이 경직되지 않았다. 어릴 때는 부드럽다가 늙으면 딱딱해지는 건 자연의 원리다. 두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모임에 나가 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보인다. 큰소리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과신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모른다. 젊은 때는 호기로나 보이지 늙어서는 ..

참살이의꿈 2015.01.29

인사

선생을 오래 한 결과 나쁜 버릇이 몸에 배었다. 학생들한테 인사를 받기만 했지 내가 먼저 한 적은 없었으니 동네에서도 의례 앞서 인사할 줄을 모른다. 상대 인사에 마지못한 듯 대응해 주는 정도다. 표현은 안 하지만 뭐 저렇게 뚝뚝한 사람이 있느냐고 속으로는 생각할지 모른다. 고쳐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된다. 특히 뒷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꼭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여기서도 나는 받는 편이지 먼저 하지는 않는다. 어떤 때는 인사를 걸어오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냥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도 서로 무심하게 살아온 삶의 습관 때문인 것 같다. 뒷산을 찾는 사람은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산 아래 같은 동네에 산다. 그러니 아무래도 친근감이 더할..

참살이의꿈 2015.01.13

위대한 수줍음

'수줍다'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는다. 어디서도 수줍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심지어는 아이들도 그렇다. 요사이 아이들은 너무 당돌하고 되바라져 있다. 아예 인종이 변한 듯하다. 우리가 클 때만 해도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얼굴도 잘 들지 못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질문해도 손을 들지 못하고 쭈뼛거리기 일쑤였다. 요즘 아이들은 모르면서도 먼저 나서기 바쁘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하는 태도가 있다'가 '수줍다'의 뜻이다. 소녀라고 하면 연상되는 게 수줍음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을 보면 수줍음과는 영 거리가 멀다. 다들 선머슴으로 변한 것 같다. 언어는 왜 그렇게 난폭한지 모르겠다. 부끄러워할 줄도 어려워할 줄도 모른다. 고운 얼굴을 다시 쳐..

참살이의꿈 2014.12.28

한 걸음

산길을 걸을 때 배우는 것은 한 걸음의 소중함이다. 멀리 보이던 산봉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다. 저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왔는가, 싶으면서 내가 대견하게 생각된다. 높은 정상에 오르는 것도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욕심을 부려 뛰어오르다가는 제풀에 지쳐 포기하게 된다. 한 걸음은 미미해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든다. 오랜만에 본 조카가 훌쩍 성장해 있는 걸 보듯 작더라도 지속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사람 키가 크듯 나무가 자라듯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건 아니다. 앞으로 가다가도 뒤로 후퇴하는 지그재그 걸음이 세상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사회의 진보도 그렇다. 아무리 걸어도 표시가 나지 않을 ..

참살이의꿈 2014.12.19

여유 있게 살기

젊었을 때는 내 못난 성격을 고치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스트레스만 받았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주어진 대로 살자주의다. 못난 것도 나의 한 부분이고,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더라도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성질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마땅히 삼가야 할 게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 성숙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므로 성격 개조까지는 아니더라도 날뛰는 성질을 조용히 시킬 필요는 있는 것이다. 여유 있게 사는 연습이라고 할까, 내가 일상에서 유념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져 주기다. 가끔 바둑을 두거나 당구를..

참살이의꿈 2014.12.04

분노 사회

며칠 전 일이다. 집 앞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끝날 때쯤에 느릿느릿 좌회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차선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서 창문을 열고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날 보고 그러는지 어리둥절했다. 집 앞의 워낙 한가한 도로라 그 차와 내 차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상시에는 황색등만 점멸하다가 출퇴근 때에만 잠시 신호등이 들어오는 도로다. 요지는 내가 신호를 어기고 좌회전을 해서 자기 갈 길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충돌 위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차는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그렇게까지 쌍욕을 들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이런 상황을 비일비재하게 겪는다. 사람들이 전부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 같다. 불만과 분노로 가득하다. 어른은 말할 ..

참살이의꿈 2014.11.28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배 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유는 엉뚱했다. 해 뜨고 지는 풍경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런 얘기를 했더니 가당찮은 얼굴로 보는 것이었다. "야, 일하다 보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른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아마 한 달 동안 원양어선에서 생활한다면 나 역시 비슷한 말을 할 게 틀림없다.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만 지나도 시들해질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일상이 되면 무감각해진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에 무릎을 쳤다. 대상이 무엇이든 딱 사흘만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아름답고 귀하지 않은 게 있을까. 지루하기만 한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게 될 것이고, 아내의 잔소리마저 꾀꼬리의 지저귐으로 변할 것이..

참살이의꿈 2014.11.09

야구 중계를 볼 때 "결대로 밀어쳐서 좋은 안타가 되었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결대로 밀어친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알 것이다. 바깥으로 들어오는 공을 억지로 당기지 않고 부드럽게 갖다 맞히는 걸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움직이는 야구공에 '결'이 있다는 표현이 참 좋다. '결'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무, 돌, 살갗, 비단 따위의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고 적혀 있다.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결이 있다. 나무의 결은 나이테고, 물의 결은 물결이다. 살결도 있고 비단결도 있다. 그런데 야구공을 결대로 밀어쳤다는 것은 공 자체가 아니라 운동할 때 나타나는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결도 있는 것이다. 이 '결..

참살이의꿈 2014.11.04

따스한 고독

거의 칩거 상태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이 한 달에 두어 번밖에 안 된다. 고립도 습관이 되니 편하다. 뭔가 부족을 느껴야 모임에도 나가고 할 텐데 지금에 만족하고 있으니 그냥 내 식대로 살고 있다. 삶의 길에 정답은 없다. 나를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남에게 평가를 받고 싶지 않듯, 나도 남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열심히 움직이면 되고, 나 같은 사람은 정적인 삶을 살면 된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바둑 모임도 즐겁고, 가끔 동기들끼리 당구를 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대화를 하게 되면 달라진다. 그들과 나 사이에 높은 장벽을 느낀다. 소통을 하려고 애쓴다고 소통이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 ..

참살이의꿈 2014.10.11

도시에서 산다는 것

앞집이 이사 온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 서로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벨을 누를 수도 없다. 현관 앞 복도에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가 있는 걸로 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인 것 같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너무 삭막하다. 서로 간섭 안 하는 익명성이 편리하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 싶다. 우리 아파트는 한 층에 네 가구가 사는데 입주한 지 4년이 되어 가지만 어느 집과도 정식으로 인사하지 못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어색한 눈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나마 윗집과는 몇 번 오갔는데 슬프게도 소음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도 얼굴이 익다고 이젠 밖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

참살이의꿈 2014.09.28

세월호

4월 16일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고 분노에 떨게 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고 나라를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하나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경을 해체하는 등 국가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중요한 건 잘못된 국가 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인데 곁다리로만 변죽을 울리고 정작 핵심은 회피하고 있다. 엉뚱한 한 사람을 잡는다고 헛발질만 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교묘하게 따돌린 꼴이 되었다. 이젠 세월호 피로증까지 언급하니 세상 변화에 대한 기대는 물 건너갔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참배하며 흘린 눈물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냄비 근성이라고 우리 국..

참살이의꿈 2014.09.18

동물의 왕국

옆자리 동료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아이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말을 자주 했다. 수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런 우스갯소리로 푼 것이다. 동료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들으면 식상하는 법인데, 한번은 이렇게 대꾸해 준 적이 있었다. "세상이 동물로 우글거리니 아이들도 동물이 되는 거야." 아이들의 심성이 고약해져가는 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세상이 썩었는데 아이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정의 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가정이 병들면 아이의 마음도 병들게 된다. 교사라면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

참살이의꿈 2014.08.24

교황의 메시지

평화, 화해, 용서, 위안의 메시지를 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끝났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겸손하고 인자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가난하고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따스한 관심은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4박5일 동안 머물며 한국 사회에 전한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준 사랑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교황에 대한 열광은 사그라지더라도 그분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계속 간직해야 한다. 특별히 천주교 수도자, 신자,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슴에 새겨 둘 내용이 있었다. 교회 지도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안주하는 현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천주교 신자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

참살이의꿈 2014.08.19

마음의 상처

"그땐 니가 어찌나 골을 내든지...." 지나가며 하는 어머니의 말이 아프다. 그 옛날 부모님은 억척스레 일을 하셨다. 자식 다섯을 모두 서울로 보내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에 고향집에 도착하면 집은 늘 캄캄한 채 텅 비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논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집에서 맞아주지 않는 부모님이 미웠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그때 심통을 부렸던 것 같다. 뭔 일을 밤낮없이 하느냐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부모님은 묵묵히 듣기만 했음에 틀림 없다. 그게 마음의 흔적으로 남아 40년이 지난 지금 조심스레 꺼내보이는 게 아닐까. 그때 철이 들고 속이 깊었다면 논으로 나가 부모님의 일을 도..

참살이의꿈 2014.08.09

인간의 선

고분고분하거나 말을 잘 들으면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어렸을 때는 이런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달라진다. 정신적 미성숙자가 아니라면 그런 칭찬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권위나 체제는 순종하는 인간을 원한다. 잘 길들여진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근대 교육의 출발점이었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목표를 내걸지만 속내는 지금도 여전하다. 착하다, 선하다, 바르게 산다는 의미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왜곡되어 있다. 선(善)이란 무엇인가? 그 사람은 선해, 착해,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라고 할 때 선하고 착하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구조 자체가 선하지 않다면 개인의 선량함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체제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결..

참살이의꿈 2014.07.14

행복한 부부

어느 분의 블로그에서 자신의 행복한 가정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결혼 3년차라는데 요즘에 이런 젊은이들도 있구나, 무척 경이로웠다. 참 건실한 선남선녀라고 생각하기에 내용을 소개한다. 행복한 부부의 7가지 비밀 1. 부부끼리 존댓말을 쓴다. 우리 부부는 존댓말을 쓴다. 연애 때부터 서로 존댓말을 써왔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고, 서로 말다툼을 하더라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화가 났을 때는 반말을 종종 하기도 하는데, 만약 평소에 반말을 했더라면 싸울 때는 더 험한 말이 오고가지 않았을까? - 나도 아내와 존댓말을 쓰고 싶은데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몇 번 노력해 보았지만 이젠 포기 단계, 이 젊은 부부가 정말..

참살이의꿈 2014.07.03

스마트폰 한 달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한 달이 되었다. 재미난 노리개가 새로 생겼다. 이놈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늦바람이 무섭다.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걸 사용해 보니 알겠다. 이름은 폰이지만 전화보다는 다른 기능을 더 많이 사용한다. 작지만 무서운 기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스마트폰으로 손이 간다. 누워서 뉴스를 읽고, 요사이는 월드컵이 열리니 관심 있는 경기는 중계도 본다. 일어나 거실로 나가 TV나 컴퓨터를 켤 필요가 없다.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신기하다. 좋아하는 음악을 저장해 놓고 심심할 때면 볼륨을 높인다. 작은 스피커가 아쉽긴 하지만 듣는 데는 지장이 없다. 폰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더욱 좋다. 팥알만 한 렌즈치고는..

참살이의꿈 2014.06.29

운칠기삼

운동이나 바둑 등 승부가 걸린 경기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서로 비슷한 수준일 때는 실력차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게 실력보다는 운에 더 좌우된다. 야구 시합을 보아도 잘 때린 공이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더블아웃 당하기도 하고, 빗맞은 공은 행운의 안타가 되기도 한다. 작은 변수 하나가 시합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5전3승제, 또는 7전4승제처럼 여러 경기를 치러서 우연의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줄인다. 인생살이는 더 복잡하고 우연의 요소가 많다. 우연히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짓고 생사를 가름하기도 한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어떤 사람은 출항이 늦어지니까 비행기로 간다고 배에서 내렸다. 순간의 선택으로 생명을 구했다. 버스 사고가..

참살이의꿈 201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