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36

무덤덤에 대하여

노인이 된다는 건 감정이 무뎌지는 일이다. 희로애락의 진폭이 점점 줄어든다. 젊은 시절의 가슴 설렘은 멀리 사라져 간다. 크게 웃을 일도 뜸해진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할지 모른다. 감정의 요동이 적으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게 가능해진다. 웃을 일이 적다지만, 애통할 일도 줄어든다. 잃으면 얻는 게 있다. 청춘에는 약동하는 젊음이 있지만, 온갖 번뇌와 열정에 시달려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가만두지 않는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다. 반면에 노년은 따스한 온기를 품은 화로와 같다. 사람들은 화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루의 얘기를 속삭이듯 나눈다. 고된 노동 뒤 안식의 시간이다. 솔직히 말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이 좋다. 무..

참살이의꿈 2018.12.31

'정규직'에 담긴 불편한 진실

고미숙 선생의 글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그중의 하나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누구나 정규직이 되기를 바란다. 이유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정된 직장은 역동적인 인간의 삶에 맞지 않는다. 그런 내용이 '정규직에 담긴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에 실려 있다. 이 글을 읽으며 기본소득을 다시 생각한다.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정규직 직장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진다. 갑질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각자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어쨌든 정규직만이 인생의 목표인 양 올인하는 젊은이가 적어졌으면 한다. 시야를 넓게 가졌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중요한..

참살이의꿈 2018.12.21

억만금을 준대도

옛사람이 현대인보다 지조 면에서는 몇 급 위인 것 같다. 그때는 선비 정신이란 게 살아 있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건 지켰다. 현실에 야합하는 간신 무리도 있었겠지만, 명분과 가치를 중시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존경했다. 그들은 현재의 고초를 기꺼이 감내했다. 당장의 이익보다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반면에 현대인은 즉물적이고 찰나적이다.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실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고, 심지어는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다. 누구나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가끔 생각한다. 억만금에도 팔 수 없는 내 안의 무엇이 과연 있는가? 백 억을 줄 테니 그걸 포기하라고 하면 "No!"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 억을 주겠다면 어찌하겠는가? 마지막까지 남는 게 있어야 그게 바..

참살이의꿈 2018.12.13

바다의 경고

인간종을 나타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 스스로 '지혜롭다'는 명칭을 부여했으니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지혜롭다'고 하기보다는 '어리석다'라고 하는 게 더 옳다. 하는 짓을 보면 말이다. 일주일 전에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되었다.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배를 해부해 보니 몸속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슬리퍼를 포함해서 플라스틱 컵만 115개가 나왔고, 비닐봉지와 플라스틱병을 합하니 6kg이 넘었다. 사흘 전에는 우리나라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 죽은 물고기를 찍은 두 사진은 끔찍했다. 공기와 물을 더럽히더니 이제는 바다까지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게 인간이다. 제 살아갈 터전을..

참살이의꿈 2018.11.27

어떻게든 되겠지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비단 이불을 덮고 잔들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두막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만 못하다. 건강이 최고라는 것은 건강해야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는 것도 가난의 걱정을 막기 위해서다. 다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다. 그러나 지나침은 오히려 독이 된다. 건강이나 돈의 노예가 되면 주객이 전도된 격으로 아무 소용 없다.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면 걱정거리 중 상당 부분이 돈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마찰이 생기고 이웃과 사이가 멀어진다. 소리(小利)를 취하느라 대의(大義)를 버린다. 타인을 어지럽히면 본인도 불편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

참살이의꿈 2018.11.06

사랑고파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고 시작하는 노래다. 가끔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향해 부르는 경우를 본다. 어느 경우든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불편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능력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건 유년기에 한정된 얘기다. 인간의 일생에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시기는 유년기다. 이때는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사랑 받는 타령만 한다면 정신적으로는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안 된 채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 ..

참살이의꿈 2018.10.19

돈이 뭐길래

유럽의 중세는 종교에 미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여행을 할 때 미술관에 들러보면 대부분이 기독교와 관계된 그림이다. 중세 시대 작품은 백 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이 오로지 종교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의 뜻을 따르면서 옳게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지배층은 이런 민중의 무지를 이용하면서 기득권을 마음껏 누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지는 동시대에 사는 사람은 모른다. 숲을 벗어나야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다. 중세 사람들이 종교와 믿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돈을 사람보다 더 중요시하며 그걸 당연시한다. 한 마디로 돈에 미쳐..

참살이의꿈 2018.10.06

꼭대기의 수줍음

능선에서 자라는 나무를 멀리서 보면 키가 잘 맞추어져 있다. 누구 하나 우뚝 서려 하지 않고 골고루 햇빛을 받으며 자라난다. 비슷한 현상으로 숲에 들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나무들이 제 영역을 지키는 걸 볼 수 있다.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영역을 적당하게 확보해서 공간을 골고루 나눠 쓰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꼭대기의 수줍음'이라 명명했다. 나무는 자기 절제를 할 줄 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나 제일 현명한 선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저 혼자만 잘살려고 싸우다가는 함께 파멸이라는 걸 나무는 안다. 인간 세상과 너무 비교된다. 나무를 시인이요, 철인(哲人)이라 불러 마땅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90%가 부자를 존경하지 않는..

참살이의꿈 2018.09.16

고통의 의미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인간을 뺀 다른 동물은 생존과 번식의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반면에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더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동물의 두뇌는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다. 이 점에서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생존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다. 일상사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분석해 보면 생존과 번식 본능과 관련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의미만 발견하면 생존과 번식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독신으로 수도 생활에 몰두하는 종교인이 그 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는다. 인간에게 의미와 가치는 그만큼 소중하다. 동물의 생존 전선에서는 고통이 따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면서 더 나은 생존을 위해 고통..

참살이의꿈 2018.09.08

외톨이로 당당하게 살기

한겨레신문에서 박홍규 선생의 근황을 들었다. 선생의 삶과 글은 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한 바 있다. 생태주의 실천가라 할까, 비슷하게는 윤규병, 황대권 선생 같은 분들이 떠오른다. 선생은 올해 영남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경산의 시골집으로 이주한 것은 1999년이었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텃밭을 가꾸며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머리는 집에서 깎고, 수염도 한 달에 한 번 가위로 자른다. 목욕도 자주 하지 않고 비누만 쓴다. 부인도 평생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이 정한 땅의 소유 한계는 300평이다. 우리 국토에서 경작 가능한 땅을 7천만 인구로 나눴을 때 한 사람에게 300평 정도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집과 텃밭이 부인 몫을 합해 600평이다...

참살이의꿈 2018.08.28

체력과 열정

"체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짝 미쳐야 하고, 득실을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이 말을 한 조유성 할머니는 여든셋인데 동남아의 밀림을 찾아다니며 곤충 사진을 찍고 있다. 벌써 9년째다. 사진을 배우고 나서 야생화와 곤충의 세계에 빠졌고, 2천년대 후반부터는 열대지방 동식물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밀림 안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인도네시아 프로볼링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 할머니가 멋있다고 여기면서 나는 왜 안 될까를 생각한다. 이것저것 재고 있기 때문이지만, 실은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짝 미치는 게 두려운 이유도 있다. 부러운 것과 실천은 별개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열정이 시드는 게 당연하다. 일부는 젊은..

참살이의꿈 2018.08.13

행복은 내 선택이었다

호주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분이 죽음을 앞둔 노인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그분이 제일 많이 들은 다섯 가지 후회는 다음과 같다. 1.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2. 그렇게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었다. 3.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4.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조사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껍데기는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눈을 감기 전 생을 돌아보며 이 정도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리라 본다. 알면서도 실천 못 하는 것,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는 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탓이다. 우리는 생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남의 눈..

참살이의꿈 2018.08.05

축복 받은 삶

노년층에게 롤모델이 되면서 부러움을 받는 두 분이 있다. 송해와 김형석 선생이다. 송해 선생은 92세로 KBS의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높다. 90세가 넘어서도 바깥 활동을 하며 돈을 벌어 오니 남편으로는 최고일 것이다. 철학 박사인 김형석 선생은 지식층 사이에 화제다. 올해 99세니 백수(白壽)를 맞았다. 그런데도 저술과 강연으로 젊은이보다 더 바쁘게 지내신다. 재작년에 나온 책 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래 살면서 건강할 뿐 아니라 인간적 성숙의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선생은 존경을 받고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하나둘씩 무릎을 꿇는다. 질병이 찾아오고 정신은 쇠해진다. 두 분은 특별한 ..

참살이의꿈 2018.07.12

나는 행복합니다

내 산 게 억울하다. 왜 그리 미련하게 일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살았어도 자식한테 효도 받지도 못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재미나게 사는 것 보면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하신 어머니의 직설적인 말이다. 이런 내색을 안 하셨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작년에 동생이 낙향해서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있으니 지내시는 환경은 좋아졌다. 어머니는 동생이 내려간 뒤로 평생을 하시던 농사일을 그만두셨다. 밭에 나가는 대신 마을회관에서 종일 노신다. 예전 같이 식사 준비도 걱정 안 하시고, 혼자서 드시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는 여장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레 농사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모든 것이 당신의 책임이었고 몫..

참살이의꿈 2018.07.04

행복은 이슬비다

행복은 이슬비다. 작은 것이 쌓여 촉촉이 젖어드는 것이 행복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사람은 천차만별이지만 행복을 향유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다. 만약 행복을 부자나 스타만 독차지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잿빛이 될 것인가. 크고 거창한 것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할까. 로또 당첨은 일시적인 충격요법일 뿐 기쁨의 강도는 급속하게 감소한다.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서 불행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행복은 잔잔하면서 오래 지속하는 감정이다. 오르내리는 진폭이 크면 평온을 유지하기 힘들다. 많은 소유는 욕망을 크게 하므로 내적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적게 가진 사람이 자족할 줄 안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다. 이혼한 사람이나, 쫄딱 망한 ..

참살이의꿈 2018.06.22

후회

세계 정상을 정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사람에게도 후회가 있을까? 어느 신문에서 조치훈 9단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올해로 입단 50주년을 맞은 조치훈 9단에게 감회를 묻자 첫마디가 "후회가 많아요"였다. "술 먹는 시간 줄이고 열심히 공부했다면 더 잘했을 텐데, 하고 후회해요. 더 많은 승리나 타이틀을 놓쳐서만은 아니예요. 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바둑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잖아요.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공부했다면 스스로 만족하는 바둑을 두었을 테고,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었겠지요."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하는 인생을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후회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아쉬움이라고 해도 좋다. 과거를 돌아보며 슬퍼지는 것은 인생의 매듭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

참살이의꿈 2018.06.02

그럭저럭

사람들이 안부를 물을 때 내가 잘 하는 말이 '그럭저럭'이다. 어쩌다 한 번 쓴 뒤로 지금은 입에 붙어 버렸다. "잘 지내?" "그럭저럭 지내지 뭐." '그럭저럭'은 '큰 문제나 잘된 일이 없이 그런대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큰 문제도 없고 잘되는 일도 없다는 말이다. 요사이 내 생활이 말 그대로 그럭저럭이다. 상대방은 어떻게 알아들을지 모르지만, '그럭저럭'은 무색무취해서 마음에 든다. '그럭저럭'은 양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무탈하다는 것은 잘 지낸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된다. 자랑할 일도 비난받을 일도 없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행복하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다. 만족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다른 면으로 '그럭저럭'에는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이 묻어 있다. 잘되는 ..

참살이의꿈 2018.05.23

어떻게 죽을 것인가

데이비드 구들이라는 104세 된 호주의 과학자가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구들 박사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서 스스로 주사액이 들어가는 밸브를 열었다. 불치병이 없으면서 단지 고령이라는 이유로 안락사가 허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구들 박사는 90세에도 테니스를 할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100세를 넘으면서 기력이 떨어졌고 눕거나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고 판단했다. 구들 박사는 '추하게 늙는 것(Aging Disgracefully)'을 피하고자 안락사를 선택했다. 마지막 순간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그가 선택한 곡이었다. 구들 박사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 나를..

참살이의꿈 2018.05.14

노욕은 추하다

인간이 제 몫을 챙기고 재산을 소유하게 된 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모아둘 물량이 적었을뿐더러 이동 생활에서 보관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도 농사와 함께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부터는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다. 사탕이 있으면 아이들도 다툰다. 그러나 아이들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개면 만족하지 수십 개의 사탕을 혼자 독점하려고는 안 한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줄 줄 안다. 동물도 제가 배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얼룩말을 사냥해서 제 창고에 보관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젊은이의 욕망도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미래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젊은이의 야망은..

참살이의꿈 2018.04.30

어떤 대화

A : 형, UN 기준으로 형은 만 나이로는 아직 청년이십니다^^. 축하해요~ *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 UN에서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 연령 분류의 표준에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며 사람의 평생 연령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 0세 ~ 17세까지는 미성년자 * 18세 ~ 65세까지는 청년 * 66세 ~ 79세까지는 중년 * 80세 ~ 99세까지는 노년 *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 B : 내 육체와 정신 상태를 냉정히 판단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은 노년의 초입이 맞아요. 굳이 다운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나요? A : ㅎㅎ, UN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형은 아직 왕성하게 트레킹 하시고 기억력 판단력 똑 부러지시니 청년이 맞아요. ㅋㅋ B : 트레킹은..

참살이의꿈 2018.04.15

오늘만 산다

최근에 지인이 당한 비통한 사고 소식을 연이어 들었다. 전화 통화에서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초등학생인 손녀가 죽었단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를 시멘트벽에 부딪쳐 뇌진탕이 일어났다고 한다. 수술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울먹인다.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엄마는 며칠째 실신하며 응급실에 실려 간다고 한다. 화목하고 믿음이 좋은 집안으로 알려졌는데 불의의 사고를 맞고 말았다. 아빠는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며 정신을 못 찾고 있단다. 손녀를 잃은 본인의 심정도 오죽할 것인가. 사람을 만나기 싫어 두문불출하고 있단다. 너무 안타까워서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또 한 친구의 조카도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의 아들인데 내..

참살이의꿈 2018.03.29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 이름 외우느라고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안 그래도 정치경제 과목이 싫었는데 법칙의 명칭조차 어렵기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계효용'이니 '체감'이니 굳이 이런 한자 용어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좀 쉽게 부르는 말이 없을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뜻하는 바는 단순하다. 단위 재화를 소비할 때 얻는 만족이 점점 감소하게 된다는 원리다. 예를 들면, 갈증이 나서 물 한 잔을 마시면 만족도가 높다. 그러나 두 잔을 마신다면 두 번째 잔은 첫 번째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세 번째는 그냥 밍밍한 맛일 수 있다. 잔이라는 단위가 주는 만족도는 감소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인생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랜만에 외국에 나가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는 것만도 가..

참살이의꿈 2018.02.12

액땜

근심 걱정 없는 집이 있을까, 어디를 둘러봐도 일가일우(一家一憂)다. 어느 집이나 한 가지 이상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팔자 편해 보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없는 걱정도 만들어 내는 게 인간이다. 가끔 '근심이 없는 십오초'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무슨 재앙의 전조가 아닌지 두려워진다. 차라리 자잘한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게 마음 편하다. 작은 근심은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큰 근심의 액땜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이던가, 집안이 잘 나갈 때는 대문 위에 큰 돌을 올려놓고 지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조심하고 근신하며 지내야 한다는 뜻이리라. 도 이렇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

참살이의꿈 2018.02.07

독일과 일본

해외에 몇 번 나가보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은 24년 전에 갔는데 한 달가량 머물렀다. 독일이 통일된 지 4년이 지난 뒤였다. 첫인상은 질서정연한 나라라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교통법규의 준수였다. 보행자가 지나가면 무조건 자동차는 정지하고, 스쿨버스가 서 있으면 아예 몇 미터 뒤에서 대기하는 광경은 너무 놀라웠다. 그런 사람 우선 문화가 부러웠다. 독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을 잘 지키느냐고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독일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엄격한 법 집행의 결과라는 답을 들었다. 규칙을 어기면 필벌이 따른다. 그러면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독일은 법가(法家)의 정신이 구현되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너무 원칙대로 돌아가면 사회..

참살이의꿈 2018.01.27

그럴 수도 있겠지

늙어가면서 제일 경계해야 할 일이 제 생각에 갇히는 일이다. 제 생각에 갇히면 현상을 두루 보지 못하고 옹졸해진다. 최근에 그걸 절감하는 일이 있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왜 그렇게 자잘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의견 충돌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였다. 본인은 자신을 잘 모른다.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하는 꼰대는 없다. 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비친 나를 봐야 한다. 가까운 배우자나 자식도 나의 좋은 거울이다. 설마 내가 그럴까, 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변명하고 부정하기 바쁘다. 내가 그렇다. 흔쾌히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를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늘어 지혜로워지는 게 순리일 것 같다.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현실..

참살이의꿈 2018.01.17

스마트폰 멀리하기

스마트폰도 바이러스에 걸리는가,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이 이상하다.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기를 하면 엉뚱한 데로 들어간다. '데일리 뉴스'라는 생판 처음 들어보는 사이트와 '11번가'라는 쇼핑 사이트가 뜬다. 때로는 먹통이 되기도 한다. 보통 짜증 나는 게 아니다. 재설정을 하고 의심스러운 앱을 지워도 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내 실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열지 않는 것이다. 돌아보니 습관적으로 너무 자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카톡이나 밴드에 새로운 소식이 온 게 없나 하고 수시로 들어간다. 심심하면 이것저것 검색도 한다. 사실 대부분이 쓸데없는 짓거리들이다. 특히 단톡방으로 오는 내용은 읽지도 않고 삭제하는 게 많다. 퍼나르기 하는 것이라 어떤 때는 중복해서 받는다..

참살이의꿈 2018.01.10

로마인의 묘비명

고고학자들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를 발굴하고 묘비를 찾아낸다. 돌에 새겨진 묘비명은 2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다른 것에 비해 잘 보존될 수 있다. 무덤의 비문을 통해 옛 로마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듬어볼 수 있다. 라는 책에 나오는 로마인의 비문을 옮겨 본다. 나, 레미소 여기에 묻히다. 단지 죽음만이 나를 일로부터 떼어놓았다. 거기 지나가는 당신, 이리로 오게. 잠시 쉬었다 가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보니, 싫은가? 어쨌든 당신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네. 18세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부친을 사랑했고, 모든 친구들을 사랑했네. 농담하고, 즐기고, 당신도 그렇게 하기를. 여기 이곳은 너무도 엄숙하다네. 이 글을 읽는 당신, 건강하게 살게.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참살이의꿈 2018.01.04

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채널 돌릴 때 잠깐 봤을 뿐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제목이 특이해서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그때마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니 작명 하나는 잘 한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어찌하다 보니 어른이 되었는지 모른다. 여기서 '어른'은 육체적인 나이가 의미하는 어른일 것이다. 정신의 성숙도와는 관계없다. 그렇게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인격적으로는 익어지지 못했다. 실제로 미성숙한 어른이 주변에는 수두룩하다. 그걸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일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다. 돌이켜 보면 인생은 온통 '어쩌다' 투성이다. 어쩌다 태어나고, 어쩌다 성인이 되고, 어쩌다 자식을 낳아 부모..

참살이의꿈 2017.12.26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오늘은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찾아 읽는다. 옆 방에 들릴까 봐 혼자 작은 소리로 음송하니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특히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씀에 울컥해진다. 세상만사 새옹지마가 아니던가. 궁(窮)이 통(通)이요, 통이 궁이다. 잔물결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 무슨 바람이든 고맙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뿐이다. 바위처럼 진중해지자.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공부하는데 마음에 ..

참살이의꿈 2017.12.16

잘 지는 법

이기고 지는 것은 기자지상사(棋者之常事)다. 이기면 좋지만 늘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진다. 바둑을 두면서 요사이 깨달은 점은 질 때 잘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는 것보다 어떻게 지느냐가 중요하다. 패한 바둑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 바둑이 수세로 몰리면 마음이 흔들린다. "졌습니다" 하고 깔끔하게 돌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도 별 위로가 안 된다. 이럴 때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패배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졌을 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 지더라도 상큼하게 지자고 다짐하며 바둑판 앞에 앉는다. 자꾸 연습하다 보면 습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기고 지는 데서도 벗어나고 싶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잘 지는 훈..

참살이의꿈 2017.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