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게으름을 자랑한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행동이 굼뜨다. 어려서부터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부모님이 걱정했는데, 학교생활이야 그럭저럭했지만 군대에 가서는 고생 좀 했다. 훈련받을 때 선착순에서는 맨날 꼴찌여서 기합은 도맡아 받았고, 자대에 가서도 고참한테 어지간히 잔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졸병을 둔 고참도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다행히 행정병이라서 그나마 군대 3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가만히 혼자 있는 게 특기다. 책 한 권만 던져주면 종일을 심심치 않게 보낸다. 바깥출입 없이 몇 달이라도 혼자서 재미나게 지낼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단점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남이 갖지 못한 장점이기도 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다. ..

참살이의꿈 2020.09.09

소의 무심

지난달에는 긴 장마와 폭우로 비 피해가 컸다. 그때 떠내려간 소가 20일 만에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뒷산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 올라가 보니 멀리 합천에서 기르던 소였다고 한다. 어떤 소는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바다 가운데 무인도에서 찾아낸 소도 있었다. 소는 몸 구조상 부력이 커서 물에 잘 뜬다고 한다. 그리고 성질이 공격적이지 않아 물살에 순응하며 떠내려가기 때문에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반면, 말은 물살을 거슬려 오르려 발버둥치다가 힘이 빠져 빨리 죽는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제 성질을 못 이겨 수명을 재촉한다. 소의 생존 비결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소를 한 마리씩 키웠다. 농기계가 없던 때라 농사를 짓기 위..

참살이의꿈 2020.09.03

도에 이르는 두 가지 길

6세기에 인도에서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선(禪)의 시조로 꼽힌다. 달마에서 전해진 선의 불꽃은 육조 혜능에 이르러 활짝 타오르게 된다. 달마대사는 온종일 침묵을 지키며 벽만 바라보고 참선을 했다고 해서 면벽바라문(面璧婆羅門)이라 불리웠다. 그만큼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정진 수도했다는 뜻이리라. 달마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글이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이다. 도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며, '지성에 의한 길'[理]과 '행위에 의한 길'[行]로 구분한다. 지성에 의한 길은 경전 공부를 통한 깨달음이고, 행위에 의한 길은 삶의 실천을 통한 깨달음이다. 마치 돈오와 점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뒷날 선사들은 도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이 글에서는 선의 정신이 보이지는..

참살이의꿈 2020.08.26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김성탄(金聖嘆, 1608~1661)은 중국 명말 청초에 살았던 문예평론가였다. 재주가 뛰어났고 활달한 성격에 전통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경멸하는 태도 때문에 공맹지도(孔孟之道)를 어겼다 해서 사형을 받았다. 그는 머리가 잘리기 전 이렇게 큰소리 쳤다고 한다.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플 뿐이고, 가산을 몰수 당하는 것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 성탄이 뜻하지 않은 일로 그리된 것은 참으로 괴이하도다." 김성탄을 처음 안 것은 오래 전 임어당의 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임어당은 김성탄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에는 김성탄의 글 한 편이 나온다. '행복한 한때에 관한 김성탄의 33절'인데 절에 갔다가 장마로 열흘 동안 갇혀 있으면서 인생에서 유쾌한 순간..

참살이의꿈 2020.08.07

수컷의 유효기간

동물 수컷은 나이 들고 힘이 떨어지면 쓸모가 없어진다. 생식 기능이 없고, 사냥도 못 하고, 무리를 지켜주지도 못한다면 수컷의 가치를 어디서 찾겠는가. 반면에 보살핌과 살림이 역할인 암컷은 늙어서도 효용가치가 남아 있다. 최소한 음식을 장만하고 손주를 봐줄 수는 있다. 그래서 암컷의 평균수명이 수컷보다 긴 것은 자연선택적으로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인간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대부분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20% 정도 길다. 백수의 왕자라는 사자의 세계에서 늙은 수사자는 천덕꾸러기다. 힘에 부쳐서 젊은 수사자에게 패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광야를 헤매다가 죽는다. 그나마 암사자가 사냥해 오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졸지에 혼자가 되면 제 먹이조차 구하지 못한다. 무리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늙은 수사자는 가차 없이 ..

참살이의꿈 2020.08.03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

가뭄에 단비 같은 뉴스를 며칠 전에 봤다.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보도였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숨은 선행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데 놀랐다. 보도만 보면 우리나라가 사람 살 곳이 못 되고 곧 망할 것 같지만 사실은 착한 사람도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다. 기자들이 훈훈한 미담 기사도 많이 발굴해 주면 좋겠다. 기업인 중에서 대표적인 기부왕은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이다. 그는 2000년에 사재 1조 원을 털어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100대 자선재단 순위에서 90위에 속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이라고 한다. 100세를 눈앞에 둔 그는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는 기부 철학을 밝혔다고 한다. 조창걸 한샘 ..

참살이의꿈 2020.07.28

개구리와 소년

연못가에서 놀던 소년들이 물속에 많은 개구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많은 개구리가 돌에 맞아 죽은 뒤, 용감한 개구리 한 마리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며 소년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그 잔인한 장난은 그만둬라! 너희는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우린 돌에 맞아 죽는단 말이야!" 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지불식간에 하는 행동이 타자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사이 이 이야기가 실감나게 들린다. 내가 개구리의 심정이 된 것 같아서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는 내 생활과 껌딱지처럼 붙어 있다. 무려 10년 가까이 된다. 심할 때는 뭔가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좀 덜해지면 참고 지내보자고 하며 살아왔다.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제삼자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당부해도 별 소..

참살이의꿈 2020.07.09

메멘토 모리

로마 시대 때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하면 환영 퍼레이드를 했다. 당사자는 마치 최고 권력자나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이때 장군 옆에 탑승한 노예가 개선 행진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장군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외쳤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잔칫날에 재 뿌리는 격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관습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게 대단하다.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잘 나갈 때 도리어 겸손하게 행동하라. 교만하지 말라."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현재 삶에 대한 성찰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메멘토 모리'와 비슷한 말로 '이 또한 ..

참살이의꿈 2020.07.04

막걸리 한 병

코로나19로 집에서 혼자 술을 홀짝이는 빈도가 늘었다. 바깥 모임을 삼가다 보니 다른 사람과 대작할 기회가 줄어들고 부득이 독주(獨酒)를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오히려 내가 즐기는 바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 피곤할 뿐이다. 혼자 술을 마시는 재미가 훨씬 좋다. 제일은,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된다.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헛소리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 전에 동기 모임을 오랜만에 나갔다. 의도치 않게 시국 얘기가 나오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대개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지만 얼근해지면 나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면 서로가 어색해진다. 술맛이 싹 달아났음은 물론이다. 파한 자리 뒤에 남는 건 자책밖에 없다. 혼자 마실지라도 내 앞에는 가상의 파트너가 있다. 눈에 안 보이는 파트너지..

참살이의꿈 2020.06.15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

이덕무 선생의 소품 글을 보다가 만난 구절이다. 에 실린 원문은 이렇다.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胷中無錢癖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 주변에서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선비 정신이 살아 있던 옛날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욕망 충족을 위해 허기지듯 내달리는 현대 자본주의 인간 군상들에게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리라. 혹 있지만 내가 못 알아봤을 수도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일 테니까. 선생은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에서 벗어난 사람의 얼굴을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띠고 있다고 했다. ..

참살이의꿈 2020.06.08

시인의 마을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는 세 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넓은 평원의 단조로운 풍경이 질리도록 펼쳐졌다. 다들 눈을 감은 채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프를 운전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플레이어에 꽂았다. 정겨운 우리 가요의 멜로디가 독일 버스 안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독일에 연수를 온 지 두 주일째, 뒤에서 소곤거리며 잡담이 들리던 버스 안이 숙연해졌다. 몇 곡의 트로트가 지나가고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 나왔을 때 내 가슴은 떨리기 시작했다. 노래 분위기와 당시 상황이 어쩜 그리 절묘하게 맞았는지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게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누가 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주리오 누가 내 마음의 위안 돼주리오 ..

참살이의꿈 2020.05.19

코로나19를 보는 글 두 편

코로나19를 대하는 글 두 편을 옮긴다. 첫 번째는 지난달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종철 선생의 칼럼이다. 제목이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이다. 코로나 환란, 기로에 선 문명 / 김종철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참살이의꿈 2020.05.17

사회적 거리 두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처음에는 생경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코로나19가 바꾼 현실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얼마 전에 TV에서 가게가 북적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복 쇼핑'이라는 표현을 써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참았던 쇼핑을 마치 보복하듯 해댄다는 뜻이다. 전혀 변한 게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전과는 달라지리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변할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간격 두기에 불과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세상이 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들의 익숙한 사고나 습관과의 거리 두기로 연결되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달라질 세상..

참살이의꿈 2020.04.27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역사를 구분하자는 얘기도 한다. 과연 그 정도일까? 코로나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궁금한 문제다.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이 생길까? 인류가 개과천선해서 더 나은 대안적 삶을 찾을까? 이 정도가 아니라면 코로나로 세상이 바뀐다고 큰소리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회의적이다. 코로나19가 올해 안에 진정되고 경제 회복이 이루어지면 코로나19는 표피에 상처에 남긴 채 사라질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가 수년간 지속하며 우리를 괴롭히거나,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참살이의꿈 2020.04.19

불만 많은 나라

이달 초에 OECD에서 '2020년 삶의 질 보고서(How's Life in 2020)'를 발표했다. 소득과 부, 주택, 일과 직업, 삶의 균형, 건강, 지식과 기술, 환경, 주관적 만족도, 안전, 사회적 관계, 시민 참여 등 11개 분야를 조사해서 각국의 삶의 질을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과거보다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반면에 소득 격차나 불평등 문제는 개선이 되지 않았다. 또한, 서로 간에 관계의 단절이 심해졌다. 사람들이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는 데 쓰는 시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국가별로는 북유럽과 뉴질랜드, 스위스 국민이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주관적 삶의 만족도에서 10점 만점에 6.1점으로 33개국 중 32위를 기록했다. 올해부터 ..

참살이의꿈 2020.03.25

다르게 살아보기

"감옥살이하느라 죽을 지경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집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친구가 한 말이다. 워낙 바쁘게 돌아다닌 친구니 그럴 만도 하다. "야, 이럴 때 좀 다르게 사는 방법을 배워 봐." 나는 친구와 달리 평소에도 방콕 형이다. 코로나19라 해도 별로 다른 게 없다. 오랜만에 큰소리칠 기회가 찾아왔다. 잠잠하던 우리 동네에도 확진자가 생겼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루가 지나니 동선이 공개되었다. 확진 판정받기 전 며칠간 그가 들린 장소가 시간대별로 상세히 드러났다. "뭘 이렇게 싸돌아다녔지?"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인데 분주하게 산 게 한눈에 보였다. 점심 00음식점, 저녁 00음식점, 00당구장, 00치킨집 등 상호명만 바뀔 뿐 ..

참살이의꿈 2020.03.15

이순(耳順)

얼마 전에 초등 단톡방을 나왔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저주의 말이 너무 지나쳐서다. 경상도 농촌 출신에 나이가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들이니 정치 성향이야 뻔하다. 어디서 따오는지 황당한 글을 퍼서 나르는데 작년 여름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태극기 부대의 집회가 기세를 올리기 시작할 때다. 단톡방에 있는 20여 명 중 나 혼자만 외톨이다. 나는 입도 뻥긋 못한다. 정기 모임에 나가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너무 불편하다. 듣고만 있자니 속이 뒤집히는데 그렇다고 논쟁을 할 수도 없다.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을 매일 쳐다보는 것도 스트레스여서 이번에 단톡방도 탈퇴했다. 7, 80년대에는 지역색이 국민을 둘로 가르더니, 2..

참살이의꿈 2020.03.05

산다는 건 힘들어

가끔 아내와 막걸릿잔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눈다. 신변에서 일어난 일부터 이웃과 자식 등 사람에 관한 얘기가 주된 화제다. 그러다가 공통으로 맺어지는 결론이 있다. "산다는 건 힘들어!" 모르는 사람은 날 보고 팔자 편하게 산다고 할지 모른다. 자식은 모두 출가시켰고, 연금을 받으니 돈 벌 걱정 없고, 무슨 염려 있겠느냐는 것이다. 블로그만 보면 신선 같이 사는 줄 안다. 그러나 사람 살아가는 양태는 비슷하다.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 등 근심 걱정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층간소음은 요사이 내 일상을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 이웃을 미워하는 내 모습이 두렵다. 어제 아내는 위층을 다시 방문했다. 그쪽에서는..

참살이의꿈 2020.02.12

타인에 대한 섬세함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여자 둘이 들어온다. 바로 자전거로 직행하더니 나란히 앉아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러닝머신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다. 헬스장을 자기네 집 거실로 착각하는 것 같다. 말을 안 할 뿐이지 주변 사람이 얼마나 불쾌하게 여길지는 안중에도 없다. 헬스장 벽에는 타인을 위해 잡담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옆에 누가 있건 말건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은 너무 자주 본다. 층간소음 문제도 이웃에 대한 배려심의 부족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너무 무례하고 투박하다.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남긴 상처의 무게를 잴 ..

참살이의꿈 2020.02.03

목수의 망치, 판사의 망치

"수학 7등급 나오면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돼. 돈 많이 줘." 유튜브의 인기 수학 강사가 한 말이 지난주에 논란이 되었다. 용접공을 비하했다고 해서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강사는 사과했다. 공부를 못하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강사의 발언에는 직업에 대한 은근한 차별 의식이 깔려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심코 나온 말이겠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그런 의식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기술을 배운다는 사실의 연관 관계도 없다. 전에 근무했던 J 고등학교에서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던 선생님이 계셨다. 귀국해서 교사 자격증까지 딴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분이 들려주던 여러 독일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는데, 광부 월급이 교수보다 더 높다고 해서 반신반의했던 ..

참살이의꿈 2020.01.19

맑고 향기롭게

전에 살던 집 거실 벽에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이 쓴 붓글씨 복사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의 정신을 기리는 불교 운동으로 알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무척 아름다웠고,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싶었다. 가당찮은 바람인 걸 알지만, 그때는 피안을 향한 무한 갈망의 시기였다. 며칠 전에 을 읽다가 '맑은 믿음'이라는 구절을 접하고 문득 '맑고 향기롭게'가 떠올랐다. 불교가 구현하려는 경지는 결국 '맑음'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맑은 믿음'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믿음이 무엇인지, 이 시대에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맑은'이 주는 무게감이 만만찮다. 하물며 맑은 생각,..

참살이의꿈 2020.01.07

효도와 우애

해외 패키지여행에서는 가족과 함께 오는 팀이 제일 많다. 주로 부부나 자매이고, 모녀 사이도 자주 눈에 띈다. 여행도 여자 중심으로 팀이 꾸려진다. 지난 스페인 여행에서는 남자 삼 형제가 부부끼리 함께 왔다. 여러 차례 패키지여행을 했지만 형제 부부가 함께 다니는 건 처음 보았다. 식사 시간에는 같은 식탁에 앉을 기회가 많았는데 형제와 동서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의 나이들인데 마치 어릴 때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우애가 있었다. 형제끼리 자주 여행을 다니고, 한국에서도 가까이 살며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 비결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준다 한들 내 능력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많은 집안에서 형제간에 갈등이 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자랄 때 형제이지 커서..

참살이의꿈 2019.12.25

너무 착하면 안 돼

초등학교 1학년 때 일화다. 길을 걸을 때는 좌측통행을 하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쳤다.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교실 복도에서는 누구나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면 장난치느라 천방지축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갈 때 마을길이나 신작로 왼쪽으로만 고집스레 다녔다고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선생님 지시는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 행동을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커서야 들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내 고지식한 성향도 마찬가지다. 자랄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어른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말썽부리지 않고 어른 말씀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면 착하다고 한다. 원래 착하다는 말은..

참살이의꿈 2019.12.17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본 짧은 문장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가끔 독백하듯 되뇌면 왠지 위로가 되는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글쓴이의 의도는 잊어버렸지만 지금은 내 식대로 해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그냥'의 뜻을 나는 '생각 없이' '편하게' '고통 없이' 등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개똥철학일 망정 자신을 지탱해 주는 삶의 지표가 있다. 그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분별하며 살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가치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냥 거저먹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 볼 때는 세상 부러울 것 같이 사는 사람도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다 자기 몫의 고뇌와 고통..

참살이의꿈 2019.12.04

손주의 '뭣이 중헌디'

손주가 집에 오면 할머니는 뭐든지 먹이고 싶어 한다. 어제는 손주가 좋아하는 짜장을 준비했다. 손주는 짜장을 밥에 비벼 먹는 짜장밥을 무척 좋아한다. 유치원과 태권도 학원에 다녀와서 배가 고팠는지 손주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천히 먹으라고, 안 그러면 체한다고 물을 권하면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손주는 캑캑거리더니 급기야 먹은 걸 토하고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이 없었다. 손주는 울상이 되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할머니는 그릇을 치우며 놀리듯 말했다. "그것 봐. 천천히 먹으랬지. 아, 이 아까운 짜장을 어쩌나." 손주의 심드렁한 얼굴이 점점 화난 표정으로 바뀌더니 이렇게 톡 쏘는 것이었다. "할머니! 사람이 중요해? 음식이 중요해?" 우리는 할 말..

참살이의꿈 2019.11.24

무지

무지(無知)는 '아는 것이나 지식 없음'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현대인은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손가락만 몇 번 까닥이면 세상의 온갖 지식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므로 무지의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현대의 무지다. 무지에서 확신이 생긴다. 이럴 때 아는 것과 경험은 독이 된다. 과거 어느 대통령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무지에 만용이 더해지면 꼰대가 된다. 무지는 판단하고 분별하길 좋아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확신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몰려다니게 한다. 확신은 위험하고, 신념은 위태하다. 세상의 본질은 흑과 백이 아니라 안개 같은 것이다. 구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살이의꿈 2019.11.14

가을바람의 유혹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잘 쓰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해서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안 했다면 혼자만 후회하면 된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세상을 위해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안 하는 게 차라리 공익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할 꺼야?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바보 같은 사람도 있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달콤한 말 듣기를 바라는 걸까. 만약 아내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혼하지 않을 거야!" 현재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서가 아니다. 내가 결혼 생활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와 맞추고 어울려 살아갈 마음 바탕이 부족하..

참살이의꿈 2019.11.01

[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몇 달 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훈 작가의 글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잘 죽는 법은 지금 잘 사는 도리밖에는 없다. 잘 살았다고 믿더라도 꼭 잘 죽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글 전문을 옮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김훈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

참살이의꿈 2019.10.20

우리 시대의 가난

오랜만에 참석한 이번 주 미사의 복음 말씀은 루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 비유였다. 신부님의 아름다운 강론을 들으면서 과연 종교적 심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에게 죽은 뒤의 복락에 대한 약속이 타당한지, 부자에게 주는 경고가 그들에게 얼마나 유효할지 자꾸 의문이 생겼다. 예수가 곧 도래할 하늘나라를 강조한 것은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변혁시킬 혁명을 꿈꾸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영적인 혁명만 얘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계급화가 고착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메이저와 마이너 리그로 나누어진 것이 보인다. 요사이 정의와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마저도 기득..

참살이의꿈 2019.10.05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지난 추석 연휴 중 SBS TV에서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요한과 씨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김용현 선생의 삶을 소개하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젊은 시절의 요한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와의 만남을 계기로 요한은 독재 타도의 시위 현장에서 앞장을 섰다. 그의 활동 중 하나가 1987년에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사병의 억울한 죽음을 고발한 일이다. 군에서는 훈련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다고 구타를 당해 숨진 것이다. 요한은 사병의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요한이 주장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요한은 사라졌..

참살이의꿈 2019.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