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불행해지는 법

행복해지는 법은 어려울지 몰라도 불행해지는 법은 쉽고 단순하다. 그래서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많다. 불행해지려면 남과 비교하면 된다. 사람은 늘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산다. 비교는 성취욕을 북돋는 긍정적인 작용도 하지만 대개는 시기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자기 학대에까지 이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잘 생기고,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운이 좋은 사람은 주위에 수두룩하다. 사람들은 아래를 보기보다는 위를 쳐다보며 부러워한다. 그런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열패감으로 연결된다.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위험한 신호다. 나보다 못난 사람 역시 많다. 내가 얼마나 혜택받는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 주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남의 불행이 ..

참살이의꿈 2019.09.10

먼 데서 찾아온 벗

14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주유천하를 한 공자는 68세가 되어 노나라에 돌아왔다. 아무 소득이 없는 빈손 귀국이었다. 이때부터는 직접 정치하기를 포기하고 대신 제자를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나이 73세(BC 47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의 5년이 공자 생애에서 가장 여유 있고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 공자의 이런 말씀이 나온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벗들이 먼 데서 찾아와 주면 반갑지 않을까?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부루퉁하지 않는다면 참된 인간이 아닐까?"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 어쩌면 사상을 압축한 듯한 이 말씀은 공자 생애의 말기, 즉 마지막 5년의 어느 때쯤에 하신 듯하다.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

참살이의꿈 2019.08.21

아, 달다!

나그네가 불타는 광야를 걷고 있을 때였다. 홀연 미친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나 나그네에게 덤벼들었다. 마침 주위에는 입구에 큰 나무 한 그루가 거인처럼 가지를 벌리고 서 있는 우물이 있고, 우물 안으로 나무에 얽힌 칡덩굴이 내려뜨려져 있었다. 나그네는 급한 김에 칡덩굴을 타고 내려가 우물 안을 피신처로 삼았다. 하지만 우물 안도 살벌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물 안쪽 벽에는 이무기 네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우물 아래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더욱이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칡덩굴을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덤벼들어 갉아댔다. 이런 절박한 순간, 나무 위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나그네는 칡덩굴에 매달린 채 꿀맛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 맛이 어찌나 달던지 모든 고통을 잠시 잊을 판인데, 화..

참살이의꿈 2019.08.12

99의 노예

단톡방에 친구가 '99의 노예'라는 글을 올렸다. 최근에 어느 집안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오른다. 토지 보상금 문제로 한바탕 분란을 겪은 집이다. 갑자기 생긴 돈 앞에서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돈은 필요 없어. 건강이 최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나, 절에 다니면서 무욕을 강조하던 사람이나, 눈먼 돈 앞에서는 다 똑같아졌다고 한다. 누굴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같은 부류다. 글에서 가난한 요리사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행복해요!" 그러나 막상 금화를 보자 가면이 벗겨진다. 우리의 신념, 신앙, 지조 등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가련한 자기 위안거리밖에 안 된다. 단지 아닌 척할 뿐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묘하지 않은가. 예수나 부처는 가정과..

참살이의꿈 2019.07.31

이럴 수도 있지

낯선 외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가진 재산 다 털어먹고 빚까지 졌어. 희망이 없었어. 가족은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뒷정리를 했어.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스페인 북부로 정처 없이 떠났어. 사람이 적고 쓸쓸한 풍경을 택한 거지. 며칠 동안 바닷가를 배회하니 가진 돈도 다 떨어졌어. 절벽 위에도 서 봤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용기는 없더군. 그러다가 너무 배가 고파 바닷가에 있는 허름한 집 대문을 노크했어. 노부부 두 분이 사는데 따뜻이 맞아주더군. 내 행색이 그랬나 봐.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며 그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지냈어. 그분들도 자식처럼 대해줬어. 저녁을 먹고 나면 두 분은 소파에서 손을 맞잡고 TV를 보는 거야. 작은 화면에 금방 고장이라도..

참살이의꿈 2019.07.15

친절, 공손, 배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전체 경제 수준은 상당한 레벨에 올라섰다. 밖에서는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정해 준다.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일인당 소득 3만 달러라는 통계가 무색하다. 국민의 행복도는 OECD에서 항상 하위권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이 큰 원인이다. 한국은 지나친 경쟁 사회여서 가정이나 직장 모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쟁 시스템에 길들여진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욕망끼리 충돌하며 불꽃이 인다. 농촌 공동체의 두레 정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도시 생활은 사막과 같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

참살이의꿈 2019.06.19

행복을 위해 버려야 할 것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버려야 행복해지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미국의 재무설계사인 폴란이란 분이 말하는, 버려야 축복인 여덟 가지가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나이 걱정 - 사람은 태어나 나이가 들어가며 어느 때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버는 돈이 늘어나고 지위가 높아진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력이 쇠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직장에서 나갈 날을 세게 된다. 젊은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려고 하거나 젊은 시절의 나와 비교하다 보면 나이가 걱정이다. 인생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과정이다. 힘들게 올랐으니 이제 여유를 갖고 기쁜 마음으로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 뿐 우위를 따질 수는 없다. 걱정 대신 나이 드..

참살이의꿈 2019.06.11

행복을 생각한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유전자는 한 사람의 외모나 기질을 결정한다. 심지어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장래에 생길 병도 예견할 수 있다. 외국의 유명 배우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미리 유방 절제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 행복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비관적인 사람에 비해 높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행복에 관계되는지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행복하게 사는 능력도 상당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그렇다고 조상 탓만 할 수는 없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의하면 많은 부분이 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은 순전히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변수가 많다...

참살이의꿈 2019.05.27

어미의 마음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문득 스님이 된 고향 동무가 떠오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서로 떨어져 소식이 뜸했는데 어느 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엉뚱하면서 진지한 면이 있긴 했지만 스님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해인사에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아 눈물바람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젠 자식이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는 매몰찬 대답만 전해 들었다 한다. 에미 얼굴도 안 보려는 지독한 놈이라고 돌아와서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한다.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 뒤로도 풍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아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동무와는 정말 우연히 군대에서 재회했다. 사단 사령부에 ..

참살이의꿈 2019.05.12

과보를 받겠습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물질세계에서 생기는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학문이 자연과학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만물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는 인과 관계에 대한 깔끔한 이론이다. 만일 원인 없는 결과가 존재한다면 과학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인과 원칙을 적용한 것이 불교의 업론(業論)이다. 선업에는 좋은 과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른다[善因樂果 惡因苦果]. 인간이 짓는 모든 생각이나 행위가 업(業)으로 남아 영향을 미친다.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것이 불교의 원리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악업을 지어 놓고 좋은 과보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에 다름 아니다. 거기서 괴로움이..

참살이의꿈 2019.04.28

마음 설거지

스롱 피아비라는 캄보디아 출신 여자 당구 선수가 있다. 피아비는 2010년 스무 살 나이에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하고 우리나라에 왔다. 남편은 스물여덟 살이나 많았다. 의사가 꿈이었으나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타의로 낯선 나라에 온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뒤에 인생 역전이 일어났다. 결혼 이듬해 우연히 남편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큐를 잡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자세가 남달랐다. 재능을 알아본 남편이 당구 선수로 적극 지원했고,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자 당구 3쿠션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2017년에 프로가 되었다. 프로 데뷔 10개월 만에 국내 1위에 올랐다. 현재 아시아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 3위에 올라 있다. 당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상..

참살이의꿈 2019.04.15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 죽을 둥 살 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더니 다 헛것이었다. 너희들은 나같이 바보로 살지 마라. 좋은 데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챙겨라. 늙고 아프면 모든 게 쓸데없다.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식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잘 못 해 드리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다. 어머니는 그래도 둘째네와 살고 있지만, 고향의 다른 노인은 독거로 지내시는 분이 많다. 자식이 많지만 전부 외지에 나가 있다. 한밤중에 잠이 깨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외로움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다. 따져보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만 특별할 수가 없다...

참살이의꿈 2019.04.09

지공거사가 되다

지공거사(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65세 이상 되는 노인)가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학교 동기들보다 이태나 늦다.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간 데다, 호적마저 일 년 늦은 결과다. 그래서 제일 끄트머리로 지공거사에 편입했다. 아직 경로카드는 발급받지 못했다. 서울에 살지 않으니 지하철 무료 이용 카드가 그다지 소용이 없다. 다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된다. 그동안 몇 번의 전시회와 시설 입장료에서 할인을 받았다. 막상 요금 할인을 받아보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이 있듯이 돈 앞에서는 나이 든 사실을 자랑할 만도 하다. 이젠 대중교통 경로석에도 떳떳하게 앉을 수 있다. 전에도 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가 백발이라 나를 칠십대로 보..

참살이의꿈 2019.03.17

노인본색 여덟 가지

친구가 관심이 가는 글을 보내줬다. 제목이 '노인본색 8가지'다. 노인이 되면 나타나는 특징을 추려낸 글인데, 나를 돌아보며 경계로 삼을 만한 내용이다. 1. 얼굴이 무표정해진다. 마음이 완고해지는 탓일까, 늙어지면 얼굴도 굳어지고 무표정해진다. 어린아이의 말랑말랑한 마음과 비교해 보라.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해도 미소나 웃음은 나이를 잊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 2.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젊은이의 행동 등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못 본 척 하더라도 속에서는 짜증이 생긴다. 쌓이면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3.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낸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노화 현상의 하..

참살이의꿈 2019.03.02

프리터

프리터(Freeter)란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프리터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진정한 프리터는 정규직을 자의로 포기하고 최소한의 일을 하는 선택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어야 한다. 시간당 1만 원으로 계산해서, 하루에 5시간씩 20일 일하면 1백만 원이 나온다. 이런 프리터가 일본에서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 신문에 충북 청주에 사는 프리터 한 분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커피 전문점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월세와 관리비로 22만 원, 휴대폰비와 교통비로 10만 원, 나머지는 식비..

참살이의꿈 2019.02.24

둔해지면 좋겠다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

참살이의꿈 2019.02.10

정원사의 방울

위고의 2권에는 파리에 있는 봉쇄 수녀원 얘기가 나온다. 장발장이 자베르 형사를 피해 은신한 곳이다. 봉쇄 수녀원은 '봉쇄'라는 이름 그대로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더구나 남자는 절대 접근 금지 구역이다. 그래도 수녀원을 운영하자면 남자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이 봉쇄 수녀원에는 정원사와 잡일을 겸하는 유일한 남자가 산다. 포슐르방이라는 노인으로 절름발이다. 장발장은 전에 포슐르방의 생명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에 피신할 수 있었다. 정원사 노인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있다. 그가 움직이면 방울 소리가 난다. 수녀들은 방울 소리가 나면 얼른 숨는다. 정원사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다. 남자와 만나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정원사의 방울은 '내가 여기 있으니 피하시오' ..

참살이의꿈 2019.01.31

어려운 인간관계

얼마 전에 남한산성에서 멧돼지와 마주친 적이 있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뭘까, 하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멧돼지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서 눈이 마주쳤다. 10m 앞쯤 되었을까, 놀란 건 나보다 멧돼지였다. 멧돼지는 후다닥 달아났고, 그 뒤로 새끼 세 마리가 뒤따랐다. 멧돼지 가족은 요란한 발걸음 소리를 남기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약 멧돼지가 아니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멧돼지보다 훨씬 더 무서웠을 것이다. 무슨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여자 입장에서는 공포감이 더 클 것이다. 산속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멧돼지는 사람을 해치기보다 십중팔구 제가 먼저 도망간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어떤 흑심을 품을지 ..

참살이의꿈 2019.01.18

무덤덤에 대하여

노인이 된다는 건 감정이 무뎌지는 일이다. 희로애락의 진폭이 점점 줄어든다. 젊은 시절의 가슴 설렘은 멀리 사라져 간다. 크게 웃을 일도 뜸해진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할지 모른다. 감정의 요동이 적으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게 가능해진다. 웃을 일이 적다지만, 애통할 일도 줄어든다. 잃으면 얻는 게 있다. 청춘에는 약동하는 젊음이 있지만, 온갖 번뇌와 열정에 시달려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가만두지 않는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다. 반면에 노년은 따스한 온기를 품은 화로와 같다. 사람들은 화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루의 얘기를 속삭이듯 나눈다. 고된 노동 뒤 안식의 시간이다. 솔직히 말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이 좋다. 무..

참살이의꿈 2018.12.31

'정규직'에 담긴 불편한 진실

고미숙 선생의 글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그중의 하나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누구나 정규직이 되기를 바란다. 이유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정된 직장은 역동적인 인간의 삶에 맞지 않는다. 그런 내용이 '정규직에 담긴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에 실려 있다. 이 글을 읽으며 기본소득을 다시 생각한다.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정규직 직장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진다. 갑질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각자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어쨌든 정규직만이 인생의 목표인 양 올인하는 젊은이가 적어졌으면 한다. 시야를 넓게 가졌으면 좋겠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중요한..

참살이의꿈 2018.12.21

억만금을 준대도

옛사람이 현대인보다 지조 면에서는 몇 급 위인 것 같다. 그때는 선비 정신이란 게 살아 있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건 지켰다. 현실에 야합하는 간신 무리도 있었겠지만, 명분과 가치를 중시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존경했다. 그들은 현재의 고초를 기꺼이 감내했다. 당장의 이익보다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반면에 현대인은 즉물적이고 찰나적이다.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실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고, 심지어는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다. 누구나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가끔 생각한다. 억만금에도 팔 수 없는 내 안의 무엇이 과연 있는가? 백 억을 줄 테니 그걸 포기하라고 하면 "No!"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 억을 주겠다면 어찌하겠는가? 마지막까지 남는 게 있어야 그게 바..

참살이의꿈 2018.12.13

바다의 경고

인간종을 나타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 스스로 '지혜롭다'는 명칭을 부여했으니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지혜롭다'고 하기보다는 '어리석다'라고 하는 게 더 옳다. 하는 짓을 보면 말이다. 일주일 전에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되었다.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배를 해부해 보니 몸속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슬리퍼를 포함해서 플라스틱 컵만 115개가 나왔고, 비닐봉지와 플라스틱병을 합하니 6kg이 넘었다. 사흘 전에는 우리나라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 죽은 물고기를 찍은 두 사진은 끔찍했다. 공기와 물을 더럽히더니 이제는 바다까지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게 인간이다. 제 살아갈 터전을..

참살이의꿈 2018.11.27

어떻게든 되겠지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비단 이불을 덮고 잔들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두막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만 못하다. 건강이 최고라는 것은 건강해야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는 것도 가난의 걱정을 막기 위해서다. 다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다. 그러나 지나침은 오히려 독이 된다. 건강이나 돈의 노예가 되면 주객이 전도된 격으로 아무 소용 없다.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면 걱정거리 중 상당 부분이 돈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마찰이 생기고 이웃과 사이가 멀어진다. 소리(小利)를 취하느라 대의(大義)를 버린다. 타인을 어지럽히면 본인도 불편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

참살이의꿈 2018.11.06

사랑고파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고 시작하는 노래다. 가끔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향해 부르는 경우를 본다. 어느 경우든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불편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능력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건 유년기에 한정된 얘기다. 인간의 일생에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시기는 유년기다. 이때는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사랑 받는 타령만 한다면 정신적으로는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안 된 채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 ..

참살이의꿈 2018.10.19

돈이 뭐길래

유럽의 중세는 종교에 미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여행을 할 때 미술관에 들러보면 대부분이 기독교와 관계된 그림이다. 중세 시대 작품은 백 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이 오로지 종교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의 뜻을 따르면서 옳게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지배층은 이런 민중의 무지를 이용하면서 기득권을 마음껏 누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지는 동시대에 사는 사람은 모른다. 숲을 벗어나야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다. 중세 사람들이 종교와 믿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돈을 사람보다 더 중요시하며 그걸 당연시한다. 한 마디로 돈에 미쳐..

참살이의꿈 2018.10.06

꼭대기의 수줍음

능선에서 자라는 나무를 멀리서 보면 키가 잘 맞추어져 있다. 누구 하나 우뚝 서려 하지 않고 골고루 햇빛을 받으며 자라난다. 비슷한 현상으로 숲에 들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나무들이 제 영역을 지키는 걸 볼 수 있다.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영역을 적당하게 확보해서 공간을 골고루 나눠 쓰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꼭대기의 수줍음'이라 명명했다. 나무는 자기 절제를 할 줄 안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나 제일 현명한 선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저 혼자만 잘살려고 싸우다가는 함께 파멸이라는 걸 나무는 안다. 인간 세상과 너무 비교된다. 나무를 시인이요, 철인(哲人)이라 불러 마땅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90%가 부자를 존경하지 않는..

참살이의꿈 2018.09.16

고통의 의미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인간을 뺀 다른 동물은 생존과 번식의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반면에 인간은 생존과 번식에 더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동물의 두뇌는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다. 이 점에서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생존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다. 일상사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분석해 보면 생존과 번식 본능과 관련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의미만 발견하면 생존과 번식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독신으로 수도 생활에 몰두하는 종교인이 그 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는다. 인간에게 의미와 가치는 그만큼 소중하다. 동물의 생존 전선에서는 고통이 따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면서 더 나은 생존을 위해 고통..

참살이의꿈 2018.09.08

외톨이로 당당하게 살기

한겨레신문에서 박홍규 선생의 근황을 들었다. 선생의 삶과 글은 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한 바 있다. 생태주의 실천가라 할까, 비슷하게는 윤규병, 황대권 선생 같은 분들이 떠오른다. 선생은 올해 영남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경산의 시골집으로 이주한 것은 1999년이었다.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텃밭을 가꾸며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머리는 집에서 깎고, 수염도 한 달에 한 번 가위로 자른다. 목욕도 자주 하지 않고 비누만 쓴다. 부인도 평생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생이 정한 땅의 소유 한계는 300평이다. 우리 국토에서 경작 가능한 땅을 7천만 인구로 나눴을 때 한 사람에게 300평 정도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집과 텃밭이 부인 몫을 합해 600평이다...

참살이의꿈 2018.08.28

체력과 열정

"체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짝 미쳐야 하고, 득실을 계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이 말을 한 조유성 할머니는 여든셋인데 동남아의 밀림을 찾아다니며 곤충 사진을 찍고 있다. 벌써 9년째다. 사진을 배우고 나서 야생화와 곤충의 세계에 빠졌고, 2천년대 후반부터는 열대지방 동식물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밀림 안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인도네시아 프로볼링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 할머니가 멋있다고 여기면서 나는 왜 안 될까를 생각한다. 이것저것 재고 있기 때문이지만, 실은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짝 미치는 게 두려운 이유도 있다. 부러운 것과 실천은 별개다. 나이가 들면 체력과 열정이 시드는 게 당연하다. 일부는 젊은..

참살이의꿈 2018.08.13

행복은 내 선택이었다

호주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분이 죽음을 앞둔 노인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그분이 제일 많이 들은 다섯 가지 후회는 다음과 같다. 1.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2. 그렇게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었다. 3.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4.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조사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껍데기는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눈을 감기 전 생을 돌아보며 이 정도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리라 본다. 알면서도 실천 못 하는 것,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는 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탓이다. 우리는 생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남의 눈..

참살이의꿈 2018.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