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38

이순(耳順)

얼마 전에 초등 단톡방을 나왔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저주의 말이 너무 지나쳐서다. 경상도 농촌 출신에 나이가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들이니 정치 성향이야 뻔하다. 어디서 따오는지 황당한 글을 퍼서 나르는데 작년 여름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태극기 부대의 집회가 기세를 올리기 시작할 때다. 단톡방에 있는 20여 명 중 나 혼자만 외톨이다. 나는 입도 뻥긋 못한다. 정기 모임에 나가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너무 불편하다. 듣고만 있자니 속이 뒤집히는데 그렇다고 논쟁을 할 수도 없다.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을 매일 쳐다보는 것도 스트레스여서 이번에 단톡방도 탈퇴했다. 7, 80년대에는 지역색이 국민을 둘로 가르더니, 2..

참살이의꿈 2020.03.05

산다는 건 힘들어

가끔 아내와 막걸릿잔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눈다. 신변에서 일어난 일부터 이웃과 자식 등 사람에 관한 얘기가 주된 화제다. 그러다가 공통으로 맺어지는 결론이 있다. "산다는 건 힘들어!" 모르는 사람은 날 보고 팔자 편하게 산다고 할지 모른다. 자식은 모두 출가시켰고, 연금을 받으니 돈 벌 걱정 없고, 무슨 염려 있겠느냐는 것이다. 블로그만 보면 신선 같이 사는 줄 안다. 그러나 사람 살아가는 양태는 비슷하다. 부모와 자식, 형제 사이 등 근심 걱정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층간소음은 요사이 내 일상을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 이웃을 미워하는 내 모습이 두렵다. 어제 아내는 위층을 다시 방문했다. 그쪽에서는..

참살이의꿈 2020.02.12

타인에 대한 섬세함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여자 둘이 들어온다. 바로 자전거로 직행하더니 나란히 앉아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러닝머신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다. 헬스장을 자기네 집 거실로 착각하는 것 같다. 말을 안 할 뿐이지 주변 사람이 얼마나 불쾌하게 여길지는 안중에도 없다. 헬스장 벽에는 타인을 위해 잡담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옆에 누가 있건 말건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은 너무 자주 본다. 층간소음 문제도 이웃에 대한 배려심의 부족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너무 무례하고 투박하다.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남긴 상처의 무게를 잴 ..

참살이의꿈 2020.02.03

목수의 망치, 판사의 망치

"수학 7등급 나오면 용접 배워서 호주 가야 돼. 돈 많이 줘." 유튜브의 인기 수학 강사가 한 말이 지난주에 논란이 되었다. 용접공을 비하했다고 해서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강사는 사과했다. 공부를 못하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강사의 발언에는 직업에 대한 은근한 차별 의식이 깔려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심코 나온 말이겠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그런 의식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기술을 배운다는 사실의 연관 관계도 없다. 전에 근무했던 J 고등학교에서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던 선생님이 계셨다. 귀국해서 교사 자격증까지 딴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분이 들려주던 여러 독일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는데, 광부 월급이 교수보다 더 높다고 해서 반신반의했던 ..

참살이의꿈 2020.01.19

맑고 향기롭게

전에 살던 집 거실 벽에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이 쓴 붓글씨 복사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의 정신을 기리는 불교 운동으로 알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무척 아름다웠고,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싶었다. 가당찮은 바람인 걸 알지만, 그때는 피안을 향한 무한 갈망의 시기였다. 며칠 전에 을 읽다가 '맑은 믿음'이라는 구절을 접하고 문득 '맑고 향기롭게'가 떠올랐다. 불교가 구현하려는 경지는 결국 '맑음'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맑은 믿음'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믿음이 무엇인지, 이 시대에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맑은'이 주는 무게감이 만만찮다. 하물며 맑은 생각,..

참살이의꿈 2020.01.07

효도와 우애

해외 패키지여행에서는 가족과 함께 오는 팀이 제일 많다. 주로 부부나 자매이고, 모녀 사이도 자주 눈에 띈다. 여행도 여자 중심으로 팀이 꾸려진다. 지난 스페인 여행에서는 남자 삼 형제가 부부끼리 함께 왔다. 여러 차례 패키지여행을 했지만 형제 부부가 함께 다니는 건 처음 보았다. 식사 시간에는 같은 식탁에 앉을 기회가 많았는데 형제와 동서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의 나이들인데 마치 어릴 때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우애가 있었다. 형제끼리 자주 여행을 다니고, 한국에서도 가까이 살며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 비결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준다 한들 내 능력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많은 집안에서 형제간에 갈등이 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자랄 때 형제이지 커서..

참살이의꿈 2019.12.25

너무 착하면 안 돼

초등학교 1학년 때 일화다. 길을 걸을 때는 좌측통행을 하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쳤다.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교실 복도에서는 누구나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면 장난치느라 천방지축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갈 때 마을길이나 신작로 왼쪽으로만 고집스레 다녔다고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선생님 지시는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 행동을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커서야 들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내 고지식한 성향도 마찬가지다. 자랄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어른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말썽부리지 않고 어른 말씀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면 착하다고 한다. 원래 착하다는 말은..

참살이의꿈 2019.12.17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본 짧은 문장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 가끔 독백하듯 되뇌면 왠지 위로가 되는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글쓴이의 의도는 잊어버렸지만 지금은 내 식대로 해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 '그냥'의 뜻을 나는 '생각 없이' '편하게' '고통 없이' 등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개똥철학일 망정 자신을 지탱해 주는 삶의 지표가 있다. 그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분별하며 살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가치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냥 거저먹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 볼 때는 세상 부러울 것 같이 사는 사람도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다 자기 몫의 고뇌와 고통..

참살이의꿈 2019.12.04

손주의 '뭣이 중헌디'

손주가 집에 오면 할머니는 뭐든지 먹이고 싶어 한다. 어제는 손주가 좋아하는 짜장을 준비했다. 손주는 짜장을 밥에 비벼 먹는 짜장밥을 무척 좋아한다. 유치원과 태권도 학원에 다녀와서 배가 고팠는지 손주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천히 먹으라고, 안 그러면 체한다고 물을 권하면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손주는 캑캑거리더니 급기야 먹은 걸 토하고 말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이 없었다. 손주는 울상이 되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할머니는 그릇을 치우며 놀리듯 말했다. "그것 봐. 천천히 먹으랬지. 아, 이 아까운 짜장을 어쩌나." 손주의 심드렁한 얼굴이 점점 화난 표정으로 바뀌더니 이렇게 톡 쏘는 것이었다. "할머니! 사람이 중요해? 음식이 중요해?" 우리는 할 말..

참살이의꿈 2019.11.24

무지

무지(無知)는 '아는 것이나 지식 없음'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현대인은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손가락만 몇 번 까닥이면 세상의 온갖 지식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므로 무지의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현대의 무지다. 무지에서 확신이 생긴다. 이럴 때 아는 것과 경험은 독이 된다. 과거 어느 대통령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무지에 만용이 더해지면 꼰대가 된다. 무지는 판단하고 분별하길 좋아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확신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몰려다니게 한다. 확신은 위험하고, 신념은 위태하다. 세상의 본질은 흑과 백이 아니라 안개 같은 것이다. 구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살이의꿈 2019.11.14

가을바람의 유혹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해보고 후회하라는 말이 있다.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잘 쓰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해서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안 했다면 혼자만 후회하면 된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세상을 위해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안 하는 게 차라리 공익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할 꺼야? 이런 질문을 던지는 바보 같은 사람도 있다. 거짓이라도 좋으니 달콤한 말 듣기를 바라는 걸까. 만약 아내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결혼하지 않을 거야!" 현재의 결혼 생활이 불행해서가 아니다. 내가 결혼 생활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와 맞추고 어울려 살아갈 마음 바탕이 부족하..

참살이의꿈 2019.11.01

[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몇 달 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훈 작가의 글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잘 죽는 법은 지금 잘 사는 도리밖에는 없다. 잘 살았다고 믿더라도 꼭 잘 죽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글 전문을 옮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김훈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

참살이의꿈 2019.10.20

우리 시대의 가난

오랜만에 참석한 이번 주 미사의 복음 말씀은 루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 비유였다. 신부님의 아름다운 강론을 들으면서 과연 종교적 심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에게 죽은 뒤의 복락에 대한 약속이 타당한지, 부자에게 주는 경고가 그들에게 얼마나 유효할지 자꾸 의문이 생겼다. 예수가 곧 도래할 하늘나라를 강조한 것은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변혁시킬 혁명을 꿈꾸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영적인 혁명만 얘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계급화가 고착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메이저와 마이너 리그로 나누어진 것이 보인다. 요사이 정의와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마저도 기득..

참살이의꿈 2019.10.05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지난 추석 연휴 중 SBS TV에서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요한과 씨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김용현 선생의 삶을 소개하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젊은 시절의 요한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와의 만남을 계기로 요한은 독재 타도의 시위 현장에서 앞장을 섰다. 그의 활동 중 하나가 1987년에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사병의 억울한 죽음을 고발한 일이다. 군에서는 훈련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다고 구타를 당해 숨진 것이다. 요한은 사병의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요한이 주장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요한은 사라졌..

참살이의꿈 2019.09.21

불행해지는 법

행복해지는 법은 어려울지 몰라도 불행해지는 법은 쉽고 단순하다. 그래서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많다. 불행해지려면 남과 비교하면 된다. 사람은 늘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산다. 비교는 성취욕을 북돋는 긍정적인 작용도 하지만 대개는 시기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자기 학대에까지 이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잘 생기고,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운이 좋은 사람은 주위에 수두룩하다. 사람들은 아래를 보기보다는 위를 쳐다보며 부러워한다. 그런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열패감으로 연결된다.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위험한 신호다. 나보다 못난 사람 역시 많다. 내가 얼마나 혜택받는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 주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남의 불행이 ..

참살이의꿈 2019.09.10

먼 데서 찾아온 벗

14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주유천하를 한 공자는 68세가 되어 노나라에 돌아왔다. 아무 소득이 없는 빈손 귀국이었다. 이때부터는 직접 정치하기를 포기하고 대신 제자를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나이 73세(BC 47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의 5년이 공자 생애에서 가장 여유 있고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 공자의 이런 말씀이 나온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벗들이 먼 데서 찾아와 주면 반갑지 않을까?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부루퉁하지 않는다면 참된 인간이 아닐까?"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 어쩌면 사상을 압축한 듯한 이 말씀은 공자 생애의 말기, 즉 마지막 5년의 어느 때쯤에 하신 듯하다.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

참살이의꿈 2019.08.21

아, 달다!

나그네가 불타는 광야를 걷고 있을 때였다. 홀연 미친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나 나그네에게 덤벼들었다. 마침 주위에는 입구에 큰 나무 한 그루가 거인처럼 가지를 벌리고 서 있는 우물이 있고, 우물 안으로 나무에 얽힌 칡덩굴이 내려뜨려져 있었다. 나그네는 급한 김에 칡덩굴을 타고 내려가 우물 안을 피신처로 삼았다. 하지만 우물 안도 살벌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물 안쪽 벽에는 이무기 네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우물 아래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더욱이 나그네가 매달려 있는 칡덩굴을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덤벼들어 갉아댔다. 이런 절박한 순간, 나무 위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나그네는 칡덩굴에 매달린 채 꿀맛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 맛이 어찌나 달던지 모든 고통을 잠시 잊을 판인데, 화..

참살이의꿈 2019.08.12

99의 노예

단톡방에 친구가 '99의 노예'라는 글을 올렸다. 최근에 어느 집안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오른다. 토지 보상금 문제로 한바탕 분란을 겪은 집이다. 갑자기 생긴 돈 앞에서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돈은 필요 없어. 건강이 최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나, 절에 다니면서 무욕을 강조하던 사람이나, 눈먼 돈 앞에서는 다 똑같아졌다고 한다. 누굴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같은 부류다. 글에서 가난한 요리사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행복해요!" 그러나 막상 금화를 보자 가면이 벗겨진다. 우리의 신념, 신앙, 지조 등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가련한 자기 위안거리밖에 안 된다. 단지 아닌 척할 뿐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묘하지 않은가. 예수나 부처는 가정과..

참살이의꿈 2019.07.31

이럴 수도 있지

낯선 외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가진 재산 다 털어먹고 빚까지 졌어. 희망이 없었어. 가족은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뒷정리를 했어.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스페인 북부로 정처 없이 떠났어. 사람이 적고 쓸쓸한 풍경을 택한 거지. 며칠 동안 바닷가를 배회하니 가진 돈도 다 떨어졌어. 절벽 위에도 서 봤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용기는 없더군. 그러다가 너무 배가 고파 바닷가에 있는 허름한 집 대문을 노크했어. 노부부 두 분이 사는데 따뜻이 맞아주더군. 내 행색이 그랬나 봐.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며 그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지냈어. 그분들도 자식처럼 대해줬어. 저녁을 먹고 나면 두 분은 소파에서 손을 맞잡고 TV를 보는 거야. 작은 화면에 금방 고장이라도..

참살이의꿈 2019.07.15

친절, 공손, 배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전체 경제 수준은 상당한 레벨에 올라섰다. 밖에서는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정해 준다.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일인당 소득 3만 달러라는 통계가 무색하다. 국민의 행복도는 OECD에서 항상 하위권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이 큰 원인이다. 한국은 지나친 경쟁 사회여서 가정이나 직장 모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쟁 시스템에 길들여진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욕망끼리 충돌하며 불꽃이 인다. 농촌 공동체의 두레 정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도시 생활은 사막과 같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

참살이의꿈 2019.06.19

행복을 위해 버려야 할 것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버려야 행복해지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미국의 재무설계사인 폴란이란 분이 말하는, 버려야 축복인 여덟 가지가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나이 걱정 - 사람은 태어나 나이가 들어가며 어느 때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버는 돈이 늘어나고 지위가 높아진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력이 쇠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직장에서 나갈 날을 세게 된다. 젊은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려고 하거나 젊은 시절의 나와 비교하다 보면 나이가 걱정이다. 인생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과정이다. 힘들게 올랐으니 이제 여유를 갖고 기쁜 마음으로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 뿐 우위를 따질 수는 없다. 걱정 대신 나이 드..

참살이의꿈 2019.06.11

행복을 생각한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유전자는 한 사람의 외모나 기질을 결정한다. 심지어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장래에 생길 병도 예견할 수 있다. 외국의 유명 배우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미리 유방 절제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 행복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비관적인 사람에 비해 높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행복에 관계되는지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행복하게 사는 능력도 상당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그렇다고 조상 탓만 할 수는 없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의하면 많은 부분이 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은 순전히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변수가 많다...

참살이의꿈 2019.05.27

어미의 마음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문득 스님이 된 고향 동무가 떠오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서로 떨어져 소식이 뜸했는데 어느 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엉뚱하면서 진지한 면이 있긴 했지만 스님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해인사에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아 눈물바람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젠 자식이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는 매몰찬 대답만 전해 들었다 한다. 에미 얼굴도 안 보려는 지독한 놈이라고 돌아와서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한다.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 뒤로도 풍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아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동무와는 정말 우연히 군대에서 재회했다. 사단 사령부에 ..

참살이의꿈 2019.05.12

과보를 받겠습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물질세계에서 생기는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학문이 자연과학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만물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는 인과 관계에 대한 깔끔한 이론이다. 만일 원인 없는 결과가 존재한다면 과학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인과 원칙을 적용한 것이 불교의 업론(業論)이다. 선업에는 좋은 과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른다[善因樂果 惡因苦果]. 인간이 짓는 모든 생각이나 행위가 업(業)으로 남아 영향을 미친다.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것이 불교의 원리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악업을 지어 놓고 좋은 과보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에 다름 아니다. 거기서 괴로움이..

참살이의꿈 2019.04.28

마음 설거지

스롱 피아비라는 캄보디아 출신 여자 당구 선수가 있다. 피아비는 2010년 스무 살 나이에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하고 우리나라에 왔다. 남편은 스물여덟 살이나 많았다. 의사가 꿈이었으나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타의로 낯선 나라에 온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뒤에 인생 역전이 일어났다. 결혼 이듬해 우연히 남편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큐를 잡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자세가 남달랐다. 재능을 알아본 남편이 당구 선수로 적극 지원했고,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자 당구 3쿠션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2017년에 프로가 되었다. 프로 데뷔 10개월 만에 국내 1위에 올랐다. 현재 아시아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 3위에 올라 있다. 당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상..

참살이의꿈 2019.04.15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 죽을 둥 살 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더니 다 헛것이었다. 너희들은 나같이 바보로 살지 마라. 좋은 데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챙겨라. 늙고 아프면 모든 게 쓸데없다.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식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잘 못 해 드리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다. 어머니는 그래도 둘째네와 살고 있지만, 고향의 다른 노인은 독거로 지내시는 분이 많다. 자식이 많지만 전부 외지에 나가 있다. 한밤중에 잠이 깨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외로움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다. 따져보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만 특별할 수가 없다...

참살이의꿈 2019.04.09

지공거사가 되다

지공거사(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65세 이상 되는 노인)가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학교 동기들보다 이태나 늦다.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간 데다, 호적마저 일 년 늦은 결과다. 그래서 제일 끄트머리로 지공거사에 편입했다. 아직 경로카드는 발급받지 못했다. 서울에 살지 않으니 지하철 무료 이용 카드가 그다지 소용이 없다. 다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된다. 그동안 몇 번의 전시회와 시설 입장료에서 할인을 받았다. 막상 요금 할인을 받아보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이 있듯이 돈 앞에서는 나이 든 사실을 자랑할 만도 하다. 이젠 대중교통 경로석에도 떳떳하게 앉을 수 있다. 전에도 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가 백발이라 나를 칠십대로 보..

참살이의꿈 2019.03.17

노인본색 여덟 가지

친구가 관심이 가는 글을 보내줬다. 제목이 '노인본색 8가지'다. 노인이 되면 나타나는 특징을 추려낸 글인데, 나를 돌아보며 경계로 삼을 만한 내용이다. 1. 얼굴이 무표정해진다. 마음이 완고해지는 탓일까, 늙어지면 얼굴도 굳어지고 무표정해진다. 어린아이의 말랑말랑한 마음과 비교해 보라.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해도 미소나 웃음은 나이를 잊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 2.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젊은이의 행동 등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못 본 척 하더라도 속에서는 짜증이 생긴다. 쌓이면 불만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단지, 우리와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3.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낸다. 화를 잘 내는 것도 노화 현상의 하..

참살이의꿈 2019.03.02

프리터

프리터(Freeter)란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프리터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진정한 프리터는 정규직을 자의로 포기하고 최소한의 일을 하는 선택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어야 한다. 시간당 1만 원으로 계산해서, 하루에 5시간씩 20일 일하면 1백만 원이 나온다. 이런 프리터가 일본에서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 신문에 충북 청주에 사는 프리터 한 분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커피 전문점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월세와 관리비로 22만 원, 휴대폰비와 교통비로 10만 원, 나머지는 식비..

참살이의꿈 2019.02.24

둔해지면 좋겠다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

참살이의꿈 201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