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변화의 씨앗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더없이 행복해 한다면 어떻게 될까? 돈을 더 벌려고 하지도 않고, 일류대학에 들어가려고 박 터지게 싸우지도 않고, 굳이 좋은 직장을 찾을 필요도 없고, 더 넓은 아파트를 바라지도 않고, 명품이나 신상품에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마 현재의 경제 사회 시스템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 열리게 될 세계는 어떨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 때문이다. 경쟁과 욕망 추구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도 맞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참살이의꿈 2010.02.12

꿈을 비는 마음 / 문익환

개똥 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자리 점지해 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

시읽는기쁨 2009.01.01

하늘공장 / 임성용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 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 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내야겠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들, 피 흐르는 것들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삶은 고통일지라, 죽어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늘공장의 예배당에서는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힘없이 잘린 모가지를 껴안고 천천히 해찰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늘공장으로 출근을 해야겠다 큰 공장 작은 공장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하늘공장에 가서, 저 푸른 하늘공장에 가서 부러진 손과 발을 쓰다듬고 즐겁게 일해야겠다 땀내 나는 향기를..

시읽는기쁨 2008.08.1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는 국립 서울농학교가 있다. 청각장애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곳이다.외형은 일반 학교와 비슷하지만시끄러운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은 수화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교정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다. 그러나 말 없는 말은 빛 가운데에 가득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수화라는 것에 동감하게 된다. 농학교가 직장과 가깝다보니 지하철에서도 가끔씩 농아들을 만난다.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는모습은 하나 같이 밝고 귀엽다. 가슴 한 편이 아리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그들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지만 추측컨대 신체적 한계로 인해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세상의 때가 훨씬 덜 묻었을 것이다. 그들..

사진속일상 2008.06.24

생체 리듬을 생각한다

예전에 바이오리듬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바이오리듬은 인간은 누구나 출생할 때부터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신체 리듬, 감성 리듬, 지성 리듬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론이다. 세 곡선은 출생과 동시에 제로 지점에서 출발해 주기의 변화없이사람의 일생을 지배한다. 그래서 간단한 계산만으로 사람의 에너지 상태를 측정할 수 있고, 운동 선수의 컨디션 체크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심신이 어떤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동감하지만 그 원리가 이렇게 단순하다는데 대해서는 의문을 가졌었다. 처음에는 나도리듬 상태를 확인하고 생활에 적용해 보려고 했지만 곧 시들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어떤 리듬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젊었을 때..

길위의단상 2007.09.29

이사하는 꿈

사무실의 자리를 옮기다. 옆방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다. 그런데 새로운 자리는 책상도 좁고 바닥도 울통불퉁하여 의자가 제대로 놓이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사람들도 어색하기만 하다. 괜히 옮겼다는 후회를 하다. 집이 이사를 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도심 가운데 '동아' 전철역 옆에 있는 한신아파트 100동 800호다. 집을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물으니 아내와 아이들이 그렇게 대답하다. 중학교 동창들이 그집으로 많이 찾아오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는데 벽을 기어올라서 창문으로 들어가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동하다. 오늘 새벽에 꾼 꿈이다. 요사이는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하는 꿈을 연속으로 꾸고 있다. 대부분의 꿈이 무질서하고 의미없게 보이지만,이렇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꿈..

길위의단상 2006.10.08

꿈의 해석

꿈에 C가 집으로 찾아왔다. 집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씬하고 예뻐져서 예전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C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집안 탁자에 마주앉았다. 아내는 자리를 피했다. 그동안 많이 아팠다고 했다. 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 옆에는 다른 사람이 개봉해서 열어본 그 편지가 있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고, C는 그때와 다르게 연약하고 가냘팠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든 장갑을 선물했다. 털장갑인데 색실의 예쁜 무늬가 놓여 있었다. 옛 얘기도 하고 당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보려는데 잠이 깨었다. 오늘 새벽에 꾼 아주 선명한 꿈이었다. C는 20대일 때 교회에서 만났다. 잠시 청년회 활동을 같이 했는데 같은 대학교에..

길위의단상 2006.09.14

신기한 꿈

사람의 뇌는 불가사의하다. 뇌의 위치에 따른 기능은 자세히 조사된 듯하지만, 사고나 기억의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무의식 영역까지 포함시키면 사람의 뇌는 신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저장 탱크에 있는 자료들이 무작위로 튀어나와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뭔가의 신비한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예지몽 같은 것은 믿기에는 너무나 기이하지만 그런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 현재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앞으로 물질과 정신을 통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론이 등장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4차원 시공간에 갇힌 인간이 다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꿈이 아닌가하는 상상도 해..

길위의단상 2006.08.22

다시 그리는 나의 꿈

외딴 산기슭 조용한 곳에 백여 평 정도 되는 땅을 얻고 싶습니다. 경치는 중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양지바르고 배수가 잘 되는 땅이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기를 부리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지만 많은 비용을 들여서야 내 성격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주위에는 여러 가지 과일나무와 꽃나무들을 심겠습니다. 마당에는 황토를 깔고 한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평 남짓 되는 흙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지어보겠습니다. 이번에 짓는 집은 친환경적인 소재만 사용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측간 역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 것입니다. 사람에서 나온 것이 땅으로 들어가고 다시 ..

참살이의꿈 2006.08.19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갖고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언제나 조용히 웃는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국과 약간의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타산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잘 보고 들어 행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숲 그늘 작은 초가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 있으면 부질없는 일이니 그만 두라 하고 가뭄이 들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벌벌 떨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 받지도 않고 걱정시키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비에도 지지 않고..

시읽는기쁨 2006.08.11

요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름진 것을 즐기려 하지 않고, 집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 관념이 달라지면서 이제껏 유행했던 많은 상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망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상품시장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군들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시장 붕괴는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욕망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발휘하여 소비와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

참살이의꿈 2006.01.15

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 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시읽는기쁨 2005.12.16

우리들의 대통령 / 임보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 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 말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도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가난한 시인들의 시집도 즐겨 읽고, 가끔은 화랑에 나가 팔리지 않은 그림도 더러 사주는 발명으로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좋은 상품으로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서는 육자배기 한 가락쯤 신명나게 뽑아내기도 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

시읽는기쁨 2005.09.02

내 꿈

겨울비가 내린다. 가늘고 곱게 내린다. 닫힌 창문 사이로 낙숫물 소리가 똑 똑 여리게 들린다.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느끼는 이 계절은 방안의 기온만큼 썰렁하다. 초겨울의 빗소리를 들으며,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는다. 선생님은 우리 글과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참 교육자였고 시대의 예언자였다. '악마들이 하는 짓을 경고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겠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이런 맑은 날에도 하늘은 그 옛날의 하늘빛이 아니다. 흐릿한 잿빛이 좀 섞인 파란빛이다. 산을 보면 여름과 다름없이 흐릿하고, 먼 산은 잿빛으로 가려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언제나 매연으로 덮여 있고..

참살이의꿈 2004.12.05

내가 보고 싶은 것들 / 박노해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장애우 앵커를 보고 싶어요 노동하는 삶의 철학을 강의하는 노동자 교수님을 보고 싶어요 이혼한 젊은 여자가 실력 있는 대통령으로 뽑히는 걸 보고 싶어요 동남아시아계 서울 시장이 세계경영을 이끄는 걸 보고 싶어요 서울역에서 상경하는 농사꾼에게 정중히 경례하는 경찰들이 보고 싶어요 안기부 청사에 아이들과 김밥 싸들고 격려 방문하는 시민들을 보고 싶어요 북한 노동자의 손에 깨끗이 쓰러진 수령의 동상을, 항일 운동하던 시절의 김일성 장군 사진이 독립기념관에 걸려진 걸 보고 싶어요 거리에 자동차보다 많은 자전거의 물결을 보고 싶어요 안 갖는 긍지로 적게 벌고 나누어 쓰자며 '푸른 생산'을 내건 파업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토실토실 살 오른 아프리카 아이들이 두 뺨 발그레한 남북한 아이들과 어..

시읽는기쁨 2004.11.21

꿈의 달

'꿈의 달'을 보러 일산 호수공원에 갔다. 작품에도 호기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꿈'과 '달'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그 말들에서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슬픈 느낌이 들고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의 꿈들이나마 확인하고픈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지름 15m의 대형 풍선에 세계 140여개 국가의 어린이들이 '나의 꿈'이라는 주제로 그린 작은 그림 13만장을 붙여서 호수에 띄워 놓았다. 밤이 되면 밖에서 여러 색깔의 조명을 비추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구촌 어린이의 수많은 꿈이 모여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강익중 님의 작품이다. 실제 달처럼 하늘에 띄워놓는다면 더욱 멋있을 것 같은데 지구..

사진속일상 2004.09.15

3년 전

만약 운명이 있다면 그는 무척 짓궂은 장난꾸러기일 것 같다. 神은 밋밋한 인생을 재미없다고 본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하는 식으로 우리 인생길에다 이곳 저곳 지뢰를 묻어 두었다. 춤추며 가던 인생길에서 지뢰를 밟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상처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 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 롤러 코스터를 탄것 마냥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기도 하고 또끝없는 아찔한 추락을 경험한다. 인생은 시소타기다. 5년마다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탓에 이번에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새로 옮긴 직장의 여건이 내가 기대한 조건과는 많이 어긋난다. 여유있는 삶, 느릿 느릿 걸어가고 싶은 삶을 추구하면 할 수록 그에 비례하여 내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장난꾸러기의 훼방에 속이 탄다. 세월이 흐..

참살이의꿈 2004.02.29

무릉도원은 어디에

`소백산의 어느 계곡에서 봄꽃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안개까지 끼기 시작해 동서남북의 방향도 헷갈리면서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곳에 절벽이 나타났고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있었다. 그 동굴을 지나가니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에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기름진 논밭이며 아름다운 호수, 뽕나무나 대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개와 닭소리도 한가로이 들리고 사람들은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평화롭고 이국적이었다. 장식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흰 옷을 입은사람들은 한결같이 즐겁고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며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

참살이의꿈 2004.02.09

꿈 / 서홍관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 소리도 잊어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소년이 되어보는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은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이면 웅변조로 자주 강조하셨다. "Boys, Be ambitious!" 다른 얘기도 많이 하셨을 텐데, 시간은 모든 걸 걸러내고 오직 하나만 남겨 놓았다. "야망을 가져라!" 스피커를 통해 찌렁 찌렁 울리던 그 소리는 늘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당시의 나는 야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골뜨기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나 희망도 대부분 낯 설었다. 내 능력 밖인 것 같았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무엇이 ..

시읽는기쁨 200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