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인천 28

연미정 느티나무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에 있는 느티나무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500년으로 되어 있으나 그렇게 오래 돼 보이지는 않는다. 원래는 두 그루가 있었으나 하나는 4년 전 태풍 때 허리가 부러져서 죽고 말았다. 그래선지 짝을 잃은 이 느티나무가 더 외로워 보인다. 나무는 부러졌지만 둥치에서는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아직 뿌리는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고목이 죽더라도 다시 생긴 줄기가 성장하여 2세대 큰 나무가 되기도 한다. 자연의 생명력은 경이롭기만 하다.

천년의나무 2023.09.06

중산동 느티나무

인천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느티나무다. 영종도 구읍뱃터 근처에 있다. 마을 당산목으로 당제를 지내던 나무라는데 옛 마을은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만 우뚝하니 나무를 압도한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지켜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들어서고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 나무는 어리둥절한 채 지켜볼 것 같다. 중산동 느티나무의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1m다. 작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천년의나무 2020.12.29

장수동 은행나무(2)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장수동만 아니라 인천시의 자랑이다. 이렇게 멋지고 우람한 은행나무를 본다는 게 영광이며 감사하다. 나이가 8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높이 30m, 둘레 8.6m에 이를 정도로 크면서, 5개의 가지가 균형을 이루며 뻗어 있어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12호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내가 볼 때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베스트 텐'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이 은행나무를 처음 만난 건 9년 전 겨울이었다. 봄에 초록 잎을 입은 모습을 보니 더 감탄이 나온다. 왕성한 수세로만 본다면 8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다. 예전에는 음력 7월과 10월에 마을 주민들이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했다고 한다. 그런 전통은 이..

천년의나무 2020.05.21

고구리 느티나무

교동도 고구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행정 명칭으로는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다. '고구리(古龜里)'는 고구려를 연상시키지만 한자를 보면 전혀 관계 없다. 고읍리와 구산리가 합쳐진 마을이라고 한다. 이 느티나무 주변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나무 하나가 이만큼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경우도 드물다. 주위는 돌담으로 둘러싸이고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나무를 대하는 마을 주민의 정성이 읽힌다. 안내문에는 고구리 느티나무의 수령이 800년으로 나와 있다. 나무 높이는 27m, 줄기 둘레는 7m다. 밑둥만 봐도 대단한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전에는 이곳이 마을 우물이 있는 주민의 공동 생활 터전이 아니었을까, 라는 추측을 해 본다. 주변이 잘 단장되어 돋보이는 느티나무다. 고구리에는 또 다른 느티나무가 있다...

천년의나무 2020.02.16

화개사 소나무

화개사(華蓋寺)는 교동도의 화개산 자락에 있는 아담한 절이다. 고려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목은 이색 선생의 '화개사'에 관한 시가 있어 선생이 이곳을 들렀을 가능성이 높다. 화개사 경내에 200년 수령의 소나무가 한 그루가 우뚝하다. 몇 군데 줄기가 잘려 나갔지만 늘씬한 수형의 잘 생긴 소나무다. 나무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1.6m다. 소나무 옆에 서면 서해 바다와 섬이 내려다 보인다. 따스한 겨울에 보는 바다 풍경이 아늑하다.

천년의나무 2020.02.15

보문사 향나무

석모도 보문사에 있는 향나무다. 대웅전 왼쪽 옆의 석실 앞에 있다. 나무가 있는 땅은 주변보다 2m 정도 높다. 땅을 깎아내면서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듯하다. 수세가 왕성하여 잎이 온몸을 둘러싸고 있다. 수령은 700년 정도로 추산한다. 45도로 땅에서 나온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용트림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철주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가지 하나는 상했을 것이다. 이웃해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이 향나무는 보문사의 중요한 풍경을 이룬다. 이런 나무가 있으므로 절 역사는 깊이를 더한다.

천년의나무 2019.05.16

관청리 느티나무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강화성 동문 가까이에 있다. 지대가 높아 나무에서는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수령은 600년 정도이고,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7m다. 이 나무는 큰 가지가 하나가 잘려나가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온전한 나무라면 360도 대칭 구조라 어디서 봐도 비슷하다. 그러나 균형이 깨지면 같은 나무인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산한 세월의 흔적이 배인 관청리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5.14

남촌동 은행나무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남촌동성당 안에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성계가 조선조를 세우자 고려 왕족 중 한 사람이 이 마을로 피난해 왔는데, 후에 이분의 묘를 쓰면서 심은 나무가 바로 이 은행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600년쯤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나무는 줄기가 둘로 갈라져서 높이 솟아 있다. 10년 전 태풍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성당 지붕이 파손된 일이 있다고 한다. 노쇠한 듯 보이지만 줄기에서 새로운 가지들이 많이 돋아나고 있다. 나무 높이는 31m, 줄기 둘레는 7m에 이른다.

천년의나무 2012.01.04

구월동 회화나무

이 나무가 있는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낮은 지역은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약 500년 전 이곳을 왕래하던 배에서 흘러들어온 씨앗이 자라 지금의 회화나무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바다에서 왔다고 '해(海)나무'로 부른다. 회화나무는 작은 언덕에 있다. 전설대로라면 옛날에는 바다를 굽어보며 있었을 것이다.지금은 밭이지만 그때는 나무 주위에 동네가 있지 않았을까. 500년이라는 세월이 이곳을 어촌에서 농촌으로, 그리고 도시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수령이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회화나무는 높이가 30m, 줄기 둘레가 6m 정도 되는 크기다.

천년의나무 2011.12.26

간석동 향나무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이 향나무는 500년 전 어떤 장사가 우물에서 물을 떠먹고 말채찍을 꽂아 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해진다. 드문 말채찍 전설이다. 장사가 심어서 그런지 나무는 크고 당당하다. 전체적인 맵시도 균형이 잡혀 있다. 키는 17.5m, 줄기 둘레는 3,5m이다. 이 향나무는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최립(崔笠, 1539-1612)의 집 마당에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비 온 뒤'라는 시가 있다. 朝來風急雨몽몽 錦繡千林一半空 已作漫山秋色了 殘紅與泛碧溪中 - 雨後 / 崔笠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수놓은 비단 같던 수풀 절반을 비웠네 이미 온 산은 가을빛을 거두고서 남은 붉은 잎을 푸른 물에 띄우네

천년의나무 2011.12.21

장수동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이나 되는 은행나무다. 인천시에 있는 나무 중에서는 최고령일 것이다. 생김새도 범상치 않다. 다섯 개의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뻗어져 나온 모습이 털북숭이 큰 짐승이 웅크려 있는 것 같다. 겨울이라서 나무의 진면목이 다 드러난다. 그러나 잎이 달린 계절이라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나무 높이는 30m, 줄기 둘레는 8.6m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을 이곳은 지금은 옆으로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고가차도가 지나가고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등산객들도 많이 지나다녀 북적인다. 나무 보호를 위해 이중으로 울타리를 세웠다. 그러나 나무줄기를 둘러싼 금속 울타리는 아쉽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이 음력 7월과 10월에 제물을 차리고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고, 집안에 액운이 생기거나 돌림병이 돌면 이 나..

천년의나무 2011.12.17

장수동 느티나무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長壽洞)은 옛날에는 장자골, 무네미, 만의골의 세 마을이 있던 곳이다.그중에서 장자골은 마을을 지켰다는 여덟 명의 장사 전설로 생긴 이름이다. 임진왜란 이후 도둑이 날뛰었는데, 여덟 장사가 마을을 지켜 장자골은 안전했다고 전해진다. 이 느티나무에 잡은 도둑을 묶어두고 징벌을 가했다고 한다. 나무의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9m, 줄기 둘레는 3.4m이다. 몇 군데 가지가 잘려나가 나무는 온전한 모양이 아니다. 나무 주위는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천년의나무 2011.12.17

백련사 느티나무

강화도 고려산에 있는 백련사는 봄이면 몸살을 앓는다.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구경꾼들이 고인돌광장에서부터 백련사를 거쳐 진달래 꽃밭에 간다. 사람 발길 드문 조용한 산사가 한 달 정도 시장통이 된다. 스님들도 봄 몸살로 고생할 것 같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인도에서 온 천축조사가 절터를 찾다가 강화도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못을 발견했다. 색깔별로 연꽃씨를 채취하여 공중에 날려 떨어진 곳마다 가람을 세웠다는데 그 중에서 흰 연꽃씨가 떨어진 곳이 바로 백련사(白蓮寺)다.이 산의 원래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었는데 뒤에 고려산으로 바뀌었다. 아마 고려 시대에 왕실이 강화도로 피난온 것에서 그렇게 바뀌지 않았나 싶다. 전설대로라면 백련사는 유서 깊은 고..

천년의나무 2011.04.27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시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있다. 서구 신현동에 있는데 나이는 500살이 넘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어 집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지만 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고 관리도 잘 되고 있는 편이다.도시에 있는 대개의 나무들처럼 옹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는 생육 상태가 좋아보이며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키는 22 m, 줄기 둘레는 5.6 m에 이른다. 잎이 떨어진 회화나무는 가지의 실루엣이 멋있다. 마치 파마를 한 듯 고불고불하게 굽은 잔가지들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미인이 옷을 벗으면 더 아름답듯 나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겨울나무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이 나무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나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나무를 그리는 최적의 앵..

천년의나무 2009.12.23

계산동 은행나무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부평초등학교는 옛 부평도호부 자리에 있다. 정조가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던 흔적으로 욕은지(浴恩池)와 어사대(御射臺)가 남아 있다. 부평초등학교는 역사가 100년이 넘는 학교인데 운동장에는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나무들은 태종 18년(1418)에 부평도호부 청사를 지었을 때 풍치목으로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나이는 대략 600년 쯤 되었을 것이다. 겨울에 봐서인지 나무는 많이 상해 보였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교문에서 멀리 있는 은행나무가 줄기도 굵고 키도 컸다. 이 나무는 새총처럼 줄기에서 두 가지가 갈라져 나왔는데 줄기의 많은 부분이 보형재로 채워져 있었다. 키는 약 25 m, 줄기 둘레는 6 m 정도 된다. 나무의 위치..

천년의나무 2009.12.19

전등사 느티나무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절에 가도 부처님보다는 오래된 나무만 살피게 된다. 우리나라 절은 보통 고목 한두 그루쯤은 있는 법이니 그런 나무 구경하는 재미가 나에게는 가장 좋다. 처음 만나게 되는 나무라면 더욱 반갑겠지만 여러 번 보더라도 또 그대로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나무가 가장 은혜로운 설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앞뜰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안내문이 없어 정확치는 않지만 내 눈에는 나이가 삼사백 살 쯤 되어 보이는 나무다.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인 나무다. 마치 절을 지키는 정갈한 수도승 같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절을 찾아오는 손님을 허리 굽혀 공손히 맞이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만약 이 느티나무가 없다면 전등사의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

천년의나무 2009.12.02

전등사 단풍나무

강화도 전등사 대웅보전 앞에 대조루(對潮樓)라는 누각이 있다. '바닷물을 마주본다'는 뜻일 텐데 실제는 산과 나무에 가려 바다는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없다. 이 대조루 옆에 굉장히 큰 단풍나무가 있다.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풍나무라고 한다. 줄기 둘레만 거의 두 아름이 된다. 그러나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가 합쳐져 있어 그 가치가 반감된 모양이다. 나무는 축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옹색하기가 그지 없다. 지나는 사람들도 나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 달 전쯤에 찾아갔을 때는 막 단풍색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단풍나무들은 절정이 지났을 때였는데 이 나무는 덩치만큼이나 동작이 느렸다. 아마 지금에야 붉은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내년에는 느지막하게..

천년의나무 2009.11.24

초지진 소나무

강화도에 있는 초지진(草芝鎭)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였다. 해안을 따라 10 리에 하나씩진(鎭)을 뒀고, 그 사이에 보(堡)를 세워 해안을 방어했다. 이곳은 외세가 몰려오던 19 세기 중반의 격변기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옛 아픈 상처의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초지진에는 멋드러진 모양의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우산 모양을 한 처진소나무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동양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맵시다.그러나 줄기에는 그 당시의 포탄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나이는 추측컨대 300 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에는 아마 이런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나무들이 전투 ..

천년의나무 2009.04.02

참성단 소사나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塹星壇)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전해지고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단군은 평양에 도읍한 후 뒤에는 이곳 마니산으로 옮겨제단과 성을 쌓고 천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은 개국설화와 관계된 신성한 곳이다. 고래시대 때부터는 임금이나 제관이 찾아와 여기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 참성단 안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서 나라를 열었다는 단군 설화를 생각하면 박달나무여야 할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소사나무라고 한다. 소사나무는 마니산에서흔히 볼 수 있는데 해변가에서 잘 자라는 키 작은 나무다.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에는 대규모 군락지가 있다. 몇 년 전에 찾아가 보았을 때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울퉁불퉁한 줄기가 인상적이었다. 참성단은 출입이 금지되어..

천년의나무 2008.11.28

마니산 소나무

서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니산 정상부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바위 틈에 자리를 잡아선지 힘들고 야위어 보이는데, 더구나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해풍 탓으로 몸은 완전히 육지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분재 같은 늘씬한 몸매는 지나는 등산객의 시선을끌아당긴다. 줄기는 용틀임 하며 올라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만약 수령이 오래 되었다면 명품 소나무 반열에 오를 만한 모양새다. 전에는 나무만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새로이 보호 철책을 둘렀다.사람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이 나무를볼 때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떠올랐다. 낙락장송의 기상이라면 이렇듯 홀로 산꼭대기에서 당당하게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더구나 영산(靈山)이라는 마니산 정상에 있으니 이 나무의 기..

천년의나무 2008.10.31

보문사 은행나무

석모도 보문사에는 강화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의 관리자는 삼산면장이고, 수령은 400년으로 적혀 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은행나무이기 때문에 별로 색다른 느낌은 없지만 연륜에 비해서 나무가 왠지 초라하게 보인다. 초록색 은행잎으로 덮여있어야 할 나무가 잎도 부족하고 왠지 내복만 입고 있는사람처럼 썰렁하고 민망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언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지치기가 너무 심하게 되어 있다. 한여름인데 잎도 잘 나지 못하는 걸 보면 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닌가 싶다. 왜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한 나무를 이렇게 흉하게 만들었을까? 내 추측으로는 아마 이 나무가 뒤쪽의 절 건물을 가리기 때문에그랬지 않았나 싶다. 사실이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천년의나무 2007.08.20

동검도 서어나무

오래된 서어나무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동검도에 들렀다. 섬의 서쪽 해변가 마을에 부채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싱싱한 서어나무가 있었다.안내판에는 수령이 200년, 크기는 높이가 20m, 둘레가 3.2m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수종은 이상하게 소사나무로 적혀 있다. 서어나무와 소사나무가 비슷하긴 하지만 수목도감에 보면 서어나무와 소사나무는 엄연히 다른 나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안내판이 도리어 헷갈리게 만든다. 서어나무 하면 근육질의 줄기가 우선 연상된다. 울퉁불퉁해서 재목이나 다른 용도로는 별로 쓰이지 못한다. 건조도 어렵고, 목재가 잘 썩는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별 쓸모 없는 나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해변가의 방풍림으로 심기도 한다. 우연인지 내가 본 서어나무는 모두 바닷가..

천년의나무 2007.05.21

용궁사 느티나무

영종도에 있는 용궁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각각 할아버지와 할머니나무로 이름 붙은 이 느티나무들은 수령이 1300 년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목이다. 이 정도 나이면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 최고령에 해당된다. 두 나무 중 할아버지나무는 그런대로 생육 상태가 좋은 편이고, 할머니나무는 한 쪽 줄기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래도 남은 줄기에서는 봄의 새잎이 파랗고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다. 나무 아래 길에서 윗방향으로 바라본 모양이 마침 역광이어서 힘있는 사진으로 찍을 수있었다. 용궁사(龍宮寺)는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백운사(白雲寺)'로했다고 한다. 이 절 뒷산 이름이 백운산이다. 그러니까 느티나무는 절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셈이다. 절 옆으로는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천년의나무 2007.05.04

관청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강화도 관청리 고려궁지 옆에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이곳으로 옮겼을 때 건설되었다. 그 뒤 1270년에 몽고와 화의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이 터에는 조선시대에 행궁이나 강화유수부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는 조선시대 주요 관청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관청리인 것 같다. 추측컨대 이 은행나무도 어느 관청 건물 마당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는 프랑스에 의해서 기타 여러 차례 병화를 겪으며 관청이 있던 곳은 불에 타고 축소되어 지금은 마을이 들어선 것 같다. 고려궁지 앞 쪽에서는 그런 옛 터의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이 은행나무는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 의하면 나무의 나이는 약 70..

천년의나무 2007.01.28

십리포 서어나무

영흥도에 있는 십리포 해수욕장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서어나무(소사나무) 군락지가 있다. 약 150여 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해풍을 막기 위해 심은 방풍림으로, 해안가를 따라 천 평 가량의 터에 300여 그루의 서어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금은 보호 울타리를 쳐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나무의 보호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이지만 탐스런 줄기를 만져볼 수 없음은 안타깝다. 이곳의 서어나무는 곧게 뻗지 못하고 구불구불 줄기가 휘어져 있다. 사나운 해풍에 시달린 탓이리라. 년수에 비해서는 크게 자라지도 못했다. 나무에게는 인고의 흔적이겠지만 보는 사람에게는그것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찾아간 날은 이미 잎도 많이 떨어졌는데 구불구불한 줄기와 가지들이 가을의 쓸쓸한 바다 분위기와 잘 어울렸..

천년의나무 2006.11.08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도에는 두 그루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가 있다. 하나는 갑곶돈대 안에 있고, 또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 79호로 지정된 이 사기리 탱자나무이다. 마리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한 함허동천에 조금 못 미처 도로 옆에 이 나무가 있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는데, 강화도 기후는 연평균기온 11도, 강우량 1000 mm 정도로 기온의 연교차가 작고 비교적 따뜻한 날씨여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강화도 탱자나무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같이 간 동료의 얘기로는 약 400 년 전 봉림대군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날카롭고 단단한 탱자나무 가시는 귀신도 물리친다고 하니 적병들 쯤이야 쉽사리 막아줄 수 있으리라는 믿..

천년의나무 2005.10.18

전등사 은행나무

요사이는 어디를 가든 제일 눈길이 가는 것은 나무나 풀들이다. 절에 가면 늘 노거수(老巨樹)를 찾게 된다. 경내에 연륜이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절집의 고풍스런 분위기는 한결 더해진다. 그리고 보통은 나무에 얽힌 전설 하나쯤은 들을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에는 오래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안내문에 보면 수령이 각각 500년과 600년으로 되어 있다. 삶에 지쳤는지 많이 쇠약해 보이는 이 은행나무에는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선 후기 어느 때였다고 한다. 관청에서는 매년 전등사에서 상당한 양의 은행을 공출해 갔는데 그 양이 늘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 해는 그 양을 갑자기 두 배로 늘려 스무 가마니를 요구했다. 이에 스님이 은행이 열리지 않으면 공출도 없을 것이라..

천년의나무 2005.07.06

갑곶리 탱자나무

집 울타리로 무슨 나무가 좋은지를 물어볼 때 탱자나무를 추천하는 사람은 대개 고향이 남쪽 지방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탱자나무에 얽힌 추억담 한 두 가지 정도는 들려준다. 탱자나무는 추위에 약하다. 내 고향만 해도 탱자나무를 보기는 힘들었다. 옆 마을의 어느 집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는데 가을에 달린 노란 탱자 열매가 겨우 기억나는 정도다. 며칠 전 강화도에 간 길에 갑곶돈대에 들러 천연기념물 78호인 이 탱자나무를 만났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서 자라는 탱자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산하는데 울타리로 본 키 작은 탱자나무만 연상하다가 만나서인지 이렇게 큰 탱자나무도 있나 싶게 거목이다. 물론 다른 나무가 400년이 되었다면 엄청나게 더 클테지만,극한 한계의 조건에서 긴 세월..

천년의나무 200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