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25

어머니를 뵙고 오다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왔다. 2박3일을 함께 지내면서 옛 추억을 소환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다. 친척들과 많은 마을 사람들이 한두 사지 사연들을 던져주고 명멸하듯 스쳐 지나갔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짧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면 두문불출하고 어머니와 붙어 지낸다. 어머니도 외출할 생각을 안 하신다. 아들과의 이런저런 수다가 즐거운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제천 의림지에 들러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초봄의 바람을 쐬었다. 어머니가 놓으신 마늘의 초록 잎이 싱싱하게 돋아났다. 덮었던 비닐을 며칠 전에 벗겼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도 마늘을 심었지만 어머니 마늘만큼 생생하지 못하다. 이웃에 사는 선배는 어머니의 작물 키우는 ..

사진속일상 2024.03.14

씨엠립(5) - 똔레삽

어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을 한 탓에 오늘 오전은 휴식이다. 늦잠을 푹 자고 아침 식사 전 숙소에서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똑 같다. 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공원에서는 조깅이나 걷기를 하는 현지인의 발걸음이 상쾌하다. 이 모든 풍경을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감싼다. 물놀이하는 손주를 보며 풀장의 파라솔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 손님은 대부분이 서양인들이다. 가끔 호텔 식당에서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때뿐이다. 낮에는 관광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낮에도 풀장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쉬는 사람이 많다. 대체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긴 하다.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다. 그들한테서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반면에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24.01.25

아내와 강화도에 다녀오다

가을을 맞아 아내와 바람 쐴 겸 강화도에 다녀왔다. 먼저 들린 곳은 연미정(燕尾亭)이었다. 연미정은 조선 시대 무신이었던 황형(黃衡, 1459~1520)의 무공을 치하하여 중종이 하사한 정자다. 황형은 여기서 살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제비 꼬리 모양으로 돌출한 지형이어서 '연미'라고 부른다. 그 뒤에는 월곶진이 설치되어 관아로 사용하였다. 연미정에서 내려다보면 황형의 집터를 표시하는 비와 월곶진의 문루인 조해루가 보인다. 두 번째는 교동도의 연산군 유배지로 갔다. 이곳은 최근에 화개정원을 만들고 뒷산 꼭대기에는 화개산전망대를 세웠다. 정원에서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이 운행한다.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만 하고 싶었던지라 정원만 둘러보고 전망대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대룡..

사진속일상 2023.09.05

신안 여행(1)

처제 부부와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이 일이 꼬이는 바람에 계획과 어긋났다.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긴 했으나 엉뚱하게 두 팀으로 나누어 따로 다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상황에 맞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신안에 들어가는 길에 목포에 들러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북항승강장에서 탑승하여 유달산을 지나 고하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2019년에 개통되었고 길이는 3.2km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고하도 둘레로 해상데크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섬 가운데 있는 것은 전망대인 것 같다. 다음에 시간 여유를 가지고 목포에 온다면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유달산승강장에서 내리면 유달산 정상에도 다녀올 수 있다. 30분 정도 일등봉까지 오가는 산길을..

사진속일상 2023.05.18

고향에서 나흘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나흘간 함께 있었다.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와줄 목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들깨를 베는 일이 첫째였다. 들깨 모종 심고, 베고, 털고 하는 작업은 형제들이 나누어 내려와서 맡고 있다. 올해 내 일은 그나마 제일 쉬운 들깨를 베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들깨 작업을 마치고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심은 나무들이라는데 밤나무 고목이 산의 능선을 덮고 있었다. 이젠 마을 사람들한테도 잊혀서 오로지 어머니의 전용 밤밭이었다. 나는 10분여 줍다가 포기했는데 어머니는 30분 넘게 산을 타고 다니셨다. 아흔이 넘은 연세인데 모두가 놀라는 체력이다. 비슷한 또래의 동네 할머니들은 대부분 바깥출입하기도 벅차다. 자식 입장에서는 그러다가 다치실까 봐..

사진속일상 2022.10.15

선녀바위 석양

선녀바위 뒤로 지는 석양을 보기 위해 용유도해수욕장에 갔다. 바위 사이의 틈으로 해가 떨어지는 모양은 11월부터 2월 사이에 만날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날씨여서 바위 사이로 오메가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오메가 일출은 몇 차례 봤지만 오메가 일몰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서해의 오메가는 만나기 어렵다. 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10여 명 모여서 짧은 순간을 남기느라 몰입했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지고 나니 바다 색깔은 비단결 마냥 부드러워졌다. 마치 물 밑에서 조명이 비치는 듯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붉은색 기가 빠지고 바다는 다른 풍경으로 변신한다. 좀 무겁더라도 DSLR을 자주 들고 다녀야겠다. 아무리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일취월장한다 한들 한계는 있다고 생각한다. 새..

사진속일상 2022.02.18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탈것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역시 비행기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해 보고 싶은 직업 일순위는 여객기 조종사다. 어렸을 때 고향 마을 앞을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운전석에 앉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잠시 철도고등학교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그런데 비행기 조종에 대해서는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지금처럼 비행기가 보편화되고 다양한 조종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목표로 했을지 모르겠다. 영종도에 가는 길에 하늘정원에 들러서 비행기 구경을 실컷 했다. 하늘정원에서는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멀리 남쪽에서 한 점으로 나타나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 뒤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머리 위를 스쳐 간다. 창에는 ..

사진속일상 2022.02.18

강릉 바닷바람을 쐬다

바닷바람을 쐬러 아내와 강릉에 다녀왔다. 올해 들어서는 첫나들이였다. 아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고 있지만, 다행히 코로나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하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오늘 행선지는 안목해변, 솔향수목원, 굴산사지, 경포호로 잡았다. 일박을 하며 여유 있는 일정도 생각했으나 왠지 아직은 아닌 듯 싶었다. 밖에서 잠자고 식사하는 일이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역시 동해에 와야 바다다운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기운차게 포효하며 밀려오는 파도 앞에 둘이 섰다. 안목해변을 따라 바우길 5코스가 지나간다. 길이 지나는 솔숲이 좋다. 갈 때는 모래사장을 따라, 올 때는 솔숲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었다. 사랑, 얼마나 오래 잠그고 싶은 걸까?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솔향수목원은 23곳..

사진속일상 2021.01.21

선녀바위의 저녁

한 해가 저물어가서 그런지 해 지는 풍경에 자꾸 끌린다. 이번에는 서해 영종도로 나갔다. 을왕리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처제 부부와 만났다. 서쪽 바다 끝에 짙은 구름이 끼어 있어 해는 연붉은 색깔을 잠시 보여주다가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선녀바위 뒤에서 ND 필터를 끼고 30초 노출로 찍어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노을을 보기 전에 선녀바위와 을왕리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걸었다. 바닷길과 산길이 적당히 어울려 있는데 새로 만든 길이라 산뜻했다. 새로 설치한 출렁다리인데 코로나 때문인지 출입은 막고 있다. 산책로에서는 멀리 을왕리해수욕장이 보인다. 25년 전에 천문반 아이들을 데리고 별 보러 이곳까지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캠핑 장비에 무거운 망원경 두 개를 들고, 버스-전철-버스-배-버스를 타고..

사진속일상 2020.12.29

탄도항의 저녁

안산에 들린 길에 처제 부부와 대부도 탄도항에 찾아갔다. 코로나로 답답한 마음을 바닷바람이 씻어주길 바라서였다. 탄도항 앞에는 누에섬이 있는데 바닷물에 잠겼다 열렸다 하는 시멘트 길로 연결되어 있다. 마침 썰물이라 바닷물이 빠지고 길 주변은 넓디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비록 물이 빠졌지만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서해로 넘어가는 일몰까지 구경하는 것은 덤이었다. 때 맞추어 날씨가 포근했다. 탄도항에 도착한 건 오후 세 시경이었는데 바닷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누에섬에서 보니 제부도가 바로 코 앞이었다. 옆에 전곡항도 있다. 전곡항과 제부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는 교각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바깥나들이가 두렵지만 가족끼리의 가벼운 나들이는 괜..

사진속일상 2020.12.23

교동도와 장화리 석양

교동도에서 강화나들길 9코스를 걷는 경떠회 모임에 늦게 합류하다. 끝 구간을 30분 정도만 함께 걷다. 교동도는 교동대교가 세워지기 전 배를 타고 들어온 적이 있다. 화개사, 연산군유배지, 대룡시장을 둘러보고 교동도의 오래 된 나무를 찾았다. 그때 찍은 나무 사진을 무슨 이유인지 블로그에 올리지 못했다. 강화나들길은 총 20 코스에 길이가 310km인데, 교동도에는 9, 10코스가 있다. 조금밖에 걷지 못했지만 걷는 길로는 괜찮은 것 같다. 앞으로 강화도 나들이 계획 세울 때 나들길을 포함시키면 좋겠다. 대룡시장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먹다. 시장 분위기는 13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시골 장터의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현대적이고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다리가 개통되고 외지인 출입이 늘면서 생기는 ..

사진속일상 2020.02.15

무의도 일몰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가까이 있는 무의도에 갔다.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식사를 할 겸 일몰을 보기 위해서였다. 작년에 친구가 유럽 여행을 다녀오며 바로 텃밭으로 달려가서 물 주고 잡초를 뽑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피곤해서 한시 빨리 집에 가 쉬고 싶을 텐데 먼저 텃밭으로 달려가는 에너지가 부러웠다. 나도 흉내내 보고 싶었고, 텃밭이 없으니 대신 섬을 택했다. 무의도는 최근에 다리로 연결되어 차가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 만든 무의대교도 구경하고 싶었다. 하나개해수욕장에는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잔잔한 노을이 예뻤다. 아직 해수욕 철이 아닌데 텐트도 여럿 보이고, 방갈로에서는 가족 단위로 온 손님도 있었다. 해가 지고 나니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

사진속일상 2019.07.09

남한산성에서 노을을 보다

내 몸의 느낌보다 스마트폰 숫자를 보고 더위를 확인한다. 38도를 넘어섰다니까 여름이 더 뜨거워진다. 몸도 수치에 반응한다.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 이런 것을 두고 아는 게 병통이라고 하는가 보다.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며 빈둥거리다가 해 질 무렵에 남한산성으로 나갔다. 구름이 별로 없는 서쪽 하늘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해는 남산타워 바로 뒤로 진다. 석양을 보는 일이 참 오랜만이었다. 사진사들 틈에 끼여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었다. 카메라를 조작하며 셔터 소리를 들으니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결과물은 차후의 일이다. 앞 사진을 트리밍했다. 이 정도라도 확대해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집 가까이에 멋진 노을 조망 포인트가 있는데 그간 잊고 살았다. 카메라와 좀 더 가까워지고 내 몸..

사진속일상 2018.08.01

붉은 마침표 / 이정록

그래, 잘 견디고 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쪽으로 등뼈 굽었다 서해 소나무들도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 거라, 소름 돋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이쪽 소나무의 햇살 꼭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 그 하늘길로, 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되어 타고 넘는다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아느냐? 단 한 줄의 문장, 수평선의 붉은 떨림을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것을 - 붉은 마침표 / 이정록 울산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 서쪽 낮은 산에 걸린 붉은 해를 마주보며 달렸다. 고속도로는 석양빛을 반사하며 붉게 빛났다. 마치 레드 카펫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석양 풍경은 언제나 비장하고 장중하다. 석양을 '붉은 마침표'로 본 시인의 시각이 새롭다. 태양..

시읽는기쁨 2017.05.29

우음도 석양

안산에서 친지 결혼식에 참석하고 우음도에 들렀다. 광활한 간척지에 펼쳐진 원시의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제2서해안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옛날 분위기는 사라졌다. 우선 고속도로 소음이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같대밭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가끔 편대를 이루며 새 무리가 지나갔다. 쓸쓸할 때 찾아갈 장소가 하나 줄어들었다.

사진속일상 2014.10.12

우음도의 저녁

파도 소리가 소 우는 소리와 같았다는 우음도(牛音島), 경기도 화성에 있는 우음도는 이제 바다의 섬이 아니다. 시화방조제가 바닷물을 막으면서 육지 속의 섬이 되었고, 우음도 앞 바다는 너른 벌판으로 변했다. 풀씨들이 날아와 땅을 덮었고 군데군데 나무들도 저절로 자라났다. 사람이 둑을 막았지만 자연은 그 안에원시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전 직장의 부원들과 저녁 때에 맞추어 우음도를 찾았다. 낮에는 제부도 바닷길을 걷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는 조개구이를 먹었다. 송산리 공룡알 화석지에서는 지층 속에서 드러난 1억 년 전의 공룡알도 보았다. 이곳은 머나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 우음도는 가을 저녁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러나 이심도 깊은 쓸쓸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

사진속일상 2011.10.19

도시의 노을

장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일주일째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이상 팽창하여 장마전선을 북쪽으로 밀어낸 때문이라고 한다. 장마철의 한가운데에서 비를 그리워하다니, 마치 바다 한복판에서 마실 물이 없는 고통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더욱 짜증스럽다. 땀이 잘 증발하지 못해서 생기는 끈적거리는 느낌도 불쾌하다. 이런 때는 감정 조절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수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자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생기고 내상을 입는다. 어제 저녁에는 서소문을 지나다가 예쁜 노을을 만났다. 빌딩의 실루엣 사이로 펼쳐진 노을은 그 품에 안기고 싶도록 곱고도 따스했다.이 욕망의 땅에서 훌쩍 뛰어올라 저 아름다운 무욕의 공간으로 녹아들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달콤한 상..

사진속일상 2008.07.11

노을 만 평 / 신용목

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저기 폐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내 숨에 끝날까지 사슬 끌려도 노을 만 평 사다가 친구들과 옛 애인 창가에 놀러가고 싶네 - 노을 만 평 / 신용목 요사이 너도 나도 달려드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서해 바다의 노을 만 평쯤 갖고 싶다.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는, 돈이 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차라리 바보 같은 거래를 하고 싶다. 그리고 바보같은 친구 두어 명이 더 있다면 좋겠다.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그..

시읽는기쁨 2006.11.29

꽃지 해넘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시간에 맞추어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들렀다. 몇 번을 놓친 할매할배바위에서의 해넘이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시간이 남아 아내와 같이 물 빠진 넓은 백사장을 오가며 해지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다. 때가 되니 목 좋은 자리에는 사진사들로 가득 찼다. 뒷 자리 한가한 곳에 자리를 잡고 경탄할 짬도 없이 렌즈를 바꾸어가며 열심히 샤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어보니 해넘이에는 두 단계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해가 보이는 풍경인데, 이 때 절정의 순간은 1-2분 정도 지속된다. 그 날의 대기 상태에 따라 언제 절정의 순간에 도달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여러 컷을 찍어놓고 보면 나중에는 확연히 구분되어진다. 또 하나는 해가 지고 난 뒤 나타나는 저녁 노을이다. 나에게는 사실 이 ..

사진속일상 2006.02.25

서해 낙조를 보다

강화에 가서낙조를 보다. 연일 춥던 날씨가 좀 풀리고 양지 바른 곳에서 쬐는 햇볕은 봄햇살처럼 부드러운 날, 친구와 강화도를 나들이를 가다. 갑곶돈대에서는 갯펄에서 졸고 있는 오리들도 보고, 400년이 되었다는 탱자나무도 보고,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복고풍이 불었는지 길가 얼음판에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들도 덩달아 즐거워한다. 철사를 바닥에 깔고 창으로 찍어서 앞으로 가는 얼음썰매를 옛날에 우리는 '씨갯도'라고 불렀다. 그때는 스케이트를 타보근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인기 순위가 바뀌었다. 현대는 원시를 그리워하나 보다. 섬의 서쪽 해안가에는 '조단(照丹)'이라는 찻집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손님이 많아지는 전망 좋은 찻집이다. 밖에서 보는 낙조도 아름답지..

사진속일상 2005.01.15

겨울의 시작

서울은 그래도 한강이 있어 아름답다. 한강변의 넓은 억새밭을 노랗게 물들이며 빌딩들 사이로 해가 진다. 가을도 저물었다. 어제부터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지금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서야 겨울 준비가 별 다른게 없지만, 옛날에는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 놓으며 겨울 준비에 부산했다. 그 당시 할머니, 동생과 셋이 살 때에도 배추를 50포기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좁은 부엌에 연탄을 가득 쌓고, 냉기를 막기 위해 방 창문 바깥에는 비닐을 붙였다. 벽으로는 왠 찬 바람이 그렇게 들어 왔는지 한창 추울 때는 이불로 벽에 커튼을 쳐야했다. 가끔씩 연탄 가스가 들어와서 어떤 날 아침은 정신이 몽롱해서 깨어났다. 그래도 밖에 나가 찬 공기를 쐬면 이내 정신이 들었다. 작은방 한 칸에 옹..

사진속일상 2003.11.23

행복한 시간

자전거를 세워 놓고 강변에 앉아 석양을 본다. 퇴근할 때 자주 만나는 저녁 풍경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 한낮의 분주함과 소란함이 서서히 잦아들고 모든 사물이 무채색 속으로 스며드는 안식과 평화의 시간, 비록 하찮은 하루였을지라도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며 아쉽기만 한 하루였을지라도 어쩐지 모든 걸 다 사랑하고 용서할 것 같은 넉넉한 마음이 되는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비록 도시의 한가운데지만 이런 저녁 무렵이 나는 가장 좋다.

사진속일상 200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