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13

인섬니악 시티

책 내용이나 지은이인 빌 헤이스(Bill Hayes)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그러다가 엉뚱한 데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눈치를 못 채고 그나마 책의 뒷부분에 가서였다. '십육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아기처럼 자는 남자하고 살았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러니 지은이를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 남자를 남편이 아닌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으나 서양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책의 부제가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다. 파트너였던 스티브가 죽고 뉴욕으로 주거를 옮긴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는 - '불면의 도시'라는 뜻으로 뉴욕을 가리킨다 - 흥미로운 뉴욕 생활과 올리버 색스와의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읽고본느낌 2022.10.27

도시에서 산다는 것

앞집이 이사 온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 서로 현관문을 마주하고 있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벨을 누를 수도 없다. 현관 앞 복도에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가 있는 걸로 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인 것 같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너무 삭막하다. 서로 간섭 안 하는 익명성이 편리하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 싶다. 우리 아파트는 한 층에 네 가구가 사는데 입주한 지 4년이 되어 가지만 어느 집과도 정식으로 인사하지 못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어색한 눈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나마 윗집과는 몇 번 오갔는데 슬프게도 소음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도 얼굴이 익다고 이젠 밖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

참살이의꿈 2014.09.28

잠들지 못하는 나라

언젠가 친구 집 문상을 마치고 밤 두 시경에 서울 시내를 지난 일이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거리가 한가해 쉽게 집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사당동에서 이수 사거리를 지나는데 차들이 밀려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거리는 온통 불야성이었고 한밤중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여느 초저녁 풍경과 다름없었다. 우리나라 도시는 밤이 없다. 어쩌다 모임이 늦게 끝나 밤거리에 나서면 낮보다 더 복잡하고 북적인다. 이 사람들은 언제 잠을 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한밤중도 낮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니 출근 시간의 지하철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고 있다. 잠이 부족하지만 다음날도 일찍 잠들지 못한다. 아이들이..

참살이의꿈 2011.08.28

시래기 한 웅큼 /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를 한 웅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화해시켜 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동료들이 찾아가 빌어도 식당 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 몫 보려는 식당 주인은 그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 맞았다며 한 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 줌 합의금이 한 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한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시읽는기쁨 2008.12.14

아파트인 / 신용목

천 년 뒤에 이곳은 성지가 될 것이다 아파트 이 장엄한 유적에 눕기 위해 고된 노동과 아픈 멸시를 견뎠노라고 어느 후손은 수위실 앞에서 안내판을 읽을 것이다 관광 책자에 찍혀 있을 나의 유골을 구겨 쥐고 관리비 내러 갔던 관리소 종교인들이 층층이 잠들었다는 로마의 카타콤 성스럽게 북벽을 차지하고 걸린 사진처럼 하루는 아침 변기에 앉아 몇 미터 높이와 몇 미터 간격으로 차곡차곡 손을 늘어뜨리고 볼일을 보고 있을 아파트 주민들을 생각했다 박해의 축복처럼 뿌려지는 태양 가루 돌의 사막을 나서는 숫낙타의 갈라진 발톱과 마른 혓바닥을 닮은 여인의 얼굴 모래알을 씹는 아이들이 몸마다 칸칸이 멸망을 분양하고 사는 카타콤에 밤이 온다 구름과 구름 사이에 만찬이 차려지고 간곡함을 거룩함으로 옮겨놓는 시간의 낱장들이 창문..

시읽는기쁨 2008.08.29

차 없는 날

어제(9/10)는 '차 없는 날'이었다. 1997년에 프랑스의 작은 도시 라로쉐에서 '도심에서는 자가용을 타지 맙시다![In town, Without my car!]라는 구호 아래 자동차에 의존하는 도시생활 문화의 전환과 친환경적인 도시로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이 '차 없는 날'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9월 22일로 정해 범세계적인 행사로 열리는데, 우리나라는 추석 연휴 관계로 앞당겨서 실시했다. 도심을 통행하는 차량의 80%가 나홀로 차량이라는 통계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몇 십 kg밖에 안되는 몸덩이를 나르는데 1t이 넘는 쇳덩이를 끌고 다닌 것이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동차 중심 문화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와 부작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

사진속일상 2007.09.11

성공시대 / 문정희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자장면 오른발만 살짝 얹으면 굴러가는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네 나 성공하고 말았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시 대신 진주목걸이 하나만 사서 걸면 오케이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 아침 햇살보다 맑은 눈물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고독 다 귀찮아 시 파산 선고 행복 벤처 시작할까 그리고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 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 - 성공시대 / 문정희 부자 나라 신민들은 다 행복하여라! 그들의 인사는 "부자 되세요!"이고, 그들의 종교는 맘몬, 행동강령은 경쟁과 거침없는 ..

시읽는기쁨 2007.03.15

눈먼 자들의 도시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병원에 찾아가지만 그를 진료한 의사도 눈이 멀고,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백색실명증은 이렇게 도미노처럼 전 도시로 퍼져 나간다. 정부 당국은눈먼 사람들을 모아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장님들만으로 살아야 하는 수용소 안은 식량 약탈이나 강간 등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드러나는 지옥으로 변한다. 힘 센 깡패 무리까지 생겨나 식량을 미끼로 금품을 착취하고 여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가 있다. 남편을 돌보기 위해눈이 먼 것으로 위장하고들어와서 이 모든 현상들을 지켜보며 눈먼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수용소를 탈출하게 되는데 바깥 세상 또한 마찬가지로 변해 있었다. 모든 사람..

읽고본느낌 2005.12.18

도시의 저녁

빌딩 사이로 해가 넘어간다. 도시의 저녁은 다른 곳에서 보는 석양에 비해 왠지 더 쓸쓸해 보인다. 도시에서의 삶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유랑민과 비슷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도시인들은 저 빌딩들 사이를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가 보다. 여유있는 퇴근 시간이 된 날이면 일부러 지하철 서너 정거장에서 내려 한강변으로 나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런 저녁 풍경을 가끔씩 만난다. 어떤 날은 인공의구조물들과 어울린 석양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똑 같은 풍경이건만 그때그때의 느낌이란 내 감정의 반영에 다름 아닌 것 같다. 투영된 내 마음을 풍경을 통해 내가 다시 만나는 것이다. 쓸쓸함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든, 일상의 작은 것에도가슴 떨릴 수 있는 예민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무미건조..

사진속일상 2005.11.28

2004 겨울 세종로

퇴근길에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세종로를 따라 걷다. 세상은 불경기로 아우성인데 여기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가로수마다 전구로 장식되어 불꽃나무로 변했고, 마침 ‘루미나리에’(빛의 축제) 행사도 열려 눈을 어지럽게 한다. 사람들은 주광성 생물이라도 되는 양 밝은 빛 아래로 모여들어 즐기고 있다. 잠시일지라도 세상 시름 잊어버릴 만하다. 그러나 빛의 축제장 옆에서는 기아 어린이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건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한다. 또 한 쪽에서는 보안법 폐지 촉구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그 옆으로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시끄럽고, 분주하고, 그리고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이는 2004년 겨울, 서울의 모습이다.

사진속일상 2004.12.18

서울의 매미

오랜만에 서울에 돌아오니 매미 소리가 제일 반긴다. 오늘 아침에는 아파트의 방충망에도 한 마리가 찾아왔다. 왠일인지 소리는 내지 않고 가만히 붙어있다. 손으로 건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나무 대신에 철망에 매달린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서울의 매미 소리는 무척 극성스럽다. 무리가함께 울어댈 때는 마치 한꺼번에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 것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특히 도로변이 심해서 자동차 소음과 경쟁이나 하려는지 너무 시끄러워서 이건 또 하나의 소음 공해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 느티나무 아래서 땀을 식힐 때 '매앰- 매앰-'하고 울며 여름의 정취를 더하던 그 소리는 이미 아니다. 세상이 각박해지니 번성하는 매미 종류도, 매미 소리도 변해가는가 보다. 서울의 매미 소리는 차가운 금속성의..

사진속일상 2004.08.04

자전거 산책

날씨가 포근해졌다. 따스한 햇살에 봄기운마저 느껴진다. 그동안 쉬고 있던 자전거를 닦고 기름친 다음에 한강으로 타러 나간다. 그러나 강변의 바람은 의외로 차다. 가만 있으면 따스한데 달리면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손이 시럽고 눈에서는 눈물도 나온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도시의 가운데에서그나마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서울의 동과 서를 완전히 관통할 수도 있고, 또 각 지천을 따라서도 자전거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욕심이라면 이런 자전거 도로가 일반 거리에도 되어 있어서 누구나 손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인구 밀도가 높고 길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앞으로의 교통 정책은 자동차 중심의 구조에서..

사진속일상 200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