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45

추석날 동네 산책

추석이지만 연 이태째 고향에 못 내려갔다. 예전에 어느 정치인이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는데 지금 내 사정이 그러하다. 교통 정체를 안 겪고 번거로운 만남이 생략되니 몸은 편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쓸쓸한 추석 명절이다. 오전까지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되자 짙은 구름이 사라지고 밝은 가을 하늘이 열렸다. 비 내리다가 맑아지고, 맑다가 다시 흐려지고, 하는 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시름을 잊으려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집 앞 공터에 이제서야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뜸 들인지 10년 만이다. 이 동네에 이사온 뒤로 아파트가 엄청 많이 들어서고 있다. 전에는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아파트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해제된 모양이다. 경기광주역 주변의 역세권 개발로..

사진속일상 2021.09.22

8월의 애기장미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 중 하나는 장미를 만나는 일이다.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인 8월 하순, 그런데도 마을 골목길의 장미는 여전히 붉고 환하다. 줄기에서는 새로운 꽃봉오리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가을이 되어도 이 붉은 장미를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리라. 무슨 품종인지 모르지만 자그마한 이 장미에 나는 '애기장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귀엽고 앙증스러워 뽀뽀라도 해 주고 싶다. 이 장미가 있는 집은 작고 아담한 농가다. 집 앞 세 평 정도 되는 마당에는 꽃밭이 있고, 집 둘레로 장미가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 주인 얼굴은 보지 못했다. 꽃처럼 마음씨가 고운 분이리라 믿는다. 나도 마당 있는 집을 갖게 된다면 애기장미를 키워보고 싶다. 그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가능할지 실험을 ..

꽃들의향기 2021.08.27

동네 여름꽃

오후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갑자가 쏟아지는 소나기를 두 차례 만났다. 우산을 써도 잠깐 동안에 온 몸이 다 젖었다. 그렇더라도 여름 소나기는 반갑다. 후덥지근한 대기가 한순간에 청량한 기운으로 바뀐다. 따가운 여름 햇살에 목말랐던 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범부채 △ 나무수국 △ 원추리 △ 참나리 △ 털여뀌 △ 자귀나무 △ 능소화 △ 해바라기 △ 메꽃 △ 장미 △ 채송화

꽃들의향기 2021.07.20

동네 장미

블로그에 꽃 사진을 못 올린 지 두 달 가까이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18년이 되는데 이렇게 뜸했던 것은 처음이다. 더구나 지금은 봄으로 풍성한 꽃의 계절이 아닌가. 그만큼 꽃구경하기 위해 바깥출입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활짝 핀 장미를 보았다. 매년 같은 곳에서 보는 장미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인사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본다(see)'는 겉모습이 아니라 상대의 내면을 보고 만난다는 뜻이다. 동시에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네팔의 인사말인 '나마스떼'와 비슷하다. 내가 장미를 본다고 할 때, 과연 얼마나 제대로 '보는' 것일까? 눈 뜬 장님이 무엇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지 염치 없는 짓이 아닌..

꽃들의향기 2021.05.30

가볍게 동네 산책

대상포진이 정점을 지나고 이제 잦아들고 있다. 병원 왕래를 제외한다면 아흐레 만에 동네 외출하다. 어느새 눈이 부실 정도로 봄은 한껏 부풀어 있다. "파랑파랑한 하늘과 초록초록한 땅", 오늘은 색깔을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쓰고 싶다. 이 계절을 왜 '봄'이라 했는지 알 것 같다. 가까운 주변에도 이렇게 신기한 볼거리가 많지 않은가. 느릿느릿 걷다가 앉을 데가 있으면 쉰다. 공기는 어디선가 묻어오는 향기로 달콤하다. 관목 숲에서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정겹다. 숲의 수다꾼인 직박두리들이다. 나뭇잎이 많아져서 새 보기가 점점 어렵다. 오늘은 고작 물까치 서너 마리와 눈 맞춤한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 아둔한 나는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깨우치곤 한다.

사진속일상 2021.04.26

우리 동네에도 찾아온 봄

멀리서 전해오는 꽃소식만 들었는데 드디어 우리 동네에도 봄이 찾아왔다. 여기는 서울보다 위도가 낮지만 기온은 이삼 도 정도 낮은 지역이다. 봄이 늦게 찾아온다. 며칠 만에 밖에 나섰더니 집 주변은 꽃들로 환하다. 언제 이렇게 폭발하듯 나타났는지 신기하다. 봄까치꽃, 제비꽃, 산수유, 매화, 민들레를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만났다. 봄까치꽃의 원래 이름은 개불알풀이다. 이름이 민망하다고 봄까치꽃으로 부른다. 전해지는 이름에는 나름의 이유와 정서가 녹아 있는데 쉽게 바꾸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불알풀은 일본명을 직역한 것이라 변경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시냇가에 앉아서 다리도 쉬고 ..

꽃들의향기 2021.03.14

첫눈(2020/12/13)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은세계로 변해 있다. 창 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오래 구경하다. 어딘가 쓸쓸해져서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 산책에 나서다.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처음 찍히는 길이 많다. 산길에 드니 앞서 고라니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고라니 걸음은 붓으로 찍은 듯 부드럽다. 같이 보조를 맞추어 걷다. 얼마간은 마음이 포근해지고 따스해지다. 2020년 12월 13일, 첫눈 내린 날....

사진속일상 2020.12.13

가을 속 우리 동네

어딜 가든 울긋불긋 단풍색이 고운 때다. 집 주변을 산책만 해도 다양한 가을 색깔을 즐길 수 있다. 이웃 동네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고갯길 주변 단풍이 볼 만하다. 내년이면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예정대로 공사가 시작되면 올해가 마지막 단풍이 될 것 같다. 이 나무도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랫동안 슬픈 눈으로 지켜봐야 하겠지.

사진속일상 2020.11.01

동네 한 바퀴(7/7)

구름이 낄 때를 기다려 동네 한 바퀴에 나섰다. 산이라면 몰라도 햇볕이 쨍한 날의 동네길 걷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고등학교 동기들은 요사이 하루 만 보 걷기가 유행이다. 결과를 모아 가을에 시상을 한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 보면 각자가 올린 하루에 걸은 통계가 가득하다.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하루에 3만 보 이상씩 걷고 있다. 과유불급이 아닐까, 내가 괜히 걱정된다. 나는 사흘에 한 번 정도 바깥출입을 할 뿐이니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이웃 마을로 넘어간다. 걷는 길 주변은 텃밭과 주택이 혼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각만한 땅이라도 알뜰살뜰 뭔가를 심는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오수를 즐기고 있다. 장마철이지만 큰비가 아직 오시지 않아 목현천은 개울물 정도로 졸..

사진속일상 2020.07.08

집 주변의 풀꽃

오가다 만난 집 주변의 꽃이다. 같은 장소라도 매년 우세종이 다르다. 그런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 봄맞이꽃, 이태 전만 해도 하얀 꽃밭을 이뤘는데 지금은 몇 개체만 남았다. 봄맞이는 봄에 어울리는 예쁜 꽃으로, 청순하고 맑다. ▽ 꽃마리, 꽃 가운데 있는 노란 동그라미 무늬는 봄맞이꽃과 닮았다. 바라볼수록 앙증맞고 귀여운 꽃이다. ▽ 서양민들레, 반갑게 만나던 우리 민들레는 작년부터 눈에 띄지 않는다. ▽ 흰제비꽃, 올해 제일 많이 늘어난 건 흰제비꽃이다. ▽ 남산제비꽃 ▽ 잔텰제비꽃 ▽ 졸방제비꽃 ▽ 왜제비꽃 ▽ 둥근털제비꽃

꽃들의향기 2020.04.20

동네길에서 만난 봄꽃

굳이 멀리 쏘다닐 필요가 없다. 현관만 나서면 온통 꽃 만발한 계절이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발 주변만 잘 살피면 된다. 동네길을 산책하면서 새로 피어난 꽃들과 눈맞춤을 했다. 길 옆에 산소가 있어 들어가 봤더니 역시나 할미꽃이 피어 있다. 한참만에 보는 할미꽃이 반가웠다. ▽ 광대나물 ▽ 제비꽃 ▽ 개나리 ▽ 현호색 ▽ 진달래 ▽ 벚꽃 ▽ 목련 ▽ 산수유 ▽ 별꽃 ▽ 꽃다지 여기저기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웃분이 뙈기밭 한 귀퉁이를 줬는데 과연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내는 고추와 상추 정도만 심어보자 한다. 텃밭의 재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꽃들의향기 2020.03.29

우리 동네 산수유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째 동네 밖을 안 나가고 있다. 집 안에 머무는 날이 많고, 가끔 집 주위로 산책하러 다니는 정도다. 가능하면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나를 위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 친구는 지금 제주도를 여행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개인의 선택이니 뭐라 할 순 없지만, 내 좋아하는 것이라도 조금은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집 주변 산수유에도 꽃이 피었다. 인간 세상은 시끄러워도 자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봄이 오고 생명은 약동한다. 인간의 호들갑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자연이 듬직하다. 빼앗긴 들이라도 봄은 찾아와야 한다. 코로나19가 좀 더 진정되면 봄꽃 피는 가까운 산이라도 찾아봐야겠다.

꽃들의향기 2020.03.14

야시장

동네에 야시장이 찾아왔다. 간이 놀이기구도 있고 축제장이 옮겨온 듯하다. 한가해지면 이렇게 일반 동네에도 들리는 것 같다. 누구보다 아이들이 제일 신났다. 어른 대상 가게는 한산하지만 아이들을 상대하는 곳은 문전성시다. 요사이야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지만 가끔은 이런 분위기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아파트에서는 주민이 함께하는 행사가 부족하다.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문화 이벤트도 기획되었으면 좋겠다. 재작년에 동네 도서관에서 안도현 시인을 초대한 강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방이 가득 찰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음악회, 시 낭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이다. 중앙 정부나 시에서도 동네 단위의 행사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생색을 내는 대규모 행사보다 이런 게 오히려 알차고 효과가 ..

사진속일상 2016.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