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33

그때가 좋은 거야

추석이 다가왔다. 고향에 노모가 계시니 명절이 되면 찾아뵙는 문제로 고민한다. 동생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니 명절이 되면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올 추석은 내가 내려가야 할까 보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친구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찾아오는 자식들과 단출하게 추석을 보낸다. 연휴를 이용하여 가족이 함께 놀러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일순위가 어머니이니 자식들과의 만남은 뒤로 미루어진다. 지난 몇 차례는 동생이 어머니와 있어준 덕분에 예외가 있기는 했다. 어제 친구들 모임에서 추석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노모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경우는 나밖에 없었다. 언제 내려가고 언제 올라올지 교통 정체도 걱정이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

참살이의꿈 2024.09.13

민들레가 민들레씨에게 / 임보

아들아바람이 오거든 날아라아직 여린 날개이기는 하지만주저하지 말고 활짝 펴서 힘차게 날아라이 어미가 뿌리내린 거치른 땅을미련 없이 버리고 멀리 멀리 날아가거라그러나 남풍에는 현혹되지 말라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부드럽고 따스하지만너를 차가운 북쪽 산비탈로 몰아갈 것이다북풍이 오거든 때를 잃지 말고몸을 던져 바람의 고삐를 붙잡으라비록 그 바람은 차고 거칠지라도너를 먼 남쪽의 따뜻한 들판에 날라다 줄 것이다아들아살을 에이는 그 북풍이 오거든 말이다어서 나를 떠나거라네 날개가 시들어 무디어지기 전에될수록 높이 솟구쳐 멀리 날아라가노라면 너의 발 아래 강도 흐르고 호수도 고여 있을 것이다그 강과 호수에 구름이 흐르고 숲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잘못 보아서는 안 된다그 환상의 유혹에 고개를 돌리지 말고 멀리 ..

시읽는기쁨 2024.08.31

엄마를 부탁해

삐딱이 성질 때문이겠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작품은 부러 멀리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천만 관객의 영화라든지 베스트셀러 책 같은 것은 접하지 않은 게 더 많다. 대신에 알려지지 않고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작품은 애써 찾아본다. 그런 작품 중에 알짜배기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2008년에 나온 신경숙의 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대중들이 환호하니까 일부러 읽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번에 신 작가의 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가 소환되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2011년 판인데 무려 197쇄를 찍고 있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책을 16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품성으로 따지자면 보다는 가 더 나아 보인다. 부모를 향한 애틋한 감정과 독자들이 받는 공감은 비슷..

읽고본느낌 2024.05.31

아버지에게 갔었어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어느 외국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한국의 시골 사람들은 오직 친척들에게 잘 하고 자식을 부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죽도록 일하는 것을 삶의 전부로 안다." 신경숙 작가가 그리는 아버지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미덕일 수도 있고,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의 한계일 수도 있다. 마침 정읍 깻다리 마을 출신의 지인이 있어서 신경숙 작가와 가정에 대해 짧게나마 들을 기회가 있었다. 소설에 묘사된 아버지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물었더니 미소로 대신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객관성을 따지는 것이 우문인지 모르겠다. 형제라도 부모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달라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의 후반부에도 작가 외에..

읽고본느낌 2024.05.15

괴물 부모의 탄생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소풍이나 체험 학습을 꺼려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작은 사고만 나도 고소를 당하고, 심지어는 자기 아이에게 독방을 달라고 요구하는 극성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학부모의 항의와 민원으로 고통을 받던 교사가 자살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나치게 제 자식만 챙기면서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를 일본에서는 '괴물 부모'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은 우리보다 먼저 이런 병증을 겪고 있는 일본과 홍콩 사례를 중심으로 괴물 부모가 생겨난 원인과 내재한 심리,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담임이 말하는 괴물 부모의 악행을 보면 기가 차는 사례가 많다. 소풍을 갔다왔는데 제 딸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다시 소풍을 가라고 요구한다든지, 담임의 액세서리나 아이폰을 본 아..

읽고본느낌 2024.04.19

어머니를 돌보다

정상뇌압수두증(正常腦壓水頭症)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관찰한 기록이다. '1994년 말, 어머니가 병을 얻었다'로 책은 시작한다. 뇌에 생긴 이상으로 인지장애가 생긴 어머니는 11년 동안 세 딸과 간병인들에 의지하며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지은이인 린 틸먼(Lynne Tillman)은 미국의 소설가로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혼돈스러운 심경을 아프게 고백한다. 원제는 다. 지은이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케어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가족과의 마찰, 의사와 간병인과의 갈등, 불안, 낙담, 우울감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여타 간병 기록이 어두운 면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에 비중을 두지만, 지은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읽고본느낌 2023.12.21

엄마의 마지막 말들

지은이의 어머니는 아흔 즈음에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전전하며 생의 끝을 보내셨다. 이 책은 아들이 엄마의 마지막 1년을 지켜보며 쓴 간병 기록이다. 엄마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지은이는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박희병 선생이다. 이 책을 통해 죽어가는 시간도 귀하고 값진 인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생은 어머니만 아니라 여러 병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서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가족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 그리고 적절한 의료체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선생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인 것 같다. 아들은 직장을 휴직하면서 어머니를 지켰다. 이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

읽고본느낌 2023.01.06

작별 일기

노약한 부모를 실버타운에 모신 뒤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3년(2016~2018)의 기록이다.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가 부제다.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면서 구술생애사 작가면서 딸인 최현숙씨가 썼다. 에는 부모가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일반적이며/특수한 과정이 애틋하면서 또한 담담하게 잘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특이하게 눈에 띄는 점이 작가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그리고 작가를 포함한 남매들의 지극한 효도와 우애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집 남매들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정성은 각별하다. 지은이는 2008년부터 가난한 노인을 돌보는 일을 맡아왔다. 그 경험이 본인 부모를 케어하는 과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

읽고본느낌 2021.11.19

어떤 도둑질 / 윤정옥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껏 나는 칠순 노모의 김치를 먹고 있다 음식 비법을 전수하기 싫은 이름 난 식당 주인처럼 도대체 내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고 해치워버린다 김장해놨으니 가져가거라 돌멩이 맞을 소리지만 왜 그랬냐고 날 부르지 그랬냐고 하면서도 한 시간 후에는 소요산쯤을 지나고 있다 차로 한 시간 반 거리 철대문을 요란스럽게 열고 들어가 고구마, 마늘, 김치, 만두, 가래떡을 한 아름 들고 나온다 도둑질을 당당하게 하고 나온다 아마 나는 엄마의 인생에서 알토란 같은 시간을 도둑질했을 것이다 단번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서너 번의 분절로 허리 펴 선 자리, 발끝마저 점점 흐릿해지는 엄마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껏 바윗덩이를 지고 무심한 산을 올랐듯 오르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

시읽는기쁨 2021.07.17

별일 읍지 / 정수경

누구냐 니째여? 시째라고? 느덜은 목소리가 똑같어. 전화소리는 더 못 알아 보것어. 교회여. 목사님이 죽어도 교회 와서 죽으랴. 오는 길에 행사장 들러서 치료도 받았어. 당뇨에 좋다는디 댕긴지 얼마 안돼서 그란지, 당이 안 떨어져야. 자꾸 댕기믄 좋아 진당깨 빼먹지 말고 댕기야 긋어. 거기 가서 치료 받은깨 감기는 그만 한디, 인제 살만햐. 사람들이 가믄 기분 좋게 놀아줘. 젊은이들이 참 싹싹햐. 느들은 나 그렇게 기분 좋게 못해줘야. 미안 하니깨 치약 같은 거 하나씩 팔아줘. 어떤 이는 거그서 파는 약 먹고, 안마기 치료도 받고 했다는디 당이 그짓말처럼 떨어졌댜. 피도 맑아지고. 내가 무신 돈이 있간디. 비싼 약 같은 건 안 사니깨 걱정 말어. 야 근디 느 아들 잘 있다지야? 내가 새벽마둥 기도햐. 무..

시읽는기쁨 2020.06.11

어미의 마음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문득 스님이 된 고향 동무가 떠오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서로 떨어져 소식이 뜸했는데 어느 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엉뚱하면서 진지한 면이 있긴 했지만 스님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해인사에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아 눈물바람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젠 자식이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는 매몰찬 대답만 전해 들었다 한다. 에미 얼굴도 안 보려는 지독한 놈이라고 돌아와서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한다.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 뒤로도 풍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아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동무와는 정말 우연히 군대에서 재회했다. 사단 사령부에 ..

참살이의꿈 2019.05.12

외국 사는 자식이 효자다

올해는 손주 돌보는 일에 매이게 되었다. 제 어미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을 1년간 받게 되어 손주를 유치원에 보내고 맞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버스에 태워 보냈다가 오후 3시에 받으면 저녁 시간까지 맡아봐야 한다. 부부가 함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손주 돌보미는 우리 나이 또래가 대부분 겪는 일이다. 자식이 맞벌이를 하면 제일 크게 부딪히는 문제가 육아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조부모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잊을 만하면 TV에서 보모의 아동 학대 영상을 보여주니 도무지 남에게 맡길 수 없다 한다. 자식의 요청에 거절할 수 있는 부모가 있겠는가. 겉으로는 손주가 이뻐서 괜찮다지만 과연 속까지 그럴까. 며칠 전 지인이 하는 불평을 들었다. 딸이 쌍둥이를 뱄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

길위의단상 2019.04.19

손주 돌보기

어제 모임에 나갔더니 세 명이 손주를 봐줘야 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전체가 아홉 명이니 삼 분의 일이 손주에게 발목이 잡힌 셈이다. 우리 나이대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자식과 손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별로 없다. 자식이 결혼하고 손주를 낳게 되면 손주 봐주는 데 묶이게 되는 것이 한국 부모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다. 요사이는 대부분이 맞벌이라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부모가 제일 만만하다. 어찌 된 풍조인지 부모나 자식 모두 당연한 일인 줄 안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만 해도 여자가 결혼하면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는 직접 키웠다. 출산 후 몸조리를 위해 잠시 부모의 도움을 받았지만 내내 신세를 지는 일은 없었다. 내 부모님이나 처가의 장인, 장모님도 각각 다섯 형제를 두었고 손주만 스무 명이지만 손..

길위의단상 2018.12.28

효도에 / 마광수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어쩌다 엃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

시읽는기쁨 2018.10.14

대물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어쩌다 아버지 옆에서 잠자게 되면 숨소리조차 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따라서 아버지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워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셨다.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를 어려워했다고 뒤에 들었다. 아버지가 길을 가시면 미리 피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면장으로 계실 때 지역 국회의원이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국회의원이라고 내가 왜 마중 나가냐며 아버지는 면장실에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꼿꼿하신 분이었다.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바가 한..

참살이의꿈 2017.07.05

나쁜 엄마 / 고현혜

이런 엄마는 나쁜 엄마입니다 뭐든지 맛있다고 하면서 찬밥이나 쉰밥만 드시는 옷이 많다고 하면서 남편의 낡은 옷까지 꿰매 입는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밤새 끙끙 앓는 엄마 한평생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왠지 죄의식을 느끼며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엄마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딸에게 자신의 고통이 전염될까 봐 돌 같이 거친 손과 가죽처럼 굳은 발을 감추는 엄마 이런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두 헌신하고 더 줄 게 없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뜬 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엄마는 정말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밥을 풀 때마다 고운 중년 부인의 옷을 볼 때마다 뒷뜰에 날아오는 새를 "그랜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식 가슴에 못 박히게 하..

시읽는기쁨 2017.06.18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한 소설가 이상운 씨의 간병 기록이다. 80대 후반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고열로 시작해 섬망 증세를 보이며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가 되었다. 서울에 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포항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돌아가시기까지 3년 반 동안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통의 현장과 함께 한다. 요양원 대신 집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수년을 지킨 행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병원이나 요양원을 싫어한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가족을 서울에 남겨 두고 혼자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신 것만으로도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지은이는 그 과정에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배움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한다..

읽고본느낌 2016.10.02

부모 된 죄

짐승과 달리 인간 부모는 평생을 자식 지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시키고 내보내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노후의 가장 큰 적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자식 나이 스물을 넘기면 어엿한 성인이 되었건만 부모 덕 보지 않고 독립하려는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뼈 빠지게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집 장만해 주고, 손주 봐주고, 허리가 꼬부랑이 되도록 뒷바라지하다가 재수 없으면 자식 사업 자금 대주느라 노후 자산까지 말아먹기도 한다. 드물지 않게 보는 경우다. 자식은 결혼시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시작이다. 이는 시대적 상황 외에 부모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자식을 그렇게 키워 왔으니 말이다. 손주 봐주고 자식 보살피는 일에서 노년의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특별하게 그런 사..

길위의단상 2014.07.07

아버지의 일기장

만화가 박재동 선생의 부친이 쓴 일기를 선생이 펴냈다. 선생의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건강 문제로 젊은 나이에 퇴직한 뒤 아내와 함께 만화방, 문방구, 떡볶이 장사를 하며 자식 셋을 길렀다. 전 생애가 매일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의 연속이었다. 부친은 1971년부터 세상을 떠난 1989년까지 매일 일기를 썼는데, 질병의 고통, 아내에 대한 연민, 자식에 대한 부정(父情),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의 회한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선생의 부친은 특별한 것 같지만, 일반적인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겉으로는 엄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뒷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가 알았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선..

읽고본느낌 2014.05.2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6년간 기른 자식이 병원의 잘못으로 뒤바뀐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는 그런 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시대 가족의 의미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료타네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며 행복하다. 아버지는 엘리트 회사원이고, 6살 케이타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다. 그러나 친자를 데려오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류세이는 전혀 다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란 탓으로 자유분방하다. 순종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료타는 아버지 노릇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이에게는 돈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영화 속 대사가 기억난다. 가난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이들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가정의 아이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들이 바라는 ..

읽고본느낌 2014.01.24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한국 어머니들의 과도한 자식 집착에 대해 사회학자가 분석한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제일 큰 원인은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껄끄러우니까 남는 에너지를 자식에게 쏟는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남편은 바깥 일이고, 아내는 자식이다. 핑계는 가족을 위한다지만 실은 배우자에게서 생긴 공허함을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이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집에는 냉기류가 흐르는데 자식은 행복해지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다. 아무리 가지를 치료하고 정성을 쏟아도 뿌리가 병들어 있으면 허사가 된다. 건강한 가정의 바탕에는 성숙한 개인이 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건강한 가정을 바라기 어렵다. 독립적이지 못한..

참살이의꿈 2013.12.21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

교직에 있으면서 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이 아이를 망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결손가정이나 방임 때문에 생기는 문제보다 이쪽이 훨씬 더 심각했다. 자식을 잘 키우려다 오히려 반편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독립심을 길러주고 놓아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끝까지 보살피려 한다. 내 자식은 특별하게 키우려는 엄마의 욕심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건 대견하지만, 엄마에게서 떠나려는 건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보다도 아들한테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엄마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경우도 여럿 보았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더라도 온실 속에서 길러진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결혼한 뒤에도 모든 걸 부모에게 의지하려 한다. 안쓰럽다고 그걸 다 받아주는 얼빠진..

참살이의꿈 2013.08.30

어버이날 나들이

어버이날에 장모님을 모시고 임실에 있는 옥정호엘 다녀왔다. 문밖 출입을 잘 못하시는 장모님에게 바깥바람을 쐬어드리기 위해서였다. 작년만 해도 걷기에는 큰 지장이 없었는데 수술을 한 후에는 더욱 연로해지셨다. 신록의 계절은 더욱 푸르렀고, 갑자기 오른 기온은 이미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했다. 자식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장모님의 자식 사랑은 정말 유별하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배우자 연금으로 생활하시는데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못한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겨울에도 집안에는 냉기가 싸늘하다. 그래서 모은 돈은 전부 자식들에게 준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몸이 아파도 자식들 힘들게 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아직도 다 큰 자식으로 노심초사하시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천성..

사진속일상 2013.05.09

똥꽃

이 책을 쓴 전희식 선생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를 모시고 산다. 시골 빈집을 구해서 어머니의 몸 상태에 맞게 직접 수리했다. 그리고 도시 아파트에서 형과 함께 살고 있던 노모를 모시고 왔다. 귀도 멀고 똥오줌도 못 가리는 어머니가 계실 곳은 결코 도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사시사철 두 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면서 밥도 받아먹고 똥오줌도 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여든여섯 노쇠한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으로 생각했다. 선생이 생각하는 모심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우선하는 직접 돌봄이다. 치매 노인이라도 품위와 존엄을 지켜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과도 떨어져 어머니와 둘이서 지낸다. 똥오줌을 직접 받아내고, 진지를 해 드리고, 같이 놀아주고, 그러면서 농..

읽고본느낌 2013.04.30

결혼하는 아들에게 주는 당부

근래에 가까운 지인 두 분의 아들 혼사가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주례 없이 부모가 직접 아들 부부에게 주는 축하와 당부의 말로 대신했다. 형식적인 주례사보다는 훨씬 나았다. 정형화된 결혼식 문화가 탈피되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두 가정에서는 배울 바가 많다.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소통이 잘 되는 점이 그렇다. 지금도 마치 친구처럼 다정하다. 내 경우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진지한 대화를 해 보지 못했다. 그때는 아이들을 탓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내 탓이 더 컸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나를 무척 어려워한다.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바른 젊은이 뒤에는 건강한 가정이 있다. 그 사례를 이 두 집에서 본다. 특히 한 분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길위의단상 2012.10.30

자식의 은혜

"당신은 전생에 자식한테 빚을 엄청나게 졌는가 봐." 종종 아내에게 농으로 하는 말이다. 그만큼 아내는 자식 보살핌이 극진하다. 출가한 두 딸이건만 아직 품 안에 있듯이 이런저런 염려가 가득하다. 반찬 하나라도 더 해 주지 못해 마음 아파한다. 아마 운전을 할 줄 알았다면 수도 없이 딸 집을 왕래했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집착인데, 아내 말로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건 부모 역할의 반도 못 된단다. 어찌 되었든 못 말리는 모성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자식에 대한 애착이 남자보다 강하다. 자식이 성인이 되었으면 제 살 길은 제가 알아서 가도록 지켜보면 될 텐데 간섭과 보살핌이 그치지 않는다. 시집장가 보내도 마찬가지다. 부부다툼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자식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남자가 볼 때 ..

참살이의꿈 2012.07.24

아흔 개의 봄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흔 노모를 돌보고 있는 아들의 기록이다. 2007년 6월에 갑자기 쓰러진 선생의 모친은 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선생은 집과 시설을 오가며 극진히 보살펴 드린다. 책에는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2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잡지에 연재되면서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되었다. 선생은 4남매 중 셋째 아들로 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만 편애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선자라고 여기며 불화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고 난 뒤부터 간병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이 기록은 모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또 ..

읽고본느낌 2012.06.12

크나큰 수의 / 김왕노

어머니 요양원에 계신다. 요양원에 가면 둘째 시인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나 미안하지 말라고 병들고 늙으면 요양원에 있는 것이 어머니 편하고 자식들 다 편한 일이라며 누누이 말하지만 요양원이 현대식이라 위생적이고 넓고 의료시설 잘 갖춰진 곳이지만 집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안드리지 못하는 마음이 요양원에 면회 갔다 올 때마다 무릎이 세상 모서리에 부딪친 듯 생채기 하나 둘 늘어난다. 늙어도 어머니 욕심이 없을까? 어머니와 친한 할머니 자식이 비싸고 질 좋은 수의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날마다 자랑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죽으면 뭐 입고 자시고 알기나 아나, 그냥 구름이니 새벽이니 바람이니 햇살이니 다 크나큰 수의라고 여기며 그보다 더 큰 행복 없다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선소리처럼 앞세우..

시읽는기쁨 2011.07.04

이상하다 / 최종득

외할머니가 고사리와 두릅을 엄마한테 슬며시 건넵니다. "가서 나물 해 먹어라. 조금이라서 미안타." "만날 다리 아프다면서 산에는 뭐하러 가요.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요." 늘 주면서도 외할머니는 미안해하고 늘 받으면서도 엄마는 큰소리칩니다. - 이상하다 / 최종득 고등학생일 때였다. 외할머니가 부모님 고생 하시는 걸 꺼내며 나중에 은혜를 갚으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어느 때인가는 그게 듣기 싫었던가 보다. 아마 이렇게 쏘아붙였던 것 같다. "세상 부모들 다 그렇게 고생하거든요. 나도 자식한테 똑 같이 할 거구요." 결국 그 말이 부모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무 말씀 안 하셨지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식이 부모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결혼하고 자식 낳으면 ..

시읽는기쁨 2011.04.10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 쉬/ 문인수 외할머니는 온몸..

시읽는기쁨 200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