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127

이탈리아 우산소나무

이탈리아 풍경에서 제일 눈에 띈 것이 우산소나무다. 시골이나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키 크고 날씬한 멋쟁이 소나무다. 학처럼 맑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긴다. 곧은 줄기가 위로 자라서는 몇 갈래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 소나무로는 반송과 닮았다. 버스를 타고 갈 때 보니 옛 로마가도에도 가로수로 우산소나무가 심겨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사랑하는 나무인 것 같다. 우산소나무의 원산지는 지중해로, 남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자란다. 외양이 무척 아름다운데 우리나라에 심으면 어떨까 싶다. 관상수로는 최고가 될 것 같다. 우산소나무와 함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나무가 사이프러스다. 측백나무과로 나무 모양은 길쭉한 삼각형이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건물과 사이프러스는 특히 잘 어울린다. 한..

천년의나무 2018.03.22

건봉사 소나무

건봉사를 내려다보는 산등성이에 우뚝 서 있는 멋진 소나무다. 건봉사는 유난히 산불과 전란의 피해가 컸다. 그래서 사찰 건물은 여러 번 소실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했다. 나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나무들이 화마를 당해 죽었지만 이 나무는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나무 바로 밑에 있는 전각들이 불에 탈 때도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여느 나무보다 훨씬 더 당당하다. 수령은 300년쯤 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옆에 서면 고난을 이겨낸 생명체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봉사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7.09.25

와타즈미신사 소나무

대마도를 대표하는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는 해신인 용왕을 모신 곳이다. 용왕이 오가는 길을 따라 도리이가 바다를 향해 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이드는 그 방향이 우리나라 김해를 향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일본 신사 도리이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곳은 서쪽을 향한다. 아마 가야에서 건너온 우리 조상과 연관된 신사는 아닌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신사에 기이한 모양의 뿌리를 가진 소나무가 있다. 뿌리가 나무 키보다도 더 길게 직선으로 뻗어 있다. 건물도 뿌리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가이드 말로는 천년송이라는데 그 정도로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 지상에서부터 꿈틀대며 하늘로 치솟는다. 대마도에서는 소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와타즈미신사에서 만난 특이한 ..

천년의나무 2017.09.15

대안리 소나무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소나무다. 곧게 자라서 가지가 사방으로 퍼진 모양이 자랑거리였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가지 반쪽은 잘려 나갔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옛날 온전했던 모습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안내문에 수령이 700년이라 되어 있는데, 이곳의 생육 환경으로 봤을 때 그렇게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키는 13m, 줄기 둘레는 3.1m인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7.08.24

서곡리 소나무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 있다. 용수골이라 불리는데 백운산과 연결되는 계곡이 있어 물이 좋다. 주변은 여름 물놀이 장소로 유원지 분위기가 난다. 이곳에는 150년 정도 된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개울을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에는 훨씬 많은 나무가 있었음 직하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제각각 특이한 모습으로 서 있는 소나무가 시야를 당기는 곳이다.

천년의나무 2017.08.23

대조사 소나무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대조사(大鳥寺)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미륵불이 있다. 신체 비례가 어울리지 않고, 조각 기법이 세련되지 않은 점 등이 이 지방의 미륵신앙을 잘 보여주는 석불이다. 세련되지는 않아도 사바세계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민초의 염원을 표상하는 모습이다. 이 미륵불 옆에는 바위 틈에서 자라난 노송이 있다. 앞에서 보면 마치 미륵불을 감싸듯 보호하는 모양새다. 수령이 300여 년 정도이고, 나무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1.5m다. 그런데 3년 전 폭설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미륵불의 보관을 때려서 파손 되었다고 한다. 지금 원형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미륵불 쪽으로 방향을 튼 소나무의 선한 의도는 오로지 인간의 해석일 뿐인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년의나무 2017.07.25

우이동 솔밭공원

도봉산을 오갈 때 버스를 타고 이 앞으로 지나다녔다. 지날 때마다 창밖으로 보인 솔밭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 안을 통과하게 되었다. 공원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었다. 그때는 아무 시설 없이 소나무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사유지였는데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소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 한때는 아파트 개발지로 계획되어 솔밭이 훼손될 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1만 평이 넘는 땅에 수령이 50~100년생 소나무 천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소나무밭을 찾기는 어렵다. 이렇게 균일한 소나무로 보아 백 년 전에 여기에 소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후손에게 소중한 유산을 남겨준 셈이 ..

천년의나무 2016.09.02

용덕리 소나무

가지 몇 개가 잘려나갔지만 이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소나무다. 처음 본 순간 조지훈의 승무가 떠올랐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그런데 나무는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을 달리 한다. 원래 이곳은 용두초등학교 자리였는데 폐교되고 자연학습원이 들어섰다. 학교와 함께 마을의 보물이었던 소나무다. 나무의 키는 11m이고, 줄기 둘레는 2.8m다.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용덕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5.10.22

경포호 소나무숲

강릉에는 멋진 소나무가 많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소나무숲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저곳에 여럿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강릉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솔향 강릉'이다. 많은 지자체가 영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말로 지은 이름이어서 더 예쁘다. 예를 들면, 평택은 'Super Pyeongtaek', 익산은 ' Amazing Iksan', 고양은 'Let's Goyang', 내 사는 동네는 'Clean Gwangju'다. 외국어를 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경포호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이 소나무숲을 만났다. 금강송으로 미끈하게 뻗은 미인 소나무들이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소나무숲이 훨씬 더 넓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름다운 소나무숲은 강릉의 귀한 자산이다. 이젠 강릉하면 소나무가 떠오르게 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5.03.17

북지리 소나무

왕버들과 함께 북지리의 자랑인 소나무다. 수령이 350년 된 나무로 우람한 체형이 당당하다. 그러나 마을 쪽으로 뻗은 가지가 여럿 잘려나가서 균형이 안 맞는다. 마을에 이런 소나무가 있으면 이 터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누가 심었고, 어떤 자리였는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4.12.06

계서당 소나무

봉화 물야에 있는 계서당(溪西堂)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인 성이성(成以性, 1595~1664) 선생이 살던 집으로 광해군 5년(1613)에 지어졌다. 선생은 인조 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치면서 4차례 암행어사로 파견되었고, 진주목사 등 5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근검 청빈한 생활로 이름이 높았던 분이다. 성이성 선생이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라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남원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10대 중반에는 남원에서 살기도 했다. 계서당 뒤에 옆으로 기울어진 소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500년이고 성이성 선생이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그만큼 연륜이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쓰러질 듯 계서당 쪽으로 누워서 지지대에 의지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천년의나무 2014.11.30

석현리 소나무

수령이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수형이 무척 단정한 나무다. 높이는 14m, 줄기 둘레는 3m다. 춘양면 석현리 마을을 굽어보는 산자락에 있다. 개인 소유지만 오래전부터 마을 당나무로 지정되어 주민들이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나무 위치가 마을 전체에 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같다. 나무 둘레에는 벤치가 여럿 놓여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도 이용된다.

천년의나무 2014.11.26

학림사 소나무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남쪽에 위치한 학림사(鶴林寺)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주변 산세가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포지란(鶴抱之卵)의 형국이라고 해서 학림사라 명명되었다 한다. 서울에 가까이 있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절이다. 학림사 대웅전 옆에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절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기품이 대단한 소나무다. 소나무 옆 돌의자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안내문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수령이 삼사백 년은 넉넉히 돼 보인다. 학림사의 보물 같은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4.07.30

산천단 곰솔

예로부터 제주도에 목사가 부임하면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천제(天祭)를 지냈는데,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쁘면 이곳 산천단(山川壇)에서 대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천단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 여덟 그루가 있다. 500년 정도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이 드신 곰솔이다. 키도 20m 내외에 이를 정도로 크다. 곰솔이 내뿜은 기상이 대단하다. 나무 아래 초가집 한 채 있다면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4.06.18

수산리 곰솔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수산저수지 옆에 서 있는 천연기념물 곰솔이다. 제주도에는 나무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내비에 주소를 찍어도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 천연기념물이라면 도로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안내판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무를 처음 본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천연기념물 정도 되면 그 나무만의 독특한 위엄과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수산리 곰솔을 옆에서 보면 마치 부채춤을 추는 모양이다. 균형이 맞지 않는 게 도리어 멋진 자태를 만들었다. 겨울에 눈을 이고 있으면 백곰이 저수지 물을 먹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상이 된다고 한다. 곰과 곰솔은 언어적으로도 잘 어울린다. 이 나무는 400여 년 전 수산리가 생길 때 어느 집 ..

천년의나무 2013.12.18

직포리 곰솔

금오도에 있는 직포리는 비렁길 2코스와 3코스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해송과 집이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그중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00년의 이 곰솔이 형태상으로는 제일 아름답다. 마을에는 이 곰솔 외에도 여러 그루가 직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심은지 오래된 큰 나무들이다. 마을을 바람과 파도로부터 지키기 위해 심었을 것이다. 이렇듯 해송은 바다와 부딪치며 서 있어야 당당하고 멋있다. 매운 바닷바람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강인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으리라. 200년 동안 몰아친 태풍만 해도 얼마나 많았으리. 그러면서도 단단하면서 깔끔한 그 자태가 대견하다.

천년의나무 2013.10.14

심포리 곰솔

여수 금오도 심포마을에 있는 곰솔이다. 남쪽 섬에 오니 해안가에서 해송을 자주 만난다. 그중에서도 나란히 자라고 있는 이 두 나무는 키가 18m나 되는 늘씬한 미송(美松)이다. 수령은 150년 정도 되었다. 곰솔, 해송, 흑송은 다 같은 나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육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육송, 바닷가에 살고 있는 소나무는 해송, 곰솔이라 부른다. 또는 나무 껍질 색깔에 따라 육송은 적송(赤松), 해송은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껍질이 하얀 백송(白松)도 있다. 백송은 잎이 셋으로 갈라진 게 다른 소나무와 다르다.

천년의나무 2013.10.08

솔고개 소나무

미송대회(美松大會)가 있다면 메달감으로 충분한 나무다. 심사기준이 자태만이 아니라 배경도 중요하다면, 이 소나무는 뒤로는 단풍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계곡을 내려다보며 서 있어 더욱 가산점을 받을 것 같다.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의 솔고개에 있다. 행정지명으로는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2리다. 이곳은 송현동(松峴洞), 또는 산솔마을이라고도 불리는가 보다. 모두가 소나무와 연계된 이름이다. 그만큼 소나무가 많았다는 뜻이리라. 이 나무에 얽힌 전설도 있다. 단종이 승하한 후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솔고개를 넘어갈 때 이 소나무가 눈물을 흘리며 배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령은 270년 정도로 추산되니 아마 이 소나무의 할아버지 적 얘기였나 보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가..

천년의나무 2013.06.15

성황리 소나무(2)

의령을 지나던 길에 이 나무의 안내판을 도로에서 우연히 보았다. 5년 만의 재회였다. 나무는 그때와 다름 없이 마을 뒷산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달라진 건 소나무 앞으로 '역사문화 부자길'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 생가부터 이곳까지 만들어진 길이다. 그래도 '부자길'이라는 이름은 좀 그렇다. 성황리 소나무는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나무다. 드러난 뿌리나 가지의 생김새가 굉장히 힘차다. 그러나 걱정되는 점도 있다. 줄기에서 옆으로 펼쳐진 가지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버팀목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앞으로도 거센 태풍을 잘 이기고 명목으로서의 자리를 잘 지켜가길 빌 뿐이다.

천년의나무 2013.05.31

좌수영지 곰솔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좌수영성지(左水營城址)는 조선시대 때 좌수영이 주둔한 곳이다. 무관 정3품인 수군절도사가 근무했던 좌수영은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경상도 동쪽 해안 방어를 맡고 있었다. 성 둘레는 약 2.8km, 성벽 높이는 4m였다. 지금은 관리 소홀로 대부분 유실되었다. 이곳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곰솔이 있다. 좌수영이 있을 당시 이 나무에 신이 들어있다고 믿어 군선을 보호하고 무사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며 신성시했던 나무였다. 나이는 400살이 넘었고, 키 22m, 줄기 둘레 4.1m나 되는 큰 나무다. 군사 시설에 있는 나무답게 우람하고 용맹하게 생겼다. 주변에 나무들이 많아 한 눈에 들어오게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옆에는 200년이 넘은 소나무도 나란히 자라고 있다. 좌수영 옛 시설..

천년의나무 2013.05.25

삼천동 곰솔

곰솔은 바닷가에서 자라기 때문에 해송(海松), 껍질 색깔이 검다 하여 흑송(黑松)이라고도 불린다.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 있는 이 곰솔은 특이하게 내륙 지방에 있다. 원래 이곳은 인동 장씨의 선산이었는데, 곰솔은 선산을 지키는 나무였다. '장씨산송대(張氏山松臺)'라는 표지석이 아직 남아 있다. 전에는 열여섯 개의 가지가 펼쳐진 모양이 아름다워 학송(鶴松)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그런데 나무가 지금처럼 처참하게 변한 건 2001년이었다. 당시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이 뛰었다. 그러자 나무가 죽으면 보호구역에서 해제될 것을 노린 누군가에 의해 독극물이 주입되었다. 나무 밑동에 공구로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약을 넣은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죽어 갔다. 곰솔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결..

천년의나무 2013.05.12

호암미술관 반송

오래된 소나무는 아니지만 수형이 아주 예뻐 이곳에 올린다. 첫눈에 단아한 고려청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간결한 조형미가 빼어나다. 동서남북 어디에서 봐도 똑같다. 귀족적 고상함이라고 할까, 호암미술관 분위기가 나는 반송이다. 미술관 마당에는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공작새가 한 마리 있다. 사람 모인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 가끔 울기도 하는데 공작새 소리는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반송이야말로 소나무의 공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의나무 2013.04.25

영릉 소나무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다. 왕릉은 어디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영릉의 소나무는 특별히 더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팔등신의 미끈한 미인들을 보는 것 같다. 그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게 수복방(守僕房) 앞에 있는 반송이다. 다섯 개로 갈라진 가지가 균형있게 잘 자랐다. 반송치고는 키도 상당히 크다. 수복방은 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인 수릉관(守陵官)이나 청소 등의 허드렛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인 수복(守僕)이 거처하던 곳이다. 영릉을 둘러싼 소나무 사이를 거닐면서 솔바람을 맞아보면 눈과 마음이 절로 시원해진다.

천년의나무 2013.04.20

식영정 소나무

담양에 있는 식영정(息影亭)은 조선 명종 15년(1560)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고, 송강 정철이 자주 찾아온 곳이다. 송강이 이곳을 무대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다.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신 성산사(星山祠)가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식영정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적송 한 그루가 있다. 식영정에서 성산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는데, 우람한 자태며 쭉 뻗은 기상이 대단한 소나무다. 마치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보는 것 같다. '선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구체적으로 선비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 사전을 찾아보니,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재물을 탐내지..

천년의나무 2013.01.13

석파정 소나무

서울시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는 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金興根)의 소유였으나 집이 욕심난 대원군이 반강제로 빼앗았다. 집을 빌려 고종을 머물게 한 뒤 주인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왕이 머문 집은 신하된 도리로 들어갈 수 없는 게 당시의 관례였다고 한다. 이러니 권력을 쥐려고 그렇게도 야단을 치는가 보다. 석파정 마당에 멋지게 생긴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곳에 처음 별장을 만든 사람이 심은 나무일 것이다. 수령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300년은 되어 보인다. 대원군을 비롯한 여러 선비들이 이 나무를 완상하며 그늘에서 쉬기도 했을 것이다. 새롭게 단장된 석파정에서 그나마 가장 눈길을 끄는 명품 반송이다.

천년의나무 2012.12.20

도립리 반룡송(2)

7년 만에 다시 만나는 명품 소나무다. 느낌으로는 그때보다 더 납작해진 것 같다. 2m 정도 되는 줄기에서 가지가 수평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가지 모양이 기기묘묘하다. 반룡송(蟠龍松)이라 할 때 '蟠'은 '서릴 반' 자다. '서린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뱀 따위가 몸을 똬리처럼 동그랗게 감다'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까 용이 몸을 감으며 승천하는 모양새의 나무라는 뜻이다. 줄기의 여러 군데서 그런 용트림을 찾아볼 수 있다. 반룡송은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너른 들판에 있다. 옛날에는 주변에 마을 숲이 있었고, 농가도 몇 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밭으로 변했고 휑 하니 허전하다. 숲의 일부라도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천년의나무 2012.10.15

설악동 소나무

외설악의 설악산탐방안내소 앞 삼거리에 있다. 천연기념물 351호로 지정되어 있는 명품 소나무다. 높이 17m, 줄기 둘레 4.1m로 훤칠하게 잘 생겼다. 그러나 하체에 비해서는 상체가 빈약하다. 원래는 큰 줄기가 3개 있었으나, 2개는 죽었고 가운데 줄기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부러진 줄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이는 5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설악동 마을의 서낭당 나무였으나 관광지구로 개발되면서 마을은 사라지고 나무만 덩그마니 남았다. 소나무 앞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놓아 만들어진 큰 돌무더기가 있었다는데 도로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옛 모습은 잃었으나 나무는 보호를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설악동을 상징하는 대표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9.14

권금성 소나무

설악산 권금성의 암봉에서 자라는 쌍둥이 소나무다. 풀도 자리지 못하는 곳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이만큼 싱싱하게 살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싹을 내고 이렇게 클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여름에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의 열기와 겨울의 냉기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등산을 하다 보면 이렇듯 바위와 어울려 사는 소나무를 자주 본다. 그들은 고행하는 수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이한 길을 버리고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고 푸르게 살아내는 모습에 머리가 숙여진다. 더구나 권금성의 소나무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 성자(聖者)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소나무는 왜 바위를 좋아할까 바위의 세계에서 다른 나무가 사는 걸 보았느냐 깎아지른 가파른 바위가 한 치의 틈을 주지 않아도 비집고 들어가..

천년의나무 2012.09.12

안락암 무학송

설악산 권금성 가까이에 안락암(安樂庵)이 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권금성과 달리 안락암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이 조용하다. 나도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굳이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락암 앞 바위 절벽에 소나무 거목이 날렵하게 서 있다. 춤추는 학 모양이라 하여 무학송(舞鶴松)이라 부른다. 수령이 800년이나 되었다. 강풍으로 가지가 한 쪽으로만 자라고 있다. 바위 틈에서 이만큼 성장한 생명력이 놀랍다. 이곳에서 보이는 설악산은 마치 동양화에 나오는 풍경 같다. 맞은편에는 토왕성폭포의 긴 물줄기가 보인다. 바위, 소나무, 폭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서, 그 자신도 하나의 멋진 풍경이 되고 있는 무학송이다.

천년의나무 201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