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127

도솔암 마애석불 소나무

고창 선운산 도솔암에 있는 마애석불 앞에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반송의 한 종류로 미끈하게 큰 키가 눈길을 끄는데 자세히 보면 나무가 많이 상해 있다. 줄기 두 개는 중간에서 꺾여졌고 나무 크기에 비해 솔잎도 초라하다. 나무의 생육조건이 좋을 법하건만 왠일인지 상채기 투성이다. 그 사연을 모르는 나그네로서는 마애석불에 얽힌 옛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마애석불의배꼽에는 검단(黔丹) 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였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런데 동학농민전쟁 당시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기다리는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결을 꺼내가는 사..

천년의나무 2009.04.29

삼인리 장사송

고창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 소나무가 있다. 바로 옆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眞興窟)이 있는데, 장사송(長沙松)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 지명이 장사현(長沙縣)이어서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보고 다시 만난 장사송은 역시 그 모습이 빼어났다. 단아하고 고고한 품격이 마치 한 마리 학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이 이 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또는 고려청자의 날렵하면서도 은은한 고전적 미라고 할까, 아무리 바라보아도 절로 찬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나무였다. 나무 앞 정자에 앉아 있으려니 지나는 사람마다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천연기념물 354 호인 장사송은 반송의 일종으로 수령은 600 년 정도로 추산한다.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소나무 중에..

천년의나무 2009.04.24

초지진 소나무

강화도에 있는 초지진(草芝鎭)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였다. 해안을 따라 10 리에 하나씩진(鎭)을 뒀고, 그 사이에 보(堡)를 세워 해안을 방어했다. 이곳은 외세가 몰려오던 19 세기 중반의 격변기에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양호사건(1875)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옛 아픈 상처의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초지진에는 멋드러진 모양의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우산 모양을 한 처진소나무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동양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맵시다.그러나 줄기에는 그 당시의 포탄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나이는 추측컨대 300 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에는 아마 이런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나무들이 전투 ..

천년의나무 2009.04.02

직두리 부부송

경기도 포천 직두리에는 최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부부송이라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부부송(夫婦松)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크고작은 두 나무가 마치 금술 좋은 부부처럼 서로 뒤엉켜 어우러져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 나무의 굵은 가지가 길게 뻗어서 아내 나무를 포근히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아내 나무가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참 재미있게 생긴 나무다. 남편 나무는 높이 6.9 m, 줄기 둘레 3.3 m, 긴 폭이 23.7 m이고,아내 나무는 높이 6.9 m, 줄기 둘레 1.7 m, 긴 폭이 11.7 m이다.전형적인 처진소나무로 높이에 비해 우산 모양으로 옆으로 퍼지며 자란다. 수령은 약 300 년 정도 되었다. 그런데 옆으로 퍼진 긴 가지들은 수십 개의 ..

천년의나무 2009.03.29

송포 백송

이 백송은 경기도 일산구 덕이동에 있는데 이곳의 옛 지명이 송포(松浦)였던 관계로 보통 송포 백송이라고 지금도 부른다. 이 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무척 힘들었다. 덕이초등학교에서부터 묻기를 수 차례, 복잡한 골목길을 헤치고 나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백송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희귀성이 있다. 오래된 백송은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도 열 그루 내외일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백송은 중국과 연관된 유래가 전한다. 대부분의 백송은 중국에 사절로 갔던 선비들이 심었거나, 중국 사절이 선물로 가져온 것들이다. 이 백송 역시 조선 선조 때 유하겸이라는 사람이 중국 사절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하나는 세종 16년(1434)김종서 장군이 개척한 육진에서 복무하던 최수원 장군이 고향에 오는 길에 가져다가..

천년의나무 2009.03.03

교귀정 소나무

문경새재에 있는 교귀정(交龜亭)은 조선시대에 경상감사가 한양을 출발해 부임할 때 신, 구 경상감사끼리 업무 인수인계를 하던 곳이다. 신임 경상감사가 이곳에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던 구 경상감사가 관인과 인계인수 물목을 적은 서책을 건네며 교인식(交印式)을 거행했다. 경상감사 도임 행차는 취타대를 선두로 해서 총 300 명 가량의 큰 행렬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귀정에서 그런 큰 행사가 치러졌다면 아마 이곳에는 정자 외에도 숙소 등 여러 시설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인원이 문경새재를 걸어서 넘자면 중간에 숙박시설이 없어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옛날 같으면 여기서도 한참을 더 가야 산을 벗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곳 교귀정에 멋지게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비스듬히 자란 줄기는 S자 모양으로 휘어져..

천년의나무 2008.11.18

가수리 소나무

강원도 정선읍 가수리는 조양강과 지장천(동남천)이 합류하는 마을이다. 두 강은 이곳에서 합류하여 이름도 동강으로 변하고 영월로 흘러간다. 마을 이름인 가수리(加水里)는 아마 두 물이 합해져 더해진다는 뜻인 것 같다. 이 마을강가에 있는 절벽 위에 우뚝 선 한 그루 소나무가 있다. 수형은 속리산의 정이품송을 닮은 원추형인데 높은 절벽 위에 서 있는 품새가 가히 낙락장송이라 부를 만하다. 주변의 풍경과도 멋지게 어울리는 군계일학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이곳이 오송정(五松亭)이라 불렸다는데 그렇다면 예전에는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무의 수령을 마을 사람들은 1천 년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천년의나무 2008.11.06

마니산 소나무

서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니산 정상부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바위 틈에 자리를 잡아선지 힘들고 야위어 보이는데, 더구나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해풍 탓으로 몸은 완전히 육지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분재 같은 늘씬한 몸매는 지나는 등산객의 시선을끌아당긴다. 줄기는 용틀임 하며 올라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졌는데, 만약 수령이 오래 되었다면 명품 소나무 반열에 오를 만한 모양새다. 전에는 나무만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새로이 보호 철책을 둘렀다.사람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이 나무를볼 때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떠올랐다. 낙락장송의 기상이라면 이렇듯 홀로 산꼭대기에서 당당하게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더구나 영산(靈山)이라는 마니산 정상에 있으니 이 나무의 기..

천년의나무 2008.10.31

삼송리 왕소나무

괴산은 나무의 고장답게 멋진 노거수들이 많지만 나무에 대한 안내는 미흡한것 같다. 적어도 천연기념물 나무는 도로변에 안내 표시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청천면 삼송리에 있는 이 왕소나무도 길을 지나치고 몇 번을 물어서야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을 뒤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이 소나무에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땅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줄기는 둘로 갈라졌는데 기묘하게 비틀리면서 올라가고 있다. 회오리바람의 용틀임이 연상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왕송(王松), 또는 용송(龍松)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언덕에는 이 나무 외에도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나무가 단연 으뜸인 것은 물론이다. 다른 나무들은 임금을 호위하는 문무백관들 같다. 삼송리(三松里)라는 지명은 세 그..

천년의나무 2008.10.22

실상사 반송

지리산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가 9산선문의 하나로 창건한 고찰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국보를 비롯한 문화재들이 많다. 단일사찰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람하고 거창한 사찰을 기대한 사람은 실망스럽겠지만 실상사는 작고 소탈한 절이다. 대웅전인 보광전도 아담할 정도로 작다. 작은 건물들이 연못이나 나무, 풀들과 잘 조화를 이루며편안한 절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실상사에는 예상과 달리 크고 오래된 나무가 없었다.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실상사의 편안한 분위기는 작은 건물들과 함께 나무들의 영향도 있는 것이었다. 대단한 나무들보다는 유실수 같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그런..

천년의나무 2008.07.23

준경묘 혼례소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스 코리아 소나무는 누구일까?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는 10여 년 간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았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강원도 삼척의 준경묘에 있는 이 소나무다. 키 32 m, 허리둘레 2.1 m, 나이 약 100 살인 이 미인송은 충북 보은군에 있는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2001 년에 혼례를 치렀다. 당시 산림청장이 주례를 맡고, 두 지역의 군수가 각각 혼주를 맡아서 마치 사람의 혼례식처럼 정식으로 의식을 갖춰 부부가 되었다. 정이품송의 부인송은 보은군에 이미 있었으니, 준경묘 미인송은 사람으로 치면 소실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과정들은 우수한 우리 소나무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여진다. 소나무..

천년의나무 2008.06.15

준경묘 소나무숲에 들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준경묘(濬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6대조인이양무(李陽茂) 장군의 무덤이다. 이양무는 원래 전주에 살고 있었는데 아들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기생과의 관계로 그 지방 관리와 다툼이 일어나는 바람에가족이 전부 삼척으로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 뒤 이양무가 죽자 목조는 한 도승이 시키는 대로 이곳에 선친을 안장했는데 천하제일의 명당터답게 5대 뒤에 태조 이성계가 태어나 조선왕조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다른 무엇보다 준경묘는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숲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소나무가 10여 만 그루 자라고 있다.이소나무들을 만나러 길을 떠났다. 준경묘는 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약 2 km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는 시멘트로 포장..

사진속일상 2008.06.05

범어사 반송

범어사(梵魚寺)는 부산 금정산 기슭에 있는 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그 역사만 1300여 년이 된다. 오래 된 고찰답게 범어사에는 멋진 나무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이 반송은 단아한 모양새로 인하여 눈길을 끌었다. 수령은 100년도 채 안돼 보이는 어린 나무지만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에서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졌고, 또한 날렵하면서도 고결한 품위가 느껴졌다. 아마 몇 백년 뒤에 여기를 찾는 후세 사람들에게는 명목으로 받아들여질 게 틀림 없다. 범어사에 들렀을 때 시간 여유가 없어서 다른 나무들은 주의 깊게 살피지를 못했다. 그들은 나중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그때는 하루 정도 날을 잡아 금정산 등산도 하면서 범어사를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천년의나무 2008.01.28

성황리 소나무

경남 의령군 정곡면에는 성황리라는 작은 야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뒷편 산 언저리에 천연기념물 359호로 지정된 이 소나무가 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크기의 소나무가 또 하나 있어 마치 쌍둥이 나무로 보인다. 소나무의 수령은 약 300년 정도로 예상한다는데, 뒤에 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조경용으로 심었지 않았나 싶다. 나무를 향해 가는데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요란해서 다시 되돌아 나왔다. 나무 아래가 바로 개 사육장이었다. 되돌아 나온 덕분에 제대로 된 길을 따라 올라갈 수 있었다. 멋진 소나무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자라고 있었는데, 그 수세가 웅장하고 싱싱했다. 줄기의 표피가 윤기로 반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생육 상태가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두 소나무의 가지가 ..

천년의나무 2008.01.24

화산리 반송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에 있는 이 반송은 국도에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온다.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이 나무는 산 속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군계일학이라고 할까, 다른 나무들에 비해 우뚝한 기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늘로 뻗어올라간 기세가 힘차고 아름답다. 줄기가 여섯 개로 갈라져서 육송(六松)으로 부른다는데 지금은 네 개의 큰 줄기만 남아있다. 나무의 높이는 24m, 가슴높이의 둘레는 약 5m이다. 안내문에 보면 수령이 400년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책에는 200년으로 나와 있다. 나무의 나이는 추정치인 만큼 보는 사람에 따라서 오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 나무와의 첫 만남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추억을 남긴다. 행복했던 추억은 삶을 따스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이 화산..

천년의나무 2007.12.21

말무덤 무송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는 연주패옥(連珠佩玉)의 전설이 깃든 말무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부대의 술사였던 두사충(杜思忠)은 이곳에서 '연주패옥'이라 불리는 명당을 발견했다고 한다. 구슬을 꿰고 옥을 단다는 뜻의 이 명당에 묘를 쓰면 그 집안에 금관자, 옥관자를 단 정승 판서 벼슬이 수없이 나온다고 한다. 이 천하제일의 명당을 두사충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정탁(鄭琢, 1526-1605))에게 전해줄 생각으로 남몰래 정탁의 하인에게 이 명당 자리를 알려주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탁이 세상을 뜨자 정탁의 아들은 아버지가 묻힐 명당을 찾아 하인과 함께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이 마을 동구 밖에 도착했을 때 불행히도 그 하인의 말뒷발에 차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들은 몹시 억울하고 분하여 ..

천년의나무 2007.12.15

대하리 반송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있는 이 반송은 높이가 6 m, 줄기 둘레가 3 m, 옆으로 퍼진 길이는 20 m에 이른다. 나이는 4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반송과 달리 마치 처진소나무처럼 옆으로 퍼진 것이 특징이다. 나무는 줄기나 가지 모두 용트림 하듯이 구불구불해서 신비한 느낌을 더해준다. 장수 황씨의 종중 소유라는데나무 옆에는 '거송식당'이라는 큰 음식점이있다. 이 나무를 찾아가며 사람들한테 물었더니 "아, 그 거송요. 쭉 가다가 거송식당을 찾으세요. 바로 옆에 있어요." 한다. 나무 따라 식당도 유명해진 것 같다. 다행히 이 나무는 철책을 두르지 않아 가까이 가서 안아볼 수 있었다. 찬 날씨였어도 나무를 안으면 따스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속삭인다. "너와 나는 한 몸이야!"

천년의나무 2007.12.10

통의동 백송

서울 종로구에 있었던 통의동 백송은 지금은 없다. 한때는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이 아름다웠던 나무였으나 1990년 7월에 닥친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되었다. 지금 그 터에는 죽은 그루터기만이 남아 옛날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청와대 가까이에 있는 이 나무가 죽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 하여 나무를 살려내라고 지시했다 한다. 서울시는 '백송회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나무가 쓰러진 상태에서 살려내기로 하고 경찰관을 배치하여 보호했다. 다음 해에 새싹이 나는 등 살아날 조짐이 보였으나,누군가가 나무에 제초제을 뿌리는 사고가 생겨 결국 죽었고 1993년 5월에 나무는 잘려 나갔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령이 600년이었다고 알려져 있..

천년의나무 2007.11.23

홍릉수목원 백송

홍릉수목원에 갈 때면 꼭 이 백송을 찾아가서 만난다. 1938년 생이니 나이는 그리 많이 되지 않았지만 백송 자체가 워낙 희귀해 비록 큰나무는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눈요기가 된다. 그런데 홍릉수목원의 백송은 피사의 사탑 마냥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중국 원산인 백송이 우리 기후에 잘 맞지 않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소나무 종류 중에서 가장 보기 어렵고 그래서 귀한 대우를 받는다. 천연기념물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백송들이다. 예로부터 백송은 양반 중에서도 내노라 하는 집안에서만 기를 수 있었다 한다. 백송은 흰색의 수피가 특징이다. 그래서 전에는 백골송(白骨松), 백피송(白皮松)으로도 불렸다. 잎은 세 가닥이어서 다른 소나무와 구별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잣나무에 더 ..

천년의나무 2007.11.13

남대리 소나무

부석면 남대리는 큰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마을이다. 지난 번에 마구령을 넘으려고 잠시 지나쳤는데, 옛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서 찬찬히 둘러보질 못했다. 지금은 40 가구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예전의 남대리는 200 가구 이상이 모여 사는 큰 동네였다고 한다. 소백산맥 넘어 부석장을 보러 오가는 장꾼들이 하룻밤을 묵거나 쉬어 갔을 터으므로 주막집들도 여럿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주막거리의 흔적은 남아 있다. 옆으로는 남대천이 흐르고, 새로 포장된 현대식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가는 길에 깔끔하게 정리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굉장히 신경을 쓴 정성이 느껴지지만 남대리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 조금은 곤혹스러웠다. 정비를 하는 것은 좋지만 옛 산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되었으면 더 ..

천년의나무 2007.11.06

개평리 소나무

함양에 있는 개평리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비롯해 옛집들이 많이 남아있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마을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언덕 위에 있는 이 소나무를 발견했다. 소나무는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마을쪽으로 굽어 있고, 다른 것은 마을 반대쪽으로 굽어 있다. 둘 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줄기가 거의 90도 각도로 꺾여 있다. 마을쪽으로 굽은 나무는 쇠줄에 지탱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넘어져 버릴 정도로 무게 중심이 심하게 아래쪽으로 쏠려 있다. 그런데 두 번째 나무는 죽어버린 듯 줄기와 가지만 앙상하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가 처진소나무에 속하며 높이 16m, 둘레3m, 가지의 폭은 21m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크기로 봐서는 두 번째 나무 ..

천년의나무 2007.09.08

화서면 반송

우리나라의 명품 소나무 반열에 이 화서면 반송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분은 이 나무를 나라의 보배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태가 빼어난 명목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도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한 눈이 확 떠지는 경험을 했다. 이 나무는 상현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 키는 16.5m, 줄기 둘레는 4.7m에 이르는데, 네 개의 줄기가 멋진 가지를 뻗어 아름다운 나무 형태를 만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탑 모양으로 생겼다고 예부터 탑송(塔松)으로 불렀다고 한다.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한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기하학적인 균형미에 있다. 이 나무 역시 우산 모양으로 경사진 각도나 전체적인 균형미가 일품이다. 훌륭한 도공이 빚어낸멋진 도자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무 둘..

천년의나무 2007.09.05

목현리 구송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복잡한 도시보다도 시골길의 목표물을 찾아가기가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렵다. 네비가 없었더라면 지도와 맞추며 더 힘들게애써야 했을것이다. 목현리 구송은 휴천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정해 놓으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들판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이 나무는 멀리에서도 쉽게 눈에 뜨였다. 반송인데 구송(九松)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줄기가 아홉 개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곱 개밖에 남아있지 않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약 3백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진양 정씨의 학산공이심었다고 한다. 반송이 원래 멋들어진 나무지만 이 나무는 특히나 그 자태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내 눈에는 마치 두 발을 모으고 서 있는 발레리나처럼 눈이 부시게..

천년의나무 2007.08.30

소수서원 솔숲

소수서원이 고향집에서 가까이 있어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들렀지만 주변 솔숲은 최근에 들어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기사 서원 자체에 대해서도 그동안은 별로관심이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 사는 땅에 대해서는 의외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친구들이 부석사를 찬탄할 때 거기의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의아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한국인에게 소나무의 의미는 각별하다. 예로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소나무를 흔히 심었다. 소나무는 선비들이 곁에 두고 아꼈던 나무였다. 소수서원 둘레에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수서원 둘레의 솔숲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지금도 곧게 뻗은 소나무 줄기에서 ..

천년의나무 2007.08.15

하동 송림

섬진강을 찾아간 길에 하동 송림에 들렀다. 이곳 소나무숲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당시의 도호부사(都護府使)였던 전천상(田天祥) 공이 섬진강변의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약 8천평의 면적에 1000 그루 정도의 소나무가 강변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는 수령이 3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이곳 송림은 섬진강의 넓은 모래사장과 조화를 이루어 말 그대로 백사청송(白沙靑松)의 절경이다. 바닷가에서는 방품림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강변의 이런 대규모의 멋진 방품림은 처음이다. 특히 주차장 가까이에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의 S자로 휘어진 자태는 매혹적이었다. 송림은전체적으로 철책이 둘러처져 있다.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모양새가 영 볼..

천년의나무 2007.03.07

의림지 제방숲

오래 전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제천 의림지에 들린 적이 있었다. 20년도 더 된 훨씬 전의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이번에 제천을 지나게 될 때 짬을 내어 의림지를 찾아보았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의 벽골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우륵이 쌓았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호수가 유명하다는 것은 충청도를 가리키는 호서(湖西)라는 말이 이 호수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이고, 제천의 옛 이름인 내제[큰 제방]이라는 의미도 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의림지는 세종 때에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축되었고, 1972년 장마에 둑이 무너져 이듬 해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호수 둘레는 약 1.8km에 이른다. 제방 둑에는 영호정 등..

천년의나무 2007.02.16

광천리 관음송

이 나무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어 보통 광천리 관음송이라 불리는데 영월 청령포를 찾아가면솔숲 가운데에 있는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도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觀], 들어서[音]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의 수명도 대략 600여 년으로 추정한다. 17 세의 어린 단종이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청령포 솔숲에 있는 소나무들 중에서도 이 관음송은 군계일학으로 뛰어나다. 땅에서 올라온 줄기가 아이들 키 높이 정도되는 곳에서 둘로 갈라졌는데 두 줄기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기상이 대단하다. 그 높이가 30 m에 이른다니 왠만한 고층 아파트 높이에 해당된다. 노산군(魯..

천년의나무 2007.02.12

청령포 소나무 숲

한국인을 말할 때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에서 살다 소나무에서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소나무는 한국인과 가깝다. 모든 한국 사람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지상에서의 첫날을 맞는다. 자라면 소나무 우거진 솔숲이 놀이터가 된다. 봄이면 물오른 솔가지를 꺾어 송기를 갉아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솔 연기를 맡으며 살다 소나무관 속에 육신을 묻는다. 그리고 무덤가엔 둥그렇게 솔을 심어 저승의 집을 꾸민다. 한국의 솔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소나무'와 '곰솔' 두 종류로 나눈다. 그리고 소나무의 대표적 수종으로는 육송, 적송, 반송, 금강송 등이 있고, 곰솔은 보통 해송(海松)이라 불리며 바닷가를 따라 자라고 있다. 전세계의 소나무는 100 종 가까이 된다는데 우리나라 만큼소나..

천년의나무 2007.02.09

궁리 소나무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서산방조제 방향으로 가다보면 방조제를 거의 다 간 길 옆에서 이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지명으로는 홍성군 서부면 궁리이다. 나무가 크고 모양이 특이해 차로 지나가다 보면 누구라도 이 나무에 시선을 뺏기게 된다. 여유가 된다면 차를 세우고 내려서 나무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며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안내문에 보면 예전에 방조제가 세워지기 전에는 바닷물이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서 쉬고 음식물을 먹으며 해수욕을 즐겼고, 음력 정월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랑을 막아달라고 기원하는 풍어제를 올리던 당상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앞 바다가 너른 들판으로 변했다. 이 소나무도 4차선 넓은 도로에 의해 마을과 차단되고, 파도소리..

천년의나무 2006.03.02

감천면 석송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를 뽑는다면 아마 이 석송령도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이 나무의 단아한 자태를 보면 첫 눈에 반하게 될 것이다. 아주 곱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연상된다. 수령이 600 년 가까이되지만 남성적인 기상 보다는 여성적인 아담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외모만이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과 깊이까지 느껴지는 기품이 있다. 현장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약 600여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졌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 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천년의나무 200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