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127

의상대 소나무

2005년의 산불로 낙산사가 불탔을 때 이곳 의상대(義湘臺) 소나무도 피해를 보았다. 의상대를 둘러싸고 있던 노송들이 사라진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몇 그루는 살아남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에는 소나무 줄기 사이로 겨우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젠 휑하니 시야가 트였다. 그러나 상실감으로 아픈 풍경이었다. 이곳 의상대 앞바다는 어린 시절부터 추억이 깃든 장소다. 아버지를 따라와서 바다를 처음 본 곳도 여기였다. 그 뒤로도 동해안 여행을 하면 이곳이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산불 이후로 의상대는 많이 변했다. 내 기억에 간직된 의상대는 사라졌다. 뭔가가 허전하고 쓸쓸해서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천년의나무 2012.09.10

하조대 소나무

양양에 있는 하조대(河趙臺)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이곳에서 잠시 은거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로 된 빼어난 경치를 바라보는 제일 높은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하조대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바위 절벽 위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독야청청 자라고 있다. 수령은 약 200년이 되었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돌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하게 자라난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바위 위에 앉은 한 마리 학이 연상되는 날렵한 자태가 멋진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2.09.09

금굴리 송림

보은 금굴리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마을 앞 길과 논에 난 둑을 따라 소나무 87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이 200 ~ 300년 사이의 나무들이다. 누가 이 소나무 숲을 조성했는지 자료가 없지만 지금은 명품 숲이 되었다. 이웃에 있는 임한리 송림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비해, 여기 소나무들은 길을 따라 서 있다.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둑으로는 나무 데크를 설치했다. 여기 있는 나무 전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은 '은사뜰'이다. 한자로는 은사평(隱士坪)이라고 쓰는데 숨어 지낸 선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나무 숲이 마을의 품격을 올려 놓았다. 처음 소나무를 심었던 사람의 혜안이 돋보인다. 소나무 길에는 비슷한 나이의 왕버들 5그루도..

천년의나무 2012.08.24

임한리 송림

보은군 탄부면 임한리(林閑里)는 구병산 아래 너른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이름에 '수풀 림[林]'자가 들어있는 걸 보아 나무가 많았던 마을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수령이 200년 내외 된 소나무 100여 그루가 숲을 이루며 남아 있다. 충북의 명품 자연환경 100선에 들어 있을 정도로 풍광이 좋다. 여름철이어선지 송림 안은 잡초가 우거져 다닐 수가 없었다. 바깥 울타리를 따라 한 바퀴 돌며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잘 단장해 놓으면 경주 왕릉에 있는 솔숲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멋진 소나무들이 많았다. 가을에 벼가 노랗게 익을 때면 훨씬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12.08.24

서원리 소나무

서원리 소나무는 정이품송과 7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나무를 정이품송의 부인송이라 부른다. 실제로 정이품송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꽃가루를 받아 이 나무에 수정하기도 했다니 부인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생김새도 정이품송과 달리 줄기가 둘로 갈라져서 자라고 있다. 곧게 자란 모양보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모양새로 어울린다. 수형은 약간 헝클어져 있긴 하지만 우산을 펼친 모양이다.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웅장해 보인다. 가지 끝이 땅에 닿을락 말락 펼쳐져 있어 포근하게도 느껴진다. 나무는 높이 15m, 줄기 둘레는 각각 3.3m, 2.9m다.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352호다.

천년의나무 2012.08.22

정이품송

1980년대만 해도 원뿔형의 균형 잡힌 몸매를 자랑하던 정이품송이었는데, 1993년 강풍과 2004년의 폭설로 나무 한 쪽이 거의 사라졌다. 아름답던 옛 모습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나마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게 다행이다. 워낙 높으신 지체라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덕분이리라. 이 나무에 전해오는 얘기를 안내문을 통해 다시 읽어본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과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세조는 "올 때..

천년의나무 2012.08.22

태산 망인송

1박2일의 태산 등정은 안개에 싸여 산세나 나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잠깐이지만 날이 개였을 때 눈에 들어온 나무 중에서 이 소나무가 제일 멋졌다. 망인송(望人松)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이 나무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절벽에 홀로 우뚝 선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이 나무에도 어떤 전설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은 외국인이 나무에 얽힌 전설까지 알아내는 것은 무리다. 힘든 계단길을 땀 흘리며 올라갈 때 망인송은 그 모습만으로도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천년의나무 2012.08.01

태산 오대부송

중국 태산(泰山)을 올라가다 보면 오대부송을 만난다. 계단길 옆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고 안내문이 있다. 한문과 영어로 된 안내문 내용은 대략 이렇다. '기원전 219년에 진시황이 태산을 오르던 중에 갑자기 비를 만났고,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 황제는 고마움의 표시로 이 나무에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지금 보는 나무는 청대인 1730년 경에 심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이품송과 비슷한 일화를 가졌다. 큰 나라 작은 나라를 불문하고 옛날 제왕들은 벼슬 내리기를 즐겨했는가 보다. 한 번 이런 명칭이 붙으면 사람들이 극진히 보살필 것이다. 비 오는 때에 하필 진시황이 이 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는 우연이 나무의 운명을 바꾸었다. 우리들 인생사처럼 재미있는 일이다.

천년의나무 2012.08.01

드름산 소나무

춘천 드름산에는 멋진 소나무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전망대 옆에 서있는 이 소나무가 제일이다. 나무 모양으로 봐서는 반송인데 천인절벽 바위틈에서 너무나 곱게 자랐다. 마치 어느 집 정원수를 옮겨 심은 것 같다. 이 나무는 의암호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서 있다. 많은 나무가 척박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상하거나 모양이 비틀어지는데 이 소나무는 다르다.자연 상태에서 이만큼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나무도 드물 것이다. 춘천 드름산의 제일송(第一松)이다.

천년의나무 2012.02.23

보경사 반송

포항에 있는 보경사(寶鏡寺)는 주변의 소나무가 아름답다. 솔숲에 둘러싸인 절집이 아늑하고 고풍스럽다. 절 안에 들어서면가운데에 있는 반송 한 그루가 우선 눈에 든다. 단아한 모습이 절집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러나 줄기를 보면 보통의 반송과 달리 구불구불 용트림 모양을 하고 있다. 수령이 적어도 200년은 넘어 보인다. 원래 보경사에는 800년 된 회화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해인가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지면서 죽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있었던 자리를 가리켜 준다. 보경사에는 오래된 탱자나무도 있지만 역시 태풍 피해를 당해 온전치 못하다. 지금으로서는 이 반송이 보경사를 대표하는 나무로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2.02.13

부용대 소나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은 옥연정사(玉淵精舍)를 짓고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그 기록이 선생이 쓴 '소나무를 심고[種松]'이라는 시로 남아 있다. 스무아흐렛날 자제들과 재승(齋僧) 몇 사람을 시켜서 능파대 서쪽에 소나무 삼사십 그루를 심었다. 내 일찍이 백낙천의 '소나무를 심고'란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나이 사십이 되어 몇 그루 어린나무를 심는가 인생 칠십은 옛부터 드물다는데 언제 나무가 자라 그늘을 볼 것인가' 하였다. 올해 내 나이 예순셋인데 새삼 나무를 심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떠오르는 감상을 재미삼아 몇 구절 시로서 옮겨본다. 북쪽 산 아래 흙을 파서 서쪽 바위 모퉁이에 소나무 심었네 흙은 삼태기에 차지 않고 나무 크기 한 자가 되지..

천년의나무 2011.11.18

옥연정사 소나무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께서 후년에 거처하신 가옥이다.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 낙동강 건너편 부용대 자락에 있다. 살림을 사는 집이 아닌 서애 선생만의 학문과 만남의 독립 공간이었다. 옥연정사는 1576년에 집짓기를 시작해서 10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집 지을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 때 탄홍(誕弘)이라는 스님이 도와주어서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1605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잃고 이곳에 은거하며 징비록을 저술했다. 선생이 쓴 '옥연서당기(玉淵書堂記)'에 보면 집을 지은 당시의 선생의 소회가 드러나 있다. '사슴, 고라니 같은 내 천성은 산야에 삶이 알맞지 시정간에 살 사람이 아니었다. 중년에 망령되게도 벼슬길에 나아가 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

천년의나무 2011.11.18

옥동리 소나무

이 멋진 소나무 두 그루는 영월군 김삿갓면 옥동리에 있다.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들판을 지나 산 아래로는 옥동천이 흐른다. 소나무는 천과 들판을 가르는 제방에 서 있다. 아마 전에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이 천을 따라 함께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곳의 두 그루와 좀 떨어진 곳에 몇 그루의 소나무만 남아있다. 수령은140년 정도 되었고,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1.8m다. 넓은 데에서 독야청청하니수치보다는 작아 보인다. 그래도 다행히 두 그루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마치 다정한 형제처럼 보인다. 소나무는 잘 생기기도 했지만확 트인주변 풍경이 소나무를 살려준다. 산, 강, 들판, 마을이 좋은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찾아간 날은 소나무 주변의 풀을 태우느라 ..

천년의나무 2011.11.16

사인암 소나무

단양 사인암 앞을 흐르는 남조천에 멋지게 생긴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수령은 100년 정도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줄기나 가지의 휘어진 품이 옛 풍류를 느끼게 해준다. 아마 사인암에 놀러온 사람들에게 이 나무 밑은 명당 자리였을 것이다. 나무는 개울로 돌출해 있어 개울 가운데서 자라고 있다. 개울이 넓어지면서 점점 개울 쪽으로 들어간 것 같다.홍수가 나면 이 나무들도 위험해 보인다. 세 나무 중 하나는 줄기가 부러져서 볼 품 없게 되었다. 좀더 안전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1.11.02

운림산방 소나무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7-1890)) 선생이 말년에 거처하던 곳이다. 선생은 스승인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운림산방을 짓고 그림에 몰두했다. 이곳은 해발 485m의 첨찰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바로 옆에는 쌍계사가 있다. 운림산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이 소나무가 눈에 띈다.탈속한 듯 자유분방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전시장에 있는 산수화 속의 모델이 되었을 것도 같다. 물론 훨씬 후대에 심은 것으로 보이지만 운림산방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운림산방에는 이 외에도 단아한 모양의 동백, 버드나무, 배롱나무 등이 아름다운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1.10.06

영산암 반송

안동 봉정사에는 영산암(靈山庵)이라는 보물 같은 암자가 있다. 영산암 마당에 있는 반송을 보러 찾아갔지만 나무보다는 영산암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렸다. 안내문에 보면 영산암은 1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니 100년이 좀 넘었다. 그래선지 다른 암자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6개의 건물이 ㅁ자 모양으로 배치된 폐쇄적 구조다. 마치 인사동의 어느 고택 안에 들어선 느낌도 든다. 고풍스러우면서 편안하다. 전체적으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통일성과 조화가 느껴진다. 조경 전문가가 특별히 설계해서 지은 것 같다. 특히 3단의 계단식 지형에 맞게 건물이 참하게 들어앉았다. 좁은 마당이 우주를 품은 것처럼 넓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이곳에서 실감했다. 반송은 마당..

천년의나무 2011.06.08

봉정사 소나무

안동 봉정사(鳳停寺)는 천년고찰의 분위기가 서린 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으로 유명하다.예쁜 영산암도 있다. 천등산 아래 자리잡은 절은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친절한 해설사는 절 뒤편의 소나무들이 법당 쪽으로 가지를 뻗지 않고 줄기도 반대편으로 굽은 연유를 흥미롭게 설명해 주었다. 절에 들어설 때 제일 먼저 맞아주는 나무가 있다. 깊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처럼 기울어져서 자라는 소나무다. 줄기도 위쪽에서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진 모양이 마치 두 손 모아 합장하는 것 같다.절 주위에 보기 좋은 소나무들이 많지만 유독 이 나무가 눈길을 끈다. 수령은 200년이 채 안돼 보이지만 지지대에 의지한 채 절을 찾는 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1.06.03

솔뫼성지 소나무숲

충남 당진에 있는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님(1821-1846) 의 탄생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신부님은 이곳에서 태어나 용인으로 이사갈 때까지 7 년을 살았다. 신부님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부터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많은 분들이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신부님도 스물여섯의 아까운 나이에 순교하셨다. 솔뫼의 '솔'은 소나무[松]를,'뫼'는 산[山]을 뜻한다. 솔뫼란 '소나무 산'이란 우리말이다. 그 이름으로 유추하건대 옛날부터 이곳에는 소나무가 무척 많았던 것 같다.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 뒤쪽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직 남아 있다. 옛날에 있었을 소나무숲의 일부일 것이다. 성지에 계신 신부님에게 물으니 대략 수령이 100년에서 200년 사이의 나무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대건 신부님이 어릴 때 ..

천년의나무 2011.04.11

추사고택 백송

추사 김정희 선생은 25세 되는 때인 1809년에 사신단의 일행으로 중국 연경에 다녀온다. 이때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중국 문인들과 교류를 한다.그의 삶에서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돌아올 때 선생은 붓대에 백송 종자를 가져와 고조부인 김흥경(金興慶, 1677-1750)의 묘 앞에 심는다. 현재 천연기념물 106호로 지정되어 있는 일명 '예산 백송'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송은 무척 귀하다. 그만큼 우리 토양에서는 자라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고관대작들이 주로 중국에서 들여와 심었는데 그중 일부만 살아남았을 것이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고택 인근에 있는 이 백송도 그래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추사고택옆에는 백송공원이 만들어져 있고 많은 백송들이 심어져 있다. 아직 어려선지 줄기..

천년의나무 2011.03.31

청와대 반송

청와대 앞을 지날 때마다 반송(盤松)이 제일 눈에 들어온다. 정문 진입로 양편으로 20여 그루의 반송들이 도열해 있다. 뒤의 북악산, 청와대 건물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 집의 주인은 들고날 때마다 아름다운 반송의 환영을 받는 셈이다. 반송은 소나무의 품종 중 하나로 원줄기 없이 여러 개의 줄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그래서 만지송(萬枝松)이라는 별칭이 있다. 재미있는 건 반송 종자를 발아시키면 15% 정도만 반송의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유전적인 형질은 아닌가 보다. 청와대 반송은 모양도 아름답고 건강하다. 수령은50년에서 100년 사이 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볼 수는 없다. 정치도 이 나무들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년의나무 2011.02.26

여의도공원 소나무

박정희 시대 때 여의도에 '5.16광장'이 만들어졌다. 12만 평의 넓이였는데 국가적 대형 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내 기억에 5.16광장은 1974년에 열렸던'엑스플로'라는 개신교 행사로 남아 있다. 8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설교와 강의를 들으며 며칠동안 고행을 했다. 저녁에는 그룹별로 성경공부를 하고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잤다. 일부는 광장에서 텐트 생활도 했다. 이 행사가 끝나던 날,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고 8.15 경축식장의 사건도 일어났다. '5.16광장'은 '여의도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아스팔트 광장이 숲으로 변신했다. 물도 흐르고 호수도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여기가 옛날의 그 아스팔트 광장이었던가 싶다. 공원의 많은 나무들 중에서도 소나무..

천년의나무 2010.10.07

재동 백송(2)

백송을 보러 갔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데 2004년에 처음 만난 이래 이번이 네번 째다. 백송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오래 되었다. 나이가 600살이고 키는 15 m다. 또한 제일 아름답다. V자 모양으로 뻗은 줄기는 멀리서 보면 눈부실 듯 하얗다. 지금은 헌법재판소가 들어와 있지만 옛날에 이곳은 풍양 조씨 집안이 대대로 살던 터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풍양 조씨는 판서를 아홉 명이나 배출한 명문이었다. 영조 때는 조상경 판서가 살았던 집이었다. 풍양 조씨가 득세할 때는백송의 껍질이 유난히 희게 보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에 안동 김씨가 세력을 얻으면서 백송은 흰빛을 잃어갔다는 얘기가 전한다. 물론 풍양 조씨 쪽에서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뒤에 이 ..

천년의나무 2010.09.17

단호사 소나무

충주 시내에 있는 단호사(丹湖寺)는 고려 시대에 제작한 철불이 모셔져 있는 작은 절이다. 충주에서 수안보로 가는 대로변에 있어 찾기가 쉽다. 그러나 전에 고향을 오갈 때도 이 길을 자주 이용했는데 절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단호사 대웅전 앞에 멋진소나무가 있다. 멀리서 보면잘 가꾸어 놓은 한 그루 분재 같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구불구불한 줄기가 마치 용트림 하듯 기운차게 뻗어나간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동양화에 나오는 멋진 소나무 모양 그대로다. 이 소나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조선 초기 강원도에서 약방을 경영하던 문씨라는 사람이 재산은 많아도 슬하게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날 한 노인으로부터 단호사에서 불공을 ..

천년의나무 2010.08.05

임천관아터 소나무

부여군에 있는 임천면(林川面)은 지금은 비록 작은 시골 면이지만 옛날에는 번성한 고을이었다. 백제 때는 가림군(嘉林郡)으로 불리웠고, 고려 때는 자사(刺史)가 파견될 정도로 중심지였다. 또 조선 초기에는 부(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옛날 관아가 있던 터는 지금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로 변해 있다. 그 관아터에 소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 옛 흔적을 지키고 있다. 수령은 300 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 맵시가 참 예쁘다.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막 내려앉는 모습 같다. 관아 중에서도 어딘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참한 소나무를 앉혀두고 일을 보았다면 분명 선정을 베풀지 않았을까. 요사이 지자체에서 호화 청사를 짓는다고 난리들인데 건물보다는 차라리 이런 나무 기를 욕심을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천년의나무 2010.07.14

낙화암 천년송

낙화암에 서서 서기 660년의 현장을 상상해 본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부소산 뒤쪽으로 쫓기다가 절벽과 마주친다. 더 이상 도망갈 길도 없다. 여인들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꽃이 되어 떨어진다. 한순간에 이곳은 눈물과 한숨, 통곡과 비명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백마강은 붉은 피와 서러운 꽃잎으로 가득 덮였으리라. 그때로부터 1350년이 흘렀고, 사람들은 대를 이어 나고 죽었으며, 강물도 쉼 없이 흘렀다. 부소산의 나무들도 나고 죽고를 거듭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후세 사람들이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 위에 백화정(百花亭)을 지었다. 전설대로라면 천화정, 만화정이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소박한 이름이 백제인의 마음을 닮은듯하여 반갑..

천년의나무 2010.07.01

구포동성당 소나무

나무를 보러 안성에 갔다가 아름다운 성당을 만났다. 안성시 구포동에 있는 구포동성당이다. 1900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인 공안국(孔安國, R. A. Combert) 신부가 창설했다니 역사가 110년에 이른다. 성당 건물은 1922년에 건립했는데 정면은 서양식이지만 본체는 한옥 모양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그러니 이 건물만도 9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한옥성당 중 하나라고 한다. 성당 부지 안의 조경이 멋진 소나무들로 되어 있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나무들은 신구 건물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비록 그리 오래된 나무는 아니지만 그 모양과 어울림이 멋져서 여기에 올린다. 구포동성당은 내가 본 성당 중 나무 배치가 가장 멋지고 주변과 잘 ..

천년의나무 2010.05.02

칠장사 나옹송

경기도 안성에 있는 칠장사(七長寺)에 나옹송이라 부르는 소나무가 있다. 고려말의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바로 옆에는 나한전이 있는데 이곳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머물다가 꿈에 과거시험 문제를 계시 받아 장원급제 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그래서 지금도 수험생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고 한다. 소나무는 모양이 특이하다. 힘차게 자란 줄기가 중간에서 멈춘 뒤 옆으로 퍼져 있다. 산 쪽에서 보면 완전한 T자형이다.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도 보인다. 나무 높이는 8 m, 줄기 둘레는 2.1 m이다. 나옹선사가 이 소나무를 심은 게 맞다면 600 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무 크기로는 그렇게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다. 설화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겠다. 박문수..

천년의나무 2010.04.30

하회마을 소나무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나무들 중 하나다. 옛 초등학교 자리의 넓은 빈 터에 있어 강변길을 걷다 보면 쉽게 눈에 띈다. 모양새가 아담하며 균형이 잘 잡혀 있다.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수령은 약 400 년 정도 되었다. 키는 6 m이고, 줄기 둘레는 1.5 m이다. 가까이서 보면 줄기가 살아 움직이듯 용틀임을 하는 모습이다.이런 소나무를 보통 용송(龍松)이라고 부른다.나무가 더 크면 두려운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나무는 아직 그렇지는 않다. 윗 줄기를 보면 마치 근육 자랑을 하는 청년의 팔뚝처럼느껴진다. 떠나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예쁜 소나무다.

천년의나무 2010.02.03

만송정 솔숲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쪽 강변을 따라있는 소나무숲이 만송정 솔숲이다. 조선 선조 때 겸암(謙菴) 류운용(柳雲龍) 선생이 부용대의 기를 누르고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만송정(萬松亭)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솔숲에 정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숲은 400 년이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보는 소나무들은수령이 백년 내외가 된다. 따라서 후대에 다시 조성한 소나무일 것이다. 하회16경(河回十六景) 중에 송림제설(松林霽雪)이 있는데 이는 눈 덮인 만송정의 솔숲을 가리키는 말이다. 꼭 겨울이 아니더라도 이 솔숲은 하회마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솔숲이 없다면 마을이 얼마나 썰렁할지는 부용대에 올라 바라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더..

천년의나무 2010.01.22

남산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남산하면 소나무가 연상되는 것은 이런 애국가의 가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남산에는 철갑을 두른 듯한 울창한 소나무 숲은 없다. 그래도 남쪽 기슭을 중심으로 일부가 남아있는데, 남산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은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 때 남벌한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남산의 소나무 숲 자체가 인공적으로 조림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때에 장정 수천 명을 동원해 남산을 중심으로 20일 동안 100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궁궐 건축 등을 위한 목재 수요의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소나무의 벌채를 금하면서 남산은 숲이 울창해져 산적이 출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소나무가 지금은 전체의 20..

천년의나무 2009.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