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06

어떤 도둑질 / 윤정옥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껏 나는 칠순 노모의 김치를 먹고 있다 음식 비법을 전수하기 싫은 이름 난 식당 주인처럼 도대체 내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고 해치워버린다 김장해놨으니 가져가거라 돌멩이 맞을 소리지만 왜 그랬냐고 날 부르지 그랬냐고 하면서도 한 시간 후에는 소요산쯤을 지나고 있다 차로 한 시간 반 거리 철대문을 요란스럽게 열고 들어가 고구마, 마늘, 김치, 만두, 가래떡을 한 아름 들고 나온다 도둑질을 당당하게 하고 나온다 아마 나는 엄마의 인생에서 알토란 같은 시간을 도둑질했을 것이다 단번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서너 번의 분절로 허리 펴 선 자리, 발끝마저 점점 흐릿해지는 엄마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껏 바윗덩이를 지고 무심한 산을 올랐듯 오르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

시읽는기쁨 2021.07.17

어머니와 들깨를 심다

어머니의 경작 본능을 무슨 수로 말릴까. 올해도 어김없이 들깨 농사를 시작했다. "가만 두어라.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 10년 전부터 돌아오는 똑같은 대답이다. 밭은 집에서 1km나 떨어져 있고 산자락도 넘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나한테도 숨이 차다. 밭도 500평이나 된다. 그런데도 매일 왕복하며 가꾸어놓은 밭이 정원처럼 말끔하다. 관리하기 쉬워 들깨를 심는다지만 아흔 넘은 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도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도 당신은 "내 좋아서 하는 일, 끄떡없다!" 하신다. 밭일보다도 오가는 과정이 걱정이다. 경사진 산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찌될까. "넘어지려고 하면 평지에서도 넘어진다. 산길은 조심해서 오히려 괜찮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농사 욕심은 ..

사진속일상 2021.07.09

고향은 무겁다

묘한 일이다. 짐을 덜 줄 알고 환영했는데 결국은 무거운 짐을 더한 꼴이 되었다. 인간 세상에서 앞날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좋아서 기뻐하다가 눈물을 흘리게 되고, 슬퍼 울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으로 변하는 게 인생사다. 고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고향에 내려가서 사흘을 지냈다. 어머니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뒤라 뒤를 보살펴 드렸다. 그나마 어머니가 꿋꿋하신 게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겹쳤다. 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는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處世不求無難].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사진속일상 2021.05.21

동백과 동박새

어머니를 모시고 고흥에 다녀왔다. 고향에서 고흥까지 가는 데만 일곱 시간이 걸리는 긴 길이었다. 동생이 고흥에서 농장을 시작했는데 동백나무가 많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꽃구경 겸 어머니와 함께 내려갔다. 개량 동백이라 수형은 정돈되고 멋진데 꽃은 토종만 못하다. 지금이 한창이니 춘백(春栢)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목표는 동박새를 보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날 겨우 소원을 이루었다. 농장 주변의 동백꽃 풍경이다. 동백나무에는 직박구리, 박새, 곤줄박이가 주로 찾아왔다. 그중 열에 하나 동박새가 끼여 있다. 동박새는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카메라를 가져가면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한 곳에 1초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사흘간 있는 동안 끝날에 겨우 몇 장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는 그만큼 귀한 사진이다. ..

사진속일상 2021.03.19

늦은 설

코로나로 지난 설날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올해는 형제가 같이 모이지 못하고 각자 어머니를 찾아뵙게 되었다. 설날이 열흘 지나고 고향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가 건강하신 게 안심이 되고 감사했다. 혼자 계시는 날이 많은 데다 코로나로 사람들 왕래가 드무니 너무 적적하다고 하신다. 동네 마을회관이 문 닫은 지도 1년이 되었다. TV가 없으면 어떻게 지낼지 모른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자식이 있다고 노년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기도 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아침이면 집 마당 단풍나무는 새들의 놀이터다.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깨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참새와 박새 몇 마리가 들락거릴 뿐 조용했다. 어머니 옆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떠날 때마다 자주 찾아뵈어야지, 라고 다짐..

사진속일상 2021.02.24

다정도 병인 양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드는 밤이 있다. 주로 윗집의 층간소음 탓이다. 그런데 어젯밤은 아니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뵙고 온 날은 심란하여 잠이 안 온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나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낡게 하고 허물어버리는 잔인한 엔트로피의 법칙을 고향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요사이 같은 늦가을에는 고향을 찾을 일이 아니다. 빨리 내려와서 가을걷이를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연락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흔 연세에도 온갖 농작물을 기르고 거두신다. 그리고 가을이면 수확해서 자식에게 주는 재미로 사신다. 배추, 무, 사과, 깨, 생강, 시래기, 당근, 파, 호박 등 이번에도 차 뒤의 트렁크 하나 가득하였다. 그러나 마냥 기쁘지는 않다. 고맙게 받아오고 잘 먹어주는 게 효도의 하나라고 ..

참살이의꿈 2020.11.24

들깨를 수확하다

어머니의 농사 사랑은 아무리 말려도 안 된다. 지팡이를 짚고 가서라도 빈 밭을 놀리지 않으신다. 밭으로 가는 산길이 험해서 자식 입장에서는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올해는 뒷밭에 들깨 한 종류로만 놓으셨다. 300평 정도 되는데 수확은 엄두가 나지 않으셨는가 보다. 일주일 전에 여동생이 내려가서 들깨 베는 걸 도왔고, 털 때는 내가 내려갔다. 이틀 정도 예상했는데, 다행히 하루 만에 끝냈다. 다른 밭작물처럼 들깨도 올해는 수확이 시원찮았다. 경제적으로만 따진다면야 사서 먹는 게 더 이득이다. 그러나 어머니 입장은 다르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농사를 손에서 떼기도 힘들거니와, 길러서 자식 주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신이 생존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이다. 만약 집안에만 계..

사진속일상 2020.10.27

고향에 다녀오다

2박 3일로 고향에 다녀왔다. 늦은 추석 성묘와 퇴원 뒤 회복 중이신 어머니 문안을 겸해서였다. 동생네는 남도에 내려가 있었다. 그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고향 찾기를 자제했다. 가려고 하면 어머니가 극구 만류하셨다.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세상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동네에 폐가 될까 봐 어머니 생신도 집이 아니라 밖에서 모였다. 올해는 추석도 건너뛰고 이렇게 열흘 늦게 조용히 내려왔다. 어디서나 참 좋은 가을날이었다. 이번에는 짬이 나는 대로 마을과 주변을 자주 산책했다. 이웃집 친구들 넷과도 오랜만에 대면했다. 어느새 다들 일흔을 넘었거나 코앞에 두고 있다. 허허, 빈 웃음이 자꾸 나왔다. 서천 산책로와 마을 전경. 산소 가는 길. 서천 산책로에는 코스모스가 환했다. 다행히 어..

사진속일상 2020.10.11

한밤중의 전화벨 소리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무섭다. 누구나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잠잘 시간에 전화를 걸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밤에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화면을 보니 동생 이름이 떴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다는 연락이었다. 다음 날 내려가서 닷새 동안 병실 지킴이를 했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어서 일주일 정도의 입원으로 퇴원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아흔이 되실 때까지 한 번도 입원해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을 정도로 강건하신 분이다. 퇴원 날짜를 받아 놓고 나는 농담 삼아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입원해 보는 경험도 했으니 감사하세요." 2인실에 있었는데 막바지에 옆 침대에 천하무적 환자가 들어왔다. 80대 할머니였는데 호통을 치면 간호사들이 꼼짝 못 했..

사진속일상 2020.09.26

어머니 생신 모임

이번에 어머니가 구순을 맞으셨다. 예전에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였다. 지금은 백세시대라지만 그래도 구십이라는 나이는 쉽게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다. 비록 작은 동네긴 하지만 고향에서는 현재 어머니가 최고령이시다. 내가 나가는 한 모임의 회원 열 명 중에는 현재 생존하신 부모님이 딱 두 분 계신다. 확률이 10%인 셈이다. 원래는 이모와 고모, 그리고 조카까지 초대하는 모임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겼다. 어머니는 이런 판국에 무슨 생일 행사냐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자식 처지에서는 모른 척 넘길 수 없었다. 형제만 함께 하는 간소한 모임으로 축소하고 펜션 독채를 빌렸다. 손주도 오라 하지 않았다. 음식점에서의 외식 대신 펜션 안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도 예약했다가 마..

사진속일상 2020.06.29

프로의 솜씨

어머니가 농사일을 놓으신지 서너 해가 되었다. 지금은 집 앞 텃밭만 가꾸신다. 한창 농사를 지을 때 어머니 별명이 '농사 9단'이었다. 동네 사람들조차 어머니한테 와서 조언을 구했다. 어머니가 작물을 키우면 다른 집에 비해 소출이 월등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길 "똑같이 농사짓는데 저 집은 왜 다를까?"라는데, 내가 볼 때 특별한 비결이 있기보다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고향 집에 갔더니 텃밭에 고추를 심어 놓으셨다. 일렬로 늘어선 고추가 해병대 줄보다 더 정확히 맞아 있었다. 줄을 긋고 심은 것도 아니고 대충 눈대중으로 했다는 게 이 정도다. 전에 산속에 있는 밭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였다. 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를 하셨다. 살림살이나 다른 면은 그렇지 않은데 ..

사진속일상 2020.05.04

설날 세 장면

# 1 귀성길에 저녁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한 가족이 앉았다. 40대 부부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둘이었는데 전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명절 전 휴게소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다. 설빔을 차려입고 환한 미소를 띠고 기차에 오르는 TV에 나오는 명절 풍경을 나는 믿지 않는다. 이 가족은 그중에서도 유별나서 눈길이 갔다. 두 아들은 휴대폰만 붙잡고 있고, 부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딴 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각자 제 몫을 가져와서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각자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남편한테서는 서운하면서 뭔가 미안해하는 기색도 보였다. 저 나이였을 때 우리 가족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은 억지로 따라나서고, 아내..

길위의단상 2020.01.27

효도와 우애

해외 패키지여행에서는 가족과 함께 오는 팀이 제일 많다. 주로 부부나 자매이고, 모녀 사이도 자주 눈에 띈다. 여행도 여자 중심으로 팀이 꾸려진다. 지난 스페인 여행에서는 남자 삼 형제가 부부끼리 함께 왔다. 여러 차례 패키지여행을 했지만 형제 부부가 함께 다니는 건 처음 보았다. 식사 시간에는 같은 식탁에 앉을 기회가 많았는데 형제와 동서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의 나이들인데 마치 어릴 때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우애가 있었다. 형제끼리 자주 여행을 다니고, 한국에서도 가까이 살며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 비결을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준다 한들 내 능력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많은 집안에서 형제간에 갈등이 있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자랄 때 형제이지 커서..

참살이의꿈 2019.12.25

2019 추석

추석에 고향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막혔다. 평소 두 시간이면 넉넉하던 길이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첫째가 동행했다. 며칠 전에 운을 떼었더니 기꺼이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조카 식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모이는 숫자가 단촐해졌다. 동생과 차례를 지내고 조상 산소를 찾아뵈었다. 엎드려 절 할 때에 조상님께 면구스럽기만 했다. 하늘에서 내려보신다면 형제, 친척간의 우애를 제일 바라실 게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효도하고 우애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우애하는 자로서 효도하지 않는 자는 없다." 9월 13일이 추석이니 올 한가위는 무척 빠른 편이다. 들의 벼는 이제 익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계시니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교통 정체에 시달리며 찾아갈 이유..

사진속일상 2019.09.14

어머니 생신과 고향집

어머니 여든아홉 생신으로 내려간 다음날 아침, 마을길을 산책하다. 고향 마을 시멘트 담벼락에 접시꽃이 피어 있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접시꽃은 다른 어떤 꽃보다 사람을 연상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고운 색깔과 수수한 모양새에서 그리운 사람 하나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어머니에게도 접시꽃처럼 화사한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면 자꾸 슬퍼진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눈물 그렁그렁 맺히니 추억은 자꾸 토막 난다. 누구나 그러하지 않겠는가. 새로 얻은 집 마당도 밭으로 변했다. 무릎 아파 고생하면서도 경작 본능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어머니의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도 이만하니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새로운 생활도 이제..

사진속일상 2019.06.10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권정생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 그렇게 어머니는 영원히 가셨다 먼 곳 이승에다 아들 딸 모두 흩어 두고 가셨다 버들고리짝에 하얀 은비녀 든 무명 주머니도 그냥 두시고 기워서 접어 두신 버선도 신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혼자 훌훌 가셨다 어머니 가실 때 은하수 강물을 얼지 않았을까 차가워서 어떻게 어머니는 강물을 건너셨을까 어머니 가신 거기엔 눈이 내리지 않는 걸까 찬바람도 씽씽 불지 않는 걸까 어머니는 강 건너 어디쯤에 사실까 거기서도 봄이면 진달래꽃 필까 앞산 가득 뒷산 가득 빨갛게 빨갛게 진달래꽃 필까 어머니 사시는 집은 초..

시읽는기쁨 2019.06.08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 죽을 둥 살 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더니 다 헛것이었다. 너희들은 나같이 바보로 살지 마라. 좋은 데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챙겨라. 늙고 아프면 모든 게 쓸데없다.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식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잘 못 해 드리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다. 어머니는 그래도 둘째네와 살고 있지만, 고향의 다른 노인은 독거로 지내시는 분이 많다. 자식이 많지만 전부 외지에 나가 있다. 한밤중에 잠이 깨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외로움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다. 따져보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만 특별할 수가 없다...

참살이의꿈 2019.04.09

고향 가는 길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다가 길 주변에 있는 몇 군데를 들러보다. 원래는 청풍호 벚꽃 구경이 우선이었지만 아직 개화하지 않고 꽃봉오리만 맺혀 있다. 서울보다다 개화 시기가 늦다. 제천 금수산 자락에 정방사(淨芳寺)가 있다. 정방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 물과 바람이 꽃향기[芳]와 어우러진 절이다. 절은 큰 암벽 앞에 세워져 있다. 터가 좁으니 건물이 크거나 많을 수 없다. 그래서 정방사는 소박하고 단아하다.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확 트인 풍경이 시원하다. 정면으로는 충주호와 멀리 월악산이 보인다. 절 조망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 같다. 절 건물 중 하나인 유운당(留雲堂)이다. 주련 내용은..

사진속일상 2019.04.05

2019 설날

내려가는 길은 심란했다. 지난가을부터 몇 차례 회오리바람이 지나갔다. 고향 가는 길이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적도 없었다. 설 차례를 지내고 올라오는 길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동생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했다. 일단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정성 들여 차린 설음식을 나는 거의 먹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속병이 다시 심하게 나타났다. 지난가을 이래로 반복되는 증상이다.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직격탄으로 받는 부분이 위와 장이다. 무심한 듯 감추려 해도 위장은 너무 솔직해 탈이다. 좀 둔하면 좋으련만.... "나는 괜찮다. 잘 지낸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부모의 속마음을 자식이 얼마나 헤아릴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게 제일 큰 효가 아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설날 아침에 증손자와 장난..

사진속일상 2019.02.06

추석 노을

저녁 노을이 고와 동구 밖에 나가다. 저녁 하늘은 지상의 어둠을 더 돋보이게 한다. 사는 게 다 그래, 라는 말로는 위안이 될 수 없는..... 고향 마을은 점점 공동화되어 간다. 사람이 적어서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이나 찾는 사람이나 황폐한 사막들끼리 만난다. 기쁨도 비탄도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인간의 넋두리와는 상관없이 보름 하루 전 달이 먹구름과 서로 희롱을 하며 놀고 있다. 만 년 전, 억 년 전에도 그러했듯.

사진속일상 2018.09.26

나는 행복합니다

내 산 게 억울하다. 왜 그리 미련하게 일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살았어도 자식한테 효도 받지도 못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재미나게 사는 것 보면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하신 어머니의 직설적인 말이다. 이런 내색을 안 하셨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작년에 동생이 낙향해서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있으니 지내시는 환경은 좋아졌다. 어머니는 동생이 내려간 뒤로 평생을 하시던 농사일을 그만두셨다. 밭에 나가는 대신 마을회관에서 종일 노신다. 예전 같이 식사 준비도 걱정 안 하시고, 혼자서 드시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는 여장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레 농사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모든 것이 당신의 책임이었고 몫..

참살이의꿈 2018.07.04

어머니와 서울 나들이

집에 와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나들이를 나갔다. 롯데 월드타워에 있는 아쿠아리움과 123층 전망대에 올랐다. 어머니 덕분에 나도 덩달아 첫 구경을 했다. 첫째가 나와서 점심을 사 주고 할머니에게 모자 선물도 드렸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들 어머니는 병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요양원에 계시기도 한다. 자식과 외출을 할 수 있는 어머니는 거의 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허리가 굽은 것만 제외하면 기력이 여전하시다. 쉬엄쉬엄이긴 하지만 천안에서는 산길을 두 시간 가까이 걸으시기도 했다. 정신력도 아직 쇠하지 않으셨다.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할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노인의 앞날은 모른다. S의 모친을 3년 전에 결혼식장에서 뵈었다. 당시 100세셨는데 손녀의 결혼을 축하하..

사진속일상 2017.12.21

2017 추석

동생이 귀향하고 난 뒤 첫 추석이다. 전에는 내 집이었는데, 이제는 동생네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간다. 주인에서 객으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어머니 걱정을 덜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동시에 뭔가 쓸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열에 하나 정도일 뿐이다. 이번처럼 가벼운 귀성은 없었다. 특히 명절을 지내고 돌아올 때, 어머니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면 너무 울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동생에게 감사하기 그지없다. 조카들이 와서 차례 준비를 한 덕에 시간 여유가 많았다. 아내와 동네 앞 하천의 산책로를 걷기도 했다. 너무 좋은 일만 바라지만 말자고, 일가정 일걱정이라고 우리를 달랬다. 저녁에는 동생과 바둑도 두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막내가 늦게 왔다. 어머니가 군불을 ..

사진속일상 2017.10.04

동생네 집

고향에 새로 지은 동생네 집이 완성되었다. 공사를 시작한지 한 달 반 만에 새집으로 입주했다. 워낙 솜씨가 좋아서 동생이 직접 인부들을 써서 완벽하게 지었다. 상급 자재를 쓴 내실 있는 목조주택이다. 아흔 가까이 되어 자식이 곁에 오니 어머니도 무척 기뻐하셨다. 나도 한시름을 놓았다. 대신 내집을 잃은 허전함도 있다.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집들이를 했다. 동생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첫째의 역할을 못하는 미안함이 겹친다. 새집이 동생네와 어머니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길 빈다.

사진속일상 2017.06.04

54년

54년 전에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네에서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전에 살았던 집이 좁아서 옆의 밭을 사서 아버지가 새집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꽤 번듯했던 집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거치면서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낡았고, 수리도 여러 번 했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마침 동생이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시며 살겠다고 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곧 이 집은 헐릴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할아버지, 부모님, 네 동생과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도중에 제일 먼저 집을 떴다. 그 뒤로 하나둘씩 떠나면서 오랜 기간 어머니 홀로 이 집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 연세도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니 부양할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었다. 삼형제가 모여서 어..

사진속일상 2017.04.03

상주에서

세월 앞에 버틸 장사는 없다.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새로운 존재가 그 뒤를 잇는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고향집을 지은지 54년이 되었다. 다른 한옥의 나무를 가져다 뼈대를 만들었으니 실제 나이는 훨씬 더 오래 되었을 것이다. 한때는 여덟 식구가 북적였지만 지금은 연로하신 어머니 홀로 지키고 계시다. 이제 이 집도 지상에서의 연을 마감하려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상주에 사는 동생네 집에 간 날, 750살이나 되신 감나무를 찾아갔다. 나이에 많이 뻥튀기가 된 나무다. 사람은 나이 드는 걸 감추는데 나무는 나이 많은 걸 자랑한다. 자주 어머니를 뵙지만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만에 같이 감나무 앞에 섰다. 늙으면 왜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지 나도 이제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사진속일상 2017.03.23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찬지름 들지름 들이 서울 갑니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변에 모랫벌에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여름내 김매고 땀 흘려 가꾼 참깨 들깨 들이 찬지름 들지름이 되어 소주병에 담겨 서울 가는 기차를 탑니다 마른 나무 강변말 해바라기 선 집 들지름 발라 김 구워 주면 미어지게 먹던 막내를 생각합니다 날달걀 깨서 찬지름 떨어뜨려 밥 비벼 주면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해치우던 맏이를 생각합니다 -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가을은 아프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지은 농작물을 갖고 오는 것도 죄스럽다. 가을이 되면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더해진다. "나도 이제 따스한 밥 얻어먹고 싶다." 가을은 불효를 자각하고 속울음을 삼키게 되는 계절이다. 충청도에서는 '찬지름 들지름'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자식을 향한 모정이 '..

시읽는기쁨 2016.11.07

웃는 추석

오랜만에 삼 형제가 함께 모인 추석이었다. 손주 데리고 둘째도 다녀가서 시골집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날은 벌초한 뒤 성묘하고, 같이 차례 준비를 하는 손길이 가벼웠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저녁을 먹고 동생네와 넷이서 두 시간 가까이 산책을 했다. 걷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를 제외하면 동생과 대면할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어머니가 세상을 뜨시면 더욱 뜸해질지 모른다. 어디서 무엇으로 살든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작년 추석과 올해가 다르다. 그래도 이만큼 정정하신 게 자식으로서는 너무나 큰 복이다. 어머니에게 삶의 활력은 땅에서 나온다. 어머니를 지켜볼 때 늙어서도 본..

사진속일상 2016.09.16

고향집 여름 화단

고향집은 언제 가도 화단의 꽃구경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식물에 관한 한 어머니는 전문가시다. 언제 무슨 작물을 심을지, 동네 젊은 아낙들은 항상 어머니에게 묻는다. 꽃도 마찬가지다. 비결이 궁금하단다. 꽃은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그럼으로써 늘 새롭다. 개체의 생멸이 온존재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꽃은 지는 걸 아쉬워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몸을 바꿀 뿐이다. 존재의 다른 양식일 뿐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들 서러움이 덜해질까. 늙으신 어머니가 꽃들 너머에서 자식에게 줄 곡식을 고르고 있다. 화단에 흰색 무궁화 세 그루가 새로 심어졌다. 키는 1m 남짓 되는데 매일 서너 송이씩 꽃이 핀다. 어머니는 그 꽃을 따서 뜨거운 물에 담가 우려내 마신다. 치매 예방에 좋다는 것이다. 이모 한 분이 뇌졸증으로 ..

꽃들의향기 2016.07.12

봉하마을

김해 요양원에 계신 이모를 뵙고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봉하는 평범한 농촌 마을인데 산에 박힌 사자바위와 부엉이바위가 인상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는 두 바위 아래에 있었다. 당신이 바라본 방향과 가치관에는 동감했지만, 재임시 당신이 편 정책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바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대통령이었고, 진보의 희망이었지만 좌절하는 진보의 단초가 되기도 했던 당신이었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나요? '민중은 개돼지'라는 교육부 고위관료의 뻔뻔한 발언을 접하는 요즈음, 천둥 같은 당신의 목소리가 자꾸 그립습니다.

사진속일상 201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