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97

고향집 봄 화단

고향 집 화단에 봄꽃이 곱게 피었다. 꽃을 가꾸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하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 어머니는 동물은 별로인데 식물 기르기는 무척 좋아하신다. 시골 생활이 적적하다고 강아지를 갖다 드려도 몇 달 못 키우고 남에게 줘 버리신다. 대신 농사짓기나 화단 가꾸기는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장롱에 버려져 있던 9년 전에 산 카메라 니콘 D70을 가지고 이 꽃사진을 찍어 보았다. D70은 옛날 기계식 필름카메라처럼 셔터를 누르면 미러가 움직이는 소리가 '철커덕'하는 게 일품이다. 사진을 잘 찍든 못 찍든 사진 찍는 맛만은 그만이다. 앞으로 자주 사용해야겠다. 명자꽃 할미꽃 민들레 꽃잔디 튜울립과 앵초

꽃들의향기 2014.04.14

김장은 힘들어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내려와 같이 김장을 담그자." 아직은 어머니의 파워가 막강하시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저희는 여기서 따로 담을 께요." 아마 아내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절인 배추를 신청만 하면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편리함이 자꾸 손짓한다. 그러나 김장에 대한 어머니의 정서는 다를 것이다. 김장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는 한 해의 마지막 행사인지도 모른다. 배추를 심지 말라고 말려도 안 된다. 내 손으로 기른 채소를 자식에게 먹인다는 뿌듯함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연세가 많으셔도 이만큼 기력이 있으시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고향에서 하는 김장은 배추에서부터 모든 재료가 어머니가 손수 지은 것이다. 시장에서 사서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

사진속일상 2013.11.24

2013 추석

동생네가 도착하기 전 셋이서 미리 송편을 빚었다. 모양새도 사람에 따라 세 가지로 나왔다. 나는 큼직하게 양손으로 눌러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 손가락 자국이 굵게 나온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 손가락 자국이 나는 건 상놈이 빚는 송편이라면서 절대 누르지 못하게 배웠다 하신다. 아내는 어릴 때 익힌 전라도 식이다. 송편소로는 콩, 깨, 밤 세 가지를 썼는데 내 몫은 콩이었다. 나중에 보니 콩을 너무 많이 넣어 송편인지 콩떡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송편을 찔 때 전에는 솔잎을 깔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송편이 '솔잎 떡'이라는 의미의 '송병(松餠)'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다음에는 번거롭더라도 뒷산에 다녀와야겠다. 아무래도 솔 향기가 배어야 제맛이 날 것 같다. 아무리 먹을 게 풍성하..

사진속일상 2013.09.20

태양초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굳이 태양초만을 고집하신다. 요즈음은 대부분 건조기를 사용해서 힘들게 햇볕으로 고추를 말리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집에는 고추 건조기를 다 갖추고 있다.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는 일도 고되지만, 고추를 말리는 것도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8월 한 달 내내 고추를 따고 말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올해의 불볕더위가 고추 말리는 데는 아주 제격이다. 비라도 며칠 내리면 고추는 불을 땐 방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고생도 그만큼 더 늘어난다. 고추를 말리는 데는 어머니만의 노하우가 있다. 바깥에서 말린 고추는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 타이밍은 감으로 판단하는데도 거의 완벽하다. 건조되어 바삭거리는 고추를 보면 작품이라 아니 할 ..

사진속일상 2013.08.15

봄날의 기념사진

서울 선유도공원에서 옛 동료와.... 안동 하회마을에서 어머니와.... 들로 산으로 씩씩하게 다니신다는 어머니가 평지길에서는 힘들어 하신다. 어디 놀러가자고 했을 때 자꾸 사양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신의 약한 모습을 자식에게 숨기고 싶으셨을 게다. 노약해가는 부모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향 밭에서, 일은 하지 않고 폼만 쟀을 뿐....

사진속일상 2013.05.04

마늘 놓고 양파 심고

농사 9단인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거들었다. 마늘 놓고, 양파 심고, 배추 뽑아 절이고, 시래기 만들고, 땔감 나르고...., 그러나 일보다는 왔다갔다하는 시간이 많았다. 고향에 갈 때는 친구도 만나고, 소백산 자락길도 걸으리라 생각했지만, 막상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아랫목에 누우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며칠 동안 잘 빈둥거렸다. 어머니의 부지런에 비하면 나는 한없는 게으름뱅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야야, 날 보고 일 그만하라고 하지 마라. 하고 싶어도 못 할 때가 곧 온다." 평생을 논밭에서 사신 분이시다. 농사일은 어머니의 업보면서 낙이다. 지금은 밭 몇 뙈기만 부치시지만 이젠 그것도 힘에 겨워하시는 게 역력하다. 어머니의 힘겨운 노동에서 나오는 작물은 전부 자식들 입으로 들..

사진속일상 2012.11.10

고추 심기

고향에 내려가 고추 심는 어머니 일을 거들었다. 어머니가 미리 골을 내어 비닐을 씌어놓았기에 고추를 심고 지주를 세우는 일만 하면 되었다. 올해는 고추모 800포기를 심었는데 해마다 양이 조금씩 줄어든다.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탓이다. 한창 많았을 때는 2,000포기 가까이 키웠다. 어머니가 농작물을 가꾸는 정성은 자식을 기르는 이상이다. 마을의 이웃들도 감탄할 정도다. 홀로 되셔서 삶의 낙을 농사일에 붙이셨다. 작물 가꾸는 게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들어도 얘들이 자라는 걸 보면 보람이 있고 재미있다신다. 또 정성이 그만큼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아도 밭에 나와 놀아야 한다며 하루도 밭 출입을 거르는 일이 없다. 어머니가 고추모를 만지는 모습을 ..

사진속일상 2012.05.08

2012 설날

아이들이 떠난 올 설은 단촐했다. 어머니를 포함해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설 전날 오전에 일찌감치 차례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는 햇빛바라기를 하며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았다. 떡국을 먹다가 아내는 눈물바람을 했다. 귀하게 키워서 남의 집에 주었다고 어머니도 한 소리 거들었다. 공주 대접 받고 있을 텐데 뭘 그러느냐, 했지만 내 마음도 한 쪽이 슬펐다. 광주에 돌아오니 딸과 사위가 세배를 왔다. 고향에서는 자식이 되었다가, 내 집에서는 부모가 된다. 통영에 다녀온 둘째는 싱싱한 해산물을 사 가지고 왔다.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대구가 엄청 컸다. 자식들은 떠나갔고 다시 둘이 남았다. 집은 잠시 적막에 잠긴다. 쓸쓸한 듯, 흐뭇한 듯, 집안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이 또한 삶이 노년에 주는 새로운 맛이고 선물이 ..

사진속일상 2012.01.24

고향에서 김장을 하다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제사를 지내듯 매년 벌어지는 연례행사다. 함께 김장을 하며 한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지만 힘들고 번거롭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는 이제 각자 알아서 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올해는 동생들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김장할 준비는 모두 갖춰 놓았다. 여든 내외의 두 분이 배추 100포기를 일주일에 걸쳐 준비하셨다. 이게 사람 사는 재미라지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김장 행사는 올해로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힘들면서 돈도 더 든다. 요사이는 주문만 하면 절인 배추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이라고 아내는 강조한다. 이것 역시 변화하는 세상의 추세다. 약을 가져가지 못한 아내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펑크가 날 정도로 한 차 가득 가을 짐이 실렸다...

사진속일상 2011.11.22

비에 젖은 추석

비가 많은 해다. 고향에 내려가 있은 추석 연휴 동안에도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시골집에 내리는 빗소리는 요란하다. 야성의 소리다. 첫날 밤은 사나운 낙수 소리에 여러 차례 잠을 깼다.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이지만 누구나 삶의 신산을 맛봐야 한다.큰 병만고통이 아니다. 손톱 밑의 가시가 도리어 당사자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될 수가 있다. 연민의 눈으로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나서 아름다운 일은 그대를 믿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송편 빚어 가마솥에서 찌는 풍경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과 동네는 썰렁하다.외지에 사는 자식들 휭 하니 왔다가 휭 하니 사라진다. 따스한 정을 나누기보다는 서로 스트레스 받고 상처를 주고받는 게 현실의 가족 관계가 아닌가...

사진속일상 2011.09.13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

시읽는기쁨 2011.09.09

고향에 다녀오다

짬을 내어 고향에 가서 이틀 밤을 자고 왔다. 퇴직하면 고향에 자주 내려가서 어머니 농사를 거들어주겠다고 사람들에게큰소리쳤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여름 고향집은 어수선하다. 볕에 까맣게 끄을린 어머니 모습 보기가 안타깝다. 일 하시는 근력도 작년만 못하시다. 해마다 기력이 쇠하시는 걸 확인하는 자식의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함께 모시고 지내지도 못한다. 돌아오는 길은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올해는 비가 많아 고추 수확이 늦고 양도 예년만 못하단다. 고향집에 간 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붉은 고추 두 포대를 따오셨다. 늦은 오후에는 집 앞 텃밭에 가을 채소를 심을 고랑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작은 노동에도 힘겨워하셨다. 밤에는 휘영청한 보름달빛에 취해 자다가 모기에게 온몸으로 보시를..

사진속일상 2011.08.15

고향에서 지낸 일주일

5/9 사랑방에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다. 코 고는 소리에 놀랐는지, 불안했던 꿈자리 때문이었는지, 언뜻 잠을 깨니 낙숫물 소리가 감미롭다. 내려올 때 잔뜩 흐렸던 날씨가 그새 비를 뿌린다. 며칠 전 K 형과 축령산에 갔을 때 쉬던 장소는 항상 졸졸졸 계곡물 소리가 들리던 곳이었다.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발걸음을 끌리게 한다. 고향집에서 듣는 빗소리도 마찬가지다. 빗소리는 강약에 따라 갖가지 운율로 속삭인다. 잠시 비가 잦아들면 마당의 나뭇가지로 날아온 새들의 지저귐이 더해져 아름다운 협주곡을 연주한다. 같은 소리건만 도시의 아파트에서 강제로 듣게 되는 소음과는 딴판이다. 뭉쳤던 마음의 응어리가 눈 녹듯 풀린다. 어버이날 선물로 TV를 바꿔 드리다. 5/10 고향집 개는 너무 순하다...

사진속일상 2011.05.17

고향에서 일주일을 머물다

휴가가 시작되면서 바로 고향에 내려가서 일주일을 있다가 왔다. 마침 대구 이모도 오셔서 함께 지냈다. 덕분에 밭에 나가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루는 소백산에 올랐고, 하루는 산에 계신 외할머니를 찾아뵌 것 외에는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이웃 동네에 계신 고모 생신에 어머니를 모시고 잠깐 찾아가기도 했다. 책은 두 권 읽었으나 더워서 글을 쓰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여름은 겨울만 못하다. 부엌 앞 마당에 채송화가 피었다. 시멘트 바닥에 생긴 작은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게 신기하다. 마을 앞 개울을 따라 농로 겸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햇살이뜨거워 1시간만에 포기했다. 하얀 바닥의 반사광이 너무 강했다. 아직도 건강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고맙기는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지는 않는지 걱정..

사진속일상 2010.07.24

부도덕하게 살거다 / 손현숙

머리 실핏줄이 막혀서, 하도 기가 막혀서 덜컥 누워버린 늙은 엄마, 늙은 아버지가 병문안 오면 슬쩍 눈 흘기면서 대놓고 “가소, 마”한다 그리고 곧이어 “부도덕한 늙은이!” 혼잣말인 척 짐짓, 다 들리도록 중얼거린다 천 번도 더 들은 저 말, 삼강오륜으로 중무장한 우리엄마는 지금 입만 살아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평생 부도덕했던 우리 아버지 팔순을 넘기고도 정정하게 훠이 훠이 세상 끝까지 마실 다닌다 나, 이제부터 무조건 부도덕하게 살거다 도덕 찾다가 늙어, 어느 날 뒷목 잡고 넘어가느니, 요놈의 사탕 같은 세상 실컷 빨면서 들통 나지 않게 시치미 딱 잡아떼고 치맛자락 살살 흔들면서, 살거다 부도덕한 늙은이! 그 누가 뭐라 뭐라 씹어도 끄떡없는 아버지, 지금 엄마 등 쓸어준다 발 닦아준다 에그그..

시읽는기쁨 2010.07.15

고향에 다녀오다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던 차에 다음 주 어버이날을 겸해서 고향에 다녀왔다. 험상궂던 날씨가 5 월 들면서 화창하고 따스한 봄날을 회복했다. 마을 앞 철길을 따라 이제야 복사꽃이 환했다. 어머니 계신 방의 윗목 소반 위에 물파스와 근육통이라 쓰인 약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많이 아프시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마당 한 켠텃밭에서는 마늘이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화단의 명자나무꽃은 봄 추위를 견디지 못해 듬성듬성 피었다. 집 뒤에도 손바닥만한 텃밭이 있다. 바로 뒤가 솔숲이니 이쯤에다 집을 지으면 앞뒤 전망이 훨씬 나아질 것 같다. 집 뒤의 대나무는 역시 추위 탓이었는지 누렇게 말라버렸다. 산 아래밭에 나가 두릎도 따고 농로도 고쳤다. 어머니는 고추 농사, 콩 농사 지을 준비 이미 다 마치셨다. ..

사진속일상 2010.05.02

고추장 항아리

고향집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50년이 넘은 고추장 항아리 얘기를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장독대에는 그 외에도 수 대째 내려온 100년이 넘은 큰 독도 있었다. 사소해 보이는 항아리들이지만 애환이 깃든 사연을 알고 나니 그냥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알고 나면 별 볼 일 없거나 하찮은 물건이란 없는 법이다. 어머니는 열여섯에 시집 오셨다. 시집은 제대로 된 솥이나 그릇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나가시게 되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전에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어느 때는 식량이 떨어져서 온 식구가 물만 먹으며 사흘을 누워있기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친척집으로 양식을..

길위의단상 2010.01.18

고향에서 보낸 행복한 날들

아흐레 동안 고향에서 지냈다. 왜 그런지 고향집에만 가면 두문불출, 꼼짝하기가 싫다. 내려와서 연락하지도 않는다며 마땅찮게 보는 친구도 있지만 내 체질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대구에도 다녀오고, 하루는 인근 지역으로 나무를 보러 나가기도 했다. 그 외의 나머지 날들은 말 그대로의 은둔생활을 했다. 더구나 겨울이니 사랑방 안에서만 숨어있었던 셈이다. 고향에는 어머니 홀로 계시니 군불을 때는 사랑방이 유일한 생활공간인 것이다. 거실이나 다른 방은 냉기를 면할 정도로만 기름보일러가 돌아간다. 하루 생활은 무척 단조롭다.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이불을 펴고 눕는다. 일찍 이불을 펴두어야 방이 덜 식기 때문이다. 라디오를 켜놓고 누워서 어머니..

사진속일상 2010.01.18

태양초

고추를 말리는 어머니의 정성은 극진하시다. 요사이는 고추 농사가 힘들다고안 하는 집도 많고, 하더라도 고추 말리기가 고생이라며 건조기 신세를 지는 게 보통인데 어머니는 억척스레 전통적인 방법으로 태양초를 만드신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오면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부직포를 덮고 며칠간 말린다. 어느 정도 색깔이 익으면 다시 마당에서 완전히 말린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방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고추 수확이 시작되는 8월 초부터 한 달 반 동안 고향집 마당은 늘 붉은 고추로 덮여 있다. 지금 농촌에서도 이렇게 정성을 들여 고추를 말리는 집은 보기 어렵다. 도시 사람들이 태양초라고 사 먹는 고추도 대부분 기계에서 말린것이다. 심지어는 태양초로 보이기 위해 고추 꼭지를 물에 불..

사진속일상 2009.09.07

어머니 생신으로 고향에 다녀오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하다.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고향 마을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조용하다. 갓 모내기를 한 논에서는 풋풋한 향내가 풍긴다.흙내음, 물내음이 섞인 그 냄새가 좋아 논둑길을 따라 걷는다. 모내기를 끝낸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농부의 마음이 되고 싶어진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다. 어머님 생신은 형제와 친척들이 한 자리에 가장 많이 모이는 날이다. 스물 남짓 정도가 읍내 고깃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다. 마을을 지나 밭으로 가는 길이다. 인생길이 산 너머 산이요, 첩첩산중이다. 저 고개만 넘으면 목 축일 샘이 있고 쉬어갈 자리가 나오겠지 기대하지만 가보면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도리어 점점 험해지는 심산유곡이 기다리고 있다.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멈추지못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진속일상 2009.06.01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엄마 걱정 / 기형도 어버이날에도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찾아뵙지 못했다. 전화를 드리니 괜찮다, 괜찮다 하신다. 그 말에 더욱 마음이 무겁다. 자식 노릇 하나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고담준론이나 일삼는 내 자신이 슬프다. 옛말에 공부시킨 자식이 불효한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런 것 같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내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윗목이다.

시읽는기쁨 2009.05.09

산소에 측백을 심다

이번 한식에는 고향에 내려가서 산소 주위에 측백나무를 다시 심었다. 전에 심었던 것은 염소가 올라와 잎을 다 뜯어먹어서 대부분 고사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염소는 못 먹는 게 없다. 봄햇살 따스한 날이었다. 밭가에 있던 오동나무도 베어내고 톱으로 썰어 두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작업을 했는데 오랜만의 노동인지 힘이 들고 금방 지쳤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뒷산에는 자주괴불주머니가 변함없이 피어났다. 전에 이웃에 살았던 친척들이 들리는 바람에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반가웠다. 형은 여전히 큰소리 뻥뻥 쳤고, 어른들은 그런 형을 여전히 사랑스러워했다. 내려가던 날은 벚꽃을 보러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청풍으로 갔다. 그러나 청풍호를 따라이어진 벚나무는 아직 개..

사진속일상 2009.04.06

어머니와 김장을 하다

헝제들이 고향집에 모여서 함께 김장을 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는데 올해는 서로 일정이 어긋나 같이 모이지를 못했다. 동생들은 지난 주말에 내려갔고, 나는 이번 주에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한 일이란 빈 김치통을 들고가서 가득 채워 돌아오는 일밖에 없었다. 같이 속을 버무리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디모도'나 하라고 해서 배추를 날라주고 통을 옮기는 등의 잔심부름만 했다. 그러나 가만히 보니 디모도 역할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 김장을 하는 사람은 고무장갑을 낀 손에 양념도 잔뜩 묻어있어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만 일의 능률이 오르게 되어 있다. 고향에 내려가면 싣고 오는 것이 늘 차로 가득이다.이번에도 김장 외에 쌀, 당근, 파, 무우, 배추, 밑반찬, 기름, 장, 콩 등 어머니가 직..

사진속일상 2008.11.22

고향에서 지낸 일주일

7/28 혼자 내려가는 걸음은 쓸쓸하다. 고향집에는 아무도 없다. 늘 그랬듯 텅 빈 집이다. 서먹하고 미안하고 허전하다. 가슴으로 찬 바람이 지나간다. 자격지심 탓인지 이번엔따스한 모성이 더욱 그리워진다. 7/29 쉬다. 짬짬이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을 읽다. 화단의 배롱나무 꽃이 환하다. 7/30 걷다. 길 위에 서면 그나마 생기가 난다. 햇볕 따갑지만 두려운 건 그게 아니다. 홀로 걷는다는 것은 철저히 혼자가 되면서 또한 밖으로 자신을 여는행위다.그냥 걷다보면 꽁꽁 닫아놓았던 마음의 울타리가허물어진다. 자책도 원망도 눈 녹듯 사라진다. 기억이란 참 묘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어느 때 이 길을 따라 오계초등학교 뒷산으로 소풍을 갔었다. 2열종대로 타박타박 걸어갔던..

사진속일상 2008.08.04

생일 축하합니다

읍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어머니의 생신 축하 모임이 있었다. 케이크에는 78을 의미하는 촛불이 켜졌다. 동생들과 가까이 사시는 친척분들이 함께 했다. 50대의 자식들이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처음에는 왠지 어색했다. 그런데 옆자리의 손님들까지 박수를 쳐주었고 케이크도 나누어 먹었다. 시골 음식점 풍경이 정겨웠다. 자꾸만 늙어가시는 부모님의 생일을 맞는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에서 도리어 위로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사진속일상 2008.06.07

5월의 휴가

5/4(일) 어제부터 5 일간의 휴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5 월의 휴가는 온전한 내 휴가가 아니다. 5 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며 왠지 부담이 되는 달이다. 모든 것 뿌리치고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에는 5 월의 압박이 너무나 세다. 나에게 5 월의 휴가는 결코 화려한 휴가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황금 연휴에는 양가의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고향으로 내려가며 그 많은 기념일 중에 '나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는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기념일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기념일이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날은 모든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 보는 것이다. 예전에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청..

사진속일상 2008.05.07

2007 추석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 김소월의 '고향' 중에서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소월이 읊은 마음 속의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추루해진 현실로서의 고향이다. 귀성길의 정체를 뚫고 악착같이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내 마음 속의 고향이 아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고, 남아있는 것 그리고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무나 낯설다. 어떤 면에서 고향길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확인하는 길이다. 그러나정말 변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예대로의 같은 모습이건만이미 나는 어린 시절의 눈을 가지고 있지..

사진속일상 2007.09.26

고향집에서 쉬다

고향집에 내려가서 일주일간 푹 쉬었다. 한 주일 내내 비가 오면서 날씨까지 도와줘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빈둥거리며 지냈다. 책을 몇 권 들고 갔으나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일 밭에 들르시고, 반짝 볕이 난 한낮에는 고추 첫물을 따셨다. 어머니의 밭은 역시 단정하고 깔끔했다. 어머니의 실력은 집안 살림보다는 들일에서 발휘된다. 밭을 왕복하는 길에서 만나는 미루나무 풍경이 아련하고도 서럽게 내 마음을 울렸다. 하루는 동생네가 다녀갔다. 바람에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새로 고쳤다. 저녁에는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과 고등어구이가 아주 맛났다. 그러나 동시에 비어있는..

사진속일상 2007.08.12

재춘이 엄마 /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 해라! - 재춘이 엄마 / 윤제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재춘이 엄마와 다르지 않으리라. 하늘이 내려준 자식 사랑의 모성애를 누가 폄하할 수 있으랴. 그러나 모진 현실은..

시읽는기쁨 2007.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