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03

고향에서 지낸 일주일

7/28 혼자 내려가는 걸음은 쓸쓸하다. 고향집에는 아무도 없다. 늘 그랬듯 텅 빈 집이다. 서먹하고 미안하고 허전하다. 가슴으로 찬 바람이 지나간다. 자격지심 탓인지 이번엔따스한 모성이 더욱 그리워진다. 7/29 쉬다. 짬짬이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을 읽다. 화단의 배롱나무 꽃이 환하다. 7/30 걷다. 길 위에 서면 그나마 생기가 난다. 햇볕 따갑지만 두려운 건 그게 아니다. 홀로 걷는다는 것은 철저히 혼자가 되면서 또한 밖으로 자신을 여는행위다.그냥 걷다보면 꽁꽁 닫아놓았던 마음의 울타리가허물어진다. 자책도 원망도 눈 녹듯 사라진다. 기억이란 참 묘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어느 때 이 길을 따라 오계초등학교 뒷산으로 소풍을 갔었다. 2열종대로 타박타박 걸어갔던..

사진속일상 2008.08.04

생일 축하합니다

읍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어머니의 생신 축하 모임이 있었다. 케이크에는 78을 의미하는 촛불이 켜졌다. 동생들과 가까이 사시는 친척분들이 함께 했다. 50대의 자식들이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처음에는 왠지 어색했다. 그런데 옆자리의 손님들까지 박수를 쳐주었고 케이크도 나누어 먹었다. 시골 음식점 풍경이 정겨웠다. 자꾸만 늙어가시는 부모님의 생일을 맞는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에서 도리어 위로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사진속일상 2008.06.07

5월의 휴가

5/4(일) 어제부터 5 일간의 휴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5 월의 휴가는 온전한 내 휴가가 아니다. 5 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며 왠지 부담이 되는 달이다. 모든 것 뿌리치고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기에는 5 월의 압박이 너무나 세다. 나에게 5 월의 휴가는 결코 화려한 휴가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황금 연휴에는 양가의 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하였다. 고향으로 내려가며 그 많은 기념일 중에 '나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는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기념일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기념일이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날은 모든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해 보는 것이다. 예전에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청..

사진속일상 2008.05.07

2007 추석

짐승은 모를는지 고향인지라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 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조상님의 뼈 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 김소월의 '고향' 중에서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소월이 읊은 마음 속의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추루해진 현실로서의 고향이다. 귀성길의 정체를 뚫고 악착같이 찾아가는 고향은 이미 내 마음 속의 고향이 아니다.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고, 남아있는 것 그리고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무나 낯설다. 어떤 면에서 고향길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확인하는 길이다. 그러나정말 변한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고향은 예대로의 같은 모습이건만이미 나는 어린 시절의 눈을 가지고 있지..

사진속일상 2007.09.26

고향집에서 쉬다

고향집에 내려가서 일주일간 푹 쉬었다. 한 주일 내내 비가 오면서 날씨까지 도와줘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빈둥거리며 지냈다. 책을 몇 권 들고 갔으나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매일 밭에 들르시고, 반짝 볕이 난 한낮에는 고추 첫물을 따셨다. 어머니의 밭은 역시 단정하고 깔끔했다. 어머니의 실력은 집안 살림보다는 들일에서 발휘된다. 밭을 왕복하는 길에서 만나는 미루나무 풍경이 아련하고도 서럽게 내 마음을 울렸다. 하루는 동생네가 다녀갔다. 바람에 찢어진 비닐하우스를 새로 고쳤다. 저녁에는 숯불에 구워먹는 삼겹살과 고등어구이가 아주 맛났다. 그러나 동시에 비어있는..

사진속일상 2007.08.12

재춘이 엄마 /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 해라! - 재춘이 엄마 / 윤제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재춘이 엄마와 다르지 않으리라. 하늘이 내려준 자식 사랑의 모성애를 누가 폄하할 수 있으랴. 그러나 모진 현실은..

시읽는기쁨 2007.05.08

머위 / 문인수

어머니 아흔셋에도 홀로 사신다 오래 전에 망한 장남 명의의 아버지 집에 홀로 사신다 다른 자식들 또한 사정 있어서 홀로 사신다 귀가 멀어 깜깜 소태 같은 날들을 사신다 고향집 뒤꼍엔 머위가 많다 머위 잎에 쌓이는 빗소리도 열두 권 책으로 엮고도 남을 만큼 많다 그걸 쪄 쌈 싸먹으면 쓰디쓴 맛이다 아 낳아 기른 죄 다 뜯어 삼키며 어머니 홀로 사신다 - 머위 / 문인수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평생을 억척스레 농사 지으며 5남매를 키우셨는데, 여든 가까이 된 나이에 자식도 손주도 곁에 없다. 어머니 역시 '자식 낳은 죄'의 업보를 쓴 외로움으로 갚아 나가신다. 늙으신 부모를 안타까워하는 자식 또한 밑의 자식을 낳은 천형을 짊어져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머위 잎처럼 쓰디쓴 맛이다..

시읽는기쁨 2007.02.08

2006 추석

올 추석은 8일 동안의 휴일이 주어졌다. 2일과 4일의 징검다리 근무일이 모두 재량휴업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와 영주의 처가와 고향집을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어머님을 찾아뵙고 형제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힘들어지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긴 거리를 오랜 시간 움직여야하는 몸의 피곤보다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또 병약한 모습의 어른들을 뵙게 되는 정신적 피로함이 훨씬 더하다. 이번 길에도 처가 쪽에서는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큰어머님과, 본가 쪽에서는 암투병중이신 이모부님을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종이처럼 얇고 창백한 모습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특히 치매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고 병들고 죽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운명이..

사진속일상 2006.10.07

사람 노릇 하기

우리는세상에 태어나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관계의 폭은 점점 넓어진다. 부모, 부부, 자식, 형제자매, 친구, 이웃,동료, 친척, 동창, 고객 등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노릇을 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 일차적 관계인 부모 노릇, 자식 노릇 제대로 하기 조차 힘에 겨울 때가 많다. 신경을쓴다고 하지만늘 부족하고 미안하기만 한 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노심초사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가족 행사가 의무방어전처럼 부담이 되기도 한다. 어머님과 장모님의 생신이 묘하게도 같은 날이다. 그래서 우리들 때문에 두 분의 생신은 매년 조정을 해야 한다. 대부분 한 주일 ..

사진속일상 2006.06.05

물방울 삼형제

차례상에 올릴 나물을 끓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다른 집도 사는게 다 똑 같더라." 그리고는 옆집의 누구는 형수와 틀어졌고, 또 누구네 집은 형제간의 불화가 아직껏 계속돼 서로 남보듯 한다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셨다. 그러나 '다른 집도'에서 '도'를 강조하시는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에 내 마음도 슬퍼졌다. 이번 추석에는 찾아온다던 막내를 잊지 못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어려운 자식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리라. 추석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반짝 나온 햇빛에 고향집 토란 잎 위 물방울 세 개가 보석처럼 빛났다.

사진속일상 2005.09.19

고향집

고향집에 자주 들러야 하건만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늘 무언가에 빚 진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자식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다른 데에 아무리 신경 쓴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이번에 내려가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사는 게 지옥 같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내가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악화된 상황이 몇 년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떨 때는 야속하기도 하다.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밖과 일에만 매달리는 어머니가 충분히 이해된다. 한식을 맞아 허물어진 산소를 손보다. 밭에다 만든 산소라서 땅이 단단하지 못해 비만 오면 비탈이 무너진다. 석축을 쌓아야 ..

사진속일상 2005.04.06

새벽 전화벨 소리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운다. 방안은 온통 깜깜한데 가슴이 철렁한다. 수화기를 드니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시다. 이젠 심장이 방망이질친다. ".....무슨 일이세요?" "응, 별 일 없나... 다음 주말에 전부 모여서 김장 하기로 했으니까 그 때 내려 온나..." 아이구..... 그렇다고 이 꼭두새벽에 전화를 하시다니..... 새벽 전화벨 소리는 너무 무섭다. 고향에는 96세 되신 외할머니가 계신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가 무척 고생하신다. 금방 한 말도 잊어버려서 외할머니 옆에 있으면 똑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임종 소식이 올까 봐 늘 불안하다. 외할머..

길위의단상 2003.11.20

어머니의 송편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떡을 찝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저의 몫이죠.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떡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언제 느껴도 풍성하고 따스한 추석 풍경.....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떠나 보내고, 낡게 만들고, 지금은 어머니의 등마저 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가 쪄 주시는 송편 맛을 볼 수 있을런지... 정다운 것과 만나는 기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진속일상 2003.09.15